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들여다보기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통천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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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게 언제 사 놓은 책이던가!
박물관에 구경가면 유물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뮤지엄 샵에 들러 거기서만 파는 여러 도록들을 훔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는 보기 힘든 박물관에서 출판된 도록들이 나를 매혹시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늘 난감하다.
박물관의 유물에 대해 좀 자세히 알고 싶어 고른 책인데 유물 자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각 전시실의 특성을 대략적으로 풀어 놓은 일종의 박물관 안내서다.
오히려 유물에 대한 설명은 <국립중앙박물관가이드북>이 훨씬 유용하다. 
이 책은 가볍게 박물관을 훑어 보는 정도로 이용하면 될 것 같다.
그 전에 중앙아시아 편을 읽어서 유물의 나열이 피로감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역시 유물 자체보다는 그에 관련된 스토리가 더 궁금하고 흥미롭다.
이런 도록이 좋은 이유는 훌륭한 사진에 있을 것이다.
유물의 아름다움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훌륭한 사진들이 매 페이지 마다 실려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목공예나 나전칠기, 도자기 등의 아름다움은 직접 유물을 감상하지 않았다면 그 미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2층에 있는 목공예 전시실에 들어갔는데 품격있는 조선 선비의 문방구와 여러 가구들이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던 사랑방!
우리 전통 문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단아하며 격조있는지 새삼 느꼈다.
도자기도 책에서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 하면 오히려 식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직접 감상을 하니 그 오묘한 색의 미학이나 형태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직접 관람하고 마음에 뒀던 유물들을 다시 책으로 만나니 무척 반갑다.
아쉬운 점은 박물관에 그림이 많이 전시되지 않아 책에 나온 그림들을 실제로 많이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림도 좀 많이 전시되면 좋겠다.
특히 조자룡의 매화도나 전기의 매화 서옥도 등이 내 마음을 끈다.
기회가 되면 이들의 스승 격인 완당 김정희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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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 초원과 오아시스 문화, 국립중앙박물관 명품선집 17
민병훈 지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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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체 중앙 아시아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막연하게 실크로드 주변의 오아시아 국가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어디를 지칭하는지 늘 모호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한 번 제대로 읽어 봐야겠다 벼르고 있었던 차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반갑게 집어들었다.
솔직히 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실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고 그림도 전체가 아닌 단편 뿐이라 무슨 그림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도록을 구입한 것이기도 했다.
책을 읽어 보니 왜 조각 그림이 많은지 알겠다.
제대로 된 국가 체계가 없었던 20세기 초, 서역 비단길의 역사적 가치가 알려지면서 탐험대들이 세계 각지에서 들이닥치고 벽화를 도굴해 갔던 것이다.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떼가듯 벽화의 일부를 잘라 가버렸다.
일본인 탐험대가 가지고 온 벽화나 유물이 데라우치 총독에게 넘어가고 해방 후 한국에 전시되게 된다.
결국 우리도 도굴된 남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문화재 반환 문제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늦게 알려졌더라면 벽화가 온전히 남아 있었을텐데 세계 각지로 흩어진 그림들의 조각을 보고 전체를 상상해야 하는 현실이 참 슬프다.
결국 후손들의 경제력이 문제인가? 

중국의 위구르 탄압으로 유명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주요 서역 도시로 등장한다.
동투르키스탄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고, 서투르키스탄이 구소련에서 독립한 다섯 나라, 즉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이다.
특히 천산 산맥과 곤륜 산맥으로 둘러싸인 타림 분지가 대표적인 서역이라고 할 수 있다.
건조한 기후 때문에 농업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유목민들은 중국 등의 농경인과 교역을 해야 했다.
교역을 막을 경우 필연적으로 침략 행위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또 이들은 건조한 사막을 횡단하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물건들을 실어 날랐다.
중앙 아시아 국가들은 당시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이 모인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책에서 유목민이라고 하면 농경민을 침략하는 호전적이고 문화수준이 떨어진 집단으로 인식했는데 기록을 남긴 중화주의자의 입장임을 새삼 깨달았다.
오히려 중국 문명이야 말로 유목민과의 교류, 경쟁을 통해서 더욱 풍성해지고 오늘날의 거대한 다민족국가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유목민 역사도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떼어온 조각 그림들이 유물의 대부분이라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중앙 아시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 계기가 됐다.
기회가 되면 돈황이나 우르무치 등의 석굴 사원들을 꼭 방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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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 옌칭 도서관의 한국고서들
허경진 지음 / 웅진북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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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 전부터 보고 싶던 책인데 인연이 없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고른 책이다.
속지가 썩 마음에 든다.
다양한 유물들을 군데군데 실어준 센스도 돋보인다.
내용도 길거나 지루하지 않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여러 고서들을 소개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다만 내 한문 실력이 딸려 무슨 글자인지 찾아 보느라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 

미국으로 안식년 휴가를 떠난 저자는 하버드 대학의 한국학 도서관에서 수많은 고서들을 만나고 흥미롭게 읽게 된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책들이 많아 조선 시대의 시대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들이 될 것 같다.
북새통이라는 잡지에서 러시아 도서관에 있는 한국 고서들을 소개하는 칼럼을 본 적이 있는데 조선 말기의 다양한 책들이 여러 나라에 의해 수집됐다는 점이 신기하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고서는 자신이 벼슬하면서 머물렀던 관아들을 그림으로 그린 숙천제아도, 이상적이라는 역관이 청나라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받은 편지를 모은 해린척독, 역관의 시가 중국에 소개된 해객시초 등이다.
일본에 통신사로 간 기록들이나 부상일기나 갑신접사록 등도 흥미로웠고 망해가는 명나라에 후금 피해 조공을 바치러 떠난 사신들의 기록인 가해조천록 등도 재밌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재수 실기도 읽어 보고 싶다.
관아의 폭정에 항거한 민란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개항 이후 합법화 된 천주교 신부들의 횡포에 맞선 일종의 민족운동이라고 한다.
대원군에 의해 박해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권력집단으로 돌변하다니, 세상 참 금방 변한다.
얼마나 오빠의 죽음이 억울했으면 동생이 돈을 모아 일본으로 건너가 오빠의 전기를 부탁해 책으로 출판했을까.
영화를 좀 봐야겠다. 

이런 자료들을 통해 조선 시대의 생활상이 보다 세밀하게 고증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다시 한 번 느끼지만 한글은 한자에 비하면 정말 읽고 쓰기 쉬운 문자다.
그렇지만 우리말의 대부분이 한자어인 만큼 정확한 의미를 밝힌다는 뜻에서 한자 공부는 좀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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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특이해서 일단 영화로 먼저 봤고 손예진의 매력에 풍덩 빠져 책까지 읽게 됐다.
대체 얼마만에 읽은 소설이란 말인가!
요즘 소설이 트렌드는 역시 발랄한 문체와 재미인 것 같다.
지극히 현대적인 문체와 서술방식에 푹 빠져 정말 재밌게 읽고 있다.
이런 책에 비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대체 얼마나 무겁단 말인가! 

영화가 책을 압도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긴 분량을 자랑하는 책에 비해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사건이나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를 묘사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 압축성을 관람객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가 성공의 관건이다.
결국 영화는 장면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변화나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기 보다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임팩티브한 영상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영화의 승부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역시 영화보다 소설이 더 재밌다.
시시각각 변하는 남자 주인공 덕훈의 심리변화와 속마음을 따라갈 수 있어 정말 재밌다.
축구와 연결지어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 등을 기술하는 기법이 신선하다.
흥미유지에 도움이 된다. 

나는 늘 인아처럼 결혼 안 하고 연애만 하는 삶을 꿈꿔왔다.
언젠가 나도 지금의 남자친구에게 연애는 나랑 하고 결혼은 착한 여자와 하라는 소리도 했다.
나는 결혼제도가 너무 싫었고 어쩔 수 없이 시댁에 들어가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못마땅했다.
여기 나온 인아의 대서처럼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안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혼을 하더라도 결국 이혼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에 아예 처음부터 나는 결혼은 안 하겠다 선언을 하고 연애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사회의 일반적인 제도에서 비껴 가려면 상당한 베짱과 능력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그 때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나 시몬느 드 보부아르처럼 살 수 있겠는가?
그런 지성과 사회적 위치와 능력이 안 되는데 표준적인 라이프 스타일에서 혼자 떨어져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몰랐다.
나는 책에서 접하는 멋진 독신 여성들을 나와 동일시 했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이 책 속의 인아도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강단있고 무엇보다 섹스를 즐길 줄 아는, 정말로 술과 연애를 사랑하는 멋진 여자다.
영화 속의 손예진을 본다면 저 정도 여자라면 남편 둘 데리고 살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그 매력에 반할 것이다.
나는 손예진처럼 매력있는 여자도 아니고, 보부아르처럼 능력있는 지성인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소시민일 뿐인데 왜 그렇게 일반적인 룰을 싫어하고 거부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특별한 용기와 결심 없이도 결혼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하는 것이다.
골드 미스들이 늘고 있고 독신 가구도 증가한다지만 여전히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결혼과 출산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아무래도 한 30여 년 후에나 태어났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인아의 연애관과는 조금 다르다.
인아는 남자처럼 섹스를 즐길 줄 아는 여자이고 그래서 사랑과 섹스가 별개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독점적인 관계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야 말로 지극히 독점적이고 소유욕이 강하며 사랑할수록 집착하게 되고 특히 육체적 관계는 매우 배타적이라고 믿는다.
정말로 상대방의 다른 성관계에 대해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쿨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조차도 파트너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인데 하물며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야!
다양한 결혼의 형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지만, 인아처럼 진정한 의미의 자유연애주의자는 내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만 모든 사랑의 완성이 꼭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안정적으로 끝을 맺는지는 의문이다.
서로의 생활 공간을 유지하면서 독립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 내 소망이다.
동거도 한 공간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는 별로 탐탁치 않다.
그래서 주말부부처럼 가끔 만나는 사이도 괜찮을 것 같다. 

취미의 공유, 그것도 열렬히 좋아하는 축구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여자가 이렇게 축구 좋아하기는 어려운 일인데 정말 덕훈의 입장에서는 인아가 너무 사랑스러울 것 같다.
내 경우에 빗대어 보자면 인문학 서적에 열정을 가진 사람, 도서관이나 서점 가는 걸 최고의 기분전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한 달에 책을 몇 권 읽었는지를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파트너로써 완벽할 것 같다.
삼엽충에 관한 책을 읽은 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고대의 지배자를 모르고 살았다니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요! 라고 감탄하면서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사랑은 반드시 비슷한 사람끼리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취미와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것 같다.
난 정말 리처드 포티가 쓴 <삼엽충>을 읽고 나서 내가 그동안 이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는 게 너무 기막히고 황당해서 탄식이 나왔는데 남자친구는 삼엽충이 뭔 벌레냐? 이런 어이없는 반응을 보여 좌절한 적이 있다.
삼엽충과 내 인생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고 이렇게 흥분을 하는지.
그런데 또 이런 지식의 확장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니 더욱 열심히 책을 읽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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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제국 1616~1799 - 100만의 만주족은 어떻게 1억의 한족을 지배하였을까?
이시바시 다카오 지음, 홍성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3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의 재밌는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야사와 정사의 중간쯤 되는, 그러나 교양서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재미와 지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편견일수도 있겠으나 일본인이 쓴 책은 유럽에서 발간된 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정통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고 해야 할까?
<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 를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같은 주제로 영국인이 쓴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가 학구적이고 교과서적인 느낌을 준 반면, 앞의 일본 책은 신문의 칼럼에 연재될 것 같았다.
일본 특유의 저술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무려 3대에 걸쳐 청조사를 연구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책에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논문이 자주 등장한다.
상업으로 가업을 잇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학문적으로 같은 분야를 3대가 이어서 연구하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집안 내력을 내심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에둘러 말하는 겸손이 느껴져 빙긋 웃었다.
할아버지는 한 살 때 돌아가셔 기억도 없고, 아버지는 학문적 스승이라기 보다는 검도 사범이었으며 자신은 음악과 기타를 좋아하는  

사실 청나라는 근대화에 실패하고 서구 열강에게 잡아 먹힌 별 볼 일 없는 이민족의 국가라고만 생각했다.
현재 한족에게 밀려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중국 사회의 지배층에서 비껴서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될 것 같다.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족이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동화되어 버린 반면 한국은 중국문명의 그늘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꿋꿋하게 독자적인 문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상한 자부심도 만주족을 한 수 아래로 깔보게 된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책에서도 분명히 밝히는 것처럼 만주족의 청나라는 현재 중국의 바로 앞 시대였던 것처럼 조선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여전히 중국 사회에 끼치고 있다.
만한전석이나 치파오, 교자만두 등의 문화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일단 이 거대한 중국의 영토부터가 건륭제 때 비로소 완성된 것이고 몽골족, 위구르족, 만주족, 티벳족, 한족의 오족중화 개념도 청나라 때 생긴 것이다.
청나라가 중국에 끼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고 만주족이 사라졌다느니 한족의 나라라느니 하는 생각은 수정되야 할 것 같다.
저자는 끊임없이 중국이 다민족국가임을 강조한다.
나는 언제나 중국의 그 유구한 역사와 거대한 문명에 감탄해 왔지만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한족은 오랑캐들과 싸우면서 성장해 왔다고 읽어 왔다.
일단 오랑캐, 이민족, 유목민이라는 단어 자체가 문명인 한족에 비해 한 수 아래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거대한 중국 문명은 현재 중국 사회를 이루는 90%의 한족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주변의 여러 민족들을 통합해 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해 왔다.
유목민이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유목민과 한족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관점이 중국사의 제대로 된 이해를 방해한다는 생각도 든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와 비슷한 관점이다.
중국은 유목민들에 의해 더욱 광대하고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게 됐고 오늘날 그들이 끼친 영향력은 역사에서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소수민족들과의 분쟁은 태생적인 문제임을 분명히 느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티벳이나 위구르 등의 독립 투쟁을 좌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흔히 청나라는 강희, 옹정, 건륭의 세 황제를 거론하는데 60여년을 지배한 강희제나 건륭제에 비해 옹정제는 비교적 덜 관심을 가졌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일단 옹정제는 그 즉위부터가 45세라는 파격적인 나이다.
그는 또 청나라의 전통적인 왕의 개념, 즉 여러 친왕들의 연합 회의 수장 정도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내치에 정성을 쏟았고 후계자를 미리 지목했을 경우의 혼란을 막기 위해 죽은 후에 후계자를 공개하는 저위밀건법을 만들었다. 
사실 예전에는 이 제도가 정말 이해가 안 갔다.
미리 후계자를 정해 놔야 후계자 수업도 받고 왕위 다툼도 없고 안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대체 왜 죽은 후에야 비로소 후계자가 공개되는 이런 밀건법이 왕위 다툼을 없앤단 말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황제독제 체제와 유목민 사회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단 한 명의 독재자에게 모든 권한을 밀어 주는 것이 비해 몽골이나 만주족 등의 유목민 사회에서 왕이란 그저 여러 부족의 대표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왕이 죽고 나면 쿠릴타이 등의 대표자 회의를 통해 다음 왕을 선출한다.
몽골이나 만주족 등이 중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미리 후계자를 세우는 것은 여러 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어찌 보면 청나라의 황제들은 중국의 전통적인 1인 독재 체제로 바꾸기 위해 (즉 황제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부족들과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강희제는 미리 후계자를 정하는 바람에 여러 부족의 반발을 사서 아끼는 아들을을 내치게 되고 결국 45세의 옹정제가 황위에 오른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옹정제는 죽은 후에 후계자를 공개함으로써 다음 후계자가 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하여 정국을 안정시킨다.
정말 만주족의 특성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무조건 장자 계승이 원칙인 조선에 비해 중국 황실은 반드시 정후의 첫째 아들이 황제위에 오른 것은 아닌 듯 싶다.
적서 차별은 한국에만 있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옹정제는 또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화이사상을 깨뜨리기 위해 대의각미록이라는 책을 저술한다.
큰 뜻을 깨닫게 하고 미혹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록이라는 뜻으로 중화론자인 증정의 재판기록이라고 한다.
옹정제는 증정이 스스로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도록 자아비판하게 만든다.
예와 의를 지키는 것이 중화이지 민족의 구분이 아니며, 중국은 여러 민족을 통합해 가면서 성장해 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찌 보면 조선의 소중화 의식과도 비슷한데 끝까지 만주족에게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는다는 조선 지배층과는 또 대립되기도 한다.
어찌 됐든 사상 초유의 거대한 국가로 발전해 가는 위대한 청나라를 보면서 한족 지식인들 역시 스스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대의각미록의 일부가 실렸는데 옹정제의 논리를 따라가면 굉장히 매력적이고 주체적으로 보인다.
아마도 강력한 왕국을 이룩한 통치자의 자신감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변발이나 문자의 옥 등을 통해 한족을 강압하기도 하고 만주문자 병용, 팔기군 유지, 번역과 실시 등 고유의 문화지키기도 하면서 중국의 유교 문화를 받아들이고 통합해 간 청나라는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아편전쟁이나 서태후, 마지막 황제 부의 등으로 희화화 되기에는 너무나 엄청나고 거대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만주족이나 청나라를 우습게 보는 것도 한국인의 소중화 의식 탓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목민이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또 현재 중국은 다민족국가이며 이들이 중국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구성요소인지 새삼 느꼈고 이 매력적인 전통 왕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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