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 - [초특가판]
쥴리앙 듀비비에르 감독, 장 가방 출연 / 스카이시네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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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로만 알고 있던 장 가방이란 사람을 처음 봤다.
고전 영화의 매력은 이처럼 유명인사와 인물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기대했던 것 만큼 잘 생긴 배우는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중년 아저씨?
흑백 영화라 분위기가 어둡고 솔직히 제목이 왜 망향인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고향, 고향을 그린다, 뭐 이런 의미일텐데 주인공이 파리로 돌아가고 싶어하긴 하지만 딱히 그게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왠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제목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기분이 든다.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의 해변가 풍경이 비록 흑백영화지만 아름답게 펼쳐진다.
지중해 연안 도시들에서 흔히 보이는 흰색 테라스가 있는 독특한 건물들이 끝도 없이 연이어 있다.
사창가라고 하는데 도무지 그런 축축한 냄새는 나질 않는다.
창녀들로 나오는 알제리 여인들도 토속적이고 순박한 시골 아주머니들 같다.
<일요일은 참으세요> 에 나오는 바로 그 신나는 창녀들 분위기!
영화라서 미화된 것일까? 아니면 그녀들의 삶도 나름의 애틋한 뭔가가 있는 걸까?
하여튼 포주와 인신매매, 인생막장 이런 구질구질한 느낌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페페는 프랑스에서 은행 강도를 저지른 후 알제리의 카스바라는 사창가로 숨어 들어간다.
미로처럼 연결된 도시와 주민들의 협조로 경찰은 감히 체포를 엄두도 못 내고 그가 시내로 나올 때만 기다린다.
현지 경찰인 슐리만은 적당히 이들과 친한 척 하면서 기회를 노린다.
페페는 바람둥이인데 집시 여인 이네스와 살고 있다.
그러다 어느날 보석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여인 가비를 만난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 그러나 페페는 사창가를 빠져 나갈 수 없는 상황.
경찰 슐리만은 가비에게 그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말을 믿고 가비는 부자 남자와 알제리를 떠나기 위해 배에 오른다.
그녀를 쫓아가려고 결국 사창가를 빠져 나온 페페, 경찰을 따돌렸으나 질투심에 불탄 이네스가 그만 그의 행선지를 경찰에게 알리고 만다.
결국 가비가 탄 배 안에서 체포된 페페는 수갑을 찬 채 그녀를 태운 배가 떠나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울부짖다가 손목을 그어 자살하고 만다.
비극으로 끝난 셈이다.

나는 페페가 가비와 알제리를 탈출하다가 경찰 총에 맞아 죽을 줄 알았는데 이건 그것보다 훨씬 비극적인 결말이다.
가비는 페페가 그저 싸우다 총맞아 죽은 줄로만 알고 알제리를 떠나고 페페는 사랑의 도주 한 번 못해 보고 결국 여자 때문에 덫에 걸려 경찰에게 체포된 후 허망하게 자살하고 만다.
언제나 페페가 떠날까 봐 두려워 하던 이네스는 그를 사랑하지만 다른 여자에게 가는 것을 차마 허락할 수가 없었다.
질투심에 불타 그가 있는 곳을 밀고하지만 나중에는 경찰을 붙잡고 제발 그가 떠나도록 내버려 두라고 울부짖는다.
이미 때는 늦었으나 사랑하는 남자를 보내지도 못하고 붙잡지도 못하는 가엾은 여자의 슬픈 현실이 잘 드러난다.

제일 인상적인 장면은 파리를 그리워 하던 페페가 우아한 가비를 만나 당신에게서는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말했던 부분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한 당신을 보면서 왜 하필 지하철 냄새가 떠오르는 걸까?
페페에게 있어 가비는 떠나온 고향, 세련된 도시, 아름다운 파리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가지 못하는 고향, 낭만과 꿈과 예술이 있는 도시, 구질구질한 사창가와는 다른 희망이 있는 바로 그 곳!
페페는 가비를 보면서 이성적으로도 끌렸으나 두고온 고향을, 아름답던 젊은 시절의 꿈을 발견했던 것이다.
반면 함께 살던 이네스는 구질구질 하고 쫓기는 도망자의 삶을 상징한다.
지겹고 더럽고 제발 벗어나고 싶은 현실!
그는 꼭 이네스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떠났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페페는 동료의 비난대로 사람 하나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낭만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비록 경찰은 몇 죽였지만.

알제리의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토속적인 풍경도 가끔 나와 색달랐다.
가비로 나온 프랑스 여인도 무척 아름다웠다.
1936년 영화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세련된 연출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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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영원으로 : 수퍼비트 (dts) - 할인행사
소니픽쳐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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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에서 한 걸 본 기억이 있는데 막연하게 군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상사가 덮어 준다는 내용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막상 다시 보니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살인 사건도 분명히 일어나고, 워든 중사가 탈영한 프로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 것도 사실인데, 그게 핵심 줄거리가 아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 볼 때는 흑백 영화라서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책으로 다시 보고 싶다.
마침 열린책들에서 예쁜 표지로 출간되서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읽고 싶던 책 중 하나였다.
영화는 좀 미묘한 분위기인데 줄거리 보다는 매지오나 프로이, 워든 등의 등장인물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든다.
책 해설을 보니 당시 미 육군의 군대 폭력 실상을 고발하는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리얼하고 하층 계급의 언어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글로 옮겨 상당히 논란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번역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일까?
대사만 가지고는 도저히 당시 군인들의 상황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이탈리아인이라고 모욕을 주는 뚱보 상사에게 분노할 뿐.
옛날 명배우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얼굴을 모르니 누굴까 영화 보는 내내 궁금했다.
프로이 역의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얼굴을 아니까 아닐 것이고, 워든 중사는 조연이 아니라 거의 주인공이니 아닐 것 같고, 설마 매지오?
그런데 바로 그 매지오가 프랭크 시나트라였다.
너무 못생기고 왜소해서 처음에는 좀 실망스러웠다.
워든 중사는 버트 랭커스터라고 들어 본 배우인데 꽃미남 스타일의 자그마한 몽고메리 클리프트 보다는 체격도 건장하고 더 남성답게 나온다.
이 사람은 왜 장교가 되는 걸 싫어할까?
영화만 가지고는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누구보다 리더쉽이 뛰어난 사람인데 말이다.
홈즈 중대장이 프로이를 괴롭힌 게 상부에 발각되어 진주만 기습 직전에 불명예 제대하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이런 점도 한국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앞서가는 인권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찌 됐든 병사를 괴롭힌다 할지라도 최소한 구타는 없었다.
1940년대의 군대가 말이다.

프로이의 나팔 소리는 정말 구슬프고 멋있었다.
특히 매지오가 죽은 후 혼자 연병장에서 나팔을 불 때 가슴이 찡했다.
밑바닥을 전전하는 자신을 받아주고 나팔을 가르쳐 준 군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프로이!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후 탈영병에 살인범이라는 위험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한 사람의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군대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죽음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이라는 암시를 충분히 줄 만큼 비장하고 비극적이었다.
불안정한 신분의 사병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애인 엘마가 당신이 하자는대로 하겠다고 울면서 말렸기 때문에 더욱 그것이 마지막임을 알 수 있었다.
어처구니 없이 일본군도 아닌 아군의 총에 첩자로 오인받아 죽고 만 프로이.
정말 끔찍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영창에서 죽고 만 매지오처럼 전쟁과는 별 상관없는 군대 내 부조리의 결정타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작은 사건 하나가 전체의 삶을 결정하는 방향타가 되곤 한다.
만약 외출하던 날 매지오가 조금만 더 일찍 준비해서 프로이와 함께 나가 버렸다면, 헌병의 눈에 띄어 보초를 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괜히 도망가서 술집에 있다가 붙잡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그랬다면 영창에 갈 일도 없으니 뚱보 중사의 구타를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매지오가 죽을 일도 없고, 프로이가 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중사를 죽일 일도 없고, 그랬다면 그토록 사랑하는 군대를 탈영할 일도 없고, 적어도 아군에게 오인받아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일본군 총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의 총에 맞아 죽는 것과, 같은 편 군인의 총에 오인 사살되는 건 명예와 삶의 의미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닌가?

워든 중사의 연애는 아슬아슬한 면이 많다.
누구보다도 남자답고 군인답게 나오는 그가 왜 상관의 아내를 탐냈을까?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에 피폐해져 가는 그녀가 안타까웠을까?
이 매력적인 여배우의 이름은 말로만 듣던 데보라 카이다.
짧은 금발이 매혹적이고 몸매도 자그마 하지만 꽤나 글래머다.
두 사람의 해변가 파도 위 키스씬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솔직히 흑백이라 그런지 에로틱 하지도 않았고 난 좀 지루했다.
그녀는 매우 바람끼가 다분한 여자로 나온다.
실제로는 정숙한데 바람둥이로 주변에 알려져 그녀를 사모하는 워든에게 주변 사람들이 충고한다.
워든은 정말로 이 여자를 사랑한 것 같은데 장교가 되지 않겠다는 이유로 헤어진다.
대체 왜?
이 부분은 책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책을 뛰어넘기는 참 힘든 것 같다.
영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다 보면 인간의 심리 상태를 압축할 수 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사건 위주로 간다.
그 안에 생략된 함축적 의미들을 제대로 알아채기란 참 어렵다.
그런 면에서 영화 역시 하나의 예술 장르란 생각이 든다.
무려 세 권으로 출간됐던데 꽤 분량이 되는 책인가 보다.
하여튼 원작이 있는 책은 두 가지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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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양지 (흑백) - 초특가판
조지 스티븐스 감독, 몽고메리 클리프트 외 출연 / ING디브이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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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테일러, 전성기의 모습은 거의 못 봤고 가끔 해외 토픽에 실린 뚱뚱한 할머니만 봤던 터라 흑백으로 본 20대 초반의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흑백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잉그리드 버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천사 같은 순수한 아름다움과는 다른, 굉장히 섹시하고 세련된 美 를 선사한다.
달걀형으로 갸름한 얼굴선, 얼굴이 얼마나 작은지 정말 요즘 유행하는 말로 CD로 가려질 것 같다.
허리도 한 손에 감길 만큼 쏙 들어가고 다리도 겨우 무릎 정도 밖에 안 드러냈지만 충분히 날씬했다.
몽고메리 크리프트도 이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선이 굵은 듯 하면서도 요즘 말로 꽃미남 분위기도 풍기는, 좀 여려 보이는 미남 배우였다.
흑백이라 더 멋지고 아련하게 보이는 걸까?
2시간 정도 되는 영화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사건 전개가 빨라서 좋았다.
그러나 영화의 결론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이 감독은 남자 주인공 조지가 살의를 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죄를 짓고 사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설정했는데 나는 절대로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변호사의 말대로 살인을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저지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가 살해 의도를 품고 애인을 강가로 데려가 보트를 태웠으나 소심한 조지는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흥분한 애인 아리스가 조지에게 다가오면서 보트가 뒤집어졌다.
검사는 그가 아리스를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고 논박하지만, 일단 자기가 살고 봐야 할 거 아닌가?
둘 다 물에 빠졌는데 혼자 살아 남았다고 살인자로 몰리는 건 공정하지 않다.
변호사의 반박이 정말 일품인데, 단지 살인을 상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자가 될 수 없고, 무엇보다 그 누구도 두 사람의 익수 사고를 보지 못했으며, 검사와 배심원들은 단지 그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단 한 건도 없는데 정황과 심정에 호소해 전도 유망한 청년을 사형으로 몰고 있다.
이거야 말로 또다른 의미의 대중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

정말 안타까운 것은 조지가 단지 돈 때문에 안젤라를 선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청춘의 덫>에서 이종원은 돈 때문에 심은하를 버리고 유호정을 택한다.
차라리 돈 때문에 버림받는 거라면 덜 비참하다.
그런데 조지는 아리스가 부자고 안젤라가 여공이라 할지라도, 역시 아리스 대신 안젤라를 선택했을 것이다.
안젤라는 너무나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그는 안젤라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했지만, 감히 쳐다 볼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데 그 여신같은 안젤라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돈과 명예, 부유함, 학식 이런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겨우 열 세 살 때 학교 교육을 마친 이 가엾는 공장 직원에게 말이다.
안젤라가 얼마나 순수하고 착한 아가씨인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들마저 조지를 받아들여 둘은 결혼 약속까지 한다.
나중에 조지가 사형수로 몰려 수감되었을 때 조차, 가족들은 유명인사인 안젤라를 사건에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직접 감옥까지 찾아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런 천사같은 아가씨가 어딨을까!

아리스는 모든 면에서 안젤라와 비교된다.
요즘 눈으로 보자면 이 여자를 이해하기 힘들다.
단지 아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랑도 없는 남자를 붙잡을 수 있을까?
이 영화가 1950년대 영화라서 남자의 책임을 묻는 게 가능한 건가?
나도 여자지만, 아이 때문에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아직 결혼 전이고 법적인 책임감이나 구속력도 없다.
조지가 좀 더 대범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면 아리스에게 또 안젤라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 놨어야 한다고 본다.
역시 솔직한 게 최선이다.
되어 가는 방향과 현실을 개인의 힘으로 바꾼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신분 상승의 욕구도 영화 속에서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미묘하게 잘 드러난다.
다만 <청춘의 덫>에 나오는 이종원처럼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아 훨씬 더 공감이 가고 세련됐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공장에서 수영복 포장하고 기껏해야 영화 보는 게 여가 생활의 전부인 하층민 생활보다는, 여름이면 별장으로 놀러 가고 승마 타고 뱃놀이 하는 상류층 생활을 동경할 것이다.
누구나 말이다.
도덕적인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 무리하게 일을 추진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렇게 상류층 아가씨가 알아서 찾아오고 무엇보다 그 자신 역시 돈을 떠나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니 대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이거야 말로 완벽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절정의 순간에 결국은 어처구니 없이 파멸하고 만 가엾은 조지 이스트맨.
정말 완벽한 의미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흑백 영화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훨씬 더 몽환적인 이상의 세계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60여년이 지난 후에도 후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의 저력에 다시 한 번 놀라는 바다.
아마도 이 아름다운 여배우는, 영화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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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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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에 당첨되서 읽게 된 책이다.
공짜로 받은 책에 대해 서평을 쓸 때는 반드시 좋은 글만 올려야 할까?
그렇다면 이벤트에 참가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이런 이벤트는 지양해야 마땅할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무너무 실망스러운 책이다.
저자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를 나오고 서강대학교 교수까지 지낸 사람이라는데 글솜씨는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전공 분야에 관한 책이 아니니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적어도 수필에 대해서는 잘 쓰는 사람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반인이 책 내는 거나 별로 다를 게 없다.
기대했던 바에 아주 못 미친다.
필력이란, 학문적 성취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학력이 높거나 학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건 아니고,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 이를테면 소설가들의 글솜씨는 그 사람의 사상의 깊이가 어떻든 간에 일단 탁월하게 잘 쓴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니까 사상의 깊이와 글솜씨는 별개의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필력이란 일종의 뛰어난 재능과 기술이 아닐까?
칼 세이건이나 리처드 도킨슨, 스티븐 제이 굴드, 제러드 다이아먼드, 마빈 해리스, 이런 유명한 과학 저술가들을 보면 단지 학문이 뛰어나서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필력이 훌륭하기 때문에 과학자 집단 내에서 특별히 유명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학문적으로 훌륭하면서 글도 잘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던 점은 저자의 시력이다.
아직까지 돋보기를 안 쓰고도 책을 볼 수 있다니 참 놀랍다.
일제 시대에도 학교를 다녔다는 것도, 같은 시대에 학교 교육을 못 받은 우리 할머니를 생각하면 혜택받은 계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에서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은 책이다.
내가 교수라는 타이틀 때문에 너무 기대를 많이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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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사생활
하영휘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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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제목과는 달리, 솔직히 좀 지루하다.
1700여 통의 방대한 서신을 성실하게 분석한 점은 인정하나, 전개 방식이 지루함을 피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런 생활사를 기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저자가 자료 수집을 열심히 한 다음에 저자의 언어로 다시 풀어 쓰는 길 같다.
임용한씨의 <조선국왕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단순히 실록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뜻, 행간을 읽어내는 것이 바로 저자의 집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병덕이라는 유학자가 쓴 편지를 너무 곧이곧대로 번역하다 보니 요즘에 잘 안 쓰는 한자어가 많아 이해도 안 가고, 서신 역시 안 쓰는 한문체라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했다.
저자가 자신의 언어로 편지를 재해석 했다면 훨씬 재밌었을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고서가 소장학자들에 의해 번역되고 있는 현실은, 조선시대를 좀 더 사실적으로 복원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조선 시대 양반의 일상 생활이 눈에 잡힐 듯 보인다는 점이다.
사극 작가들이 참조하면 좋을 책이다.

조병덕이라는 인물은 조상 중에 인조의 장인도 있고, 노론 4대신도 있는, 이른바 노론의 명문 사대부가다.
그러던 것이 세도 정치로 흐르면서 정권으로부터 소외되어 과거 합격자를 내지 못하자 결국 시골 양반으로 전락해 버린 비운의 유학자다.
본인은 과거에 뜻을 접고 학문에 전진하여 많은 제자들을 남기긴 했으나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가세가 기운 몰락 양반이 체면 유지를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잘 드러난다.
비루한 일상의 영위가 고결한 유학 정신과 얼마나 안 어울리는 일인지 정말 여실히 드러난다.
누가 주경야독과 안분지족을 아름답다고 했던가?
다 먹고 살만 해야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아침에 밭 갈고 저녁에 책 읽어서는, 도저히 양반의 체면에 맞는 품위를 유지할 수가 없다.
단지 사치스럽게 치장한다는 뜻이 아니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예학과 의례를 돈이 없으면 제대로 지킬 수가 없는 것이다.
조병덕이 비록 관직에 나가지는 않았으나 조상으로부터 받은 땅덩어리도 있꼬 가문의 위세도 있어 여기저기서 선물과 증여도 많이 받아 시골로 낙향하긴 했으나 완전히 향반이 되지는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학을 제대로 지키려다 보니 계속해서 논을 팔아 돈을 댔고 결국은 양식이 없어 친척들에게 구걸하는 편지를 써야 할 지경에 이른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체면 유지를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하고 과도한 지출을 했는지 편지에 낱낱이 드러난다.
결혼식 때 돈 많이 드는 풍습은 비단 현대에 국한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떤 무식한 필자가 조선 시대에는 혼수라는 게 없고 그저 시부모에게 비단 버선 한 켤레를 성의 표시로 준다고 하던데, 실제 조선 후기 양반이 쓴 편지를 보니 앞의 얘기는 그저 관념적 상상에 불과함이 잘 나타난다.
저자는 셋째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200냥이나 예산을 잡았는데 100냥은 간신히 구하고 나머지 100냥은 친척들에게 구걸하다싶 해서 맞춘다.
그는 가장 부담되는 것이 바로 혼례와 장례라고 했으니, 조선 시대에도 결혼식 비용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장례 역시 묘지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격식에 맞게 하려면 엄청난 빚을 져야 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양반 문화는 확실히 체면치레, 좀 더 우아하게 말하자면 품위 유지와 예절 지키기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이런 의식들이 현대화 과정에서 많이 단절됐기 때문에 양반 문화라는 것이 전수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허레허식, 겉치레 등으로 매도되어 섬세한 절차나 과정은 예술로 승화되지 못하고 껍데기만 남았으니 전통의 단절을 새삼 확인하는 기분이다.

조선 시대 양반층은 전통적인 귀족과는 좀 다른 계층이었던 것 같다.
관직에 진출해야 재력과 위세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은 능력 사회였던 것 같고, 경쟁 구도에서 모든 가문이 탈락하고 오직 안동 김씨 일문만 세력을 쥐었다는 점이 조선 후기의 가장 큰 비극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순조의 정치력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열 한 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다고 하나 그 후 34년 간 집권했고 세력을 휘두르던 정순왕후는 세도 정치 4년만에 권력을 내놓고 곧 사망한다.
단지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는 것만으로는 세도 정치를 설명할 수 없다.
정치력이 전무한 왕들이 연이어 즉위했다는 점이 조선의 불행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쇄국을 주장한 흥선대원군 같은 강력한 왕이, 비록 시대 정세는 제대로 못 읽었더라도 적어도 집안 단속은 할 수 있는 통치력을 지닌 왕이 즉위했다면 조선이 그렇게 허망하게 식민지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왕이 무능해지면 오히려 신하들이 알아서 입헌군주제로 바꾸고 대의 정치로 잘도 전환하던데 왜 조선 시대 세도 정치는 온갖 폐단만 낳고 결국은 식민지로 전락하게 됐는지 참 한심한 일이다.
사회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적어도 영조나 정조 혹은 태종이나 세종 같은 국왕이었다면 아무리 왕조 말기라 할지라도 순조나 고종처럼 무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 쓰는 한자어가 너무 많아 책 읽기에 영 불편했다.
한문 표기가 되 있어서 사전 검색을 했으나 그마저도 대부분 안 나왔다.
기왕이면 저자가 각주로 설명을 달아 놨더라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을텐데 아쉽다.
요즘은 정치사 대신 생활사가 유행하는 것 같다.
소시민들의 삶을 조명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보고 이런 고문서들이 많이 번역되어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또 한 가지, 드라마 작가들이 이런 책을 좀 열심히 읽어 고증에 충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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