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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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대했던 바보다는 훨씬 못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늘 그렇지만 말이다.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야 말로, 내가 가장 고민하던 문제였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다.
어떻게 하면 타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내 의지대로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책에서 비밀을 찾겠다는 생각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짓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역시 원론적인 얘기에 그친다.
결국 끝까지 다 읽을 수가 없었다.
결론은 나를 존중하고 내 감정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나 자신은 타인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자.
내가 언제나 상대방으로부터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또 끌려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인정의 욕구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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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유럽 미술관에 가다 - 젊은 미술사학도가 들려주는 유럽 미술관의 명화 이야기
허은경 지음 / 삼우반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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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쩌면 가장 원하던 형태의 여행기가 아닌가 싶다.
내용의 만족도와는 별도로, 이런 미술관 순례 형식의 여행서가 필요했다.
미술관 순례야 말로, 내가 가장 꿈꾸는 여행의 형태다.
풍경을 보려면 함께 떠나는 게 좋겠지만, 그림이라면, 오히려 혼자가 좋을지 모른다.
루브르 등에 한국어 가이드가 없어서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가이드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졌다.
이번에 러시아 거장전을 보러 갈 때도 가이드의 설명이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냥 내가 보고 감동을 받는 것, 그림을 통해 얻는 내 느낌이나 감상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미술관은 혼자 가도 절대 외롭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사색의 시간이 될 것이다.
국내 미술관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혼자 가진 않지만, 유럽의 유명 미술관은 책에서만 보던 그 감동을 직접 느끼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 가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주헌의 미술관 투어는 너무 전문적인 냄새가 나서 따라하기가 좀 어려웠다.
평범한 이들의 미술관 투어는 또 감상 수준이 낮고.
이 책은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의 약력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글을 쓰는 솜씨나 호스텔 등에서 묵는 여행 행태 등이 30대 직장인들에게 알맞는 가이드를 제공해 준다.
단 3개월의 시간을 어떻게 내느냐가 관건이다.
유럽은 워낙 작고 고만고만해 정말 한 석 달이면 충분히 중요 미술관을 돌 수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나는 현대 미술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꼭 가고 싶은 미술관의 갯수를 현격하게 줄일 수 있다.
런던에 가면 기껏해야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가 전부고 (책을 읽고 나니 장식 미술의 집합소인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은 추가시켜야겠다. 영국 상류 사회의 아름다운 장식미술을 보는 즐거움을 빼 놓을 수는 없겠지!) 파리로 간다면 루브르와 오르세 정도다.
아, 물론 피카소 미술관은 내가 워낙 좋아하는 화가이니 꼭 봐야겠다.
네덜란드로 가면 고흐 미술관과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정도?
루벤스 그림에 열광하다 보니 플랑드라 화파의 그림이 다수 소장된 브뤼셀 왕립 미술관도 빼 놓을 수는 없겠다.
독일로 넘어가면 베를린의 국립 회화관과 뮌헨의 알테 피타코텍, 이탈리아로 가면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과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은 꼭 가야 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는 빈 미술사 박물관, 마지막으로 마드리드에 오면 프라도 미술관으로 끝을 맺겠다.
저자는 50여 개의 미술관을 석 달에 걸쳐 돌았으니, 나는 한 달이면 될 것 같은데...
한 달의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아니면 여름 휴가 때마다 한 곳을 집중적으로 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때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난 후, 마지막 일정에 있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루브르나 바티칸 미술관에서는 못 느꼈던 감동을, 내셔널 갤러리에서 정말 무한대로 느낄 수 있었고, 그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생겼다.
이래서 여행은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다고 했던가.
빈에서 쇤부른 궁전만 보고 빈 미술사 박물관을 못 번 것도 못내 아쉽고, 뮌헨에서 알테 피나코텍을 그냥 지나친 것도 안타깝다.
대체 왜 암스테르담에 가서는 고흐 미술관이나 국립 미술관은 안 가 보고 어처구니 없게 풍차 마을만 돈 것인지!
잠깐 들린 브뤼셀에서는 그 흔해 빠진 오줌싸개 동상만 보고 왕립 미술관이 있는지도 몰랐다.
파리에서는 하필 오르세 미술관이 문 닫는 날에 들려 미련없이 포기했다.
여행 일정에는 없었지만 로마에 갔을 때 피렌체도 잠깐 들릴 수 있었을텐데, 안타까운 우피치 미술관이여!
기껏 본 게 루브르와 바티칸 미술관,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지만, 그 때의 감동 때문에 나는 미술에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까지도 미술 작품을 통해 삶의 기쁨과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갈 수 있을리라 기대에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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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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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연히 집어든 책이다.
과천 도서관에서 대출 권수를 다 채우고 싶은 욕심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급하게 골라 들었다.
원래는 <오픈북>을 빌릴까 했는데 바로 옆에 이 책이 있었고, 그래도 노벨상 받은 작가의 독서론이 더 나을 것 같아 이걸로 집어 들었다.
독서에 관한 책 중 재밌게 읽은 책은 그나마 표정훈의 에세이 밖에 없다.
다치바나 책도 그런대로 재밌게 읽긴 했지만 하여튼 그닥 유용한 것은 없었고 그나마 앞의 두 사람은 글솜씨가 있어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책을 워낙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왠만한 충고는 귀에 들오지 않는다.
마치 우등생들에게 공부 잘하는 비법을 강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책 자체가 너무 좋고 내 나름대로 확고한 독서관이 있기 때문에 어설픈 충고 따위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렇다고 수집벽이 있는 쪽도 아니라서, 장서가의 에피소드도 그닥 흥미를 못 끌고 만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독서론에 관한 책은 안 읽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책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대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책을 다루는지, 한 달에 책값으로 얼마나 쓰는지, 서재는 어떻게 꾸미는지 등등 소소한 세부사항들에 대해 관심 때문에 책에 대한 책이 나오면 꼭 한 번씩은 들춰 본다.

결론적으로 나는 비교적 이 책에 만족한다.
전부를 다 재밌게 본 건 아니지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장서 수집이야 말로 극도로 섬세한 스포츠라는 재치있는 문구에 무릎을 탁 칠만큼 공감했다.
헌책방을 찾아 다니고 혹은 책 사는데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은 일종의 스포츠, 오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섬세한 손길을 요하는 고상하고 고급스러운 스포츠다.
육체적인 활동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정서적 만족을 위한 훌륭한 게임이고 경쟁심도 유발시키기 때문에 애서가들이 이것에 몰두하는 것이리라.
언젠가는 나도 개인 서재를 갖고 싶다.
헤세의 지적처럼, 빌려 읽은 책은 그걸로 끝이다.
문득 다시 읽고 싶어질 때 내 책장에 꽂혀 있지 않으면 재음미 할 수 없어진다.
한 번 읽을 때와 두 번 읽을 때는 명확히 다르다.
물론 어떤 책은 두 번까지 읽을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지만, 적어도 고전이라면 한 번 가지고는 부족하다.
인문학이나 과학 서적도 마찬가지다.
정독을 두 번씩 할 필요는 없겠으나, 부분적으로 다시 들춰 보고 확인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헤세는 남독은 나쁜 습관이라고 경계한다.
물론 나도 안다.
일주일에 몇 권을 읽겠다는 욕심에 무리해서 속도를 내면 나중에는 권 수 채우기에 급급하고 자꾸 마지막 페이지를 들추게 된다.
그렇지만, 시간은 항상 부족하고 읽고 싶은 책은 널려 있다.
쏟아지는 신간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란 말인가!
나는 비교적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언제나 부족하다.
남독은 책을 사랑하는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운명 같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작가의 전문성과 성실함이었다.
책의 소재나 주제가 아무리 좋아도 기술적인 부분, 즉 구성이나 문체 등이 탄탄하지 못하다면 좋은 글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에 120% 공감한다.
아무리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어도 구성이 조악하다면 그것은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다.
내용이 먼저냐, 기교가 먼저냐고 묻는다면 나는 적어도 예술이라면, 기본적인 묘사력, 구성력이 우선이라고 답하겠다.
간단히 말해서 서정주의 개인사를 욕할 수는 있어도 서정주 시가 가치없다, 이렇게 평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작가와 작품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냐고 묻는다 해도, 혹은 작품에 담긴 정신이 기교보다 중요하다고 해도, 하여튼 예술 작품이 형식적으로 완성미를 띄지 못한다면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다고 본다.

세계고전문학에 대한 욕구는, 책을 읽으면서 더해졌다.
고전은 정말 의무감에라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워낙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항상 뒤로 미뤄졌었다.
여기 소개된 책들의 제목만 들어도 당장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올해는 독서 목록에 꼭 고전도 포함시키겠다.
읽고 또 읽는 것,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 위대한 작가의 묘사력에 감탄하는 것, 작가의 사상과 자아를 발견하는 것,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고민하는 것, 고전을 읽는 즐거움이야 말로 인류 문화의 정수를 느끼는 길 같다.

뒷부분의 헤세 연보를 보니, 85세로 장수했고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첫 아내와의 사이에 적어도 아들이 세 명은 있었고, 불행히도 아내는 정신분열증에 걸려 헤세와 이혼한다.
40대 초반에 재혼을 하는데, 그녀의 요구로 겨우 3년만에 다시 이혼하게 된다.
50대 때 삼혼을 하게 되고 이 결혼은 끝까지 유지된다.
개인적인 불행을 보는 기분이 들어 착잡했다.
한 여자와 만나 평생을 해로하는 일이, 유명인이나 위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사실 헤세에 대해서는 그닥 흥미가 없다.
어렸을 때 <수레바퀴 밑에서> 를 워낙 재미없게 읽어서였을까?
원래 나는 명상적이고 자조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데미안> 은 퍽 인상깊게 읽었다.
에바 부인이라든지, 카인의 표적을 말하는 데미안의 독특한 정신세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헤세에 대해서라면, 그의 책보다는, 전혜린이 독일 유학 시절 헤세에게 팬레터를 보내 답장을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면 이 분도 상당히 현대 사람인 것 같다.
혹은 전혜린이 꽤 오래 전 사람이든지.
192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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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 - 러시아 예술기행 이상의 도서관 6
이병훈 지음 / 한길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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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디자인은 참 마음에 든다.
퍽 잘 만든 북디자인이라고 생각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마다 드는 의문이, 대체 왜 겉표지를 죄다 벗겨 버리냐는 것이다.
아마도 바코드 붙이는 문제 때문에 그런 것 같기는 한데, 표지를 보존하면서 붙일 수는 없을까?
북디자인이라는 장르가 생겼을 정도로 표지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는 요즘, 책의 외형을 보는 재미를 뺏기는 듯해서 참 안타깝다.
그 무미건조한 도서관의 겉모습이란, 참!
하여튼 이 책의 외형은 참 마음에 들고 예쁘다.
모르긴 해도 가격이 꽤 될 듯 하다.

약력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아마도 모스끄바에서 철학이나 미학 쪽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처음 도입부는 그다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뭐랄까, 거창한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신변잡기적이고 사소한 감상 위주였으며 무엇보다 글 쓰는 솜씨가 그다지 신뢰가 가질 않았다.
제일 짜증나는 여행책 중에 하나가, 자기 블로그에나 올릴 만한 수준의 글을 책으로 펴내는 부류다.
대표적인 예로 손미나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 등을 들 수 있겠다.
지금까지 읽은 여행기 중 가장 맛깔나는 책은, 역시 하루키의 "먼 북소리" 였고, 김인성의 "시인이 있던 자리" 라는 영국문학기행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글 잘 쓰는 작가가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게 참 이해하기 힘든 노릇이다.

다행히 뒤로 갈수록 책의 수준이 조금씩 나아졌고 기대하던 뜨레찌야꼬프 미술관이 나오면서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주헌의 러시아 미술기행을 통해 접하게 된 이 훌륭한 미술관에는 러시아 거장들의 작품이 수두룩하다.
정말 훌륭한 작품들이 많은데 서유럽 미술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못한 걸 보면 확실히 러시아는 유럽의 변방이었던 모양이다.
칸딘스키나 샤갈 등 20세기 추상미술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세계적으로 알려진다.
사실 이번 러시아 미술전에 다녀오지 않았다다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껏해야 렘브란트나 카라바조 같은 서유럽 유명 화가들이 명화의 전부라고 여겼을 것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직접 눈으로 전시회를 보고 왔더니, 러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한히 늘어났다.
사실 19세기 미술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책에서 별 감흥을 못 얻었던 칸딘스키와 곤차로바 같은 추상주의 미술가들이 훨씬 더 강렬하게 와 닿았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건 형상보다는 오히려 강렬한 색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 원색의 리드미컬한 배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안 사실인데, 러시아 거장전에서 아주 인상깊게 봤던 곤차로바라는 화가가, 그 유명한 뿌슈낀의 이종 증손녀라고 한다.
곤차로바의 수확하는 농촌 풍경이 어찌나 기억에 남던지 구글에서 그림을 찾으려고 그녀의 이름을 입력했는데 정작 나오는 건 왠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였다.
대체 그녀가 누굴까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유명한 작가 뿌슈낀의 아내가 아니던가!
아내의 연적과 결투하다 총상을 입고 죽은 바로 그 불운한 작가 말이다.
단지 이름만 같을 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친척 관계였다.
러시아에서는 가장 위대한 문호로 추앙받는다는 뿌슈낀의 아내 곤차로바는, 당시에도 사교계 최고의 미녀였다고 한다.
과연 그녀의 초상화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 놨다.
화가 곤차로바의 남편이 바로 아방가르드의 기수인 라리오노프다.
라리오노프의 그림 역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감을 선보여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빛에 의해 순간적으로 형체나 색이 바뀌는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사물의 입체감과 용량을 표현하느 형식주의, 즉 "부브노브이 발레뜨" 였다고 한다.
다이아먼드 잭이라는 의미라는데 둔탁하고 질감이 선명한, 중량감을 느낄 수 있는 화풍 같다.
고갱의 원시주의와도 비슷한 맥락 같다.
후기 인상파인 원시주의를 추구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것도 그 선명하고 강렬한 색감이 마음을 요동치기 때문이다.
나는 서사 구조가 분명하고 사물을 정확히 묘사한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나, 앵그르 같은 고전주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은, 선명한 평면적 그림인지도 모르겠다.
마네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농촌 여성의 노동하는 모습을 긍정적이고 밝은 화풍으로 묘사했다는 곤차로바는 연극적인 시각성을 추구했다고 한다.
연극적인 시각성, 이 얼마나 멋진 단어인지!!

제일 기대했던 화가는 역시 일리야 레삔이었다.
아마도 러시아 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화가가 아닌가 싶다.
"볼가강의 인부들"이나 "꾸르스키 현의 십자가 행렬" 은 두말이 필요없는 정말 최고의 명작들이다.
그 강렬한 감동과 떨리는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화면을 압도하는 그 크기도 대단하다.
레삔은 대작을 많이 그린 것 같다.
언젠가는 모스크바로 날아가 이 위대한 걸작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을까?
대체 이런 훌륭한 작품들이 왜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라는 게 죄다 서유럽 위주라는 한계점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정말 위대한 예술은 국경을 초월해서 생판 모르는 무지의 이방인에게도 충분한 감동을 준다.

역사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수리꼬프라는 화가에게도 관심이 간다.
"귀족부인 모로조바" 나 노보데비치 수도원을 그린 그림은 지난 번 러시아 거장전에서 본 것 같다.
"귀족부인 모로조바" 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눈덮힌 벌판에서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광기어린 모로조바 부인 외에도, 헐벗고 굶주린 거지들이 등장한다.
한쪽에는 두터운 겨울 외투로 무장한 귀족들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정말 그 추운 날씨에 넝마를 걸친 거지들이 구걸을 하고 있다.
오히려 모로조바 부인의 유배는 뒷전이고 일단 이 가엾은 빈민들이 먼저 마음을 울린다.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이 돋보이는 구성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은 알고 계실 거라는 듯, 분노어린 얼굴로 하늘을 가리키는 손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다.
로마 시대의 순교자들은 거룩하게 느껴지는데, 그녀의 신앙은 왠지 광기로 느껴진다.
화가 역시 그녀의 신앙심을 광기로 표현한 듯, 인상이 자못 강렬하다.

제일 인상적인 그림은 지나이다 예브게니예브나 세레브랴꼬바라는 긴 이름을 가진 여류 화가의 자화상이었다.
구글에서 이 그림은 꼭 찾을 생각인데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
단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건강미와 긍정성이 넘쳐나는 역동적인 자화상이다.
무척이나 매력적인 화가였을 것 같다.
이바노프의 "그리스도의 출현" 이나, 부률로프의 "폼페이 최후의 날" 은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하는데 도판으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전형적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도식적이고 흔한 설정이라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
레삔이 부률로프야 말로 최고의 천재라고 감탄한 걸 보면 또 당시 최고의 화가로 명성을 떨친 걸 보면 대단하긴 한가 본데 기회가 되면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
칸딘스키 그림도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왠 난잡한 색체의 배열인가 했으니까.

러시아는 겨울이 길어서 그런지 공연 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다고 한다.
유료 관객이야 말로 예술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적어도 클래식의 세계에서는 유럽을 쫓아갈 수 밖에 없음을 이럴 때 실감한다.
공연을 즐기는 것이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자리잡은 러시아 문화를 보면, 지루한 클래식을 고상한 교양주의 때문에 억지로 참고 듣는 우리의 스노비즘과 대비된다.
박종호가 쓴 유럽음악축제 이야기를 읽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는데 이 책에서도 러시아 고급문화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연극을 보면서 배우의 아우라가 연극 무대를 현실세계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라고 표현했다.
반드시 훌륭한 연극이나 영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가끔 드라마를 볼 때도 배우의 연기나 연출력이 너무 뛰어나 완전히 몰입할 때가 있다.
그런 연기력과 철학을 가진 배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연예인이라는 수식어 대신 정말 배우라는 단어를 붙여도 될만한 연기자가 몇 명이나 될까?
난 김영철을 볼 때마다 배우라는 직함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의 아우라, 정말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공연장에 자주 갈 생각이다.
오페라나 발레, 연극, 연주회 등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풍성할까!

러시아 예술 기행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제목도 잘 붙였고 책 구성도 훌륭한데 사실 내용은 점수를 아주 잘 주기는 좀 그렇다.
다소 부족한 기분이 든다.
7년이나 모스끄바에 있었다면 과연 감상이 남다르긴 할 것 같다.
재밌게 읽고 있다.

뒷쪽 여름이야기는 그저 그랬다.
저자의 글솜씨는 상당히 평이한 편이다.
다른 무엇보다 문장력에 큰 점수를 주는 나로서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건조하고 평범한 여행기가 이어진다.
사진은 무척 잘 찍었다.
모스크바의 여름은 그 높다란 자작나무의 싱그러운 초록빛에 빛을 발한다.
겨울이 너무 길고 혹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은 여름이 더 귀하고 찬란한 것 같다.
여름에는 체호프나 똘스또이 같은 예술가들의 생가를 찾으러 간다.
러시아가 워낙 넓어서인지, 아니면 똘스또이 등이 워낙 부유해서인지 하여튼 그들의 생가는 정말 광활했다.
아스나야 뽈라냐의 그 넓고 커다란 저택과 정원을 보라지!
영지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몇 장 넘기다 보니 러시아 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당히 비슷해 보였다.
무엇보다 정원이 있다는 게 참 마음에 든다.
정원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자란 이들의 영원한 꿈일 것이다.

중간중간에 러시아 문학가들의 글을 번역해서 다른 글씨로 삽입한 부분은 참 마음에 들면서도, 제대로 읽어 보지는 못했다.
감동받은 부분을 따로 떼내어 읽으면 꼭 이렇다.
앞뒤 문맥을 아무리 많이 인용한다 해도, 글 전체를 읽을 때의 분위기를 감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체호프가 의사 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점은 다소 놀라웠다.
의학은 나의 아내, 문학은 나의 애인이라는 말을 체호프가 했다니!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다는 건, 즉 직업 외의 분야에 이름을 남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참 대단하다.
희곡이나 단편을 별로 안 좋아해서 체호프는 제대로 읽어 본 일이 없는데 갑자기 관심이 확 생긴다.

중학교 때 읽은 세계소년소녀 문학전집에서 유난히 똘스또이 작품은 나에게 큰 감동을 줬다.
특히 "전쟁과 평화" 는 어찌나 감동적이었는지!
사실 한 권으로 압축된 거의 줄거리에 가까운 그 얇은 책이 제대로 똘스또이의 사상을 전달했는지 의문스럽긴 하다.
나중에 아빠 서재에서 무려 세 권으로 그것도 각 권마다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완역본을 보면서 기가 탁 질렸다.
그러나 하여튼 그 때는 전쟁과 평화, 를 날새워 읽고 긴 감상문을 썼었다.
<안나 까레리나> <부활> 도 무척 재밌게 읽었던 반면에, 도스또예쁘스끼는 이상하게도 안 읽혔다.
내 성향이 내면의 성찰이나 투쟁 같은 철학적인 쪽 보다는 서사적인 구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튼 그 유명한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나 <죄와 벌> 은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해서, 지금도 도스또예쁘스끼 보다는 똘스또이 쪽이 훨씬 친근하고 애정이 간다.
그래서인지 다른 곳은 몰라도, 야스나야 뽈라냐는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진다.
더군다나 대지주였기 때문에 그의 영지는 풍경 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만 할 것 같다.

언제쯤 러시아에 가 볼 수 있을까?
뜨레찌야꼬프 미술관이나 에르미따쥬 미술관에 가 볼 영광은 언제쯤 누릴 수 있을까?
러시아의 유명한 발레나 오페라, 연주회도 들어 보고 싶고, 그 유명한 끄레믈리도 직접 보고 싶은데 말이다.
이런 즐거움을 상상만 해도 행복하니, 과연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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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 -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영혼
일리야 레핀,I. A. 브로드스키 지음, 이현숙 옮김 / 써네스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기대했던 것보다 산만하다.
도판도 썩 좋지는 않았다.
일단 책 크기가 크지 않아서 시원하게 그림을 볼 수 없었다.
중간에 레핀의 그림을 많이 소개하긴 하는데, 책 판형 때문인지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었다.
비싼 가격에 비해 책 자체의 질은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뒷부분에 나오는 레핀의 편지 부분은 안 싣는 게 나을 뻔했다.
차라리 한 권으로 엮어진 책을 번역하던지, 아니면 직접 작가가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운 대목이다.
이것 저것 취사 선택해서 번역한 것이 책의 통일성을 해치고 있다.

내가 왜 레핀의 그림에 감동을 받는지 책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무한한 감동을 받았던 "볼가강의 인부들" 을 보면 배를 끄는 인부들의 각 캐릭터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단지 고통스러운 농노들의 비참한 삶을 드러내기만 했다면 오히려 이념적이고 감상자의 마음도 편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이념에 함몰되지 않았다.
레핀의 표현대로 그림 자체가 훌륭하지 않다면 아무리 주제가 뛰어나도 감동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그림에 드러난 그 세밀한 인상들을 보라!
차르의 압제에 희생되는 가엾은 농노 무리로 전락하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개개인으로 묘사한 그의 탁월한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덧붙여 강 주위를 감싸는 대기와 주변 배경은 또 얼마나 조화로운지!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 역시 마찬가지다.
이 그림도 정말 볼 때마다 감동을 하는 그림이다.
행렬에 어떻게든 끼어 보려는 꼽추를 어쩌면 그리도 생생하게 그렸는지!
확실히 레핀은 인물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지녔다.
그래서 초상화도 많이 그렸던 모양이다.
볼가강의 인부들 같은 경우는 무려 11년에 걸쳐 제작한 그림이고, 무수한 인물 스케치를 했다.
십자가 행렬 역시 인물 하나하나를 수십 번 그렸고 밑그림을 여러 차례 그렸다고 한다.
<자포르쥐에 카자크들> 은 또 어떤지!
터키 술탄의 항복하라는 편지를 받고 깔깔대는 카자크인들의 웃는 모습을 하나하나 생생하게 그려낸다.

처음 레핀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가 그린 니콜라이 2세의 초상을 봤을 때다.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훌륭한 초상화였다.
누가 이 단아하고 감수성 예민한 청년을 압제자 차르라고 생각하겠는가?
인물의 개성과 속내까지 드러내는 그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것이야 말로 레핀의 전문 분야였다.
오히려 나는 훌륭한 평을 받는, "선동가의 체포" 나 "아무도 기다리자 않았다" 등은 그저 그렇다.
"이반 뇌제" 같은 경우도 정교하지 않아서 그런지 큰 감동은 없다.
정밀하고 세밀한 묘사가 좋다.

레핀은 86세의 긴 생애를 산다.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뒀고 그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도 훌륭한 초상화로 남아 있다.
어떤 그림들은 마치 인상파 그림처럼 보인다.
굉장히 다양한 표현 기법을 구사했던 것 같다.
인상파 화풍으로 그린 그림은 꼭 마네의 그림 같아서 마음에 든다.
국민 회의, 를 그린 후 오른손을 못 쓰게 되서 왼손으로 그려 보려고 했으나 기존의 명성을 지키지 못해 노년에는 가난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한다.
모아 놓은 재산이 별로 없었나?
소비에트 건설에 반대하여 핀란드에서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고 한다.
쓸쓸한 만년이 슬프다.
고수머리에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다.
내가 좋아하는 톨스토이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화가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세월에 그의 진품을 보러 러시아로 날아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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