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만들어진 신화
송호정 지음 / 산처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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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띄엄띄엄 읽어서 쓰기가 좀 민망하다.
지하철에서 대충 읽고 다시 보려고 했는데 한 번 본 부분을 다시 보려니 집중이 안 돼서 결국 재독은 포기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저자도 이 책을 본격적인 학술서라기 보다는 가벼운 에세이 정도로 기술한 것 같아 재독이 어렵기도 했다.
저자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한 때 이덕일이 쓴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 어쩌고 한 책을 그래도 나름 고대사에 대한 의견 개진이라고 경청하면서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정조 편지 발굴 때 보여준 그 억지스러운 태도에 질려서 이제 나는 이덕일을 역사학자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진정한 역사학자라면 자기 주장과 다른 증거가 나왔을 때 최소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는 태도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전면적으로 내가 틀렸다, 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 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편지 때문에 더더욱 심환지가 정조를 암살했을 거라면서, 암살은 최측근에서 일어난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보면서 정말 한숨이 나왔다.
혜경궁 홍씨를 남편 죽인 비정한 여인네로 몰면서, 한중록을 죄다 거짓말이라고 몰아 세우고 정조 독살설을 유포시켜 엄청난 인세를 긁어 모으더니만, 이제 그 위치가 어떻게 추락할지 정말 기대된다.
이런 학자가 쓴 고조선 대륙 지배설은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다. 

저자는 아마도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혹은 매우 드문, 고조선 전공자인 것 같다.
비파형 동검이 발견됐다고 해서 다 고조선 영토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한 논증은 이미 다른 사람의 책을 통해 충분히 인지했던 바이고, 고대에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고 해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이 높아지는가는 정말 생각해 볼 문제다.
저자의 말대로 남만주 일대와 서북한 지역에 걸쳐 비슷한 문화권을 지닌 집단이 살고 있었고 끊임없는 유입을 통해 고조선이라는 국가로 성장해 나갔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제국이 생겼다는 가정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덕일이 쓴 책에서는 왜 신석기 시대에 국가 형성이 불가능하냐고 반문하는데, 그렇다면 북한학계의 주장대로 세계 4대 문명에 덧붙여 대동강 문화도 끼워 넣어야 할 것이다.
역사 스폐설이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어설픈 논리 전개에 거부감을 가질 때가 많았는데 고조선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분명히 억지 논증을 지적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책에서 읽은 건데, 백제의 고을명이 중국에도 있다는 이유로 백제의 영토가 산둥 반도에 이르렀을 거라는 역사스페셜의 추리를 비판했다.
이 책에서도 단지 방어 시설 몇 개가 발굴됐다고 해서 고조선의 도성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국가가 형성되기 전에도 지역민들끼리 철책 등을 세운 방어촌락이 있었다고 한다.
고대사에 대해 현실적으로 추론하면 식민주의자라느니,민족 정신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비판도 이제는 그만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이런 국수적인 태도가 중국의 동북 공정처럼 대외 관계를 어렵게 하지 않을까?
어떤 역사학 까페에서 본 글인데 일본이나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조건 한국 기원설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든 오래된 거, 최초는 죄다 한국 꺼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중국의 동북 공정 비판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도 지적한 바지만, 백제인들이 일본 건너가서 문화 전달해 준 것은 자랑하면서 왜 연나라 등에서 철기 문화 들여온 것은 인정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생겼다고 주장하는가?
오히려 이런 국수적인 태도야 말로 문화 발전을 저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별 무리가 없었고 에세이 성격이 강해서 보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
같은 저자가 쓴 <역사 속의 고대사>를 읽어 볼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누가 훔쳐 갔는지 분실했는지 자리에 없는 걸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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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맨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외 지음, 원은주 옮김 / 웅진윙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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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얼마만에 읽은 자기 계발서인가!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혹은 이렇게 돈 벌었다는 책은, 바로 당신이 그 책을 사 주기 때문에 저자가 돈을 벌고 성공하는 거라는 시니컬한 문장을 읽은 후부터 자기 계발서에 대한 관심이 뚝 끊겼다.
그럴싸한 말로 사람을 현혹시킨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 최고의 책이라 할 수 있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Flow> 이후, 더 이상의 자기계발서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 후로는 거의 손을 안 댔었다.
그러다가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이 책을 추천받고 집어 들게 됐다.
모닝 페이퍼라는 아이디어가 신선하게 들렸다.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호기심을 갖고 집어 들었는데 판형이나 디자인이 괜찮다.
역시 아이디어는 바로 그 핵심 단어, 모닝 페이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른바 자유연상 기법을 활용했다고 할까?
정신과 치료 때 이 자유연상 기법을 이용해 맥락이나 목적, 주제 같은 거 생각하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종이에 적어가면 그 사람의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것들이 튀어나오면서 긴장감이나 갈등이 해소된다고 배웠던 것 같다.
저자는 그런 면에서 이 모닝 페이퍼가 일정한 주제를 갖는 일기와 다르고, 또 컴퓨터 대신 반드시 손으로 노트에 적어야 한다고 했다.
그 점에 동의하는 것이, 확실히 컴퓨터로 일기를 쓰게 되면 자꾸 문장을 만들려고 하고 자유롭게 쓰기가 어려워진다.
하나의 주제로 글이 모이기 때문에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는 스스로 걸러 버린다.
또 가능하면 좋은 얘기만 쓰려고 하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쓴 일기를 읽어 보면 진짜 내 마음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 보인다.
뭐랄까, 좀 그럴듯 하게 보이려고 약간의 위장을 한다고 할까?
나 혼자 읽는 일기인데도 말이다.
옛날에 전여옥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나름 그녀의 에세이에 자극을 받을 때 (지금은 정말 너무 싫지만) 자기는 아침에 출근해서 일기를 쓴다는 말이 있었다.
저녁 때 일기를 쓰면 감상적으로 흐르기 쉬워서 아침에 출근해서 잠깐 전날 있었던 일과 하루를 시작할 때 마음가짐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나름 일리가 있어 보여 해 보려고 했는데 항상 바쁘고 정신없는지라 실천을 못했었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나서 바로 오늘 한 시간 정도 빨리 일어나 모닝 페이퍼를 써 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 놈의 노트가 준비가 안 된 것이다.
뭘 좀 해 보려고 해도 기본적인 것들부터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할 수가 있나?
괜히 금쪽 같은 아침 시간에 빨리 일어나 방황하다가 다시 잘 수도 없어서, 대충 A4 용지에 끄적여 봤다.
어제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았던 일들이 마구잡이로 튀어 나왔고 약간의 위로도 받은 느낌이었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정말 만고의 진리이고 어쩌면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인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명언인데도 막상 현실에서는 실천하기 어렵다는 걸 종종 느낀다.
특히 나처럼 이른바 "희생자 정서" 를 가진 사람은 더더욱 말이다.
어떤 집단에서든 일종의 역할이라는 게 있는데 나는 주로 남을 돕고 내가 손해보는 희생자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남을 위해 뭔가 했을 때 얻는 뿌듯함, 혹은 사람들의 칭찬, 쟤 정말 착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데 문제는 이게 지나쳐 나중에는 약간의 자기비하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실제의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만, 남과의 관계에서는 항상 내가 손해보는 쪽을 택하고 남을 치켜 세워주면서 나 자신은 낮추는 그런 제스춰를 취한다.
하여튼 이 책에 따르면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남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간단한 예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화장도 안 하고 옷도 심란하게 입는 아내와 엄마가 고마우면서도 남들에게 내놓기는 부끄럽고 창피한 그런 가족들의 심리라고 할까?
<장미빛 인생>에서 최진실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살았는데 막상 가족은 그를 부끄러워 하고 남편은 예쁜 여자를 찾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약간의 사치를 부리라고 조언한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제목도 이것과 같은 맥락인데, 일상의 미의식을 높힐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하다못해 머그컵 하나도 예쁜 걸로 사고, 목욕할 때도 향비누로 하고, 커피도 좀 맛있는 걸로 먹고, 뭐 이런 자질구레한 사치들 말이다.
아니면 좀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가, 혹은 뮤지컬을 보러 가던가 하는 문화생활 같은 것도 해당된다. 
큰 돈 들이지 않아도 삶을 조금 더 그럴듯 하게 만드는 소소한 방법들이 많이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직장에서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리라.
우리는 모두 경제적 인간이고 돈 없이는 못 사니까.
앞서 말한 그 사치도 결국 삶의 활력을 잃지 않고 감정이 고양되야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말과 통한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는 것, 이게 정답일 것 같다.
하여튼 책에서 말하는 대로 앞으로 12주 동안 열심히 모닝 페이퍼를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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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사 2 -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읽은 신라와 신라인 이야기
이종욱 지음 / 김영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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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역사충돌> 때문에 신라 하대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같은 저자의 책인 <신라의 역사>를 읽게 됐다.
화랑세기는 아직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 않아 역사서로 받아들이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화랑세기를 신뢰한다고 했다.
<환단고기>류와는 좀 다른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왕족들이 부인을 맞을 때 두 가지 계통이 있었는데 하나는 진골정통, 또 하나는 대원신통이라고 했다.
이른바 姻統 이라는 게 있어 딸들을 통해 전해지고 아들은 1대만 전승된다고 했다.
흔히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과 만명부인의 결혼을 그녀의 아버지인 숙흘종이 반대한 이유가, 김서현이 몰락한 가야계였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서현은 진골정통 계열인 진흥왕의 딸 아양공주의 아들이고, 만명부인은 대원신통인 만호의 딸이기 때문에 서로 인통이 달라서라고 한다.
전혀 새로운 개념이라 흥미롭기도 하고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썼다는 <신라의 역사>를 집어들었는데 화랑세기는 참조를 하는 정도이고 정통 사학자답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위주로 서술했다.
그러고 보니 상대를 기술한 1권은 몇 년 전에 읽었었다.
도서관에서 두 권 모두 빌렸다가 1권만 읽고 반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2권에서 그린 신라 하대가, 워낙 암살 등으로 얼룩져 복잡했기 때문에 신라 왕실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터에 이 왕 저 왕 무더기로 등장하니까 흥미를 잃고 독서를 포기했던 것 같다.
약간의 배경지식이 있는 지금 다시 읽으니 정리도 잘 되고 흥미롭게 읽었다.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38대 원성왕계가 하대의 왕위 쟁탈전을 벌인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다 친척 관계라는 걸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점을 중요시 여겨, 신라 하대는 왕권이 약해지면서 귀족들이 왕위 쟁탈전을 벌인 게 아니라, 왕권은 여전히 강했고 대신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왕족의 범위가 넓어져 힘있는 사람이 왕위를 뺏는 내분이 자주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상대에서도 마찬가지지고 고구려의 역사를 서술할 때도 그랬지만, 저자는 일관되게 삼국시대의 왕권은 다른 가문이 감히 도전할 수 없을만큼 강력했다고 주장한다.
<고구려의 역사>에서도 충분히 읽은 바지만, 부체제 같은 연립 정권은 애초부터 없었고 신라 하대 역시 귀족들이 왕위를 다툰 게 아니라, 원성왕계가 정부 주요 조직을 독차지 하다 보니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살육전이 벌어졌다고 본다.
경덕왕대에 이르러 아예 쟁탈전 자체가 없어진 까닭은 호족들이 봉기하면서 신라의 세력권이 워낙 줄어들어 왕위를 뺏고 말 가치조차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신라는 여러 군웅들 틈에 낀 옛 왕실에 불과하게 몰락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후삼국 시대를 중국의 전국시대에 빗대어 표현했고 신라 왕실은 마치 주 왕실처럼 종주국으로서의 명분만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왕를 칭하고 제도를 정비한 나라는 후백제와 궁예의 태봉 정도이니 (나머지는 저자도 인정한 것처럼 군도 무리나 세력있는 지방 호족들이니) 후삼국 시대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삼국 시대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고구려와 백제는 한민족이 아니라 그저 적국일 따름이었고 그러므로 현재 통일신라라는 명칭은 어울리지 않고 차라리 토지와 인민이 증가한 점을 들어 대신라라 부르자는 저자의 제안이 색다르다.
그렇다면 적어도 당에 민족을 팔아먹었다는 오명은 듣지 않아도 되니 어쩌면 그것이 신라인들의 명예를 위해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신라가 강건하게 뻗어 나가고 있었음이 분명한 것은, 당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신라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도독부를 설치하여 지배의 야욕을 보이자 신라인 스스로가 이들을 몰아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신라가 중국의 지배에 굴복하지 않고 한반도의 독립을 지켜냈다고 평가할 만한 하다.
저자의 가정대로 정말 고구려가 삼한을 통일하고 중국과 대립했다면 여전히 우리가 만주땅까지 지배했을지도 모르겠으나 반대로 중국에 의해 멸망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은 팽창하는 제국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대립하는 이민족을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라는 저자의 지적도 나름 일리가 있다.
사대외교가 지극히 현실적인 정책이었음은 고구려의 멸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하겠다.
결국은 연개소문의 독재와 잘못된 외교정책이 고구려를 멸망의 길로 이끌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어쨌든 후대에도 중국에는 수당에 맞서 싸운 대단한 민족으로 알려졌다고 하니 과연 고구려인들의 기상은 남달랐던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면서 명나라 대신들이 그 대단한 고구려의 후예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한탄했다고 한다.) 
연개소문 같은 독재자 대신 좀 더 정통성을 가진 왕이 등장해 난세를 이끌어 갔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운 부분이다.
발해에 대해서는 아예 속말말갈의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해 유민이 고려로 투항한 것도 저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또 신라 하대의 농민 반란 역시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이 유랑하면서 도둑떼가 된 것에 불과하므로 내제적 발전론 어쩌고 하면서 계급 투쟁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한다.
역시 현대의 시각으로 당시를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겠다. 

태종 무열왕을 중심으로 한 신라 중대에 비해 하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개념이 잡혔다.
화랑세기에 대해 쓴 다른 책을 읽어 볼 예정이다.
이번에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 발견돼서 그 놈의 말도 안 되는 독살설이 잠재워진 것처럼, 고대사에 대해서도 애매한 부분들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굴이 이뤄지길 바란다.
얼마 전에 미륵사지터 발굴을 통해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 공주의 결혼이 전설에 불과하다는 것도 밝혀진 것처럼 (완전한 정설은 아니지만) 보다 다양한 경로의 연구가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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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이야기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이목 옮김 / 산처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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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니 무네요시라면 일제 시대, 한국의 미를 고졸하다고 평했던 사람으로 알고 있다.
광화문 철거할 때도 신문사에 반대 칼럼을 썼던 사람으로 나름 한국 문화에 대해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수집이라는 매니아적인 취향에 대한 칼럼 모음집이라길래, 제목에 끌려 저자의 이력에 끌려 읽게 됐다.
솔직히 문체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조지 오웰 식의 풍자화된, 치고 빠지는 유머있는, 약간 비꼬는 듯한 그런 문장을 좋아하는데 (알라딘 서재의 나귀님 같은) 이 사람의 글쓰는 스타일은 너무 고식적이고 점잖고 일본 사람 특유의 사소함 내지는 세밀함이 보여 지루했다.
이를테면 하루키 식의 가벼운 문제와 대조적이라고 할까?
시대적 한계라는 생각도 들고 원래 이 사람 자체가 점잖은 스타일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수집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혹은 예술에 대한 태도 등에 적잖이 공감했고 많은 도움이 됐다.
사실 책 읽는 것도 그렇지만 미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안목으로 사물을 대할 수 있느냐일 것 같다.
저자도 강조하는 바지만 이름에 함몰되지 말고 상인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나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평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용감한 리뷰어처럼 고전이 무슨 소용이냐, 그저 이름뿐인 지루한 책 아니냐 라고 대범하게 감상문을 쓸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말하는 자기만의 관점은, 그런 수준 이하의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다 훌륭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피카소 작품이라고 전부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걸까?
혹은 유명한 작가의 소설이라고 다 감동적이고 훌륭할까?
좀 더 쉽게, 대중들이 열광하는 영화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다르게 봤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다.
그렇다면 자기 나름의 감상을 자신있게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의 평론을 무조건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하여튼 그들의 관점에 함몰되지 말고 (더욱 위험한 것은 그 분야에 안목을 키운 전문가가 아닌 대중들의 환호에 좌지우지 되지 말고) 나만의 관점으로 예술품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수집할 때야 말로 이런 안목이 빛을 발할 것이다.
상인들의 말에 휘둘려 값이 오를 것이라는 말을 믿고, 혹은 경쟁 심리에 무리하게 사들여 창고 속에 처박아 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저자는 일부러 유명하지 않은 작품을 위주로 수집했다고 한다.
특히 실제로 쓰임새가 있는 공예품을 중심으로 수집해서 민예관을 건립했다.
다른 박물관과 차별되는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서구에서는 개인 수집가들이 공공의 목적으로 수집품을 기증하는 예가 많은데 일본에서는 거의 없다고 한탄한다.
이번에 중앙박물관에 가서 느낀 바지만, 평생 모은 수집품의 기증이야 말로 자신의 수집품을 가장 가치있게 보존하는 길인 것 같다.
나는 이런 수집벽은 없지만 하여튼 이런 안목있는 수집가들의 매니아적인 열정은 언제나 흥미롭고 존경스럽다.
가끔 미술관에 갔다가 아, 저 그림은 꼭 내 방에 걸어 놓고 싶다는 욕구를 느낄 때가 있다.
아마 돈이 좀 있으면 구입을 하게 될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돈이 많다고 훌륭한 수집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자금이 있어야 비로소 수집이 가능한 일이니.
중앙박물관의 기증자 약력을 봐도 다들 자기 분야에서 기반을 쌓은 인물들이었다.
리움 미술관에 갔을 때 처음으로 이병철이라는 삼성 건립자에 대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에는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해 정말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해외에서 삼성 휴대폰을 봐도 애국심 같은 건 전혀 안 생겼는데 (오히려 재벌이라는 약간의 거부감만 있었다) 리움 미술관의 그 아름다운 소장품들을 보면서 한 인간의 재력이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할 수도 있구나 싶어 감탄했다.
아마도 돈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 중 하나가 이런 예술에 대한 투자일지도 모르겠다. 

얇은 책이라 지하철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고 나는 도자기나 공예품에 대한 특별한 안목도 없고 관심도 적은 편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분이 설립한 민예관에 가 보고 싶다.
공예품만 전시했다는 빅토리아 앤 앤 앨버트 박물관에도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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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역사 3 - 전란의 시대 : 고려후기편
임용한 지음 / 혜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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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 책인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고 애독하던 시리즈다.
사실 나는 전쟁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시리즈 보다는, <조선국왕이야기> 시리즈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전쟁과 역사> 역시 역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 준 명저라고 자신한다.
이 책과 더불어 이희진씨의 <전쟁의 발견>도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다.
두 책 모두 저자들의 성실한 사료 분석이 돋보이고 기록의 문자에 함몰되지 않고 입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분석해 낸 역작들이다.
특히 임용한씨의 책은, 단순히 옛 기록만 붙들고 있는 게 아니라 직접 현장답사를 꼼꼼하게 시행함으로써 기록에 남기지 못한 당시 정황들을 유추해 낸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 역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들을 발로 뛰어다니며 열심히 답사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덕분에 관심이 적었던 고려사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됐다.
얼마 전에 읽은 <고려시대사의 길잡이>와 함께 고려사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전권과는 다르게 화려한 도판들을 많이 실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전쟁무기들의 사진도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됐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지도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지리나 지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함을 새삼 느낀다.
세계지도나 지구본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전도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나온지 얼마 안 됐지만 저자가 좀 더 힘을 내서 우리나라 전쟁사의 최대 관심사인 임진왜란에 대해 책을 내주길 바란다.
이 분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이덕일씨처럼 유명한 저술가는 아니지만 열혈팬들이 꽤 있음을 발견한다.
나는 이 분의 책이 마음에 드는 게, 현실을 보는 정확한 관점 때문이다.
이덕일씨처럼 과도한 당위나 명분에 함몰되지 않고 현실적인 입장에서 당시 상황을 평가한다는 게 참 마음에 들고 신뢰가 간다.
사대주의 외교는 거창한 무슨 주의나 명분 이런 게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외교 정책이었다는 간결한 표현에서, 벌써 이 저자의 기본적인 역사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김부식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능력있는 관료로 평가한다.
묘청은 서경파의 얼굴 마담에 불과했기 때문에 서경군이 포위되자마자 즉시 목이 베어져 정부군에게 보내졌고 서경군과의 전투는 실상 그 이후부터였음을 이번에 알게 됐다.
신채호의 역사인식은 당시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의 기상을 높혔다는 데 의의가 있긴 하나, 저자의 지적대로 역시 당시 그가 처했던 현실에서의 역사인식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경파의 칭제건원은 자주국으로서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또 당시 정부의 사대외교가 주체성 상실이라기 보다는 관료들로서는 당연한 현실인식이었고, 서경파는 인종에게 놀아나다가 버려진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이자겸의 난을 제압하고 왕권을 지킨 인종은 한 마디로 이 세력 저 세력을 적당히 위무하다가 어느 선에서 통제 불능으로 가 버린 것이다.
서경에 대화궁을 짓고 천도할 것처럼 언질을 주긴 했으나 실상 정말 옮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결국 참는대도 한계가 있다고 서경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모든 쿠데타는 일단 수도를 점령해야 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가정들을 염두에 뒀던 서경파는 결국 김부식의 정부군에 괴멸당했는데, 김부식이라는 사령관의 탁월함도 돋보였다.
신라 왕족이라 가문의 힘을 믿고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저자는 그가 실력으로 그 자리까지 갔음을 지적한다.
그의 형제들은 모두 과거에 급제한 실력자들이었고 의외로 그의 선대는 높은 벼슬을 하지 못했다.
윤관 역시 마찬가지인데 의외로 고려나 조선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 일류 가문 대열에 들어선 사람들을 보면 개인의 능력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학식이 있었기 때문에 삼국사기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 읽은 <조선선비와 한국유교 2천년>에서는 최씨 정권을 새로운 변화의 시작으로 보고 대몽골 항쟁도 외세의 침입에 맞선 자주적인 대응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는데 <전쟁과 역사>를 읽으면서 임용한씨 역시 비슷한 시각임을 알 수 있었다.
과연 몽골이 고려를 직접 지배하려고 했을까?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듯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고 직접 통치를 하려고 들었을까?
강화도로 피난해 세금만 꼬박꼬박 받아 먹는 최씨 정권의 행태는 결국 백성들은 적군에 손에 방치하고 정권 유지에만 골몰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몽골 항쟁 동안 40여 년의 계엄 체계가 유지된 셈이다.
당시 향리 계층이 일종의 지방 무사 계층으로 유사시에 지역 수비를 담당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후기로 갈수록 이들은 과거준비생으로 변모하고 홍건적이나 왜구의 공격에 형편없이 당하는 원인이 된다.
고려 시대는 철저하게 지방을 통제했던 조선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세조에 대한 임용한씨의 평가를 봐도 그렇고 최씨 정권에 대한 평가도 그렇고, 아마도 저자는 비정상적인 경로로 이루어진 권력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다.
세조는 말할 것도 없고, 최씨 정권마저도 요즘에는 문치주의 분위기 때문에 저평가 됐다고 옹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시기이고 보면 저자의 부정적인 인식은 다소 원칙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 역시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는 까닭은 단순히 저자가 사육신들처럼 무슨 명분론에 입각해 권력의 정통성을 찾는 게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양산된 무수한 특권층들이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최씨 정권이 이성계처럼 새 나라를 건국했다면 그들이 일으킨 새바람, 이를테면 시골 향리에 불과했던 이규보 같은 인사가 재상의 자리에 오른 것 같은 혁신이 의미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들은 철저히 가문의 정권 유지에 골몰했고 사회 체제의 근본적인 개혁에 기여하지 못했다.
세조의 정권 찬탈을 비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태종의 등극도 마찬가지지만 쿠데타가 반복될수록 공신층은 계속 양산되고 비정상적인 특권층이 늘어간다.
사회체제가 점차 무너져 가는 것이다.
어쩌면 유학자들이 이른바 명분론을 찾아 정당한 왕위 계승을 외친 것도 안정적인, 원칙적인 사회 유지를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공민왕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요즘 히트치고 있는 <쌍화점>의 주인공이기도 해서 흥미롭게 읽었다.
공민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친위 세력을 양성한답시고 계속해서 주변 세력을 숙청하고 바꾸는 변덕스러운 태도였다.
처음에는 김양, 안우, 정세운 등의 4인방이었고 그들을 죽이고 나자 이번에 등장하는 이가 바로 신돈, 또 그를 숙청하고 나자 자제위를 양성하는데 결국 홍륜이라는 자에 의해 암살당한다.
그 이전에도 암살 시도가 또 있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왕의 암살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말기 왕조 징후라 하겠다.
홍륜이 바로 조인성이 열연한 홍님이라는 캐릭터인데, 얼마나 끔찍하게 죽였으면 골수가 튀어 사방에 뿌려지고 시신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재밌게도 이 홍륜은 공민왕의 사촌인 홍언적의 손자라고 한다. 
천산대렵도라는 멋진 그림을 남긴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왕의 말로가 안타깝다.
송의 휘종도 그렇지만 최고 통치자는 아무래도 이런 낭만성이나 예술성 보다는 태종처럼 냉정하고 빠른 두뇌회전이 우선인 것 같다. 

사실 고려 시대에 대해서는 조선에 비해 덜 알려졌고 사극의 소재로도 많이 이용되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적었다.
하지만 요즘 <무인시대> 나 <제국의 아침> <천추태후> 등의 사극들이 만들어지면서 고려 시대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드라마에서 얼핏 봤던 인물들이 책에 나오니 친근감이 생기고 이해가 빠르다.
14세기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은 왕이 피난을 밥먹듯 할 정도로 전국에 걸쳐 끔찍했고 조선이 성립된 의의를 알 수 있었다.
최영과 이성계가 얼마나 대단한 무공을 떨친 장수인지도 실감했다.
몽골군 치하에서 영주 노릇을 하던 아버지가 고려로 귀화한 후 그 아들이 나라를 개창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정말 한 편의 드라마다.
보통 조선 건국 무렵은 자세히 안 다뤄지는데 이성계를 중심으로 그 시대를 조명해도 재밌을 것 같다.
황산전투 이야기는 정말로 재밌게 읽었다. 

지명이나 지리에 약하기 때문에 저자가 묘사하는 당시 전쟁 상황을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당시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할 수 있게 됐다.
저자의 역사관에도 적극 동의하지만 무엇보다 서술하는 솜씨가 남다르다.
아무리 훌륭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도 글이 재미가 없으면 읽기 싫어지는 법인데 내가 보기에 임용한씨는 필력도 꽤나 괜찮다.
다음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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