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 한눈에 보는 유대교의 세계 즐거운 지식여행 24
모니카 그뤼벨 지음, 강명구 옮김 / 예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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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지식 여행 시리즈는 시공 총서보다 더 깊이가 있고 한 주제에 대한 응집성이 높은 편이라 좋아하는 시리즈다.
사진과 그림을 적절이 섞으면서도 제일 중요한 기술 부분에 많은 공을 들여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또렷한 지식이 생기게 된다.
이번 <유대교>도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신구약 중간사>에서 처음으로 헬레니즘이 유대인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이해하게 됐고, 이 책을 통해 보다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헤로데 대왕이 어떤 경로를 통해 로마 속주인 유대 땅의 왕이 됐는지도 비로소 이해했다.
막연하게 기독교와 유대교는 비슷한 역사를 공유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유대교의 입장에서 역사를 살펴보니 대단히 다른 길을 걸어 왔던 것 같다.
알려진 유대인의 악덕 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핍박받으며 오랜 시간을 견뎌 온 소수 민족의 슬픈 역사가 배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한 민족을 몰살시키겠다는 히틀러의 광기가 통했는지 늘 의아했었는데 오랜 역사를 통해 박해와 차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기어이 하나의 국가를 세우고 만 유대인들의 이 끈질긴 저항의 정신은, 팔레스타인 문제만 없다면 위대한 민족의 승리로 찬양받아 마땅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절기와 선지자들의 유래에 대해서, 전체적인 역사 맥락에서 차분히 설명해 주기 때문에 유대교라는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휴가를 맞아 집에 내려와 읽는 책으로, 특별히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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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키드의 추억
신윤동욱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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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은 신선한데 내용은 그저 그렇다.
꽤 흥미있는 독서가 될 줄 알고 기대에 부풀었는데, 소재에 비해 글솜씨가 달린다.
역시 책의 수준이나 재미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저자 자신의 문장력인 것 같다.
차라리 서형욱이 쓴 <유럽축구기행>이 훨씬 재밌다.
기자라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건 아닌 것 같고, 내가 보기에 글솜씨는 전적으로 개인의 실력 문제 같다.
이 책의 저자는 한겨레 기자라고 하는데, 글쓰는 게 주업무가 아닌 서형욱씨의 문장력이나 위트가 훨씬 나으니 말이다.

소재 자체는 흥미로웠다.
나 역시 농구대잔치 시절의 감동을 간직한 세대라 열광하던 선수들 얘기가 나오니 반가웠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문화차 때문에, 저자가 장충동 체육관에서 직접 응원을 했던데 비해 나는 TV 중계로만 만족했다.
가끔 지방 순회 경기가 열릴 때 농구나 배구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 해설자가 있는 것보다 훨씬 박진감 넘치고 재밌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도 저자처럼 잘 나가는 기아보다는, 한물 간 현대를 훨씬 좋아했다.
저자의 영웅이 김현준이었다면, 나의 영웅은 현대의 4번 선수 이원우였다.
둘 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쳤다는 슬픈 공통점이 있다.
이원우를 엄청 좋아했는데 맨날 기아에게 깨지니 경기를 볼 때마다 죽을 맛이었고, 자연히 기아나 허재를 굉장히 싫어했다.
나중에 이원우가 은퇴하고 나서는 하필 잘 나가는 연세대가 아닌 고려대를 응원했으니, 고대 역시 이 책에 나온대로 단 한 번도 우승을 못하고 좋은 시절을 보내고 말았다.
아마도 저자나 나처럼 마이너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야 1등 외에도 박수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유럽의 프리미어 리그 이야기는 <유럽 축구 기행>에서 봤던 내용들과 거의 비슷해 읽기가 편했다.
워낙 축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유럽 축구 기행>을 읽으면서 좀 아는 게 생기니까 관심도 자연스레 생기게 됐다.
하여튼 지금도 점수 잘 안 나고 넓은 경기장에서 뛰어다니는 축구보다는, 코트를 왔다갔다 하면서 격렬하게 슛을 쏴 대는 농구가 훨씬 재밌고, 스파이크를 내리꽂는 배구가 더 재밌다.
왜 내가 좋아하는 운동들은 주류가 못 되는지, 아쉬운 대목이다.
하는 스포츠도 좋지만, 보는 스포츠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마치 내가 뛰는 것인양 완전하게 경기게 몰입하여 소리소리 질러가며 응원하던 그 열정, 그건 정말 어느 한 팀에 완전히 꽂힌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 것이다.

더불어 애국주의가 21세기를 맞아 점점 사라진다는 느낌도 든다.
한일 배구전이 벌어질 때였다.
나까가이치라는 일본 선수가 얼굴도 잘 생겼는데 스파이크도 어찌나 강력하게 내리꽂는지 마음이 확 뺏겨 그 사람이 득점하면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남동생이 나를 매국노니 어쩌니 하면서 막 비난하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국을 응원해야 하는 건 아니고, 또 특정 선수에 대한 애정은 국적을 따질 필요가 없는 문제인데, 당시만 해도 일본과 한국은 무슨 대리 전쟁이라도 되는 양 스포츠 결과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하여튼 이제는 금메달 따면 기쁘고 행복한 것이지, 무슨 국가의 명예를 걸고 사명감 느끼면서 비장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중학교 때 스포츠를 너무 좋아해 스포츠 신문까지 구독할 정도였는데 어느덧 나이가 들면서 관심이 확 줄어 기껏해야 올림픽이나 보고 있다.
뭔가에 대한 열정을 시간이 오래 지나서도 간직한다는 건 참 어려운 문제 같다.
그런 열정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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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 관절과 뼈로 알아보는 공룡의 진실 이지북과학총서 4
크리스토퍼 맥고원 지음, 이양준 옮김 / 이지북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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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무래도 고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이 봐야 할 것 같다.
어려운 얘기가 너무 많아 솔직히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공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이 쪽으로는 전혀 무지한 상태다.
화석을 가지고 생활상을 그려내야 하는 고고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뼈만 가지고 (그것도 불완전한 몇 개 가지고) 코가 긴 코끼리를 상상하는 게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 지구를 지배하다가 사라진 이 멋진 생물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고생물학자들의 솜씨는 정말 대단하다.
학자적 엄격함 때문인지 자기 주장에 대한 근거를 너무나 세세하게 밝히고 그 한계까지 기술하려는 노력 덕분에, 그저 공룡에 조금 관심이 있는 독자가 읽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책이 됐다.
얼마 전에 읽은 NHK 방송사나 뉴턴 하이라이트의 공룡 이야기는 말 그대로 흥미 위주에 불과한게 아닌가 싶어질 정도다.

제일 충격적인 내용은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망한 게 정설이 아니라는 거다.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모양이다.
백악기와 제 3기를 가르는 K-T 층에서,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이리듐이 다량 발견됨으로써 거대한 운석이 충돌했다는 건 맞지만 과연 그것 때문에 일시에 파충류들이 멸종했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라고 한다.
이미 백악기 말에 이르러 공룡류는 다양성이 감소해서 사라져 가는 추세였다는 거다.
물론 여기도 반론이 존재한다.
다양성이 줄어들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래도 운석 충돌로 일거에 공룡이 사라졌다는 게 더 흥미롭긴 하다.
이리듐은 화산 활동을 통해서도 많이 나올 수 있는데, 그 주변에 화산 분출시 쏟아져 나오는 물질들도 같이 쌓여 끊임없는 지각 변동이 있던 와중에 운석이 충돌한 게 결정타였는 식의 절충안을 제시했다.
한 종의 멸종이 오직 공룡에게만 해당되는 끔찍한 재앙은 아니었으니 아주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던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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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채널 : 예수의 12제자 - 히스토리/큐 채널 프로모션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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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내용들이 많아 좀 지루했다.
중간에 성화들을 많이 보여준 건 좋았는데, 성서 얘기들이 너무 많아 흥미가 떨어졌다.
아마 사도들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객관적인 자료만 챙기다 보니 아는 얘기들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를 믿냐, 안 믿냐를 떠나서 유다 땅에서 사형당한 한 젊은 남자의 열 두 제자가 오늘날 20억 인구에 이르는 이들이 믿는 거대한 종교로 발전시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고 경이적이다.
이슬람교처럼 군사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박해받는 하층민의 작은 신앙 공동체에 불과했는데 대체 기독교는 어떻게 로마 세계를 집어 삼켰을까?
오늘날 문화적 관용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기독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긴 하지만,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킨 이런 위대한 신앙인들의 얘기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작은 형제회라는 수도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을 낮추고 평생 동정을 서약하며 어려운 이들 틈에 끼어 들어 신을 알리고 섬기는데 평생을 바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감동적이었다.
기독교가 그렇게 온전하게 개인의 신앙고백이고 믿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신념을 지닌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라고 압력을 넣고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식의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행태가 기독교에 대한 엄청난 반감을 사게 만든다.
결국 종교란 권력을 갖는 순간부터 타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치유의 은사를 믿지 않지만 (물리 법칙에 위배되니까) 사도들이 엄청난 신념의 선교사였음은 확신한다.
그리고 그들이 박해를 두려워 하지 않고 복음을 전파시킬 때는 죽음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놀라운 카리스마와 능력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또 베드로와 바울이 편협하게 유대교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이방인들을 받아들인 것은 놀라운 포용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구약보다 신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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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생각들 - 당대 최고의 석학 110명에게 물었다
존 브록만 엮음, 이영기 옮김 / 갤리온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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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명이나 되는 저자들의 1~2장에 걸친 짧은 이야기들은 자칫 중구난방으로 들리기가 쉽다.
필자를 좀 줄였으면 낫지 않았을까 싶다.
10명 정도면 너무 적으려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수준의 짧은 분량 글들이라 어떤 글은 완결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 학문적 엄격성을 유지하지 않고 가볍게 대화하는 수준에서 글을 쓴 것 같다.
그러나 시도 자체는 신선했다.
특히 보라색으로 주석을 바로 옆에 달아주는 편집의 센스가 돋보인다.
책 자체도 디자인을 잘 해서 보기 편하다.
<보랏빛 소가 온다>와 비슷한 느낌의 책이다, 편집 면에서만.

과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종교를, 더 정확히는 배타적인 신을 안 믿는 것 같다.
사실 종교와 과학은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가 의례적이고 문화적인 부분만 감당한다면 얼마든지 전통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지금처럼 과학의 영역에 끼여들어 자기 목소리를 낸다면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진정한 과학자라면, 혹은 독실한 신자라면 결국 과학을 포기하던지 무신론자가 되던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생명의 기원, 더 나아가 우주의 기원을 논하는 자리에, 종교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종교의 특징은 근거를 믿지 않고 신념을 믿는다는 것이다.
근거 대신 신념을 따르기, 믿을 수 없는 일이라 더욱 믿는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게 바로 종교의 모순이다.
누구 말마따나 예수가 동정녀에게 난 것을 믿는다면, 부처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것이나, 마호메트가 말을 타고 하늘로 날아간 것이나, 더 나아가 단군이 곰과 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것마저도 다 믿어야 할 것이다.
문화 다원주의 측면에서 모든 관습과 신화에 공정한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죽음이란 다시 분자 상태로 환원되어 자연의 순환계로 돌아간다는 개념은, 내세가 있다는 종교의 믿음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하고 당혹스럽게 한다.
어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분자라는 측면에서 보면 생명 뿐 아니라 무생물과도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종교가 현재처럼 기득권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사람들의 문화적이고 의례적인 측면만 담당한다면 이렇게까지 종교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신념대로 살 권리가 있으니까.
그러나 종교는, 특히 세력을 얻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개인의 정신 세계만 통제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한다.
그것도 보편적인 사실 추구를 위한 과학의 탐구 활동을 비난하면서 말이다.
과학이 또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 모든 이론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이런 생각이야 말로 합리적인 추론을 방해하는 가장 위험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한 저자가 명확히 표현한 것처럼, 우리는 일본이 1943년 진주만을 공격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대신 이집트가 진주만을 공격했다는 주장은 이론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론은 근거가 있어야 한다.
현재의 종교처럼 무조건 믿으라는 건 비합리적인 태도다.

기존의 관습이나 도덕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이유로 위험한 생각을 금지한다면 사회는 퇴보할 것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발설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위험한 태도일 것 같다.
자기 생각과 주장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충분히 토론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건강하고 민주적인 사회다.
지금처럼 촛불시위에 반대되는 발언을 한다고 집단공격 하는 행동은, 그 명분이 아무리 옳다 할지라도 파시즘의 또다른 변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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