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이길상 지음 / 푸른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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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발견한 후 나름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인데 솔직히 실망스럽다.
학문적인 접근보다는 수필류의 필력을 보인다.
저자는 교육학 교수인 것 같은데 역시 전공이 아니다 보니 두리뭉실 하게 넘어가는 수준에 그친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리자는 애국성 발언만 눈에 띈다.
그리고 교수란 사람이 어떻게 네루다를 모를 수가 있는지 이 부분도 솔직히 충격이었다.
얼마나 유명한 시인이고 또 영화로도 나오고 소설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데...
하긴 뭐 나도 그 사람 시를 잘 아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시사성만으로도 충분히 유명한 사람인데 말이다. 

독도나 동해 표기 문제 등은 미국 사람들이 멕시코만에 대해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듯 우리도 태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독도는 영토가 걸린 문제이니 뭐라고 말을 못하는데 동해는 저자 말마따나 각국에 동해라는 명칭이 넘쳐나는 실정이고 독도처럼 영토 주권 이런 문제도 아닌데 이렇게 피를 토하며 전세계에 동해로 바꿔 달라 해야 하는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미국과 멕시코는 워낙 국력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멕시코만이라 부르면 어떠냐, 어차피 우리 주권이 미치는 곳인데, 이렇게 넘어갈 수 있겠으나 극일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일본해라고 하면 치를 떠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히려 그런 것보다는 잘못 알려진 우리 역사에 대해 좀 더 홍보를 했으면 좋겠다.
외국에서는 한반도에 국가가 세워진 시기를 4세기 정도로 잡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고구려가 한사군을 멸망시킨 이후부터를 비로소 독립 왕국의 시작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조선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2천년 역사가 아니라 겨우 천 년 왕국 정도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도 상당히 신뢰성 있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우리는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기 보다는, 무역 중계소 등의 거점 도시 정도로 이해하는데 일본의 입김이 세기 때문인가? 미국 등의 역사 교과서에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소개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면 반미감정 완전히 악화될 얘기다.
고대의 조상이 훌륭했다고 해서 현재 우리가 훌륭한 것인가?
고대 조상들이 속국민이었다고 부끄러워 해야 하는가?
있는 그대로의 역사, 현재 관점이 아닌 당시 관점으로서의 역사, 다만 진실을 알고 싶을 따름이다.
고대사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역사를 너무 추구하다 보면 결국은 패권주의로 흐르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 역사 교과서 발행 노력은 무척 바람직하게 보이며, 일본이 독일처럼 2차 대전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제발 그 천황 무슨 주의 좀 버리고 이웃 국가들과 평화로운 외교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한국 사람들의 지나친 반일 감정도 늘 불편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본 문화 무지하게 따라하고 동경하고 좋아하고 아닌 척 하고) 일본의 말도 안 되는 민족주의나 패권주의, 역사왜곡, 침략 전쟁의 정당화, 천황주의 등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경제대국이면 대국답게 좀 통크게 생각하면 안 될까?
잘 살면서 뭘 그렇게 남 못 눌러서 안달인지... 

중국인들의 중화주의도 역시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중국 문명은, 한자 문화권에 사는 나로서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고 같은 문화권의 일원으로서 늘 자랑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천년간 전제 왕권을 이어오면서 단절없는 역사를 만들어 온 중국 문화가 정말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것이 현재 중국인들의 근거없는 자존심과 연결되는 건 참 위험하게 느껴진다.
특히 혐한론이 꽤나 퍼진 요즘, 과거에는 속국이었던 주제에 좀 산다고 재는 거냐, 이런 식의 발상 정말 수준 이하다.
아, 정말 역사는 당대인의 시각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단 말인가?
왜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 해야 할 공통의 문명 자산들이 현대인들의 패권주의에 이용되야 하는가?
대만이나 중국, 홍콩 교과서 등에 실린 한국의 역사나 현대사 등을 읽을 때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중화를 자처한 우리 조상들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니 우리 역시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중국과 대등한 나라였다, 형식상의 조공에 불과했다, 국제 무역기구에 가입한 거다 (정말 코메디 같다) 이런 소리를 할 수 밖에.
과거 신라나 고려, 조선 등이 중화 문명권에 있었던 것은 내정 간섭을 받는 중국의 속국이었냐 아니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설사 속국이었다 해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일본 식민 치하처럼 최근의 현대사도 아닌 그저 과거의 역사일 뿐인데. 그리고 외국에서는 병자호란 이후를 청의 속국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명권 안에서 발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마치 우리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에 동참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중국 대륙 끝에 붙어 있으면서도 그 거대한 문명권에 흡수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독립을 지켜내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일궈온 조상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사대주의를 왜 부끄러워 해야 하는가?
제발 현재의 그 패권주의 좀 버렸으면 좋겠다. 

각국 교과서에 나온 한국에 대한 기술이 상당히 부정확한 걸 보면서 바로 잡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역시 각 나라에 대한 기술의 정확도에 신경을 써야 함을 느낀다.
아마 모르긴 해도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국가에 대해 대충대충 넘어갔을 것이다.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찬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를 보면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등에 대해 잘못된 기술들이 많이 나온다.
그나마 세계사가 중요 과목이 아니다 보니 아예 배우지도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을 거다.
세계화가 영어만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세계의 정세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그런 배경 지식과 가치관을 학교에서 좀 가르쳤으면 좋겠다.
더불어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문화 체험이나 교류도 많이 시행되길 바란다.
아무래도 한류가 많은 공험을 할 것 같다.
정부가 나서서 하는 공식적인 행사도 좋지만 자발적인 문화 교류야 말로 자연스럽게 한국을 알리는 통로가 될 것이다.
마치 내가 체코를 드보르작과 카프카의 나라로 기억하고, 파블로 네루다를 통해 칠레를 알게 되며, 쇼팽을 들을 때 폴란드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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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9-05-04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한번 살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는 아닌가보네요. 애국주의,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한가봅니다.

marine 2009-05-05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지는 않구요. 다만 저자가 교수라는 약력을 고려할 때 전문적인 저술이라기 보다는 수필 정도의 수준으로 썼다는 점이 좀 아쉽더라구요.
 
심리학의 모든 것
페터 카이저.코리나 오넨-이제만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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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관심은 많은데 막상 읽어 보면 뻔한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역시 시작은 좋았으나 결론은 다 아는 얘기라는 거다.
표지만 마음에 든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한 화가 작품이다.
한 가지 희망은 성격이나 개인의 역량 등도 노력하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석하고 개선하면 좋아질 수 있다.
책에 나온 점을 생활에 적용시켜 나도 불만인 점, 고쳤으면 하는 점 등을 기록해 봤다.
좀 귀찮긴 하지만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써 보는 건 확실히 차이가 있다. 

파트너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결혼과 출산을 통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새삼 느꼈다.
정말 내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인지 이제 이런 글을 읽어도 거부감이 없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은 엄청나 타격이 될 것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파트너와의 공동 목표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결혼을 안 하면 몰라도 혹은 아이를 안 낳으면 몰라도 절대로 이혼은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재밌는 통계는, 자유로운 성관계를 즐기는 이른바 스와핑 부부라 할지라도 배우자에 대한 감정적 배타성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자들 역시 바람둥이는 진짜로 외도 상대자에게 정서적 구속력을 갖는다기 보다는, 섹스를 일종의 유희로 생각하고 정서적 귀속력은 아내에게 둔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을 자주 피울 수도 없고 아마 이혼하자고 덤빌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나온 토마스도 바로 이런 유형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여자들은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고 나에게 여전히 감정적 구속감을 가지고 있다면 설사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한다고 할지라도 나한테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가정을 꾸려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남자들은 성적인 부분에 대해 질투심이 굉장히 강하다고 하던데 역시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여자가 가벼운 유희 정도로 외도를 즐긴다면 역시 좀 참아줄만 하지 않을까?
그러나 문제는 들키지 않기가 어렵다는 것.
하여튼 파트너십 유지에 있어서 공통의 목표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자녀를 갖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옛날에는 자녀를 노동력 혹은 노후 대책 정도로 생각하고 많이 낳았는데 요즘에는 키울 때 느끼는 정서적 만족감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한 둘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노인들도 자녀에게 종속되기 보다는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는 얘기가 신선했다.
나는 노인들이 당연히 자식들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들도 가까운 유대 관계를 맺는 걸 원하지, 이미 영향력을 상실해 버렸는데 자식 내외에게 얹혀 살기가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슬프게도 이 책이 쓰여진 독일에서도 여전히 맞벌이 여성들의 이중고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훨씬 낫겠지만 독일 여성들 역시 가정과 직장의 조화로운 양립을 놓고 힘들어 한다.
심지어 만 3세 이하의 아이를 가진 여자는 직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아이를 반드시 엄마가 키워야 할까?
전업주부가 키운 아이가 정말로 워킹맘보다 훨씬 행복할까?
사회의 편견을 깨부술 획기적인 연구들이 좀 나와 줬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의 개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인생이고 아무리 가치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자식이라도) 비자발적으로 내가 구속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스스로 원해서 전업주부를 남녀에 관계없이 택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혼이 자유로운 독일 사회에서 계부, 계모 문제는 꽤 심각한 것 같다.
현실적이게도 이 책에서는 계부모가 됐을 때 부모로서의 감정적 구속력을 가지려 하지 말로 친구 정도로 지내라고 충고한다.
아이들은 오히려 친부모 노릇을 하려고 하면 진짜 부모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더 괴로워 하고 갈등한다고 한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신은경이 전처 아이에게 아줌마라고 부르게 하고 난 그저 너와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한계를 짓는 게 보기 좋았다.
그래야 아이도 친엄마에 대해 좀 더 편하게 애정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죄책감 없이 말이다.
당연히 이혼을 해도 친부모와의 만남이나 애정 관계의 유지는 중요하다.
그러므로 헤어져도 친구처럼 지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직장에서의 왕따를 모빙이라고 한단다.
모빙을 당하면 절대 참아서는 안 된다.
당해주면 계속 괴롭힌다.
변호사에게 상의하라니, 정말 서구식 해결책 답다.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하면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당당하게 권리를 찾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이겨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나이가 드니 새삼 와 닿는다.
자기절제와 동기부여야 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꾸려 나가는 힘이 될 것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책 읽으면서 자극을 받았고 당분간은 심리학 책 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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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잉 - Know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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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본 사람에게 민망할 정도로 초반에 심하게 졸았다.
전날 잠을 많이 못 자서 피곤하기도 했고 영화 보기 직전에 스트레스를 무지하게 받아 광고 시작할 때부터 걱정된다 싶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시작과 동시에 자 버렸다.
다행히 깰려고 애를 써서 2/3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니콜라스 케이지, 참 오랜만에 본다.
<더 록>을 봤을 때가 재수할 때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도 더 됐다.
재수학원 땡땡이 치고 영화나 봐도 될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영화 재밌게 보다가 간담이 서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리빙 라스베가스>에서 알콜 중독자 역할도 잘 소화해 냈고 코폴라 감독의 조카라는 점도 뭔가 그를 특별하게 기억하게끔 만든다.
잘 생긴 건 아닌데 영화에서 보면 나름 매력있다.
연기를 잘 해서 그런가? 

요즘 영화는 아무래도 외계인이 대세인 모양이다.
대체 미국인들은 왜 그렇게도 지구를 지키려고 애를 쓰는지 무슨 강박증 환자 아닌가 싶다.
종말론이나 외계인이 일반화된 느낌이다.
행성 충돌이나 태양 폭발 등은 너무 흔해서 이제 새롭지도 않다.
<딥 임팩트> 까지만 해도 그래도 신선했는데 얼마 전 본 <지구 최후의 날> 이후로는 정말 이건 아니다 싶다.
이러니 <슬럼독 밀리어네어> 같은 외국 영화들이 각광받는 거다.
너무 식상하고 지겹다.
이런 내용인 줄 알았으면 안 봤을 거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종말론, 그것도 성경에 기초한 종말론!
딱 하나 볼만 했던 건 태양의 흑점이 폭발한 후 지구가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이었다.
그건 좀 실감났다.
문득 7천만년 전의 공룡들도 느닷없는 불벼락에 저렇게 스러져 갔겠지 싶어 동정심이 생겼다. 

숫자를 성경에 끼워 맞춰 해석하는 수 신비주의는 MIT 대학의 천문학자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설정이 어찌나 유치한지, 참 내...
차라리 <디 아이>의 재난 구조 설정이 훨씬 인간적이다.
불의 심판을 받아 인간이 멸망한다, 선택받은 두 명의 아이들만 다른 행성으로 옮겨진다, 대체 이게 무슨 코메디 같은 얘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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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싱(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신명철 외, 김태균 / 프리지엠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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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그런 뻔한 탈북자 영화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지막 결말이 가슴아프다.
준이가 몽골 국경을 넘어 사막을 헤매고 있을 때, 당연히 해피엔딩으로 끝날 거라 생각하고, 현실에서 저렇게 사막 한가운데 버려지면 탈수되서 죽겠지 싶었는데 진짜로 죽고 말았다.
시신으로 아버지에게 전달된 아이...
눈물샘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고 수용소의 잔인함이나 폭력 등도 너무 많이 넣지 않고 뭐랄까, 중용의 미를 지킨 영화라고 할까?
사실 특별히 임팩티브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잔잔하고 가족을 잃게 되는 한 탈북자의 슬픈 사연을 담담히 풀어낸다.
특히 연기는 못하지만 이미지는 괜찮은 차인표가 주인공 역을 맡아 지루함이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자주 보는 사람이다 보니 익숙해서 편했다.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는 준이역의 아역배우는 시나리오가 평범해서 그런지 그냥 그런 연기를 보여준다.
좀 징그러웠던 장면은, 상처에 쥐가죽이 좋다는 말을 듣고 준이가 미송이를 위해 쥐를 잡아 피부를 벗겨 붙여 주는데 며칠 후 열어 봤더니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토할 뻔 했다.
끔찍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미송이는 그 날 밤 준이의 자전거 뒤에서 죽고 만다.
미송이 아버지가 중국 안 가고 착실하게 북한 체제에 순응해서 살았다면 끌려갈 일도 없었을 거고 그녀 역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
어려서 죽는 아이들의 운명은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는 대명제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 같다.
안타깝고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하게 되고...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가장 극적인 대비 장면은, 결핵에 걸린 아내의 약을 사기 위해 중국으로 도강을 하고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으로 탈북하게 된 차인표가 약국에 결핵약을 사러 갔는데 보건소에서 공짜로 나눠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다.
작은 에피소드지만 남북한의 현실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혹은 인권과 그 사각지대를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는 공짜로 나눠주는 그 결핵약을 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도강한 남자 김용수.
결국 공안에게 쫓겨 약도 못 사고 브로커에게 속아 독일 대사관으로 얼떨결에 망명을 하고 만 남자.
그 사이 임신한 채 결핵을 앓던 아내는 죽고 아들은 몽골 사막 한가운데 버려져 죽고 만다.
하나님은 잘 사는 나라에만 있지 않냐는 그 남자의 외침이 너무나 절절하게 와 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2천년 전 예수가 설교하던 시절에도 나병 환자들 곁에도 계셨고 조선 시대 박해받던 신자들 사이에도 계셨다.
왜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 불공평하고 기본적인 의식주와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가?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지만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를 꺽는 현실이 정말로 안타깝고 속상하다. 

좀 다른 얘기지만 오늘 박물관에서 6.25 전쟁 직후 미군의 구호 물품을 받는 아이들 사진전을 봤다.
탈지분유를 푼 우유 급식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선 아이들, 구호 물품 가져온 미국인들을 환영한기 위해 성조기를 들고 늘어선 아이들.
얼마 전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본 그 판자촌들이 늘어서 있는 강가.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조금씩 내 것을 나누어 준다면 지구촌 어딘가에서 어떤 아이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전이었다.
한 달에 몇 만원이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텐데 너무 나 자신만 알고 살아왔지 않나 반성이 됐다.
몇 만원, 외식 한 두 번 안 하면 되는데, 목걸이나 귀걸이 하나 안 사면 되는데.
난 그저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나 내 노력이나 의지 없이 당연하게 모든 것을 누리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영화도 봤으니 후원이라는 걸 해 봐야겠다.
직접 가서 몸으로 봉사는 못할지라도 약간의 후원금이라도 내야지. 

탈북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차승원 나오는  <국경의 남쪽> 도 한 번 봐야겠고 자신의 인민들이 끔찍한 가난의 고통에서 헤매고 있는데 여전히 핵무기에만 집착하는 그 지도자라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참 한심하고 또 그것을 북조선의 국익 어쩌고 찬양했다는 신 뭐시기라는 놈도 참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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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섹슈얼리티 - 조선의 욕망을 말하다
정성희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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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평이해서 침대에 누워서 읽을 만 하다.
익히 알려진 어을우동이나 유감동 사건 등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의 불평등한 가부장제도가 미화되지 않고 정면으로 공격받아 일견 시원한 면도 있었다.
제일 가슴 아픈 것은 역시 정조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일이다.
예의를 잃는 것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크다는 유학자들의 인식이 참 안타깝다.
후기로 갈수록 서민층까지 널리 퍼져 정절 이데올로기를 강요받고 특히 남편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남편에 의한 살인이 심심찮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5세 이전에 이미 혼인한 아이들도 있었다고 하니,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당시 만약 남성이 먼저 죽기라도 하면 여자는 평생 수절하고 혼자 살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경제력이 전혀 없고 자식을 낳아야 비로소 대접받는 시대에 수절과부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아들 낳기에 대한 온갖 비방들은 오히려 이런 쓸데없는 금기 사항과 제한점들 때문에 임신이 어렵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산과학이 발달하기 전이니 배란일이라는 개념조차 몰랐을 것이고, 그렇다면 무조건 합방을 많이 하는 게 최고인데 무슨 날은 이래서 안 되고 심지어 월경색에 따라 합방 여부를 결정했다고 하니, 안 그래도 영아 사망률이 높은 시대에 지체 높은 사대부 가문에서 자식이 귀한 이유가 다 있었을 것 같다.
부부가 사이가 좋으려고 해도 집안에서조차 한 공간에 거처하면 흉이 되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극도의 엄격한 분위기이고 보면 본부인은 그저 대를 잇고 안살림을 맡는 일종의 공적인 관계이고 진정한 사랑은 제약이 없는 첩에게서 얻고자 했을 것이니 과연 처첩제도는 경직된 유학자 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였을 것 같다.
어제 수메르인들의 생활상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수확량이 비옥해서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긴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보다 수천년 더 발전된 사회인 조선 후기에 찍은 사진을 보니 여전히 어린 아이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키보다 큰 방아를 찧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문명화된 사회였네, 고대에도 인권은 있었네 어쩌고 하는 것도 다 요즘의 관념에 맞춰 현실을 외면하고 멋대로 상상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마치 착한 야만인을 꿈꾸듯 말이다.
그래서 공자도 주나라를 이상향으로 삼고 과거로 돌아가고자 했을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로 말이다. 

여성 저술가가 써서 그런지 비교적 여성의 관점에서 조선 시대 부부관계를 풀어 내고 있다.
너무 많이 알려진 사실들이라 흥미도는 솔직히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대신 읽기 편하고 흐름에 무리가 없다.
특히 간간히 실려 있는 조선시대 사진들이 읽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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