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역사 - 왜곡되고 과장된 고대사의 진실을 복원한다
이종욱 지음 / 김영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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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재독하게 됐다.
<고구려의 발견>을 읽은 후 다른 관점에서 비교하기 위해 다시 집어 든 책이다.
당시 처음 볼 때만 해도 책이 너무 두껍고 내용이 복잡하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읽으니 확실히 쉽고 진도도 빨리 나간다.
기본적으로 <고구려의 발견>과 거의 겹친다.
워낙 고구려사 자체가 인용할 자료가 적어서 그런 것 같다.
다만 해석의 차이는 명확히 보인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중국에 대한 고구려의 조공이나 책봉 문제를 역사서에 나온 그대로 인정하고 있고, <고구려의 발견> 저자인 김용만씨는 중국측의 기록이니 신뢰할 수 없으므로 우리 입장에서 보자는 쪽이다.
즉 고구려가 단지 무역의 필요성으로 교류한 것을 조공했다고 썼다는 식이다.
물론 나는 전적으로 이종욱 교수의 입장을 지지하는 바다.
왜냐면 그게 가장 간단명료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법칙이 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은 가능하면 간단할수록 좋다.
이것저것 온갖 가정법을 갖다 붙여 마치 고구려가 중국 왕조에 대해 우위에 있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고구려인이 스스로 기록한 역사서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쪽 입장만 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재판할 때도 문서로 남는 게 증거가 되지 정황증거는 기록에 비하면 증거력이 약한 법이다.
유물적 발굴과 비교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김용만의 주장처럼 어처구니 없게도 북위가 오히려 고구려에게 조공했다는 상식 이하의 발언은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다.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다고 해서 중국 문명에 종속된 것은 물론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고구려는 외교 정책에서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다.
거대한 중국 문명에 맞서 독자적인 문화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쓴 그 기상이 놀랍고 그래서 후손인 우리가 위대하게 평가하는 것이지만, 고구려 역시 후대인의 자부심을 위해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존재했던 실제의 국가였던 만큼 당시 최고의 강대국인 중국 왕조의 국제 질서에 순응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종욱 교수의 해석처럼 오히려 고구려가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다는 점이 고구려가 중국 왕조에게서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증거로 이해된다.
조선과 명, 청의 관계처럼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는 관계는 지방관을 파견해 직접 지배하는 지역과는 전혀 다르다.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제 질서에 잘 순응하고 또 적절하게 대항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한민족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고, 당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일본보다 앞섰던 게 아닌가?
대체 왜 이런 당연한 사실을 부끄러워 하고 부자연스러운 해석을 자꾸 가해서 역사서를 왜곡하는지 모르겠다.
빨리 통일이 되서 고구려의 유물이나 유적지 발굴이 더 활발해지면 좋겠다.

책의 또다른 관건은 역시 광개토대왕비의 해석 문제다.
이성시가 쓴 <동아시아 왕권의 교역>에 따르면 비석의 고의적인 훼손 문제는 음모론에 불과함이 밝혀진 이상, 과연 왜가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듯 하다.
저자는 김용만의 의견과 다르게, 백잔이라고 표현한 것은 고국원왕을 죽인 백제에 대한 분노 때문이지 정말로 백제나 신라를 속국으로 삼지는 못했다고 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20년 전에 고구려의 국왕을 죽인 백제가 짧은 시기에 갑자기 속국이 됐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또 백제는 신라 못지않게 중국의 왕조에 고구려를 쳐 달라고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낸다.
향도가 되겠다는 말도 한다.
그러므로 신라의 통일을 외세를 끌어들인, 어쩌고 하는 식으로 보는 건 현대의 관점에서 당대를 해석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일이다.

비교적 상세하게 사료를 인용해서 이번 기회에 많은 걸 배웠다.
고구려에 대한 유적 발굴이 활발해져 보다 체계적인 고구려사가 쓰여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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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 유재현의 역사문화기행
유재현 지음 / 창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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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서재 지인에게 소개를 받아 꼭 읽고 싶던 책 중 하나로 올라왔던 책이다.
그 분이 극찬을 하길래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별 3개 이상은 주기 힘들 것 같다.
수준이 떨어지는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감동도 주기 힘든, 보통의 평범한 기행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차이나 3개국에 관한 관심은 증폭되었다.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통독해 볼 생각이다.
확실히 기행문을 잘 쓴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단지 사진 몇 장과 루트 몇 개, 그리고 감상 나부랭이 좀 싣는다고 해서 다 책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제발 작가들이 알아줬음 좋겠다.

인도차이나 반도는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국과 싸워서 독립을 쟁취한 놀라운 나라 베트남이, 그 후로 캄보디아나 라오스에 군사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결국 내 힘이 약해서 당할 뿐이지 나도 강하면 남을 치게 된다는 것, 이게 모든 국가의 본성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미 제국주의 어쩌고 하는 것도 결국은 힘약한 나라에서 도덕이나 명분 부르짖는 건 아닌지 씁쓰레해진다.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베트남의 땅굴 체험기였다.
기어서 땅굴을 통과하는데 가이드가 갑자기 안 보이자 저자는 죽을 것 같은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해야 하면 하는 거라는 이런 수준의 체험이 아니라, 정말 안 하면 죽기 때문에 최후의 선택으로 하게 되는, 끔찍한 길이라고 한다.
저자의 묘사가 생생해 나도 그 공포감을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가 바로 눈 앞에 있을 때, 과연 어떤 인간이 이데올로기 따지고 사상 어쩌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호치민의 유훈 통치를 비판한 점도 저자의 분별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쿠바를 인민의 천국 어쩌고 하는 여행기가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이 사람은 비교적 사물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관심있는 곳은 역시 앙코르 와트였다.
얼마 전에 읽은 인도차이나 관련 서적 때문에 약간은 지식이 생겨 조금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역시 직접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느끼는데 한계가 있어 많이 아쉽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넓고 볼 곳은 참 많다.
인도차이나는 우리에게 워낙 먼 곳이라 그저 관광지 이 정도로 밖에 생각을 못했는데 인류 문명에 이바지한 위대한 유산들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일종의 당위가 생겼다.
이래서 책을 읽고 여행을 하면 인식의 폭이 넓어지나 보다.

책 자체는 디자인도 괜찮고 사진도 비교적 고른 편이다.
다른 관련 서적들을 읽도록 유도했다는 점에서, 또 인도차이나에 대한 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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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Mr. Know 세계문학 44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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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너무 예뻐서 관심을 갖게 된 책이다.
영화 제목이라는 점도 한 몫 했다.
열린책들의 미스터 노 시리즈는 어떤 책이 됐든 읽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디자인이나 판형이 참 예쁘다.

춘천에서 광주 가는 버스 안에서 다섯 시간 동안 읽은 책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원래 추리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다 보니 쉽게 빠져 들 수 없었고, 버스 안이라는 물리적 환경도 한 몫 거든 것 같다.
대충 줄거리만 맞춰 가면서 읽다가 집에 와서 다시 부분부분 재독을 했더니 비로소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이 됐다.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문체도 이른바 하드보일드 스타일에 맞게 딱딱 끊어지는, 군더더기 없는 단문들을 선사한다.
헤밍웨이도 이런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내가 읽어 본 헤밍웨이 소설과는 꽤 다른 스타일이다.
책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등장인물의 행동을 중심으로 짧은 문장으로 사건 전개를 위주로 진행시킨다.
이런 걸 보면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정말 어린이용 추리 소설 같다.

몰타의 매라는 전설이 실제로 있긴 한건지 궁금하다.
아니면 작가가 다빈치 코드처럼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제목이 일단 흥미롭다.
사실 몰타의 매를 찾는 과정 자체는 크게 긴박감이 넘치는 건 아니다.
그냥 세 사람이 암살을 당했을 뿐, 살인사건 자체가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을 선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이끌어 가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가 훨씬 더 사건을 긴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영화로 한 번 보고 싶다.
여주인공 브리지드 역을 대체 누가 맡았을지 궁금하다.
무려 세 번이나 영화화 됐다고 하는 걸 보면 꽤나 흥미진진한 소재인 것 같다.
결국은 이 여주인공이 모든 사건의 핵심인 셈인데, 마지막에 샘 스페이드가 브리지드를 경찰에 넘기면서 그녀에게 던지는 말이 이 소설의 압권이다.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것, 냉정하게 사랑과 죄값을 구분하는 것, 스페이드라는 탐정의 캐릭터와 정말 잘 어울리고 앞쪽에 삽입된 플랫그리드라는 인물의 이야기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해설에서도 그 부분이 구성상 매우 훌륭하다는 걸 지적한다.

사실 탐정이라는 직업 자체가 우리 문화권에서는 생소하다 보니 100% 완벅하게 몰입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저자의 글솜씨 하나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표지를 보니 작가가 꽤나 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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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불행하다
카리 호타카이넨 지음, 김인순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너무 독특한 소설이다.
여러 명의 관점에서 쓴 것도 그렇고 결말도 특이하다.
핀란드라는 나라는 너무 생소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소설로 접하고 보니 호기심이 생긴다.
책 표지가 일단 예쁘고 누워서 읽어도 괜찮을 만큼 손에 딱 잡히는 작은 크기가 맘에 든다.
디자인을 굉장히 발랄하게 했지만 내용은 좀 우울하다.
핀란드는 인구밀도가 굉장히 낮다고 들었는데 역시 이 나라도 수도 헬싱키에 인구가 집중된 모양이다.
이런 복지국가에서도 주택 문제 때문에 이혼 문제까지 들먹여야 하다니, 한숨이 나온다.
여기는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에서 사는 게 바람직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야 뭐, 워낙 땅이 부족하니 고급 아파트를 찾는 거겠지만 사실 아파트는 이 소설의 표현대로 연립주택 내지는 공동주택 아닌가?
수많은 사람들과 하나의 건물을 공유하면서 이런저런 눈치를 살펴야 하는, 비독립적인 주거 공간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마당 있는 집에서 당연히 정원 가꾸며 살고 싶을 것이다.
그것도 서울 한 복판에서.
정말 대한민국 0.1%나 그런 꿈을 이루고 살겠지.
책에도 어떤 부동산 업자가 이런 말을 한다.
도심에 있는 주택 값을 깍으려고 하자, 그 돈으로 주택 사려면 교외에나 가 봐라, 그럼 넓고 좋은 집 많을 거다, 대신 연극이나 콘서트 같은 건 포기해라, 까페라고는 24시간 주유소가 전부일 거다...
결국 사람들은 직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문화를 즐기기 위해, 또 교육 때문에 도시로 도시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것 같다.
인구가 힘이라더니, 시골은 사람이 없으니 문화 생활의 기반이 진입할 수가 없고, 그래서 더욱더 사람들은 시골을 떠나고...
악순환이다.
서울대나 국제고 같은 데를 깡촌 시골에 지어 놓으면 안 될까?
미국의 대학 도시들처럼 말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마티는 경찰관의 표현대로 이성적인 목표를 가졌을 경우 매우 착실하고 완벽하게 해냈을 사람이다.
집요하고 너무나 철저하며 완벽해서 여기서 한발짝만 더 나가면 정신병자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실제로 그는 부동산 업자의 뒤를 밟아 협박전화를 하기도 하고, 남의 정원에서 소변을 보고 그 주인에게 전화를 걸기고 한다.
주인공이 유쾌하게 묘사되긴 하지만 다소 위험한 행동들이다.
특히 마지막에 원하는 집을 발견하고 집주인을 밧줄로 묶어 협박하는 장면은 경찰관에게 체포되기 충분하다.
아무 인연도 없는 집주인에게 다짜고짜 찾아가 내가 당신을 2층집에서 죽을 때까지 모실테니 시세의 70%만 받고 집을 팔아라, 이게 말이 되냔 말이지.
어쩌면 헬레나는 마티의 그런 집요한 성격에 질려 이혼을 한 건지도 모른다.
보다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면 좋았으련만!

<핀란드의 딸들>이라는 기획 프로그램에서 가사일에서 남녀분담이 거의 완벽하게 이뤄진 모습을 보여 줬는데 책에서는 한 술 더 떠 마티가 모든 요리를 책임진다.
헬레나는 그와 이혼한 후 스프 하나 제대로 끓이질 못해 인스턴트 스프를 데워서 아기에게 먹일 정도다.
식사 때문에 헤어진 남편을 그리워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오히려 헬레네는 남편 마티가 사회 생활을 전혀 하지 않고 오직 집에만 틀어박혀 요리만 하는 걸 못 견뎌 할 정도였다.
정말 서구 사회는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더불어 주거 공간에 대한 욕심은 만국 공통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빨리 돈 모아서 나도 내 집 마련해야겠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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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로 먼저 접한 책이다.
3시간이 넘는 다소 지루한 영화이기도 했는데 분위기가 매우 독특해서 비교적 열심히 봤던 것 같다.
특히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워낙 멋지게 나와 인상깊게 본 영화다.
소설 속의 토마스는 남자 배우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 같은데 테레사와 줄리엣 비노쉬는 좀 다른 느낌이다.
영화 속의 테레사는 보다 주체적이고 토마스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소설 속의 테레사는 줄리엣 비노쉬가 풍기는 이미지 보다 훨씬 더 연약하고 종속적인 느낌을 준다.
어쩌면 줄리엣 비노쉬라는 여배우가 주는 이름값 때문에 영화 속에서 더 큰 비중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꽤 있었는데 책을 보니 그제서야 주인공들의 행동이 이해된다.
앞뒤 설명 없이 행동들만 보여 주다 보니, 사건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튀는 느낌을 줬던 것이다.
이래서 문학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보다.

테레사는 어머니로부터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름다웠던 어머니는 테레사를 임신하는 바람에 무능한 남자에게 시집가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바람둥이 두 번째 남자를 만나 끔찍한 인생을 산다.
그녀는 자기에게 전혀 반항하지 못하는 딸을 마음대로 조종함으로써 남편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또 자신의 미모가 시들어 가고, 딸이 점점 아름다워지는 것에 대해서도 질투하고, 육체를 조롱함으로써 아름다웠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인생을 사는 자기 자신을 동정하는 가학적 취향을 가진 여자다.
일종의 정신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 힘이 없는 테레사는 오직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길 소원했고 소도시에 나타난 젊은 바람둥이 의사 토마스에게 인생을 건 모험을 시도한다.
영화 속에서는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기 때문에 왜 느닷없이 테레사가 가방을 들고 프라하에 나타났는지 좀 뜬금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토마스 역시 이혼남으로 나온다.
그에게 섹스는 일종의 놀이로써, 테레사를 사랑하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여자들과 하룻밤을 지내는 걸 아무 갈등없이 해낼 수 있는 다소 특이한 남자다.
첫번째 결혼이 준 상처는 더 이상 결혼 생활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했고 테레사와의 결혼은 사회적 의미의 결혼이라기 보다는 오갈 데 없는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사는, 일종의 가족과 같은 그런 관계였다.
그러므로 그는 테레사에게 정절을 지키지 않고 그것 때문에 테레사가 괴로워 하는 것을 무시한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참 독특한데, 나는 테레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가진 게 없다.
경제적인 것, 감정적인 것을 모두 토마스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가 떠나가 버릴까 봐 두려워 한다.
그런 비참함이 싫어 스스로 토마스 곁을 떠나기도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일종의 운명과 같은 관계라 토마스는 다시 위험천만한 프라하로 테레사를 따라 돌아온다.
그러나 역시 재결합 후에도 토마스의 가벼운 사랑놀음은 그치지 않고 테레사는 사랑과 섹스가 별개일 수 없는 자신의 답답한 현실 때문에 괴로워 한다.
그녀는 토마스와의 관계에서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비참해 한다.

사비나는 꽤 매력적인 여자로 나온다.
영화에서는 줄리엣 비노쉬에 가려 큰 비중이 없었는데 책에서는 사비나의 관점이 자주 등장한다.
또 공산주의 치하의 답답한 사정도 상세하게 드러난다.
러시아가 지배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개인들에게 미친 영향이 세 사람의 입장에서 자주 묘사된다.
문득 <닥터 지바고>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러시아 혁명과 유리 지바고 혹은 라라와의 관계처럼 말이다.
취리히에서 사귄 애인 프란츠는 잘 생기고 잘 나가는 매력남으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좀 형편없이 나왔다.
또 사비나가 그를 떠난 이후 비참해 하는 장면에서 끝났는데 소설을 보니 아내와 이혼 후 여자 제자와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걸로 나온다.
이 사람도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꽤 비중있게 그려진다.

이 소설 최고의 백미는 느닷없는 죽음에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그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는데 소설에서도 두 사람은 시골로 내려가 모처럼의 갈등없는 시간을 보내다 어처구니 없게도 브레이크 고장으로 동시에 사망하고 만다.
책을 쓰는 시점도 독특하고 심리 묘사도 훌륭하고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었다.
위대한 문학과 통속 소설의 차이는, 바로 이런 심리 묘사, 혹은 배경 설명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사건 위주로 진행되는 소설이 아니다 보니 중간중간 맥을 놓칠 때가 많다.
영화도 비교적 소설의 느낌을 잘 표현했지만 역시 책을 읽지 않는다면 제대로 영화를 감상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좀 더 지난 후 재독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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