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박성래 지음 / 교보문고(교재) / 1998년 10월
평점 :
품절


나온지 좀 오래 된 책이라 그런지 요즘 책과는 다른 약간 촌스런 느낌을 준다.
일본인을 일본어 표현 대신 한자로 부른 것도 그렇고 논지를 전개하는 형식도 세련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쩌면 저자의 최근 작품은 좀 더 발전된 주장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통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니 단지 민족주의에 치우져 민족 과학을 주장하는 건 아닐 것이다.
저자의 정의대로라면, 민족과학이란 서구의 과학 지식을 받아들여 우리 식으로 소화해 내자는, 국내 과학 발전 추구인 것 같다.
일본이 네덜란드로부터 난학을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과학 기술을 양성해 낸 것처럼 말이다.
일본의 개방적인 태도는, 어쩌면 중국 문화권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성리학 수준이 조선보다 떨어졌기 때문에 성리학의 위상이 일본 내에서 조선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인정권이 수백년 통치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조선처럼 학자가 관료가 되고 왕이 되는 게 아니라 칼을 잡은 사람이 권력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한문을 거의 알지 못했다고 한다.
성리학의 상대적인 약화가 난학을 보다 빨리 수용하게 된 배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근대사에서 읽은 내용들이 종종 등장해 반가웠다.
특이한 점은 도쿠가와 막부 역시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기독교를 박해했으면서도 나가사키의 한 항구는 열어줘 계속 통상을 했다는 사실이다.
과학과 종교의 구별을 확실히 했던 셈이다.
반면 조선에서는 서학을 기독교와 서양 기술 등으로 뭉뚱그려 정치적 박해를 가했으니 아쉬운 대목이다.
아마도 일본이 조선과는 달리 오래 전부터 중국 뿐 아니라 동남 아시아 등과 교역을 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다.
완전한 농업 국가였던 조선과는 상당히 다른 사회구조를 가졌고 이런 점들이 고대 사회에서는 한국에 뒤지는 결과를 낳았으나 시대 조류가 바뀌면서 흥기할 기회를 잡은 것 같다.

측우기와 자격루, 첨성대 등은 대체 언제부터 민족과학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됐을까?
저자는 유길준을 그 시조로 본다.
그 전에는 과학기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자랑의 근원으로 삼지 않았다.
조선이 망해가면서 특히 나라를 잃은 후로는 박은식 등에 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자부심의 원천으로 과거의 발명품들을 동원했다.
이른바 민족의 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봐도 20세기 초부터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동경이 형성됐던 것 같다.
비록 저자의 한탄처럼 분위기만 잡아갔지 실제적인 교육이나 투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왜 세종 때만 과학기술이 발달했을까?
사실 나도 이 점이 항상 궁금했고 남들처럼 왕이 워낙 똑똑해서였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세종 때 기틀을 잡아서 다음 시대부터는 별다른 혁신 없이 쭉 그대로 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대만 유난히 과학이 발달한 게 아니라 그 시대에 기반을 다져 놓은 걸 그 다음 시대에도 똑같이 유지했으므로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리있는 말 같다.
사회 자체가 워낙 정적이었으므로 특별한 변화나 혁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적어도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이 보여 준 그 놀라운 천재성은 적어도 한글 창제 하나만 가지고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책에 소개된 여러 기술적 혁신들을 보니 더욱더 세종이라는 인간과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확실히 그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었을 것 같다.

조선 시대 화포의 발달은 꽤나 주목할 만 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명군의 지원도 있었지만 전적으로 화포 덕분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연전연승을 이룬 이순신의 전선은 조총 같은 화승총에 의존한 일본군에 비해 월등한 화력을 자랑했다.
화력의 위상은 임진왜란에서 특히 빛난다.
최무선에 의해 처음 화포가 제작된 후 여러 번 개량이 이뤄졌다.
근대적인 무기 발달로 나가지는 못했으나 서구 세력의 침략 이전에는 충분히 한 나라를 방어할 만 했을 것이다.
일제 식민 시대에 고등교육이 형편없었다는 자료들이 속속 들어나 안타깝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 내에서 종합대학을 졸업한 과학 기술자는 거의 없었고 외국에서 학위를 받는다 해도 개인적인 인맥에 의존해서지 시스템 적으로는 뒷받침이 전혀 안 됐다고 한다.
어차피 식민지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니 일본인에게 그런 정책적 관용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으나 식민지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손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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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클래식 - 조우석의 인문학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
조우석 지음 / 동아시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클래식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궁금해 집어 든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아닌데 싶다.
클래식의 문화 권력화를 비판한 것까지는 좋은데, 바흐나 모짜르트 등의 음악 자체를 멜랑콜리 하다느니 깊이가 없다느니 하는 말장난을 친 것이 결국은 책의 품위를 깎아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자체를 비난한다는 건 그 사회적 맥락을 비판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 느끼는 것, 아무런 편견 없이 자기 좋을대로 듣는 게 최고라면 클래식 애호가들 역시 자기만의 감상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 작품 자체를 재즈 등에 비해 죽은 음악이라고 비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대체 그 기준은 무엇이고 과연 작가가 그것을 이처럼 원색적이고 노골적으로 판단할 깜냥이 되는 사람인가?
특히 국악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대금에 비하면 플룻은 앵앵거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교한 건 천박하기 그지 없다.
국악의 아름다움은 국악 자체로써 강조하면 되는 일이다.
모짜르트 이팩트나 천재 신화를 비판하는 건 나름 의의가 있는 일이나, 모짜르트 자체가 별 거 아니라느니 그 음악이 깊이 없는 달콤한 과자에 불과하다느니 라는 식으로 나오는 건 경청할 가치가 없는 소리다.

이 책에서 공감했던 부분은 서양 고전 음악의 권력화를 비난하는 부분이었다.
천재란 사람들의 과도한 기대가 만들어 낸 발명품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마이클 셔먼의 책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대체 모짜르트가 단 한 번의 수정도 없이 처음부터 완벽한 악보를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냔 말이다.
주체성을 갖고 내 식대로 듣는 것, 어쩌면 예술을 감상하는 모든 감상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지도 모른다.
임동창이라는 퓨전 국악인이 소개되는데 이런 적극적으로 자신감 있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너무 오버해서 서양 클래식 듣는 사람은 죄다 서구 제국주의에 종속되어 있다는 식으로 매도하면 그 때부터는 방향을 잃고 만다.
서구 사회도 그렇지만 요즘은 대중음악에 비해 클래식이 하도 밀리고 있어서 그나마 젊은이들 사이에서 클래식을 듣자는 바람이 부는 걸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서구에서는 노인네들이나 공연장에 가는데 우리나라는 서구 선망 때문에 젊은이들이 저런 한심한 음악을 들으러 간다고 비난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극단적인 논리에 한숨이 나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악이나 재즈 혹은 민속음악이 클래식 보다 우월하다는데 이런 비교 자체가 벌써 문제가 있지 않을까?
클래식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면 그것도 틀린 주장이나 반대로 그들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냔 말이다.

나는 어떤 예술이든 사회적 위상이나 이른바 권력 속성에 좌우될 필요 없이 자기만의 눈과 귀로 즐겨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책을 읽은 것은 지적이고 교양있는 척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 요즘 책 많이 읽는다면 오히려 따분한 사람으로 본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그 완벽한 충족감과 지식욕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클래식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귀에 듣기 좋고 가끔 생기는 감정의 고양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루벤스나 뒤러의 그림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 게 지적인 체 하려고 일부러 고생스럽게 아무 감동도 없는데 하는 일이겠는가?
마음으로부터 느끼는 감동, 속에서 올라오는 울컥 하는 기분, 나도 모르게 고양되는 의식들.
직업적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스스로 느끼는 그런 강렬한 미적 체험의 즐거움 때문에 기꺼이 돈과 시간을 들여 예술품을 감상할 것이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재즈나 국악에도 관심이 생기긴 했다.
다양성의 원리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일이므로 보다 많은 민속 음악들이 소개되고 각 분야에 자극을 줘서 새로운 형식들이 많이 등장하면 좋겠다.
한 가지 더 비판하고 싶은 것은 저자의 그 과도한 오리엔탈리즘 극복 의식이 오히려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으로 흐르고 심지어 보편적인 정서나 과학까지 무시하는 옥시덴탈리즘은 아닌지 하는 점이다.
의학은 그저 의학일 뿐이다.
인간의 몸을 보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사회적인 그런 담론의 수준이 아니고 실제로 몸의 작용과 기능, 질병의 원인과 병인론에 대해 살펴본다면 민족의학이나 서양의학이니 하는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어설픈 사회학자들이 의학에 대해 관념론적인 시각을 들이대면 참 한숨이 나온다.
의학에 대해 공부를 좀 하고 떠벌였음 좋겠다.
민족의학, 민족음악 이런 구별짓기 자체가 벌써 보편성을 무너뜨리고 차별적인 시선을 만드는 시도는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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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두 얼굴
김태훈 지음 / 창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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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이고 재밌게 읽은 책이다.
참고문헌이나 각주 하나 없이 온전히 지문만으로 720페이지를 채운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시각으로 쓰여진 책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보통 내 독서 속도가 한 시간에 60페이지 전후인데 이 책은 100페이지까지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문장이나 내용이 쉽고 재밌다.
아마 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썼다면 보다 전문적이고 문장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여튼 나처럼 일반인이 교양서로 읽기에 적당한 책으로 마치 소설을 읽는 것과도 유사했다.
마지막에 이순신의 경력을 분석한 장은 꽤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었다.
당시 벼슬을 현재의 공무원 직위와 비교한 점이 특이하고, 이순신의 억울한 파직이나 파격적인 승진 등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나름대로 비평한 부분도 신선했다.
이런 부분이 바로 일반인의 새로운 시각이 아닐까 싶다.
물론 현재의 관점으로 당시를 본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해석할 때는 사료와 별 상관이 없는 당시 정세나 문화, 풍습 등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진실에 가까운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에 꽂혀 다시보기를 하는 중이라, 여기 나온 전투들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드라마만 볼 때나, 책만 볼 때와는 다른 독특한 문자와 영상의 결합이었다.
사실 이 책은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고,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반해서 보다 자세히 알고 싶은 욕구에 다시 집어든 책이기도 하다.
제목은 <이순신의 두 얼굴>이라고 다소 자극적으로 붙였지만 실제 내용은 이순신의 상황을 보다 현실적으로 분석한 정도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가 파직을 당했다면 일반적으로 상급자가 탐욕스럽고 우매해서 파직시켰다는 식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요즘 현실과 비추어 봤을 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정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식으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확실히 그는 드라마에 나오는대로 꽤 과묵하고 진중하며 대담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 이순신이 너무 침묵을 지켜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여러 일화들을 살펴 봐도 그는 꽤나 고집스럽고 주관이 확실하며 시시껄렁하게 농담따먹기를 한다거나 허세를 부리는 식의 위선을 굉장히 싫어했을 것 같다.
방향이 정해질 때까지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고, 한 번 정하면 죽음을 불사하고 밀고 나가는, 전형적인 무관의 성격 같다.
드라마가 보여 주는 이순신의 이미지와 많이 흡사하다.
그러고 보면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 작가가 꽤 연구를 많이 한 것 같다.

책과 드라마의 재밌는 차이점은, 이순신의 실각을 보는 관점이다.
드라마에서는 당연히 이순신에게 무리한 부산 출격을 요구한 정부, 특히 선조를 비난하지만, 책에서는 오히려 이순신의 지나친 신중함이 그를 권좌에서 끌어 내린 것으로 해석한다.
어쨌든 가토는 첩보에 입수된 대로 그 시각에 도해를 했고, 이순신은 왕명을 거역했으니 말이다.
전격적으로 체포를 명령한 드라마와는 달리, 책에서는 조정이 꽤나 신중하게 갑론을박 했음을 보여 준다.
실록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니 신뢰할 수 있다.
뜻밖에도 처음부터 무조건 체포를 주장한 것을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이순신 체포에 가장 열성적으로 나오는 윤두수, 윤근수 형제는 원균과 반목하고 있으니 원균을 통제사로 임명하고 이순신은 전라 좌수사로 체직시키자는 의견을 낸다.
원균과의 관계는 난중일기에도 무수히 드러나지만, 상부에 올린 공식 보고서에서도 가감없이 나온다.
조정에서도 둘의 불화를 많이 염려하였고 이순신이 심지어 통제사가 된 후 원균 때문에 사임하겠다는 초강수까지 두기도 한다.
조정에서는 한쪽 편을 드는 대신, 원균을 수사에서 병사로 자리를 옮겨 앉게 함으로써 무마한다.
이순신의 강직한 성품과 역시 꼿꼿한 원균이 꽤나 대립했던 것 같은데, 궁극적으로 봤을 때 이순신이 상관임에도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계속한 원균의 성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여튼 처음에는 부산 진격을 거부한, 어찌 보면 항명을 한 이순신을 조정에서는 품계를 낮추자는 온건한 의논을 한다.
뜻밖에도 유성룡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순신을 비난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천거한 사람이 왕명을 거역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다 보니 그 역시 보신책으로 역공세를 편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전라좌수사로 내려 앉게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곧 사간원 등에서 들고 일어나 이순신은 압송된다.
어쩌면 대전에서만 대신들이 점잖은 논의를 하고, 뒤에서 여론을 일으킨 건지도 모른다.
하여튼 선조는 드라마와는 달리, 이순신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갖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나라를 전쟁에서 건진 영웅에게 호의를 갖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어쩌면 지방의 무관 따위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여러 번 승리를 거두니 그런 놈도 있었구나 하고 겨우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이순신이 항명하여 압송이 논의됐을 때 유성룡에게 그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서 심지어 글을 할 줄 아는가, 이런 초보적인 질문까지 하니 말이다.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나라에서 더구나 문신들이 지배하는 조정인데, 국왕이 지방의 장수 하나에 극한 질투감을 보인다는 건 역시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설정 같다.

하여튼 이순신은 갑자기 여론이 악화되면서 서울로 불려 올라 간다.
전쟁 중에 수군 최고 지휘관을 경질하는 건 상당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조정에서는 그가 왜군의 부산 진입을 막지 못한 것을 정유재란의 결정적 시작으로 판단했고 더군다나 왕명을 우습게 안 죄를 엄중히 추국한다.
이것은 이순신의 신중하고 대범한 성격 탓이가도 한 것 같다.
그는 난중일기와 선조실록의 여러 자료에서 어지간해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 신중론을 편다.
그래서 초반에 원균이 왜군에게 패한 후 구원을 요청하는데도 명령을 받지 못했다고 도와주지 않음으로써 그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아마 현장지휘관의 판단으로 봤을 때 부산 진격은 무리수가 많다고 생각하여 왕명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판단을 믿고 거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그의 대범함이 나온다.
아무리 현지 판단이 그렇다 해도 왕에게서 내려온 명령을 거부하는 건 일종의 항명이니 하는 시늉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는 왜군이 바다를 건너 오는 동안 절대로 함대를 움직이지 않는 극히 신중한 자세를 편다.
보통 진중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그 사건이 있기 얼마 전 위험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광해군이 난중에 무과를 실시하려고 하는데 자신 휘하의 수군을 한 명도 안 보내고 일종의 보이콧을 한 것이다.
광해군은 당시 분조를 이끌며 전선에서 왕의 대행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수군에게 불리하다 하여 과거를 거부한 것은 굉장히 도발적인 행위일 뿐더러 전시였기 때문에 용납됐을 것이다.
광해군은 당장 처벌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꾸짖었으나 결국 이순신의 요청대로 진중에서 시험을 보되, 말타기 등과 같은 수군에게 불필요한 시험은 안 보는 걸로 결론을 짓는다.
당시는 그냥저냥 넘어갔으나 이순신이 몰리게 되자 이 때 사건도 큰 악재로 작용한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그는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왕명도 거부하는 굉장한 배포와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부당하다고 여기면 상관에게 맞서는 장면이 난중일기나 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결정할 때는 오래 생각하고 목표가 서면 뒤도 보지 않고 돌격하는 것, 그런 신중함과 대범함이 그를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조선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냉철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그의 일기에는, 법을 어겼다 하여 곤장을 친 예가 무수히 나온다.
또 군사가 부족하여 친척이나 이웃이 대신 메꾸는 관례를 나라에서 민심 때문에 금지하자 전쟁 중에는 허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한다.
그에게는 적의 섬멸이라는 대의가 우선이었을 것이고, 이런 점은 그가 단지 인기에 영합하는 리더가 아닌 냉철하고 무서운 지휘자임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영웅적인 면모가 더욱 돋보일 뿐더러 모든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전쟁 중에 첩을 얻어 주위를 소란하게 한 원균과는 달리, (넬슨 역시 해밀턴 부인과 간통을 저지른 사건이 책에 등장한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마저 멀리한 자제심을 보인다.
꽤나 엄숙하고 무서운 사람이었을 것 같다.
군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명량해전처럼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는 심지어 대장선이 가장 앞장 서 적을 공격하는 대범함과 솔선수범을 보여 준 이순신, 확실히 승리하는 이에게는 그만한 능력과 위대함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드라마에서 보여 준 이순신의 이미지와, 사료를 바탕으로 그려낸 이순신의 이미지가 거의 일치하여 읽는 내내 흐뭇하고 즐거웠다.
이순신의 두 얼굴이 아니라, 영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 준 셈이다.
한 가지 특이할 만한 사실은, 끔찍한 고문을 당한 드라마와는 달리 책에서는 아마도 심한 고문은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점이다.
김탁환 소설을 봐도 고문 장면은 꽤나 실감나게 그려지고 그가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고 묘사한다.
아마 소설의 끔찍한 장면을 드라마에서 영상으로 재현한 것 같은데 나도 그 장면을 보면서 너무 잔인해 저렇게 심하게 구타를 하고도 과연 살 수 있을까 염려가 됐었다.
당시는 항생제나 수액도 없었을텐데 감염 문제는 대체 어떻게 해결을 했을지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저자는 이순신이 28일 동안 하옥된 후 즉시 백의종군 길을 떠난 걸로 보아 심하게 몸을 상하지는 않았을 거라 추론한다.
일기를 봐도 하옥된 일에 대한 심회나 원망 따위는 나와 있지 않다.
내 생각으로는 너무나 치욕스러워 아예 기록을 안 한 건 아닐까 싶다.
하여튼 그가 그 후로도 특별한 문제 없이 전쟁을 수행한 걸 보면 52세라는 나이를 생각해도 그렇고 결국 조정에서 사형 대신 살려 보냈으니 극악무도한 고문을 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김덕령처럼 옥사했을 것이다.
아마도 수군통제사이자 전쟁영웅이라는 그의 카리스마와 과거의 전공이 많이 참작되어 어느 정도는 일반 잡범들과는 달리 예우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항명죄로 끌려온 죄인이고 사형이 논의될 지경이었으므로, 또 조선 시대의 끔찍한 형벌 제도를 생각해 보면 하옥 후 취조가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수군 최고 지휘자에서 (그냥 지휘자도 아니고 모든 해전을 승리로 장식한 이 전쟁 영웅이) 고문을 받는 죄인이 되고 결국은 일개 병졸로 떨어졌다는 그 사실 자체가 모욕스럽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지 모른다.
영웅은 생명보다 명예가 더 우선이지 않은가?
하여튼 원균이 패한 후 바로 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점이나, 백의종군 할 당시에 권율도 그를 예우하여 군관을 따로 붙여 준 걸 보면 그의 위상이 절대 곤두박질 친 건 아님이 분명하다.

드라마에서 본 김명민의 이미지가 그대로 책 속의 이순신에 투영되어 즐거운 독서가 됐다.
작가가 이순신의 캐릭터를 잘 잡아 냈고 배우가 훌륭하게 소화해 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의 위대한 영웅을 눈에 보일 듯 실체가 잡히게 만든 것 같다.
회사원이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게 성실하게 사료 분석을 하고 꼼꼼하게 집필한 저자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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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2013-11-1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책을 읽었습니만 리뷰를 잘 쓰셨네요. 제 블로그에 책 소개란이 있는데 거기에 옮겨갑니다.
주인장의 허락도 없이 옮겨가서 미안합니다. 원치 않으시면 제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삭제해 드리겠습니다.

karamos@naver.com 입니다.
http://blog.naver.com/karamos 제 블로그입니다.
 
무간도 Ⅲ 종극무간 [dts]
유위강 외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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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 무간도 3
사실 이 영화는 여명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1편에서 유덕화에게 반했다면 3편의 주인공은 여명 같다.
비록 영화 홍보에는 별로 안 나왔지만.
부드럽고 착하게 생긴 여명이 꽤나 냉철하고 어찌 보면 좀 야비하기까지 한 경찰 간부 역을 맡아 열연한다.
마지막에 유건명의 총에 맞아 죽는다는 설정은, 모든 주인공들이 다 죽었으니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처음 볼 때는 여명의 스타일리쉬한 모습에 반해 스틸 사진들을 컴퓨터 배경 화면에 깔아 놓기도 했었다.
다시 보니 처음처럼 멋지게 보이지 않고 인터뷰에서 여명이 직접 말한대로 상당히 나쁜 경찰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진영인처럼 순수하고 성실한 경찰이 아니라 음모술수에도 능하고 능숙하게 범죄자들을 다룰 줄 아는, 닳고 닳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역시 실력 하나는 최고로 젊은 나이에 보안부 반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아 내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엘리트에 대한 동경 의식 때문인지 이런 양반장의 능력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멋지게 보였다.
그러나 결말은 너무 처참하다.
모든 게 밝혀진 마당에 부하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첩자의 총에 맞아 죽다니.
첫 장면에서 역시 첩자에게 협박을 당할 때 전혀 겁먹지 않고 오히려 그를 눈빛으로 몰아 세워 자살하게 만들더니만, 역시 유건명과의 대결에서도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하려다 그만 자극받은 유건명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너무 대범한 게 문제라고 할까?
부하가 진영인에게 이런 말을 한다.
형이 좋은 이유는 실력도 뛰어나지만, 싸울 때 두려움이 없어서라고 했다.
어제 본<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이순신 역시 아무리 두렵고 끔찍한 상황에서라도 피하지 않고 대범하게 정면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역시 리더나 영웅이란 담대한 용기를 지닌 족속들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건명이 양반장과 한침이 밀담을 나눈 테이프를 분명히 듣는 걸 봤는데 왜 이게 갑자기 유건명의 과거 한침과의 밀담 테이프로 바뀐 건지 좀 아리송하다.
처음 볼 때는 유건명이 정신분열증이 생겨 자신이 유건명이라는 첩자를 잡고 있다고 착각한 걸로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런 허술한 설정은 아닌 것 같고, 심등에 의해 모종의 조취를 양반장이 취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속인지 모르겠다.
진영인이 죽기 전 양반장과 심등 셋은 서로가 같은 편임을 알게 됐고, 진영인이 죽게 되자 양반장은 그를 쏜 유건명에게 주목하고 덫을 쳐 놓은 것이다.
쫓고 쫓기는, 속고 속이는 두뇌 싸움 같다.
기회를 달라고 외치는 유건명의 마지막 몸부림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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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 2 - 혼돈의 시대 [dts]
유위강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DVD에 딸린 서플이 보고 싶어서 빌리게 됐다.
무간도는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인상깊었던 영화다.
캐릭터들이 갖는 갈등 구조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워 굉장히 몰입하면서 봤던 영화다.
실망스럽게도 서플은 너무 약하다.
어떤 서플은 아예 영화를 통째로 다시 상영하면서 해설이 들어가는 것도 있던데, 무간도는 CD를 두 개나 만들면서도 내용적인 면은 너무 약하다.
특히 메이킹 필름의 내용을 편집해 다시 인터뷰에 갖다 붙인 행위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기왕이면 감독이 각 인물들의 캐릭터나 행동이 갖는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좋았으련만.
많은 아쉬움이 남는 서플이다.

2편은 다운받아서 보느라 번역이 취약해서 정식으로 다시 DVD로 보게 됐다.
두 번 본 거라 그런지 아니면 번역이 나아서 그런지 제대로 이해를 했다.
그 때는 이상했던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황국장이 왜 경찰을 그만두려고 했는지, 한침이 왜 예영효와 담판을 벌이게 됐는지, 진영인은 어떤 심경의 변화를 보였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서사적으로 탄탄한 구조라 전개가 억지스럽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해서도 성공했던 것 같다.
<디파티드>도 봤지만 마틴 스콜세지라는 감독의 성향 때문인지 <무간도>보다 훨씬 더 암울하고 어둡다.
눈빛이 너무나도 선하고 매력적인 양조위와 퇴폐적이기까지 한 불안증의 극치를 보여 준 디카프리오와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된다.
원작이 훨씬 더 따뜻하고 낭만적이다.

2편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유건명의 성격이다.
사실 나는 유덕화의 팬이기 때문에 무간도 시리즈에서도 유건명을 중심으로 봤다.
그래서 유건명 역시 착한 사람이지만 현실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식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2편을 보니 그는 상당히 잔인하고 냉철한 인물이며 조직폭력단의 세계에서 자란 사람다움을 느낀다.
진영인이었다면 아마도 사랑하는 여자가 아무리 모욕을 준다 해도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유가령의 나이가 너무 들어 보여 새파란 유건명이 사모하기에는 뭔가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여배우 자체로는 충분히 매혹적이다.
착하기 그지 없는 우리 귀여운 양조위의 아내가 된 점이 질투난다.
하여튼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반대파에게 밀고하여 태연하게 공항에서 죽음을 지켜보는 유건명에게 섬뜩한 살의를 느꼈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라도 그녀가 유건명의 전화를 받았다면 어쩌면 그는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리는 마지막까지도 남편 한침에게 성실했다.
안타깝게 전화를 거는 유건명을 길 건너로 바라보면서도 냉정하게 전화기를 집어 넣어 버렸고 결국 그녀는 달려오는 차에 치여 죽고 만다.

아무리 의절한 아버지라 해도 그 아버지를 죽인 황국장을 용서하고 여전히 스파이 노릇을 성실하게 해내는 진영인의 모습에서 밝은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져 연민의 감정이 생겼다.
그에게도 가족에 대한 애착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예곤이나 아들 예영효는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는 전형적인 마피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에서 특히 오진우의 연기에 주목했는데, 인텔리처럼 굴면서도 실상은 잔인하고 냉정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가족에게는 한없이 약한 마피아 보스의 모습을 너무나 잘 소화해냈다.
비록 다른 유명 출연자들에게 가려 인터뷰 하나 못 땄지만 말이다.
황국장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조롱당한 후 분노를 참으면서 술을 따르고 묵념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립탐정까지 고용해 4년에 걸쳐 기어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고야 마는 그 집념도 무시무시하다.
그러면서도 이복동생인 진영인에게는 한없이 따뜻하다.
어쩌면 진영인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할지라도 그를 죽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형을 배신할 수 밖에 없는 진영인의 괴로움은 비록 영화 전반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으나 상황적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어두움과 악의 세계에서 벗어나 선의 세계에서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마도 진영인을 끝까지 충실한 경찰로 남게 했을 것 같다.
바다가 보이는 사무실을 달라는 그 소박한 청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유덕화나 양조위의 훌륭한 연기에 비해 진관희나 여문락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여 아쉬움이 남지만 젊은 시절의 스타일리쉬한 모습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의의를 둔다.
오진우나 황추생, 증지위의 연기가 훌륭하게 뒷받침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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