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나귀 타고 미술숲을 거닐다 - 한국미술 7천 년, 美의 산책
이원복 지음 / 이가서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에는 좀 지루했는데 찬찬히 인터넷을 찾아가며 실제 유물들을 확인하다 보니 어느새 빠져 들었다.
일단 점잖고 담백한 저자의 문체가 마음에 든다.
우리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과 심미안도 글에 잘 녹아 있다.
마치 오석주씨의 글을 읽는 기분이 든다.
불화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불교 문화에 무지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데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양화는 사실적이고 화려한 서양화에 비해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움 미술관을 관람한 후 생각이 많이 변했다.
우리 그림도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 그 동안 내가 몰라서 즐기지 못한 것 뿐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오석주씨의 책 몇 권을 읽고 한국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그 때도 기껏해야 김홍도나 신윤복 그림 몇 점 뿐이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불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우리 문화에 얼마나 섬세하게 스며들어 있는지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관광지 치고 불교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듯, 아무리 요즘에는 기독교가 득세한다 해도 5천년의 긴 역사를 한국인과 함께 해 온 불교 문화는 전통 그 자체이며 보존하고 지켜 나가야 할 문화 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의 문화적 깊이는 불교에 비해 적어도 한국에서는 비교할 수준이 못 되는 것 같다.
동양 미술의 아름다움, 더 나아가 한국 미술의 그 고적하고 담백하며 점잖은 미학은 한국인인 내가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예술이 아닌가 싶다.
국립박물관에 좀 더 열심히 들락거려야겠다.
더불어 도록도 사고 싶다.
이 책의 단점은 소개된 많은 유물들을 사진으로 전부 싣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문장으로 설명하고 넘어가려니 답답할 때가 많다.
박물관에서 나온 도록을 구입해서 더 자세히 볼 생각이다.
사진의 아쉬운 부분은 인터넷을 이용했는데 다들 이렇게도 문화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다.
개인 블로그에도 좋은 자료들이 어찌나 많은지 깜짝 놀랬다.
다만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인터넷을 자꾸 뒤적거리다 보니 산만한 느낌이 들어 독서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기왕이면 사진까지 많이 실어 줬으면 좋았을텐데, 책값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 가지, 한자어에 약하다 보니 단어 자체가 애매모호하여 자꾸 사전을 뒤적이게 됐다.
정확한 뜻을 아는 건 좋은데 그러다 보니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지고 맥이 끊길 때가 종종 있었다.
기왕이면 어려운 단어는 주석을 달아 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저자 이원복씨에 대해 무한한 애정이 생기고 그의 박물관 관련 에세이는 다른 것도 읽어 볼 생각이다.
우리 문화를 설명해 주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멸의 목소리 1 - 남성 성악가편
유형종 지음 / 시공사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월간 객석에 연재했던 성악가 시리즈를 책으로 엮은 모양이다.
연재물이라 한 꼭지마다 분리가 돼 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으나 워낙 모르는 성악가들이 많이 나와 시간은 꽤 걸렸다.
<클래식 코리아>라는 사이트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여기 소개된 아리아를 찾기 힘들어 서운했다.
일단 영어가 아니라서 원어를 외우기가 힘들고 한글로는 번역이 워낙 다양해서 그런지 찾기기 어렵다.
사실 가사를 못 알아듣는다는 것도 오페라 볼 때 아쉬운 점 중 하나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오페라의 아리아를 원어로 배워보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음악 시간에 좀 더 열심히 따라 부르는 건데.

엔리소 카루소로 시작해 루치아노 파바로티까지 스물 다섯 명의 명가수들과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경쟁자들을 함께 실었다.
아쉬운대로 성악가에 대한 어느 정도 개념이 생기는 것 같다.
악기 연주도 좋지만 역시 인간의 몸으로 부르는 성악은 최고의 감동을 주는 것 같다.
흥얼거리는 몇 개의 아리아 외에 많은 좋은 곡들을 소개받아 유익했다.
뒷쪽에 100편의 아리아가 실려 있는데 시간 되는대로 찾아 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앙코르 티베트 돈황
최영도 지음 / 창비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훌륭한 기행문이다.
전문적인 작가가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문장 자체가 주는 감동은 없으나 정말 성실하고 꼼꼼하게 기록된 좋은 기행문이라 할 수 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주는 편견 때문인지 몰라도 저자는 감상 보다는 지식 위주로 자신이 본 것을 성실하게 기록했다.
정말 이 책 한 권 있으면 앙코르와트나 돈황 석굴, 티벳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설픈 가이드북 보다 훨씬 낫고, 역시나 설익은 감상을 늘어 놓는 요즘의 여행기 보다 훨씬 얻는 게 많다.
단 너무 지식 위주로 쓰다 보니 기행문이 주는 재미가 반감된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아마추어 여행객의 태생적 한계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 정도의 지식을 주는 기행문이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를 두고 싶다.
특히 돈황의 석굴에 대해서는 각 석굴마다 어찌나 상세하게 기록을 해놨는지 감탄이 나왔다.
이런 꼼꼼한 성격이 아마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돈황 석굴이나 티벳의 포탈라 궁이 정말로 가고 싶어진다.
사진도 본인이 직접 찍은 것 대신 잘 나온 사진들을 인용했기 때문에 훨씬 책이 돋보인다.
책으로 펴내는 기행문이라면 가급적 아마추어 사진사들의 어설픈 사진 보다는 전문가들의 좋은 사진을 실어 줬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그래야 글과 함께 멋진 현지 풍경을 감상하기 좋으니까.

기본적으로 저자는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 같다.
지식욕도 대단하고 이국적인 것에 대한 흥미도 강하다.
왠지 나와 비슷한 부류 같아 읽으면서 내내 반가웠다.
나도 여유가 된다면 저자처럼 이곳 저곳을 열심히 탐방하고 싶다.
그런 한가한 날이 언제쯤 올지는 모르겠으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 문명과 야만으로 본 중국사 3천 년
줄리아 로벨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중국사에 대한 냉혹한 비판이 돋보이는 책이다.
사실 나는 유구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 일견 서구인의 눈으로 본 비판적 시각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국수주의에 매도되지 않은 엄격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새겨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현재 중국의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짚어 내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외세 세력 추종자로 몰아 세우며 오히려 민족주의의 강화를 통해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려는 공산당 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마음을 흔들었다.
올림픽에서 보여준 중국 관중들의 혐한주의도 왜곡된 민족주의의 발로이며, 중국를 개방시키리라 믿었던 인터넷이 오히려 폐쇄적으로 내부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중국의 이런 예를 봐도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는 역사 연구 태도는, 또 특히 민족주의는 보다 나은 진보를 위해 제거되야 할 이데올로기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중국 공산당은, 코뮤니즘의 이념 보다는 일당 독재라는 과거의 전제주의적 전통을 잘 승계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중국의 폐쇄성을 만리장성으로 대변되는 국경수비에 두고 있다.
만리장성이 과연 중국의 5천년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자부심의 원천인가?
저자는 만리장성에 덧씌워진 환상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진나라 이전부터 장성을 쌓는 일은 계속되어 왔고, 현재 관광용으로 보여주는 벽돌로 쌓여진 부분은 명 때 보수된 일부 구간에 지나지 않으므로 근본적으로 만리장성은 벽돌 장성이라기 보다는 흙벽이라고 한다.
만리장성을 쌓느라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인민들의 무수한 피가 벽을 따라 쏟아졌으며 실제로 국경 수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에 그쳤다면 일종의 중국 문화 깎아내리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안에 숨겨진 중국의 팽창주의 욕구와 폐쇄적 민족주의, 문화 우월주의 컴플렉스를 짚어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수천년 간 지속된 그런 감정들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중국인의 자부심 위에 덧씌워져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발달에 저해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21세기 현대 중국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만리장성으로 대표되는 중국인들의 역사 인식은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만리장성은 그저 단순한 문화 유산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수확은 중앙 아시아 유목민들의 역사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언제나 중국인의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책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봐 왔기 때문에 막연히 유목민들은 중국 문화를 침범하는 오랑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비단 과거 역사 때문이 아니라, 현재 그들의 삶이 뒤쳐졌기 때문에 더욱 과거의 역사가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만일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세계 경제에 뒤쳐져 있다면 일본 역시 중국 문화권의 수혜를 받지 못한 초라한 문명으로 평가절하 됐을 것이다.
오늘날 그들의 자부심이 되는 상업주의, 장인정신, 독자적인 문화 등은 오히려 위대한 중국 문명, 특히 유교 정신에서 벗어난 이단적이고 한 수 아래의 소박한 이류 문명으로 치부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을 뿐더러 현재도 경제란에 허덕이는 유목민의 역사를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저자는 중국과 유목민의 대립을 대등한 입장에서 서술했고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서양인이라는 점이 그녀를 편견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시킨 것 같다.

흔히 터키인의 조상이라 일컫어지는 투르크인들, 즉 돌궐은 북위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선비족은 연나라를 세워 고구려와 분쟁했는데 모용씨, 탁발씨가 전연, 후연, 북연 등을 세워 중국 국경을 수시로 침범했으며 요와 금은 남쪽의 송나라와 함께 중국을 양분했으므로 송이라는 나라 자체가 통일 왕국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몽골은 비록 13세기 이후 패망하여 중원을 넘겨 줬으나 그 후에도 끊임없이 명을 괴롭혀 가순제로 하여금 엄청난 길이의 성벽을 쌓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점을 주목하는데, 중국이 유목민과 교역을 거부하고 고립정책을 취할 때 장성의 길이는 하염없이 길어졌다.
물론 이것은 싸워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한 무제처럼 정복하러 원정길을 떠날 힘은 없고 자존심은 상하니 성벽을 쌓아 스스로 내부에서 고립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만리장성의 역사적 의의라고 본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국가 정책.
이 장성을 쌓기 위해 중국의 황제들은 수많은 물자와 인적 자원을 쏟아 부었고 실제로 효율적인 방어선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안전하다고 착각하면서 국가를 점점 수렁으로 몰고 갔다.
중국이 팽창 정책을 취할 때는 장성을 유목민들의 터전 안쪽까지 확장시켜 오히려 그들을 초원에서 쫓아내는 방식을 취한다.
농경으로부터 수백리 떨어진 곳에 장성을 세우는 행태는, 오늘날 이스라엘이 주민 보호를 명목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침투해 성벽을 쌓고 있다는 점과 비슷하다.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한반도의 경우 완전히 중국화 되어 중국인의 문화를 내면화 시켰기 때문에 그들과 대항하는 유목민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본은 유교를 수용했으면서도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중국 문화에 함몰되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킬 수 있었고 그 점이 고대에는 그들을 뒤쳐지게 했으나 근대 이후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고구려의 경우 학자들의 말마따나 다민족 국가였고 유목민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해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졌으며 기본적으로 중국 문화에 크게 복속되지 않았다.
그 점이 고구려를 중국과 대항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로 내려오면 사정이 달라지는데 일단 고구려처럼 초원에 영토가 없으니 유목민과 섞일 일도 없고 기본적으로 완벽한 농경 정착민이었으므로 중국인과 똑같은 입장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선진적인 중국 문명을 내제화 시키는 것이 그들에게는 생존 방식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라 이후 한반도가 사대 외교로 일관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이해된다.
가치관의 완벽한 공유라고 할까?
그러나 저자는 냉정하게도 중국이 안남, 중앙아시아,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역시 중국인에게는 그저 오랑캐에 지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임진왜란 때 원정 온 명의 안하무인, 오만방자한 태도는 속국 미개인들에 대한 당연한 태도였으리라.
체면치레 하느라 조공 무역으로 항상 허리가 휘던 중국은, 역시 임진란 원정 때 어마어마한 은을 소비해 몰락에 한 몫을 거든다.

500 페이지에 달하는 비교적 두꺼운 책이지만 마치 소설을 읽듯 흐름이 자연스럽고 주제가 분명해 읽기 편했다.
중간 중간에 한자나 중국 역사에 다소 무지한 면을 보여 역자가 정정한 부분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권을 이해하는 외국인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 보고 넘어갔다.
아마 한국인이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통사를 쓴다면 그들 눈에는 당연해 보이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리라.
특히 삼국지의 조조를 단순히 한의 장군으로 소개한 걸 보고 문화권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다.
반갑게도 고구려의 이야기도 한 단락 나온다.
고구려가 중국 문화에 대항하는 유목 국가의 일종으로 언급된 것이다.
저자는 고구려와 다른 한반도 두 국가가 다른 성격의 국가였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문득 서구인이 쓴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에 대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객관적인 눈으로 이해타산 관계가 없는 3자의 입장에서 보는 우리의 역사는 어떤지 궁금하다.
만리장성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했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힐 수 있겠으나 중국 문명에 대한 통사로 훌륭하고 무엇보다 현재의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문화적 우월성에 대해 꼬집은 점은 저자의 탁월한 식견이 돋보인다 할 수 있겠다.
반대로 장성의 의미를 강조한 일본인이 쓴 <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똑같은 것은 싫다
조홍식 지음 / 창비 / 200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온지 꽤 된 책이라 아직 유럽연합 얘기도 없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시의성에서 떨어지는 편이다.
외국 생활 몇 년 한 다음에 마치 유학생 와이프처럼 신문도 잘 안 읽고 그저 미국 유치원은 어떻더라, 동네 아줌마들은 어떻더라, 이런 수준의 체류기는 정말 신물이 나기 때문에 가급적 선택을 자제하는데, 이 책은 일단 창비라는 출판사가 믿음직스러웠고 저자가 프랑스에서도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 신뢰감을 가지고 골랐다.
전체적인 느낌은 썩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읽을 만 했다.
저자의 후기에도 나오는 바지만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공평하게 한 문화를 바라본다는 건 참 어려운 일 같다.
그래도 저자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비교적 공정하게 비판적으로 프랑스 사회를 분석하려고 애썼다는 느낌이 든다.
외국인이 한국 사회를 분석한 글을 읽으면 수박 겉핣기다, 혹은 정형화된 편견에 사로잡혀 그 틀에 맞춰서 본다,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역시 타 문화권에 대한 책도 선진국일 때는 동경을, 후진국을 때는 한 수 아래로 접어서 동정과 연민을 남발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한 사회를 전체적으로 아우른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분위기 정도는 잡아낼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책에 나온대로 한국인은 체면을 중시하고 프랑스는 양심을 우선시 한다.
체면과 자본주의의 천박한 결합이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아닌가?

프랑스인의 기질 중 가장 호감이 가는 것은 바로 취향의 다양성이다.
남들 하는대로 따라 하면 중간은 간다는 우리 속담과는 다르게 이들은 몰개성을 가장 두려워 한다.
확실히 한국은 집단 문화가 대세인데 비해 유럽 쪽은 개인주의가 훨씬 발달한 느낌이 든다.
벨기에에서 온 여대생이 주간지에 기고하기를, 한국인들은 동성애자를 혐오한다는 발언을 공개 석상에서 노골적으로 한다고 비난했다.
누구나 자기 신념에 맞춰 좋고 싫고가 있을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내느냐 여부는 적어도 사회가 통용하는 정의감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를 싫어할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그들을 비난하고 여론몰이를 한다는 건 개인의 인권과 자유라는 더 큰 원칙에 위배된다.
이런 걸 좀 더 지키는 쪽이 프랑스 같다.
선진국이란 경제적 부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자유도 있어야 하며 개인의 삶이라는 작은 틀로 볼 때는, 간섭받지 않을 권리,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된다.

프랑스의 엘리트주의에 대해서는 솔직히 반신반의다.
저자의 말마따나 명분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당연시 하여 입으로는 평등 외치면서 실제로는 불평등을 가장하는 한국 사회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스무 살 때 입학한 대학으로 평생이 결정되는 프랑스 사회도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스무 살은 과연 그 사람의 평생 능력을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순간일까?
유럽 사회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계급 상승이 어렵다는 말은 종종 들었다.
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력하면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역동적인 사회라고 한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치맛바람과 미친 사교육 열풍이 난립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계층 이동이 어려운 사회는 뭔가 이건 아닌데, 싶다.
엘리트가 이끄는 사회, 일견 능력주의로 당연한 것 같은데도 심정적으로 완전히 공감하기 힘들다.
마치 인간의 기본권이 점차 향상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듯 이런 엘리트주의, 능력위주 원칙도 진보될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방법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때때로 선진국을 부러워 하는 것은, 그들이 누리는 경제적 여유와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뭔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을 제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왕정 시대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진보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처럼 더 나은 사회 제도와 분위기가 있다는 가능성, 그것을 먼저 현실로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희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가장 진보됐다고 알려진 미국 사회가 무너지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대체 우리가 사표로 삼아야 할 모델은 그저 머릿속에나 있단 말인가?

300 페이지 정도로 분량도 짧고 내용도 평이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경제력은 미국이나 일본에 뒤질지 몰라도 여전히 프랑스는 문화 대국이고 개인의 자유나 인권 등의 문제에서 앞서 가는 나라임이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