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법 체계로 본 근대 과학사 강의
토비 E. 하프 지음, 김병순 옮김 / 모티브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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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페이지에 달하는 꽤나 읽기 힘든 책이다.
일단 분량에서 질리고, 내용 또한 만만치 않다.
과학에 대해 썼다기 보다는,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그 중에서도 특히 법 체계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다.
그래서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는 것 뿐.
좀 더 자극적인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왜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과학 혁명이 일어났는가이다.
이슬람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그렇게 과거에는 찬란했다는 문명을 가진 이 두 세계가 아닌, 서양에서 산업화가 가능했단 말인가?
사실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궁금했던 점이다.
왜 하필 서양에서?
중세 천 년의 암흑기는 다 어쩌고 느닷없이 르네상스와 함께 신세계로 뻗어나가 식민지를 획득하더니 산업화를 일으켜 전 지구를 점령하게 됐는지, 그 힘의 원동력이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비교사학적 관점이 필요한 모양이다.
사실 좀 삐딱하게 보자면 결과론적 분석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미 정해진 결과를 놓고,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건 좀 논리적이지가 못하다.
그러나 워낙 상세하고 방대한 증거들을 들이대기 때문에 결국에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단순히 "우연"에 의해 이 거대한 차이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반드시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하여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칫하면 민족주의적, 혹은 평등론적인 시각에서 이 책을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저자는 꽤나 분명하고 단정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서구 사회의 우월성을 설명한다.
문득 이슬람이나 중국 쪽에서 나온 근대 과학의 발전사나, 근대 사회의 형성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현재의 결과물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서구 학자들에 비해 할 말이 적다는 건 분명한 일이다.

간단히 주제를 정리하자면, 서구 사회가 과학 혁명을 일으킨 가장 큰 원동력은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정비했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법학의 발전은 과학 발전에 선행되야 한다.
이 법은 로마법에 나오는 보편적인 법, 전 세계 어디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보편법을 말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서 통용되던 법이란 실정법 수준으로, 황제의 명령이나 칙령 정도를 의미하고 모든 이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서양의, 보편법 개념은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중국법의 문제점으로, 황제의 명령에 의해 간단히 바뀔 수 있고, 판례가 다음 재판의 근거로 이용되지 않으며, 귀족과 평민에게, 혹은 중국인과 외국인에게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로마법에서는 형벌의 적용에 있어서 귀족과 평민에게 똑같이 적용됐단 말인가?
신분차를 무시한다는 게 아무리 법전이라 할지라도 중세 시대에 가능했을까?
저자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보고 싶다.
하여튼 중국은 보편법을 발전하지 못해 여러 판례들을 아우를 수 있는 상위법 개념을 만들지 못했다.
이슬람 역시 아랍인들에게 적용되는 샤리아와, 외국인들에게 적용되는 일반법을 분리해서 생각했고, 이슬람법의 절대성으로 인해 오히려 모든 학문과 토론의 생성 자체를 금지시키고 만다.
서구 사회과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완전히 정교분리된 것에 비해, 이슬람은 여전히 종교와 세속의 구분이 없다.
아직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살만 루시디에 대한 사형판결도 이슬람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봐도 아무리 인권운동가나 평등주의자들이 미회시키려 해도 이슬람 국가의 신정주의는 극복해야 할 한계라고 생각된다.
종교와 세속의 분리는 따로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나 기본적인 명제가 아닌가?

이 점에서 저자는 좀 색다른 논리를 편다.
중세 교회가 황제의 권한으로부터 분리되면서 교회법을 발전시키고 자치권을 가진 단체로써 인정받았기 때문에 교회야 말로 자치권 확대에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중세는 교회가 사회를 억압하고 과학 발달을 저해했다고 본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가 황제권으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소유권과 재산권, 사법권 등을 갖는 근대적 의미의 자치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이것은 더 나아가 법인의 설립, 대표를 갖는 의회주의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이슬람이나 중국과는 달리, 서양에는 동업조합이나 자치 도시의 전통이 있다.
이들의 성장은 과학을 자유롭게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중간지대의 역할을 한다.
반면 종교의 힘이 너무 강한 이슬람이나, 황제권이 절대적인 중국에서는 자치집단이 생기지 않아 대가족에게 의존하는 혈연주의나 족벌주의 전통이 강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100% 수긍하는 건 아닌데 확실히 동양에서는 서양보다 가족의 개념이 강하고 공과 사의 구별이 좀 모호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과학의 일반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편성
인종과 국가 등을 초월해 과학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다.
둘째, 철저한 회의론
과학은 기존 권위와 관습에 대한 의심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토론을 법적으로 보호해 줘야만 발전이 가능하다.
저자는 오늘날 중국의 사상통제는 아무리 경제력이 발전해도 우월한 위치에 오르지 못하는 한계점으로 설명한다.
셋째, 공평성
과학은 누구나 똑같은 수단인 논리와 연역적 추론, 경험적 관찰 등을 통해 가설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 수단의 일반성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넷째, 공동체주의
가설은 과학자 집단에 의해 인정받아야 한다.
혼자 주장하거나 아무리 권위있는 사람이 인정한다 해도 집단의 인정이 없으면 옳은 이론이 될 수 없다.
이 점은 서구 과학이 전통 과학에 비해 논문이나 학회 같은 것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이슬람은 그리스 철학을 발전시켜 12~13 세기에 서양을 압도할 만큼 거대한 지식을 쌓지만, 꾸란의 절대성을 강조한 나머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토론할 수 없었고 마드라사라는 고등교육기관에서도 오직 종교학만을 가르쳤기 때문에 과학을 공식적으로 교육할 수 없어 사적인 자리에서만 개인적으로 전승됐다.
제도적 뒷받침이 없이는 쇠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 문화권에는 공식적인 인증절차나 인증서 등이 없었다.
학자가 제자를 개인적으로 인정하면 끝이기 때문에 표준적인 교육체계를 세울 수 없었다.
중국은 관료주의가 과학의 발목을 잡았다.
저자는 기술과 과학의 구분을 분명히 하는데, 엄밀히 말해 기술은 경험에서 비롯된 한 차원 낮은 개념이고 중국의 과학은 바로 이 기술발전에 근거했다고 본다.
이를테면 화약이나 나침반처럼 말이다.
반면 과학은 매우 고차원적인 문제인데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냐는 일종의 철학적인 개념이다.
서양을 앞질렀다는 중세의 중국 과학은 사회의 변혁이나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엄청난 일을 못했다.
사상의 통제는 과학의 기본 원리인 회의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말할 것도 없이 오직 국가 관료만을 뽑는 과거제도 모든 학문을 통제했고 저자는 한술 더 떠 중국의 대학은 자치권을 갖는 유럽의 대학과는 개념이 달라, 과거 준비학원이라고 폄하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상당히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른다.
어떤 면에서는 중국이나 이슬람 학자들의 반발이 예상되기도 한다.
또 저자는 이성을 중국의 정신으로 번역할 수 없다는 얘기도 한다.
이성은 신이 주신 내면의 빛과도 같은 것으로, 합리적인 피조물이 자연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인데 중국의 정신수양은 음양오행설에 기댄 매우 느슨한 유기적 세계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성이나 양심을 매우 엄밀한 용어로 정의한다.
신이 주신 이성, 내면의 도덕적 저울인 양심이 바로 기독신학이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개념으로 정의한다.
중세 교회가 과학을 억압했다기 보다는 상당 부분 공존했으며 심지어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게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 점은 다른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나는 베버가 주장하는 기독교나 청교도 윤리의 우월함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데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기독교가 서양 사회에 이바지한 바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꽤나 논리적으로 또 상당히 날카롭게 동양이나 이슬람 사회에 매스를 가하기 때문에 어설픈 평등주의자들이 읽으면 상당히 충격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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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북 - 젊은 독서가의 초상
마이클 더다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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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평에 관한 책, 혹은 독서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어린 시절의 회고록 같은 책이다.
책벌레의 어린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가 글쓰기 강의서가 아니라 실은 자서전이듯 말이다.
서평기자라는 독특한 직업 때문인지 저자는 비교적 고른 문장력을 보인다.
위트있고 작가로서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이의 개인적인 일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키득키득 웃을 때도 많았다.
가족에 대한 애정을 한없이 느끼면서도 결코 미화시키지 않고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감추지 않는 게 저자의 매력이다.
아쉽게도 대학교 시절에서 끝이 나버렸다.
분량의 압박 때문인가?
기왕이면 코넬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인 문학 공부를 하던 시절이나 연애와 결혼, 아이 출산 같은 얘기도 좀 해 줬으면 좋았을텐데.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자신의 독서법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한 두 챕터 정도는 넣어 줬으면 하는 거다.
나 같은 독서광들이 책읽기에 관한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얻은 몇 가지 팁이라면, 애들러가 말한 거라는데, 책을 읽을 때 주변에 메모를 많이 해서 나만의 책으로 만들라는 조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책은 사서 읽어야 한다.
저자 역시 헌책방에서 건진 수많은 문고본들을 연필로 새까맣게 만들었다고 한다.
입체적인 독서가 가능할 것 같다.
활자만 읽어가는 수동적인 독서 대신, 저자와 격렬하게 토론을 하면서 읽는 것이다.
대체 왜, 주인공은 여기서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식으로 말이다.
시의 경우 시어는 복수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 단어의 풍성함으로 가치가 있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책의 묘미는, 저자가 나처럼 남독하는 책벌레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의 심정을 100% 이해한다는데 있을 것이다.
나는 텍스트 속으로 빠져 드는 저자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미국에서는 신체적 활동과 우수함을 높게 쳐주는 모양인지, 책 속에 틀어박힌 독서광은 환영받지 못하는 듯 하다.
특히 러시아 이민자인 공장 노동자 아버지에게 뭐 하나 제대로 고칠 줄도 모르고 방에만 처박혀 있는 아들은 심란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앞부분에서 가난한 미국 이민자 가정의 모습을 미화없이 담담히 써내려 갔다는 점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원하는 대로 책을 읽어 먹고 살 수 있는 서평기자라는 독특한 직업을 갖게 됐다.
코넬 대학교에 진학해 교수가 될 수도 있었으나 저널리즘 분야에 뛰어든 그의 성향도 이해가 된다.
이미 50대 후반인 것 같은데 독서법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알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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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이야기 - 태양, 지구, 그리고 아홉 이웃들이 펼치는 눈부신 역사와 과학과 낭만의 드라마
데이바 소벨 지음, 김옥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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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읽을 때는 어려워서 포기할까 했다.
태양과 수성까지는 어떻게 읽어 볼까 했는데, 금성을 지나서는 거의 안 읽고 대충 넘어가게 됐다.
학교 다닐 때 제일 어려웠던 과목이 바로 지구과학이었던 만큼, 취미로 교양서를 읽으려고 해도 별이나 지질 쪽은 영 모르겠다.
덮어버릴까 하다가 책이 하도 예뻐서 마음을 고쳐 먹고 노트북을 열었다.
지루하거나 어렵지만 읽어 볼만 하다 싶을 때 선택하는 방법이 바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다.
관련 지식을 찾다 보면 어느새 책에 빠져들게 된다.
240페이지라는 얇은 분량도 도전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했다.
결과는 대성공!
처음과는 달리 점점 책에 빠져 들었고, 책의 수준 역시 나같은 초보자를 위해 아주 쉽게 쓰여 있었다.
전공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단지 저술가이기 때문인지,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한 것 같다.
이 쪽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도 할 수 있겠으나, 내 수준에서는 이 책보다 어려운 책은 못볼 것 같다.

명왕성이 얼마 전 소행성으로 분류되어 이제 태양계는 8개의 행성을 가졌다고 한다.
이 책은 아직까지 명왕성을 행성으로 분류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명왕성은 논란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카이퍼 벨트라고 해서, 행성이 되지 못한 물질들이 모여 제 3의 지대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명왕성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제 1 지대는 지구형 행성, 2지대는 목성을 위시한 거대한 기체 행성들, 그리고 3지대가 바로 명왕성 등의 멀리 떨어진 소행성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들이 많다.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 봤는데 신문 기사에도 천문학적 지식들이 많이 실려 있고 네이버 지식인이나 블로그에도 일반인들이 자세한 지식을 많이 올려 놔서 깜짝 놀랬다.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여기 나온 지식 정도는 교양 수준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달 외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지 못했으나 무인 우주선들이 행성 주변을 돌면서 많은 정보를 전송해 오고 있다.
제일 대표적인 게 바로 카시니- 호이겐스 호가 아닌가 싶다.
토성의 위성을 발견한 과학자들을 기려서 붙인 토성 탐사선이다.
인터넷에서 호이겐스 호가 찍은 토성 고리를 봤는데 정말 환상적이다.
이렇게 발달된 시대에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조작이었다는 설이 존재하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런 천문학 책을 읽으면 당연히 성경의 창세기는 상징적인 의미를 띤 신화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천문학자들이 과연 종교가 있을지, 문자 그대로의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리처드 도킨스처럼 무신론자가 되야 맞을 것 같다.
제일 흥미로운 과학자는 덴마크의 혜성 발견자인 마리아 미첼이었다.
여자 이름이 붙은 혜성은 딱 두 개인데, 하나는 미첼이고 또 하나는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의 여동생 캐롤라인 허셜이라고 한다.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두 사람 사이의 우정과 발견 당시를 쓴 글이 실렸는데 국경을 초월하면서도 여성 과학자 사이의 동료애가 느껴져 무척 훈훈했다.
토성까지는 고대로부터 관찰이 가능했으나 천왕성은 망원경으로 발견한 최초의 행성이고 놀랍게도 해왕성은 단지 수학적 계산만으로 발견했다고 한다.
수학이 만국의 보편적 언어라는 말이 이해된다.
당시의 부정확한 관측 때문에 두 행성 궤도에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미지의 행성이 있을 거라 예측하고 찾아낸 게 바로 명왕성인데, 실망스럽게도 오늘날의 정확한 계산 결과로는 영향을 주는 행성 따위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명왕성이 더더욱 행성의 위치를 박탈당했나 보다.
비록 명왕성이 행성은 아니라 할지라도 카이퍼 벨트라는 개념을 태양계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태양계의 범위는 더욱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
우주의 신비는 생각할수록 놀랍고 경이롭다.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 나 <행성이야기>를 읽어 보고 싶다.
갑자기 밤하늘을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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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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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신선하고 상큼하고, 무엇보다 가벼운 무라카미 하루키
<슬픈 외국어> 나 <먼 북소리>를 읽던 때가 생각난다.
소설도 잘 쓰지만, 하루키 문장의 진수는 역시 수필에 있는 것 같다.
꼭 소설을 잘 써서 유명해졌다기 보다는, 그의 라이프 스타일이 현대인의 취향과 잘 맞아서 독자들이 열광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번 수필은 특히 기대를 했던 작품이다.
나도 그처럼 달리기를 좋아하고 프로 스포츠 보다는 올림픽 같은 아마추어 기록 경기에 더 열광하기 때문에 시드니 올림픽 참관기를 어떻게 썼을지 참 궁금했다.
맨 첫 장에 일본 여자 마라톤 선수가 나오길래 혹시 이거 소설 아닌가 걱정스러웠는데 (소설로 쓰기엔 뭔가 유치한 느낌이 들어서) 나중에 보니 하루키가 그 여자 선수의 심정을 대신 이야기한 것 같아서 안심했다.
에세이 자체가 아주 수준있다거나 아주 재밌다거나 문장이 훌륭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가볍고 부담없고 담백해서 좋다.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바로 그 주인공을 보는 기분이 든다.
왠지 아이가 없고 마라톤에 열중하는 성향이 그와 꼭 맞아 보인다.
아이가 있다면 뭔가 하루키와 안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1949년생이지만, 그러므로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버지라는 위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기분이 든다.

시드니 올림픽에 기사를 쓰기 위해 갔던 모양이다.
호주에서도 그의 책이 유명한지 호주 기자와 인터뷰도 하고 100만원이 넘는 개막식 티켓도 얻었고 호텔에서 묵으며 경기를 관람했다.
그런 서비스들은 그가 이룬 문학적 성과 때문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들이겠지만 하여튼 그런 대우를 받으며 올림픽 관람을 하는 하루키가 부럽다.
왠지 놀면서 돈까지 버는 느낌이 든다.
마치 유명인사가 공짜로 유럽 여행 갔다 오면서 덤으로 책 써서 인세 버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시드니에서도 평소처럼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 광인건 확실하다.
어디서라도 뛸 수 있으니 말이다.
내 경우는 유일하게 즐기는 운동이 바로 달리기인데도 밖에서 뛰지는 못한다.
런닝머신이 제일 편해서 호텔에 가면 주변을 달리는 대신 스포츠 센터를 방문한다.
어디서나 뛸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달리기 매니아다.
포도주 이야기를 맛깔나게 해서 나도 한 잔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일종의 문화적 허영심인지도 모르겠으나, 소주는 아무리 미화를 시켜도 텁텁하고 쓴 느낌이 드는데 반해, 포도주 이야기는 왠지 달콤하게 들려 입맛을 다시게 된다.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면 괌이나 몰디브 같은 휴양지 말고 호주로 신혼여행을 가자는 말을 최근에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 호주가 가고 싶어진다.
확실히 살고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을 가 본다는 건 굉장한 문화적 경험인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여행을 많이 해 봐야 하나 보다.
올림픽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아테네 올림픽 때부터 내가 꼭 주최국을 방문해 직접 경기를 관람하겠다고 십 여 년 전부터 결심을 했으나 결국 코 앞에서 벌어지는 북경 올림픽까지 그냥 넘기고 말았다.
사실 북경이라면 휴가를 써서 다녀올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시드니 올림픽 때 인기없는 남의 나라 야구 경기장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러 온 호주 사람들처럼 나도 올림픽 경기라면 아무리 지루한 경기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4년 후 런던 올림픽을 노려야 할려나?

제일 부러웠던 것은 그의 어학 실력이다.
영어는 이제 생활어 수준이 되서 나라 밖을 나가려면 당연히 할 줄 아는 언어인 것 같다.
호주 기자와 영어로 인터뷰 한 것도 부럽지만, 무엇보다 호주의 서점에 가서 책 몇 권을 고를 수 있다는 게 정말 부럽다.
외국 여행을 가서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그 나라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에는 까막눈이니 그저 침만 흘릴 수 밖에.
요즘에는 서점에 외서가 많이 들어와 가끔 구경을 하는데 어쩜 이런 분야까지 출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장르가 참 다양하고 편집이 예쁘다.
영어책을 부담없이 읽을 수준이 된다면 삶의 폭이 참 넓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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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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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가의 책을 이제야 보게 됐다.
유머러스하고 위트가 있는 작가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독자와 작가도 특별히 잘 맞는 경우가 있나 보다.
간간히 재밌다고 킥킥대면서도 책 자체에 완전히 빠지지는 못했다.
일단은 등산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고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흥미가 적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위트가 있어서 좋다.
특히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꼭 도전해 볼 생각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땅이 워낙 넓으니 자연의 혜택을 참 많이 누리고 사는 것 같다.
단지 지하자원이 많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숲이라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자연환경의 혜택을 몸으로 느끼는 삶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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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pie 2008-09-08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가끔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별로...[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좀 나아요.
혜택도 혜택이지만 재해도 규모가 다른 것 같아요. 무연탄 지대에 불 붙는 얘기 읽고서 한참 넋이 나갔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