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건축
러우칭시 지음, 한동수 옮김 / 혜안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재밌게 읽은 책.
어떤 분 서재에서 좋은 책이라고 칭찬을 많이 했길래 기대를 하고 읽은 책인데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니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진이 흑백이라 생생한 맛이 조금 떨어지고 부분사진이 많아 전체를 보여주는데 미흡하다는 것 뿐.
그렇지만 사진의 절대적인 양이 많고 정말 잘 찍었다.
컬러였다면 훨씬 생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분량 자체가 200 페이지 밖에 안 되는데 그 중 절반이 다 사진이다.
몇 컷을 제외하고는 저자가 직접 촬영했다고 하는데 정말 멋지다.
난 원래 건축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고 문외한인 사람인데 이번에 중국 여행을 갔다 오면서부터 건물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었다.
특히 명13릉의 구조는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무덤의 규모가 아니라 무척 감탄했고 언젠가는 관련 서적을 읽어 보리라 생각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중국 황제의 무덤은 단지 시신을 매장하는 장소가 아니라 현세의 영광이 내세에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진 곳이므로 일종의 궁전과도 같다.
무덤이 있는 지하의 지궁 혹은 침궁과 봉분이 있는 지상은 하나의 완전한 건축물을 이룬다.
능묘건축이라는 양식이 생긴 이유를 알 것 같다.
진시황의 거대한 지하 궁전이 가능했던 것도 중국의 바로 이런 고분 전통 때문이다.
아마 이번에 중국 가서 직접 명13릉을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면 더 까무러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본 명 황제 만력제의 묘실은 상상을 초월하게 거대했고 정말 일종의 궁전 같았다.
책에서 보니 다양한 건축물들이 주변에 세워졌고 산을 아예 무덤의 봉분으로 삼을 만큼 스케일 자체가 벌써 우리하고 완전히 다르다.
이런 중국 황제들에 비하면 조선 임금의 무덤은 얼마나 소박한지! 

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등극해 24살에 요절하고 만 청의 3대 황제 순치제는 그 어린 나이 때부터 자신의 무덤을 조성하는데 힘을 다한다.
이제 겨우 10대 꼬마가 자기 죽으면 묻힐 무덤을 만들다니,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종묘에 다녀와서도 느낀 바지만 유교는 기독교처럼 절대자를 믿는 신앙은 아니라 할지라도 조상신을 숭배하는 일종의 종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후에도 현재처럼 다음 삶을 이어갈 거라는 확신이 없다면 무덤을 이렇게 젊어서부터 치장하고 정성을 쏟을 리가 없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2대에 걸쳐 섭정을 했던 자희태후 역시 서양과 전쟁을 치루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능묘 건설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청 황제들 역시 명 13릉처럼 집단으로 모여 있는데 동서로 나뉘어졌기 때문에 청동릉, 청서릉이라고 부른다.
북경 근교에 있다고 하는데 이번 여행 때 못 봐서 아쉽다.
한대의 화상석도 묘실의 벽을 채우던 벽돌에 그려진 일종의 고분벽화이다.
고구려의 벽화와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싶다. 

뒷편은 사원건축에 대해 나온다.
중국의 종교는 크게 불교, 도교, 이슬람교로 나뉘고 각각의 사원들이 곳곳에 지어졌다.
이번 여행 때는 북경만 가서 절은 못 가 봤는데 석굴 같은 곳을 가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
역시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절의 규모도 억 소리가 날 만큼 크고 거대하다.
또 얼마나 화려한지 정말 고졸하고 담백한 맛을 풍기는 한국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은, 위진 남북조 시대 때 많이 만들어진 석굴들이 대부분 인공 석굴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석굴암에 대한 책을 읽을 때 중국의 석굴은 자연적이지만 한국의 석굴암은 독특하게도 인공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 크다는 내용을 분명히 봤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서 무조건 우리에게 유리하게 생각하는 자가당착적인 자세를 보는 것 같아 씁쓰름 하다. 

이슬람 사원은 형상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을 하는데 그 화려한 장식미가 정말 놀랍다.
어쩌면 저런 독특하고 개성있는,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 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하루에도 다섯 번 예배를 드리고 금요일에는 단체로 모여 청진사 혹은 예배사라고 불리는 사원에서 함께 의식을 행한다.
중국에서 메카는 서쪽에 있기 때문에 중국의 이슬람 서원들은 항상 동쪽으로 입구를 낸다고 한다. 

사진도 많고 안의 내용도 정말 훌륭하다.
지루하지 않고 설명이 전문적이면서도 쉽고 재밌다.
역시 중국 사람이 직접 자기 나라에 대해 서술하기 때문인지 책의 깊이가 다르다.
중국의 문화에 대한 다른 책도 읽어 봐야겠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서양 문화가 기독교이듯, 동양 문화도 불교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복식 중국문화 5
화메이 지음, 김성심 옮김 / 대가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도판이나 사진도 훌륭하고 설명도 좋았지만 불행히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의식주에 관한 내용은 영상으로 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가끔 중국 사극에 나오는 옷들을 보면서 우리와 다른 그네들의 옷차림을 제대로 알아보자는 욕심이 생겨 고른 책인데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그림과 설명만으로는 지식 전달이 어려운 게 바로 이 의복과 음식인 것 같다.
한 가지 얻은 점은, 심의라는 게 조선 선비들만 입는 옷인 줄 알았더니 예기에 나오는 유학자의 복장이라고 한다.
통천으로 위아래가 이어져 있고 몸을 깊이 감싼다 하여 깊을 深  자를 써서 심의라고 한단다.
옷차림 하나를 가지고도 예를 논하고 우주의 이치를 따진 고대 중국인들의 학문 세계가 놀랍게 느껴진다.
그만큼 명분론적이고 공리공론이 많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단순히 고대의 옷은 신분의 상징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철학적인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가끔 해외 토픽에 나오는 중국 아이들의 밑이 터진 바지는 알고 봤더니 꽤나 역사가 깊은 옷이었다.
단지 아이들의 용변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 아래를 터 놓은 걸로 알았는데 고대 중국인들도 이런 바지를 입고 대신 허리에 패슬 등을 차서 가렸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를 쭉 벌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났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심오하고 재밌는 생활사의 역사다.
유래가 어디서 왔는지를 따져 보는 것도 퍽 흥미로운 일 같다. 

우리나라의 옷은 아무래도 익숙해서인지 설명만 들어도 감이 잡히는데 중국의 옷은 책 가지고는 도저히 이미지가 떠오르지가 않는다.
단편적인 지식만 얻고 말아서 많이 아쉽다.
기회가 되면 영상물로 중국의 복식 문화를 다시 살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전호태 지음 / 풀빛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어떤 분 서재를 둘러 보다가 건진 책.
뜻밖의 좋은 책을 발견할 때마다 알라딘 서재질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나에게 알라딘 서재는 신문 리뷰와 책 뒷편의 참고 도서에 이어 세 번째로 책을 추천받는 통로다. 

고구려 벽화는 말로만 들었지 사실 제대로 감상한 적은 거의 없다.
아마 중국와 북한 땅에 실물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벽화를 생생한 사진으로 보여준다.
기왕이면 직접 답사하면 훨씬 좋을텐데 사진으로만 이 훌륭한 그림들을 만족해야 하다니 아쉬운 일이다.
특히 1930년대에 찍은 사진과 90년대에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지워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수 백 년의 세월도 견뎌 왔는데 공개된 후 수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훼손되고 있으니 아직 제대로 연구도 못한 실정에서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솔직히 설명이 없다면 그림만 봐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무용총 그림처럼 춤추거나 사냥하는 확실한 장면들도 있지만 천상의 세계를 그린 신화적인 내용들은 학자들이 하나하나 짚어 주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 그냥 내 눈으로 봐서는 구별이 안 된다.
처음 그려졌을 때는 정말 하나의 화보를 보는 것처럼 생생했을텐데 세월의 무게를 힘겹게 이겨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쉽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쉽게 알아 볼 수 있게끔 3D 영상으로 재현하면 어떨가 생각해 본다.
지난 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페르시아전 때 폐허가 된 궁전에 컴퓨터 작업을 해서 살아 움직이는 화려한 궁전으로 재현시켜 놓은 영상을 봤었다.
어찌나 생생한지 대제국 페르시아의 위용을 한 눈에 실감할 수 있었다.
민속박물관에 갔더니 고구려 벅화들을 이런 컴퓨터 작업을 통해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영상으로 바꿔 놓았는데 이것 역시 무척 실감났다.
이런 작업들이 많이 이루어져 보다 생생하게 고구려 벽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제일 신기한 것은 고구려의 신화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만 대단한 줄 알았지 우리 고대 신화가 이렇게 풍성한 줄은 미처 몰랐다.
안타깝게도 그림만 남아 있을 뿐 문헌으로 직접 전하는 내용이 없어 겨우 윤곽만 잡고 있다.
한자를 쓰고 역사서까지 편찬했다는데 멸망과 함께 그 문헌들도 죄다 사라져 버려 고구려의 찬란한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게 정말 아쉽다.
그러나 고분 벽화라는 드문 양식을 통해 그 형태라도 전해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신라나 백제와는 달리 무덤에 그림 그일 생각을 어떻게 한 건지 정말 궁금하다.
한대에 화상석이 유행이었다고 하는데 그 영향을 받은 걸까?
토끼가 달에서 방아 찧는 모습은 고구려 시대부터 있었던 전설인 모양이다.
사람의 얼굴을 한 새, 소의 얼굴을 한 신 등 신비롭고 환상적인 내용들이 이야기는 없고 형태만 남아 고구려인들이 꿈꾸던 세계관을 들려준다. 

사진의 질이 아주 좋은 편이고 설명도 간략하면서도 핵심만 짚어 준다.
그래서 양도 많이 않다.
앞장에 실린 지도 그림도 고구려의 지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 표정있는 역사 3
이한수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신문기자가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전문적이고 깊이가 있다.
야사류로 흐르지 않고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몽골 속국 시대를 그려낸다.
느닷없이 등장한 충~왕이라는 시호가 낯설기 그지없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기 때문에 이 시대는 항상 모호했었다.
그러다가 드라마로 공민왕 시대가 다루어지면서 약간의 감을 갖게 됐다.
워낙 인기가 없었던 드라마라 초반에 잠깐 봤던 게 전부인데 (손창민이 신돈으로 나와 이상한 헛웃음만 화제가 됐었다) 그 때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 홍씨, 형이었던 충혜왕, 형수 덕령공주, 조카 충목왕과 충정왕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하니 좀 열심히 봤더라면 어느 정도 고려 후기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아무리 드라마가 역사 왜곡을 한다고 해도 사극은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관심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순기능이 있는 것 같다. 

무신정권을 끝내고 강화도에서 나와 원에 복속했던 24대 왕 원종은 직접 중국까지 건너가 당시 세력 다툼 중이던 쿠빌라이에게 항복 의사를 밝힌다.
아직 전체 권력을 손에 잡지 못했던 쿠빌라이는 이 고려의 젊은 왕세자를 기특하게 생각하여 훗날 황제가 된 뒤 자신의 유일한 딸을 시집보낸다.
원나라의 부마가 된 것은 역사책에 나오는 치욕스러운 분위기라기 보다는, 고려의 위상이 단번에 올라가는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태종 때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양녕대군과 명 황제의 딸을 결혼시키자는 말이 돌았다고 했다.
물론 명 황실에서는 감히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일로써 태종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랫사람들의 농간이었다.
당나라에서 유목민 왕에게 공주를 시집 보내는 예가 있긴 하지만 , 우리는 중국과 조공의 관계를 맺어왔으나 원나라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결혼이 이뤄진 적이 없다.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 것은 정말 이 책에 나온 바대로 황제와 고려 국왕의 개인적인 은혜 관계 때문에 특혜를 입은 것인지 궁금하다. 

하여튼 멀리 익주까지 쫓아가서 쿠빌라이를 영접한 충렬왕은 쿠빌라이게 황제위에 오른 후 그녀의 외동딸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한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대장공주란 황제의 고모를 뜻하고 장공주는 황제의 형제, 공주는 딸을 뜻한다고 한다.
또 제국대장공주네, 노국공주네 할 때 앞의 이름은 분봉받은 땅의 이름이라고 한다.
마치 황후, 태황후, 태상태후 하듯 격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제국대장공주는 시집 올 당시 겨우 열 대 여섯 살이었고 남편 충선왕은 스물 네 살로 당연히 아내와 아들까지 있었다.
황제의 적녀인 공주는 어린 나이임에도 남편과 고려 왕실을 꽉 쥐고 흔들 만큼 위세가 대단했고, 아들까지 낳는다.
이 아들이 충선왕이다.
어머니의 위상이 원 황실에서 상당했던 만큼 충선왕 역시 세자 시절부터 아버지를 능가할 만큼 대단했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자 충선왕은 무고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는 명분하에 아버지의 총비는 물론 지지세력까지 처형하고 원으로부터 새 국왕으로 선포된다.
어머니가 죽기 전 쿠빌라이의 손자였던 진왕 카밀라의 딸 보탑실련, 즉 계국대장공주와 혼인했다.
그 역시 다른 아내가 있었으나 정식 왕비가 아니었기에 문제되지 않는다.
불행히도 충선왕 역시 아내와 사이가 좋지 못했고 급기야 아내와의 불화가 원황실에까지 알려져 소환당한 후 왕위를 뺏기기까지 한다.
충선왕은 여러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는데 그 중에서도 원에 있을 당시 관계한 몽골 여자에게서 아들을 둘이나 얻는데 그 중 둘째가 충숙왕이다.
원의 공주가 무서웠기 때문일까?
아들을 둘이나 낳아 준 몽골 여인을 끝내 고려로 데려오지 못했고 아들인 충숙왕이 왕위에 오르자 의비로 추숭된다. 

충선왕은 원나라의 황위다툼 때 줄을 잘 서서 그가 지지한 무종이 황위에 오르자 곧 복위된다.
간단히 원 역사를 짚어 보자면, 쿠빌라이가 원 5대 황제 세조로 등극한 후 80세의 나이로 죽자 (와, 정말 오래 살았다) 황태자는 이미 죽었고 그 아들이 6대 성종으로 즉위한다.
그런데 이 성종의 황태자가 요절하자 황위 다툼이 벌어지고 조카인 무종, 인종이 차례로 황제에 등극한다.
이 두 사람의 어머니인 다기는 남편이 죽자 동생인 성종의 아내가 되는데 아들들이 황제가 되자 함께 권력을 향유한다.
충선왕이 지지했던 사람이 바로 인종이다.
충선왕은 원의 명령에 따라 등극도 하고 폐위도 되는 경험을 한 만큼 다시 고려 국왕으로 복위한 후에도 원을 떠나지 않고 만권당이라는 일종의 연구소를 차려 놓은 후 막간에서는 고려를 지배하고 원에서는 자신의 정치 세력을 키운다.
왕위에 오른 의비의 아들 27대 충숙왕으로서는 실원을 놓지 않은 아버지가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충숙왕은 복국장공주와 결혼한다.
그러나 충숙왕 역시 몽골 왕비와 사이가 좋지 않고 대신 홍문계의 딸인 덕비만 총애하여 두 아들을 낳는데 큰 아들이 28대 충혜왕이고 15년 후에 낳은 늦둥이가 바로 그 유명한 31대 공민왕이다.
재밌는 것은 충선왕도 홍문계의 딸을 후궁으로 맞아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 동서 지간이 된 셈이다.
확실히 고려는 족내혼이 성행하여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보면 정말 허걱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일례로 충선왕은 어머니 제국대장공주가 사망하자 무고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는 명분으로 아버지 충렬왕이 총애하던 무비를 처형한다.
그리고서 적적함을 달래 준다고 과부 김씨를 아버지의 후궁으로 들이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죽가 이번에는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 숙비에 봉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취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충혜왕이 아버지의 정비이자 몽골의 공주인 백안홀도 공주를 강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첩과는 위치와 격이 다른, 명백히 법적인 어머니인데도 감히 겁탈을 한 것이다.
물론 이 일로 충혜왕은 원에 소환되어 폐위당한 후 유배를 떠나다 죽는다. 

충선왕은 아들 충숙왕 외에도 이복형의 아들인 고를 사랑해 양자로 삼는다.
무종과 인종의 등극을 도운 공으로 심양이라는 작위를 받은 충선왕은 이 자리를 고에게 넘겨 주고 10대 태정제의 친조카인 눌륜공주와 결혼까지 시켜 충숙왕과 경쟁시킨다.
충숙왕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간다.
더군다나 그는 몽골 왕비들과의 관계도 나빠서 첫번째 아내인 복국장공주는 심지어 남편에게 맞아 죽고 만다.
이 일로 충숙왕은 4년간 원에 끌려가 억류된다.
이 때 국왕 노릇을 한 것이 바로 심왕이다.
그는 인종의 아들인 9대 영종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영종이 쿠데타로 살해당하자 충선왕의 처남인 태정제가 즉위하면서 사정은 급변한다.
충숙왕은 금동 공주 혹은 조국장공주와 재혼하면서 국왕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열 일곱 살의 나이로 서른 한 살의 충숙왕에게 시집온 금동공주는 애를 낳다가 사망하고, 그 아들 역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열 일곱의 나이로 요절한다.
그는 다시 세 번째 아내를 맞는데 이 여자가 바로 아들격인 충혜왕에게 겁탈당하는 불행한 백안홀도공주이다. 

계모를 겁탈할 정도였으니 대신들이나 친척 여인들도 부지기수로 건들 만큼 횡음무도했고 국정도 피폐해졌다.
큰어머니를 겁탈했다고 왕위까지 뺏긴 연산군 보다 몇 수 위였던 것 같다.
결국 그는 원나라에 압송되어 유배를 떠나다 죽고 만다.
왕위는 몽골 왕비였던 덕령공주의 8세 된 아들 충목왕이 잇는다.
이 때부터 덕령공주의 섭정이 시작된다.
그 아들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죽자 이번에는 충혜왕의 후궁이었던 희빈 윤씨의 아들 충정왕이 30대 왕으로 등극하여 역시 덕령공주가 권력을 휘두른다.
내 기억에 드라마 <신돈>에서는 김여진이 덕령공주 역을 맡았는데 남편이 죽고 아들마저 요절하자 충정왕이 왕위에 오른 후로는 뒷방으로 물러나 쓸쓸히 여생을 보내다가 원나라로 돌아가는 걸로 처리됐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충정왕 때까지 섭정을 하면서 고려의 개혁을 저지했고 잠자리를 함께 하는 대신들도 몇 있었다고 한다.
공민왕이 왕위에 오른 후로는 왕태후와 같은 대우를 받으며 조용히 20여 년을 살다가 고려에 묻혔다.
충정왕은 12세에 왕위에 올라 14세에 폐위되는데 왜 그랬는지는 자세히 기술이 안 되어 있다.
어머니가 고려인이라 세력이 부족했나?
하여튼 왕위는 고종사촌 격인 보탑실리, 즉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한 공민왕에게 돌아간다.
아버지 충숙왕의 두 번째 왕비였던 금동공주의 오빠인 위왕의 딸과 결혼한 것이다.
그는 폐위된 열 네 살의 조카를 독살함으로써 잔혹한 군주의 모습을 드러낸다. 

공민왕 하면 예술을 사랑하고 아내 노국공주를 끔찍히 아꼈던 유한 군주처럼 보인다.
드라마에서 정보석이 맡았던 이미지도 부드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영화 <쌍화점>을 보면 잔치 석상에서 권신들을 몰살한 잔혹한 군주로 나온다.
영화가 오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공민왕은 과연 반원 정책을 추진하고 권력을 줬던 신돈을 일시에 죽여버릴 만큼 충분히 잔인한 군주였다.
그는 연경에서 10년을 수행했던 장군들을 자기들끼리의 세력다툼을 이용해 살해하고, 홍건적의 난 때문에 안동까지 피신해 있을 때 개경을 수복한 장군들 마저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 만다.
노국공주가 죽고 난 후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보이던 그는 결국 주변에 친위 세력 하나 못 만들 만큼 모두를 적으로 돌린 채 자제위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형 충혜왕 못지 않게 극단적인 구석이 강했던 것 같다. 
기철 일당을 처형하다가 원의 공격을 받아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에게 왕위를 뺏길 뻔 하기도 했으나 최영과 이성계의 강력한 대응으로 무마시킬 수 있었다.
여자 대신 동성애에 관심이 많았던 공민왕은 신돈의 애첩인 반야에게서 모니노, 즉 우왕을 얻었으나 고려사에서는 이가 신돈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에서도 이 의견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는 여자에 관심이 없고 대신 관음증이나 동성애에 몰두했기 때문에 홍륜 등에게 자신의 후궁인 익비와 관계하도록 종용했다.
나중에 그녀가 임신을 하자 공민왕은 이들을 죽일 계획을 세웠고 정신착란 상태에서 환관 최만생에게 이를 미리 발설하다가 역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쌍화점>에서 그대로 차용된 내용이다.
유학이 지배한 조선 시대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파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항상 모호하기만 했던 고려 후반기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기분이다.
아무 관심도 없었던 몽골인 왕비들이 고려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도 알게 됐고 후진국이라고 무시하는 몽골인들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 혈족인지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200 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책이지만 왕과 왕비의 세보도 정확히 나왔고 더불어 원나라 황실까지 자세히 그려줘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살려 잘 묘사했기 때문에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
이제 고려 시대사를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리, 세상을 날다
전국지리교사모임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층을 중고등학생으로 잡은 걸까?
대학생 이상이 읽기에는 너무 수준이 떨어진다.
차라리 얼마 전에 읽은 <지리이야기>를 추천한다.
학교 선생님들이라 학생들이 읽기 쉬운 책을 쓴 모양이다.
차라리 고등학교 지리 교과서가 이 책보다는 더 많은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이 너무 가볍고 피상적이라 지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기 보다는 관심을 환기시키는 정도에 멈춘다.
요즘은 중고생 대상으로 나온 책들도 굉장히 수준이 높고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감탄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준비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 너무 혹해서 읽은 것 같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부분은 너무 낙관적으로 스케치 하듯 써 놔서, 얼마 전에 읽은 <라틴 아메리카 역사 다이제스티브 100> 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좀 더 공부를 하셔서 깊이 있는 책을 출판하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