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도서관을 하나로 연결하는 상호대차서비스를 실시한다고 한다.
"책바다" 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서비스다.
도서관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일단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됐다는 점에서는 반갑다.
그런데 택배비 때문에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공공도서관에서 돈을 받고 책을 빌려 준다는 점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큰 것 같다.
사실 4500원이면 좀 비싼 가격이긴 하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주문할 때 지불하는 택배비가 2500원 안팎인 걸 생각하면, 대략 그 정도로 낮추면 저항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지만 나는 일단, 이런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시행된다는 점에서 환영이다.
시골에 있어 봐서 알지만, 시골은 도서관 사정이 열악하다.
없는 책도 많고 신간도 잘 안 들어온다.
도서관 역시 모든 책을 죄다 구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상호교환하면 공간이나 재정 면에서 절약이 되지 않을까?
기왕 택배 서비스를 한다면, 직접 이용자의 집으로 배달해 주면 어떨까?
택배비까지 부담하는데 도서관에 와서 찾아 가라고 하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
집에서 받아 보고 집에서 반납할 수 있는 시스템에 만들어진다면 비용을 낮추지 않더라도 심리적 저항감이 적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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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만의 표적 - 초특가판
샘 페킨파 감독, 더스틴 호프만 출연 / 영상프라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젊은 시절의 더스틴 호프만을 만난 건 좋은 영화의 보너스 같다.
같이 나오는 여배우는 매우 육감적이고 머리가 비어 보이는 전형적인 금발 미녀를 잘 소화해 낸다.
영국이라는 공간은 헐리우드와는 매우 달라 보인다.
똑같은 영어를 쓰는데 도 전혀 다른 공간 같다.
껄렁껄렁한 악당들로 나오는 다섯 명의 건달패들은 폭력적인 성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마치 비틀즈 멤버들을 보는 것처럼 아주 전형적인 영국 청년들로 보인다.
바지가 어찌나 짧은지, 거기다가 운동화까지 신고 머리는 장발인 마치 60년대 패션을 보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언제 제작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60년대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더스틴 호프만은 여리고 섬세한 미국인 수학자를 잘 표현해 낸다.
이 사람은 정말 연기의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잘 잡아낸다.
내가 남들에게 할 말 잘 못하고 사는 성격이라 그런지, 건달패들을 향해 항의하고 싶으나 못하는 그 머뭇거리는 장면이 어찌나 실감나던지, 완전히 이 배우에게 확 빠져 버렸다.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던 부분도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하는 장면이었다.
한국 영화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면 십중팔구는 팜므파탈처럼 도발적이고 난잡한 캐릭터일 것이다.
착하고 얌전하며 순진하기까지 한 주인공이 과연 담배를 피운다고 설정될 수 있을까?
어떤 나라나 문화권이든 터부시 되는 비합리적인 금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하여튼 남자들에게만 열려 있는 기호 선택의 자유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 내가 인상깊게 본 부분은 강간 장면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에이미의 도발적인 행동들이 못마땅 했다.
처녀 시절 만나던 껄렁패들을 차고 고치는데 고용한 것도 이상하지만, 노골적인 눈빛으로 불쾌한 시선을 던지는 이 양아치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윗몸을 벗어 제끼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더군다나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찾아온 옛 남자 친구가 거침 숨소리를 내면서 찾아 오자 내보내기는 커녕, 오히려 술까지 권하는 행동은, 아예 날 잡아 잡수라는 노골적인 행위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 같은 강간 행위가 용서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창녀 같은 여자라도 원하지 않은 성행위는 절대로 즐거움이 될 수 없다.
대체 남자들은 상대가 죽을 것처럼 반항을 하는데도 일단 삽입을 하면 쾌감을 얻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강간 당하는 에이미의 고통이 너무나 리얼하고 끔찍하게 잘 묘사되어 간담이 서늘했다.
폭력으로 그녀를 제압하는 제임스가 악마처럼 보였다.
한 술 더 떠 그 패거리 중 한 놈이 찾아와 연이어 강간하는 걸 보고, 육체적으로 약한 여자가 그동안 사회에서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힘과 폭력성만이 권력관계를 만드는 사회, 확실히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달하기 전 사회는 약자들에게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으리라.

끔찍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마을에는 절름발이 정신지체자가 있다.
어린 소녀가 그를 성적으로 유혹한다.
어른들에게 거부당하자 자기가 만만하게 유혹할 수 있는 헨리를 건든다.
어린 소녀가 정말 도발적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사람들에게 발각당할 위험에 처하자 당황한 나머지 헨리가 제니스를 목졸라 죽여 버린다.
절름발이가 착할 거라는 편견을 버리라는 니체의 명언이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또 헨리는 쫓기는 자신을 숨겨 준 에이미 마저 강간하려고 덤빈다.
지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고 욕정에 자신을 맡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건의 반전은 제니스를 죽인 헨리를, 마을 건달패들이 찾으러 더스틴 호프만의 집으로 몰려 오면서부터다.
운전하다가 헨리를 치게 된 호프만은, 총을 들고 위협하는 그들에게 절대로 헨리를 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소심하던 호프만이 분노한다.
부당한 폭력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 변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힘없는 사람도 진정으로 분노하면 무서워진다.
호프만은 그들의 폭력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고, 헨리를 결코 내주지 않는다.
그들이 집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모습은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하지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결국은 주인공이 이기는 식으로 다섯 명은 다 죽고 만다.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약간 작위적이긴 했지만, 부당한 폭력에 분노하는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정의가 승리하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정작 헨리가 제니스를 죽였다는 걸 알게 되면 주인공의 기분은 어떨까?
혹은 헨리가 자신의 아내를 강간했다면?
자기 딸을 강간한 후 죽였다면?
어디까지 정의가 혹은 균형감각이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DVD 소개서에 어찌나 형편없이 줄거리가 나왔던지 짜증났다.
제대로 영화를 보기나 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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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만드는 사람 - 근대 초 영국의 국토.역사.정체성, 역사도서관 006 역사도서관 6
설혜심 지음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 읽을 때는 너무 지루하고 지엽적인 내용이 많은 것 같아 대체 내가 영국 지도 역사를 왜 읽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내가 도서관에 신간 신청한 책이라 아까워서 억지로 읽기는 했지만 정말 대충 넘기는데 치중했다.
한 번 다 읽고 나니 남는 게 없는 것 같아 정리라도 할 생각으로 다시 앞에서부터 차분히 읽었더니, 이번에는 정말 눈에 쏙쏙 잘 들어 왔다.
왜 처음에 읽을 때는 재미가 없었을까?
아마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던 18,19세기 무렵이다.
헨리 8세에 대해 아는 거라곤, 기껏해야 천일의 앤 같은 스캔들이 전부였다.
그러니 16세기 절대주의가 확립되어 가던 시기의 내용이 낯설 수 밖에.
이번에 새롭게 느낀 것은, 역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책을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르기 때문에 즐기지도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무척 재밌고 영국의 근세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을 잡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마치 중세처럼 인식되는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이 시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전기 쯤 된다.
그러니까 상당히 가까운 시대였다는 얘기다.
요크 가와 랭커스터 가의 장미 전쟁이 끝난 후 헨리 7세가 즉위하면서 영국은 중세에서 빠져 나온다.
아들 헨리 8세가 즉위한 후 영국은 수장령을 통해 로마 카톨릭과 결별하는데, 이 때부터 로마로부터 단절된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정체성 확립이 요구된다.
저자는 지도와 역사책이 바로 이 정체성 확립의 상징 체계로 쓰였다는 점을 지목한다.

항해 시대를 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우, 그들의 탐험에 의해 발견된 곳을 기록한 지도는 외부 유출이 금지됐다.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영국의 드레이크는 세계 일주를 계획하면서 지도를 구입하기 위해 리스본까지 직접 날아갔다고 한다.
반면에 영국의 지도 출판은 상업 출판이 대세였다.
이 점이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들과 매우 다른 점인데, 영국은 지도를 통해 국민들이 브리튼 섬을 하나의 정치 단위로 인식하기를 원했다.
특히 예전에는 교구를 자연 경계로 인식했던 데 반해, 지도가 보급된 후부터는 지도에 표기된 대로 주를 정치적 경계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이고,  특히 중세 봉건 시대를 지난지 얼마 안 됐을 시기니, 평생 영주의 성 주변 영토를 떠나 본 일이 없는 농민들로서는, 국가나 국토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처럼 TV 나 신문이 있는 시절도 아니었으니 대체 브리튼 섬이란 어떤 곳인지, 내가 속한 곳은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도가 만들어지면서 영국인은 지도에 그려진 주를 일상 생활의 공간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색스턴의 지도는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독점계약을 맺어 집집마다 걸려 있었다고 한다.
비단 영국인만 그런 것은 아니고, 대육에서도 항해의 결과물로 얻게 되는 점점 확장된 지도들로 실내를 장식했다.
바티칸 궁이나 베로키오 궁에는 지도의 회랑이라는 곳이 생긴다.
영국은 지도의 상업 출판이 활발해 대륙이 지도자들만 지도를 소유했던 데 비해, 영국은 일반 국민들까지 일상적으로 지도를 접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색스턴이나 존 스피드가 만든 지도를 보면 마치 예술 작품처럼 매우 화려하다.
단순히 통치나 행정의 개념으로만 쓰인 게 아니라 지도 자체가 하나의 장식품이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대항해 시대 이후 외부로 팽창하는 유럽의 분위기나 힘을 느끼게 된다.
쇄국 정책을 고수하던 조선에서 지도가 일반화 되지 못한 것과 비교가 된다.
대원군에게 고문받아 죽었다는 김정호의 전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지도 제작에 대한 당시 인식은 어떤 것인지 정확한 배경을 알고 싶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지막의 여행기에 대한 분석이었다.
유럽의 여행 문화는 그랜드 투어라는 형태로 16세기부터 형성된 오래된 전통임을 확인했다.
이미 자국의 문화나 역사, 지리서 등을 편찬한 영국은 외국인이 방문했을 때 자신들을 소개할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륙인들은 영국인이 편찬한 역사지지서 등을 가지고 그들을 들여다 보게 된다.
일종의 기준이 존재했다고 해야 할까?
요즘 같으면 가이드 투어를 들고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이미 영국 하면 떠오르는 기본적인 이미지와 인상이 형성되어 있었고 영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여행기도 기존의 인상과 맞는지 틀린지를 논평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객관적이거나 독창적인 관점을 얻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우리의 배낭 여행이 흔히 그렇듯, 16세기 그랜드 투어도 역시 정해진 루트만 돌게 된다.
그러므로 한 나라를 방문한 후 쓰는 여행기가 과연 얼마나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외국은 이렇더라, 하고 쉽게 이야기하는데, 어쩌면 그 나라의 분위기기 국민의 기질 등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오히려 편견만 키운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 나오는 여행기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유학생 아내들의 여행기 수준의 책으로 미국이나 기타 유럽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비슷한 내용이 매 장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조금만 집중해서 읽으면 책의 주제를 금방 인식할 수 있다.
그만큼 쉽게 써지기도 했고 또 그 때문에 책의 수준이 아주 높은 것도 아니다.
대중들을 상대로 평이하게 영국의 절대주의 시절 지도 제작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한 것 같다.
워낙 한정된 시대의 한정된 공간에 국한된 지엽적인 얘기라 자칫, 내가 이 얘기를 꼭 알아야 하나, 이런 회의감이 들 수 있지만 어쨌든 한 권을 읽고 나니 영국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잡히는 기분이다.
더불어 지도에 대한 관심도 늘게 됐다.
지리학 교과서에서 보면 메르카르트 도법이 발명자 이름을 딴 사실이란 걸 알게 되는, 자잘한 기쁨들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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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백과 - 파피루스에서 인공위성까지
앨런 벌록 외 지음, 이민아 옮김 / 푸른역사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가 예뻐서 무척 기대했던 책인데 사실 좀 지루하다.
뭐랄까, 너무 많은 분량을 한 권의 책에 담으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축약과 생략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할까?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거대한 분량을 압축시켜 보여주는 통사가 좋았는데 이제 대략적인 감을 잡아서 그런지 요즘에는 이런 책들이 수박 겉핥기 같아 선뜻 손이 안 간다.
차라리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 처럼, 주제를 압축시켜 자세하게 서술한 책들이 마음에 든다.
또 요새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옛날처럼 집중력 있게 책 한 권을 한꺼번에 읽어 내질 못한다.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자꾸 복잡한 책보다는 쉽고 재밌는 책만 읽으려고 한다.
옛날 같으면 700페이지 정도는 하룻밤에 날새서 읽을 수 있었는데, 한 절반 읽다가 다음날로 미뤘다.
자꾸 지루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참...

다음에는 범위를 한정시킨 책으로 골라야겠다.

뒷쪽은 읽기 더 쉬웠다.
옛날에는 고대사나 중세사가 더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근현대사가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뒤에 나온 연표나 중요 인물 정리 등이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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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안인희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주문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얼른 집어 들었다.
책이 워낙 두꺼워 한 번에 다 읽지는 못했다.
힐러리의 <살아있는 역사> 라든가, 빌 클린턴의 <My Life> 같은 자서전도 만만치 않은 두께를 자랑한다.
그러고 보면 미국의 전기나 자서전은 대체적으로 분량을 길게 잡는 것 같다.
처음에는 소설책 읽듯 재밌게 읽어나갔다.
그렇지만 학문적인 얘기가 나오면서부터는 지루해짐을 참기 힘들었다.
저자가 한 인물에 대해 뼛속까지 파고 들겠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또 부록을 보면 언제 어디서 그 에피소드가 나왔는지 출처를 밝히고 있다.
대충 쓴 전기가 아니다.
칼 세이건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가 아니라서 마음에 든다.
이덕희가 쓴 <전혜린 이야기> 와는 느낌이 아주 다른 책이다.
이덕희의 책에서는, 일화 중심적이고 막연히 찬양하는 기분을 받았는데 이 책은 꽤 시니컬 하고 무엇보다 객관성을 잃지 않아서 좋다.
예비 조사를 꽤 성실하게 한 것 같다.

달에 생명체가 살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우주인들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귀환했을 때, 바다에 떨어뜨린 후 컨베이너 박스 같은 곳에 집어 넣어 철저하게 살균을 한 후 내보냈다는 이야기는 지금 생각하면 코메디 같다.
달의 미생물이나 박테리아 같은 게 지구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달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살균 처리를 얼마나 완벽하게 하느냐로 소련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달이든 화성이든 생명체가 없음이 명백해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웃기는 얘기인데, 우주의 생명체를 믿었던 세이건으로서는 이런 오염 문제에 누구보다 민감해 철저한 격리를 시행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우주에 쓰는 돈은 허공에 날릴 수도 있는 돈이지만, 그렇다고 그 돈을 반드시 사회복지 같은 유용한 데 쓴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보면, 세이건의 말마따나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미지의 신호를 찾는데 투자하는 것도 충분히 의의가 있을 것 같다.

책을 쓰고 TV에 나오면서 세이건은 유명인사가 됐지만, 반대로 학계에서는 세이건의 활동폭이 좁아졌다.
하루 종일 촬영을 하면서 논문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니까.
책에 나온 재밌는 표현대로, 노벨상을 받으면 정말로 은퇴할 수 있지만, 퓰리처상을 받으면 계속 책을 써내야 한다.
상금이 겨우 천 달러 불과하니 다소 놀랍다.
확실히 세이건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 같다.
TV 시리즈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그가 쓴 책을 보면 위트 있는 문장을 구사한다.
무엇보다 정통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 면이 마음에 든다.
학자로서 출중한 위치를 갖지는 못했더라도 대중의 과학화에 앞장설 과학저술가도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부인 린 마굴리스는 그녀 자신이 미토콘드리아 공생설을 발표할 정도로 똑똑하다 보니 언제나 주목받기를 원하는 세이건과 함께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부인 린다는 화가였는데 무척 정열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닉을 낳은 후 어처구니 없게도 자기 책의 출판업자 약혼자와 눈이 맞아 파탄난다.
어쨌든 단순히 바람 피우는 데 그치지 않고 애니와 결혼했다는 점에서는 세이건의 순수함이 엿보인다.
가정을 깨는 게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게 이중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애니와 세이건은 무척 죽이 잘 맞아서 환상적인 커플십을 자랑한다.
세이건은 명성과 부가 있었고 앤은 젊고 아름다웠다.
세이건의 아버지는 폐암으로 죽고 어머니는 췌장암으로 죽었으며 세이건은 골수이형성증으로 60대 초반의 아까운 나이로 사망한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MDS를 직접 보니, 다소 으스스했다.
여동생 캐리가 골수이식한 보람도 없이, 노벨 의학상을 받은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죽고 만다.
실험실에서 노출된 방사선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다른 연구원은 이상이 없었다.
젊은 시절에는 식도이형성증으로 거의 죽을 뻔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의사에 대한 불신도 상당했던지, 어떤 치료든 정신과 의사인 친구의 자문 없이는 절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약간의 편집증이 있었다고 한다.
하긴 외계생명체에 대한 그의 놀라운 탐구와 열정도 크게 보면 일종의 편집증 내지는 건전한 집착일 수 있다.

대중 시대다 보니 과학계도 스타를 원하는 것 같다.
명실상부 하기란 참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칼 세이건 정도면 훌륭한 스타라고 생각한다.
금성의 온실효과도 그가 처음 주장했다고 하고, 외계의 신호를 잡아 내는 SETI 프로그램도 주도했으니 나름 기여한 바도 크다.
무엇보다 과학저술가로서 그의 업적은 크게 평가받아야 할 것 같다.
신경학자들이 삐딱한 시선으로 본 <에덴의 용> 은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긴 하지만 다소 비약도 있지 않았나 싶었는데 역시 비전문가가 쓴 책이다 보니 학계에서 100%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대중을 위한 신경학자들의 분발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코스모스> 나 <창백하고 푸른 점> 혹은 <혜성> 은 아직 안 읽어 봤다.
천문학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에필로그> 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은 참 재밌게 읽었다.
회의주의야 말로 모든 과학자의 가장 기본적인 심성이 아닐까 싶다.

분량이 너무 많아 한 번에 읽기는 부담스럽지만 지하철에서 조금씩 즐겁게 읽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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