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고대 - 아시아연대총서 5
이성시 지음, 박경희 옮김 / 삼인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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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문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다시 읽게 됐다.
220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다.
재일 사학자라는 저자의 신분 때문인지 일본과 한국 역사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인 관점을 취한다.
궁극적으로는 일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고대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누누히 언급되어 온 바지만, 민족이나 국사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기껏해야 19세기 말이고, 일본은 서양에 대해, 조선은 일본에 대해 대립항으로써 자기 규정을 위해 민족과 국사를 개발해 낸 것이므로 21세기의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역사학이 국민교화에 이용된다는 어느 학자의 지적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 같다.
임지헌 교수가 고구려사를 변경사로 보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에 대한 반론으로 만약 제 민족의 역사로 챙기지 않는다면 누가 그 역사를 의미있게 여기고 연구하고 발굴하겠냐고 현실적으로 무가치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국사를 넘어서자는 주장은 민족주의 역사관에서 한 단계 나아가는 방향임이 분명하다.

다시 한 번 확인한 바지만, 광개토대왕비문 조작설은 말 그대로 음모에 불과하다.
일본인 대위가 발견하기 전에 이미 먼저 뜬 탁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있지도 않은 주어와 목적어를 일부러 집어 넣어 고구려 쪽으로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한국 학계의 시도에 반대한다.
오히려 비문의 전체적인 형식으로 봤을 때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강조한 다음, 이렇게 힘든데도 불구하고 왕이 직접 친정하여 적을 섬멸했다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왜가 한반도로 넘어와 침략한 것은 사실이고,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 왜를 물리쳤다고 본다.
일본에서도 광개토왕에게 패한 것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대륙 진출이 좌절됐다고 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왜가 한반도에 침임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주장이야 말로 식민지 시대 내선일체를 주장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낸 근대의 소산물에 불과하다.
또 저자는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다는 주장도 억지라고 본다.
조공을 바치는 것은 강대국과 약소국의 차이 정도지, 정치적 지배력까지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이런 해석이 제일 깔끔하고 무리가 없다고 본다.

저자는 수묘인들에 대해 자세히 논한 기사에 대해서도 고구려가 5부 체제를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한 예시로 든다.
이 점은 이종욱의 주장과 매우 다른데, 이성시는 계루부가 왕권을 계속 이어갔으나 끝내 부를 초월한 지배력을 갖기 못했다고 본다.
5부 체제설은 역사서에도 자주 등장하므로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고구려의 절대 왕정제를 주장한 이종욱의 의견에 더 무리가 따른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책봉 체제에 대한 언급도 신선했다.
저자는 일본 학자의 동아시아 문화권 주장에 비판적이면서도 당시 한자와 한역불교, 유교, 율령 등을 매개로 베트남, 일본, 삼국 등이 책봉 의식을 통해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여 있었음을 지적한다.
책봉은 중국의 화이사상을 받아들여 예를 행함으로써 중국 문화권의 일원이 된다는 일종의 형식 의례였다.
이 때 중국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수당 왕조의 권위를 빌어 각 나라들이 내부의 응집을 꾀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문화권을 논할 때 요즘처럼 중국에 대한 굴욕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고 하겠다.
한자 역시 내부에서 글자 사용에 대한 욕구가 커져셔라기 보다는 중국과 혹은 외국과의 관계 정립에 필요했기 때문에, 즉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는 큰 세계에 편입하기 위해 도입한 걸로 본다.
이런 걸 보면, 고구려 역시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아 동아시아 문화권의 일원으로 활약했음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고 왜 이 점을 비틀고 왜곡해서 중국 측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나온 시바 료타로에 대한 비판은,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감상적 직관주의가 얼마나 허망한 얘기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막연하게 이럴 것이다, 혹은 당위성에 입각해 이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과연 일본이 유교 대신 법가를 취해서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화폐경제를 발전시켜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에 의거해 오늘날의 근대화를 이뤘는가?
또 한국은 유교 문화에 함몰되어 가족주의 속에 개인과 상업을 억압하고 근대화에 실패했는가?
이런 관념론을 들을 때마다 이른바 지식인 내지는 방송인, 문화인 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 한지를 새삼 느낀다.

한 가지 언급해야 할 사실은 발해에 대하여 말갈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점이다.
중국은 당의 지방 정권으로 생각하고 한국은 고구려 지배층을 강조한다.
저자는 지배층이 누구냐가 한 나라의 민족 정체성을 결정하는 일이냐고 반문한다.
또 고구려 계층이 일부 지배층에 편입될 수는 있었겠으나 기본적으로 발해는 여러 말갈 부족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나라이고 신라와는 적대적인 관계였던 반면, 당과 일본과는 활발한 교류 활동을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현재 국사학계에서 남북국 시대 운운하는 것은 억지스럽다고 평한다.
과연 신라와 발해가 남국과 북국으로 나누어져 언젠가는 통일해야 할 한 민족으로 생각했을까?
그것이야 말로 현재의 남북한 분단 상황에 고대를 투영하는 비역사적인 관점이다.
나는 이 점에서 오히려 이종욱의 주장처럼, 고려는 명백히 신라의 인민과 문화를 계승했으며 신라의 통일이 갖는 의미는 훼손될 수 없다고 본다.
말갈족은 숙신, 읍루 등으로 불린 북부 말갈족과 예, 옥저 등에 살던 남부 말갈 등으로 나누는데 유목 집단이었던 만큼 다양한 부족이 있었고 후에 여진족 만주족 등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니 한 발 더 나가면 금나라도 한민족의 역사에 포함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만 하다.
발해는 주로 남부 말갈 중심으로 성장했고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북부 말갈족, 즉 흑수 말갈 쪽을 통합해 갔다고 한다.

민족주의 역사관의 문제점은 모든 민족이 자민족 관점에서 특히 오늘날의 정세에 비춰서 당위적으로 고대를 해석하므로 통합적인 시야를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근대에 투영된 고대사, 저자의 말마따나 일국사를 넘어서야 좀 더 입체적으로 고대를 복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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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의 모든 것
이우상 지음, 성학 그림 / 푸른역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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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재밌게 읽었다.
400페이지라는 분량이 꽤 되지만 사진이 많이 실리고 여행기다 보니 평이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 술술 잘 넘어갔다.
무엇보다 그 전에 도올의 앙코르 여행기와 메콩의 슬픈 그림자라는 책을 먼저 읽어 사전 지식이 있어서 쉽게 넘길 수 있었다.
솔직히 세 권을 연달아 읽다 보니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다음에 읽을 책 역시 앙코르와트 관련 서적이니 이제 좀 지겨워지려고 한다.
그래도 전혀 관심도 없고 사전지식도 없는 한 문명이 나에게 실체를 가지고 다가온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앙코르 와트가 불교 사원인 줄 알았다.
태국 근방은 다 불교 국가인 줄 알았고 사원이라고 하니 당연히 부처님을 모시는 사원이라고만 생각했다.
알고 보니 힌두교 사원이 대부분이다.
특히 크메르 문명은 석재 문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사원이 다 돌로 지어졌다.
목재 건축이 대부분인 한국과는 꽤 다른 느낌을 준다.
또 모든 사원의 벽과 기둥에 빽빽하게 들어선 부조와 조각들이 특징적이다.
밀림이라는 자연환경 때문이었을까?
대리석을 만드는 화강암은 드물고 대부분이 사암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손대면 툭 하고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록되어 많은 나라에서 복원 작업을 후원하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저자는 앙코르와트에 특별히 꽂혀서 같은 곳을 세 번이나 방문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이러니 감히 <앙코르 와트의 모든 것>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여행기를 낼 수 있었으리라.
아무리 감동적인 것이라도 연달아 보고 또 보면 살짝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해년마다 방문할 정도로 앙코르 와트에 특별한 매력을 느낀 모양이다.
어설픈 가이드북 대신 이 책 한 권 들고 가면 충분한 감상 길잡이가 될 만큼 꼼꼼하게 유적지를 탐방한다.
아쉬운 점은 역시 사진이다.
개인이 여행의 기록 수준에서 찍다 보니 사원의 아름다움을 다 보여주기가 어려웠고 책값 때문인지 전부 흑백으로 실어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었다.
현지의 운전 기사인 스판과의 우정은 눈시울이 시큰했다.
그런 에피소드들이 앙코르 와트를 더욱 가깝게 느끼도록 했으리라.
그러고 보면 문화란 참 대단한 것이다.
앙코르 와트라는 거대한 밀림 속의 사원이 아니라면 세계 최빈국인 캄보디아에 누가 관심이나 갖겠는가?
프랑스 제국주의의 역사는 안타까운 일이나, 앙코르 문명 복원에 대한 초석을 놓은 점이나 전세계적인 관심을 환기시킨 점은 정치와는 분리해서 평가받을 만 하다.

유적지에 치중하다 보니 크메르 제국의 역사나 캄보디아 현대사 부분은 많이 생략되어 아쉬웠다.
기왕이면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까지 적절하게 첨부했으면 좋았을텐데.
도올은 킬링 필드를 미 제국주의 시각이라 비판하면서 크메르 루주의 학정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시선을 보냈으나 이 책의 저자는 4년간의 학살을 분명하게 끔찍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어설픈 감상에 젖어 희생자들의 비참함을 무시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 생각한다.
미국이 캄보디아에 쏟아 부은 폭탄은 물론이고, 수십만의 양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폴 포트 정권의 끔찍함도 마찬가지로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던 캄보디아가 결국은 왕정으로 복귀한 게 특이하다.
왕이 상징적인 의미라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조선의 마지막 왕 보다는 국민들에게 더 많은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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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으로 가는 길
강석경 지음, 강운구 사진 / 창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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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참 좋은 책을 만났다.
역시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마추어들과는 다름을 확실히 보여준다.
강석경의 소설을 언제 읽었던가?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숲 속의 방> 이라는 중편 소설을 읽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나 워낙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작가의 이름은 확실히 각인이 되었다.
양띠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 딸들의 이름을 혜양, 소양, 미양으로 지었다는 책 속의 에피소드가 지금도 정겹게 기억하고 있다.
강석경의 글이 아니었다면 손에 안 댔을 책이다.
그렇고 그런 감상 나부랭이나 지껄이는 기행문 내지는 답사기, 정말 지겹다.
특히 손미나의 스페인 여행기처럼 블로그에나 올릴 글을 단지 아나운서라는 유명세 때문에 버젓이 내놓고 베스트셀러까지 되는, 개나 소나 다 내는 그런 여행기는 안 읽고 싶었다.
공지영 소설도 재밌게 읽었는데 뜻밖에도 그의 <수도원 기행>은 별 감흥이 없어 감명을 주는 기행문 쓰기가 꽤 어려운 일임을 느끼는 바다.
강석경의 이 책은, 깊이가 있고 문장의 수려함과 애틋한 감성이 잘 녹아 있다.
사실 나는 제목이 <능으로 가는 길>이길래 조선왕릉 답사기인 줄 알았다.
유명한 작가라면 당연히 서울에 살 것 같고 그래서 당연히 서울 인근의 조선왕릉이라고 생각했다.
뜻밖에도 그녀는 경주에 뿌리를 내렸는데 그 곳의 고분들을 둘로 보고 쓴 글이다.
사진도 참 아름답다.
어쩌면 이렇게 햇빛 찬란한 능 주변을 잘도 잡아 냈는지.
글 뿐 아니라 사진 때문에라도 소장하고 싶은 책 중 하나다.
강석경의 단아한 기행문과 잘 어울리는 사진이다.
한 사진작가가 박물관 관람에 대해 쓴 책이 있는데 거기서 이런 말이 나온다.
박물관 가면 사진 찍으려고 애쓰지 말아라, 차라리 그 시간에 더 많이 감상해라.
어설프게 찍어 봤자 나중에 보면 별 감동도 없다, 오히려 박물관을 나오기 전에 도록을 구입하거나 엽서를 사는 게 훨씬 더 기억을 붙잡는데 도움이 된다...
정말 그 말에 100% 동의한다.
어두운 구석에서 몰래 사진 찍어 봤자 나중에 보면 어설퍼서 그 때 감동을 집어 내기는 불가능하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어쩔 수 없는 차이인가...

만약 내가 얼마 전 경주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공감하면서 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문화재 답사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가이드와 함께 경주를 돌아다녔는데 대충 봤던 것도 설명을 듣고 보니 모든 게 새로웠고 특히 말로만 듣던 불국사는 실제로 가서 보니 흔히 보던 절과는 매우 다른, 세련되고 화려하며 또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글에도 불국사의 아름다움이 소상히 기록됐다.
유리벽으로 가려 놓은 석굴암은 사실 잘 보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넓은 터에 자리잡은 불국사가 정말 신라인들이 꿈꾸던 서방정토처럼 느껴졌고 관광하러 온 외국인들에게도 괜히 자랑하고 싶어질 정도로 마음에 꼭 들었다.
능도 그렇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덤과는 다르게 규모부터 엄청나게 크고 양식도 달라 한참을 흥미롭게 들여다 봤다.
십이지신상이나 서역인의 모습을 한 무인석, 사자상 등이 무척 흥미로웠다.
첨성대도 직접 가서 눈으로 보니 사진으로 볼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인지 경주는 높은 빌딩이 없고 전체적으로 평화롭고 편안한 분위기라 신라 시대의 문화재를 즐기기에는 최적의 도시 같다.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경주를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느낀 것은 역시 우리의 전통 문화야 말로 우리의 힘이고 아름다움의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서구 문화의 유적지에 관한 책이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감동받으면서 읽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세계화 시대가 됐다고 하지만 한국의 아름다움은 한국인이 가장 정확히 느끼다는 생각이 든다.
보편화 되지 못한 문화일수록 더욱 그렇다.
르네상스 시대의 숨막히는 그림들을 보면서 가슴이 울컥해질 때도 많지만, 경주의 능을 보면서 느끼는 애틋한 감정과는 다른 것 같다.
내가 자란 문화권, 나에게 형성된 미의식은 한국이라는 문화권에서 형성된 것임을 절절히 느낀다.
그래서 여전히 세계화 시대에도 우리의 문화는 보존되고 또 재해석 되야 마땅하다.
나이가 먹는 걸까?
정말 요즘에는 우리 문화에 무한한 관심이 생기고 또 그것들이 그렇게 아름답고 애절할 수가 없다.
아마 외국인들은 박물관이나 능에 가서 이런 애틋한 감정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마치 내가 유럽에 가서 그들의 건축물을 보면서 와, 멋지다 하고 끝인 것처러 말이다.
국수주의자가 되는 건 아닌데, 또 민족주의는 정말 싫은데 적어도 미의식에 있어서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꼭 지키고 싶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솔제니친의 가슴 사무친 말이 이 책에도 등장한다.
모든 신념과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상의 것, 아름다움이, 예술이 구원이 될 수 있음을 저자는 능을 보면서 토로한다.
인용된 문장들도 어쩜 그렇게 빼어난지, 몇 번을 옮겨 적었다.
언제쯤 나도 이런 그럴듯한 기행문을, 감상문을 써 볼 수 있을까?
문장의 훈련이 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일 듯 하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 깊이 알싸해진 감동을 받으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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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월남가다 -상 - 조선인의 아시아 문명탐험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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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글은 처음 읽어 본다.
오버하는 몸짓이 싫어서 강의도 안 들어 봤다.
그리고 사실 나는 철학에 별 관심이 없다.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계기는 앙코르와트에 대한 괜찮은 기행문이라는 한 서재인의 추천을 받아서다.
결과적으로 먼저 읽은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보다는 더 만족스럽다.
크메르 문명과 앙코르와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역시 명불허전이라더니 막힘없이 시원시원 하게 써내려가는 문체에 힘이 있다.
글에도 이렇게 기상이 철철 넘쳐 흐르니, 말로 하는 강의는 오죽할까 싶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거부감도 상당히 있었다.
특히 독일 학생을 만나 신화에 함몰된 크메르 문명이, 땅에 기반을 둔 조선 문명보다 열등하다느니 하는 관념적 비교는 지나친 비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독일 여학생의 말대로 문화는 그저 문화 그대로 아름다움에 찬탄하면서 있는 그대로 보는 관점이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도올 나름대로의 미의식을 앙코르와트 여러 건물에 투영시켜 설명하는 것은 나름 신선하긴 했으나 성과 속, 여성의 생산성 운운하면서 지나치게 관념화 시킨 점에는 동의하기도 힘들고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작은 것에도 큰 의미를 두고 상상력이 꽤나 풍부한 아저씨라는 느낌이 든다.

책의 판형은 비록 두 권으로 나눠져 책값을 올리는데 일조했으나, 들고 다니기 편하게 제작되어 읽기도 좋았다.
특히 안의 편집이 큼직큼직 되어서 눈이 피로하지 않아서 좋다.
단 도올이 직접 찍은 사진들은 역시 아마추어와 프로 사진사의 차이를 여실하게 드러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본 <능으로 가는 길>의 경우 전문 사진 작가의 능 사진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된 것 같다.
가벼운 여행기라고 하지만 기왕이면 전문 사진사가 동행해 책을 더 빛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또 일반인이 찍은 소박한 맛도 있다.

앙코르와트의 독특한 부조 문화를 보면서 우리의 불교 문화나 서구의 기독교 문화와는 다른 인도의 힌두 문화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느낌이 굉장히 다르고 이질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신비롭고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다.
특히 상반신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여자 부조상에서 성에 대한 다른 가치를 보는 기분이었다.
서양 사람들이 보면 우리의 절도 몹시 당황스러운 이질적인 느낌일까?
대체적으로 한국의 미는 담백하고 고즈넉하며 차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다른 느낌일수도 있을 것 같다.
하여튼 크메르 문명의 다이나믹하고 원초적인 부조 조각품에 마음을 뺏겼다.
언제쯤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베트남은 그냥 들르는 장소였는지 거의 언급이 없어 아쉽다.
앙코르 와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가이드북 보다도 돋보이기 때문에 이 책을 들고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나도 괜찮을 것 같다.
호치민에 대한 애정은 거의 무한대이던데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고 싶다.
평생 독신이었다는 점이 특히 마음을 끈다.

요즘 아시아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세계는 넓고 많이 알면 알수록 사고의 폭은 넓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서구 문명이 전부인 줄 알았으나 주변으로 눈을 돌리면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수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켜 온 무수히 많은 문명권이 있음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라더니, 정말 그 말이 딱 맞다.
사실 일본의 식민지 침략 역사 때문에 거부감이 들어서 그렇지, 일본이나 중국 문화에 대해서도 미국 문화 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고 더 많이 알고 싶다.
또 좀 더 폭을 넓혀 이슬람 문화권이라 우리에게 낯설긴 하지만 지리적으로 인종적으로 봐도 아시아 문화권에 좀 더 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하여튼 관련 서적을 많이 읽고 여행을 꼭 가 볼 생각이다.
역시 현지 분위기를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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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발견
김용만 지음 / 바다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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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인데 드디어 읽게 됐다.
먼저 읽은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어디로 갔을까>에 비하면 역사서로서는 훨씬 내용도 많고 재밌게 읽었다.
처음 문명의 시작 부분만 좀 지루했을 뿐 고구려의 역사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무척 재밌게 읽었다.
고구려에 대해 맘먹고 책 한 권 쓰기로 결심한 것 같다.
일본서기까지 인용해 많은 자료를 성실하게 모은 점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내가 보기에 저자는 고구려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명백하게 기록된 내용마저 자의적으로 해석한 실수를 자주 범한다.
역사는 당위성을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고, 다수가 주장한다거나 옳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고구려거 후손들의 자부심을 세워주기 위해 있던 나라도 아니니까.

먼저 광개토대왕비문의 훼손 문제.
일본 육군 장교가 탁본하면서 자구를 훼손시켰다는 음모론은 이성시의 책에 보면 명백하게 잘못임이 밝혀진다.
일본인이 탁본을 뜨기 전부터 이미 중국인들에 의한 탁본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성시의 책이 먼저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저자는 그 부분에 대해 고의적인 훼손을 계속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또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멸망시켰다는 주장은 비문에도 명백하게 나와 있지 않을 뿐더러 다른 책을 보면, 후연은 전진에 의해 망한다.
또 북연의 왕이 단지 고씨라는 이유만으로 고구려의 속국이었다는 식의 확대해석은 곤란하다.
심지어 장수왕이 죽을 때 북위의 황제가 애도를 표했다는 이유로 북위가 고구려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증거라니,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하다.
송이 장수왕을 영주와 평주의 자사라고 칭했다 하여 북경 인근까지 고구려의 영토였을 수 있다는 해석은 자칫하면 환단고기 신봉자들처럼 야사류로 흐를 위험마저 보인다.
왜 저자는 명백한 역사서의 기록을 자꾸 숨은 뜻이 있다면서 거꾸로 해석하려고 하는 걸까?
고구려가 자체적인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적 시각에서 역사를 볼 수 밖에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나, 그렇다면 거기에 필적하는 유물이나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서 반론을 펴야지 자꾸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식으로 상황 논리만 들어대는 건 역사학자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좋은 점은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체계를 잡을 수 있도록 당대의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잡아준다는 점이다.
작은 에피소드들도 꼼꼼하게 기록해서 고구려 역사를 재밌는 이야기로 만든다.
덕분에 고구려라는 나라가 고대사 속에 묻힌 죽은 역사가 아니라 조선 못지 않게 눈에 잡히는 나라가 됐다.
이 책을 읽고 드라마 <주몽>을 보면 더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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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아 2008-12-20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이 쓰신 리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후연은 전진에게 망하지 않았습니다. 전진에게 망한 나라는 '전연'이지요. 영락 17년 조, 즉 고구려의 발견에서 후연 멸망 기사라고 해석한 부분은 글자가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많아서 무슨 일을 기록한 것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즉 님이 말씀하신대로 후연이라는 글자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그 기사가 후연 멸망과 관련된 기사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marine 2008-12-2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여기에 대해 자세한 답변을 다는 것 보다는, 이성시의 책을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