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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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은 마치 디저트 같다
본식 말고 추가로 얻어 먹는,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것!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보다는 감동이 덜하지만, 요즘 읽은 산문집 중에서는 최고였다
이 책에서도 소설을 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미학적 열정" 을 꼽기도 했는데, 나 역시, 에세이나 소설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저자의 문장력이나 문체 등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문열씨 같은 경우는 어떤 수필을 읽든 상당히 만족스럽다
정말 기본은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고종석씨 같은 경우도 내용과는 상관없이 문장력이 좋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독자를 만족시킬 줄 안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대부분의 수필들은 한숨 나올 때가 많다
좋은 작가가 반드시 훌륭한 수필가는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하곤 한다
특히 제일 짜증날 때가, 마치 독자에게 뭔가 교훈을 주려고 선생님인 양 할 때다
조지 오웰의 경우, 소설도 재밌게 읽었지만 (동물농장, 정말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에세이 쓰는 솜씨도 남다르다
조지 오웰에게서 제국주의자 냄새가 난다는데 대체 어떤 부분을 읽고 느끼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다
민감한 정도는 모두 다르겠지만...

그는 하층민 삶에 대해 관심이 참 많다
나는 고통에 취약해서인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흔들리게 만드는 끔찍한 삶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내가 다다를 수도 없는 저 높은 곳에 사는 부유층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도저히 만나보지 못할 것 같은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내 이웃이라도 되는 양 시시콜콜하게 써대는 재벌 2세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짜증이 난다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나는 기본적으로 하층민의 끔찍한 삶은 외면하는 쪽인데 (그래서 이걸 다루는 글은 읽기가 싫다, 고통스럽다고 해야 할까?) 오웰은 한 술 더 떠 직접 체험하기까지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역시 영국이 한 발 앞서 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요즘 우리가 시민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걸 20세기 초에 주장했다는 점이다
식민지의 피지배인들에게까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내세우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하여튼 자국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우리가 기본이라고 느끼는 것들, 그러니까 밥 먹고 잠자는 곳 해결되는 그런 수준을 넘어 문화적인 욕구까지 충족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사회의 경제력이나 시민 의식이 어느 정도 진행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에서도 제일 공감했던 것이, 접시닦이는 불필요한 직업이라는 점이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할 것 같은데 오웰의 주장을 들어보면 나름 일리가 있다
일류 호텔에 들어가 최상의 써비스를 받으며 최고의 음식을 즐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교묘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왜냐면 겉보기에 그럴 듯해 보일 뿐 실상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주방을 들여다 보면 끔찍할 정도로 형편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손님은, 단지 근사한 곳에서 최고의 음식을 즐긴다는 기분을 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을 뿐, 실상 그가 받는 서비스는 싸구려 식당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최상의 맛, 혹은 최상의 써비스를 위해 (즉 사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일류 호텔 같은 공간은 실상 실체가 없는 곳이다
오히려 그 밑에 무수한 일용직들을 양산할 뿐이다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최저 임금 밖에 못 받는 하층민 계급을 말이다

오웰의 글을 읽으면서 문화적 욕구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다
나라가 잘 살수록 상대적 빈곤이 문제라고 하던데 어떤 사람들은 먹고 살 만 하니까 배부른 투정한다고 일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보릿고개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아주 핀트가 안 맞는 말인 것이, 이미 사회는 절대 빈곤의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비교 기준 자체가 변해 버렸다
자동차 없이 걸어다녔던 조선 시대를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말이다
오웰은 구빈원 이야기를 자주 한다
어떻게 보면 할 일 없이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구빈원 같은 제도 때문에 일 안 하고 게으른 홈리스들이 놀고 먹는 것 같지만, 오웰은 그들에게 단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의식주 해결해 주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고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하고,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과 최소한의 주거지를 확보할 수 있는 임금 이외에도, 이른바 문화적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잉여 자본이 제공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실업자에게도 기본적인 문화 생활은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세금을 모아 먹여 살리는 사회 복지 국가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옛날에는 그 효율성에 다소 반신반의 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봤을 때 (즉 사회의 발전 내지는 개인의 존엄성 존중이 확대되는 측면에서 봤을 때) 사회 복지 제도의 확대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다

나치 장교를 구타하는 유대인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누가 복수의 범위를 정해 줄 수 있는가?
오웰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복수는 대부분의 경우는 정당화 될 수 없는지 모른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나치가 득세할 때는 나치 장교가 군중에게 얻어 맞을 때 시원함을 느끼고 누구나 그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치가 몰락한 후 나치 장교를 군중들이 집단 구타할 경우, 그 때는 불편한 감정이 든다 (아닌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미 나치는 권력을 상실해 버렸고 그는 일개 나약한 개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수로 전락해 버린 악인에 대한 강자의 복수가 과연 얼마나 정의로울 수 있을까?
전범 재판 같은 것이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뭐라고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으나, 하여튼 법정에서가 아니라 대중들이 한 개인에게 집단으로 복수하는 것은, 아무리 그가 과거에 끔찍한 악인이었다 할지라도 정의롭지 못하게 느껴진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사형제도였다
살인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복수가 바로 사형제도라고 하는데 이것의 범죄 예방 효과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그것이 정의로운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를 감옥에 평생 가두어 두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복수가 불가능할까?
내 가족을 죽인 살인자라면 나는 용서할 수 있을까?
물론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그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이미 나는 또다른 악을 행한 것이 되고, 또 그가 사형당한다고 해서 내 원한이 풀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기징역 대신 사형만이 완벽한 사회적 복수일까?
아마도 오웰 역시 사형제도를 반대했을 것 같다

전체주의를 끔찍할 정도로 혐오한다는 점에서 오웰과 나는 비슷하다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것도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인 것 같다
파시즘 내지는 전체주의가 나는 너무너무너무 싫다
"너무" 라는 단어를 대체 얼마나 붙여야 싫은 정도가 제대로 표현될까?
집단주의나 민족주의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싫다
개인의 자유와 행동의 폭이 최대한 존중되는 그런 개방된 사회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민족주의 열풍이 부담스럽고 오웰의 말마따나 스포츠에 덧씌워진 민족주의적 냄새 때문에 축구경기에 크게 흥분하지도 않는 것 같다
오웰의 말에 따르면 스포츠 관람은 집단 증오심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한다
창조적인 행위로 잉여 에너지를 발산할 수 없는 하층민 노동자들이 더욱 거칠게 축구 경기 관람에 몰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여러가지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았고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보다는 재미가 다소 떨어지긴 하다
트웨인에 대한 평가가 너무 재밌어 문득 "톰 소여의 모험" 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도 같이 읽고 싶어졌다
서평가가 형편없는 책에도 찬사 일색을 늘어 놓을 수 밖에 없는 이유라든가, 시민의 자유는 법 보다 여론에 달렸다는 주장 등도 인상깊었다
전문 서평가보다 차라리 아마추어 서평가 (알라딘의 리뷰어들처럼) 들이 차라리 책의 재미를 주는데 더 낫다는 그의 탄식에 동의하는 바다
다음에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 볼 생각이다
47세에 결핵으로 죽었다는 것이 안타까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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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 - 일반 킵케이스
끌로드 를루슈 감독, 장 루이 트랭트냥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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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너무 좋았던 영화
흑백과 컬러의 어우러짐이 절묘하다
젊은 감독의 출세작인 만큼 화면전개도 빠르고 늘어지지 않아서 좋다
어쩜 이렇게 사랑에 빠져든 남녀관계를 잘 묘사했는지...
35세의 나이에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 올 수 있다는 걸 아름답게 보여준 감독에게 감사한다
오히려 그 나이는, 한 번의 사랑을 경험하고 추억과 아픔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보다 사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시기라는 감독의 관점이 독특하다
처음 결혼으로 골인하는 관계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소리
여배우 아누크 에메는 단발머리가 너무 잘 어울리고 다리가 무척이나 날씬하며, 고혹적인 미모를 자랑한다
그녀와 작업한 것은 행운이었다는 감독의 고백이 과연 실감난다
이 정도 미인이라면 서른 다섯이 아니라 마흔 다섯이어도 얼마든지 훌륭한 연애가 가능할 것 같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남녀의 나이가 비슷한 연배라는 것이다
젊은 아가씨와 중년 아저씨의 사랑은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을 해도 산뜻해 보이지 않는다
각자 사랑의 아픔을 간직했고 연륜과 세상 경험이 있는 동등한 위치의 남녀라는 점에서 보기가 편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왜 아직 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아이들을 기숙사에 맡기는가이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떼어놓는 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프랑스 문화의 특징인가?
기숙사에서 학부모로 만난 안과 루이, 루이가 안에게 묻는다
결혼하셨나요?
아니, 아이가 있는데 결혼하는 건 당연하게 아닌가?
동거가 일반화 됐다는 프랑스 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장면 장면이 모두 기억에 생생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안이 루이의 우승을 축하하는 전보를 치는 장면, 축하합니다, 라고만 썼다가 곧 사랑합니다까지 집어넣는 장면, 너무 좋았다
그 전보를 받고 몬테카를로의 파티장에서 곧바로 파리까지 차를 몰고 달려가는 루이!
안의 아파트에 도착하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연습하는 루이의 초조해 하는 모습은, 사랑을 고백할 때의 남자 모습이 잘 드러난다
뜻밖에도 새벽에 안은 없었다
다시 안을 찾아 도빌에 있는 기숙사까지 차를 모는 루이, 그리고 해변가에서 아이들과 산책을 즐기는 안을 발견하자마자 기쁨에 겨워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는 장면은 영화의 압권이었다
눈부신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루이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안과 아이들은 그에게 달려든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연인의 감격적인 포옹, 어쩜 그렇게 섬세하게 잡아낼 수 있는지...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
식사를 간단하게 주문하자 웨이터가 기분이 상한 듯 돌아선다
안이 걱정하자 루이가 그럼 더 시키죠, 하면서 웨이터를 불러 세운다
그러면서 뭔가 메뉴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던지는 말, "빈 방 있나요?"
그저 멋지다고 밖에는...
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나중에 첨가된 감독의 37년 후 이야기도 재밌었다
젊은 시절이나 노년의 모습이 모두 감성적이고 멋진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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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dts]
류승완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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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큼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최민식은 갈수록 빤한 연기만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든다
정형화 되어 있고, 그 역할이 그거인 듯한 느낌이다
배우의 변신도 때로는 필요한 모양이다
최민식 보다 류승범이 훨씬 잘 한다
류승범은 생긴 건 별로인데, 정말 연기를 잘 한다
저렇게 평범하게 생긴 놈이 조연도 아닌 주연을 어쩜 저렇게 잘 해내는지 신기하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일단 얼굴이 안 받쳐주면 실력있는 조연으로 전락하기 일쑤인데, 즉 맡을 역이 없는데, 자기 몫을 챙기는 실력이 놀랍다
혹시 형이 챙겨 줘서 그런가?
하여간 형제가 다 인정받으니 좋겠다

결말은 너무 시시하고 뻔했다
특별한 결론을 안 내린 건 좋았는데, 두 사람의 처절한 사투로 감동을 끌어내려는 수법은 너무 빤하다
전혀 눈물도 안 나오고, 오히려 지루했다
눈물이란 것도 슬픈 장면 있다고 다 나오는 건 아닌가 보다
최민식, 분명히 연기는 잘 하는데 지루하다
반면 류승범은 색다른 모습을 보여 준 것 같다
분명히 이 영화로 류승범이 뜰 것 같다
130분이라는 런닝타임도 좀 길지 않나 싶다

최민식을 보면서 K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K씨도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가족의 지원이 없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인생을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시안 게임 은메달 리스트이면, 그래도 자기 세계에서는 성공한 셈인데 왜 그렇게 몰락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천호진에 대한 비중이 너무 작아서 좀 황당하다
감독이 좀 더 애정을 갖고 그릴 수 있는 캐릭터인데 아쉽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왜 거기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다는 말, 가슴에 남는다
다 자기 몫의 짐을 지고 사는 게 인생이다

나문희의 할머니 연기도 참 전형적이고 뻔했다
그다지 슬픔이 밀려 오질 않는다
오히려 류승범의 아버지로 나온 사람이 더 마음에 든다
조연으로 종종 나오는데 맛깔나게 연기 참 잘한다
건설 현장에서 철골 떨어져서 단번에 죽어 버리는 장면은 정말 섬뜩했다
면회 안한다는 아들에게 빵 넣어 주면서, 자기 군대 시절 생각해 단 것 좀 넣었다는 편지는 압권이었다
자기가 인생 험하게 살면 자식도 보고 배운 게 그런 거라 똑같은 길을 가는가 보다

최민식 후배로 나온 놈도 진짜 연기 실감나게 한다
니가 구라 빼면 뭐 있냐? 넌 말을 너무 잘 한다, 이 대사에 딱 어울리는 놈이다
그래도 마지막에 최민식 도와서 신인왕전 내보내는 거 멋있었다
류승범이 신인왕 도전하면서 뭔가에 매달리는 모습이 마치 플로우를 보는 기분이었다
플로우, 행동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상태, 목표에 매진하는 모습, 잡념이 사라지는 무아지경...

화려한 영화보다는 이렇게 험한 영화가 더 편하다
사실적이고 있을 법한 얘기기 때문인 것 같다
재벌들 얘기는 너무 황당무계하다
드라마에서는 재벌이 등장하고 영화에서는 서민들이 등장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보면 영화가 훨씬 더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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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성의 결혼과 생활 - 송대 여성을 중심으로
P.B.에브레이 지음 / 삼지원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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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는 달리, 중국 전 시대의 여성사를 다룬 게 아니라 송나라 때 여성사로 국한시킨 책이다
범위를 한정시켜 오히려 심도있는 분석을 한 것 같다
원저 그대로 송나라 시대 여성사라고 이름붙여도 좋았을 뻔 했다
저자의 시각이 새로웠던 점은,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가부장제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그녀들도 자발적으로 사회 체제 유지에 봉사했다고 본 점이다
그러고 보면 딸에게 전족을 시킨 것도 바로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여성들 역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충분히 공감했고 주체적으로 적응해 나갔다고 보는 시각이 새롭게 느껴진다
여성학자가 쓴 글이기 때문에 더욱 신뢰가 간다
단순히 흥미 위주로 자기 생각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학술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가는 책이다
미국인이 중국 문헌을 분석하면서 쓴 책이라 확실히 애매모호한 구석들이 있다
한국인이 서양사를 쓸 때도 비슷한 한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워낙 바빠 한 번에 죽 읽지 못하고 몇 번에 걸쳐 나눠 읽는 바람에 집중도가 좀 떨어지긴 했으나 충분히 흥미를 유지할 만큼 재밌는 책이었고 유익했다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점은, 서자에 대한 대우가 어땠는지 하는 부분이다
조선은 확실히 서자를 관직 진출도 못하게 하고 차별을 했는데 송나라 시대의 서자 대우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관직 진출은 금지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는데 분명한 서술이 없어서 다소 아쉽다
재산 분배에 있어서는 차별을 뒀던 것 같다
어찌 됐든 공식적인 아내는 법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고 첩은 공식적으로는 가족의 범위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상속분보다는 최소한 같거나 많았던 걸 보면 확실히 딸은 남의 집에 출가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유교는 수직적인 질서를 중시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송나라 때 완성된 신유학, 특히 주희와 정이의 사상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데 위계질서를 지키면서 각자의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해야 사회가 질서와 안정을 이룬다는 생각이 주를 이룬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너무 당연한 진리가 통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인지, 남녀가 유별하다는, 즉 남녀가 불평등하나는 것을 전제한 유교 사상이 쉽게 공감가지 않음은 당연한 것 같다
연애는 20세기 들어서야 결혼의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다는 말도 새삼 느끼게 된다
돈이나 집안, 지위 등을 우선시 한 사회적인 결합이 곧 결혼이라는 사실은, 지금 젊은이들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송나라 시대에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낭만적인 결혼이란 현대의 발명품인가?
모든 조건을 떠나 개인과 개인의 1:1 결합이 사회적 결혼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의미에서 결혼도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존엄성이 점점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혼은 새로운 동맹자를 얻는 결합 행위였다
당연히 신부의 지참금은 중요한 문제였다
혼수 문제로 결혼이 파토나는 걸 두고 우리 풍습에 없는 자본주의의 병폐라고 한탄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좋겠다
지참금과 혼수 목록에 따라 결혼의 성사 여부가 결정되는 과정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그려지는지...
오히려 현대 사회가 개인의 행복과 사랑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인간적이라느 생각이 든다
사회나 가정보다 개인이 더 중요시 되는 사회가 바로 현대 사회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그리스 시대 노인들의 한탄은,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다
자기 시대만이 특별히 타락하고 과거보다 문란해졌다는 생각이야 말로 역사의 발전을 전제하지 않은 어리석은 생각 같다
두 가문의 결합에 따른 불편한 감정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결혼식을 축제의 의미로 거창하게 치룬다는 저자의 해석이 재밌다
그러고 보면 결혼은 단순히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개인에 딸린 전 가족이 하나의 동맹을 맺는 과정이다
그러니 누가 손해를 보고 이득을 보는지 얼마나 셈하기가 복잡하겠는가?
그 부담감과 긴장을 줄이기 위해 결혼식은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잡았고 그것을 지킴으로써 심적인 긴장감을 최소화 시킬 수 있었다
나름대로 제도를 유지시키는 인간의 지혜였던 것이다
구청에서 신고하고 끝난다는, 혹은 동거가 보편화된 유럽 사회에 비춰 보면 확실히 거창한 결혼식을 올리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결혼을 개인보다는 가문의 결합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동거를 마치 도덕규범의 파괴라도 되는 듯 절대금지 시키는 노인네들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
가문 보다 개인을 택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위험스럽게 여져기는 것이리라

저자의 성실한 연구가 돋볻이는 책이고 일독할 필요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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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소나타 - [초특가판]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 잉글리드 버그만 외 출연 / PS Kr.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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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만에 본 DVD인지...
고전 영화를 수집하는 아빠의 고상한 취미 덕분에 눈이 호강한다
한동안 영화 다운받는 재미에 빠져 하루에만 두 세 개 씩 해치울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좀 지나니까 시들해졌다
그래도 드라마 보는 것 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봤었다
아빠 덕분에 고전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 영화처럼 스펙타클 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또 스토리나 플롯이 아주 정교하지는 않지만 세월의 흐름을 이겨낸 나름의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누가 저런 케케묵은 영화를 볼까 싶지만, 마치 헌책방을 찾는 손님들처럼 고전 영화를 수집하는 매니아층도 꽤 있는 것 같다
난 영화 기법이나 촬영 각도 같은 기술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또 크게 관심도 없지만) 뭔가 생각할 꺼리를 준다는 점에서 옛날 영화를 좋아한다
왜 그게 명작인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 아주 재밌지는 않더라도 보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그런 영화가 좋다
이른바 예술 영화라고 하는 것들은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다
가끔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기승전결이 전혀 없는 그 밋밋한 설정에 황당하면서도 현실 세계를 너무나 가감없이 드러내고 특히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마치 날것을 먹는 것 같은 신선함을 느낀다
하여튼 고전도 그렇다
과장이 없고 오버하지 않아서 보기가 편하다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면 '카사블랑카'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로 유명한 그 청순가련형의 스웨덴 여배우가 아닌가?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사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젊어서 찍은 건지 늙어서 찍은 건지도 몰랐다
또 젊은 시절 모습만 봐도 나이든 얼굴은 매우 낯설어 처음에는 못 알아 봤다
다만 할머니가 참 곱게 늙었다, 노인인데 키도 굉장히 크고 옷이 잘 받는구나, 딸보다 더 예쁘게 나온다, 이런 느낌만 받았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잉그리드 버그만이었다
당시에는 보톡스 시술이 없었는지 얼굴 주름살, 특히 입가의 팔자 주름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나이에 맞는 늙음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60세 넘은 할머니가 피부가 팽팽한 건 왠지 현실감이 없어 보인다
딸인 리브 울만은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페르소나였다는데 연극배우였다고 한다
솔직히 외모는 감성을 불러 일으키기엔 너무 평범하다
어머니를 몰아 세우는 장면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최고였다

서양 어머니들은 확실히 한국적인 정서와는 다른 것 같다
어머니 하면 자식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외국 영화를 보면 오히려 어머니의 자아발전 때문에 소외받는 딸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영화도 전형적인 모녀 갈등을 그리고 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열연한 샤롯트는 우리나라의 성공한 아버지로 치환해도 될 것 같다
성공을 위해 가정을 희생하고 가족은 항상 자기를 위해 존재하고 언제나 따뜻한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버지!
성공지향적이라는 점에서, 가정보다는 사회적 명성을 우선히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남자들과 비슷하다
영화 속의 어머니, 샬롯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다
그녀는 1년 내내 공연을 다니고 남편과 딸은 소외당한다
등이 아파 최고의 공연을 못하게 되자 샬롯트는 과감하게 피아노를 접고 가족에게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정말로 가족을 위해 피아노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자 대신 가족에게 행복을 얻기로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다
나는 가족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자연스레 그녀는 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왜 너는 그 기대에 못 미치냐는 식으로 말이다
가끔 보면 한국의 젊은 엄마들도 사회적 성공을 자식에게 대신 바라는 경우가 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대리만족 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딸 에바는 엄마에 비해 외모도 떨어지고 피아노 솜씨도 형편없다
완벽한 엄마의 기대에, 더구나 피아노를 포기하고 선택한 엄마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딸을 자꾸 자기 기대에 맞게 변형시키려는 엄마,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딸, 결국 소심한 딸은 정신병이 생기고 만다
그녀는 열 여덟 살 때 나이 많은 남자의 아이를 가짐으로써 안식처를 얻는다
엄마는 둘을 갈라 놓고 유산시켜 버린다
모녀간의 갈등은 정점에 달했고 엄마는 곧 잊어 버렸으나 딸은 평생을 상처로 안고 산다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에바가 엄마를 원망하면서 했던 말이다
"알렉스는 어른이었어, 충분히 나를 책임질 수 있었다고"
나이 많은 남자와 18세의 어린 숙녀가 한 때의 불장난으로 끝날 거라는 게 일반적인 시선인데 비해, 당사자인 본인은, 오히려 남자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자신과 임신이라는 상황을 책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관점의 차이가 재밌다
어쩌면 부모들의 생각과는 달리, 알렉스는 에바를 책임질 만큼 사회적으로 준비가 돼 있던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자식의 행복을 위한다고 억지로 강행했던 일이 결국은 자식의 인생에 큰 상처를 남기고 평생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일으키는 걸 보면, 아무리 사랑이라는 이름이라 할지라도 타인에게 절대적으로 강요할 수 있는 건 없지 않나 싶다
누구도 인생사를 100% 예측할 수 없고 더군다나 상대의 마음을, 비록 부모 자식간이 할지라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과연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사 자신도 모른다 할지라도 어쨌든 최소한 자기가 직접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후회할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나는 기본적으로 부모에 대한 이런 식의 원망을 좋아하지 않는다
에바는 끊임없이 엄마를 비난한다
어린 시절 사회적 성공을 위해 자기를 버려뒀다는 것이다
자식을 고아원 같은데 버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혹은 기본적은 의식주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또 혹은 폭행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모도 부모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을 권리가 있는 인간이다
왜 부모는 자식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가?
특히 여자는 여자이기 이전에 엄마라는 식의 사회적 표어 같은 발언이 정말 싫다
누구도 설사 자식이라 할지라도 나 자신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다
또 그것은 절대적으로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어야 한다
자식을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받는 건 옳지 않다
희생한 부모가 칭송받는 것 까지는 좋으나, 희생하지 않았다고 비난받는 건 부당하다

영화를 보면서 재밌었던 건, 가족에 대한 각자의 바램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사회 생활에 지친 자신을 어루만져 주길 바란다
샬롯도 공연으로 바쁜 자신을 가족이 위로해 주길 바란다
에바 역시 부모가 자신의 정서를 만족시켜 주길 바란다
대체적으로 한국 사회는 엄마가 가족의 희생자가 되어 구성원들의 요구 사항이나 정서적 만족감을 채워준다
그러나 여자들의 사회 생활이 늘어나면서 여자들 역시 집에서 가족들에게 위로받기를 원한다
70년대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바로 그런 상황이 연출된다
여전히 가부장제 구조를 가진 한국 사회에 살고 있어서인지 자꾸 샬롯이 성공지향적인 아버지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하여튼 결혼이란 배우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나의 일정부분을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인데 과연 그런 마음의 준비를 얼마나 하고 결혼을 하는지 궁금하다
어제 잠깐 본 "웨딩" 이라는 드라마에서 류시원이 장나라에게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 장면이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생각난 답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 내지는 어느 정도의 희생이나 헌신이라고 답하고 싶다

장애아의 등장은 샬롯을 힘들게 만든다
출산 후 곧 버려진 헬레나가 등장한다
이 가엾은 동생을, 언니 에바가 돌본다
의붓아버지 레오나르도와 헬레나의 관계는 명확히 서술되지 않아 다소 모호한 점이 있으나 하여튼 심상치 않게 보였다
엄마의 새 남편 레오나르도를, 사춘기의 헬레나가 사랑한다
키스까지 했다는데 자발적이었다는 점에서 성폭행 같은 개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목을 못 가누는 선천적 질병을 앓던 헬레나는 레오나르도가 떠난 후 정신적 충격으로 아예 하반신을 못 쓰게 된다
이 점은 영화에서 퍽 허술하게 그려진 것 같은데, 정신적 충격으로 사지 마비가 된다면 역시 정신 요법으로 회복될 길도 있지 않을까?
하여튼 에바는, 자신의 새 남자와 딸이 눈이 맞는 눈치니까 그 남자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엄마가 멀리 떠나 버렸다고 생각한다
애가 탄 레오나르도는 냉정하게 헬레나를 뿌리치고 샬롯에게 달려간다
그 날 밤 헬레나가 갑자기 전신 마비가 왔다는 것이다
어린 딸에게 질투를 느끼는 엄마라!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설정이 아닌가 싶다
뭐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 속의 샬롯은 사회적인 성공 만큼이나 성적으로도 매력적인 여자로 나온다
레오나르도의 장례를 치루고 딸 집에 쉬기 위해 내려오는데, 딸과 갈등 후 갑자기 떠날 때도 위로해 줄 남자를 동행하니까 말이다
성적으로 무력한 할머니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재력과 사회적 명성, 성공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부분이었다

노르웨이의 시골은 참 아름답다
저렇게 넓은 집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다운 쉬프트 족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빡빡하게 들어선 아파트, 밀실 같은 이 좁은 공간에서 수백만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이러 처리고 저리 치이면서 사는 인생, 혹 아프기라도 한다면 금방 마음이 약해져 경쟁이 없는 사회로 도망가고 싶을 것 같다
샬롯과 에바가 돌아가면서 연주하는 쇼팽의 소나타 곡이 참 좋았다
영화 내내 은은하게 울리는 OST도 제목에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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