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중동 이야기 - 세계 3대 종교 발상지 중동의 역사를 읽는다 지도로 보는 시리즈
고야마 시게키 지음, 박소영 옮김 / 이다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은 퍽 끌리는데, 정통 학자가 쓴 책이 아니라 사실 좀 망설였다.
단순히 에피소드의 나열이나 확인되지도 않은 가십거리들로 책을 쓴거라면 차라리 안 읽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첫 부분이 의심스러웠다.
핑컬스타인이 쓴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를 먼저 읽고 내용에 상당히 공감해서인지, 모세 5경의 내용은 신화가 아닐까 이런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 터였다.
그래서 장황하게 아브라함과 모세의 이동 경로나 생몰 연대를 추정하는 저자가 내심 못미더웠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주장인지, 고고학적 발굴 근거는 가지고 있는지, 단순히 성경 하나만 가지고 지껄이는 소리는 아닌지 등등 꽤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책을 읽어갔다.
다행히 뒤로 갈수록 저자와 책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다.
아브라함과 모세를 일단 생존 인물로 규정하고 성경은 역사적 사실이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서인지, 앞서 읽은 책과 상당히 비교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근거를 밝히고 있고 무리한 설정은 하지 않아서 읽기가 수월했다.
비약이 심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우르에서 출발해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정착했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핑컬스타인은 나중에 삽입된 전설로 치부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진 문명화된 부족이었다는 자부심을 갖기 위해, 마치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 역시 우리 조상은, 인류 최초의 도시인 우르가 고향이었다는 식으로 기술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일단 성경에 나온 이야기는 사실로 믿고, 그 근거를 역사책에서 찾는다.
대충 기원전 1900년 경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부족을 이끌로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왔다고 추정한다.
또 모세 이야기는, 이집트 제 18왕조의 람세스 2세 때로 추정한다.
핑컬스타인은 아예 모세 이야기는 없었던 일로 치부한다.
핑컬스타인은 고고학자이고 발굴단의 단장이었던 만큼 워낙 자세하고 세세한 근거들을 거론하고 있어 솔직히 전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는 전개라 비교적 그의 설명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일종의 분위기나 느낌을 가지고 모세를 람세스 2세 치세의 사람이라고 단정지은 이 책은, 좀 단순해 보인다.

뒷쪽으로 갈수록 중동의 역사는 자세하게 펼쳐진다.
특히 자신의 여행 경험과 적절하게 섞어 가면서 기술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흥미를 유지할 수 있어 좋았다.
제노비아 여왕이 대체 언제 사람인가 했더니 <팔미라> 라는 나라의 여왕이었다고 한다.
성경에 나온 헤롯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다.
마카베오가 바로 헤롯 집안의 시조격이라고 한다.
중동 역사는 처음에는 하도 복잡해 전혀 감이 안 잡혔는데 반복해서 이 책 저 책을 읽으니까 이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인디애나 존스에 등장한 페트라는 나바테아의 수도였는데, 헤롯 왕가와 관련이 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여러 사슬들이 하나로 꿰어지는 기분이었다.
또 항상 이름만 알고 실체는 모호했던 리디아와 메디나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았다.
리디아는 현재 터키, 그러니까 아나톨리아에 세워졌던 고대 왕국이었고, 메디나는 현재 이란땅인 페르시아의 전신이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마치 주 나라와 은 나라처럼 메디나의 지방 영주 격이었다고 한다.
성경에도 자주 등장하는 키루스 2세가 메디나와 리디아를 물리치고 메소포타미아의 거대한 왕국을 건설한다.
그의 손자가 그리스 가서 대패한 다리우스 1세다.
책에는 페르시아의 관점에서 바라본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이 나온다.
영화로 만들어진 300의 전사들도 등장한다.
알렉산드로스에게 멸망한 후 이 지역은 셀레우코스 왕조에 의해 다스려지다가, 다음에 들어선 왕국이 파르티아이고, 그 다음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다.
파르티아도 당나라 역사 배울 때 얼핏 들었던 나라인데 왜 안식국으로 알려졌나 했더니, 파르티아 시조의 이름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라고 한다.
정말 새롭게 많이 안 사실들이다.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에서 이야기가 끝이 나 아쉬운 감이 있다.
특히 에필로그가 없어 서운하다.
2부를 써도 좋을 것 같다.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이 정도의 수준있는 책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 하다.
재밌게 읽었고 상당히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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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wen45 2008-05-1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다만 계속 메디나..라고 하시는데 사실은 메디아(구약에서는 메대라고 언급)입니다. 메디나는 메카와 더불어 이슬람의 성지로 아라비아 반도에 있습니다.(메카에서 박해받고 메디나로 도망간 것을 헤지라..라고 합니다) 메디아의 마지막 왕이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시조 키루스 대왕의 외조부라는 말이 있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 [할인행사]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더크 보가드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이 고풍스러워 관심이 생긴 영화였다.
더구나 토마스 만이 원작자라고 하니, 왠지 작품의 수준도 높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2시간이 넘는 다소 지루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영화였다.
일단 음악이 주제와 잘 어우러져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매력이 있고, 타지오로 나오는 스웨덴 꽃미남 비요른 안데르센은 가히 "조각같은" 이라는 수식어에 딱 어울리며, 소년을 사랑하는 작곡가 더크 보거드의 연기도 훌륭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미소년을 사랑하는 노거장의 고통스러운 심리 상태를 너무나 섬세하게 묘사한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하는 바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해변가에서 친구와 뒹구는 타지오를 바라보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은, 꼭 내가 죽는 것처럼 숨이 탁탁 막혀왔다.
타지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염색하고 화장까지 한 얼굴 위로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땀줄기, 뭔가 말하고 싶은데, 혹은 행동으로 보여 주고 싶은데 도덕적 장벽이 그를 막고 또 육체의 한계가, 의자에서 꼼짝도 못하게 만든다.

타지오, 이 사람을 보기 전에는 감히 꽃미남을 논하지 말라.
정말 너무나 예쁘고 너무나 아름답게 생겨서, 동성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넋을 놓고 쳐다 볼 것 같은 외모다.
원빈이나 장동건 같은 꽃미남들 보다 한 수 위다.
곧게 뻗은 다리와, 금발의 머리카락, 그리고 오똑 솟은 코, 새하얀 피부, 알고 보니 스웨덴 소년이었다.
역시 북구인들은 키가 크고 피부가 백옥같이 희다.
더구나 금발은 어찌나 탐스러운지...
인터넷에서 최근 사진을 찾았는데 실망스럽게도 좀 기괴한 인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장동건처럼 나이들어서 더 중후하고 우아한 외모를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저렇게 아름다운 소년이 왜 그런 식으로 나이를 먹는 건지 안타까울 뿐이다.

어머니로 나온 여배우도 굉장히 아름답다.
특히 그 모자가 정말 예술이다.
당시 베네치아 사람들은 모자 쓰는 게 예의에 맞다고 생각했는지, 아이고 어른이고 죄다 모자를 썼는데, 이 귀족 부인의 모자들은 정말 예술적이다.
베일로 얼굴을 가볍게 가리고 있는데다, 양산까지 썼으니 아무리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다들 피부가 새하얀 건지...
우리도 모자에 베일 문화가 있어야 깨끗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동성애에 대한 내 생각은,  단지 개인의 기호 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 자체가 없다.
영화 속의 구스타브는, 타지오를 단지 바라만 보는데서 기쁨을 느낀다.
물론 가까워질 수 있었다면 그를 안고 키스하고 애무했을 것이다.
롤리타와는 또 다른 의미의 소아성애증 같다.
롤리타는 그래도 이성애였지만, 그래서 험버트는 권력적인 위치였지만, 즉 어느 정도는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었지만, (다소 특이한 성적 취향?) 영화 속의 구스타브는 오히려 약자처럼 보인다.
미소년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 그동안 쌓아 온 명성과 지위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소년 역시 늙고 추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자괴감.
어린 소녀에 대하여 늙은 남자는 권력을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소년에 대한 같은 동성의 어른은 그 늙음 때문에 추하고 왜소하게 느껴진다.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이미 권력 관계가 형성된 반면 같은 남자끼리는 그런 관습적 관계가 훨씬 덜 통용되는 것 같다.
정말 동성애가 일반화 된다면, 즉 누구나 자신의 성적 기호를 제약없이 드러낼 수 있다면, 남녀 관계의 권력적 속성도 함께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간에 삽입된 예술의 절대성 논란은, 사실 영화만 가지고는 깊이 공감하기 힘들었다.
이 부분은 책을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영화에서는 타지오와 구스타브의 동성애적 시선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구스타브가 콜레라에 걸려 죽었다고 해설에 나오는데, 베니스에 올 때부터 이미 심장 발작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콜레라를 피해 베니스를 떠나라는 말을 타지오에게 하기 위해 베니스를 떠나지 못하던 구스타브가, 오히려 자신이 콜레라에 걸려 죽는다는 결말은 매우 비극적이고 아이러니 하다.
특히 그의 부모에게 어서 떠나라는 말을 하기 위해, 최대한 단정하고 허술하지 않게 보이려고 이발을 하고 화장까지 하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너무나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왠지 모르게 울컥 했다.
늙음을 가려 보려고 꾸미면 꾸밀수록 더욱 촌스럽고 어색해지는 비극성!
결국 구스타브는 하얗게 분칠한 얼굴 위로 검게 물들인 염색약이 지워지는, 코믹 배우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해변가에서 죽고 만다.
왜 그는 타지오에게 접근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사회적 금기 때문에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절대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엄청난 도덕적 제약이 내제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성격상의 문제도 있었을 것 같다.
행동하기 보다는 고민하는 햄릿 쪽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분위기는 드러내놓고 동성애를 즐기는 쪽이니, "타임 투 리브" 의 로맹이나 샤샤의 당당함이, 구스타브에 비하면 오히려 뻔뻔하게 느껴질 정도다.

책으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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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 서머싯 몸이 뽑은 최고의 작가 10명과 그 작품들
서머셋 모옴 지음, 권정관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나귀님이 소개한 책은 독특한 울림이 있다.
이 분의 블로그에서 맛깔나는 리뷰를 읽지 않았다면 거의 선택하지 않았을 책들이다.
나와 관심 분야가 다르면서도 (일단 나는 문학에 관심이 적은 편이다. 기껏해야 고전 정도에 의무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의외의 재미를 주는 흥미로운 책들을 가끔 발견하곤 한다.
전기가 그랬고, 이런 서평집 같은 게 또 그렇다.
알라딘의 서재를 운영하면서 이 분에게 가장 실제적인 도움을 받는 것 같다.

 
서머싯 몸의 소설은 읽어 보질 않아서 사실 유명한 작가, 그 이상의 감정은 없다.
의사라는 게 좀 특이하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만 신뢰할 만한 저자라는 점에서, 책에 대한 믿음이 갔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명성은, 확실히 명실상부한 구석이 강한 법이니까.
사실 내가 여기 소개된 책들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썩 몰입해서 읽은 건 아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처럼, 읽은 책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지고 눈과 글자가 함께 움직이는데, <모비 딕> 처럼 안 읽은 책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가독성이 떨어지고 자꾸 문장을 놓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주가 아니라 소설가가 主 이기 때문에, 비교적 흥미롭게 통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장의 명성에 주눅들지 않고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진진하다.
지승호의 인터뷰집은, 일견 재밌는 것 같으면서도,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지나치게 공손하고 지나치게 숭배시 하는 것 같아, 말하자면 인터뷰이보다 한참 아래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기 보다는, 뭐랄까, 학생처럼 얌전하게 인터뷰를 받아 적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레벨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반면 서머싯 몸의 이 책은, 거장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톨스토이 부분을 먼저 읽었는데, 상당히 비판적이라 처음에는 톨스토이가 백작이라 지배계급이나 상류층에 대한 날카로운 메스를 가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신성시 되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저렇게 막 깍아 내리지는 않겠지, 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왠걸, 여기 소개된 10명이 모든 작가들이 저자의 매서운 눈매를 피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태도야 말로, 서머싯 몸 자신이 유명한 작가이고 (즉 레벨이 되고) 무엇보다 아무리 위대한 위인인들, 털끝하나 부족한 점이 없다는 식의 어린이 전기 같을 수는 없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위인전을 읽다 보면 정말 짜증나는 것이, 너무나 성인처럼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히려 위인의 위대함이 식상한 삼류 소설처럼 전형적인 것으로 변해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런 함정을 잘 피해 나간다.

 

흥미롭게 본 부분은, 동성애에 관한 부분이었다.
에밀리 브론테나 허먼 멜빌을 동성애적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추론하는 건,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음모론 같기도 하지만 퍽 재밌는 추측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는 워낙에 동성애 자체를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엄청난 범죄로 여겨졌기 때문에 본인들은 자신의 기질을 인지할 수 조차 없었다고 본다.
그러고 보면 에밀리 브론테의 그 기묘한 소설 <폭풍의 언덕> 은 히드클리프나 캐서린 언쇼가 둘 다 작가의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언니인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너무나 편안하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읽은 반면, <폭풍의 언덕> 은 섬뜩하고 심지어 불쾌한 기분마저 들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읽었다.
확실히 <제인 에어>는 평범한 소설의 공식을 잘 따른 반면, <폭퐁의 언덕>은 문학사의 천재적인 작품으로 꼽힐 만큼 독창적이고 개성적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 10대 문학적 천재를 꼽는다면 과연 누가 들어갈까, 하는 점이다.
이 책에 소개된 10대 작가들은, 반드시 최고의 열 명만을 꼽은 것 같지는 않다.
찰스 디킨즈를 재능이 훌륭하지만, 상업적인 작가로 평한 걸 보면 말이다.
과연 진짜 위대한 10명의 천재를 꼽는다면 누가 들어갈까?
세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들어갈 것 같은데...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브론테도 10위 안에 들 수 있을까?
어쩌면 정말 독창적이고 기발한 혁명적인 사람만 꼽힐지도 모른다.
제임스 조이스처럼 말이다.

 

제일 위안이 됐던 부분은, 아무리 훌륭한 명작이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할 수는 없다고 본 점이다.
전혀 흥미를 잃지 않고, 100% 몰입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빠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위대한 고전일수록 중간에 재미가 없으면 내 독서 실력이 모자라나 보다, 낙심하기 일쑤인데 100% 완벽한 책은 없는 법이니, 어떤 부분에서는 맥락에 벗어난 일화들도 끼어 있기 마련이고 어쩔 수 없이 지루해지는 부분도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위로한다.
그러므로 가끔 건너뛰는 방법도 유용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진짜로 문장의 맥락을 놓쳐 줄거리에 치중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건너 뛰기에 면죄부를 줬다는 점에서 정말 마음이 놓인다.
아무리 재밌는 책을 읽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가끔 하품이 나오기도 한다.
또 진짜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일까? 하는 식으로 있을 법한 얘기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 할지라도, 100% 완벽한 사건을 구성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는 허구성을 이해해 주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폴 오스터의 소설들을 읽을 때도 그렇다.
그는 대단한 이야기꾼임이 분명하지만, 솔직히 우연의 연속이 하도 많아서 재밌게 읽다가도 어느 순간, 에이, 이건 말이 안 되지,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죽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창조해낸 세계에 몰입해 <공중곡예사>를 읽고 나서는, 정말 공중부양이 가능한지 인터넷을 뒤지기까지 했다.

 

확실히 서머싯 몸은, 그 자신이 소설가라서 그런지 창작적인 기법 면에서 작품들을 분석한다.
플로베르의 친구인 편집장이 고백한대로, 글을 쓰는데도 부류가 나눠지는데, 정말로 창의적인 재능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진짜 소설가인 플로베르 같은 사람과, 자기처럼 그 언저리에서 먹고 사는 주변부 인물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작가를 포기한 것도, 바로 그 창의적인 재능, 창조적인 예술가로서의 타고난 자질이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이었고, 주변부 인물로는 살기 싫다는 일종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개나 소나" 죄다 작가가 되는 분위기라, 몸이 지적한 바대로 글쓰기야 말로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직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출판업의 부흥이 좋으면서도 가끔 짜증나는 게, 블로그 같은 개인 일기장에나 끄적거려야 할 잡문들을 어쩌면 이렇게도 뻔뻔하게 수치심 하나 없이 버젓이 한 권의 책으로 펴내나, 하는 것이다.
책에 대한 내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역시 제일 좋았던 문구는, 소설은 교훈이나 기타 지식이나 이데올로기 전달에 있지 않고, 지적 쾌락에 그 목적이 있다는 부분이었다.
이야 말로 소설의 목적을 제대로 짚어내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정조가 문체반정을 주도했던 이유도, 소설은 한낱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아 교훈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소설의 진짜 목적과 기능이 여실히 드러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데올로기의 전파, 혹은 교훈이나 지식의 습득, 도덕적 교화, 이 따위는 부수적이고 우연히 얻게 되는 산물이다.
정말 중요한 목적은, 바로 지적 쾌감, 결국 재미가 아닌가 싶다.
3류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고전 역시 교양과 학식을 갖춘 지식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가장 큰 기능이 아니겠는가?
저자의 지적대로 교양은 그냥저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좀 성가시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비로소 획득되는 것이므로, 교양인들을 즐겁게 하려면 소설 역시 그냥 재미가 아니라 지적 쾌락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수준이 높아야 한다.

 

여기 소개된 책들을 전부 읽었더라면 훨씬 재밌는 독서가 됐을텐데, 그 점이 아쉽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유익하고 즐거웠다.
조지 오웰과는 또다른 매력의 위트있는 문장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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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8-04-14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꽤 관심가는데요? 서머셋모옴은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모두 훌륭하게 쓸줄아는 몇 안되는 위대한 작가인것 같아요. 대부분 위대한 작가들이 한쪽(장편 아님 단편)분야에만 두각을 나타내는데 비해서 말이죠..

marine 2008-04-14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우차우님이라면, 훨씬 더 재밌게 읽으실 것 같아요.
전 여기 나온 10편 중 절반 정도 밖에 안 읽어서 좀 듬성듬성 읽게 되더라구요.
서머싯 몸의 작품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어요.
 
몸과 질병 - 어떻게 하면 치료되는가? 최초의 원인은?, 뉴턴 하이라이트 Newton Highlight 14
일본 뉴턴프레스 엮음 / 아이뉴턴(뉴턴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에서 뉴턴 하이라이트 시리즈를 발견한 후 무척이나 읽고 싶었다.
태양계나 질병, 공룡 등등 주제들이 모두 흥미를 양껏 유발하는 것들이었다.
그 첫번째로 우리 몸과 질병에 관한 책을 선택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권씩 발간될 거라고 하는데 가능하면 매달 읽고 싶다.

교과서에 시험 공부 때문에 줄 긋고 외워서 보는 것과, 잡지책에서 그림과 설명을 곁들여 흥미롭게 읽는 것은,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차이가 있다.
전공한 사람으로서 볼 때 이번 호의 내용은, 치료 방법만 세세하게 안 나왔을 뿐 (kg 당 몇 mg 의 약을 써야 하는지 같은 것) 거의 교과서와 흡사한 수준으로 자세히 설명해 놨다.
그러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게끔 독자를 배려한다.
물론 내가 기본 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약한 쪽인 천문학이나 지질학 분야의 뉴턴 시리즈도 같이 읽어 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내용이란 점이 마음에 든다.
과학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동료 집단들의 엄격한 평가 시스템을 통과한 (즉 학회나 논문 발표를 통해 인정된 것들) 이야기만 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이 바로 올바른 의학적 내용인데, 다들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 믿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이 판을 치는 게 아닌가 싶다.

책에 나온 대로 운동 꾸준히 하고 기름기 적게 먹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열심히 살면 상당한 수의 질병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이번에 정확히 안 사실은, 뇌졸중이 대체 무슨 개념인가 하는 것이다.
뇌졸중은 한의학에서 흔히 얘기하는 단어라, 그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
그냥 막연히 중풍 같은 거, 즉 뇌경색을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알고 보니 뇌졸중은 뇌혈관 장해를 통칭하는 표현이었다.
그러므로 뇌출혈과 뇌경색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뇌경색은 다시 뇌색전과 뇌혈전으로 나뉘는데, 색전은 다른데서 온 덩어리가 혈관을 막는 것으로 주로 심장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다.
혈전은 혈관벽에 덩어리가 쌓여 혈관을 막는 걸 일컫는다.
뇌출혈은 뇌실질의 출혈과 지주막하 출혈로 나누는데, 지주막하 출혈은 예전에 "완전한 사랑" 에서 차인표가 갑자기 죽은 것처럼,  돌연사 확률이 높다.
보통 뇌경색이 오면 혈전 용해제 등을 쓰는데, 한의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 또 치료 성적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전체적으로 매우 유익한 내용이 많아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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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4-16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사놓고서 아직 제대로 본적이 없네요.
리뷰 읽고서 다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자세히 읽어봐야겠어요.

marine 2008-04-1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이 시리즈 전부 읽어 볼 생각이예요
 
국립중앙박물관 가이드북 - 역사적 숨결과 문화의 힘이 생동하는, Official Guide to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안그라픽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기대했던 것 보다는 별로였다.
판형이 가지고 다니기 쉬운 문고판이라서 그런지 사진 배치가 어지럽고 산만해 보인다.
역시 난 그림보다는 활자에 더 강한 것 같다.
유물보다는 그림이 훨씬 마음을 끈다.
그림은, 누가 특별히 설명해 주지 않아도 보는 순간 뭔가 가슴을 울컥 하게 만드는 감동이 있는데, 솔직히 유물을 보면서 감정의 변화를 느낀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 박물관 보다는 미술관을 선호하는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규모라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항상 외국 미술관이나 박물관만 부러워 했는데 이제 우리의 국력도 이런 문화 사업에 큰 투자를 할 만큼 성장한 것 같다.
그 부분은 내심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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