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전염병들
브린 바너드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200 페이지도 안 되는 굉장히 짧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다.
삽화가 첨부되어 중고등학생들도, 혹은 똑똑한 초등학생도 쉽게 읽을 수 있을 수준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대표적인 전염병 여섯 가지에 대해 기술했다.
페스트나 콜레라, 천연두의 무서움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황열병은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로 이렇게 무서운 전염병인 줄은 처음 알았다.
얼굴이 누렇게 뜨면서 황달이 오고 열이 나서 황열병이라고 부른다.
천연두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살시킨 데 비해, 황열병은 아프리카를 침입한 백인들을 쓰러뜨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아미스타드의 반란은, 아마도 황열병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추측한다.
책에 언급된 걸 보니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조만간 볼 생각이다.
삽화가 좀 유치하긴 하지만 대신 아예 한 면을 전부 차지할 만큼 큼직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마치 어린아이들 그림책처럼 큼직큼직 하다.
특히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할 때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주술적인 행위를 하는 당시 의사들의 모습이나 채찍 고행단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렸다.
조금만 더 삽화에 신경을 썼더라면 훨씬 더 훌륭한 책이 됐을 것 같다.
예방의학 시간에 무조건 암기했던 존 스노라는 사람이나 채드윅 등이 현대 공중보건정책의 기초를 세운 사람으로 언급되어 무척 감회가 새로웠다.
인도의 풍토병이었던 콜레라가 전세계로 확산된 것은 영국 제국주의 군대 덕분이었다.
로마 군단 역시 6세기 무렵 에티오피아에서 페스트를 유럽으로 들여 왔다.
40일 간의 검역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40일 단식을 토대로 만들어낸 격리 기간이라고 하니, 기독교가 서양 문화에 미친 영향을 새삼 확인하는 기분이 든다.
제논의 우두법이 개발되기 전, 중국에서는 이미 천연두를 앓고 난 사람의 고름을 코로 흡입시켜 접종하는 방법이 시행되었다.
경험상 한 번 걸리면 평생 면역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대신 이 방법은 예방하려다가 오히려 천연두에 걸려 죽는 확률이 50명 당 1명 꼴로 다소 높은 편이었다.
제논의 우두법 덕분에 천연두를 완전히 박멸했으니 전염병 역사에서 기록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시대 전염병을 다룬 책에서 천연두가 곧 두창이고 당시 시력상실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심봉사도 바로 두창 때문에 맹인이 됐을 거라고 흥미로운 가정을 한 바 있다.
천연두를 의학용어로 small pox라고 하는데 대체 왜 small 인지, 그렇다면 great도 있는지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great pox는 바로 큰 종기를 만드는 매독을 일컫는 말이고 그것에 비해 딱지가 작다고 붙여진 라틴어였다.
서양에서 질병 기전이 정의되는지라 라틴어나 서양 역사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가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한 것 같다.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독특한 시리즈라 다른 책도 읽어 보고 싶다.
유명한 맥닐의 <전염병의 역사>를 청소년용으로 압축한 느낌이 든다.
의학의 발전은 적어도 유아 사망률 감소나 전염병 퇴치에 있어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대체 누가 현미경에서 보이는 그 조그마한 극미동물들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전의 연구가 누적된 결과겠지만, 질병이 세균설을 입증한 파스퇴르나 코흐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의 미술가 -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사
안휘준 외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알라딘을 방황하다가 건진 책이라 더 뿌듯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판인데 나온지 몇 년 된 책이라 그런지 인쇄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재판이 나온다면 종이질을 더 빳빳한 것으로 바꾸고 그림도 좀 많이 실어 줬으면 좋겠다.
서양화도 그렇지만 동양화 역시 그림을 읽는 법을 어느 정도 익혀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기왕이면 그림을 부분적으로 확대시켜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놓치고 지나갔던 부분을 저자가 짚어주면 그 다음부터는 그 그림을 볼 때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술한 책이라 수준이 상당하고 무엇보다 문체가 비교적 고른 편이라 읽기 편했다.
특히 조선 시대 화가들이 비해 근현대 화가들은 관심이 적었는데 김환기나 장욱진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생겨서 기쁘다.
김환기야 워낙 유명한 화가라 이전에도 자주 접했지만 장욱진의 경우는 리움 미술관에 가서 처음 알게 됐다.
이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몰랐는데 아이들처럼 그린 그림이 어찌나 천진난만하고 유쾌한지 또 색감은 얼마나 예쁜지 대체 이 화가가 누굴까 관심이 생겼었다.
그리고 처음 이 책에서 장욱진을 만났는데 그림과는 다르게 향토적인 느낌을 받았고 유명한 역사학자인 이병도씨의 사위라는 것도 알았고 도시가 싫어 시골에서 수 십년을 칩거한 독특한 이력도 알게 됐다.
60년대부터 외국으로 나가 활동한 김환기와는 매우 대조적인 이력이다.
현재 그림값이 가장 치솟는 블루칩 화가라고 하니, 역시 사람들 보는 눈은 다 비슷한가 보다.
솔직히 김환기씨 작품은 비구상이 많아 이해하기 좀 어렵다.
과천현대미술관에서 그 분의 작품을 몇 점 접했는데 별 느낌이 없었다.
아직 현대 미술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내 감상 수준이 낮은가 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유명하긴 하지만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한 건지 이해가 안 갔는데 책을 통해 확대한 부분들을 보고 깜짝 놀랬다.
실제로 몽유도원도를 접한다면 훨씬 감동이 클 것 같다.
왜 안견을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로 꼽는지 알 만 하다.
흔히 보는 후대의 산수화와는 느낌이 다른 굉장히 세련되고 화려한 필치다.
불화를 그린 금암당 천여의 소개도 유익했다.
박물관에서 불화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불교 미술이야 말로 종교를 떠나 한국의 전통 문화를 담당했던 축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용주사 불화가 김홍도 그림이라는 설을 부인한다.
불화는 워낙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비록 김홍도가 감독 지휘했다는 정도까지는 수용할 수 있지만 직접 손을 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확실한 근거가 없다면 나 역시 회의적인 쪽으로 가닥을 잡고 싶다.
겸재 정선이나 현재 심사정 등이 문인화가였지만 전문 화원에 버금가는 훌륭한 묘사력을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됐고 무엇보다 표암 강세황이나 공재 윤두서의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유학하는 선비들이 어쩜 이렇게 신묘한 솜씨를 가졌는지!
양반 사회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소외된 계층에서 불우한 삶을 살았다는 게 참 안타깝다. 

재밌게 읽은 책이고 수요강좌를 묶은 책이라는데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그림 백가지
박영대 지음 / 현암사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집어든 책. 
사실 빌릴 책들이 쌓여 있는데 이렇게 눈길을 끄는 책이 있으면 참 난감하다.
독서 리스트에 없는 책은 한 번 지나치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에 눈길이 갈 때 어쩔 수 없이 순서를 무시하고 먼저 빌려서 읽게 된다.
가끔 대박을 건지는 경우도 있는데 솔직히 이번 책은 그저 그렇다.
저자가 이 쪽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긴 한데 아주 전문가는 아닌 느낌이 든다.
그냥 일반인들을 위해 아주 쉽게 설명한 책 같다.
먼저 읽은 <조선 왕실의 미술 문화>와는 수준 차이가 많이 나고 그렇다고 글솜씨가 썩 괜찮은 것도 아니라 적극 추천할 책은 못 된다.
그렇지만 우리 그림을 100가지나 소개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는 그림도 있지만 모르는 그림도 꽤 많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어설픈 저자의 감상은 좀 자제했으면 좋겠다.
별로 비슷한 내용도 아닌데 그림 설명 대신 어색한 감상평을 자꾸 집어 넣으니까 글이 아마추어처럼 보인다. 

동양화를 이해하려면 화려한 색감 보다는 여백의 미, 운치, 우아함 등에 눈을 떠야 할 것 같다.
특히 먹이 주는 그 선의 느낌을 잘 이해해야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비슷한 그림이 계속 반복되서 살짝 지루한 감도 없지 않지만 하여튼 색체 위주의 서양 미술과는 구별되는 평면적이고 정적인 동양 미술의 독특한 개성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문인화가들이 참 매력적인데 학문을 하는 선비들이 이렇게도 우아한 취미를 가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단원 김홍도나 안견처럼 전문적인 화가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공재 윤두서 등의 문인화가들 그림은 옆에 씌여진 시와 함께 정말 시,서, 화의 삼절이라는 말이 딱 생각나고 강세황 같은 사람의 그림은 전문 화원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묘사력이 놀랍다.
리움 미술관이나 호암 미술관 등을 관람해 볼 생각이다.  
중국 고사성어나 한문 등을 좀 알면 제대로 즐길 수 있으련만 그 점이 좀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왕실의 미술문화
이성미 지음 / 대원사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시대 미술에 대해서는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서양의 화려한 미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개성적인 일본 미술에 비해서도 내세울게 별로 없는, 그저 중국 미술의 아류 정도로만 생각했다.
먹과 묵으로 된 자연 풍경은 사실적이지도 않고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다.
화려하고 정교한 르네상스 그림을 동경하는 내 취향에 산수화나 수묵화는 도무지 맞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산회상도를 처음 보고 나서부터다.
일단 그렇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림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10m는 충분히 넘었을 거다) 천여명에 가까운 인물들을 그린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그림은 본다기 보다는 그 뜻을 읽을 수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즐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후로 불교 미술 뿐 아니라 우리 그림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그저 화가라고 하면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놀라운 솜씨의 화가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고 특히 강세황처럼 문인화가들이 격조높은 시와 함께 우아한 필선으로 그린 그림들이 많다는 걸 알고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았다.
산수화가 시시했던 것도 내가 거기에 나오는 중국 고사들을 잘 몰랐기 때문에 뭘 그린 건지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마치 르네상스 그림을 알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어야 하듯 말이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최한 <왕의 글이 있는 그림전>은 조선 시대 국왕들의 미술 취향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이에서 방황한 국왕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숙종이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는 걸 알고 나니 마치 역사 속의 박제화된 인물이 살아 숨쉬는 생동감 있는 인간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이 책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헌종 역시 세도 정치에 휘둘린 임금이었다는 게 내 지식의 전부인데 사실 그는 서화에 아주 관심이 많았고 그의 후원을 받아 왕실 미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송나라의 휘종이 훌륭한 화가에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정치에 무능했듯 헌종 역시 비록 정치에서는 별 업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시서화를 사랑하는 꽤나 매력적인 국왕이었던 것 같다.
전혀 관심도 없던 헌종 시대가 눈에 잡히듯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결국 인간의 감수성은 시대와 민족을 초월해 보편성을 갖는다는 걸 느낀다.
서양의 화려한 미술의 역사를 보면서 내심 부럽고 왜 우리는 저런 미술 문화가 없었을까 아쉬웠는데 다만 우리는 그 전통을 제대로 이어오지 못했을 뿐 역시 우리도 왕실에서 미술을 후원하고 예술을 즐기는 귀족 계층들이 있었다.
예전에 러시아전을 관람한 후 러시아 미술의 위대함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처럼 이번에는 조선의 최상류층이 즐기던 미술 문화에 눈을 뜨게 됐다.
따지고 보면 문인화는 단지 그림을 전문으로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하고 나라일을 보는 학자이자 관료들이 여기로 자신들의 시에 그림을 덧붙이는 것이니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아하고 격조 높은 계층이었을 것 같다.
특히 강세황의 그림을 보면 전문적인 화원도 아닌데 어쩜 저렇게도 잘 그릴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조와 김홍도의 관계도 책에 자세히 묘사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신윤복의 얘기는 기록에 없던 탓인지 안 나오지만 대신 그 아버지 신한평은 어진화사로 일할 만큼 당대의 뛰어난 화가였다고 한다.
왜 그런 훌륭한 그림들이 많이 전해지지 않는 것인지 그 점이 참 안타깝다.
정조란 인물은 예전부터 르네상스를 일으킨 훌륭한 중흥의 군주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알면 알수록 정말로 매력적이고 대단한 사람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 역시 비명에 가지 않았다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하지 않았을까 아쉽다.
정조는 신하들을 휘어잡을 만큼 뛰어난 정치력과 대담한 베짱을 가지고 있었으나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문집을 남기고 무인 기질도 출중하고 그림과 글씨에도 능한 팔방미인이었던 것 같다.
정말 박현모씨 의견대로 40대에 과로사를 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다방면에 출중했던 것 같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나 진경 산수화도 정조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활성화 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 자신도 괜찮은 화가였던 것 같다.
비록 동양화를 평할 능력은 안 되지만 그가 남긴 그림들을 보면 그의 우아하고 격조 높은 그림에 대한 취향이 눈에 보인다. 

조선 왕실의 미술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고 무엇보다 그림들이 많이 실려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이성미라는 노교수의 정년 퇴임 기념으로 제자들이 출간한 책인 모양이다.
스승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것 같다.
무능하게만 느껴졌던 조선 왕실이, 궁궐과 그림에 관심이 생기면서 새롭게 와닿는 기분이다.
결국 선조들에 대한 자긍심은 전통의 연계를 통해서 지금도 우리가 그 문화를 향유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 같다.
조선 시대 그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 볼 생각이다.
유익한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2천년 교양 교양인 시리즈 1
강재언 지음, 하우봉 옮김 / 한길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알라딘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
가끔 이렇게 우연히 집어든 책이 명저인 경우가 있다. 
횡재한 기분이랄까?
한국 유학의 특징을 고조선 시대로부터 일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면면히 서술해 나간다.
저자는 재일 사학자라고 한다.
이 책 역시 한국인에 의해 번역되었다.
그러나 번역서라고 보기에는 문장이 너무나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처음에는 당연히 한국어로 쓰여진 책인줄 알았다.
아마 저자가 재일교포라 기본적으로 한국어의 단어 선택이 적절했을 것이고 덕분에 옮기기도 쉬웠을 것 같다.
이 책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3년 동안 일본의 잡지에 연재된 칼럼을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연재물로 보기에는 그 통일성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마치 한 권의 저술을 위해 한번에 쓴 책 같다. 
일단 저자의 깊은 역사 인식과 전문성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내가 동의하는 바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밝히겠다. 

먼저 고조선의 실체가 고고학적 발굴을 토대로 기원전 5세기 경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 역시 당연히 인정되는 한국의 역사이고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래인이 되어 일본 문화에 획을 그은 것처럼 고대 중국인들 역시 한반도로 건너와 선진문화를 전해 주고 정착했을 것이다.
백제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것은 당연하고 기자나 위만 등이 한반도에 건너와 선진문화를 전해준 것은 부정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총균쇠>의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문화는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고 전파는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도 은나라의 현인인 기자가 조선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우고 문화를 전해준 것을 소중화의 근원으로 삼을 만큼 자랑스러워 했다. 
오늘날 한국인의 입장이 선조들과 같을 수는 없겠으나 그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조광조 등이 지나치게 엄격한 도학정치를 추구해 중종이 그만 그들에게 질리고 말아 내쳤다는 의견에도 동의하는 바다.
사실 현량과라는 것도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추천에 의한 것이니 그 기준이 얼마나 애매모호하겠는가?
조광조라는 학자의 인격과 지식은 정치적 평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후대로 갈수록 주자학 제일주의의 경직화와 사상독재는 결국 근대화를 가로막고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끈 장본인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책에서는 예송논쟁이 고도로 발달한 한국 학문과 철학 사상의 우아한 격론의 장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나는 저자의 의견대로 그것은 실제적인 것으로부터 지극히 멀어져 추상적인 것에 목을 맨 한심한 작태라고 생각한다.
사상 논쟁이 한 당파를 몰살시키는 돌격대장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게 오히려 한국 사상사와 정치사의 불행이다. 

그러나 일부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저자와 생각이 다르다.
세조의 경우 저자는 훈구대신들로부터 정권을 유린당한 조선을 구해낸 수성의 군주라고 평했으나 나는 세조의 계유정난이 공신층을 양산해 내고 국왕 전제정치로 흐른 바람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는 쪽에 더 마음이 간다.
저자는 훈구대신들이 사상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방면의 학문에 업적을 남겼다고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평했으나 그들의 어두운 점, 이를테면 심각한 토지 소유와 관직 독점, 특권층화 된 것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또 광해군의 경우도 실각할 수 밖에 없었던 전후 사정에 대해 너무 가볍게 넘어가 마치 명분주의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폐위된 현명한 군주라는 식의 인상을 주는데 궁궐 영건 사업으로 민심이 피폐해지고 서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나치게 왕권 확보에 골몰한 나머지 유림들을 적으로 돌린 정책상의 실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명기씨 의견에 동의하는 바다.
무신정권에 대해서도 신분 질서가 흔들리고 문벌 귀족이 아닌 사람들도 관직에 진출했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으나 과연 사회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보다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
결국 최씨 가문이 60여년의 전제 독재를 행한 것이니, 훗날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와 다를 게 무엇인가?
강화도에 틀어박혀 몽골에 저항했다고 하지만 국토는 유린됐는데 집권 가문만 섬에 처박혀 버티면 자주 독립이 유지되는 건가?
오히려 전통적인 사대외교의 대상을 바꿔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한 가지 의문은 중국은 고래로부터 한반도를 직접 지배하기 보다는 책봉과 조공 등을 통해 간접 지배하는 형식을 택했는데 몽골이 고려를 처음부터 멸망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최씨 정권이 강화도에서 30년을 버틴 덕분에 고려가 자주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했는데 과연 이것이 올바른 평가인지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다.
청이 조선을 항복시켰으나 역시 조선은 다만 사대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계속 독립국으로 남았다.
청과 몽골의 기본적인 정책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궁금하다.
또 한명기도 지적한 바지만 인조반정 후 조선의 대외정책이 숭명반청으로 급격히 바뀐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기조는 청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화친 외교를 계속 해 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앞에 내세우는 명분론적 입장이 약간 다를 뿐 서인정권 역시 완전히 미치지 않고서야 엄청난 군사력을 자랑하는 청과 정면으로 맞서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광해군 때만 해도 청은 아직 명을 복속시키지 전이었기 때문에 조선에게 동맹국으로서의 화친 정도를 요구했으나 인조가 즉위한 다음부터는 노골적으로 주종관계를 강요했기 때문에 아마 광해군이 계속 왕위에 있었더라도 그 요구를 수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대응에 있어서 좀 더 유화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당시 중국 사정에 대해 저자가 너무 가볍게 지나친 것 같아 아쉽다.
저자는 인조 반정 후 서인정권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도발했다고 하는데 이 점은 중국사를 자세히 연구한 한명기의 분석이 훨씬 유효하다.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한 책이고 한국 유학의 발전 과정과 문제점, 역사 속에서의 역할 등에 대해 잘 풀어 쓴 책이다.
무엇보다 읽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책을 읽듯 너무나 재밌게 술술 넘어간다.
몇 가지 의문점과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관점의 차이이기 때문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관점에서 비교해 봄으로써 내 역사적 관점이 더 선명해지는 느낌들 갖게 됐다.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고 비록 유학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을 잃어 가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인의 문화와 일상을 책임지는 기본적인 가치관이자 세계관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냉정한 비판을 통해 보다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단순히 공자는 죽었다라는 식의 맥빠진 선언이 아니라 2천 여년을 이어온 우리의 문화와 가치관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서구 문명이 기독교와 그리스 로마 전통 아래서 기반을 다지고 있듯 한국 문화도 유교의 뿌리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