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4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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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인 <광해군>을 퍽 재밌게 읽은지라 도서관에서 또다른 저작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껴 집어 들었다.
일단 이 책은 자신의 전공인 만큼 저자의 전문성이 돋보인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당시의 조선 사정, 명과 청의 관계 등을 여러 저작들을 참조하여 상당히 정확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친다.
꽤 수준이 높은 책인데도 내용 자체는 쉽고 쉽게 읽힌다.
가끔 잘 안 쓰는 한자어들이 등장해 사전을 찾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긴 했지만 (이런 부분들은 저자가 따로 각주를 달아줬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내용 자체가 익히 알려진 흥미진진한 사건이라 그런지 마치 소설책 읽듯 막힘없이 한 번에 쭉 읽었다.
무엇보다 명나라 쪽 시선에서 조선을 바라본 점이 흥미롭다.
명에도 임진왜란은 큰 영향을 끼쳤던 탓에 꽤나 많은 저작들이 있었다.
명측 자료를 분석해 보면 적어도 임진왜란이 이긴 전쟁이었네, 하는 소리는 못할 것 같다.
전작인 <광해군>에서도 저자는 근래에 높히 평가받고 있는 중립외교가 실상 내치로 이어지지 않아 인조반정으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던 광해군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비슷한 내용을 다룬 이덕일이 책을 보면 당시 신민들은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반정이 일어나 도대체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인조반정을 일방적으로 매도한다.
(이런 몰아가기 논법이 이덕일의 특징이다. 혜경궁 홍씨를 마치 남편을 죽인 권모술수가 식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광해군이 중립외교에 성공한 것은 무엇보다 후금의 상황이 조선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관망하는 자세로 두고 봤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조선 역시 비록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우긴 했으나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이르기까지 집권자들의 기본적인 외교 방침은 적당한 화친 유지였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정묘호란 당시 침입 다음날 벌써 화친 얘기가 나왔고, 병자호란으로 아예 조선에게 신복을 요구하게 됐을 때 과연 광해군 조정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저자는 광해군이 실리 외교를 취했다고 하나, 기본적으로 후금을 오랑캐로 인식했고 명 조정의 파병 요구에 응해 군사 만 오천명을 동원했음을 지적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인조의 서인 정권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선조가 직접 전란을 체험하고 의주까지 피난을 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군사적 식견을 쌓았다고 말한다.
선조나 조선 조정이 명군을 재조지은의 천군으로 인식한 것은, 민심의 이반이나 의병 활동으로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어쩌면 국가가 전복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만약 명군이 파견이 없었을 경우 적어도 선조의 왕권 유지나 조선 왕조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득권층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명군의 존재감이 컸기 때문에 선조는 명군의 오만방자함과 기만술을 끝까지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또 조선이라는 국가 자체도 국난을 맞아 국가를 여전히 유지할 만큼 기반이 단단했다는 생각도 든다.
선조 때부터 여진족에 대한 간첩 활동은 중시됐고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평가한다.
결국 명에 대한 사대나 재조지은, 친명배금 정책은 명분이란 것을 조선 조정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실제적인 관리들이 현실감각이 전혀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재야 유림들의 명분론이 국가의 발목을 잡은 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명분론의 승기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국가의 정책에 딴지를 거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조선이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주자학을 교조화 시킨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명은 양명학이 위세를 떨치고 포르투칼의 은이 유입되어 상품의 유통이 활발했다.
조선에 파병을 왔으나 상점이 없고 화폐가 유통되지 않아 명의 상인들이 군대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명의 관리들은 주자학이 이미 한물 간 학문이고, 조선은 문약하여 국방에 힘쓰지 않는다고 질책했으며 상거래가 전무하다고 조선의 후진성에 대해 여러 차례 충고한다.
아마도 명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의 분위기나 관리들의 태도가 무척 답답했을 것 같다.
제일 인상깊던 대목은, 조선이 고구려 때 수당을 위협할 만큼 강국이었는데 오늘날 어찌 이리 몰락했냐고 놀랐다는 부분이었다.
적어도 고구려는 중국 문화에 함몰되지 않고 주체성을 가지고 국방력도 뛰어난 독립된 나라였음을 중국인들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사회가 정체되고 하나의 학문이 교조화 되어 나머지는 모두 이단시 되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국가를 퇴보하게 만드는 것 같다.

모문룡이라는 명의 장수에게 조선 조정이 휘둘린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 너무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과연 책봉이라는 문제가 혹은 명의 승인을 받는 문제가 국가의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일개 장수에게 기만을 당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을까?
결국은 광해군도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펴다가 쫓겨난 것이고 선조나 인조 역시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권위 확보를 위해 명에서 목을 맸다.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유폐시키면서 왕위에 오른 태종 같은 사람도 있는데 광해군이나 인조가 왜 그렇게 명의 승인에 전전긍긍 했는지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태종처럼 국정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그들의 정치력이 아쉬울 뿐이고 무엇보다 명분론에 함몰되어 명군의 끔찍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자의 나라, 재조지은의 천군이라고 그들의 승인을 권위의 원천으로 삼았던 양반들의 좁은 식견이 안타깝다.
어쩌면 현재 미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종속성도 후손들에게 한심하다고 비판받을지 모르겠다.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16세기 말에서 17세기까지 동아시아의 격동기를 밀도있게 분석한 꽤 괜찮은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서술 솜씨가 뛰어나 전문적인 얘기를 하면서도 읽기 쉽게 문장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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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거장전 - 렘브란트를 만나다
(주)기홍앤컴퍼니 엮음 / 컬처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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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시험 보러 온 W와 만나서 전시회장에 갔다.
피곤할 것 같아서 예술의 전당까지 가자고 할 줄은 몰랐는데 먼저 보고 싶다고 제안을 하길래 깜짝 놀랬다.
마지막으로 함께 전시회장에 간 게 올 1월 초 <러시아 미술 거장전> 이었을 것이다.
작년 여름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을 때 <오르세전>을 봤었는데 정말 줄만 세 시간은 섰던 것 같다.
안에 들어가서도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그 더운 여름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에는 푸슈킨 미술관에서 공수해 온 작품들인데 오르세 미술관에 비해 유명세가 떨어져서인지는 몰라도 그 때처럼 붐비지 않았고 내가 입장할 때만 해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서는 사람이 많아 쾌적하게 관람하기는 어려웠다.
또 작품 앞에 장애물을 설치해 놔 가까이서 보기 어려웠다는 점이 불만스럽다.
유럽 미술관에 갔을 때는 유리 액자 하나 없이 바로 코 앞에서 생생하게 붓의 터치와 색감을 즐길 수 있었는데 국내에 전시되는 걸작품들은 꼭 앞에 장애물을 설치해 상당히 먼 거리에서 작품을 봐야 한다.
차라리 도록에서 클로즈업 해서 보는 게 훨씬 더 감동적이다.
혹시라도 훼손될까 봐 미술관측에서 전시 조건에 요구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설치하는 걸까?

SBS 아나운서의 오디어 가이드는 영 별로였다.
뭘 알고 읽는지 써준대로 읽는지 도무지 감흥이 없고 그냥 대본 읽듯이 전혀 맛이 안 났다.
적어도 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건 분명한 듯 하다.
차라리 목소리가 좀 안 좋더라도 관련 분야의 사람을 나래이터로 썼으면 훨씬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도슨트 설명을 꼭 듣고 싶었는데 혼잡해서인지 일요일은 쉬는지라 못 들은 게 아쉽다.
도록까지 살 생각은 없었는데 전시회장을 나오면서 워낙 감동적이라 재음미 하고 싶은 욕심에 대도록을 구매했다.
전시회장에 가기 전에 예습하는 기분으로 도록을 미리 주문한 적은 있어도 전시 후에 산 건 처음인 듯 하다.
22000원으로 다소 비싼 느낌도 들지만, 시원한 판형에 클로즈업 해서 색감과 붓터치, 인물의 선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질 좋은 도판이라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를 먼저 본 다음에 도록으로 다시 읽으면서 감상하니까 생생하게 감동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역시 데이비드 핀의 충고처럼 어설픈 솜씨로 사진을 찍을 게 아니라 (촬영도 금지되긴 했지만) 차라리 도록을 사서 감동을 간직하는 게 훨씬 좋은 방법 같다.

인상깊은 그림들이 많았는데 우선 소 피터 브뤼헬의 사계 연작이 너무 좋았다.
굉장히 개성적이고 색감도 화려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 한참동안 눈길을 끌었다.
유명세란 괜히 생기는 게 아닌가 보다.
이 사람은 요즘 시대에 태어났어도 캐릭터 화가나 무대 미술 같은 분야에서 크게 성공했을 것 같다.
그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이 느껴진다.
이 사람 그림은 엽서로도 샀다.
루이 16세의 전속 화가였던 여류 화가 르브룅의 초상화도 정말 멋있었다.
러시아의 젊은 공작을 그린 그림인데 얼마나 깊이있고 세련되고 우아한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성 화가에 대한 편견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렘브란트도 그렇지만 훌륭한 초상화가들의 인물화는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품과 내면의 개성이 생생히 느껴진다.
저런 초상화라면 나 역시 사진 대신 그림을 택하겠다.
영국의 두 귀족 부인을 그린 반다이크의 초상화도 정말 멋있었다.
두 여인을 그린 초상화라 사이즈도 크고 주변 배경까지 정말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적어도 초상화에서는 반다이크는 가히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렘브란트에 대해서도 그 명성은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에칭 판화를 보면서 정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판화 하면 정교함을 따라오기 힘든 화가가 뒤러라고 생각했는데, 뒤러와는 또다른 내면의 깊이와,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명확히 보여주는 렘브란트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했다.
가벼운 스케치 같은 것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완성작이라 할 만한, 유화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가 그린 자화상이나 초상화는 또 얼마나 깊이가 있던지!
루벤스에 비해 너무 관조적이고 사색적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렘브란트의 천재성과 매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풍경화는 덜 알려진 화가들이라 그런지 왠지 비슷비슷 하고 키치적인 냄새가 나서 전시회장에서 볼 때는 별로였다.
그러나 도록으로 다시 하나하나 뜯어 보니 역시 굉장한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기를 표현한 그 섬세한 색감, 정말 하늘을 감싸는 공기의 부피가 느껴지는 기분이 들 정도다.
나뭇잎이나 바위, 나무 등치 등도 뜯어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회화가 얼마나 발전했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정물화는 사실 가장 흥미없는 장르이기도 한데 이번에 새롭게 관심이 생겼다.
특히 유리병의 투명함을 어찌나 생생하게 표현했는지 인간이 가진 놀라운 묘사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장미꽃잎을 한 겹 한 겹 그 질감이 그대로 전해지듯 섬세하게 그려냈다.
어쩌면 정물화야 말로 화가의 섬세한 묘사력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로마 유적의 폐허를 그린 그림도 사이즈가 크고 묘한 분위기를 풍겨서 인상적이었다.
나는 특히 카날레토의 베네치아 풍경화를 좋아하는데 비슷한 그림들이 몇 점 있어서 행복하게 감상했다.
정말 수평선 위의 파아란 대기 표현은 아무리 감탄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아름답다.
훌륭한 그림들이 너무 많아 익히 알고 있던 역사화나 신화화가 오히려 전형적이고 지루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전시회의 표지 그림으로 이용된 부셰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는 정말 선정적이다.
헤라클레스가 옴팔레의 젖가슴을 움켜 쥔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라 순간 당혹스럽기도 했다.
신화를 주제로 하지 않았다면 선정성 논란에 휩싸일 만한 그림이다.

모든 그림 하나하나가 전부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고 멀찌감치 떨어져 봐야 하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덜 알려진 명화들을 소개해 준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번 러시아 거장전에서도 느낀 바지만 러시아 미술과 미술관의 컬렉션이 갖는 의의를 새롭게 확인했다.
교류가 왕성해지면 더욱 많은 명작들이 소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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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문식·김정호 지음 / 김영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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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비슷한 종류의 책이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대충 훑어 보기만 하고 이제서야 읽게 됐다.
침대에 누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던 중 눈에 띄어 골랐는데 정작 책은 도서관에서 독서대 펴고 앉아 집중적으로 읽었고 열심히 읽을 만한 보람이 있었다.
얼마 전에 방문한 창덕궁의 길라잡이 설명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동안은 궁궐의 명칭이 나와도 아무 생각없이 넘어갔는데 한 번 방문해서 설명을 들은 곳이라 책에 나오면 무척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머지 궁들도 시간을 내서 꼭 가 보고 싶다.

조선 왕세자 교육은 아마도 조선 최고의 엘리트 교육 혹은 영재 교육이었을 것이다.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의식까지 있었던 걸 보면 확실히 조선은 유학을 국가의 기조로 숭상했던 것 같다.
학자 군주야 말로 조선왕조가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이었을 듯.
왕은 정치가이나 권력자였으니, 학문을 전업으로 하는 유생들이나 신하들을 학문적으로 제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보다 한 단계 위에서 스승으로서의 군주의 면모를 보여 준 영조와 정조의 학문적 성취는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다.
정조는 개인 문집만 해도 백 여 권이 넘을 정도로 학자의 면모를 보여 준다.
이 책에는 자세히 안 나왔지만 얼마 전 박물관에서 본 <왕의 글이 있는 그림전>에서도 그림을 사랑하는 숙종의 우아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조선의 왕 하면 신하들에게 휘둘리기나 하고 후궁들만 끼고 돌 것 같은 이미지인데 생각보다 품격있고 격조 있는 점잖은 선비들이었던 것 같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속설은 워낙 많아 왕의 자손을 낳기 위한 궁중 여인들의 노력은 참으로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제일 황당한 것은 이른바 길일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합궁일을 따로 정해 두는 것이니, 실제로 좋지 않은 날을 이것저것 제하다 보면 한 달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했다고 한다.
여성의 가임 기간이 배란일 기준으로 앞뒤 사나흘에 불과한데 배란일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 합궁일을 제한하게 되면 왕비가 수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고 보면 정비에게서 가장 많은 자식을 얻은 세종대왕은 소헌왕후와 정말 부부 금슬이 좋았던 모양이다.
세종대왕은 인간적으로도 무척 정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보통 독상을 받아 혼자 식사하는 법인데 그는 항상 여러 아들들을 데리고 같이 밥을 먹었다고 한다.

겨우 서너살 때부터 원자보양청이라 하여 영재교육을 시작한 조선 왕조의 왕세자 교육을 보면, 오늘날의 교육 열풍이 과연 전통이구나 싶기도 하다.
선천적으로 학문을 좋아했던 인종이나 정조 같은 기특한 학생들이면 부모나 사부나 가르치는 기쁨이 있었을텐데, 대부분의 평범한 왕세자들은 진도에 맞춰 따라가기가 꽤나 버거웠을 것 같다.
유모를 봉보부인으로 우대한 전통이나, 사부에게도 배우기 전 깍듯이 절을 했던 걸 보면 과연 조선은 인의예지의 나라였음이 분명하다.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영조의 어머니가 무수리였던 반면, 경종의 어머니는 정식 나인이었고 장희빈의 큰아버지는 당대의 부호였다.
비록 사약을 받아 죽기는 했으나 한 때는 왕비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던 인물이니,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다.
둘 다 똑같은 무수리 출신이라고 기술한 점은 고쳐야 할 부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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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즐거움 - 아버지들의 도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바르 리스너 지음, 최영인.이승구 옮김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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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발굴을 다룬 책인데 집중하기가 좀 어려웠다.
발굴 과정을 다룬 책은 대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이 들고 문화권이 달라서 그런지 발굴 뒷얘기 같은 게 재밌다기 보다는 생소한 느낌을 준다.
그래도 이 책은 비교적 쉽게 잘 쓰여진 편이다.
시대가 좀 뒤떨어진 느낌이 들지만 그런대로 흥미롭게 읽었고 이런 책도 반복해서 읽다 보니 비슷한 내용이 겹쳐지면서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지는 느낌이다.

1. 베링 해협을 건너 온 아메리카 인디언의 후손은 몽골리안이라기 보다는 코카서스 인종의 특징을 더 많이 갖고 있다.
당연히 아시아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면 시베리아를 건너 왔으니 코카서스인과 비슷한 게 당연할 것 같다.
오히려 몽골리안들은 베링 해협이 열린 후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훨씬 많이 건너 왔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책을 읽어 봐야 할 듯.

2. 폴로네시아인들의 조상이 인디언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인이었음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완전 흑인인 뉴기니의 멜로네시아인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오히려 폴로네시아인들은 곱슬머리가 없고 피부도 밝은 편이라 중국인과 비슷하다고 한다.
멜로네시아에는 머리 사냥 풍속이 있었는데 사람의 머리를 먹으면 그가 가지고 있는 힘, 즉 마나가 옮겨 온다고 믿었다.
식인 풍속도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이런 의식적인 행위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함.
이런 점에서 저자는 문화나 정신적인 관념들의 근원을 종교에서 찾았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화권에서 종교가 사회의 중심이 되고 거기서 비로소 문화와 전통이 생겨난다.

3. 크레타인들과 미케네인들은 도리스인이 건너 오기 전 그리스 본토를 차지했던 에게해인들인데 크레타에서 맨 먼저 생긴 문자가 선상문자 A 이고, 이것이 선상문자 B로 바뀌었는데 미케네인들이 이를 가져다 썼다.
그러므로 선상문자 B는 고대 그리스어의 구어체인 셈.
해독하기 어려웠던 까닭은 문장으로 쓰여진 게 아니라 회계용으로 기록한 기호 비슷한 걸로 쓰였기 때문이라고 함.
크레타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때문에 멸망했는데 기원전 1400년 경 미케네인들의 공격으로 최종적으로 망하고 만다.
호메로스가 노래한 아가멤논 등은 모두 역사 속의 인물들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4. 마야 문명은 과테말라 부근의 열대 우림에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사바나 기후였다가 강수량이 많아지면서 점점 정글로 변해가 결국 10세기 경 마야인들은 도시를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보통 이 때 유카탄 반도로 넘어가서 세운 문명이 아즈텍으로 알려졌는데 저자는 유카탄 문화가 마야와 동시에 번성했다는 점을 들어 이 가설을 부인했다.
다른 책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5. 저자는 성경의 기록들을 모두 사실로 받아 들인다.
솔로몬의 화려한 궁전이나 모세의 이집트 탈출을 전부 역사적 기록으로 가정한 후 얘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내 입장은 최소주의자이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함락했다느니 이집트 탈출 당시 파라오가 람세스 2세라느니 하는 말은 확실한 근거를 대지 않는 이상 단지 성경에 나왔다는 말만으로 증거를 갖다 붙이는 식의 전개는 받아들이 힘들다.
최근의 연구 성과가 수록되지 않아 아쉬운 대목이다.
더군다나 짐바브웨 유적이 이미 동아프리카인들에 의한 독립적인 문화임이 드러난 마당에 여전히 솔로몬의 오빌 운운 하는 건 시의에 뒤떨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고대 세계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 문명의 교류라는 책도 읽긴 했지만 하여튼 정말 오래 전부터, 문명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인간은 땅 위를 걷고 혹은 바다를 건너 교류해 왔다.
또 그런 교류가 없었다면 오늘날 이렇게도 구석구석까지 퍼지지도 못했을 것이고 균질적인 문화를 이뤄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동이야 말로 인간의 본성 같다.
세계 각국의 신화를 뜯어 보면 겹치는 구석이 참 많다.
읽으면 읽을수록 기독교가 헤브라이 민족의 독창적인 발명품이 아님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대홍수의 기억, 신전을 세우는 인간의 본연의 심성, 조상에 대항 숭배 의식, 비슷한 문화의 원형을 너무나 많이 발견한다.
굴드의 말대로 정말 우리는 최고의 안정성을 이룬, 매우 균질한 종인 것 같다.

고대 문화가 사라졌다고 해서 정말로 흔적도 없이 없어진 것은 아님을 저자는 강조한다.
사실 책의 서문과 에피소드 부분이 가장 감명깊었다.
우리가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조상들이 남긴 문화가 바탕이 되어 현재의 우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정신적인 것, 믿음과 전통을 잃어 버릴 때 물질적인 박탈보다 더욱 피폐해지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으리라는 말이 너무나 와 닿는다.
왜냐면 고대인들 보다 편한 삶을 살고 있다 해서 현대인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거나 행복한 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로 인간은 매우 정신적이고 의식적인 존재임이 틀림없다.
왜 고고학이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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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 고생물학자 굴드 박사의 자연사 에세이
스티븐 J. 굴드 지음, 김동광.손향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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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학자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유명 과학자들, 이를테면 칼 세이건이나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거, 마빈 해리스 등의 책을 읽을 때마다 놀라는 일이지만 학문적으로도 훌륭한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글을 잘 쓰는지 그들의 문학적 소양과 문장력에 감탄하게 된다.
번역문인데도 불구하고 비문이 없고 비유나 유기적인 구성 등이 마치 유명 소설가의 잘 쓰여진 소설처럼 한 편의 탁월한 글이 된다.
역시 세계적인 사람들은 다르구나 감탄하게 된다.
스티블 제이 굴드 역시 참 글을 잘 쓴다.
이런 훌륭한 문장들을 직접 원서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60대면 아직은 이른 나이 같은데 그의 빠른 죽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추럴 히스토리> 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라고 하는데 이런 훌륭한 글이 실리는 잡지를 나도 구독하고 싶다.

그가 고생물학자이기 때문에 다윈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유전학을 봐도 그렇고 현대 의학이나 생물학은 다윈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
이번 주제도 역시 다윈의 진화론이다.
특히 가톨릭 교회가 비오 12세의 어설픈 가능성에서 요한 바오로 2세의 완벽한 승인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제일 큰 소득이었다.
이제 가톨릭 교회는 갈릴레오를 파문하려 했던 과거의 잘못을 씻고 생명 창조의 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진보하는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을 거부하고 성경 무오류설을 믿는 교파가 일부 근본주의에 국한된 것임을, 또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임을 명백히 밝힌 굴드의 글을 시원하게 읽었다.
미국의 영향으로 한국의 기독교인들 역시 진화론 거부를 마치 신앙심의 한 표현인양 착각하고 있지만, 그래서 마치 무슨 순교라도 하듯이 진화론을 비난하고 있지만, 굴드의 말대로 교권과 과학은 겹치지 않는다.
과학이, 혹은 진화론이 우주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생명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밝히는 학문인데 반해 종교는 어떻게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분야다.
설마 그 하늘나라가 정말 지구 밖에 있는 물리적인 어떤 곳이라고 믿지는 않겠지?
그런데 이른바 근본주의자들을 보면 정말로 성경에 나온 하늘나라가 대기권 밖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떠들어 댄다.
굴드의 표현대로 종교가 소중한 것은 그들이 물리적인 세상의 비밀을 성경에 근거하여 밝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고결한 정신, 배려심, 희망, 연민, 애민 정신 등등 우리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해 주고 우리가 모여 사는 이 공동체를 보다 아름답게 이끌어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독특한 의식의 세계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관찰력에 깜짝 놀랬다.
과거에는 그저 유명한 화가일 뿐, 과장된 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남긴 노트를 보면 그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논리적인 연결 체계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역시 그도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관찰력으로 세상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천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유명한 <모나리자>에는 신비한 미소도 매력적이지만 그 배경은 그가 평생 연구한 지질학의 성과를 살펴 볼 수 있는 그림이다.
구석기 시대 벽화에 대해서도 굴드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보통 크로마뇽인은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인종이므로 그들의 예술적 재능에 깜짝 놀래게 되고 거칠게 표현될수록 시대가 앞선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탄소 방사능 검사를 해 보면 마치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이 르네상스 시대의 정교한 그림보다 뒤떨어진 게 아니듯 기교와 시대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 한 집단의 유전적 동질성은 10만 년 정도 유지되기 때문에 구석기 시대인들의 예술적 재능은 현대인에 비해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의 벽화 그림에 우리가 탄복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선형 진보 이론을 거부한다.
무척추 동물에서 척추 동물로,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를 거쳐 조류 그리고 포유류까지, 심지어 영장류의 정점에 바로 인간이 서있다는 관념은 전적으로 인간의 착각이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각자 처한 환경에 적응한 것이기 때문에 진화가 진보가 될 수는 없다.
의식이 인간의 독특한 특성일 수 있으나, 의식이 반드시 우월한 것, 진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재치있는 지적처럼 어쩌면 우주인은 지구를 박테리아의 세상으로 볼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일직선 진화한 게 아니라 곁가지인 인간유사종들이 많이 있었는데 최종 승리자가 되어 현재까지 남은 종이 바로 지금의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발전은 모든 종이 그렇듯 일직선 상으로 쭉 올라온 게 아니다.
우리는 최소 여섯 종의 인간유사종이 있었고 특히 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한 이래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로 각자 발전한 호모 에렉투스가 진출했으며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들과 같이 살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가 최종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사피엔스들을 물리치고 현재의 안정적인 집단을 이루었다.
옛날에는 네안데르탈인에서 크로마뇽인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른 계통수를 가진 곁가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인간은 고생대의 삼엽충, 중생대의 공룡처럼 그저 신생대의 짧은 시기 동안 지구에 많은 후손들을 퍼뜨린 포유류의 한 종에 지나지 않는 걸까?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이래 이처럼 충격적인 혁명도 없을 듯 하다.

번역본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은 책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자연사를 들여다 본 좋은 책이다.
이렇게 훌륭한 과학자이자 저술가가 일찍 세상과 작별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굴드의 다른 책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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