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앤 솔져 - [초특가판]
라이언 리틀 감독, 알렉산더 폴린스키 외 출연 / 인디고 엔터테인먼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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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골라준 DVD를 보면 항상 의외의 재미를 준다.
검증이 된 영화들이라 그런가?
이번 영화도 정말 재밌고 인상적이었다.
왜 이런 영화가 못 떴는지 모르겠다.
"폭력의 역사" 도 참 좋았는데 이번 영화도 정말 괜찮다.
무슨 내용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는 저 촌스러운 제목을 우리말로 좀 그럴 듯 하게 바꾼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볼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말이 너무 뜻밖이다.
주인공인 딕칸이 끝까지 살 줄 알았는데 하사와 함께 죽고 만다.
하사 죽을 때 제일 놀랬고 딕칸이 마지막에 남겠다고 할 때는 죽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의외의 인물인 굴드가 살아 남아서 뜻밖이었다.
더 의외는 얄미운 캐릭터인 윌리가 비록 총상은 입었지만 마지막까지 살았다는 것이다.
영국인 비행사로 등장하는데 정말 얄밉다.
순진한 켄드릭을 얄밉게 놀리는데 한 대 쥐어 박고 싶었다.
대체적으로 미국인은 좋게 나오고 나머지는 다 비호감으로 그려진다.
그들을 구해 주는 벨기에 여자는 정말 우아하다.
누군지 궁금하다.
하사는 처음에 얼핏 봐서 톰 행크스인줄 알았다.
갑자기 총 맞아 죽는데 정말 깜짝 놀랬다.
전쟁터의 죽음을 실감나게 그렸다.
그러고 보면 영웅이 등장하는 전쟁 영화는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빗발치는 총알 세례 속에서도 절대 죽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옛날부터 난 홍콩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쌍권총을 쏜다는 것 부터가 말이 되냔 말이지.

전쟁이라는 것, 언뜻 보면 장난감 병정 놀이 같기도 하다.
죽은 사람의 절절한 생은 버려 두고, 주인공이 신나게 총을 쏴서 나쁜 독일놈들을 물리치기만 하면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고 한 편의 스포츠 게임 같다.
그러나 죽은 이들의 개인적인 삶으로 들어가면 너무나 안타깝고 어처구니가 없고 대체 왜 이런 총싸움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전투적이고 이익을 위해 적극적인 동물이고 보면 전쟁이야 말로 인류 역사를 장식한 가장 일반적인 사건들이면서도, 그 끔찍함이 개인에게 주는 의의는 엄청나다.
편하게 앉아서 영화로 전쟁을 접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치는 항상 나쁜 놈으로 그려져서 독일에서는 어떤 식으로 2차 대전 영화를 만들지 궁금해진다.
일본과 독일의 전후 태도는 또 어떤지 궁금하다.
하여튼 나치가 없었다면 영화 만들 소재도 대폭 줄어들었을 것 같다.

의무병으로 나오는 굴드는 전쟁통에서도 허둥대지 않고 신속 정확하게 병사들을 처치한다.
잠을 못 자서 멘탈이 alert 하지 않은, 섬망 같은 증세에 시달리는 딕칸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역시 잠을 자야 한다.
굴드의 명쾌한 처방, 총을 뺏고 자꾸 말을 걸어라.
훌륭한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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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엽충 - 고생대 3억 년을 누빈 진화의 산증인 오파비니아 4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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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난 이 책의 절반도 이해를 못한 것 같다.
가볍게 생각하고 집어든 게 화근이었다.
어렵다.
생각보다 어렵다.
차라리 공룡에 대한 이야기였으면 좀 더 쉽게 이해를 했을 것 같다.
어쨌든 공룡은 많이 알려진 동물이고 무엇보다 큼직큼직 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이 놈의 삼엽충들은 어찌나 작은지 아무리 저자가 수십 만종의 삼엽충이 있다고 열을 내도 내 눈에는 다 똑같이 보인다.
그저 괴상한 갑각류로 밖에는 안 보인다는 얘기다.
감별이 안 된다.
시각적으로 식별이 안 되니 다 거기서 거긴 것 같고 흥미를 끌어 낼 수가 없다.
지구를 3억년이나 지배했다는 이 놀라운 생물들의 비밀이 아무리 많이 밝혀진다 해도 공룡처럼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아무리 귀여운 벌레가 있다고 해도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들에게 사랑받는 애완견의 위치는 차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삼엽충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너무 특이해 항상 궁금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주 간단한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세 개의 엽을 가진 벌레라는 뜻이다.
기막힌다.
이러니 잘 안 쓰는 한자어를 모으면 기묘한 이미지로 바뀌어 버린다.
세 개의 엽, 즉 머리부, 가슴부, 꼬리부가 그것이다.
머리, 가슴, 배로 나뉜다는 곤충과 똑같다.
곤충류와 삼엽충류는 똑같은 절지동물에 속한다.
인간은 어류와 기원이 같은 척추동물이다.
관절다리가 있는 절지동물,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
정말 간단한 분류다.
척추동물과 절지동물의 공통점은?
그런 게 있기는 할까?
놀랍게도 우리들은 눈을 가지고 있다!
삼엽충과 곤충과 인간의 공통 조상은 등뼈나 관절다리는 몰라도 적어도 눈은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이다.
빛을 인지하는 시각 기관의 발달이 절지동물에게도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니!
사실 이 부분은 아직 안 읽은 부분이다.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굴드의 단속평형설이 소개되서 반가웠다.
도킨스는 점진적 진화를 주장한다는데 적어도 고생물 쪽에서는 갑작스런 진화가 맞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잃어버린 고리는 원래부터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단속평형설에 따르면 중간 고리, 즉 새로운 종으로 변화하는 전이 단계를 지닌 생물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존재하고 곧 우세종의 확산이 이뤄지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을 시간이 없다.
고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진화를 뒷받침 하는 증거가 되버렸다.
바다 속 지층에 매장된 삼엽충의 화석은 점진적 진화 단계를 보여 주는 매우 귀중한 화석이라고 한다.
산소 대신 황결합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내는 특이한 황세균에 의해 부패가 방지되고 전이 과정이 화석에 기록됐다고 했는데 너무 세부적인 내용이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여튼 삼엽충의 집합복안도 그렇고 이 놈들이 진화의 신비를 밝히는데, 마치 유전자 지도 작성에 초파리가 엄청난 수훈을 세웠듯,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공룡이 나타나기 전에 멸종해 버린 가엾은 삼엽충은 말 그대로 고생대를 대표하는 표준화석이고 삼엽충의 특정 종이 고생대의 특정시기를 가리키는 이른바 화석시계로 사용할 수 있다.
신생대에서 공룡 화석이 나타나지 않듯, 혹은 티라노사우르스가 보이면 백악기 지층이듯, 삼엽충이 나타난 지층은 반드시 고생대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삼엽충 고생대, 공룡 중생대 하고 외웠던 것 같다.
무려 3억년을 지배했다는 데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살았다.
그 정도 생존했다면 멸종한 게 크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구의 환경 변화는 생물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그러나 낙관적으로 보자면 멸종을 통해 진화의 역사는 새로운 종을 창조해 내므로써 우리의 생태계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지구의 신비를 생각해 보면, 가이아 이론을 신봉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엽충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놀라울 정도다.
열 네 살 때 우연히 삼엽충 화석을 발견한 뒤 평생 직업으로 삼은 이 학자는, 책에서 정말 놀라운 애정을 내뿜는다.
책에 소개된 위대한 삼엽충 학자들의 열정을 보면, 누가 감히 과학자를 메마르고 냉정한 감성의 소유자라고 욕할 수 있겠는가?
끈기를 가진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다.
인문학과 과학의 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같다.
과학은 예술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과학 역시 예술이고 인문학이다.
통섭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다만 이들은 근면과 끈기가 남다를 뿐이다.
취미와 직업을 일치할 수 있는 이 행복한 남자의 책은, 그러나 좀 지루하긴 하다.
워낙 삼엽충이 덜 알려진 분야라 자세한 소개 부위가 지루한 점도 있지만 분명히 위트있는 문장인데도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가 아주 재밌지가 않았다.
어쨌든 자연사 박물관에서 삼엽충의 학명 붙이는 직업을 가진 이 남자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고생물을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야겠다.
빼먹지 말고 기록할 것은, 삼엽충이 가재나 게 같은 갑각류가 아니라 투구게와 비슷한 친척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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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여행 - 하루 10분 일주일 에코 도서관 1
자크 르 고프 지음, 안수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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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보고 깜짝 놀랬다.
생각보다 너무 작고 귀여웠기 때문.
학생과 선생님의 문답형식으로 이루어져 번역도 ~~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인가 싶어 빌릴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용은 알차다.
만화로 된 30분 시리즈 같은 것 보다 오히려 지식의 폭이 넓은 것 같다.
100페이지 밖에 안 되는 문고판의 가격이 7500원인 건 아무래도 좀 너무한 것 같지만 지하철에서 가볍게 읽기에 딱 좋은 교양 도서다.
"중세여행" 이라는 책을 재작년 겨울 쯤에 읽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사실 책이 두꺼워서 삽화가 예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했다.
이번 책은 얇아서 읽기도 편하고 내용도 체계적이고 간략하게 잘 요약해서 보기 편했다.
역시 저자의 내공이 만만찮은 듯.

비슷한 주제의 책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개념이 잡힐 때가 있는데 "중세" 라는 개념도 그렇다.
처음에는 대체 어느 시대를 말하는 건지도 헷갈리고 구체적으로 연상이 안 됐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서로마가 멸망한 5세기부터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15세기까지를 중세로 잡는다.
중세 천 년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참 긴 시간 동안 큰 변화 없이 한 시대가 이어져 온 것 같다.
용이 돌아다니고 성에는 왕자와 공주님이 파티를 하고, 기사와 귀부인이 사랑을 나누는 낭만적인 시대 같으면서도, 농노제와 포악한 영주가 있던 봉건주의 사회, 교회가 사회를 질식시키던 팍팍한 사회가 또 중세 아닌가.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 때부터 고려에 이르는 아주 긴 시간들이다.
유럽은 중세 때 비로소 현재의 국가들이 등장했다.
그러고 보면 야만인들이 세웠다는 여러 왕국들이 유럽의 조상이 됐다.

오늘날 이슬람 교도들의 예배 습관을 보면 확실히 놀라운 구석이 있다.
어떻게 하루 다섯 번이나 의무적으로 기도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중세에는 기독교 역시 하루에도 수 차례 기도를 올렸다.
유명한 밀레의 만종도 바로 저녁 종이 울리는 6시에 일손을 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그리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종교가 득세할수록 삶을 구속시키는 힘도 커진다.
이제 서구의 어떤 사회도 강제적인 예배를 규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문화의 상대성을 말한다 할지라도 이슬람 사회의 종교적인 강제성은 여전히 비판의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맡겨질 때 비로소 그 종교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시리즈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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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장의 명화로 읽는 그림의 역사
로이 볼턴 지음, 강주헌 옮김 / 도서출판성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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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전문가가 쓴 책이 아닌 것 같아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의외로 유익했다.
특히 150장의 그림이 아닌, 150명의 화가에 포커스를 맞췄다는 점이 유익했다.
의외로 이름이 알려진 화가들이 아주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왜냐면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화가들이 150명 안에 총망라 됐기 때문이다.
흐름도 잘 정리됐고 특히 평소에 잘 몰랐던 현대 화가들을 많이 알게 됐다.
물론 요즘의 그림들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풍부한 상상력 하나는 끝내준다.
그림이 더이상 대상을 재현하는 모방이 아님을 현대 화가들에게서 느낀다.
화가의 철학이 중요하고, 관념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작동한다.
이제 화가들은 기술자에서 예술의 창조자, 철학자로 변신한 것이다.
데이빗 호크니는, "명화의 비밀" 이라는 책의 저자로 만났다.
표지 사진을 보니 꽤 나이든 아저씨였는데 이 책에서 영국 팝아트의 신세대 기수로 소개되니,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대상을 모사한 대가들의 비밀을 파헤친 이 화가는, 뜻밖에도 동성애자였고 그가 그림 수영장 그림은 무척이나 화사하고 상큼하다.
같은 팝아트여도 앤디 워홀이나 뒤샹 같은 이들의 작품은 도무지 감동이라는 게 없는데 (특히 뒤샹은 정말 짜증난다) 호크니처럼 화사한 색을 사용한 그림들은 기분을 고양시키고 뭔가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준다.

 

그렇게도 헷갈리던 카날레토와 베로네세, 조르조네를 이제는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대체 누군지 항상 가물가물 했다.
아마 카날레토라는 화가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탈리아로의 그랜드 투어가 유행하던 18세기에 귀족들에게 이탈리아에 다녀왔다는 이른바 증명서 같은 의미로 베네치아 풍경화를 팔았던 이 화가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으로 여행객이 줄어들자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영국으로 이주한다.
영국에서 그린 다리 풍경도 무척 마음에 든다.
가로로 넓은 시원한 구조라 컴퓨터 배경 화면에 깔면 무척 예쁘다.
실제로 꼭 보고 싶은 그림 중 하나다.
나는 이런 대작들이 마음에 든다.
같은 풍경화여도 시골 풍경 보다는 이런 건축물이 등장하는 도시 풍경이 더 마음에 든다.
베로네세와 조르조네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가 아니라서 이들이 그린 그림이 선뜻 안 떠올랐는데 이번에 확실히 구분하게 됐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개인 소장 작품들을 많이 소개했다는 점이다.
특히 마티스의 "노랑의 조화" 라는 그림은 야수파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말 아름다운 색상이 돋보인다.
덜 알려진 그림들을 많이 보게 돼서 기쁘다.
유명 화가들도 가능하면 유명세를 덜 탄 작품들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런 훌륭한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굴까?
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셰 박사의 초상을 사간 일본의 사업가는 자기가 죽으면 관에 넣어달라고 했다는데 이런 훌륭한 그림이 사라진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확실히 고흐의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요즘에 카날레토처럼 도시 풍경을 그리면 달력 화가 취급을 받을 것이다.
현대 화가들의 상상력이나 표현 양식은 정말 놀랍다.
데생이나 드로잉 등이 여전히 화가의 기본 실력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여튼 독창적이고 기발하다나는 점에서 현대 화가들의 위대함이 있는 듯 하다.

 

도판도 훌륭하고 책 내용도 좋았다.
화가와 그림을 나눠서 설명한 점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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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이옥순.이희수 외 지음 / 삼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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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판형도 큼직큼직 한 게 마음에 들고, 표지도 무척 예쁘다.
책은 참 잘 만든 것 같다.
내용은, 중간 정도?
필자들의 수준 차이가 좀 난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요약한 부분은 무척 유용했다.
저자의 전문가다운 포스가 확 느껴지는 챕터였다.
반면에 아프리카를 맡은 필자는, 상당히 불성실한 느낌을 받았다.
동남아시아 쪽이나 라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쪽은 상당히 잘 썼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상대적으로 이슬람이나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쪽은 부실한 느낌이 든다.
단순히 오류를 수정하는데 그쳐서 해당 지역의 역사를 개괄한 다른 필자들과 많이 대조적이었다.
이래서 여러 명의 필자가 공동 저술한 책은 수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굉장히 유용했다.
몰랐던 부분들을 정말 많이 알게 됐고 잉카나 마야 제국 등이 하나의 실체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동남아시아의 역사도 이번 기회에 하나 하나 명확한 개념을 갖게 됐다.
두리 뭉실하게 동남아라고 넘어갔던 국가들이 이제 하나씩 볼 수 있게 됐다.
오세아니아 대륙에도 열 네 개의 국가가 있음을 인지했다.
겨우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파푸아 뉴기니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 유명한 하물 숭배도 결국은, 천년왕국 운동 같은 말세주의의 변형임을 깨닫고 나니, 인간 세상의 모든 사건과 현상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전반적인 감상은, 교과서 필자진의 자질과 전문성이 너무 형편없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어떤 책보다도 전문성과 정확한 식견을 제시해야 하는 게 바로 교과서 아닌가?
너무나 어이없는 단순 실수들을 보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올 정도다.
교과서를 쓰는 이들이 이렇게까지 수준이 낮아서야 공교육을 신뢰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특히 용어의 통일은 시급한 것 같다.
또 지도나 지명 표기에도 일괄성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물론 어떤 필자의 주장처럼 무조건 현지어 발음을 중시해 죄다 현지어로 바꾸자는 것에는 반대한다.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합의가 되면 가능하면 통일해서 그 원칙에 맞게 표기해 줘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영어식 표현이라는 이유로, 이미 통용되고 있는 단어를 죄다 어색한 발음으로 바꾸는 게 과연 외국어 표기 원칙에 얼마나 합당한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세세하게 따지기로 들면 한도 끝도 없겠다.

 

이슬람의 역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알렉산더를 대왕이라고 칭하는 것조차 부정하는 건 코메디 같다.
한 나라의 역사를 부각시키는 것이 왜 기존에 있던 위인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과 동일하게 보는지 모르겠다.
알렉산더를 대왕 대신 왕이라고 칭하고, 제국 대신 그저 마케도니아 국가에 불과하다고 낮춰 부르는 게 역사 인식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지나친 폄하이고 옥시덴탈리즘의 잘못된 표현 같다.
그렇다면 대체 기준은 뭐란 말인가?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자국의 역사는 죄다 의미가 있다고 보면, 결국 세계사 교과서 따위는 나오지도 못할 것이다.
소외된 지역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이미 정통성을 인정받은 실제적인 사건들 마저 깍아내리는 행위는 지나치다.
매우 지나치다.

 

좀 더 따지기로 하면, 이슬람 부분을 저술한 이희수씨의 의견에 나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이 분은, 마호메트의 초상을 싣는 것을 이슬람에 대한 굉장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데, 외교적인 마찰을 고려해서 어느 정도 문화나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어쨌든 이슬람이 종교에 대한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교조적인 입장이라는 건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성 차별 마저도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정해, 명예살인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므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건 옳지 않다.
아내를 네 명 취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이고 법에 의거해 매우 까다롭게 이뤄진다는 말은, 어찌됐든 일부일처제가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차별적인 건 사실 아닌가?
법에 의해 까다롭게 규정이 됐다고 해서, 아내를 네 명 취하는 것이 남녀평등이라는 현대의 정의 개념에 부합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비교적 덜 알려졌던 여러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를 개괄해 줬다는 점에서 유용한 책이었고 북디자인도 매우 훌륭하지만, 전반적인 통일성이 부족하고 필자들의 수준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아쉽다.
그러나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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