오르세미술관 소도록
지엔씨미디어 편집부 지음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오르세 미술관전이 막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넷 서점에 아직 입고되기도 전에, 직접 영풍문고 가서 샀던 책이다
루브르 미술관전은 대도록만 사 놓고 결국은 못 보고 말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가리라 굳게 마음 먹고 책을 샀다
그런데,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니 생각만큼 쉽게 읽히지가 않았다
차라리 미술전을 본 후 읽었으면 한 번 본 그림들이라 호기심이 생겨 쉽게 책을 봤을텐데, 도록을 먼저 보려니 도판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잘 넘어가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전시회가 한 달 밖에 안 남았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 책을 집어 들었다
지난 번 루브르 미술관전처럼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니 또 술술 넘어갔다
확실히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평면적이고 직접적이고 강렬하다
특히 나처럼 강렬한 색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인상파 그림은 확 와닿을 수밖에 없다
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그림도 무척 좋아하는데, 램브란트 풍의 어둡고 지적인 분위기의 자화상 보다는, 루벤스의 화려하고 과장된 듯한 바로크 화풍에 훨씬 더 끌린다
쓰디쓴 커피에 열광하고 강렬한 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과도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평면적이기 때문에 더욱 현대적으로 강하게 와 닿는 인상파 그림은, 신화나 성인들 같은 문학적인 소재 대신, 일상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주변을 그렸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특히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은, 정말 눈을 확 끈다
르누아르가 그린 마네의 조카, 즉 베리스 모리조의 조카 줄리 마네의 초상화를 보면, 당시 인상파 화가들의 끈끈한 인연을 알 수 있다
또 팡탱 라투르가 그린 들라쿠르아에 대한 경의, 라는 그림을 보면 마네와 휘슬러 등 당시 유명한 화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바지유의 아틀리에 그림에서도 모네와 르누아르, 졸라 등이 나온다
인상파 그림의 매력은, 이처럼 실제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밀레의 그림은, 상대적으로 너무 심심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밀레 때문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고흐의 그림은, 그 강렬한 노란색 색채나, 혹은 완전히 평면적인, 그만큼 단순하고 강렬한 구도를 보면, 가슴이 막 뛴다
그림자를 없애고 평면적으로 그린 폴 세잔의 푸른 화병, 이라는 정물화도 인상적이다
그 유명한 사과 그림보다 훨씬 마음을 끈다

이번에 새롭게 안 제임스 티소라는 화가의 무도회, 라는 그림에 나오는 노란색 드레스 입은 여인의 모습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런 그림이 전시회장에 나오면 당장 사고 싶을 것 같다
팡탱 라투르라는 화가도 처음 알았는데, 그가 그린 처제 샤를로트 뒤부르의 초상화도 너무 아름답다
과장되지 않고 고즈넉한 어두운 배경 안에 앉아 있는 샤를로트는 독신 여교수였다는 이미지에 딱 어울린다
클로드 모네의 눈 내린 시골 풍경 그림도 너무 좋았다
확실히 화가들은, 단순히 대상을 똑같이 모사하는 능력 외에도 상상력과 관찰력이 풍부해야 한다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보는 능력,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은 이미지를 창조해 낼 줄 아는 상상력, 손기술과 더불어 함께 갖춰야 할 지적 능력이 아닌가 싶다

다시금 느끼는 바지만 프랑스라는 나라의 문화적 저력은 놀랍다
파리 사람들이 느끼는 자부심이 얼마나 강할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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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07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세 미술관전, 궁금하네요. 어떤 그림을 보여줄지요. 안녕하세요. 저도 그림 좋아하고요. 가끔 오르세 미술관에 산책 간답니다. ^^

marine 2007-08-08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사시나요??

누에 2007-08-09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 미국 복음주의를 모방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그 역사와 정치적 욕망
김진호.최형묵.백찬홍 지음 / 평사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책이었다
무엇보다 자기 주장만 늘어 놓는데서 끝나지 않고 근거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당위적이고 원론적인 주장과 비판만 펴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꽤나 학술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한미 FTA나 미군 철수 문제 등은 솔직히 말해 나는 정부 쪽 생각과 비슷하다
사실 정치 문제는 관심 밖이기 때문에 굳이 내 의견을 피력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래서인지 미국 종속화에 대한 강한 비난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미국의 원조가 경제 성장에 이바지 한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냐는 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주의는 정말 너무너무 싫다
싫다는 정도를 얼마나 강하게 말해야 그 정도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성경무오류설을 믿지 않고 문자주의에도 반대한다
마치 진화론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신앙의 정도를 평가하는 시선도 혐오스럽다
금연이나 금주가 과연 신앙의 깊이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설사 비례 관계가 형성된다 하더라도 개인의 사생활 혹은 취향의 문제를 놓고 남을 비난한다는 게 옳바른 일일까?
언젠가 이런 우화를 읽은 적이 있다
피정을 간 아들과 아버지가 저녁 기도를 올리려고 일어났다
그런데 다른 신자들은 기도도 안 하고 자버리는 것이다
아들이 그들을 비난하자 아버지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아, 차라리 오늘 네가 기도를 안 하고 자 버리는 게 나을 뻔 했구나"
나는 이 우화를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무엇일까?
아들이 밤에 자지 않고 일어나 기도를 올리는 것일까, 기도를 안 하고 잠들어 버린 게으른 신자들을 비난하는 것일까?
마치 하나님의 뜻을 자기들만 안다는 듯이, 일방적인 기준을 가지고 남을 비난하고 평가하고 심지어 공격하는데 온 힘을 모으는 근본주의자들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앙 보다는, 권력의 헤게모니를 쥐려는 암투로 밖에 안 보인다

여러가지 판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는 게 정말 너무 싫다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치 신앙의 척도인 양 평가하는 기독교의 경건주의 혹은 엄숙주의가 싫다
금연과 금주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성생활 역시 금해야 하지 않겠는가?
성욕이야 말로 인간을 가장 타락하게 만드는 강렬한 욕구가 아닌가?
이단이라고까지 말하는 카톨릭 사제들이, 그런 면에서는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 그들 논리로 따지자면
동성애, 낙태, 미혼모 문제 등을 왜 교회가 간섭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 나왔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일획일점 틀리지 않고 지키려고 든다면, 왜 구약시대 그 많은 계율들은 죄다 무시하고 있는가?
나는 동성애자도 아니고 내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낙태도 안 하겠다
그렇지만 그건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면 안 하면 그만일 일을, 왜 심지어 살인까지 불사할 정도로 남에게까지, 심지어 공동체 전체에게 그 신념을 강요하는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이른바 세대주의라고 불리우는 천년왕국설도 정말 싫다
그것은 다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소망이고 마음에 깊이 담아 두는 희망일 뿐이다
왜 그것을 억지로 현 정치에 짜맞춰 신자들을 협박하는가?
다니엘서에 나온 괴물이 정말 로마 제국이고 또 미국인가?
성경을 이용해 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목사들, 그리고 거기에 부응하는 신자들, 정말 나는 어쩔 수 없이 무교회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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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8-0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지금 시점에 딱이죠. 보고픈데.

marine 2007-08-0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리뷰를 좀 성의없게 썼는데요,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
박현모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했던 것 보다는 못했다
전작 "정치가 정조" 를 워낙 인상깊게 읽은 탓일까?
아무래도 이번 책은 밀도 면에서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사극 작가들이 놓친 부분, 아마추어 역사가들은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제도적인 면의 탁월함을 밝히겠다는 서문의 각오와는 달리, 뒤로 갈수록 맥이 빠지는 기분이다
물론 재미는 있었다
300페이지가 좀 못 되는 책을 비교적 꼼꼼하게 읽었는데도 4시간 밖에 안 걸렸으니 말이다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갈 정도로 이야기 구성이 잘 되어 있다
임용한씨의 "조선국왕이야기" 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세조에 대한 평가 부분이 상반적이라 흥미로웠다
이 책의 저자 박현모씨에 따르면, 태종이 종사의 앞날을 위해 과감성 있게 세자를 교체했듯, 세종 역시 문종 대신 수양대군을 후계자로 삼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다
저자는, 문종이 병약해 일찍 죽었고 그 덕분에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라 결과적으로 피바람 나는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세종이 알아서 후계자 교체를 했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종이 비록 병약했다고 하지만 아버지 세종 치세에 10년이 넘도록 대리청정을 했고, 왕위에 올랐을 때 이미 30대를 훌쩍 넘은 나이였다.
사실 그는 세조의 아들들인 의경세자나 예종 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고 손자인 성종 보다도 한 살 더 살았다
조선 시대 평균 왕의 수명으로 보면 요절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단지 병약하다는 이유 만으로 적장자 계승이 원칙인 세자를 바꾼다는 건 후대 사람들의 말놀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또 열 한 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이 너무 어려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세조의 손자가 되는 성종 역시 단종보다 겨우 한 살 많은 나이에 보위를 이었다
단종과 성종의 차이는 후원인이 있냐 없냐였을 뿐이다
수양대군이 충직하게 조카의 후견인이 되어 줬다면, 혹은 아버지 문종이나 할아버지 세종이 아예 그의 싹을 잘라 줬다면 문종 시대는 보다 평탄하게 오래 지속됐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종과 세조는 근본적으로 격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문종을, 충녕에게 왕위를 뺏긴 양녕대군에 비교하지만 (즉 수양대군을 세종에 비교하지만) 임용한에 따르면, 문종은 아버지 세종의 정치 철학을 잘 이했했고 학문에 있어서도 세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세조가 힘자랑 하기 좋아하는 무인이었데 비해, 문종은 보다 고상한 학자풍이었고 아버지 세종은 임용한씨의 말대로, 비단 그가 장자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세조보다는 문종을 택했을 것이다
세종이 원하는 국가는 의정부서사제라는 제도가 보여주듯, 토론과 논의를 거쳐 가장 좋은 통치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 세조는 신성불가침의 왕권을 재상들에게 나눠주는 아버지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왕이 육조에 직접 지시하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바꾸었다
왕권과 신권의 줄다리기라는 관점을 넘어서, 세조는 여러 차례의 정난을 통해 무수한 훈구파 공신이라는 특권층을 양산해 냈다
훗날 일어난 중종대의 사화는, 세조가 양산한 이 공신가문의 전횡을 막겠다는 사대부들의 반발이었다
태종 역시 정난을 통해 아버지 태조가 세운 국가를 일부 가문에게 몰아 주었지만, 태종은 세조보다는 훨씬 더 결단력 있는 인물이었고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가문이든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장 가까웠을 가문, 어찌 보면 권력을 뒷받침 해 줄 처가와 사돈 집안까지도 몰살시킨 걸 보면, 특권층과 결탁해 권세를 누린 세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나는, 세조에 대한 평가는 박현모와 완전히 다르다

소헌왕후와 신빈 김씨의 관계는 참 특이하다
소헌왕후의 침실나인이었던 김씨는 왕에게 승은을 입은 후 6남 2녀라는 자녀를 낳을 만큼 왕의 사랑을 받았다
연달아 일곱 명의 아들을 낳았던 소헌왕후는, 신빈 김씨가 아이들을 생산할 때 임신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만에 낳은 늦둥이 임영대군을 신빈에게 맡길 정도로 그녀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사이가 좋을 수 있었을까?
왕비 자신이 여덟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낳을 만큼 다복했기 때문에 남편의 첩에 대해서도 관대했던 것은 아닐까?
아마도 세종이 왕비의 위신을 살려 주고 첩에 대해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러고 보면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는 보통 애정 관계가 아니었을 것 같다
역대 어느 왕후보다도 많은 자녀들을 낳았으니 말이다

유감동 사건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다소 놀랍다
임용한 역시 어우동 사건에 대해 비슷한 해석을 한 적이 있는데, 저자 역시 유감동이 작정하고 고위 관리들을 데리고 놀았다고 본다
남성들은 처벌받지 않고 (받았다 해도 곧 관직이 회복됐고) 어찌 보면 억울하게 희생된 한 여성만 희생된 이 사건에 대한 남성 사가들의 관점이 냉혹하기 그지 없다
유교 사회였으니 이해는 가면서도 현대적인 해석이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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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7-08-01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종에 대한 것도 참 흥미롭군요. 위인전같은데 세종부분에 잠시 묻어서 나온 것이 전부였던 병약한 이미지의 왕이었는데...

marine 2007-08-0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국왕이야기 1편을 보면 (임용한 저) 문종은 세종의 정치철학을 잘 이해한 학자 군주로 나옵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일부 공신들과 결탁해 특권층을 양산해 낸 세조와는 정치적 질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나오죠 문종의 세자 시절과 재위 기간은 새롭게 평가해야 될 것 같아요

마노아 2007-08-0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마린님 리뷰가 더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책을 비교해주신 것도 좋았구요. ^^

marine 2007-08-02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리뷰를 좀 성의없게 썼는데요, 비교해서 읽으면 재밌을 것 같아요

공주 2011-08-0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주의 남자를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수양대군이 거의 주연급이라 그에 대한 관심으로 이 글을 읽게 되네요..ㅎㅎ

ㅁㄴㅇ 2011-10-08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태종 없이 세종대왕이 있을 수 없었고. 세조 없이 성종이 있을 수 없었다는건 지극한 역사적 사실인대.

조선사에 있어서 태평성대를 열었던 왕이 바로 성종인대

이 성종은 세조가 없었다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없었는대. 세종도 마찬가지로 태종없이는 그러한 업적을 만들지 못했거늘.

태종이나 태조에 비하면 세조는 잔인한 축에도 안들어가는대.

픽션 드라마인 공주의남자 라는 드라마 하나가 역사적 인물하나를 병쉰만드는거 같아 아쉽다.

내일이 한글날인대 아버지 세종과 함께 한글을 만들고 세종다음으로 한글을 사랑했던 조선의 군주가 병쉰취급당하는거 같아 안타깝다.

ㄱㅇ 2014-12-31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윗분 말처럼 세조 없이는 성종이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세조가 결코 조선사에 좋은 영향을 끼친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세력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지지하면서 결과적으로 훈구파라는 세력을 형성하게 만들었고 비록 성종때 태평성대를 이룰수 있었지만 조선후기를 보면 훈구파 때문에 점차 쇠락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개인적인 사실인대가 아니라 사실인데 입니다.........
 
조선왕비실록 - 숨겨진 절반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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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알찬 내용에 다소 놀래면서 읽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일단 사료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야사 위주로 흐를 위험이 있어 경계하는 편인데, 저자는 비교적 꼼꼼하게 실록을 분석해 무난한 추론을 펼친다
비약이 심하지 않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왕비라면 이른바 나라의 어머니인데 왜 이렇게 정사 기록이 부족한지 모르겠다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처럼 왕비들의 일생을 기술한 역사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사극이 궁중 여인들의 암투 따위로 물들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는 여자의 이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왕비의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어렸을 때는 아명으로 불리다가 시집을 가면 그 때부터는 누구 엄마, 누구 며느리 등으로 이름이 실생활에서 불려질 기회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이름을 중시 여기고 신성시 하다 보니 감히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고 호나 자 등을 따로 붙인 관습을 생각해 보면, 조선 사회에서 이름없는 여성들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조선의 모든 왕비를 다 그리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비교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일곱 명의 왕비로 국한한 점이, 책의 내용을 보다 풍성하게 해 준다
여기 나온 왕비들은 사극으로도 많이 만들어졌고 그만큼 파란의 세월을 산 인물들이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나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처럼 비교적 평탄하게 삶을 보낸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쉽기는 하다
워낙 기록이 없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새로운 사실들이 발굴되길 기대해 본다

몇 가지 기억에 남을 만한 이들을 언급해 보자면, 먼저 명성황후 민씨의 가계다
한미한 집안의 고아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족보를 열어 보니 인현왕후의 직계 자손이었다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은,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5대 종손이라고 한다
드라마에서 민비의 어머니 이씨 부인을, 감고당 마님이라고 부르던데, 바로 그 감고당이 인현왕후가 궁에서 쫓겨난 기간 동안 머물렀던 가옥이라고 하니, 과연 보통 집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민유중의 큰아들 민진후가 노론의 극렬 강경파이다 보니 아마도 이 집안은 대대로 노론 집안이었을 것이다
세도 정치가 시작된 후 안동 김씨에게 밀려 노론조차 설 자리가 없었던지라 이들은 민유중의 선산이 있는 여주에 머무르다가 민치록이 죽은 후 종가가 있는 안국동 집, 즉 감고당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민치록의 양자가 민승호인데 이 사람이 또 대원군의 처남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민승호의 친누나가 바로 대원군 부인이었던 것이다
대원군은 결국 처가쪽 집안 사람을 왕비로 앉힌 것이다
의의로 민비와 고종은 사이가 좋았던 모양으로 살아남은 자식은 순종 뿐이지만 그 전에도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유산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고종을 쥐고 흔든 게 민비였던 걸 보면 꽤나 당찬 성격이었을 것 같다
비극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망국의 책임은 분명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궁궐 경비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왕비가 일개 낭인들에게 칼맞아 죽었을지 참 한숨만 나온다

정희왕후와 소혜왕후 부분도 흥미로웠다
특히 소혜왕후의 아버지 한확이라는 사람의 집안 내력이 재밌었다
워낙에 출중한 인물을 자랑하는 집안이라, 한확의 두 누이는 명나라 영락제와 선덕제의 후궁이 됐다고 한다
또 그녀들을 수행한 한확 역시 빼어난 외모 때문에 명나라 황제의 사랑을 듬뿍 받아 벼슬까지 제수받았다고 하니 과연 보통 인물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런 아버지와 고모들을 둔 인수대비 역시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인물 얘기를 하자면 고려사에 뛰어난 미인이었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원경왕후의 이모였다
한 이모는 원나라 황제의 후궁이 되기도 해서 원경왕후의 외가는 부원세력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하니, 과연 왕비들은 집안 뿐 아니라 인물들도 보통 이상이었을 것 같다
정희왕후는 남편 세조와 동지적인 관계였을 것 같다
쿠데타를 일으킬 때도 갑옷을 준비해 줄 정도로 당찬 성격이었던 그녀는, 과연 남편 사후에도 최초의 수렴청정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정순왕후나 순원왕후처럼 세도정치의 오명을 남기지 않은 걸 보면 비교적 무난하게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일처리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미지가 넉넉해 보인다
세조는 왕이 되기 전 박팽년의 딸 근빈 박씨를 소실로 맞아 아들을 보았고, 그 외 노비 출신 첩이 있었으나 정작 왕이 된 후에는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기록을 보면 꽤나 여색을 밝혔던 것 같은데 왕이 된 후 공식적인 후궁이 없었던 걸 보면 비록 여자 관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겠으나 왕비 윤씨를 꽤나 존중했던 건 사실인 듯 하다

다소 놀라운 것은, 왕비 폐출이 생각보다 쉬웠다는 점이다
세종이 첫번째 며느리 휘빈 김씨를 폐출시킨 것은, 단순히 비방을 일삼았다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서였다
다음 며느리인 순빈 봉씨야 동성애를 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세자의 사랑을 받는 여인의 신발을 태웠다고 해서 한 나라의 세자빈을 쫓아낸다는 건 황당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생각만큼 왕비의 자리가 탄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즉 친정 집안이 든든하게 뒤를 봐 주지 않는다면 사소한 잘못 가지고도 쉽게 쫓겨 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휘빈 김씨야 아기가 없으니 방패막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연산군의 어머니는 또 어떤가?
떡 하니 원자까지 낳아준 윤씨를, 정희왕후와 소혜왕후는 출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즉 결혼식을 올린지 1년도 안 되서) 사술을 쓴다는 이유로 폐출 논의를 한다
친정인 윤기견의 집안이 하위 관리직이어서 따로 왕비를 방어해 줄 세력이 없었던 것이 결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나마 그녀는 둘째 아들을 낳은지 백일도 안 되서 폐출됐고 그 불행한 아기도 죽고 만다
아들을 둘씩이나 낳은 정비를 단지 질투한다는 이유만으로 쫓아낸 걸 보면, 아이도 낳지 못하는 인현왕후가 쫓겨난 것은 얼핏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인현왕후는 든든한 집안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노론의 중진) 다시 복위할 수 있었고, 이 가엾은 폐비윤씨는 오히려 아들이 왕이 될 거라는 이유로 사사당한다

개인적으로 알고 싶은 왕비로는 안동김씨 60년 세도의 기반을 다진 순조비 순원왕후와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 등이다
사실 순원왕후야 말로 세도정치의 가장 위에 있었던 인물이니 문정왕후나 정순왕후처럼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야 맞는데 의외로 이 사람은 베일에 쌓여 있다
드라마를 만들어도 재밌을텐데 말이다
정조비 효의왕후는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왕비였던 것 같다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지극정성으로 받들었고 순조를 낳은 가순궁 박씨와도 동기처럼 우애있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남편 정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불임이었다고 한다
너무 반듯하게 일생을 보내서 극적인 요소가 없다 보니 얘깃거리로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꽤나 궁금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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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근대 -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박지향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박지향 교수의 책이라면 이미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다
또 지난 번에 봤던 책,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에서도 그의 논문 한 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의 존재는, 바로 그 논문에서 알게 됐다
마음에 드는 학자였고 무엇보다 영국인의 눈에 비친 근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로워 상당히 기대를 하고 본 책인데 100% 만족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전공 분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영국 역사를 쓴 책에서는 번뜩이는 재치가 빛났는데 한국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풍경은,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비록 일반 대중에게는 다수의 정서이나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청산해야 할 과거 유습이라는 지배가 다수인지라, 학자들이 외치는 민족주의 극복이 참신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자의 타자성 극복 역시 새로울 것은 없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민족주의 정서가 퍼진 것은 겨우 식민지 시대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즉 일본에 대한 대항 논리로써) 과거에는 외세와의 접촉 자체가 없었으니 민족주의라 이름붙일 만한 현상조차 없었을 것이다
즉,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민족주의라고 명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조선인은 일본이나 여진 등에 대한 타민족에게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만 봐도 얼마나 극렬하게 그들을 배척했는지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여전히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겠지만, 근대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일본이란 국가의 저력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줬다는 자부심 때문에 갖게 되는 우월감 자체가, 사실은 과거부터 실체가 모호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 조상들이 일본을 하수로 여겼던 것만큼, 일본이 조선을 대단하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일본에 대한 우월감은, 그저 막연하게 남을 우습게 보는 유아독존적인 유치한 감정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일본은 조선과는 매우 다른 별개의 문화를 만들어갔고 유교 문화의 공통점이라면, 중국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 과연 조선에 대해 얼마나 문화적으로 고마워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 지도층이 사생결단을 내고 전력한 결과였다고 보는, 저자의 견해를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당연히 고종을 위시한 왕조 세력가들의 무능함과 부패다
이상하게도 식민지배의 책임은, 을사오적을 비롯한 일부 친일파에게만 국한됐고 정작 조선을 대표하는 당사자, 고종과 민비 등에게는 동정론이 퍼져 있다
마치 고종은 외세와 친일파들에게 휘둘려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불행하게 죽은 가엾은 왕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과연 고종이 그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일까?
만약 그런 식으로 동정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무능함의 표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민비나 아버지 대원군에게도 휘둘렸던 걸 보면 아마도 고종은 난세를 헤쳐나갈 군주감은 못됐던 것 같다
이미 국운이 쇠락해져 누가 왕이 됐더라도 왕조의 멸망은 정해진 수순이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태종이나 세종, 혹은 영조나 정조 등의 군주였다면 그런 식으로 힘 한 번 못 써 보고 식민지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군주로서의 무능함은, 다시 한 번 집중 조명되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따지면 이른바 "조선의 국모"라는 명성황후의 부패상과 정권욕도 보다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외세 침입 때문에, 즉 나쁜 놈들 때문에 착하고 선량한 조국이 멸망했다는 식의 자조론은, 저자의 말마따나 발전지향적인 미래상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
슬픈 아일랜드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우리 경제력이 일본을 압도할 때야 비로소 일본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이나 혹은 열등감을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한국 여행기는 읽은 적이 있다
항상 원자료가 2차적인 해설서 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그것도 원자료를 분석할 수준이 될 때 하는 얘기라는 걸 이번에 느꼈다
물론 "한국과 이웃나라들" 을 재밌게 읽긴 했으나 박지향 교수가 분석한 글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책이 갖는 시대적 의미나, 혹은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윤치호 일기가 국역됐다는 소식을 듣고, 읽어볼까 하고 집어들었다가 그 복잡다단함에 놀라 손을 들었던 생각이 난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은 워낙에 관심이 많은 분야라서 그런지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 보다 100배는 재밌게 읽었지만 나머지 것들은 원자료 보다 해설서가 아직은 더 쉽게 다가온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지 통치는 이 책에서도 영국인의 눈을 통해 확인된다
영국이 간접 지배를 선호했던 데 비해, 일본은 완전 동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억압과 반발이 더 심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윤치호 같은 사람은 이왕 식민지라 될 바에야 일본보다는 영국이 낫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간접통치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영국인이 훌륭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박애와 사랑 정신에 가득차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영국은 워낙에 광대한 제국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100% 복속시킬 수는 없었다
여력이 안 됐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은 한국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전면적인 동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동화 정책이 심한 억압과 함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너무 당연하다
당시 영국 제국주의 관료들에 따르면, 일본이 동화 정책을 포기하고 간접 지배 쪽으로 돌아선다면, 즉 보다 인도적으로 그들을 지배한다면 한국인은 식민 지배를 유순하게 받아들였을 거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 정책은, 당시 같은 편이었던 영국 관리들 마저도 고개를 흔들게 만들만큼 끔찍했다고 하니, 식민지를 살아 낸 조선인들의 분노와 한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구한말 조선인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점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구한말 사진을 볼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인데, 대체 왜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도 무표정했다는 말인가?
요즘 눈으로 보자면 상당히 촌스럽기까지 하다
매우 평면적이고 뚱한 느낌을 준다
고위 관리들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난 단지 오래된 사진이라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당시 한국을 방문한 유럽인들도 나처럼 조선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기라는 신식 물건에 너무 긴장해서인가?
아니면 원래 전근대는 개인의 감정이 무시되는 전체주의적인 사회여서인가?
비슷한 시대의 다른 나라 사진들도 좀 구해서 보고 싶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일본인은 보다 화사하고 생기있게 느꼈다고 한다
아무래도 산업화에 성공하고 한창 국력이 물오를 때였으니 유럽인들이 생동감 있게 느꼈을 것이 당연하다
또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일본의 판화를 보면, 꽤나 강렬하게 역동적인 색감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일본은 유럽인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는 동양 국가였을 것이다

비숍 여사가 식민지 관리였던 커즌과 달리, 젠더라는 측면에서 남성에 비해 소수자였기 때문에 지배적인 타자성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인도의 부왕까지 지낸 커즌의 여행기와, 개인 여행가에 불과했던 비숍의 여행기가 다른 관점이었음은 당연하다
근본적으로는 유럽중심주의 혹은 영국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세밀한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서양을 우상시 하고 따라잡을 목표로 봤던 일본에서는, 젠더보다 인종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훌륭한 대우를 받는다
반면, 서양을 배척해야 할 오랑캐로 간주했던 조선에서는 (아마도 일반 민중들까지 서양 기술력의 위대한 실체를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인종보다 더 앞선 것이 젠더였다
동방예의지국을 엄청난 자랑거리로 생각하던 당시 양반 계층조차, 비숍 여사의 눈에는 매우 무례하게 느껴졌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에 있다
상대적으로 커즌은 남자였기 때문에 관으로부터 지극한 대접을 받았고 여행시 불편한 점이 있다면 관이나 양반 계층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라는 충고까지 적어 놓는다
그러나 비숍 여사는 관의 협조문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마을을 가든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한다
19세기 조선인의 눈에는, 여자 혼자서 먼 이국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계급적인 부분은 (민족이나 젠더, 직업군,인종 등 모든 신분을 망라해서) 개인이 풀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단지 유럽인, 특히 영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노력 없이도 현지인들의 호의를 넘치게 받을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백인이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백인의 특권까지 거부해 버린 것이다
반면 커즌은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비슷한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민족주의나 집단적인 대응이 근본적으로는 싫지만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개인은 미약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느낀다
"관용에 대하여" 라는 책에서도 지적한 바대로, 아무리 완벽한 개인의 시대를 외친다고 해도 결국 우리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민족이나 젠더, 인종, 종교 등으로 명명될 수 밖에 없고 완벽한 개인의 시대란 어쩌면 영원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비극적인 느낌이 든다
결국 국가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아나키즘 역시 유토피아 같은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가장 발전된 형태의 사회란 국가가 완전히 소멸된 아나키즘의 시대가 아니라, 유럽 연합이나 미 합중국 같은 느슨한 의미의 지역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페미니즘이나 민족주의 역시 나름의 생명력을 끈질기게 유지할 것 같다

300 페이지에 불과한 얇은 책이고 서술도 평이해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관점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근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윤치호 일기를 분석한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이제 김구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 말고도 일제 시대를 살았던 다른 지식인들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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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0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밌게 읽었습니다. 책도 재밌을 것 같고요. 전 한국 밖에 있으면서 일본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됩니다. 가까이 있었을 땐 거의 아는게 없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