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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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 만큼 유익한 책이다.
흥미롭게 잘 읽고 있다.
제목이 <밖에서 본 한국사>이길래, 재미교포나 외국인이 공저한 그런 책인 줄 알았다.
한국사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겠다는 취지로 이해되는데,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민족주의 사관에 지나치게 경도된 일부 재야 사학자가 아니고서야 (이를테면 이덕일 같은) 대부분 저자와 같은 견해일 거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생각해 볼만한 꺼리를 정리해 보자면,

1.  청동기 시대는 최대한 멀리 잡을 경우 기원전 15세기까지 소급해 올라갈 수 있다.
보통 10세기에서 15세기 사이로 본다고 한다.
고조선의 표지유물이라고 알려진 비파형 청동기는 비단 고조선인들만 사용한 게 아니라 동이족이 썼다고 보는데, 이 때 동이족은 한민족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예맥, 숙신, 한민족, 왜, 동호 등을 한꺼번에 부르는 명칭이다.
단순히 특정 유물이 출토됐다고 해서 그 유물이 나오는 지역은 전부 고조선의 땅이다, 이건 너무 빈약한 추론이다.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는 책에서, 이덕일은  고조선의 역사가 2000년을 넘을 뿐더러, 왜 청동기 시대에만 국가가 성립할 수 있냐고 주장했다.
또 한4군은 중국 대륙에 있었던 것으로 한 무제가 한반도에 설치한 게 아니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한4군의 실제적인 존재를 인정하며, 다만 한의 지배가 시간이 흐를수록 유야무야 되면서 자치국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추론한다.
나는 이덕일 씨의 주장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가 본격적으로 반론을 전개해 줬으면 좋겠다.
저자는 한4군이 설립된 덕분에 중국의 우수한 철기 문화가 한반도에 이식됐다고 본다.
이덕일씨는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철기 문화가 자생했다고 주장한다.

2. 저자는 기자 조선에 대하여, 우리 조상이 이렇게 오래 됐다는 걸 보여 주려고 은나라 사람 기자를 억지로 갖다 붙인 걸로 추론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기자조선은 기원전 11세기에 세워졌는데, 저자의 추론으로는 위만조선이 세워질 무렵인 기원전 4세기에 갖다 붙인 전설로 여긴다.
<중동 이야기>에서 본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굳이 문명의 발상지인 우르 땅에서 가나안으로 건너 왔다고 기록한 것처럼 말이다.
민족의 기원 부풀리기 일종이다.
어떤 게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일단은 최소한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실체가 인정되는 국가는 한 무제에게 멸망한 위만조선이다.
이들은 중국 시황제 무렵에 동란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한 집단이 지배권을 갖고 나라를 건국했다.
여러 민족이 섞이면서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을 만들어 가는 것이니, 이런 문제에 민감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신라의 통일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신라의 역할을 상당히 축소시켜 표현하는데, 물론 신라가 삼국 통일의 의지가 전혀 없었고 당을 끌어 들임으로써 만주 땅을 포기하게 만들었다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감상적인 자세가 아니라, 신라의 통일을 계기로 한민족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어떤 책에서는 고구려라는 나라 자체가 한민족만의 나라는 아니므로 고구려사는 중국과 한국, 또 그 외 소수민족이 다수 관여하는 변경사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3. 아마 제일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 같은데 저자는 임나일본부설의 실체를 인정하는 쪽이다.
이희진의 역사책에서는, 사서에 왜라고 표시된 것은 곧 가야를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저자도 가야와 왜를 연합체 정도로 이해하면서 처음에는 가야가 주도권을 쥐다가 나중에는 왜로 주도권이 넘어갔으리라 추정한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5만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구원하러 올 정도로 왜는 한반도 내에서 확실한 군사 활동을 벌였다고 생각한다.
이희진은, 왜의 수가 엄청나서가 아니라, 한 번에 겁을 줘서 누르기 위해, 즉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 불필요한 대군을 과시용으로 동원헸다고 해석했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의 저자 의견이 합리적인 것 같다.
일제 시대처럼 한반도를 집어 삼키기 위해 부풀려진 주장이 아닌 이상,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저자에 따르면 중국이 동이족이라고 일컫을 때는 왜까지 포함했다고 하니, 신라의 통일을 계기로 왜는 가야나 백제로부터 떨어져 나가 독립적인 길을 갔다고 본다.

4. 몽골 침략기에 대해서도 저자는 긍정적인 면을 인정한다.
중국 문명에 통합되어 과학 기술이나 문화 발전을 이루었고 그 성과가 조선 초 세종대왕 때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고 본다.
한글 창제도 몽골의 파스칼 문자에 영향을 받은 것이고 측우기나 인쇄술 등의 과학 기술 발전도 원나라 지배기 때 바탕을 마련했다.
아마 민족주의자들은 이렇게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지면 일제 식민지도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는 말이냐? 이 매국노야!
민감한 일제 시대 얘기는 빼고, 대신 미군정 때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주체사상 외치다가 고립된 북한과 비교해 봐도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다.

시원하게 비판하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편이다.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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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와 의료분쟁 - 응급실 근무자를 위한
대한응급의학회 엮음 / 군자출판사(교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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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소개를 많이 해 줬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적어서 아쉽다.
뒷쪽에 의료법규를 나열한 부분은 실생활에 별 도움도 안 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나열된 사례들은 꼭 기억할 만 하다.
대표적인 예로, 아무리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고 자의귀가서까지 받았다 할지라도 일단 환자가 사망한다거나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의사 역시 그것을 방치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충수염이 의심되는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고 귀가했다가 다음날 복막염으로 와서 사망했다.
의사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의귀가서를 받아놨으나, 질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조취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80%의 과실이 있다고 판결났다.
의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하여튼 환자가 죽었기 때문에 책임이 전혀 없을 수 없고 더군다나 80%의 과실이라면 상당히 큰 편이니, 단순히 자의귀가서 한 장 받았다고 안심하지 말고, 적극적인 조취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 상급의료 기관에 전원하는 것도 환자 본인에게 맡겨 둬서는 안 되고 다른 의사에게 넘기는 순간까지 환자의 상태에서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정황으로 봤을 때 설마 죽기까지 하겠어, 하는 심정으로 안이하게 대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아무리 검사를 많이 하고 진찰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100% 예후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어쨌든 생명이 걸린 문제이니, 의료사고 이런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만에 하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약간 이해가 안 갔던 판결은, 췌장염 환자가 비위관 삽입을 거부해서 결국 사망했는데 환자가 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에 의사의 책임은 없는 걸로 나왔다.
다른 정황이 생략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앞의 충수염 환자 사망 사건과 어떻게 다른지 좀 헷갈린다.
유명한 보라매 병원 사건도 나왔는데,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무조건 인공호흡기를 떼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병원 윤리위원회 같은, 동료 집단의 조언을 구한 후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소생 희망이 없다고 해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들의 요구에 의해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은 자살 방조 행위 등으로 처벌받는다고 한다.
병원 윤리 위원회에 먼저 상정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고 한다.
말초혈관 확보가 어려울 경우는, 골수내 주입이나 중심정맥확보 등의 다른 조취를 취해야 충분한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다.
환자의 사망과 의사의 행위 사이에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민사에서는 정황만 가지고도 의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니, 많이 긴장을 해야 할 부분이다.
의사부권주의에서 환자부권주의로 바뀌었다는 말이 이해된다.
응급실의 난동 등을 생각해 보면, 이제는 의사보호법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막연히 병원이나 의사는 강자고, 환자는 피해자라는 일반적인 인상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형사 고소가 워낙 많아 의료분쟁 해결 과정의 많은 부분이 협박용으로 쓰인다는 점이 참 씁쓸하다.
그래서 재판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환자와 병원, 혹은 의사간의 화해로 유야무야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점이 방어진료를 불러와 지나친 검사와 치료를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제왕절개 비율일 것이다.
이제는 의사와 환자 모두 의료법에 관심을 기울여 서로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 무분별하게 협박을 당하거나 억울한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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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황홀 - 윤광준의 오디오 이야기, 2판
윤광준 지음 / 효형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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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디오마니아의 올바른 표현은, audiophile 이라고 한다는 걸, 책에서 배웠다.
오디오파일이라고 하면, 한국식 발음으로 하면 audiofile 과 똑같이 들려 묘한 느낌을 준다.
이런 마니아적인, 아니 마니아보다 한 단계 더 나간 오타쿠적인 책들은 내 성향 때문인지 남다른 위안을 선물한다.
나는, 이른바 책매니아다.
이걸 영어로 뭐라고 표현하는 모르겠다.
책 애호가 정도로는 안 되고, 책 매니아라고 해야 그런대로 내 열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책에도 구별이 됐지만, 책 자체를 모으는 책 수집벽이 있는 건 아니다.
좋은 책을 보면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갖는 것 보다 읽는 게 훨씬 더 급하고 중요하다.
돈이 많으면 이 책 저 책 몽땅 사 들이고 싶으면서도, 꼭 돈 때문이라기 보다는, 같은 책을 두 번 읽을 만큼 여유가 없다는 생각에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으니까)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게 된다.
1년에 백 여 권 이상 읽는 사람이라면, 읽기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도서관이나 헌 책방을 이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책에도 오디오 매니아와, 레코드판 매니아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오디오에 집착하는 사람은 보다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기기를 바꾼다.
레코드판을 모으는 사람은, 실황 연주회가 진짜라면서 더 좋은 음반을 모으기 위해 애쓴다.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에 집착한다고 할까?
나는 소프트웨어 쪽이다.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고,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막힌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이 판국에, 책을 모으고 있을 시간이 없다...

리스닝룸에 대한 저자의 바램이 자세히 묘사됐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내 서재를 그려봤다.
서재야 말로 내가 꿈꾸는 평생의 소망이다.
작가의 서재를 소개하는 책에서, 신경숙의 서재를 보고 얼마나 마음이 설렜는지 모른다.
한 면을 완전히 책장으로 짜 맞추고, 반대 쪽에는 컴퓨터 책상처럼 서랍이 없고 널찍한 책상을 배치한다.
한 쪽에는 편안한 쇼파와 오디오가 준비되어 있고 안쪽에는 샤워실까지 있어 방 밖을 나갈 필요조차 없다!
커튼이 드리워져 주변 풍경이 독서를 방해하지도 않는다.
아, 정말 어찌나 부러웠던지...
방 하나를 온전한 서재로 꾸미려면 널찍한 주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애들 키우는 아파트에서 과연 주부가 방 하나를 자기만의 서재로 꾸민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이런 문화적, 정신적 사치를 누리려면 돈을 아주 많이 벌던지, 아니면 책의 저자처럼 이것저것 다 포기하고 오직 취미 그 하나에만 올인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갑수 씨의 그 무모한 열정을 사랑한다.

끊임없이 기기를 업그레이드 하는 이른바 업글병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일인지 모른다.
나를 증명해 주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내게 완전한 기쁨을 주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극단에 이르고 싶은 마음, 아마 그래서 취미를 직업으로 갖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직장일이 지겨운 까닭은 그 일이 즐거워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즐거운 일에 들어갈 돈을 벌려고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워커홀릭은 아마 취미처럼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에세이에도 책상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흔들리지 않는 책상, 미세한 떨림도 느껴지지 않는 육중한 책상을 찾기 위해 해메는 그 마음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충 아무 거나 쓰면 되지 않냐고 묻는 사람은, 그 일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미세한 차이를 크게 느낀다면, 그리고 그 차이를 위해 큰 돈을 쏟아붓는다면 이미 그 사람은 매니아다.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최고의 품질, 최고의 제품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뒷쪽에 오디오 기기들을 자세히 설명한 부분은 대충 넘어갔다.
워낙 기계치이고 클래식에 관심이 있지만 오디오 소리까지 귀기울일 깜냥은 안 되기 때문에 별 흥미가 없었다.
이른바 막귀라서 좀 더 많은 클래식을 듣고는 싶지만, 아무 기기나 들어도 아직은 좋다.
저자의 글솜씨도 그럭저럭 무난하고 북디자인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다.
특히 오디오 기기들을 담은 사진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
사진작가라는 저자의 원래 직업이 빛을 발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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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김택민 지음 / 신서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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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재밌게 읽은 책이다.
500 페이지 남짓하는 분량의 압박이 있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비교적 술술 넘어가는 편이다.
저자의 말대로, 전공자들 보다는 일반인이 읽기 쉽도록 자세한 논증은 생략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그렇지만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역사서의 기사들은, 솔직히 좀 지루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교양서를 원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원전을 날것 그대로 알고 싶다기 보다는, 저자의 해석이 가미된, 한 마디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결론을 원하는데, 저자가 비교적 자기 의견을 일관되게 밝히긴 했으나 인용된 기사 분량이 너무 많아 (더군다나 반복되는 게 많아서) 나중에는 집중력이 좀 떨어졌다.
특히 식인 풍습에 관한 章은 기대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즉 굉장히 흥미진진한 소재라고 믿었는데) 해석보다는, 주로 사기의 기사를 인용하는 수준에 그처 솔직히 책 전체에서 가장 지루했다.
아다시피 역사서의 기사들은, 특히 한문으로 된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상세한 묘사보다는 죄다 당위적인 설명, 이를테면 죽는 이가 속출했다더라, 사람을 잡아 먹었다더라, 이런 식으로 똑같은 표현이 하도 많이 반복되서 아무리 다양한 준거를 밝힌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얘기가 그 얘기처럼 느껴져 금방 식상했다.
내가 임용한 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단편적인 기사를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시각화시켜 이해하기 쉽게 흥미진진하게 풀어 내기 때문이다.
물론 이덕일처럼 너무 나가서 무슨 추리소설 읽는 것처럼 되버리면 안 되지만 말이다.
이 책도 나름 재밌고 저자의 성질한 고증이 돋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나 기타 역사서들을 굉장히 신뢰하는데, 여불위가 진시황제의 아버지라는 소문에 대해서도, 사마천처럼 훌륭한 역사가가 기록한 것이라고 신뢰하는 입장을 취한다.
내가 다른 책에서 읽기로는, 진시황제를 깍아 내리려는, 즉 출신이 천하고 왕족의 핏줄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유언비어였다고 들었다.
나로서는 후자 쪽에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이다.
다만 저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은, 당시는 전국 시대로 귀족들이 사라져가고 출신 보다는 능력이 우선시 되는 사회였으니 신분의 뒤바뀜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고, 더군다나 역사서에까지 기록될 정도라면 민간에 널리 유포됐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로 만들기 좋은 소재다.

중국사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중국사를 읽다 보면 한국사는 저자의 표현마따나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거대한 영토를 외적의 침입 한 번 없이 (유목민도 중국사에 포함된다고 볼 때) 통일 제국을 수천 년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정말 위대한 일이다.
당장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보라.
여전히 굳건한 한족의 지배 범위를 잃지 않고 드넓은 중원땅을 호령하는 중국에 비해 고대 문명이 발상지들은 그 위용을 잃고 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중원 평야가 워낙에 넓어 인구 부양 능력이 뛰어나고 황하의 영향력이 미치는 퇴적 평야는 나일강이나 기타 큰 강에 댈 게 아니라고 한다.
또 중원 평야는 북쪽의 초원, 서쪽의 사막, 동쪽의 태평양 등에 가려 외부 세계와 섞이기가 힘들었다.
만리장성을 넘어오는 유목민도 결국은 거대한 중국사의 일부였다고 본다.
중국이 독자성을 유지해 왔던 이유 중 하나다.
저자는 한국인이 중국을 적대시 하는 것에 대해, 편견을 바로잡고 싶어 책을 썼다고 하는데 나 역시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는 바다.
중국이 한민족을 침공한 사례는, 한 무제 때 고조선을 정벌하고 한사군을 설치한 경우,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당나라의 백제, 고구려 공격 이게 전부다.
대체적으로 한반도는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중국 문명에 동화되려고 했기 때문에 중원을 지배하는 한족 왕조와는 친선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고려를 침공한 것은 거란의 요나라였고, 당시 중국의 지배 왕조는 송나라였으며 고려는 송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몽골의 침략도 한족이 아닌 유목민의 왕조였으며 (그리고 몽골의 침략을 안 받은 나라가 어딨겠는가?) 누르하치의 침략도 청이 건국되기 전, 즉 지배 왕조가 되기 전의 일이다.
청나라가 들어선 후로는 당연히 친선 정책을 유지했다.
대체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선진 문명을 동경하고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마치 오늘날의 미국과의 관계처럼 말이다.
중국의 위상이 고대와 같지 않아, 중국에 종속적이었던 것을 매우 부끄러워 하고 사극을 봐도 (특히 요즘 방영되는 대왕 세종)  중국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쓰는데 현재의 잣대를 과거에 들이대는 건 역사 왜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민족은 중국 같은 거대 문명에 함몰되지 않고 수천 년의 독자적인 문화를 견지해 왔다.
사대외교의 엄청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고,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는 건 너무 당연한 발전 과제다.
여기에 왜 자존심, 민족의 정기, 이런 단어들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사에는 큰 동란이 (이른바 천하대동란) 열 차례 있었다.
진을 망하게 한 진승, 오광의 난을 필두로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의 신나라에 반기를 든 녹림, 적미적의 난이 이어지고, 삼국지에서 수도 없이 등장하는 황건적의 난이 세 번째다.
네 번째는 수나라 말기에 일어난 농민 반란 (이것은 재밌게도 양제의 요동 정벌에 반대하여 일으킨 반란이라고 한다. 요동 가서 개죽음 당하지 말자면서 말이다. 수의 고구려 원정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 알 만 하다) 다섯 번째는 양귀비로 유명한 당 현종 때 안록산의 난이다.
여섯 번째는 최치원이 반란군에게 썼다는 <황소격문> 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황소의 난, (황소 같은 소금 장수들이 난을 일으킨 까닭은, 소금이 전매제였고 이들은 불법으로 소금 거래를 했기 때문에 정부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다음은 원을 멸망시킨 백련교도의 난 (이 때 등장하는 게 주원장이다), 명을 멸망시킨 이자성의 난, 마지막이 청말에 일어난 태평천국 운동이다.
열 번째는 아직 학계에서 공식적인 용어로 등장하지는 않는데 저자는 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이라고 본다.
모택동의 그 어처구니 없는 권력 투쟁 때문에 수백만의 중국 인민들이 기아로 사망하고 경제가 후퇴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재밌는 건 이런 농민 반란이 농민에게 이득을 줬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고 오히려 엄청난 재앙을 초래해 수탈하는 국가가 있느니만 못한 꼴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반란군이 되겠다고 일어난 절박한 사람들이니, 자기 배 채우는 게 최우선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군기가 문란해져 (사실 군기랄 것도 없었지만) 결국은 도적떼가 되고 만다.
농민 출신으로 황제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한나라의 유방과 명나라의 주원장이 있다.
한국사에는 농민 지도자가 성공한 예가 없으니, 확실히 중국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던 게 분명하다.

저자는 주기적으로 반복된 중국사의 불행을, 황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슴쫓기 게임으로 이해한다.
고사성어에 나오는 말이다.
강한 놈이 전국을 통일하고 황제위에 오른다.
처음에는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토지도 나눠주고 세금도 감면해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는다.
즉 일정 부분은 지배층이 이득을 포기한다.
좀 지나니까 안정세를 이룬다.
곧 가렴주구가 시작되고 수탈이 심해진다.
빈부 격차가 커지고 절대권력을 가진 황제위에 자꾸 무능한 인간들이 오른다.
갈 때까지 가면 결국 반란이 일어나 힘 있는 놈들은 죄다 사슴(황제자리)을 쫓는 경기에 뛰어든다.
대동란이 시작된다.
드디어 힘 센 놈이 사슴을 잡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포기하고 경기는 끝난다.
재밌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중국 역사의 비극의 원인을 무능한 황제와 빈부 격차로 지적했다.
황제는 절대권을 가진 사람인데 자꾸 어린 황제, 무능한 황제가 등극하면 국가의 정책은 표류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지배층의 수탈이 심해져 빈부 격차가 커지기 마련인데, 이런 난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황제 자리에 오르면 결국은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빈부 격차를 한 나라의 멸망 원인으로 든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이런 데서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자 교훈이 된다.
양극화가 자유 경쟁의 당연한 결과이고 절대 빈곤에 비하면 낫지 않냐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지나친 빈부 격차는 매우 위험하다.
한 나라의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상식선의 차이가 지켜져야 안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자유경쟁을 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빈부 격차의 이 엄청난 간극은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현대 중국의 전제적인 분위기에 대한 저자의 우려는 충분히 동감하는 바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개방되고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이런 독재적인 분위기는 결국 중국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한계로 작용할 것이다.
일단 경제가 발전해야, 즉 먹고 살 만 해야 민주화도 가능하다는 이른바 개발독재 논리가 오늘날 한국에도 팽배해 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8년을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던 독재자의 딸이 거대당의 당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정치와 경제는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인권이나 자유 문제를 저렇게 억압적으로 간과하고 있다면 어느 선 이상의 경제 발전은 불가능 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 정부가 좀 더 개방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길 바란다.
열린 사회,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현대사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은 어렵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중국사를 훑어 보는데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타당한 논거에 근거한 저자의 분명한 주제의식이 마음에 든다.
주장이 선명하고 일관되서 읽기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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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서 2026-03-3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쓰신분도 훌륭하시지만 이 글또한 훌륭합니다. 읽는동안 무식이 조금은 옅어지며 집중하게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 백과사전을 통째로 집어삼킨 남자의 가공할만한 지식탐험
A.J.제이콥스 지음, 표정훈,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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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재밌다.
서평이 별로 안 좋아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재밌고 저자가 위트가 있다.
잡지사 기자라서 그런가?
센스있는 문장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수필집이다.
브리태니커 사전과는 별 상관이 없고, 사전을 소재로 재밌는 수필을 선보인다.
발상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브라운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기자로 살아가는 저자는, 아버지도 24권의 책을 펴낸 유명한 변호사로 이른바 한국인이 선호하는 전통적인 뉴요커라는 걸 알 수 있다.
여유로운 경제 환경이 느껴지고,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삶의 궁상맞음 (주로 경제적인 부분) 이 없어서 편했다.
요즘 내가 삶에 너무 찌들려서인지 이제 나이를 먹어서인지 구질구질 하고 심란한 얘기보다는 밝은 내용이 편하다.
중요한 점은 저자의 문장력이 위트 있고 재치있다는 것!
난 글 못 쓰는 작가는 싫다.
저자에게 딱 하나 불행이 있다면 결혼 5년째인데도 아직 아이가 없다는 것.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
2003년에 출판된 책이던데.

이 책에 흥미를 느낀 까닭은, 나도 백과사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만 해도 동아 출판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백과사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다 읽기에 도전한 저자,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 싶으면서도 이런 인터넷 시대에, TV가 범람하는 시대에 감격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이런 괴짜들이 자주 나오면 좋겠다.
지식과 지혜가 비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관관계가 있는 건 분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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