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사의 길잡이
박용운 지음 / 일지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후 읽고 싶었던 책이다.
이런 우연한 발견이 주는 짜릿함 때문에 서점 나들이를 즐기게 되는 것 같다.
제목만 봐서는 인터넷 서점에서는 도저히 흥미를 가지기 어려운 책이지만 서점에서 직접 표지를 열어 보니 내용이 너무나 알차다.
박용운이라는 저자가 아마도 고려 시대사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학자이신 모양이다.
제자들이 정년 퇴직을 기념해 이런 책을 발간해 준 걸 보면 말이다.
<고려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류의 가벼운 교양서도 좋지만, 전문가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일반 저술가들 보다는 조금 더 전문적이고 높은 수준의 책을 많이 출간해 주면 좋겠다.
얼핏 보면 교과서 같기도 하지만 내용이 알차고 지루하지 않으며 고려 시대를 여러 분야로 나눠 각각의 전공자들이 기술했기 때문에 고려 시대의 조감이라는 큰 주제에 잘 수렴한다.
통일성 면에서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조선에 비해 고려는 시대적으로도 상당히 앞서고 유교가 아닌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문화와도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여 덜 알려진 게 사실이다.
다행히 사극 열풍을 타고 고려 시대가 조금씩 조명되고 있긴 하지만, 더 많은 책들이 나와 관심을 환기시켰으면 한다.
사실 나도 고려 하면 불교 외에는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고 기껏해야 왕건의 국가 수립이나 이성계의 조선 건국 정도의 시대적 배경 밖에는 없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고려가 유교 국가인 조선과는 굉장히 다른 배경을 가졌고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는 사대부들의 나라인 조선과는 지배 계층이 판이하게 차이나는 문벌 귀족의 사회였음을 분명히 인식했다.
조선에도 음서 제도라는 게 있어 과거 합격 없이도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승진에 제한이 있고 무엇보다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권세있는 가문 출신이라도 과거에 목을 맸던 반면, 고려의 음서 제도는 오히려 좋은 가문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자격증과도 같았기 때문에 과거가 활성화 되지 못했고 관직이나 신분이 세습되는 문벌 귀족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역시 조선이 좀 더 열린 사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세도 정치로의 변질과는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고려 시대는 확실히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신라처럼 완전히 폐쇄된 골품제의 나라는 아니라서 여왕이 등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과부의 재가 자체를 금지하고 재산 분배에 차이를 둔 조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였다.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귀부인들도 재혼이 가능했고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가 살림을 차리는 풍속도 흔했다.
재산도 당연히 균등 상속됐고 왕의 딸들도 음서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봐도 성리학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학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여성 지위가 종속적으로 변해 가고 무엇보다 교조주의에 함몰되어 전쟁 포로로 귀환한 여성들마저 남편에 대한 절의가 손상됐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무신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은 처음 듣는 관점이다.
문치주의 나라였기 때문에 국방 문제는 사대외교를 통해 해결했다는 지적은 일리있는 말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무신 정권으로 국가가 혼란에 빠지고 몽골 항쟁도 정권 유지를 위한 차원이었다.
그러나 40여년을 버틴 덕분에 몽골은 고려에 대한 예속 수준을 낮춰 사대 외교를 맺는 걸로 끝났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은 전통적으로 한반도는 중국과 관계에 있어서 직접 지배를 받지 않고 책봉을 받고 조공을 바치는 사대 외교를 맺어 왔는데 과연 몽골이 고려를 완전히 없애 버리고 직접 지배를 하려고 했을까 하는 점이다.
무신 정권이 강화도에 틀어 박혀 저항했다는 점이 고려라는 큰 틀로 봤을 때 과연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
그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
대신 무신 정권 시기에는 신분 이동이 활발해진 점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한 가문의 전제정권은 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 

국가의 개념이나 토지제도, 교육제도, 관직 등 고려 시대의 전반적인 모습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알려 주고 여러 저자가 썼지만 통일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려가 대체 어떤 나라였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기꺼이 일독을 권한다.
담긴 내용은 상당히 수준이 있지만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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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 - Donggwoldo, Painting of Eastern Palace
한영우 지음, 김대벽 사진 / 효형출판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박물관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후 살까 말까 망설였던 책이다.
동궐도의 그 상세함과 방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차에, 아예 지도를 구입하면 좋을 것 같았고 책의 판형이나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가격 때문에 만지작 거리다가 내려 놓았다.
설마 이런 책도 있을까 싶어 도서관에서 검색을 했는데 마침 있길래 기쁜 마음으로 빌려서 읽었는데 안 사길 잘했구나 싶을 만큼 내용이 너무 간략하다.
외국인들을 위해 간단한 해설 아래 영어로 번역을 해 놨다.
역시 표지나 속지의 인쇄 상태는 훌륭한 편이지만 내용이 너무 소략되어 있고 무엇보다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지도가 없어서 아쉽다.
오히려 <우리궁궐이야기>에서 부록으로 끼워져 있던 동궐도 한 장이 더 유용하다.
외국인에게 우리 궁궐을 소개하는 책자로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궁궐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이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같은 저자의 책인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를 축약시킨 것 같다.
실린 사진도 똑같고 설명도 당연히 똑같다.
한 가지 마음에 든 점은 책의 인쇄 상태다.
올 컬러로 인쇄되고 페이지가 두꺼운 종이라 오래 보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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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1-22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책은 설명이 좀 가벼운 편이고요,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가 사진이나 설명 면에서 더 낫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 보세요 ^^
 
전략적 책읽기 - 지식을 경영하는
스티브 레빈 지음, 송승하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지하철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중 괜찮은 걸 만나기는 쉽지 않은데 이 책이 딱 그렇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가벼운 책인데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그렇지만 이런 독서 관련 책은 이제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워낙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책을 읽는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독서 관련 책은 거의 다 읽는 편이다.
독서법이란 결국 다 거기서 거기일까?
너무 많이 읽어서인가?
어떤 책을 읽어도 기발하다, 나도 해 봐야겠다 싶은 획기적인 발상은 찾기 어렵다.
여기 나온 내용들도 익히 알고 있는 방법들이고 나 역시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 동안 읽은 독서 관련 책들 중 유용했던 책으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가 가장 도움이 많이 됐고 최근에 읽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 등이다.
독서 에세이로는 표정훈씨 책이 재밌었다. 
이 책도 가볍게 일독하기에는 괜찮다.
특히 독서에 막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 같다. 

책값 아끼지 마라,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사라, 완독하려고 애쓰지 마라, 읽다가 재미없으면 던져 버려도 된다, 나중에 다시 읽어 봐라, 읽고 나서 감상문 써라, 읽을 때 저자와 대화하는 습관을 가져라, 책에 메모하는 거 무서워 하지 마라, 고전이나 서평에 주눅들 거 없다 등등 널리 알려진 독서법이 등장한다.
좀 특이했던 점은 미국의 독서클럽 문화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동호회 등이 형성됐지만 아직까지는 오프라인에서 많이 활성화 되지 않은 것 같아 내심 부러웠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취향이나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면서 같은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싶다.
물론 결국 책은 혼자 읽고 소화해 내는 것이지만 읽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감정들을 나누면 훨씬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 같다.
결국 이런 싸이트에 공개적으로 감상문을 올리는 것도 교류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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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1-19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안 읽어 보셨으면 가볍게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실용적인 조언법이 많아요.
그리고 위에서 추천한 두 책도 안 읽으셨다면 한 번쯤 읽어 볼 만 합니다.
다치바나의 속독과 다독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수도 있지만 하여튼 탁월한 독서가임은 분명하거든요.

이잘코군 2009-01-19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린님 보면 예나 지금이나 주제를 잡고 물고 물리는 독서를 하고 계신 듯 해요.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출판사와 알라딘에 '빚'진게 있어서 나오질 못하고 있네요. ^^ 저도 예전에 이런 식으로 읽었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읽어야 할 책들은 쌓여가고, 다른 책들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marine 2009-01-2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참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알라딘에서 여전히 "논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일견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워낙 논쟁이 시끄러워 따로 댓글 달지는 않았습니다. 열정을 잃지 않고 끝까지 서재활동 열심히 하시길 빌어요^^
 
한국사傳 2 - '인물'로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 한국사傳 2
KBS 한국사傳 제작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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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셜의 후속편으로 두 명의 MC가 나와서 진행하는 <한국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본 적이 있다.
영상을 통해 역사를 접하게 되면 보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는 점에서 좋기도 하지만 비전문가들의 한계라고 할까? 혹은 시청률 때문에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아 가끔 거부감이 들 때가 있어 특별히 챙겨 보지는 않았다.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박물관에서 삼국 시대의 묘지 조성법을 영상으로 본 후부터다.
책에서 문자나 그림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만큼 머리에 각인이 됐다.
페르시아전에서도 고대 유적들을 화려한 영상으로 복원시켜 놨는데 정말 페르시아가 얼마나 위대한 왕국이었는지 실감이 났다.
(그 전에는 기껏해야 민주정인 그리스에 패한 바보같은 독재가 다리우스의 나라, 이 정도로 밖에 몰랐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역사 스페셜이나 한국사전을 DVD로 관람할까 하고 마침 책이 나왔길래 읽게 됐다.
사건이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했다는 게 특징이다.
덜 알려진 인물들을 발굴해 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 같고 빈약한 자료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역사적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은 늘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무인의 이미지를 가진 정조는 새로운 시각이라 흥미로웠다.
사실 그는 책에 나온대로 암살의 위협에 시달린 만큼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설립했고 무예도보통지 같은 병법서를 편찬했으니 충분히 무술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도장을 새길만큼 신하들을 압도하는 전인적인 군주가 되고자 했으니 유학 뿐 아니라 군사력 장악에도 힘을 썼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노론 벽파의 암살 위협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으니 아들 정조의 복수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과연 영조가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인지 의심스럽고 만약 사도세자 외의 다른 왕자가 있었으면 왕위를 잇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이복형이었던 죽은 효장세자에게 양자로 입적한 것은 영조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조완벽이라는 사람이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가 베트남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주인이 베트남과도 무역을 했는데 조완벽이 한자에 밝은 유생이었기 때문에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이 얼마나 국제적인 무역 루트를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
확실히 일본은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과는 사회 체제가 판이했을 것 같다.
조완벽은 놀랍게도 베트남에서 이수광의 시가 유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록 그는 스무 살 때 일본으로 끌려가 이수광의 명성을 알지 못했으나 나중에 조선으로 귀환된 후 그 에피소드를 들려 주고 덕분에 이수광이 직접 조완벽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이수광이 연경에 갔을 때 베트남 사신을 만나 한자로 문답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의 시를 베트남에 가져갔는데 그게 거기서 유명세를 탔던 것이다.
어쩌면 고대 세계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교류가 빈번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 베트남 역시 유교 문화권임을 확인했다.
한 가지 재밌는 시각의 차이는, 조완벽이 조선 정부의 포로 석방 노력으로 풀려난 것을 높이 샀는데 내가 읽은 어떤 책에서는 당시 정부가 포로 석방에 별로 뜻이 없어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고 도망쳐 온 사람들도 정부를 비방할까 봐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노비는 본래 주인에게 돌려 보내고 심지어 양민도 노비로 귀속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각의 차이일 수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제작팀에서 단지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우리 선조들은 역시 인간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가볍게 결론을 내린 게 아닐까 싶다. 

세자빈 강빈과 소현세자의 죽음은 아직까지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아 사건의 극적인 성격에 비하면 덜 알려진 것 같다.
아들을 죽인 영조나, 혹은 아들을 의심한 선조 못지 않게 인조 역시 볼모로 끌려간 아들에게 극단적인 경계심을 품었으니 과연 권력 앞에서는 부자간의 천륜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정조의 죽음을 실록에 나온대로 혹은 박현모씨의 의견대로 당연히 과로사로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소현세자의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하다.
이덕일 같은 대중용 사학자 말고 제대로 된 학자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풀어 줬으면 좋겠다.
시신이 검게 변하고 온 구멍에서 피가 흘렀다고 하는데 이것이 당시 죽음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서술이었는지 혹은 당시에 사람을 즉사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이 존재했는지 인조와 소현세자의 관계는 아버지가 아들을 몰래 죽일 만큼 극단적으로 악화됐는지 역사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며느리와 손자들까지 죽인 걸 보면 확실히 인조는 아들에게 굉장한 분노와 의심을 샀던 것 같기는 하다. 

척화비를 쓴 사람이 이경석이라는 인물인지도 처음 알았다.
이 사람은 그 비문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송시열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는데 저자의 말대로 명분론자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자행한 만행을 생각하면 충분히 분노하고 망하게 됐을 때 오히려 잘 됐다고 원군 요청 따위는 무시했어야 할 일이지만 성리학이 지배하는 대의명분의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고 당시 성리학의 교조주의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방증한다.
그런데 그 당시 입장에서 보면 나라를 침범한 오랑캐들, 그것도 자신들이 우습게 보던 짐승같은 여진족들에게 머리를 조아린 일이 엄청난 상처가 됐을 것이다.
당시 사대부들에게 이경석은 요즘으로 치자면 을사오적처럼 청에 아부하고 영의정까지 되서 현종에게 궤장을 하사받은 한 마디로 사리사욕만 채우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효종 대신 청에게 죄를 지고 귀양을 갔다고 했으니 자기 욕심만 챙기는 뻔뻔한 탐욕주의자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군중들이 화가 나서 쓰러뜨린 삼전도비를 일제가 다시 세웠다고 조선을 짖밟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비난하는데, 일제가 조선을 생각해서 세웠리는 없겠지만 삼전도비 역시 역사적 유물이 아닌가.
당시 정부였던 일제로서는 세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대체 왜 이런 간단한 행정상의 절차를 놓고도 쓸데없는 분노를 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최근에 삼전도비에 페인트로 <철>이라고 써 놓은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더 비난해야 하지 않을까?
한자도 아니고 붉은 페인트로 한글로 철, 이라고 크게 낙서를 하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마치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고 그 엄청난 석굴을 파괴시킨 탈레반을 보는 것 같다. 

이 밖에도 단원 김홍도나 몽골 장수 살리타를 활로 쏘아 죽인 김윤후, 사대주의자로 비난받는 김춘추, 과학적 수사를 했다는 흠흠신서의 저자 정약용 등이 등장한다.
김춘추의 외교술이야 당시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탁월한 전술이었으니 사대주의자라는 비난은 지극히 오늘날의 말도 안 되는 시선에 불과한 것이고, 오히려 책에 나온대로 신라 귀족들이 백제의 침략에 손놓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영웅적이다라고 할 만큼 고구려, 당나라, 심지어 일본까지 다녀왔으니 신라로서는 김춘추야 말로 나라를 살린 최고의 영웅이었을 것이다.
신라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왕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행동하는 지도자였을 것이다.
흠흠신서에 나온 정약용의 판결은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칼로 장난을 치다가 하필 종기 부위를 맞아서 고름이 터지는 바람에 한 달 만에 죽어 버린 사건이 생긴다.
죽은 사람의 미망인이 복수를 하기 위해 찌른 사람의 집에 찾아가 그 아들 부부를 묶고 방망이로 때려 죽인다.
정말 무시무시한 복수극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흉기가 있었다고 하나 여자가 남자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대단한 여장부다.
사건과는 별개로 아내라면 이 정도는 해야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도덕 관념으로 보면 복수극은 의리로써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내의 행동은 마땅이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칼에 맞은지 한 달이나 지나서 사망을 했기 때문에 칼에 의해 죽은 게 아니라 종기가 터진 걸 제대로 치료를 못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친절하게 법의학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직접사인은 패혈증, 중간 선행사인은 세균 감염, 선행사인이 바로 칼에 의한 상처니 남편은 살해당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살인은 복수로 인정받을 수 없게 돼 버렸다.
그리하여 아내는 옥에 갇히고, 아내를 도와 죽은 자의 아들 부부를 감금했던 이들도 살인 동조죄로 갇힌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정약용은 황당하게도 아들 부부마저 아버지의 죽음을 방조했다고 체포한다.
이 점은 현대인인 나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인데, 아들 부부 역시 자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위로해야 정상이지 않을까?
아버지가 방망이에 맞아 죽었는데 (그것도 억울하게!)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 본 아들 부부마저 살인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효했다고 체포되는 건 이치에 맞지가 않다.
저자는 정약용의 이 판결을 과학적 수사의 표본이라고 하는데 어쩐지 인용이 잘못된 느낌이 든다.
흠흠신서 등을 써서 법률적 교육을 받은 적이 없던 당시 관료들을 각성시킨 점은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위인은 무조건 훌륭하다는 대전제는 왠지 교조주의의 냄새가 난다.
전기를 쓸 때 항상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하여튼 비교적 재밌게 읽은 책이고 역사적으로 덜 유명한 사람들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나머지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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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클래식에 관한 책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저자는 박종호씨다.
의사는 원래 글쓰기와 거리가 먼 직업인데 특이한 이력 때문에 책을 낸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기우로 만들만큼 참 글을 잘 썼다.
이 책은 현악4중주단인 콰르텟엑스를 이끄는 바이올린 주자가 쓴 책이라 전문성 면에서는 믿음이 갔지만 글솜씨도 과연 읽을 만 할지 걱정을 했던 책이다.
문장력이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비문이 없고 비교적 편안하게 쓰는 편이고 무엇보다 교향곡에 비해 덜 알려진 훌륭한 현악 4중주 곡을 많이 소개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고 싶다.
더불어 실내악단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이 생겼다.
웅장한 교향곡 공연 외에도 실내악단의 공연도 자주 가 보고 싶다.
대체 누가 클래식을 가식덩어리, 교양인인 척 하는 위선자, 한 물 간 고리타분한 음악이라고 비난했던가?
이 책을 읽어 보면 고전은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혹은 안 듣는 책이나 음악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고 여전히 현대에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훌륭한 예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클래식에 별 관심이 없을 때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유명한 음악가들의 음악만 듣곤 했는데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현대 음악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현대 음악가도 대체 누가 누군지 인식이 잘 안 됐는데 자꾸 접하다 보니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음악도 듣고 싶어진다.
좋은 곡들을, 특히 현악 4중주 곡들을 많이 소개받아 메모를 했는데 언제 다 들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관심을 쏟다 보면 언젠가 다른 장소에서 듣게 됐을 때 아, 그 음악이구나 하고 반갑게 조우할지도 모르니 헛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읽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나> 와 <올 댓 클래식>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책으로 읽다 보면 개념이 잡히고 무조건 읽었던 앞의 책들도 다시 보면 훨씬 재밌고 쉽게 느껴진다.
정말 독서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가장 훌륭한 간접 체험이 아닌가 싶다. 

한 가지 기록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유명 클래식 만화인 노다메 칸타빌레 얘기가 종종 등장한다.
아마 저자가 집필할 때는 베토벤 바이러스가 안 나왔던 것 같다.
사극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듯 클래식 역시 드라마를 통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피아니스트>란 영화를 보고 쇼팽의 발라드에 반한 것처럼 혹은 <Love of Siberia>를 보고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빠져든 것처럼 말이다.
클래식 드라마가 많이 나와서 좋은 음악들을 많이 접할 수 있길 바라고 공연 문화도 보다 활성화 되서 영화관을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연주회를 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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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1-2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전 솔직히 아직까지는 연주자에 따른 차이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떤 곡을 들으면 너무 좋다, 느낌이 온다, 이 정도?? 님이 추천하신 번슈타인의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챙겨서 들어 보겠습니다. 정말 공연이 좀 더 일반화 되서 티켓에 대한 부담이 줄어 들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