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
김영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보는 미술관 책이다.
작가의 사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문제는 글솜씨 보다 사진 솜씨가 더 좋다는 데 있다.
확실히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작품을 평하는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문장력이 썩 좋은 작가는 아니다.
지난 번에 읽은 비슷한 컨셉의 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가 문장력 면에서는 더 낫다.
하여튼 진부한 주제 같은데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오르세와 루브르는 여행가들의 영원한 꿈인 것 같다.
마로니에 북스에서 나온 미술관 시리즈는,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이라 그런지, 딱딱할 뿐더러, 미술관을 주제로 한 것에 비해 미술관 자체의 내용은 너무 적어 지루하게 읽었는데 이 책은 그런대로 읽을 만 하다.
한 권 들고 여행을 떠나도 될 것 같다.
나라면 이런 책을 기획해 보고 싶다.
정말로 그 책 한 권만 가지고 있으면 제대로 미술관을 탐방할 수 있는 그런, 내용 빵빵한 안내서 말이다.
배낭 여행자들이 론리 플래닛을 최고의 여행서로 삼듯, 미술관 순례에도 빠지지 않는 확실한 안내서 같은 책이 나오면 좋겠다.
단순히 미술관에 진열된 그림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조언, 이를테면 루브르 미술관 완전탐방 3일 코스, 이런 식으로 세부적인 계획까지 제시한 책이 나오면 좋겠다.
사실 어느 여행지에 뭐가 있고 숙소는 어디가 좋고, 이런 건 부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그런 건 좀 비싸게 사도 좋고 좀 나쁜데서 자도 좋은데, 진짜 중요한 것, 이를테면 여행의 내용, 뭘 얼마나 제대로 봤는지,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이런 게 정말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유럽 여행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미술관 순례 아닌가?
그런데도 정작 미술관 관람에 대한 책은 거의 없고 숙소 싸게 구하는 법, 이런 것들만 판치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

항상 헷갈렸던 게 바로 조토와 치마부에 같은 르네상스 초기 화가들이다.
이름도 생소하고 어느 시대 사람인지 늘 아리송했는데 이제 좀 감이 잡힌다.
반복적으로 여러 책을 보다 보니, 이들이 바로 중세의 문을 닫고 르네상스를 시작한 인물들이라는 걸 확실히 인지하게 됐다.
조토의 스승은 치마부에로써, 보통 치마부에를 중세 마지막 화가로, 조토를 르네상스 시작으로 본다고 한다.
확실히 중세 그림은 평면적이고 엄숙하다.
나중에 인상파들이 등장하면서 일본의 채색판화인 우키요에와 비슷한 느낌의 강렬한 평면적 그림이 등장하는데, 중세 그림의 평면성과는 또다른 느낌 같다.
중세의 평면화는 엄숙하고 우울한 느낌인데 비해, 인상파들의 평면화는, 강렬하고 밝고 감성이 넘쳐 흐른다.
특히 고흐의 그림은, 물감을 수차례 덧발라 놓은 것 같은 두터운 붓칠이 인쇄된 종이에서조차 확실하게 느껴진다.
나는 고흐 그림을 보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가슴이 북받쳐 올라 울컥 하는 심정이 된다.
지난 번 내셔널 갤러리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을 했는데, 이번에도 이 책에서 "오베르 교회" 라는 그림을 봤는데 정말 눈시울이 붉어졌다.
단순히 슬프고 감동적인 그런 느낌이 아니라 뭐랄까, 그림이 어떤 형태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색감과 붓터치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그런 마력이 있다고 할까?
하여튼 고흐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대단한 화가임이 분명하다.
왜 이런 강렬한 그림들이 당대에는 팔리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고흐의 그림을 수집한 화상들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들은 인물들이 늘 부드럽게 웃고 있다.
이 사람은 따뜻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대단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떤 것 같다.
르느와르의 단순히 실내와 같은, 그런 종류의 따뜻함이 아니라,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부드러움이 인물의 얼굴선에 살아 있다.
라파엘로의 그림도 정교하고 치밀하다는 점에서 마음을 끈다.
라파엘로가 죽은 1520년을 르네상스 최절정기로 삼는다는 것만 봐도, 그가 르네상스에 미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끝난 후 장식적인 그림, 기괴한 느낌의 과장된 그림이 대세였는데 이 때의 화풍을 마니에리스모라고 칭한다.
바로크로 넘어가기 전 과도기 단계를 뜻하는 말로, 항상 애매한 느낌이었던 화가 틴토레토와 티치아노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 하면, 아 그 사람, 하고 금방 떠오르는데 틴토레토나 티치아노는, 분명한 느낌으로 다가오질 않고 모호했다.
마치 조토나 치마부에처럼 말이다.
그만큼 덜 알려져서 그럴 것이다.
티치아노의 제자가 바로 틴토레토였고 이들은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바로크로 넘어가면 명암 대비 효과의 대가인 카리바조와 카넬리가 등장한다.
카라바조는 성화 속의 인물들을 성스럽게 그리는 대신, 실제 서민층의 얼굴을 대입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살인을 저지르고 쫒겨다녔다는 것만 봐도 꽤나 시끌벅적한 성격이었을 것 같다.
하여튼 이 사람의 그 강렬한 명암대비, 이른바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가히 빛의 대가라는 명칭을 얻을 만 하다.
반면 렘브란트의 그림에 나타나는 빛과 어둠은 보다 성찰적이고 고요하다.
유명한 야경, 이나 자화상 등을 봐도 관조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루벤스는 플랑드르의 바로크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화가다.
루벤스야 말로 라파엘로와 더불어 화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사회적 명성과 화가로서의 자긍심, 대우 등 모든 면에서 넘치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나는 루벤스의 그 격렬한 화풍과 화려한 색감을 좋아한다.
특히 그가 표현한 여자들의 풍만한 육체와 피부색이 너무 마음에 든다.
넬로가 죽어가면서 보고 싶어했던 그림, "성모승천" 의 주인이 바로 루벤스 아니던가
개인적으로도 두 아내와 매우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하니, 과연 바람직한 화가의 일생이 아닌가 싶다.
비슷한 시대의 렘브란트와 매우 비교된다.

바로크가 절대 왕정의 보호를 받았다면 로코코는 귀족들의 후원으로 성장한다.
장식적으로 화려한 그림, 와토 등을 생각하면 금방 연상이 된다.
키레라 섬의 순례 같은 그림이야 말로 로코코를 대표하는 그림 같다.
로코코의 지나친 장식성에 반발해 생긴 화풍이 신고전주의다.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한 조형미를 미덕으로 삼는 이 화풍은 다비드나, 그 제자 앵그르 등으로 대표된다.
앵그르가 표현한 여성의 육체는 정말 대리석 같다.
나중에 마네가 올랭피아 등을 그렸을 때 사람들이 왜 화를 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너무나 선명하게 대비된다.
사진기가 등장하기 전 그림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화가다.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같은 그림도 워낙에 대작이고 생생해 기억에 남는다.
꼭 실제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이 그림을 위해 시체 안치소까지 찾았다고 하니 과연 신고전주의자의 대가답다.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만개한 후 드디어 그 유명한 인상파가 등장한다.
일본의 채색판화인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그림의 평면성을 주장한다.
지금까지 그림이란 실제처럼 그리는 것, 완벽한 조형미를 뽐내는 이상적인 인물을 창시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이지 않았던가?
부그르 등이 그린 비너스를 보라, 얼마나 완벽하게 아름다운가?
그런 이상적인 육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그리던 아카데미 화가들에게 도전장을 낸 이 어처구니 없는 화가 집단의 등장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마네의 올랭피아나 풀밭 위의 점심식사 등을 보면 너무나 평범한 나부상을 보여준다.
가히 외설 논란이 일었을 만 하다.
오늘날로 보자면 포르노 아니냐는 반응이었을 것 같다.
이제 화가들은 서민층으로 눈을 돌려 실제의 생활을 그린다.
드가는 세탁부 같은 노동계층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인상파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아카데미에 속하지  못하고 끝까지 인상파와 함께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대상의 선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같은 그림은 처연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화가들은 삶의 불운하고 어두운 곳까지 주목한다.

인상파가 끝나는 시점에서 이제 회화는 형태의 구현을 거부하고 추상화의 길로 들어선다.
솔직히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감상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어떤 그림들은 정말 느낌이 확 올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하다.
현대 미술이라고 해서 다 어렵고 난해한 것은 아니고 아무리 형태가 없더라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동적인 그림들이 있다.
이를테면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여인들, 같은 그림은 그 원색적인 색체와 대담한 구도 때문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현대 미술은 제대로 느끼기가 힘들다.
그래서 딱 오르세 미술관까지가 좋은 것 같다.
퐁피두 센터부터는 머리가 좀 아파온다.

언젠가는 꼭 미술관 순례를 하리라 다짐해 보지만 솔직히 언제 시간이 날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대영박물관전이 개최됐을 때, 유홍준이었던가?
그 사람이 기고한 글을 읽었는데 한 번 가서 다 봤다고 할 수 없고 수 차례 방문해야 진가를 안다는 내용을 보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위대한 인류 문화의 정수가 한 번 쓱 본다고 해서 끝나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자주 미술관을 방문하고 싶다.
유럽이 너무 멀리 있다는 사실이 늘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과 패트런 - 명화로 읽는 미술 후원의 역사
다카시나 슈지 지음, 신미원 옮김 / 눌와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다카시나 슈지의 책은, "명화를 보는 눈" 을 먼저 읽었다.
꽤 재밌게 읽은 책이라 이번에도 기대를 했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렇게 비교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는데, 이 사람은 우리나라의 이주헌씨처럼 글을 잘 쓴다.
어떤 책을 내도 기본적으로 읽을 만 하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사실 제목만 가지고는 흥미 위주의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프랑스까지 가서 공부하고 온 미술관장이라 그런지 전문가적인 냄새가 확 난다.
성실하고 꼼꼼하며 미술 비평도 수준 있다.
특히 한국어판이 나오면서 추가한 많은 칼라 도판 덕분에 이해가 훨씬 쉬웠다.
역자 후기에서 그림을 칼라로 실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199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라 벌써 10여년이 지났는데도 감성은 늙지 않고 읽어 볼 만 하다.
시대를 넘어서 출간되는 책은 확실히 생명력이 있다.

250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이 말해 주듯, 내용 자체는 아주 평이하다.
일반 독자들도 지하철 안에서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수준이다.
그림이 워낙 많이 실려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고 보면 서양 예술의 전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도 훨씬 깊고 탄탄한 것 같다.
르레상스가 시작되는 15세기에 이미 은행가조합이 생기고, 직물조합이 생기며, 직업적인 화가들이 등장한다.
자본주의야 말로 예술 발전의 원동력임을 새삼 확인했다.
문화란 잉여생산물이 의식주 이외의 것, 이를테면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쓸데없는 것들에 투자할 정도로 풍부해질 때 발생하는 것 같다.
결국 그런 이유로 계급 격차는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면, 예술 같은 사치스러운 창조물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결국 먹고 사는 데 아무 쓸모도 없는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 산업혁명 이전의 평범한 백성들은 굶어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또 그런 희생 아래 오늘날 위대한 인류 문화의 정수들이 완성된 게 아니겠는가?

율리우스 2세는 라파엘로의 그림으로 익숙하다.
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화를 그리게 하고, 라파엘로에게 그 유명한 아카데미아 벽화를 그리게 만든다.
르네상스 최고의 후원자였던 셈이다.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까지 거침없이 팔았다고 하니, 확실히 한 인간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일 수 밖에 없다.
라파엘로는 단순한 화가가 아닌 궁정인으로서 대접받았다고 한다.
사실 나는, 라파엘로 같은 화풍이 마음에 든다.
화려하고 살아 움직일 것처럼 정교한 그런 고전주의 작품이 좋다.
라파엘로는 요즘으로 치자면 사교계의 명사였던 것 같다.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작위적이라고 하여 라파엘 이전의 미술로 돌아가자는 라파엘 전파 같은 화파도 생겨났지만, 오히려 그 말이야 말로, 라파엘이라는 화가가 미술사에 얼마나 큰 획을 그었는지 새삼 느끼게 해 준다.

프랑수아 1세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관계라든가, 카를 5세와 티치아노, 혹은 펠리페 4세와 벨라스케스의 관계 등은 예술가와 패트런의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현대로 올수록 이런 개인적인 후원가는 사라지고, 대중이 패트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록펠러 같은 재벌들이 미술품을 사들이는 큰손 노릇을 하긴 하지만, 근세처럼 개인적으로 그림을 부탁하는 형식은 아니다.
그래서 구입자와 창조자를 연결시키는 화상이라는 직업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서양 미술의 발전은 자본주의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현대 국가의 예술 후원 정책으로는, 퍼센트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건물을 세울 때 총 건축비의 1%를 예술품 구입비로 책정하는 것이다.
획기적인 지원책 같은데, 이것도 나름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90% 이상의 지원을 몇몇 유명 예술가들이 독식하고,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양식보다는, 기존의 틀에 안주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하여튼 서구 선진국의 예술 후원 정책은 대단하다.
일본에서도 이미 시행 중이라는데 한국의 실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퍼블릭 아트라고 해서, 공공미술이 중요시 되고 있다.
확실히 벽화 등으로 장식된 지하철이나 건물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아진다.
후대 사람들도 우리 세대의 공공미술을 미술사의 흐름으로 평가하게 될까?

중세에는 귀족이나 왕 같은 상류 계층만 즐겼던 미술을, 이제는 누구든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눈이 호사를 한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서 문제가 될 정도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예술의 발전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니, 두터운 패트런 확보도 예술 발전에 매우 중요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 - 성군(聖君), 성종의 리더십에 대한 최초의 재평가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한우씨라면, 유시민이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 청바지를 입고 의회에서 선서를 한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TV 토론의 패널로 기억한다.
그 때 어찌나 엉성한 논리로 유시민에게 깨졌던지, 나중에 그가 이 군주 열전이라는 책을 냈을 때 도무지 신뢰가 안 가고, 그렇고 그런 뻔한 책이겠지 싶어 한동안 눈길도 안 줬다.
저널리스트라는 한계, 즉 비전문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꼼꼼하게 사료 분석을 하고 성실하게 썼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도 그가 퍽 성실한 저자였음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전체를 조망하는 역사적 안목이 아마추어적임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원래가 신문기자들이 쓰는 책은 전문성 면에서 학자들에게 한 수 아래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이 책을 골라 든 이유는, 성종 때가 워낙 태평성대여서 그런지 폐비 사건 외에는 언급된 책이 없어서 아쉬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종 시대에 관심을 갖고 조명해 준 책이라는 점에서 반가웠다.
그런 의미로 장희빈 사건 외에는 따로 언급되지 않는 숙종 시대도, 이한우씨의 책으로 읽어볼까 싶다.

세조에 대한 평가는, 어린 임금이 즉위한 후 어지러웠던 정국을 바로잡아 안정을 이뤘다는 쪽과, 오히려 공신을 남발해 특권층을 형성했다는 부정적인 쪽이 공존하는 것 같다.
사육신도 충신이고 세조도 구국의 영웅이라는 식의 둘 다 좋은 쪽으로 미화되는 게 요즘의 평가 같기도 하다.
박현모나, 이 책의 저자는 모두 단종의 즉위가 정국을 위태롭게 만들었기 때문에, 세조가 평화와 안정을 가져왔다 쪽이다.
심지어 세종이, 아버지 태종처럼 전격적으로 세자를 교체했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임용한씨 입장을 지지한다.
문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40이 거의 다 돼서였다.
그는 오히려 성종보다도 더 오래 살았다.
아버지 세종 대에 대리청정을 한 것만도 십여년에 이른다.
요컨대, 아버지 세종이 50이 넘어서까지 재위했기 때문에, 즉 당시 조선 왕의 평균 수명보다 훨씬 오래 살았기 때문에 문종의 즉위가 늦어졌을 뿐이다.
문종이 병약했다고 하지만 그는 조선왕의 평균 수명에 비춰 볼 때 절대 빨리 죽은 게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어린 세자를 지켜 줄 왕비나 세자빈 가문, 혹은 대비 등이 없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세종의 판단 미스였던 것 같다.
너무 도덕적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세자빈의 가문이 너무 한미해서 빈궁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방술을 쓴다는 모호한 이유로 첫번째 세자빈 김씨를 쫒아낸 것이나, 동성애를 한다고 해서 두번째 세자빈 봉씨를 쫒아낸 것 등은, 도덕주의자인 세종으로서는 왕실의 지엄함을 보이기 위해 당연한 것이었겠으나, 결국 그런 세종의 지나치게 결벽증적 처사가 단종의 죽음을 불렀다고 생각한다.
임용한씨의 평대로, 문종은 아버지 세종의 정치철학을 잘 이해했던 학자 군주였고,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인해 엄청난 특권층이 양산됐다고 생각한다.
세종은 비단 문종이 큰 아들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를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못마땅한 점은, 예종의 독살설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게, 저자의 지적대로 예종은 정희왕후의 친아들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이 갔더라면 최고 권력을 쥐고 있던 어머니 정희대비가 유야무야 넘어갔겠는가?
저자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거기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고 바로 독살 가능성이 있다고만 주장한다.
한명회 등이 권력을 잡기 위해 정희왕후와 손잡고 독살을 주도했다는 식으로 마치 드라마 같은 어설픈 논리를 편다.
형이었던 의경세자도 마찬가지지만, 이 집안 아들들의 건강이 썩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둘 다 20대의 새파란 나이에 죽지 않았던가?
아프다는 기록이 없었다는 이유로, 즉 급사했다고 해서 독살로 모는 것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이덕일씨 책이 많이 팔리면서 생긴 폐단 같기도 한데, 하여튼 지나친 추측은 위험하다.
나는 독살설의 제 1순위로 지목되는 정조 역시, 박현모씨처럼 과로사 했다고 본다.

책의 장점을 들자면 꼼꼼하게 분석한 자료의 성실함이다.
특히 가계도나 혼맥 등을 보면 당시 집권층의 중혼이 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저기 겹사돈이 되고 왕실과 이중 삼중으로 얽혀 있다.
역시 혼인은 세력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태종의 강력한 외척 숙청은 참으로 대단하다.
공신층을 양산해 내고 친인척을 중요하게 기용한 세조에 비해, 태종은 왕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모조리 없애 버린다.
조선 왕조 최고의 왕권을 지녔던 인물이 아닌가 싶다.
정희왕후는 역사서에서도 그렇고 드라마에서도 권력에 관심이 없는, 점잖은 인물로 묘사되는데, 인수대비 보다 오히려 훨씬 더 많은 권력을 휘둘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특별하게 치부를 하고 문정왕후처럼 후대의 비난을 샀던 건 아니지만, 하여튼 오빠나 동생 등이 대비의 위세를 업고 요직에 오른 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권력남용이나 부정부패도 정도껏 해야 욕을 안 먹는다.
윤임이나 윤원형 등의 부패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역사에 길이 간신으로 남는 것 같다.

한자 공부를 많이 했다.
요즘 안 쓰는 단어도 많아서 약간 어렵기도 했는데, 전자사전이 있어서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다.
사극에 가끔 등장하는 인물들을 만난 것도 반가웠다.
문득 드는 생각이, 요즘 방영하는 왕과 나, 의 저자는 이 책을 참고했지 않나 싶다.
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에피소드 인용한 것도 꽤 보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rongkiller 2007-12-25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 이한우 논설...그래보여도 아카데미즘에 대한 애정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죠.^^ 제목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사람 이래저래 인문학에 대한 집필활동을 제법 성실하게 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 퀄리티를 제법 인정받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래도 극우파 진영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실제 토론회에서 제대로 된 상대 만나면 왕창 깨져버리죠.ㅎㅎ 이사람도 처음엔 제법 생각있는 사람으로 알려졌었는데...어느 순간 방씨일가의 세뇌술에 놀아나버리고 말았더군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어 제목이 훨씬 멋들어진다.
하긴 실제 일본어의 뉘앙스를 모르니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몇년 전에 한창 다치바나가 인기를 끌 무렵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읽었던 책인데 문득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즉석에서 읽게 됐다.
확실히 책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당시에는 꽤 지루하고 별 감흥도 없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 보니 생각보다 평이하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다독을 넘어 남독을 한다는 점에서, 또 문학보다 논픽션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나와 독서 성향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난 저술가는 아니지만 하여튼 이 사람과 비슷한 부류의 독서가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일컫는 19세기 고전들은 세월의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하여튼 내가 쉽게 문학에 못 빠지는 이유도 작가들의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감탄할 만큼 흥미진진한 상상력을 구사하는 작가를 별로 보지 못했다.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생생하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는 말이 진실임을 소설을 통해 확인한다.
어쩜 이렇게도 스토리라인이 부족한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고전에 대해서는 내가 평가할 수준이 못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읽으려고 하지만, 하여튼 이른바 현대문학이나 베스트셀러는 내 흥미를 끈 책이 거의 없다.
나 역시 다치바나씨 처럼 논픽션이 훨씬 좋다.
그렇다고 해서 기자나 취재작가들이 쓰는 르포 형식의 책이 좋다는 건 아니다.
기자들이 쓰는 이른바 르포 형식의 책을 보면 깊이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내가 생각하기엔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논문 수준으로 분석해서 쓴 책들이 제일 믿을 만 하다.
그래서인지 교수들의 책을 많이 보게 된다.

다행히 나는 다치바나씨 처럼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닌지라 책 보관에 관해서는 고민이 적다.
이 사람은 책이 어찌나 많은지 고양이 빌딩을 지을 정도였다고 한다.
서고로만 채워진 빌딩이라...
자료의 방대함 만으로도 기가 질린다.
서재는 나도 갖고 싶다.
도서관이 빨리 문을 닫기 때문에 주로 심야 시간대에 책을 읽는 나는 아쉬울 때가 많다.
나도 저자처럼 큰 책상이 늘 아쉽다.
아무리 정리를 해도 책 몇 권 읽다 보면 금방 공간이 좁아지니 말이다.
예전에는 지루한 책이라도 끝까지 읽으려고 애썼는데 요즘은 저자처럼, 불필요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던져 버린다.
제일 짜증나는 책이, 수준미달이라고 생각될 때다.
어쩜 이렇게 한심한 글을 책으로 출판할 생각을 했을까 싶을 때 괜히 화가 난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식의 요즘 분위기를 싫어한다.

표정훈씨 책처럼 우리 현실에 딱 들어맞는 흥미진진한 독서론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가볍게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사람의 책으로는,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나, 와 사색기행, 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해 근황을 알리는 기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생각이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 일본을 찾아서 1 이산의 책 40
마리우스 B. 잰슨 지음, 김우영.강인황.허형주.이정 옮김 / 이산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 일본을 찾아서 2권을 워낙 재밌게 읽었던 터라, 에도 막부 시대의 이야기가 펼쳐질 2권도 기대가 컸다.
더구나, 도서관에서 1권이 분실됐다고 해서 한참 기다렸다 읽은 터라 기대감이 증폭된 상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2권보다 더 지루하다.
역시 현대사가 근대보다는 좀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모양이다.
에도 막부 시대의 일본은 조선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 문화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서민문화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꽤나 지루했다.
분량이 500 페이지를 넘어가기 때문에 가독성을 유지하기가 좀 어려웠다.
일본 역사에 대한 흥미가 생겨서,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에도 시대라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도쿄에 막부를 열고 통치했던 17~19세기를 일컫는다.
오다 노부가나는 잔인한 점이 많았던 초대 지배자였는데 그 뒤를 이어 부하였던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아 일본 열도를 평정한다.
노부나가의 자식들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
히데요시는 비록 이에야스에게 죽임을 당하기는 했으나 히데요리에게 아버지의 권력을 넘겨줬지만, 노부나가의 자식들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 걸로 보아, 자식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 주는 일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자식이 그 뒤를 잇는 것이 당연하게 되려면, 왕조 개창 수준은 되야 하나 보다.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던 점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 간 조선 도공들 덕분에 일본의 도자기 문화가 번창했다는 점과, 함께 수입해 간 퇴계 이황의 성리학이 일본 유학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부분이었다.
외국 학자의 책에서 그런 서술을 발견하니 새삼 자부심이 느껴진다.
비록 에도 막부가 쇄국 정책을 표명했다고는 하나, 조선에 비하면 문호 개방 정도는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 문물이 학문과 함께 수입됐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일본 자체적으로도 동남아시아에 무역 거점을 뒀다는 점이 놀랍다.
저자도 지적한 바지만, 어쩌면 페리 제독의 개항을 두고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고 평가하는 건, 일본 스스로 갖고 있는 잠재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 판화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던 배경도, 일본의 전통적인 대외무역에 있음을 확인했다.
고립된 섬나라라는 이미지는, 적어도 근세 이후 일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명칭 같다.
비단 일본 뿐 아니라, "히스토리카 세계사" 에서도 느낀 바지만 고대 세계의 문화 교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활발했던 것 같다.
하긴, 신석기 시대부터 뗏목을 타고 오스트레일리아 열도로 넘어가는 우리 조상들이고 보면, 이동은 본능적인 건지도 모른다.

일본의 문화나 산업 등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일이 없고 스스로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점 때문인지 전통의 단절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경우와 비추어 본다면, 일본의 전통 문화 보전이나 계승이 훨씬 원활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외국인 학자가 한국와 일본의 근현대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물론 두 나라 역사를 모두 전공해야 한다.
어설픈 감상적 비교는 오히려 민족주의만 부축일 뿐이고, 엄격한 학문적 태도로 두 나라 역사를 비교분석한다면 의의가 클 것 같다.

한국이 중국 문화를 내면화 시킨 것에 비해, 일본은 비록 유학을 중심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여전히 국학을 숭상하고 조선보다 훨씬 독립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지리적 요건 때문인지 태양신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또 무사의 나라임이 분명한 것이, 각 번이 영주들에 의해 통치되는 봉건제가 존재했고 사무라이는 곧 조선의 선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점이 신기하다.
중세 유럽으로 말하면 기사에 해당되는 건가?
조선은 처음부터 중앙집권제였던 반면 일본은 유럽 같은 봉건 영주제 느낌이 든다.
혹은 한나라 같은 군국주의와 비슷하달까?
하여튼 천황이라는 절대 존재의 권위는 손상시키지 않은 채 세속적인 지배자가 따로 있고, 신하들에게 세습이 가능한 봉토를 지급한다는 점은 일본만의 독특한 정치체제 같다.

일본이 교통망을 발달시키고 상업이 성행하며 도시화가 진행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참근교대제라는 점이 재밌다.
이름도 어려운 참근교대하는 것은, 쉽게 말해 가족을 인질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다이묘들이 자기 세력권에서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웠던 것인지, 막부는 다이묘의 가족을 수도 에도에 살게 하고, 다이묘 역시 1년에 절반 이상을 거주하게 만들었다.
재밌는 것은, 에도 방문 행렬 때문에 교통로가 정비되고 역참이 발달했으며, 신분에 걸맞는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상업이 번성했다는 점이다.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은 가끔 엉뚱한 데서 나오는 것 같다.
얼핏 생각하면 굉장히 비생산적이고 소비적인 행위 같은데 이 덕분에 지방문화와 중앙문화가 교류할 수 있고, 상업의 성행으로 서민문화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관료를 파견하고 과거에 의해 관리를 선발했던 조선의 정치제도가 훨씬 현대적일 것 같은데도 실제로는 두 문화 간에 별다른 우열이 없었고 오히려 근대화는 일본이 훨씬 앞섰던 것을 보면, 역사의 발전의 원동력은 복잡미묘한 것 같다.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 않지만,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고 다른 책으로 일본 역사를 되짚어 볼 계획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rongkiller 2007-12-25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겐 일본역사가 필수인데...사람들 정말 게으르죠.^^ 얼마전에 고등학교 세계사 책을 우연히 훑어봤는데...일본사의 분량을 보고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영원히 일본 따라잡지 못할겁니다. 물론 일본 따라잡는게 무슨 궁극적인 목표이거나 한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