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4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분량에 비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읽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내용이 평이하고 저자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써서 그런지 전문적인 내용은 적은 편이다.
오히려 자신이 어떻게 거듭난 근본주의자에서 성경은 인간의 책이다, 라는 개방주의자로 돌아서게 됐는지를 밝히는 개인적인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나는 그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
사실 뒷쪽에 나오는 구체적인 예는, 내가 보기에는 그저 소소한 오류들처럼 보인다.
그가 대학에서,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기술한 점에 대해 장황한 논문을 썼는데 (즉 성경의 저자를 보호하기 위해 온갖 사변적인 논리를 갖다 붙였는데) 교수가 한 마디로 논평했다고 한다.
"마가가 실수했겠지"
이 문장이 굉장히 통쾌했다.
그렇다.
성경의 저자들도 쓰는 과정에서 "실수" 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주제의식을 흐리게 하는 거대한 실수가 아니라 할지라도, 문장의 표기를 잘못한다거나 인명, 장소 등을 착각한다거나, 앞뒤 문맥 연결이 다소 모호하다거나, 등등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왜?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여지껏 교회에서는 성경무오류설이니, 축자영감설이니 하면서 인간의 손으로 썼으나 성령이 강림하여 하나님이 불러 주는대로 썼으니, 일획일점도 틀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그 말도 안 되고 어처구니 없는, 강팍하기 그지 없는 독선적인 주장을 들으면 정말 기독교에 대한 애정이 확 식는 기분이다.
경전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종교인이라면 당연한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단 1%의 사소한 오류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경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100% 완벽한, 단 하나의 실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책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수없이 발견되는 실수들에 대해 모두 나름의 변명을 갖다 붙이다 보면, 논리가 자꾸 꼬여 나중에는 말도 안 되는 어거지 주장을 하게 되니까.

이를테면 이른바 민족주의자라는 사람들도 그렇다.
삼국유사에 기원전 2333년 전에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고 써 있다면서 조선 건국이 그 때 이뤄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국가의 건립은 청동기 시대에나 가능한 일인데 한반도의 청동기는 기원전 10세기 무렵이다.
정말로 고조선 건국이 기원전 2000여년 전에 이뤄졌다면,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처럼 고고학적인 발굴 증거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그래야 한민족도 당당하게 세계 4대 문명 안에 들어 가지 않겠는가?
대체 이덕일이라는 사람은, 어떤 고고학적 증거를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얘기가 살짝 옆으로 샜는데, 하여튼 성경도 일획일점이 틀림이 없는 그런 책이 아니라, 이미 저술될 때부터 오류가 존재했고 각자 자기만의 해석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지켜 봤으며, 전승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소소한 오류들을 겪어 왔음이 분명하다.
필경사들의 필사 작업 과정의 오류는 차치하고서라도, 성경이 쓰여질 당시는 이미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1,2 백년이 흘렀을 시기다.
대체 누가 기억에 의존한 일을 단 하나의 오류도 없이 눈에서 본 듯이 기록하겠는가?
같은 사건도 보는 사람에 따라 미묘한 해석의 차이를 낳을 수 있는데 말이다.

여기 언급된 내용들은 따지고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사소한 불일치와 오류들이다.
나는 성경 전체의 불완전성과 허술함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 최고의 경전이며 예수의 부활과 구원을 증명하는 기독교인들의 지침서와 같다.
그러나 어떤 사소한 오류도 없다는 식의 성경무오류설은 곤란하다.
이런 태도는 너무나 위험하다.
세상이 7일만에 창조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도, 결국은 이런 축자영감설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단 하나의 글자도 틀림이 없다는 식의 주장은, 성경을 매우 비과학적이고 매우 고루한 경전으로 축소시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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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내맘대로 좋은책 - 책의날 특집 이벤트

개인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좀 더 날카롭고 개인적인 질문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질문이 좀 아쉽네요.

 

1.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깔끔하게 한 줄이면 더 좋고, 길게는 두 줄 정도까지요.

어떻게 소개를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나를 대표하는 게 뭘까요? 직장에 대한 강박증이 있고 아직 결혼 안 한, 책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30대 여성이라고 해야 하나?

2. 일 년에 몇 권 정도 책을 읽으세요?

시간 많았던 해는 300권까지도 읽었는데 작년에는 겨우 100권을 넘었네요.
대략 100권에서 200권 사이로 읽는 것 같아요.

3.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어떤 의미에서건) 가장 충격적이었던 책은?

글쎄... 워낙 남독을 해서 그런지 특정 책이 기억에 깊이 남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좀 더 그럴 듯한 책을 들고 싶긴 한데, 지금 당장 생각나는 책으로는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을 꼽겠어요.  책만 읽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책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이 작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건 또 아니고... 그 책에 나오는 그 캐릭터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지 책 곳곳에 감상을 피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계관을 바뀌게 한 책이었죠. 인간의 본능에 대해 눈떴다고 할까? 그래서 신앙심과는 더욱 멀어지고...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도 빼 놓을 수 없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4. 읽는 도중 3번 이상 웃었다, 라는 책이 있습니까?

<말리와 나> 개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무척 재밌게 읽었던 책이예요.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도 읽으면서 엄청나게 웃었던 책입니다. 오웰의 그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문체, 아 너무 마음에 들어요. 얼마나 낄낄거렸던지...

 

 

 

 

5.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또는 닮고 싶은 책 속 인물은 누구인가요?

닮았다고 생각되는 캐릭터는 없는데, <달의 궁전> 에 나오는 MS 포크라든지, 에핑, 솔로몬 이 3부자는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인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혹은 <환상의 책>에 나오는 헥터 만도 그렇구요. 이들은 모두 세상의 부귀영화 보다 책 안에서 더 큰 기쁨을 느껴요. 그들의 외골수적인 삶까지 부러운 건 아닌데, 모든 걸 다 잃고서도 책을 읽음으로써 완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답니다. 혹은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도 닮고 싶어요. 남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그러고 보니 <제인 에어>에 나오는 제인도 부럽네요. 양심을 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포기하고 도망가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답니다.



 

 

 

6. 이 작가의 책만큼은 챙겨 읽는다, 누구일까요?

사실 저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적은 편입니다.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항상 좋은 작품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전작주의도 흥미없습니다. 한 작가의 책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수준일 수는 없고, 창작력의 피크를 이루는 짧은 시간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폴 오스터의 책이나 알랭 드 보통, 혹은 이주헌 등등도 다작을 하다 보면 식상해지고 별로인 책들이 꼭 끼여 있더라구요. 다만 역사학자인 임용한이 쓴 책은 꼭 봅니다. 이 분의 에세이는 정말 재밌는데 워낙 책을 안 내시는 분이라 아쉽더라구요. 이덕일처럼 책 낸다면 얼마나 신날까 생각해 봅니다. 이 분 책은 전부 추천합니다.


 

 

 

7. 남에게 선물로 줬던 책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책은 선물 잘 안 합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책을 남이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요. 그래서 빌려주지도 않아요.

8. 소장하고 있는 책 중 가장 고가의 책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책, 바로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 입니다.  정가가 10만원 정도 했던 것 같아요. 한 번도 제대로 못 봤던 것 같아요. 지도만 나열해 놔서 지루하고 흥미가 떨어지더라구요. 괜한 소유욕이 발동해서 산 책입니다.

 

 

 

9. '책은 나의 oo(이)다'. oo는?

책은 나의 <> 이고, 책은 나의 <휴식> 이며, 책은 나의 <기쁨> 입니다.  책은 나의 <위로>이며, 책은 나의 영원한 <연인> 입니다. 책에 대한 내 사랑과 무한한 감사는 아무리 글로 표현하려고 해도 부족하네요. 저는 가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력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답니다. 눈이 멀게 된다면, 보르헤스처럼 낭독자를 옆에 둔다고 해도 나는 너무나 절망스러워 죽을 것 같아요.  천국은 거대한 도서관이다, 라는 말을 믿어요.


10. 이번 달에 읽은 책 중 '내맘대로 좋은 책'은 어떤 것일까요?

다른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 서머셋 몸이 쓴 작가론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입니다.
몸의 소설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위트 있는 문장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 같아요.
누구라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작가론이 펼쳐집니다.
강추할 만한 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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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든남자 2008-05-0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부분 공감하고 갑니다. 특히 1,6,7,9번..
저도 집에있는 책은 안빌려줍니다. 차라리 같은책을 돈주고 사주지..
아주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원체 깔끔하게 대하는지라..
남들이 접거나 줄그어 놓거나 그러면 잠이 잘 안오더군요.. -_-;;

개인주의 2009-11-2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 취향이 네 취향은 아니니까.
이런 생각에 책 선물을 주저하게 되더군요.
제일 놀랐던 건 나름 친하다 여겼던 친구녀석에게 내가 읽으려고 산 잡지를
다 읽지도 않고 그날 선물로 주고 왔는데
다음날 "야 그걸로 벌레 잡아서 책이 엎어져 있다. 이따 버려야 되.."
이 소리를 들었던 때입니다.
잡지니까 하찮은건지 안맞는건 바로 그렇게 폐기처분 통고를 해야 직성이 풀렸던건지
알 수 없지만 그 경험 후로 조심스러워졌어요.

marine 2009-11-22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속상하셨겠어요. 전 빌려준 책 받을 때 잃어버려 놓고서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고 따지는 사람 볼 때 진짜 황당해요. 그 후로 절대 안 빌려 줍니다. 차라리 한 권 사 주죠.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 The Great Couples 1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우연히 알라딘에서 보고 제목이 재밌을 것 같아 읽은 책이다.
두껍긴 하지만 서술이 평이해 쉽게 금방 읽힌다.
버스나 기차 안에서 가볍게 일독해 볼만한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마네다.
특히 베리트 모리조를 그린 <발코니>라는 작품이 마음에 든다.
마네의 그 강렬한 평면성이 마음을 끈다.
반면 모네는 별 관심이 없는 화가였다.
말년에 유명해진 수련 그림에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인상파를 말을 만들어낸 <인상, 해돋이> 같은 그림도 왠지 학생들 스케치처럼 서툴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그가 그린 풍경화를 보고 완전히 반해 버렸다.
색체의 변화를 대기의 기온차에 따라 기묘하게 잡아낸 그 솜씨에 확 빠졌다.
그의 아내 카미유가 일본옷을 입고 있는 초상화도 그렇고, 양귀비 꽃밭에서 양산을 들고 서 있는 그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굉장히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화가 같다.
터너의 그림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세련됐다는 느낌을 준다.
마네도 그렇고 모네도 그렇고 두 사람의 화법은 다르지만 꼼꼼하게 드로잉을 하고 섬세하게 색칠을 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한 번에 쓱 보고 문지른 듯한 그럼에도 대상의 느낌과 특징을 정교하게 포착해내는 솜씨가 놀랍다.
벨라스케스가 왜 인상파의 선구자인지, 알 것 같다.
그의 유명한 대작 <시녀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정교한 데생 없이 붓질 몇 번으로 쓱쓱 문지른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멀리서 보면 또렷한 형태로 각인되는 것이다.
확실히 이들은 현대 화가들이다.

마네는 특별히 흥미있는 화가라 그런지 그의 일생을 다룬 앞부분은 무척 재밌었다.
할아버지가 시장이었고 마을의 존경을 받아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부르주아로, 고위 공무원이었고 나중에 판사가 됐다고 한다.
마네에게 엄청난 땅을 물려줘, 당시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마네는 특별히 그림을 생계 수단으로 삼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런 부유함이 특별히 더 내 관심을 끈다.
먹고 사는데 애를 써야 하는 르느와르 같은 화가 보다는 마네처럼 유복한 환경에서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예술가가 더 부럽다.
그런데도 고흐의 그 끔찍한 가난과 소외된 삶 역시 강렬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나는 마네의 유복한 환경이 내심 부러워 하는 것 같다.

하여튼 이 화가는 처음에는 해군이 되려고 했다.
성적이 나빠서 법대에 못 들어가고 대신 해군이 되려고 했는데 몇 번 낙방해 결국 하고 싶은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집안 환경 때문이었는지 마네는 국전에 입선하려고 애썼고 드가로부터 출세에 눈이 멀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 점도 왠지 인간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마네는 최고의 인상파 화가로 역사에 길이 남았으니, 그 자신은 죽기 전에 이런 영광을 누렸는지 모르겠다.
수잔과의 결혼은 순탄치 않았다.
사진을 보면 그냥 평범한, 오히려 펑퍼짐한 아줌마 스타일인데 두 살 연상의 이 가난한 피아노 교사의 어떤 점에 반했는지 모르겠다.
모네의 아내 카미유를 그린 그림을 보면 무척 매력적이던데, 수잔을 그린 초상화는 영 느낌이 안 살고 그래서인지 그녀가 모델로 나오는 그림은 유명한 게 없다고 한다.
하여튼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된 마네는, 집안에 얘기하지 못해 아들은 사생아로 무려 스무 살 때까지 엄마와 둘이 살게 된다.
보통 이런 사연이면 마네가 유복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은 버려져야 맞는데, 뜻밖에도 마네는 아버지가 죽은 후 유산을 물려 받은 후 수잔과 정식 결혼한다.
진정한 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동생 외젠은 화가 베리트 모리조와 결혼해 종종 마네의 모델이 되어준다.
저자의 지적대로 베리트는 마네가 원하는 표정을 잘 알고 있는 훌륭한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등장하는 그림은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마네는 기존의 명화들을 열심히 모사하고 대가들로부터 좋은 점을 취해 자신의 것으로 혼합시키려고 애쓴다.
전통을 존중하는 이런 태도가 참 마음에 든다.
드로잉을 무시하는 그림, 이를테면 발로 그려도 이보다는 잘 그리겠다는 그런 그림은 아무리 예술이라 우겨도 도저히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정확한 대셍, 드로잉은 화가의 생명이지 않겠는가?
비록 똑같이 모사할 필요는 없지만, 즉 화가는 기술자가 아니지만 기본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상당히 전통주의자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들라쿠르아의 과도한 색체의 향연인 낭만주의 그림보다는, 앵그르의 정밀한 그림이 훨씬 마음에 든다.
그 초상화를 보면 정말 숨이 막힐 것 같다.
뽀얀 피부와 특히 파란색 스커트의 질감과 색감은 손으로 만져지는 기분이 든다.

마네의 사진은 이 책에서 처음 봤는데 실망스럽게도 썩 잘 생긴 얼굴은 아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서 그런가?
배가 불룩 나온 모네보다는 낫지만, 하여튼 반할 만한 인상은 아닌 것 같다.
바지유가 퍽 잘 생겼다.
아직 끝까지 읽지 않았지만 저자가 무리없이 글을 풀어 나가고 마네와 모네의 그림을 비교한 부분은 좀 작위적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보고 있다.
북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김원일이 쓴 <피카소>도 퍽 재밌게 읽었는데, 미술 부분도 번역서 말고 한국 사람이 쓴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역시 번역서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해 주지 못한다고 할까?

뒷부분은 51세로 일찍 사망한 마네 얘기 대신, 86세까지 장수한 모네의 얘기로 가득찼다.
대략 40대가 넘어가면서 모네의 그림은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모네는 상당히 낭비벽이 심했던 것 같은데, 좋게 말하면 우아하고 여유있는 삶을 즐긴 스타일 같다.
그는 언제나 생활비가 부족해 허덕이면서도 월세가 비싼 좋은 집에 살고, 하녀, 정원사 등을 고용했다.
말년을 보낸 지베르니의 수련 연못은 다섯 명의 정원사가 가꾸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마네에게 자주 돈을 빌렸고 1차 대전 때 전사한 바지유에게서도 돈을 자주 빌렸다.
언제나 외로웠던 고흐와는 달리 인간관계가 무척 좋았던 것 같다.
고흐와 고갱처럼 개성 강한 예술가가 만나면 불화하기 마련인데, 모네는 어려운 살림 때문에 바지유 등과 같은 동료 화가들과 화실도 같이 쓰면서 그림 작업을 한다.
역시 오래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매독에 걸려 50대 초반에 사망한 마네나, 권총자살한 고흐, 전사한 바지유 등과는 다르게 마네는 무려 86세까지 살면서 온 세계의 인정을 받아 말년에는 전 세계 뮤지엄에서 그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확실히 모네는 풍경화의 대가다.
마네가 인물화에 강했던 것에 비해, 모네의 강점은 여러 겹 덧칠한 풍경화에서 정말 이것이 자연에서 받은 순간의 인상을 포착한 그림이구나, 감탄사가 나온다.
내가 마네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인물의 표정을 잘 캐치하면서 강렬하게 명암 대비를 주기 때문인데 모네의 풍경화도 너무나 아름답다.
모네의 삶 중에서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 아내 카미유와 알리사다.
카미유는 겨우 서른 두 살에 아들 둘을 낳고 사망하고, 모네는 가난 때문에 후원자인 오슈드 부부와 한 집에 산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오슈드 부인인 알리사와 사랑에 빠져 아내 카미유가 살아 있을 때 알리사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는다.
알리사는 남편이 죽은 후 모네의 정식 아내가 된다.
모네는 알리사의 세 딸들을 정성으로 돌보는데, 둘째딸 블랑슈가 카미유의 아들 장과 결혼한다.
또 막내딸 수잔이 미국인 화가 버틀러와 결혼하는데, 그녀가 일찍 죽자 다시 큰 딸 마르트와 재혼한다.
우리 눈으로 보면 좀 이해하기 힘든 결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피는 안 섞였다 하더라도 의붓남매의 결혼이나, 처제와의 재혼 등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데 확실히 18세기 말의 프랑스는 21세기 한국보다 더 개방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동거도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다.

도판이 훌륭하고 책에 언급된 그림들을 가능하면 전부 싣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다 보니 책값이 높게 책정된 것 같다.
마네와 모네의 덜 알려진 그림들을 많이 알게 되서 기쁘다.
역시 이런 훌륭한 그림을 언제쯤 한가롭게 실제로 관람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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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중간사 우리시대의 신학총서 9
마틴 헹엘 지음, 임진수 옮김 / 살림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래 전부터 꼭 읽고 싶던 책인데 드디어 읽게 됐다.
내 수준에는 다소 난해한 책을 읽으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종합자료실로 내려가 책을 고른 게 바로 이거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 <스페인사>와 바로 이 <신구약 중간사> 였는데, 나 말고도 스페인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스페인사>는 벌써 여러 차례 대출 중이었다.
<신구약 중간사> 는 생각보다 얇았다.
겨우 220여 페이지 정도?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들만 보다가 이렇게 얇은 책을 보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독일의 신학 교수가 쓴 책이라고 하는데, 번역자는 틀림없이 기독교 신자다.
저자가 기독교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이렇게 역사적으로 까발려진 책을 읽고 쓰면서, 혹은 공감하면서 읽는다면, 과연 기독교를 신앙으로 믿을 수 있냐는 거다.
나는 회의적이다.
번역자는 이 책을 역사적으로 매우 잘 된 책이라고, 번역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던데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하는지 모순적으로 들린다.
어쩌면 성경 무오류설을 주장하는 사람이야 말로 겉과 속이 일치하는 진짜 신앙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주제는 헬라화 된 유대교의 역사다.
기원전 333년 경, 알렉산더가 유럽과 아시아를 제패하면서 팔레스타인은 그리스 군주들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셀레커스 왕조가 로마에게 멸망한 바로 그 시점까지, 약 150년의 시기를 다룬다.
그러고 보면 역사책에서도 알렉산더의 세계 제패로부터 로마의 등장까지 그 시기는 그저 헬레니즘이 퍼졌다, 이런 식으로 간략하게 끝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셀레우커스 왕조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생소하고, 그저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의 아내인 클레오파르라 정도로만, 일종의 가십거리로써 기억하는 것 같다.
비록 팔레스타인에 국한된 서술이었지만 헬레니즘이 고대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의 얘기를 엿들을 수 있어 무척 흥미진지한 시간이었다.

몇 가지 특이할 점을 살펴보면,

1. 세계사 교과서에 보면, 그리스인은 헬라인이 아닌 사람을 야만인, 즉 barbarian 으로 취급했다고 나온다.
헬라인이란 그리스어를 쓰면서 그리스 땅에 살고 양친이 모두 그리스인인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모든 외국인은 죄다 야만인이 된다.
오늘날의 그리스를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조그마한 도시국가 주민들이 뭐가 그렇게 대단했을까 좀 의아했었는데, 알렉산더의 세계 제패 이후 비로소 헬라인들은 최고의 문화 민족으로 등장했다는 걸 알고 보니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다.
마치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최고의 문화 민족이고 그 외는 죄다 야만인 취급을 했던 것처럼, 헬레니즘 세계에서도 그리스어는 교양있는 사람의 신분 증명서와 다름없었다.
재밌는 것은, 조선이 중화문명을 받아들여 한자와 율령 체제 등을 내면화 시킨 후 중국인들로부터 문화 민족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처럼, 그리스 세계에서도 그리스어와 학식, 교육 체계 등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야만인과 구별하여 헬라화된 아시아인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로마인이 있다.
로마가 그리스 세계를 멸망시키기 전, 후발 주자였던 로마인은 헬레니즘의 일원이 되기 위해 애썼다.
책에 인용된 키케로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는 그리스인, 로마인, 야만인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을 헬라화된 이방인을 자신들의 세계에 받아들이는 걸 인정했기 때문에 로마인들도 그리스 공동체의 운동 경기, 즉 올림픽에 참가했다고 한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그리스인들이 체육 수업을 매우 중요시 해서, 김나지움이라는 체육 학교가 운영됐다고 한다.
김나지움이라면 독일의 중학교를 일컫는 말이 아닌가?
언젠가 읽은 책에서도, 근대 영국 교육의 목표 중 하나가 건강한 신체로, 크리켓이나 럭비 같은 경기가 수업에서 매우 중요시 됐다고 했다.
확실히 동양과는 다른 전통이다.

2. 보통 알렉산더 대왕은 헬레니즘의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인종 간의 결혼을 장려했다고 나온다.
자신도 페르시아 공주와 결혼했고 장교들에게도 현지인과의 결혼을 종용했다.
그런데 의외로 혼합결혼은 널리 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스인은 이방인을 야만인이라고 칭할 만큼 경멸했기 때문에 섣불리 자신들의 세계에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았다.
마치 미국 내의 흑백 결혼이 드문 것처럼 말이다.
정작 알렉산더 자신도 페르시아를 떠날 때는, 혼인무효화를 선언했다고 한다.

3.  헬레니즘 세계에서 이방인들은 그리스화 되기 위해 노력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치하에서 그리스어를 배우고 그리스식 교육을 받은 이집트인은 중간 관리로써 행세했고 마찬가지로 유대의 귀족이나 제사장 계급도 그리스화 되기 위해 애썼다.
특히 대제사장 예레제키아는 이집트로의 이주를 종용하기조차 했다고 한다.
마치 조선의 선비들이 중국 문명을 내면화 시키기 위해 애썼던 것처럼 헬레니즘 세계에서도 일등 시민이 되려면 당연히 그리스식 교육을 받아야 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교는 율법과 유일신 사상을 지키면서 색깔을 분명하게 해 나갔다.
헬라화의 물결에 휩싸이지 않고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유대교는 헬레니즘 세계로 뻗어가면서도 좀 더 독자적인 종교로 발전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발전했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 이런 분위기는, 바울의 기독선교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헬레니즘 세계라는 큰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세계 종교화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예수의 등장 이전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집단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할례를 받지 않으나 야훼신을 섬겼다고 한다.
이들이 나중에 기독교인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재밌는 건 당시 사람들이 야훼를 제우스나 디오니소스, 심지어 바알 신과도 동일시 했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유일신이라는 점만 다를 뿐 결국 경배와 신앙의 대상은 형태의 변형만 있을 뿐 똑같지 않은가?
이집트나 그리스의 다신주의가 세를 잃어가면서 유일신 개념이 퍼져갔고 그렇다면 최고신은 모습만 다를 뿐 결국 야훼나 주피터나 같은 인물 아니겠냐는 의견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결국 알라도 야훼 신앙의 변형일 것이고...
요즘에 가뜩이나 신앙심이 사라져가서 그런지 몰라도, 옛날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겼던 이런 얘기들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여튼 어떤 종교가 됐든 배타적인 선민의식이나 고립성은 마음에 안 든다.
아무리 이슬람교가 평화의 종교 어쩌고 해도 이슬람을 국교로 삼아 그 외의 종교는 일체 허용하지 않는 경직된 태도는 인정하기 힘들다.

4.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언제 생겼을까?
알렉산더의 팔레스타인 정복 이후 유대인들은 노예로 이집트와 그리스 지역으로 팔려 나갔다.
두 나라 모두 자국의 자유인은 노예로 부리지 않는 법이 있었기 때문에 육체 노동을 할 외국인 노예가 필요했다.
또 유대인들은 용병으로도 활약했다.
유대인 하면 막연히 상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유대인은 상업보다는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헬레니즘 세계로 퍼져나간 용병, 노예, 수공업자, 상인 등과 같은 다양한 계층의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의 효시를 이루었고 그들이 헬라화 되면서 유대교는 더욱 발전한다.
이들은 더이상 현세에서 제국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종말이 다가와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거라는 묵시 문학이 유행했고 종말의 예표는 곳곳에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다니엘서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네 개의 금속으로 된 괴물은, 헬라 군주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한다.
교회에서 이 구절을 들고 로마니, 미국이니 하는데 제발 당시의 시대상을 좀 이해해고 갖다 붙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목사가 이 부분을 설교하면서 미국을 들먹거리는데 짜증나 죽는 줄 알았다.
대체 저런 얼토당토 않은 설교에 귀기울이고 앉아 있는 학식 있는 신자들은 또 뭐란 말인가?

5. 70인역의 번역서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바로 헬레니즘 세계였다.
그리스식 교육을 받은 유대인이 당시의 국제어였던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문학적인 번역이라기 보다는, 수공업자들처럼 무미건조한 번역이었다고 한다.
안디옥이 이방인 기독선교의 중심지가 됐던 이유도,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가 바로 안디옥이었기 때문이다.
바울도 그리스식 교육을 받은 유대인이었다.

6.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와 관련을 맺기 위해 갖가지 전설들을 만들었는데 심지어 헤라클레스와 아브라함의 손녀가 결혼했다는 전설도 있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로마도 트로이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라고 하니, 로마인들도 자신의 기원을 그리스에서 찾고 싶어 했다.
마치 조선인들이 한반도의 기원을, 은나라에서 건너 온 기자에게서 찾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늘을 떠받드는 아틀라스가 곧 에녹이었다는 전설도 있고, 스파르타와 유대인은 친척간이라는 주장도 유행했다고 한다.
지난 번에 읽은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에서도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건너왔다는 것도 실은, 자신들의 민족이 문명의 시작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비롯됐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설정한 부분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우리들의 시조는 이렇게 오래됐다, 역사가 유구하다 하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리 청동기 시대가 기원전 10세기 무렵 시작됐다고 가르쳐 줘도, 끝까지 단군조선은 2333년 전에 세워졌다고 우기는 민족주의자들도 아마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인간의 보편성은 세상의 모든 역사와 지역에서 눈에 띄기 때문에, 스티븐 핑커의 말대로 인간은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은 족속이라 인종차별이라는 말 자체가 우스울 뿐이다.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재밌게 읽은 책이다.
예수 탄생 이전의 유대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이라면 읽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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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8-05-0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동이야기>라는 책이 알라딘에서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주실 수 있는지요?

marine 2008-05-0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도로 보는 중동 이야기> 입니다.

마립간 2008-05-0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리뷰를 보긴 했는데, 혹시 다른 책이 있나해서요.
 
인문학의 즐거움 - 21세기 인문학의 재창조를 위하여
커트 스펠마이어 지음, 정연희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아무래도 머리가 나빠졌나 보다.
집중력도 너무 떨어지고...
한 때 하루 세 권의 책을 읽을 때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하루 한 권도 어렵다.
집중하면 한 번에 쭉 읽을 수 있는데, 그 놈의 집중이 안 된다.
조금만 지루하고 어려워도 곧 싫증이 나고 잠이 쏟아진다.
요즘에는 일도 편해지고 당직도 안 서는데 말이다.
책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걸까?
뭘 하든 끈기를 가지고 오래 해야 빛이 나는데 난 너무 쉽게 질리는 것 같다.
이 책은 어제 쉬는 날 읽었어야 하는데 집에서 잠만 실컷 자느라 못 읽고 말았다.
확실히 책은 TV에 비해 에너지 소모가 많은 취미 생활이다.
머리가 맑고 기분이 상당히 고양되야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살짝 어렵기도 하고 지루한 부분도 있으나 좋은 책이다.
옮겨 적고 싶은 말이 많아서 상당 부분 베꼈다.
<인문학의 즐거움> 이라는 고풍스러운 제목도 마음에 든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문사철을 말하는데, 역사는 좋아하지만 문학이나, 특히 철학은 즐기질 않는다.
사변적이고 지루한 논쟁들 보다 실제적인 사건에 더 구미가 당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에 대한 애정은 언제나 가지고 있다.
저자의 주장 가운데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우리가 인문학을 하는 이유가 단지 고전을 외우고 지식을 뽐내기 위한 스노비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감을 가지고 남과 다른 나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하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자신감의 고양, 눈치보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것, 그러고 보면 인문학이란 사유의 방식이고 올바른 행동의 결정을 위한 방법을 안내해 주는 길 같다.

제일 좋았던 구절은, 이런 사유 방식이 바로 인문학이기 때문에, 인문학 그 자체만으로 전체성과 완전성을 가진다는 부분이었다.
즉 우리가 중세인보다 더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결코 그들보다 우월하다거나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다거나 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부자가 되면 행복할 것 같아도, 혹은 과거보다 질병과 기아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인간이 갖는 근본적인 고민과 괴로움은 비슷하게 존재하는 것이고 보면, 행복이라는 것의 총 질량은 늘 일정한 것 같다.
사유의 방식으로서의 인문학, 좀 더 열심히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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