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쾌변독설
신해철.지승호 지음 / 부엔리브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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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을 무지하게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교 1,2 학년 때까지는 새 앨범이 나오면 줄서서 음반 가게 앞에서 기다릴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다.
뭔가 때려 부수고 소리를 질러대는 시원한 맛이 있으면서도 왠지 철학적으로 느껴지는 가사 등이 마음에 들었다.
신해철이 솔로로 활동할 때는 내가 어리기도 했고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넥스트를 결성하면서부터 팬이 됐던 것 같다.
특히 재수 시절에 들었던 FM 음악도시는, 일종의 청량 음료 같은 역할을 해서 내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정도였다.
앨범을 사면 속지의 땡스 투에 신해철 개인 후원회인 관제탑이 꼭 들어 있었는데, 나도 커서 돈 벌면 이 후원회에 가입해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음악은 내 관심 밖으로 멀어졌고 지금 발표하는 노래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넥스트 역시 옛날 같은 대중성을 획득하지 못한 걸 보면,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든다.
밴드의 수준이 높아진 건지, 아니면 내 수준이 하락한 건지...
책에서 신해철이 한 말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라젠카> 음반이 제일 좋았었던 것 같다.
만화 영화의 주제곡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웅장하고 박력있는 사운드가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유치하지 않은 가사가 좋았다.
비록 만화 영화는 매우 지루했고 막상 주제곡과 영상 자체는 크게 어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글 스토리>도 무척 좋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찍은 CD 재킷도 멋있었고, <백수가> 나 <70년대에 바침> 같은 노래를 좋아했다.
오히려 <날아라 병아리> 같은 건 요즘 들으면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지금은 신해철 노래에 별 관심이 없고, 그래서인지 그가 주장하는 말도 특별한 관심이 없다.
인터뷰어인 지승호는, <무릎팍 도사>에서 이승철이 신해철에게 했던 말이 꽤 기분나빴다고 하지만 난 그 말이야 말로 정곡을 찌르는 말 같다.
조용필이 위대한 것도 다른 무엇도 아닌 노래로 승부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신해철 역시 음악으로 이름을 날리는 게 가장 현명한 태도일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좀 불편할 때가 많았다.
차라리 그의 음악 철학, 혹은 창작 과정, 이런 거 가지고 얘기하면 더 흥미로웠을텐데 자꾸 사회적인 이슈를 거론하니, 왠지 옆길로 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수의 사회 참여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선택하면 될 문제니, 이러니 저러니 하고 싶지 않지만, 하여튼 나는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낼 만큼 대단한 사회 운동가인가 하는 것에는 의심이 간다.
뭐, 자기 블로그에나 올릴 만한 형편없는 글도 책으로 묶어내는 판이니 이 정도면 점잖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국가의 간섭이 싫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며 특히 소수자의 권리 옹호라는 점에서는 나와 생각이 비슷하긴 하다.
탈권위적이고 비가부장적인 태도, 이런 건 마음에 든다.
이를테면 간통죄 폐지라든가, 체벌 금지, 대마초 합법화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이런 이슈들은 젊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찬성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냥 개인의 견해를 표명하는 정도라면 음, 괜찮은 사람이네, 하고 넘어갈텐데, 자꾸 주변에서 사회 운동가로 대접하는 분위기라 영 불편하고 껄끄럽다.
명실상부 하지 못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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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 2010-04-18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관제탑 후원회 아님 그냥 팬클럽이었음 ..
 
누구나 알아야 할 서양 중세 101가지 이야기
클라우디아 메르틀 지음, 배진아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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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왜 그렇게 피곤했을까?
도서관에서 가서 책 펴놓고 앉았는데 한 두 시간은 잔 것 같다.
그럼 일어나서라도 집중해서 책을 보는 게 정상인데, 일어나서도 전혀 개운하지가 않고 계속 졸렸다.
책이 재미가 없어서 그런건가?
평소에 흥미를 가진 주제이고, 책도 얇고 그럭저럭 재밌을 것 같았는데, 왜 그렇게 집중을 못했나 모르겠다.
전날 발표 준비 때문에 새벽 4시 반에 잔 게 가장 큰 화근이었던 것 같다.

대충 살펴 본 바로는, 중세는 여전히 나에게 가까이 하고 싶지만 먼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니, 사실 우리 역사도 중세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조선 특히 임진왜란 후에나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그 이전 시대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러니 내가 서양의 중세에 대해 모호한 느낌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 위로해 본다.
그리고 아무리 유럽 역사라고 뭉뚱그려 본다고 한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복잡해진다.
마치 외국 사람이 한국의 고대 역사를 공부한다고 할 때 신라, 백제, 고구려에다가 옥저, 동예, 가야 등으로 깊이 들어가면 복잡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중세라고 하면 상대적으로 영국은 윌리엄의 정복 이전까지는 덜 알려진 편이니 제쳐 두고, 결국 프랑스와 독일이 갈라지기 전인 프랑크 제국의 역사가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이야기 프랑스사> 나 <이야기 독일사> 를 읽어 볼까 싶기도 한데, 잘 모르는 분야라 지루할까 선뜻 손이 안 간다.

이 책은 중세에 관한 의문점을 101 가지로 나눠서 문답식으로 설명한다.
<하루 10분 중세 여행> 은 분량이 작고 간단하게 설명되서 금방 이해가 됐는데, 이 책은 좀 깊이 들어가는 편이라 금방 흥미를 읽었다.
특히 프랑크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면서 오토 1세가 즉위하고 선제후가 나오고, 이런 식으로 독일 역사가 따로 전개될 때부터는 제대로 아는 내용이 하나도 없어서 꾸벅꾸벅 졸았다.
아무래도 사전 지식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대충 초벌 독서를 한 뒤 다시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아니면 좀 더 쉽게 만화로 그려진 <십자군 이야기>를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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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눈 - 영상프라자 고객감사 가격할인
프레드 진네만 감독, 게리 쿠퍼 외 출연 / 플레이스테이션 월드 코리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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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쿠퍼는 명성만 들었지 실제 영화에서 본 건 처음이다.
다른 출연진에 비해 키가 껑충하게 크고 체격에 좋긴 한데, 흑백 영화라 그런지 그렇게 썩 잘 생겼다는 느낌은 안 든다.
꽃미남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거칠고 야생적인 서부 사나이 이미지가 풍긴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순수함 혹은 어리숙함이 있다.
아카데미상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1952년 작품이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56년 전의 영화다.
해방이 막 됐을 때, 그 먼 옛날의 영화...
아빠가 아니었으면 제목만 듣었을 뿐, 직접 보기를 어려웠을 것이다.
이래서 또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그레이스 켈리 역시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막연하게 모나코의 왕비가 된 헐리우드 여배우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무척 고상하고 아름답다.
처음에는 누군지 모르고, 굉장히 날씬하고 가냘프게, 곱게 생겼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유명한 그레이스 켈리였다.
꼭꼭 동여맨 원피스 사이로 몸매가 훤히 들어나는데 요즘 같은 섹시미나 관능미보다는 청순함이 돋보이는 외모다.
아마 요즘 세상이었으면 가슴 확대 수술 정도는 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그레이스 켈리가 게리 쿠퍼를 구하기 위해 악당의 얼굴을 짖이기는 장면은 매우 빨리 진행되면서 순간적이라 퍽 놀랐다.
보통 인질로 잡힌 여성 때문에 그 동안 잘 싸운 용사가 어이없이 잡히고 마는데, 놀랍게도 이 연약한 아가씨는, 악당의 얼굴을 가격하고 남편으로 하여금 총을 쏘게 만든다.
시원한 결말이었다.

보안관으로써 마을을 지킨 용감한 케인은, 결혼식 날 자기가 잡은 살인범 프랭크 밀러가 풀려나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들 싸움을 피하기 위해 케인을 마을에서 떠나 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밀러가 마을에 난동을 피우고 자신을 끝까지 쫓아올 것을 아는 케인은, 악당을 피하지 않고 신혼여행을 포기하면서 지원자를 모집해 악당과 싸우려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케인만 마을에서 떠나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분위기로 봤을 때 밀러는, 케인이 없다고 해도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나쁜 놈이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의 어처구니 없는 배신은, 매우 이기적이고도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가엾은 케인,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에게 같이 싸울 것을 부탁하지만 모두 숨기에 바쁘고 그나마 지원했던 한 명도 자기 혼자라는 걸 안 뒤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결국 그의 아내만이 남편을 지키려 돌아온다.
퀘이커 교도인 아내는, 처음에는 굳이 싸움을 피하지 않는 남편이 싫어 기차를 타고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총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다시 마을로 돌아가 남편을 위해 싸운다.
가냘프지만 용감한 여성이다.

밀러 일당이 쓰러지자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안심을 하고 우르르 달려 나오지만, 케인은 이 비겁한 무리들 앞에 보안관 뱃지를 던져 버린 후 아내와 마차를 타고 떠난다.
정말 시원했다.
어리석고 이기적인 사람들!

흑백 영화지만 사건 전개가 빠르고 무리한 구성이 없어 재밌게 봤다.
또 19세기 미국의 시대상을 볼 수 있었던 점도 큰 소득이다.
총기 소유도 전통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느끼게 한 영화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어 마을을 세우고 돈을 모아 보안관을 고용했던 전통은, 아무리 총기 사고나 난무해도 쉽게 제한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독립적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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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 페름기 말을 뒤흔든 진화사 최대의 도전 오파비니아 3
마이클 J. 벤턴 지음, 류운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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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리뷰에서 보고 읽고 싶었던 책이다.
내가 책을 고르는 루트는,  일단 일간지의 북세션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신뢰 수준 높음) 두 번째는 인터넷 서점의 서평이다.
특히 나귀님처럼, 믿음이 가는 서재는 수시로 방문해 읽을 만한 책이 없나 살펴본다.
서점에서도 가끔 재밌는 책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횟수가 적은 편이다.
이 책은 TTB 리뷰를 통해 파도를 타다가, 우연히 이 책을 감수하신 분의 블로그에 들르게 되어 추천받았다.
<삼엽충>을 출판한 <뿌리와 이파리> 에서 나온 같은 시리즈물인데, <삼엽충> 보다 덜 자세하고 읽기도 쉬운 편이다.
<삼엽충>은 세부적인 기술이 너무 많아 결국 절반 정도 밖에 이해를 못한 채 덮고 말았는데, 이 책은 분량이 많으면서도 비교적 쉽게 넘어가는 편이다.
지구과학적인 부분, 그러니까 지질 연대나 화산 활동 같은 게 나오면 좀 헤매긴 했다.
확실히 나는 이런 부분에서는 약하다.

흔히 멸종 하면 6500만년 전의 공룡만 생각한다.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고, 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생물이다 보니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 보니 마치 멸종은 그 때 딱 한 번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번 <삼엽충>에서도 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보다 작은 규모의 멸종은 꾸준히 있어 왔다.
특히 바다의 지배자인 삼엽충은 일거에 쓸어버린 고생대 페름기 말의 대멸종은,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큰 참변으로 기록된다.
전체 종의 90%가 사라졌다고 하니, 얼마나 큰 재앙이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흔히 KT 사건이라고 부르는 백악기 말의 멸종은, 공룡을 포함한 50%의 종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제 공룡 멸종의 원인은, 운석 충돌로 확정이 된 모양이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렸을 때 열심히 읽은 공룡 관련 서적에서, 멸종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운석 충돌 같은 허무맹랑한 가설도 있다고 소개했었다.
그 때는 지구의 기온 하강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온갖 억측을 잠재우고 우주에서 날아온 지름 10km 의 거대 운석이 지구를 강타한 후 150km에 이르는 거대 운석구를 만들면서 뿜어내는 먼지 구름이 햇빛을 차단하고 대기의 성분을 변화시켰다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다소 허무하기도 하다.
과연 공룡은 왜 멸종했을까, 하는 미스테리 같은 분위기 때문에 더욱 공룡이 신비로워 보였는데 말이다.

아직까지 페름기의 대멸종 원인은 결론이 안 난 것 같다.
KT 사건처럼 외계에서 온 소행성 충돌 같은 이론도 있지만, 저자는 시베리아 트랩을 주원인으로 거론한다.
간단히 말해 거대한 화산 폭발이락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베수비오 화산처럼 한 번 폭발하는 게 아니라, 80만년의 시간을 두고 계속 폭발하면서 겹겹히 층이 쌓여 트랩을 이룬다.
이 때 먼지나 재, 이산화황 등이 대기로 유출되면서 햇빛을 막아 기온이 하강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산화탄소 등이 온실 효과를 일으켜 당시 지구의 온도는 무려 6도나 상승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찜통 같은 더위였을 것이다.
끔찍한 건기가 지속되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말라 죽어 간다.
또 산성비가 내려 토양을 쓸어 내려 식물들이 사라진다.
이 때 씻겨진 토양들은 바다를 오염시켜 무산소화를 촉진한다.
그러니 심해에서 산소 없이도 버티는 일부 완족류들만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네거티브 피드백을 통해 양을 조절하는데, 바다에서 메탄 가스가 분출하면서 오히려 포지티브 피드백을 형성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끝도 없이 증가한다.
생체 조절 시스템의 파괴라고 할까?
기온이 상승하면 극지방의 얼음이 녹게 되는데, 단순히 해수면만 올리는 게 아니라 메탄을 함유하고 있는 기체수화물을 방출하게 되는 게 이것을 메탄 트림이라고 표현했다.

페름기 말 대멸종은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생명계에 치명타를 입힌 경우라고 설명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을 인용해 재밌게 설명한다.
객실 안에서 승객이 살해당했는데 열 두 번 칼에 찔린다.
열차에 탄 승객은 모두 열 두 명, 그들은 서로 옆 사람의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알고 보니, 이들은 공모하여 지난 날 유아를 살해했던 그 승객을, 각자 한 번씩 열 두 번 찔러서 죽였던 것이다.
재밌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페름기의 대멸종은 KT 멸종처럼 운석 충돌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라, 여러 번의 강타를 맞아 쓰러졌던 것이다.
이 때 또 문제가 됐던 것은, 당시 대륙이 하나로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시베리아 트랩보다 더 큰 폭발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대륙 사이의 바다들이 그 충격을 흡수했다.
그러나 페름기 말의 초대륙은, 거대한 현무암질 용암 분출의 쿠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전체 종의 90% 멸종이라는 끔찍한 대참변을 낳게 된다.

지금은 이런 대변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저자가 지구과학을 배울 때만 해도, 점진주의가 대세였다고 한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동일 과정설 때문이다.
이 법칙은 지구과학의 기본 전제라고 매우 중요하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과거에도 현재와 같은 법칙에 의해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의 차이다.
오랫동안 동일과정설을 주장해 온 라이엘은, 현상 뿐 아니라 속도마저 현재와 같다는 점진주의를 지지한다.
반면 비교해부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퀴비에는 (이 사람도 수업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변화 속도의 급격함을 주장해 대멸종설을 지지한다.
간단히 말해 점진주의는, 공룡이 500만년에 걸쳐 서서히 죽어갔다는 것이고 이 논리를 더 확장하자면, 탄생, 성장, 노쇠의 곡선대로 때가 됐으니까 사라졌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유전학과 진화론의 발달에 힘입어 이런 논의는 그저 사변적인 가설에 불과함이 밝혀졌다.
사실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다가 정점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논리는, 관찰을 무시한 책상머리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과 과학의 차이가 이런데서 발생한다.
공룡이 후기로 갈수록 종의 다양성이나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일거에 멸종한 것은 대변혁 설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때가 되서 자연스럽게 퇴화한 것이 아니라, 운석 충돌이라는 기가 막힌 참변 때문에 잔혹하게 바뀐 자연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한 것이다.
비슷한 예가 또 있다.
페름기의 대멸종을 이기고 살아남은 유일한 파충류가 리스트로사우르스인데, 한 방송 매체에서 이것을 진화상의 유리한 점으로 설명했으나, 즉 가장 우수한 형질이라 생존했다고 설명했으나, 사실 그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연히 바뀐 생태계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분량에 비해 가독성도 뛰어난 편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인류가 존재하기 이전의 엄청난 사건들이 보다 많은 조명을 받아 대중들에게 알려짐으로써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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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세계문학의 천재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해럴드 블룸 지음, 손태수 옮김 / 들녘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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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을 때면, 내 지적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어려운 책은, 배경지식이 부족할 경우, 재미가 없다.
수준있는 작가가 쓴 글이 재미 없다면, 일단 자신의 독서 능력을 의심해 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교양인의 책읽기" 도 결국 못 읽고 덮고 말았는데, 이번 책 역시 1/3 정도 읽다가 포기했다.
서머셋 몸이 쓴 천재론은, 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반면, 해럴드 블룸의 천재론은, 흥미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일단 분량이 850페이지에 달하는지라 먼저 기가 질리고 몸이 겨우 열 명의 천재를 언급한 반면, 블룸은 그 열 배인 100명의 천재를 거론하는지라, 양에서 우선 힘이 빠진다.
더군다나, 몸이 작품보다는 작가 개인의 일화에 치중했던 것에 비해, 블룸은 작품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니 그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 않은 나 같은 어설픈 독자로서는, 블룸이 감탄하는 문장들이 대체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지적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몸의 위트있는 해학적 문체에 비해, 블룸은 너무나 고답적이고 현학적이다!
역시 소설가와 비평가의 차이가 존재하나 보다.
비평가들이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글을 보면, 과연 작가가 저렇게까지 도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사건을 구성하고 인물을 창조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데, 블룸 역시 이 의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하여튼 비평은 소설 읽기보다 훨씬 힘들다.

얼마 전에 읽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평집도 500 페이지가 넘는데 거기 소개된 책은 하나도 읽은 게 없어 결국은 덮고 말았는데, 역시 이 책도 중간에 포기했다.
그렇지만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
일단 내가 모르는 천재적인 작가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위대한 작가들의 그 "위대함" 과 "불멸성" 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특히 무함마드나 바울을 문학적 천재의 입장에서 분석한 글은 무척 흥미로웠다.
구약의 저자들을, 야훼를 창조해낸 작가로 본 점도 독특했다.
코란은 접한 적이 없어 모르겠으나, 확실히 성경은, 특히 구약은, 문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신약보다 구약이 훨씬 재밌다.

지루하게 읽은 제인 오스틴은, 워낙 많은 이들이 천재로 거론하는 바람에, 내가 <오만과 편견>을 오독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래서 이 책이야 말로 꼭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그녀가 언니 카산드라에게 보냈던 재치있고 재기발랄한,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이는 편지들은, 이 책에서도 소개됐다.
꽤나 매력있는 작가임이 틀림없다.
내가 좋아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도 역시 100인의 천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입센이나 몰리에르, 베게트 같은 희곡작가들은 이름만 들어봤지 작품은 이름조차 생소하다.
흔히 알고 있는 "인형의 집" 이나 "고도를 기다리며" 는 다뤄지지도 않는다.
저자는 세익스피어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류 역사 최고의 천재로 꼽는다.
서구 사회에서 세익스피어의 위치가 얼마나 확고부동하고 위대한지 새삼 확인했다.
그의 명성에 비교할 작가라면 세르반테스나 단테 정도일 것이다.
좀 더 고대로 가자면 베르길리우스와 호메로스 정도?
하여튼 세익스피어에 대한 숭배심은, 저자가 거의 모든 장에서 확고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세익스피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그의 유명 작품들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겐지 이야기>의 저자인 무라사키가 꼽혔다.
다시 한 번 일본의 국력과 위상을 확인하는 기분이다.
괴테가 독일어 문화권 외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이다.
프로이드가 단지 "수필을 잘 쓰는" 의사로만 평가된다는 건 이제는 상식이 됐지만, 설마 괴테의 문학성이 의심되다니, 미국인들이 미친 게 아닐까?
영어권에서는 이제 그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다는데, 미국 최고의 비평가가 하는 소리니 과장일 리는 없고 하여튼 놀라운 일이다.
얼마 전에 영화로 본 <베니스에서의 죽음> 을 쓴 토마스 만이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얘기는 여기서 처음 알았다.
근래에 자주 언급되는 저자 같아, 꼭 한 번 읽어 볼 생각이다.

블룸이 좀 더 맛깔나는 글솜씨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수준이 거기까지 안 되는 게 더 큰 원인이겠지만, 하여튼 현학적인 문체가 너무 많아 쉽게 몰입이 안 된다.
여기 소개된 책을 좀 더 많이 읽어 본 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한가지 덧붙일 것은, 어떤 강연에서 문학의 본질은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하자, 어떤 청중이 그렇다면 스티븐 킹이나 조앤 롤링도 위대한 작가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겠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블룸이 개탄한 것처럼 나 역시 한숨이 푹푹 나왔다.
만약 상대적인 기준을 적용해 자기에게 의미가 있으면 훌륭한 작가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세상 어떤 것도 평가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고전이란 혹은 천재란 시대성을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이다.
과연 해리 포터 같은 판타지류가 어느 시대까지 그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인지, 내 수명이 100년이 채 못 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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