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을 위한 바이블 키워드
J. 스티븐 랭 지음, 남경태 옮김 / 들녘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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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쉽고 재밌다.
성경이 얼마나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서양 문화는 물론이고, 기독교가 만연해 있는 한국에서도 성경 문구 인용은 낯설지 않다.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이 지루하지 않고 쉽게 술술 잘 넘어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성경의 문구나 사건을 재해석한 미국 영화와 드라마들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남경태라는 번역자 이름도 신뢰가 간다.
그가 쓴 <종횡무진 세계사> 를 재밌게 읽은 탓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겉표지가 벗겨져 예쁜 북디자인을 못 본 게 아쉽긴 하지만, 하여튼 재밌게 읽고 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점은, 한문 번역투의 이름들이 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명과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베드로가 피터라든지, 다윗이 데이빗이라든지, 야고보가 토머스, 마가가 마르코, 베르디 오페라의 주인공 나부코가 네부카드네자르, 고린도가 코린토스 라는 점 등등 수많은 예시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와 (더 정확히는 서양 문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고어투의 한문식 성경을 요즘의 인명과 지명으로 바꾼다면 훨씬 더 친밀감 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시도했던 영어 성경 읽기가 큰 도움이 됐다.
그 때 영어 공부를 해 볼까 하고 창세기부터 쭉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역사서처럼 재밌어서 꽤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기본 지식이 깔려 있어서 그런지 책 읽기가 훨씬 쉬웠다.
다시 한 번 성경 읽기를 시도해 봐야겠다.
요즘 한창 회의주의적 시각 때문에 흔들리고 있던 믿음이, 성경 관련 책을 읽으니 다시 새록새록 솟아 나는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요한 계시록의 바빌론이 바로 당시 로마를 지칭하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하다.
그러니까 요한은 유배지에 갇혀 로마의 압제가 멸망하는 날을 기다리면서 묵시록을 썼던 것이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금으로 된 나라와 은으로 된 나라 등등 네 나라가 오늘의 미국을 암시하니 어쩌니 하는 것도 그저 후대 사람들의 해석에 불과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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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히로시마 - [초특가판]
엘레인 레스네 감독, 엠마뉴엘 리바 출연 / 스카이시네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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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영화를 2008년에 본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다.
1959년에 만들어진 영화니, 벌써 50년이나 지난 영화가 아닌가!
솔직히 재밌지는 않았다.
다만 독특하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저 그렇고 그런 헐리우드식 시간 때우기 영화가 아니라, 개성이 있고 감독이 하고 싶어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무엇보다 배경이나 분위기가 고혹적이다.
이게 흑백 영화의 혹은 프랑스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여배우 엠마누엘 리바는 적어도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은 돼 보이는데 꽤나 매력적이다.
<남과 여>에서 나왔던 아누크 에메처럼 고혹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분위기가 참 좋았다.
눈가의 주름도 나이를 곱게 먹은 흔적 같아서 아름다웠고 단발 머리가 따라 하고 싶을 만큼 잘 어울렸다.
또 허리는 어찌나 날씬한지, 동여맨 벨트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그 밑의 아랫배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요컨대 50년대의 마른 체형 여자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잘 못 먹고 살던 그 때는 아마 대부분 저렇게 날씬했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 오카다 에이지에 대해 말하자면, 요즘 한창 뜨는 다니엘 헤니가 중년이 되면 저렇게 늙지 않을까 싶을 만큼 멋지다.
일본 남자는 키가 작고 체격이 조그맣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일시에 날려 준 영화다.
키도 훤칠하고 정말 잘 생겼다.
오히려 여주인공 보다 더 돋보인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동양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히로시마의 상처는 광주민주화항쟁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원폭의 피해로 수십만명이 일시에 죽고 불구가 됐다.
더군다나 태아에게까지 그 피해가 전해져 다음 세대에도 선천적 기형들이 속출한다.
일본은 어떻게 미국과 화해할 수 있었을까?
만약 한국에 그러한 테러가 가해졌다면 한국인은 미국과 진정으로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난 일본이 현재의 미국과 이렇게 잘 지낸다는 사실이 놀랍다.
너무나 끔찍한 전쟁 범죄가 아닌가?
누군가의 말처럼 유럽 국가였다면, 이를테면 히틀러가 아무리 항복을 안 하고 버틴다 해도 과연 독일에 원폭을 투하할 수 있었을까?
영화 속에 나온 대사처럼 이건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아닐 수 없다.
잠깐 등장하지만 원폭 피해자들의 면면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웠다.
오늘날 일본의 경제성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는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특히 난징 대학살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시 원폭 피해자로서 정당한 보상과 위로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원폭 투하를 결정한 미국 정부의 그 잔인함이 놀랍기만 하다.
(그런 거 생각하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또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끔찍한 일인지!)

 

영화 속의 여자는 반핵 영화를 찍기 위해 히로시마에 머물고 거기서 일본인 건축가를 만나 하룻밤 정사를 벌인다.
한 눈에 반한 이 커플은, 다음날 일본을 떠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보내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
이틀에 걸친 짧은 여정 동안 벌어진, 어찌 보면 러닝 타임과 비슷한, <비포 앤 애프터> 가 생각나는 영화다.
<비포 앤 애프터>의 50년대 버전이라고 할까?
문제는 둘 다 유부남, 유부녀라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붙잡는다.
여자는 몇 번이나 남자의 손을 놓고 떠나지만 다시 남자 곁으로 돌아와 맴돈다.
결국 마지막에는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 호텔로 들어가는 걸로 끝나는데 확실한 결말은 없다.
아마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과 현실은 다르지 않는가?
남자는 아내와 이혼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혹은 여자는 프랑스의 아이들을 버리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 히로시마에 머물면서 바람을 피우겠다는 것인지?
만약 여자가 계속 일본에 머문다면 혹은 일본 여자라면 둘의 관계는 혼외정사로 쭉 이어질 것 같다.
둘 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푹 빠져 있다.
더구나 이 멋진 일본 남자는, 여자의 아픈 첫사랑 상처를 완전히 치유해 줬다.

 

사실 이 상처가 영화의 주된 모티브인데 여자는 과거 2차 대전 당시 독일 병사를 사랑했다.
그는 프랑스가 해방되는 날 총맞아 죽었고 그의 시체를 붙잡고 새벽까지 지키던 여자는, 아버지에 의해 지하실에 감금된다.
아버지는 적군 병사와 연애한 딸 때문에 약국 문도 닫는다.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질시, 열 여덟 살의 어린 소녀는 정신 착란증을 앓는다.
지하실에 갇히면 벽을 긁어 손톱에 피가 맺히면 그것을 빨아 먹으면서 위로를 찾는다.
자학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구체적인 명시는 없지만 내가 보기엔 정신병을 앓았음이 분명하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삭발된 머리가 자라면서 (세상에, 프랑스에서도 이런 만행이 자행되다니!) 지하실에서 풀려나고 파리로 떠나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진짜 치유는, 히로시마에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 고백하면서 완전히 털어낸다.
그녀의 대사 속에서 자주 그 독일인 첫사랑과 일본 남자를 동일시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매국노 딸이 부끄럽고 수용하기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마저 딸을 외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섭다.
아마 아버지로서는 생업마저 지장을 받게 되자 딸을 감쌀 여력을 잃어 버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가족이라는 것도 어느 한계 이상을 넘어가면 포용할 수 없는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이 무한대라고 하지만 이런 장면을 보면 어쨌든 인간은 자기 자신이 우선이다.
가엾은 소녀는, 그러나 그 첫사랑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여배우가 된다.
자기 상처는 스스로 치유하는 법이다.

 

일본인 남자와 프랑스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남자의 프랑스어 발음이 너무 좋다.
혹시 혼혈인이 아닐까 싶기도 할 정도로 굴러 가는 불어 발음이 너무 좋다.
국적 문제 뿐 아니라 혼외정사라는 문제가 겹쳐 있는 이 커플들의 운명이 무척 궁금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결론은 없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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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 - 아웃케이스 없음 폭력의 역사 1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비고 몰텐슨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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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영화였다.
아빠의 추천으로 보게 됐는데, 상당히 고전적인 제목이라 꽤 옛날 영화인 줄 알았는데 왠걸, 2005년도에 개봉된 영화였다.
칸느 영화제에도 출품된 모양이다.
감독이나 배우 모두 낯설었지만 익숙한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남녀 주인공 모두 잘생기고 예쁘지 않은데도, 영화 보는 내내 주인공들에게 빠져들었다.
특히 DVD가 주는 매력인 서플을 통해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거야 말로 영화가 아닌 DVD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은발의 근사한, 그러면서도 매우 편안한 지적인 감독이었다.

사실 톰이 다중 인격자라는 건 영화 상에서 잘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존 쿠삭이 나오는 영화, "아이덴티티" 였던가?
이 영화에서 다중인격자의 모습이 잘 표현된다.
내가 보기에 비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 변화가 거의 없다.
그냥 처음부터 톰이었던 것 같다.
조이로 변하면서는 폭력적이고 악마적인 성향을 보여 줘야 하는데, 마지막까지도, 심지어 여러 명을 죽여 놓고서도 여전히 착한 시골 가장의 이미지를 벗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성실하고 착한 모습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아내는 톰의 폭력적인 모습을 낯설어하고 매우 두려워 하나, 관객의 입장으로 보면 톰은 완벽하게 착한 남편이고 시골 가장이라는 인격 외에는 없다.
단일 인격자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 여자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녀들은 한국 여자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비춰 볼 때 정말 강하고 도발적이다.
이디가 톰을 때리는 거 보고 정말 놀랬다.
거침이 없다.
기본적으로 골격도 크고 성적으로도 매우 적극적이며 도발적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동양 여자 이미지는 순종적인 모양이다.
이디와 톰의 격정적인 계단 정사씬은 영화에서 최고로 nervous 한 부분이었다.
톰은 마치 강간이라도 할 것처럼 이디의 발목을 붙잡고 목을 틀어 올리지만, 이디는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톰의 입술을 휘감는다.
처음에는 폭력으로 여자를 정복하려고 하는 톰에게 화가 났는데, 이디 스스로 섹스에 응하는 걸 보고 그녀의 마음이 돌아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적으로 적극적이라는 것도 영화 속에서 외국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국보다는 여자들에게 성적으로 훨씬 개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의 감독이 “플라이” 를 만든 데이빗 크로넨버그라고 한다.
상업적인 영화보다는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감독 같다.
서플을 보면 감독이 굉장히 멋지게 나온다.
이게 바로 DVD의 매력인데, “남과 여” 에서도 끌로드 를루슈 감독의 매력적인 모습을 본 바 있다.
주인공 비고 모텐슨도 퍽 매력적인 배우다.
잘 생긴 건 아닌데 성격파 배우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최민식이나 송강호 같은 스타일이지 않을까?
잘 생긴 건 아니지만 기막히게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배우들!

특히 칭찬해 주고 싶은 부분은 특수효과다.
잔인하지 않으면서도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면면을 리얼하게 잡아냈다.
서플을 보니, 만들 때 퍽 고생을 한 것 같다.
이래서 영화는 종합예술인가 보다.
단순히 배우와 촬영감독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매주 두 작품을 찍어야 하는 드라마의 완성도는 영화에 비교할 것이 못 돼고 또 노동량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다.
아이즈 와이드 셧 같은 경우도 몇 년에 걸쳐 찍은 영화라고 하니, 비슷한 장면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했을지 알 만 하다.

주인공 비고 모텐슨이 스턴트맨 출신이라 그런지 액션 연기를 정말 잘 한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악당 중 젊은 배우도 잠깐 등장하는 거였지만 꽤나 인상깊은 연기를 한다.
마지막에 톰이 형 리치를 죽이는 설정은 좀 잔인했다.
친형이 동생을 죽이겠다고 덤비는 것도 그렇고, 거기에 맞서 동생 역시 아무런 갈등 없이 형을 쏴 죽이는 걸 보면, 확실히 한국보다 미국은 가족애에 덜 엮여있는 기분이다.
형은 중간보스로 나오는데 톰네 가족은 아마 다시 또 더 큰 보스의 추적을 당하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톰이 형을 쏜 권총을 연못에 던진 후 수백 마일을 달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온다.
싸늘한 가족들의 시선,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딸이 톰에게 저녁 식탁에 앉게 하고 접시를 내 놓는다.
아버지를 증오하던 아들은 고기를 덜어 준다.
이 장면으로 끝났는데 난 이 가족이 다시 화해했으리라 믿는다.
어쨌든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가?
톰이 다시 일상의 평온함으로 되돌아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거창하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럴싸한 조직 폭력배 생활도 마찬가지로), 즉 어떤 영웅주의적 행동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 안에서 소박하게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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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 닐 애셔 실버먼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오래 전에 사 놓은 책인데 이제서야 보고 있다.
뭐랄까, 내 돈 주고 사면 당장 읽기 보다는, 어느 때나 읽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미루게 된다.
2002년에 나 온 책인데 작년부터 품절이었다.
너무 빨리 절판되는 게 아닌가 싶어 아쉽다.
책의 턴오버가 너무 빠르다.
학술적이고 어려울 것 같아 선뜻 읽혀지지 않았는데, 막상 책장을 넘겨 보니 오히려 평이한 수준이다.
발굴 내용이나 구체적인 증거를 세세하게 제시하기 보다는, 결론만 말하는 식이다.
대중을 위한 교양서 수준이다.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허점이 보인다거나 주장만 되풀이 하는 허접한 책은 절대로 아니다.
아마 유대인 고고학 교수라는 저자의 직업적 전문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정통파이기도 하다.

 

어제 읽은 부분은 1부였다.
도입부와,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하는 열왕기 하까지의 설명으로 되어 있다.
모세 5경과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 등이 기원전 7세기 유다 왕 요시아에 의해 정리됐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모세 5경이 모세의 저작이 아님은 잘 알려져 있다.
왜냐면 모세가 죽은 후의 일도 세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아다시피, 하나님을 야훼로 부르는 버전, 엘로힘으로 부르는 버전 등등 총 4개의 원전이 모인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니까 모세 한 사람의 단독 저술이 아니라, 후대에 여러 자료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 점은 새로울 것이 없었는데, 그 후의 저술인 여호수아서나 사사기 등이 요시아 왕 때 정리됐다는 점이 신선했다.
저자는 요시아에게 초점을 맞춰서 성경을 설명한다.
모세 5경에 나오는 지명들, 특히 가나안 정복 당시 구체적인 촌락이나 지방들이 요시아 왕 때 정세와 거의 일치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여호수아가 나팔을 불어 성곽을 무너뜨렸다는 여리고는 여호수아 당시, 즉 후기 청동기 때는 성곽 자체가 있지도 않았고, 무너뜨리고 말 것도 없는, 그저 소수의 촌락 공동체에 불과했다고 본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많은 지방들은, 철기 시대인 유다 왕국 요시아 왕 때 강성한 나라들로 봐야 한다고 본다.
후기 청동기 시대 때는, 즉 여호수아가 활동할 때는, 촌락 자체가 거의 형성되지 않고 버려진 땅이었다는 것이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가지고 하는 주장이기 때문에 일단은 한 번쯤 고려해 볼 만 하다.

 

좀 더 핵심적이고 충격적인 주장은, 이스라엘인이라는 민족 자체가 외부에서 가나안으로 온 이주민 집단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원래부터 살고 있던 토박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이 유목민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왜냐면 성경에 묘사된 그들의 생활, 이를테면 샘을 가지고 싸운다거나 양과 염소를 방목하는 것 등이, 현재의 베두민족 삶과 거의 유사하다고 한다.
저자의 추리에 따르면, 이들은 고원지대에서 유목을 하던 집단이었고, 저지대의 농경민과 곡물 교환을 통해 살아갔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저지대 경제가 망하게 되자, 고원 지대는 더 이상 곡식을 얻을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농사를 짓게 되면서 농경민으로 전환했다고 본다.
이 사건이란 에게인이라고 알려진 바다민족의 침입, 혹은 당시 가나안까지 이집트의 통치가 미쳤는데, 이집트가 분열을 겪으면서 더이상 행정 치안이 유지되지 못해 경제가 무너졌다고 본다.
하여튼 저지대가 몰락하면서 고원지대의 유목민들은 인구가 늘게 되고 자급자족을 달성하면서 서서히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들을 다른 집단과 구별해 주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바로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풍습이었다.
고원 지대를 발굴해 보면 저지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돼지뼈가 없다고 한다.
왜 돼지고기를 안 먹었는지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으나 하여튼 이런 금기가 그들의 구별표지로 작용한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자매 국가로 본 점도 신선하다.
여호수아가 열 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북이스라엘은 남유다 보다 훨씬 풍족하고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자란 집단이었고 다만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을 섬기는 점에서 같았다.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한 후 남유다는, 특히 요시아 왕은 자신들이야 말로 잃어버린 옛 땅을 수복해 통일 왕국을 이룩할 수 있는 영웅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과거 통일왕국 다윗과 솔로몬 시절을 화려하게 편집해서 다윗의 자손이 다시 왕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자기암시를 한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다윗과 솔로몬 시절의 화려함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윗 시절의 유다 왕국은 매우 가난했으며 솔로몬의 건축물이 있다고 알려진 므깃도 등도 훨씬 나중에 지어졌기 때문에 연도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자에 따르면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는, 요시아 시대인들에게 주입된 환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다윗과 솔로몬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집트 등의 비문에 보면 솔로몬의 자손이라는 단어가 분명하게 언급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경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기록은 사실임을 인정하는데, 단 그 규모를 매우 축소해서 본다.
이런 침착한 태도가 설득력을 높힌다.
좀 더 읽어봐야겠으나 선동적인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다음에는 대체 어떻게 이 작은 민족의 종교가 전 세계인의 영혼을 책임지는 보편적인 종교로 발전했는지, 그 영향력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읽어봐야겠다.
다른 의견을 가진 고고학자의 책을 읽고 싶다.
당위성만 주장하는 교회 인사들의 책은 사양한다.
증거는 없고 주장만 난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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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와이드 셧 - 할인행사
스탠리 큐브릭 감독, 톰 크루즈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상당히 어려운, 독특한 영화였다.
기묘한 분위기,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라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늘씬한 배우들이 펼치는 이상야릇한 혼란들...
영화 설명에는 니콜 키드먼이 맡은 앨리스가 정숙한 여인이라고 나오는데 글쎄, 겉보기에도 퍽이나 매력적이고 섹시해 보이는데 그건 아니지.
둘 다 화면이 참 아름다운 배우들이다.
특히 큰 키와 긴 다리를 자랑하는 니콜은, 안경을 씀으로써 자신의 도발적인 매력을 한 단계 낮춘다.

 

난 대체 왜 이 영화가 야하다는 소문에 휩싸였는지 모르겠다.
비밀스런 성에서 벌어지는 혼음파티 때문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니콜의 벗은 몸 때문에?
왠걸, 그 보다 더한 영화는 도처에 널려 있다.
오히려 도발적이고 위태로운 분위기 때문에 긴장감을 준다.
노골적인 섹스씬은 거의 한 장면도 없었고 혼음파티는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감독이 연출하는 그 기묘한 분위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세계적인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사운드 트랙도 환성적으로 잘 어울린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아 정확한 분위기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그 나라는, 적어도 한국 보다는 남편과 아내의 정절 문제를 비슷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보다는 덜하겠지만, 한국 사회는 남자들의 일회적인 섹스나 매춘에 대해 대단히 관대하다.
술먹고 하루밤 자는 게 무슨 대수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
지속적인 관계만 아니다면, 혹은 적당한 선에서 정리할 수 있다면, 즉 가정으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다면 일시적인 바람은 용납되어지는 분위기다.
남자에게 순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의 빌은, 실제로 섹스를 즐긴 것도 아니고, 단지 혼음파티에 호기심으로 찾아갔을 뿐이고, 창녀와의 하룻밤도 돈만 날렸을 뿐 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크게 죄책감을 느낄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괴로워하며 아내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아내 앨리스 역시 단지 해군장교와의 하룻밤을 꿈꾸었을 뿐 실제적인 행위는 없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일어나지 않은 현실, 머릿속에서의 욕망에 죄책감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괴로워 한다.
어쩌면 그 점이 일반적인 포르노나 3류 영화와는 다른, 작품의 수준을 높혀 주는 포인트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이 부부의 감추어진 성적 욕망 내지는 정절에 대한 충실도를 보면서 스와핑이라는 단어가 신문에 오르내리는 요즘의 현실과 비교해 봤을 때, 순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성적 개방이 자연스러워졌다 해도, 여전히 결혼이란 한 사람과의 독점적인 성관계를 법적으로 약속한, 매우 폐쇄적인 관계임을 깨달았다.
간통죄라는 법률적인 위반 행위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구속력이 훨씬 강하게 작용할 것 같다.
오히려 성관계 개방 풍조는, 결혼 이전에, 미혼남녀가 섹스를 연애행위에 자연스럽게 포함시킬 수 있음을 뜻하는 것 같다.
어찌됐든 부부간의 정절은, 혼전순결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외도 한 번 안 하는 부부가 어딨냐는 발언은 매우 무책임한 소리라는 걸,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사회적 제도로 억압하면서 사는 것, 그게 바로 결혼이 아니겠는가?

 

비밀스러운 혼음파티는, 성에 대한 인간의 퇴폐적인 욕정을 보는 기분이었다.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폐쇄적으로 모여 서로가 보는 앞에서 섹스를 즐긴다...
뭐랄까, 즐거움의 극치에 이르다 보니 적정선을 넘어서 가학적이고 변태스러운 단계에 이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단에 다달았다고 해야 할까?
마약과 술에 절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남녀의 육체에 탐닉하는 모습, 성적 표현의 완전한 자유를 외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비밀스럽고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며 심지어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죽이기까지 하는 끔찍한 가학성은 아무래도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든 신체나 정신에 위협을 가하는 폭력적인 탐미는 아름답지 못하다.
어떤 즐거움이든 적당한 수위가 있는 것 같다.

 

니콜 키드먼과 탐 크루즈 모두 눈을 즐겁게 할 정도로 훌륭한 마스크와 몸매를 지녔고 영화 분위기나 음악 모두 마음에 든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의사면허증이 마치 운전면허증처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의 빌은, 의사라는 직업을 내세워 마치 경찰처럼, 많은 일을 쉽게 해결한다.
미국 문화의 신기한 점을 발견한 기분이 든다.
의사가 미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나라 의사면허증은 A4 한 장 크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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