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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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바꾸고 나서 훨씬 더 편해질 줄 알았는데, 기대했던 것 만큼은 아니다.
일단 자판 치는 게 불편하다.
이 모델의 리뷰에서 읽었던 것처럼 워드 치는 게 상당히 불편하다.
구절을 옮겨 적을 때 자꾸 오타를 치게 된다.
하여튼 새 노트북으로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옮겨 적었다.
사실 이 책도 기대했던 바에 미치진 않지만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 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과학자가 아닌, 과학사가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사람 책을 통해 많이 배웠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을까?
내가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설명 체계를 원하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에서 여러가지 상상력이 작용해 미신과 설화 등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인간 사회에 전래되어 내려오는 여러 불가사의한 전설들은, 당시 사람들이 자연현상을 나름대로 이해한 결과물이 아닐까?
또 인간은 희망을 원한다.
희망 역시 진화의 한 산물 같다.
장애물로 가득찬 자연 환경을 이겨낼 힘,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소망, 하늘을 날고 싶은 꿈, 죽은 후에도 생이 있다는 믿음, 이런 것들은 우리가 바라고 꿈꾸던 것들이 아닌가?
이런 희망적 사고 때문에 여러가지 믿기 힘든 기적 같은 일,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초자연적 일들을 믿게 되는 것 같다.
당장 사후 세계만 해도 그렇다.
죽으면 끝이라니, 이걸 어떻게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임사체험을 의식 상태의 변성으로 설명한 이론은 재밌었다.
마약이나 환각제 등을 먹으면 뇌의 화학 수용체에서 그것을 받아들여 지각의 변화가 생긴다.
몽롱하고 날아 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주변 사물들이 왜곡되어 보여진다.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 뇌에 그러한 화학물질들이 작용할 수용체가 있다는 사실부터가 신기하다.
이른바 사후 세계를 체험했다거나, 신이 내렸다거나, 죽은 이를 봤다거나, 하는 등등의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어쩌면 저자의 주장처럼 의식 상태의 변성 때문에 생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의식 상태란, 깨어 있을 때 명료하게 사물을 인식하는 상태를 말한다.
변성된 의식이란,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이나, 죽기 직전에 뇌에 산소가 부족한 상황, 환각제를 먹었을 때 같은 특수한 경우의 의식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뇌에 문제가 생겨 제대로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고 보면 의식이라는 것도 뇌의 진화 산물인 것 같다.
뇌과학이 더 발전한다면 영혼과 정신 세계, 의식, 초감각 같은 이해하기 힘든 일련의 개념들에 대한 해답을 주리라 믿는다.

홀로코스트가 실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이 책에서 처음 접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유대인 희생자 수가 600만명이 아니라 60만명에 그쳤다거나, 혹은 가스실이 계획적으로 집단살상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고, 단지 쓰레기를 소각시키기 위해 있었다든가, 혹은 독일이 유대인을 집단적으로 학살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단지 추방만 하려고 했고 전쟁에서 몰리다 보니 제대로 그들을 돌보기 힘들어져 기아 등으로 죽었다는 주장 등이 있다.
그러니까 핵심은, 실제로 제 3 제국 지도자들은, 특히 히틀러는 유대인의 집단 학살을 계획한 적이 없고, 실제 죽은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들은 단지 유대인을 독일에서 추방하려고만 했을 뿐이고 그 와중에 희생된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어쩌다 보니 운 나쁘게 일부가 죽었다는 거다.
문득 드는 생각이, 5.18 민주화 항쟁도 실제로 죽은 사람은 별로 안 되고, 공수부대는 단지 무기를 탈취해 내란을 일으킨 일부 위험분자들을 진압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서 6.25 때 북한군이 양민 학살을 실제로 거의 저지르지 않았고 다만 과장됐을 뿐이며, 또 더 나아가면 일제 시대 때 징용된 위안부나 학도병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나치가 유대인의 시체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등의 악의적인 주장은 반드시 진위를 가려야 한다.
광개토대왕비문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됐다는 설이 허구라는 것처럼 말이다.
음모론과 진실은 반드시 구별되야 한다.
나치가 사람 지방으로 비누를 만든 적이 없다고 해서, 설사 그런 잘못된 소문이 유통됐다고 해서, 나치가 저지른 모든 악행, 집단 학살, 인종청소 등이 죄다 믿을 수 없는 일, 실제로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증명하기 어려운 일, 악의적인 소문 등으로 둔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더욱 진실을 가려야 한다.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하고 확대해석할 필요도 없고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 씌워서도 안된다.
지난 번 요코 이야기 논쟁에서도 보듯이, 일본의 패망 후 한국에 남겨진 일본 여자가 한국인에게 보복성으로 강간당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일본의 끔찍한 식민지 지배 사실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왜 다들 all or nothing 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의 주장은, 비약이 너무 지나쳐 음모론 이상으로는 생각하기 힘들다.

제일 시원했던 대목은, 증명의 부담이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자들에게, 혹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에게 있다는 부분이었다.
기존의 학설을 뒤엎으려면, 자기가 하는 주장이 기존에 용인되던 학설과 다르다면, 그것이 왜 옳은가를 그가 입증해야 한다.
그것이 주변인의 불리한 위치이고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언젠가 우유가 몸에 해롭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있어, 내가 그런 댓글을 단 적이 있다.
기존의 학설과 다른 주장을 하려면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대야 하고, 더 엄격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뭔가 이건 아니다 싶어 나름대로 논리를 편 것인데, 이 책에서 증명의 부담은 소수자에게 있다는 말을 읽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내 반론이 옳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처음 나왔을 때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었고 이제 수많은 학문 분야의 엄청난 증거들이 진화를 지지하고 있다.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우리는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배운다.
진화론이 옳다는 것을 진화론자들이 주장할 필요는 없다.
증명의 부담은, 이제 창조론자들이 져야 한다.
왜 진화가 틀렸는지를 그들이 입증해야 한다.

여기서 또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단순히 진화론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 가지고는 새로운 사상이 될 수 없다.
A가 아니라면 당연히 B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는 생명의 기원에 해당되지 않는다.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신이 세상을 6일 만에 현재의 모습 그대로 모든 종을 한 번에 창조했다는 신화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의 오류를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서, 생명의 기원이 오늘날 여기까지 온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정교한 이론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들의 설명 체계는 단지 성경에 그렇게 나왔다는 것, 진화론에 이런저런 오류가 있다는 것, 100%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 등이 전부다.
저자의 지적대로, 과연 창조"과학" 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과학은 입증 가능하고 실험 가능한 학문인데, 성경이 유일한 근거인 창조론은 대체 어떻게 창조를 입증할 수 있단 말인가?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대단한 과학자도 창조론자들과의 말싸움에서 제대로 이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논쟁은 사실을 입증하는 방법이 아니라,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학문과는 거리가 멀다.
도킨스 같은 이들은 아예 무신론을 들고 나오지만, 진화와 같은 과학적 이론을 설명하는 데 있어 신의 유무를 논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 별 득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다윈 같은 현명한 이들은, 가급적 종교에 관한 논쟁을 피했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에서는 여전히 창조론을 과학 시간에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된다고 하니, 굴드의 지적대로 과학의 진보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나라에서 참, 심히 걱정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싶다.
교회가 확대가족 역할을 한다는 점이 근본주의자가 판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종교적인 사회는 아니라 다행스럽다.

전체적으로 재밌게 읽은 책이다.
번역도 그런대로 괜찮고,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처럼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별로 보이지 않다.
이 사람의 다른 책 "과학의 변경지대" 가 나중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더 매끄럽고 재밌는 것 같다.
여기서 자주 인용되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유사과학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 외에도, 과학이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는지 등을 밝힌 점도 크게 도움이 됐다.
과학이 발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오류에 대해 열려 있고 교조적이지 않으며, 지식이 누적되고 잘못된 지식은 폐기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기 수정 메커니즘이 작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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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2008-09-17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증명의 부담은 소수자에게 있다는 말'이 재미있네요. 그리고, '진화론이 처음 나왔을 때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었고 이제 수많은 학문 분야의 엄청난 증거들이 진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말은 정말 사실입니까? 제 생각에는 진화론이 고초를 겪긴 했지만, 당시 서구의 신본주의에 반대하고, 더 이상 기독교의 삶을 살기를 포기하려 했던 지식인들이나 과학자들에게 '진화론'은 자신들의 금욕적 생활을 위한 해방구 역할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진화론을 통하여 과학이 신학에 한방 갈긴 거죠. 정치가들이나 종교가들에게서 고초를 당했다면 몰라도 그당시 과학자들에게 지금 창조론자들에게 대한 박해보다 더 심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것은 가정이지만, 적어도 '멘델의 유전법칙'이 먼저 발견되었다면, 진화론이 조금 고초를 당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의 비판'이 먼저 증명되었다면 진화론이 조금 고초를 당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본주의적 배경에서 진화론은 과학자들에게 공감될 수 있는 토양을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맞는 다는 이야기가 아니구요,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말꼬리를 잡는 다고 하시는데... 창조론에서도 진화론을 인정합니다. 인정할 부분들은 인정하는 것이죠. 실험적으로 증명 가능한 부분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혀 저희 생각과 충돌하는 부분도 없구요. 그런데, 저한테, 저 정교한, 단세포 하나가, 지금고 끊임없이 외부의 신호를 내부의 신호로 바꿔서 복잡한 신호네트워크를 통해 특정한 유전자의 발현을 이끌어내고, 그 유전자가 또한 복잡한 과정을 통하여 단백질들로 재생산되어 그 신호에 대해서 반응하고 있는데, 이런 복잡하고 정교한 단세포의 발생을 밀러나, 오파린의 실험으로 이해하라나이요. 저희는 그게 안되는 거에요. 또, 많은 유전결과들이 특별히 복잡한 생물체(고등생물)들의 유전현상의 조절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무리 침팬지와 사람의 유전자가 4%(작은 차이가 아닙니다. 아시겠지만...)난다고 하더라도, 마치 전자시계에 휴대폰에 있는 부품을 넣는다고 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왜냐구요? 전자시계 부품 사이에 유기적인 결합이 있기 때문이에요~!!!) 유인원이 조금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처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인원과 사람은 유전자 차이가 몇 %라고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게바로 우리가 물고있는 말꼬리입니다. 그냥 단순해요. 그냥 탑저널에 분자생물학에서 증명하는 방법으로(이것조차 진실을 설명할 정도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필요조건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대답하시면서, 말꼬리 잡지 말라고 하세요. 저는 제가 믿는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창조론을 믿는 것은 '무식한 기독교 또라이'로 밖에 치부되고 있지 않다는 현실입니다. 저는 그래도 배운 것이 있어서 반론을 가하지만, 진짜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혹 진화론이 진리이고 사실이라고 가르치고 강요하는 부분들은 없는 가 걱정이되고 많은 부분에서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과학으로 신학을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 입장에서는 30cm자로 지구의 크기를 재는 것 처럼 어리석어 보이구요. 그런데, 그 어리석음이 도리어 과학이라는 새로운 신앙앞에 기독교인들을 매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안타깝구요.

김효진 2008-09-17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냥 탑저널에 분자생물학에서 증명하는 방법'이란 이야기 왜하냐면요. 한번 논문들 한번 펴보시고, 진화관련 논문과 분자생물관련 논문들의 논리체계가 어떻게 다른지 한번 보세요. 이게 바로 우리사회에서 진화를 사회과학이 아닌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면서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네이처'저널의 태생적 한계를 고려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요. 창조론자들에게도 '창조'라는 저널이 있는 거 아시죠. 저도 좀 우습긴해요. 자꾸 종교과 과학의 방식에 끌려가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 '창조'라는 저널이 임팩트 팩터가 높아진다고 자연과학에 포함시키겠습니까? 안되지 않나요. 그런데, 여러분의 논리는 이런 비슷한 체계로 증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탑저널에 발표된 논문=진리'라는 관념에 빠져드는데 어떻게 인용횟수로 진리가 결정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발표하는 사람의 학문적 권위로 진리가 결정되겠습니까? 어떻게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믿는지에 따라서 진리가 결정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창조론자들에게 '증명의 부담을 져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증명을 위해서 할 일은 '창조', '창조와 진화', '창조과학'등등등 적당한 저널 만들어서 적당히 서로 인용해주면서 인용횟수 늘이고, 많은 기독교 과학자들 변화시켜서 그들의 권위로 창조과학 주장하게 하는 것인가요? 진화론은 분명 사회과학 수준의 증명방법을 사용하면서 창조과학보고 분자생물학적 증명방법을 사용하라니요? 제가 '단세포생물의 자살'과 '프리온'가지고 적당한 과학적 설명으로 창조과학적 논문을 낸다면 어느 저널에서 받겠습니까?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창조를 여러분이 말하는 과학에 포함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화론이 이제 그만 과학의 가면을 벗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이론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것이지요.

김효진 2008-09-17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리뷰에 갑자기 진화론이야기가 나와서 흥분했어요. 죄송합니다. 근데, 좋은 리뷰이긴하네요^^ 책도 재미있을 것 같구요.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영어 제목은 어떻게 되나요?
 
르네상스의 비밀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201
리처드 스템프 지음, 정지인.신소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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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판형이 너무 커서 대출을 할까 말까 무척 망설였던 책이다.
사실 서점에 나왔을 때부터 무척 사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가격이 비싸서 구입을 못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 할 것 같아 크게 결심을 하고 빌렸는데 역시나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낑낑 대며 간신히 들고 왔다.
그래서인지 더 애착이 가고, 내 수고에 충분히 답하는 훌륭한 책이라 무척 흡족하다.

나는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전문가의 포스를 느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훌륭한 전문서적들이 많이 발간되면 좋겠다.
번역은 역시 한계가 있다.
자체적으로 저술을 생산할 수 없는 국가는, 문화적 힘도 약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 서적도 가벼운 감상 위주의 에세이 수준을 넘어 이제 이런 분석적이고 논증적인 책들이 많이 나와 주면 좋겠다.
"생각의 나무" 에서 발간한 교양 시리즈 중 본 것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든다.

얼마 전에 읽었던 "명화를 보는 눈" 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비슷한 시대를 설명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다른 책을 통해서 두 번 확인하니, 확실히 기억에 남는다.
개념이 잡힌다고 해야 할까?
처음 서양 미술에 관한 책을 읽을 때는, 이름도 생소한 치마부에나 조토 등이 대체 누구인지 난감했었는데 이제는 비로소 개념이 선다.
14세기의 르네상스를 연 첫 인물들이 아닌가?
이 책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림들을 많이 소개해 준다는 데 있다.
조토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여기서 처음 봤다.
확실히 다 빈치의 그림과는 느낌이 다르다.
좀 더 엄숙하고 더 중세적이라고 해야 할까?
판형이 워낙 커서 시원시원 하고, 무엇보다 그림 속의 인물 하나 하나를 다 설명해 주니 그림에 대한 인식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성경에 언급되는 천사들을 아홉 개의 품계로 나눈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비로소 그 위계를 정확히 알았다.
사실은 그 부분 읽을 때 너무 지루해 하품이 나왔고 솔직히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다음 날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에서 그 천사 중 하나, 그러니까 권천사가 다시 등장하는 걸 보고 무릎을 탁 쳤다.
같은 지식을 다른 책에서 또 확인하면, 그리고 그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하나의 개념으로 머릿 속에 확실히 자리잡아 내 것이 된다
그게 바로 독서의 힘이고 기쁨이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지식이 확장되서 좋긴 한데 결국 동양 사람이 서양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은 좌절감이 든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상징이, 우리는 지식으로서 열심히 배워야만 인지가 된다는 한계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한 문화권의 완벽한 이해는 거기서 살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 같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책들을 통해 조금씩 지식의 경계를 넓히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도판이 워낙 크고 시원시원 하기 때문에 그림 보는 재미가 두 배로 커진다.
또 그림 속에 나오는 인물과 색체와 구도와 배경 등등을 하나하나 꼼꼼히 분석해 주기 때문에 서양 미술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높힐 수 있다.
비싼 값을 충분히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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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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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3년도에 어디선가 이 책의 소문을 듣고, 필이 확 꽂혀 책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전화했던 적이 있다.
하필이면 읽고 싶은 책이 품절되어 혹시나 서점에 재고가 있지 않을까 싶어 몇 군데 알아 봤는데 불행히도 못 찾았다.
결국 도서관에서 찾은 뒤 기대를 잔뜩 품고 책장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지루해서 별 흥미를 못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왜 이 책이 논증적이고 사변적이라고 생각했을까?
구체적인 사례를 밝혀 부당함을 증명하는 귀납적 방식, 즉 읽기 쉬운 형식이 아니라. 연역적인 방식으로 추론하는 그런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다시 읽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너무 평이해서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는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데, 확실히 과학자들은 직업적으로 책을 쓰고 논증하는 훈련을 하는 인문학자들 보다는 필력이나 깊이 면에서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지적 사기, 라는 책을 비판하는 리뷰에서 과학자들의 인문학적 깊이가 얕다는 평을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인문학도들의 편견 내지는 시샘어린 깍아내리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뜻을 조금 알 것 같다.
"만들어진 신" 에서도 전체적인 뜻에는 동의하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추론 과정이 매우 수준높지는 않다.
그냥 평이하게 대중을 설득한다고 해야 할까?
어렵게 글을 쓴다고 훌륭한 것은 아닌데, 확실히 철학자와 과학자 사이의 인문학적 글쓰기 능력은 차이가 난다.

미국에는 UFO 신봉자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하여튼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도 각종 미신과 심령술사들이 판을 치는 것 같다.
기독교적 신정 국가라는 걸 생각해 보면 뜻밖의 일만은 아니긴 하다.
전체 내용의 절반 이상을 UFO 의 존재가 황당무계하다는 것을 밝히는 데 할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UFO 가 그 정도까지 주목받는 건 아니기 때문에 사실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우주선을 보내고 달에 사람을 보내는 나라라 그런지, 외계인에 대한 미신도 큰 모양이다.
하여튼 나는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전혀 믿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솔직히 지루했다.
평소에 외계인을 봤다는 류의 주장을 접할 때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저 사람들이 봤다는 외계인은 인간과 닮은 걸까?
두 발로 서고 두 손으로 사물을 조작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형태야 말로 지적 생물체에게 가장 적합하단 얘기일까?
칼 세이건은 시원하게 답변한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착각이고 환영이기 때문에 고작 생각해낸 한계가 그 정도라는 것이다.
세이건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외계인은 생물학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진부하고 내용이 없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이라는 챕터는 나에게 꽤 큰 의미를 줬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도, 악마와 귀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세이건이 말하는 악마, 즉 demon 은 기독교의 사탄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의 말을 빌리면, 정령이나 악령, 요정, 혹은 사악한 마귀 따위는 없다.
그것들은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본다.
사람의 뇌는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익숙하다.
의미없는 여러가지 이미지들 속에서 친숙한 형태를 찾아낸다.
눈은 단지 영상을 받아들일 뿐,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뇌의 후두엽이라는 강의 내용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점을 치고 기도를 하는 것도 다 무의미한 일은 아닐까?
점성술과 굿, 사주 같은 것도 아무 의미없는 행동이 아닌가?
넓게 확장해 보면, 궁극적으로 영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체가 없는 추상적 명사일 뿐, 결국은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라는 얘기가 된다.
흔히 몸과 정신은 다르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영혼이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 조합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정신이라는 것 자체가 뇌의 작용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말로 실존하는 神 같은 건 없다는 것인가?
뇌과학이 더 발전하면 마음의 실체를 밝혀내지 않을까?
결국은 뇌 역시 인간이라는 육체의 일부듯, 마음이나 정신, 혹은 영혼 역시 뇌가 멈추면 사라지는, 육체의 일부이지 않을까?

인간은 설명 체계를 원한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종교가 자연 현상을 설명해 줬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초자연적인 존재,  신의 뜻으로 해석했다.
이제 과학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해 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과학이 종교라는 말은 종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숭배의 대상이고, 누구 말마따나 이해가 안 되니까 더욱 열심히 믿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미완으로 남겨 두고 알고 있는 것의 범위를 넓혀 간다.
무조건 믿으라는 종교와, 정교한 설명 체계를 원하는 과학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른바 신들린 사람은, 정신분열증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 흥미롭다.
무조건 미친 사람으로 모는 것은 아니다.
통념적인 의미의 미친 사람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혹은 뇌과학적으로 일반인들과 다른 뇌작용이 있을 것 같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전체 인구의 1% 라는 걸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 만한 얘기다.
뇌과학이 좀 더 진보한다면 그동안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치부하던 정신적인 영역, 이를테면 귀신들린 사람, 방언을 하는 사람, 환영을 본 사람,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 등등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의 거의 대부분은,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이고 환영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속해 있는 문화권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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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ngkiller 2007-12-25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무지하게 두껍고 빡샌 책이었던 기억이...ㅎㅎ 샀다가 다른 책으로 바꿔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

prongkiller 2007-12-25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린님 페이지를 한번 쭈~욱 하고 훑어봤습니다. 이정도면 뭐 '문사철 600' 정도야 대학시절에 가뿐하게 끝내셨겠네요. 부럽습니다.
철학 쪽만 보강하신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내공이 되겠네요.(물론 지금까지 읽으신 철학 서적도 충분히 많으시지만^^)
주로 네이버 블로그에서 활동하느라 알라딘엔 무척 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여기 한번 방문하시길 빌께요. http://blog.naver.com/ivorymind
그럼 즐거운 크리스마스 맞으세요 마린님~~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 김갑수의 세상읽기
김갑수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인데, 실망하는 책 모음의 카테고리에 넣게 되어 아쉽다.
김갑수씨의 전작,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는 나름대로 재밌게 읽었고 그 책을 통해 한쪽 눈이 의안인 이 열정적인 아저씨를 알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한쪽 눈 실명을 계기로 헤어졌으며, 뜻밖에도 자신을 치료해 주던 여의사와 결혼했다는 기막힌 러브 스토리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음악에 대한 그 열정이 너무 멋지게 보여, 그 후에도 TV 나 라디오에 김갑수씨가 나오면 주의깊게 보곤 했다.
연기를 잘해서 좋아하는 배우와도 이름이 같아, 이래저래 호감이 있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것을, 이번에 읽게 된 신작은 영 기대치에 못 미친다.
일부러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해서 읽은 책인데 예상했던 내용과 너무 달라 실망스러웠다.
시사비평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을 새삼 느낀다.
누구나 자기의 전문 분야가 있는 법이다.
아마도 그의 전문 분야는 책과 음악 세계가 아닐까 싶다.
훌륭한 에세이스트라고 생각했던 고종석도, "신성 동맹과 함께 살기" 에서 어설픈 시사평론을 한 바 있는데, 이 책은 그것보다도 더 수준이 떨어진다.
누가 시시비평을 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여튼 이 사람은 어설프다.
차라리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쓴 2부가 훨씬 와 닿았다.
책에 대한 마니아적인 기질을 공유해서인지, 레코드판과 오디오 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큰 집을 사고 비싼 자동차를 굴리는 대신, 레코드판과 훌륭한 소리를 잡아내는 오디오 속에 파묻혀 사는, 얼핏보면 매우 미련하기까지 한 그 고집스러운 애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전작인 음악 에세이에 이런 얘기가 있다.
학생 때 돈만 생기면 음반을 사는 바람에 화장실의 휴지 살 돈도 없어, 샤워기로 뒷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가 어느 정도 음악에 집착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그 정도로까지 소유욕이 강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책을 읽고자 하는 인식욕은 그 못지 않다.
음반에 깔려 압사하고 싶다는 소망만큼이나, 나도 책 속에 파묻혀 질식사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물론 진짜로 죽고 싶지는 않다.)

표정훈씨 책을 읽을 때는 서재 이야기나, 한 달에 책을 얼만큼만 사야 하는지 등등 책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아 참 즐거웠다.
무엇보다 그의 문장력이 글을 술술 읽히게 만들어 편했다.
김갑수씨도 자시의 진짜 장기인 음악 이야기나 책 이야기를 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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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임라이트 ver.2 - i Limelight White
국내
평점 :
절판


나름대로 비싼 돈을 주고 샀는데, 생각보다 별로 유용하지 않습니다.
눈이 상당히 피로합니다.
역시 스탠드 켜고 책 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기숙사에서 옆 사람에게 피해 안 주려고 산 것이긴 한데, 이 불빛으로 책 보다가는 시력 나빠질 것 같네요.
버전 3이 새로 나왔던데 가격이 무려 54000원이나 돼서 포기했습니다.
그건 밝기가 좀 조절이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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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12-2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나요. 오랫만이군요. 일터는 괜찮은가요?. 이런저런 이야기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 같군요. ㅎㅎ. 즐거운성탄절되시구. 한해 마무리도 잘하시구요. 들른 김에 인사드리네요. ㅎㅎ

marine 2007-12-2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여울마당님, 반가워요^^
직장은 뭐, 1년 지나서 적응되긴 했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더라구요
작년 이맘 때 여울마당님이 "제인 에어" 보내 주셔서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울마당님도 행복한 성탄 보내시고 활기찬 새해 맞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