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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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오래된 책으로 알고 있는데 중앙박물관에 갔다가 뮤지엄샵에서 새로 나온 개정판을 발견하고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했었다.
옛날 책에는 사진이 모두 흑백인데 개정판은 올컬러라 보는 완전히 다른 책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신청을 해 놓고도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1년이 다 되도록 빌리지를 못해 이 책에 대한 기대가 날로 커져 가던 차에 드디어 대출을 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겼다.
책의 도판은 정말 화려하고 편집이 굉장히 잘 된 책이며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무척 가벼운 편이다.
개정판은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책도 다시 편집을 해서 새로 출간하면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 책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느낌은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워낙 유명한 분이시니 문화재에 대한 식견이 쥐뿔도 없는 내가 감히 이러네 저러네 평을 할 처지는 못 되지만서도, 독자의 입장에서 느낀 점을 말하자면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일견 국수주의적인 느낌이 난다.
문장이 너무 화려해 끝없는 찬사를 늘어 놓다 보면, 나중에는 문화재 자체의 아름다움 보다는, 말을 위한 말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너무 현학적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어설픈 미학 에세이나 여행기 보다는 월등한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민족 문화는 그 민족의 성장 환경과 맞물려 오랜 전통을 갖고 가꿔져 왔기 때문에 우월의 차이를 논한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화든 그것을 직접 겪어 온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고 그저 겉만 보는 외국인의 눈에는 그 깊은 속내까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문화재는 한국인이 가장 잘 느끼고 감탄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의 평가에 연연할 필요도 없고 특별히 남의 문화와 비교할 것은 더더욱 없으며 그저 행복한 마음으로 즐기면 되지 않을까?
각 문화의 특징을 비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꼭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 문화의 숨막히는 권위주의라느니, 일본 문화는 한국의 아류라느니 이런 식의 기술은 정말 오버 같다.
내가 이원복씨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겸손하면서도 부드러운 문장의 힘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타 문화에 대해서도 똑같은 애정을 갖고 절대 우월을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랄까 그 정신과 스타일이 내 마음에 꼭 든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전반부에 한국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에세이는 사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히려 뒷쪽에 각 문화재에 대한 설명들이 훨씬 와 닿았다.
이 분의 장점은 어려운 설명 보다는 그 문화재가 갖는 매력을 쉬운 언어로 일상화 시켜 묘사하듯 풀어 쓰기 때문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는 점이다.
어떤 글에서는 6.25 사변 이야기도 나오고, 심지어 지게에 땔감 이고 가는 소년들의 애잔함도 등장해 시대가 정말 옛날이구나 실감을 한다.
아마 전쟁의 상흔과 식민지 치하의 아픔을 떨쳐 내기 위해 민족의 자부심을 한껏 높혔어야 하던 시대정신이 글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국력이 신장하고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확실하다면 배포크게 남의 문화에 대해서도 그 위대함을 침이 마르게 칭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도 등장하지만, 한국 자기의 우수함에 감탄하고 솔직하게 평할 수 있는 일본인의 모습이 오히려 성숙해 보인다. 

건축물은 직접 가 보지 않으면 그 맛을 제대로 알기 힘든 것 같다.
책에 소개된 건축물 중 직접 가서 그 아름다움에 경탄했던 불국사나 창덕궁의 부용정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통도사나 무량수전 같은 곳은 사진만 봐 가지고는 저자가 기술하는 매력이 뭔지 잘 모르겠다.
불국사는 너무 유명해 오히려 찬사가 전형적이고 뻔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 친구들과 답사 여행을 다녀온 후 신라인의 불국토라는 말을 실감했었다.
창덕궁 역시 그냥 옛 궁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을 내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찬찬히 관람하니, 조선 궁궐 건축의 미학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목공예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이 목공예품은 너무 투박하고 소박하다고만 생각했었다. 
말하자면 그냥 옛날 고리타분한 가구라고만 여겼었다. 
그런데 중앙박물관에 재현해 놓은 선비들의 사랑방을 보니 그렇게 정갈하고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또 수집해 놓은 목공예품, 이를테면 사방탁자나 문갑, 서안, 장농 이런 옛 가구들이 나무결 특유의 깊은 맛을 내면서 요즘의 화려한 가구들과는 전혀 다른 청아함과 세련미를 선사했다.
대체 왜 우리 목공예가 사라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좀 더 사람들이 전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면 얼마든지 현대식 가구들과 경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장 나전칠기만 해도 얼마나 화려한가.
자개로 장식된 장농이나 옻칠한 탁자들은 문외한인 내가 봐도 예쁘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고 보면 조선 시대의 문화가 선비들에 의해 이끌어졌기 때문에 화려하고 자극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사랑방 풍경에서 보여지는 점잖고 정갈한, 담백한 담채 같은 문화가 주를 이뤘던 것 같다.
귀족문화라고 일컫어지는 고려 시대나 불교문화가 성행하던 통일 신라 시대, 자유로운 연애가 성행했다는 그 이전의 고대 문화는 지금의 한국 문화와는 또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이 선비 문화의 또다른 정점이 바로 문인화가 아닐까 싶다.
회화는 다른 문화재 보다 더 쉽게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따지고 보면 조선 시대 선비들은 글씨도 잘 쓰고 학문의 경지도 높고 시도 잘 지으며 심지어 그림마저 잘 그렸다.
전문 화가가 아닌데도 취미삼아 먹으로 이만큼 훌륭한 그림을 그려내는 걸 보면 당시 선비들의 교양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이간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조선 시대는 그저 당파 싸움이나 일삼고 명분론에 집착한 위선적인 계층으로 비판받고 있으나 격조높은 선비 문화는 적어도 문화 면에서는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아무리 선비들이 그림을 잘 그려도 역시 전문 화가와는 그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취미로 그리는 사람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까?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 아, 정말 이 사람들은 직업적인 화가구나 실감이 난다.
김홍도 그림의 위대함이야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신윤복 그림의 미학은 이번에 새롭게 발견했다.
아름다운 여인들을 주로 그렸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림을 직접 대하니 색을 어쩜 그렇게 적재적소에 잘 썼는지 감탄했다.
수묵화다 보니 색감 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 한계가 제한되기 마련인데 신윤복의 그림은 색이 포인트가 된다.
이를테면 여인의 풍성한 치마에만 파란색을 칠해서 전체적으로 화사한 색감을 살리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는 내용도 보면 볼수록 파격적이다.
문인화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못 그릴 내용들이다.
이렇게 세련되고 개성있는 그림을 많이 남긴 화가에 대한 기록이 그저 아버지 이름 하나 뿐이라니, 저자의 한탄대로 당시 예술가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각박했는지 짐작이 간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표정이 살아 있다.
작정하고 그린 신선도 같은 경우는 캐리커쳐처름 특징을 잡아낸 풍속화와는 다른, 정밀하고 엄숙한 필선이 느껴진다.
연한 푸른색으로 물들인 냇가 풍경은 또 얼마나 상큼하고 발랄한지!
각 장르마다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린 김홍도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정조 임금이 군수 자리를 내줄 만 했겠다 싶다. 

겸재 정선은 선비화가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 분의 산수화를 보면 힘이 넘치고 이게 바로 중국의 관념산수화와는 전혀 다른 진경산수화구나 싶다.
다른 문인화처럼 취미삼아 그렸다기 보다는, 전문성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그렸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는 매화도를 잘 그린 조자룡이다.
이 분은 여항문인이었고 김정희 문하에서 배웠는데 문기가 부족하다고 하여 선생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매화꽃 핀 봄날의 화려한 정취는 내 마음을 흔들고, 특히 중앙박물관에 가서 본 매화병풍도는 그 웅장한 기세와 화사한 색감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또 비슷한 시대를 산 전기의 매화 그림도 마음에 든다.
이 책에는 안 나오지만 전문 화가들에 필적하는 이가 표암 강세황이 아닐까 싶다.
선비들이 교양삼아 붓을 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본격적인 화가의 force 가 느껴진다.
화론도 많이 쓰셨다고 하는데 이 분의 그림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 

500 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책이지만 사진도 훌륭하고 글솜씨도 유려하여 술술 잘 넘어간다.
워낙 쉽게 쓰셔서 지하철에서 야금야금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서양화에 빠져서 여러 권을 탐독하다 보니 맨날 소개되는 그림이 그게 그거인 것 같아 한동안 지루한 느낌을 받았는데 요즘은 우리 옛 그림과 도자기의 매력을 발견하고 정말 즐겁게 책을 읽고 있다. 
어쩌면 이런 즐거움은 직접 박물관에 가서 진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야나 루벤스 같은 (아,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뛴다!)  대화가들의 위대한 명작들을 아무 때나 가서 볼 수 있는 파리나 런던, 뉴욕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이제 나도 누구 부럽지 않을 즐거움이 생겼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더 열심히 가서 더 많이 느끼고 싶고 이런 문화야 말로 절대 질리지 않을 최고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선천적인 컬렉터란 말이 생각난다.
이렇게 눈이 호사하다 보면 다음 단계로 수집의 욕구가 생길 것 같기도 하다.
아, 정말 돈 많이 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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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7-18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 일본과 중국의 비교하는 기술은 좀 그랬습니다;;; 집에 이전판이 있는데, 새로 개정판으로 살까 고민중이였는데요...

어느새 30%할인이 되네요;;;

marine 2010-07-18 23:27   좋아요 0 | URL
개정판은 도판이 참 좋아요.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을까요?

김ㅇㅇ 2011-11-2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눈보리 2011-11-2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good
 
무령왕릉 -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테마 한국문화사 4
권오영 지음 / 돌베개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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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풍부하고 도판도 훌륭한 예쁜 책이다.
테마 한국사 시리즈는 서문에 나온 저자들의 각오만큼이나 우리 역사를 사진과 함께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획물 같다.
이번에 불화 편도 나왔던데 가능하면 전부 읽어 보고 싶다. 

무령왕릉에 관심을 가진 것은 공주에 다녀온 다음부터다.
분명하게 누구의 묘인지 밝혀진 곳은 이 곳 뿐이라는 설명이 내 관심을 확 끌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벽돌묘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책에 따르면 무령왕릉은 6세기 중국의 남조 양나라와 일본의 아스카 시대를 연결하는 동아시아 교역의 상징이라고 한다.
저자는 무령왕릉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것보다, 남조 시대의 무덤 연구를 토대로 무령왕릉이 얼마나 양나라와 비슷한지를 설명하고 이것을 활발한 교역의 증거로 삼는다.
심지어 최고의 백제 보물로 일컫어지는 백제금동대향로마저도 중국에서 건너온 수입품일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실물이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국내에서는 당연히 백제에서 제작됐다고 보나 중국의 여러 벽화나 화상전 등을 보면 이것과 똑같은 모양의 향로들이 많이 존재하므로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중국에서 수입됐던지 아니면 중국 수입산을 바탕으로 백제에서 제작됐다는 것이다.
어떻든지 이 대향로 역시 중국 남조와의 활발한 교역의 증거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 역시 중국 문화재를 소개하는 책에서 이 향로와 거의 비슷한 박산향로를 보고 깜짝 놀랬던 적이 있다.
그 전까지는 막연하게 우리나라의 독특한 향로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중국에도 비슷한 향로들이 있었던 것이다.
역시 일본에도 백제와 비슷한 양식의 부장품들이 많이 나와 저자는 양나라에서 수입한 문물을 백제가 주체적으로 왜에 전한 것으로 본다.
중국 영향은 축소화 시키고 일본에 전해준 것만 극대화 시키는 민족주의적인 시각보다는 훨씬 성숙한 태도로 보이나, 부득불 중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강조한 것도 썩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과 똑같은 태도가 한반도를 뛰어넘어 직접 중국과 교류했다고 주장하는 일본 민족주의 학자들의 주장이 아닌가.
고대사를 현대와 연관지어 특히 민족의 자부심 등과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시각의 한계 같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저자의 최종적인 주장대로 6세기 동아시아는 무덤 양식이나 부장품 등이 즉시 수입될 만큼 활발하게 서로 교역하였고 그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무령왕릉이라는 것이다. 

1971년에 우연히 송산리 6호분의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무령왕릉은 도굴된 적이 없는 처녀분인 만큼 엄청난 양의 부장품이 쏟아져 나왔고 지나친 취재 열기 때문에 단 하루 만에 발굴이 끝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화를 가지고 있다.
언제 누가 묻혔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유일한 왕릉이 겨우 하루 만에 수습되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장마가 지고 엄청난 취재 열기 때문에 도굴이나 훼손 위험이 커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의 발굴 태도는 이해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기자가 밀치다가 청동제 부장품을 부러뜨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차라리 잘 보존되다가 후대에 발굴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무수한 도굴과 훼손의 위험 속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문화 유산들이 얼마나 긴 인고의 세월을 이겨냈는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무령왕은 사망 후 27개월 동안 정지산에 빈전이 차려져 임시로 모셔졌고 그 기간 동안 왕릉을 지어 옮겨졌다고 한다.
요즘 장례가 3일장이던 것에 비하면 이 3년상은 확실히 고대에 조상 숭배가 일종의 종교였음을 보여 준다.
능에 매장한 지 한 해도 되지 않아 또 다시 왕비가 사망하여 다시 3년상을 지내니 당시 이런 장례 풍습이 얼마나 일상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지 이해가 된다.
무령왕은 일본서기에 사마왕으로 등장하는데 개로왕의 아들로 나와 있고 동생인 곤지가 임신한 개로왕의 처를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던 중 섬에서 낳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와 정황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무령왕은 곤지의 아들로 봐야 하고 암살로 얼룩진 선대왕들 대신, 개로왕과의 직계 혈통임을 강조하기 위해 아들로 되어 있다고 해석한다.
다른 저자들의 의견을 참조해야 할 것 같다.
무령왕은 앞의 왕들이 암살당했던 것에 비해 당시로서는 환갑을 지낼 만큼 장수했고 (62세) 웅진 시기의 혼란기를 정비해 지방 호족들을 제압했으며 양나라와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영동대장군의 칭호를 하사받는 등 백제의 위상을 높힌 중흥의 군주로 나온다.
왕릉의 발굴 때문에 갑자기 위상이 업그레이드 된 느낌도 들지만 사료에 부족한 부분을 발굴을 통해 재정립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사진과 도판이 풍부해 읽는 내내 눈이 즐거웠고 서술 또한 작은 주제에 압축되어 그 밀도가 높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좋은 기획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면서 역사서에서 비교적 소략된 백제사가 다시금 그 중요성을 갖게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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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과 백제부흥운동 엿보기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연구총 제5집
양종국 지음 / 서경문화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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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특별해서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인데 실망스럽다.
워낙 자료가 적어서일까?
내용이 너무 단편적이고 전체적인 짜임새도 약하다.
공주대학교 교수라면 백제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너무 그 쪽으로 orientation 되서 그런가?
삼국사기 기록 중 의자왕에게 불리하게 쓰여진 건 신라 입장에서 중상 모력한 거고, 좋은 쪽으로 쓰여진 기록은 받아들이는 이중적인 해석은 문제가 있다.
망국의 왕이라면 역사의 준엄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왕의 개인적인 탐욕이나 무절제한 향락, 즉 지극히 도덕적인 부분의 몰락만이 국가의 멸망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역사서들이 대부분 그 쪽에 초점을 맞추긴 하지만) 왜 한 국가가 사라지게 됐는지 그 배경과 당시 상황을 분석해야지 무조건 승자 쪽의 악의적인 기록이다, 왕은 똑똑하게 잘 했는데 모함에 걸려 무너지고 말았다 이런 식의 해석은 너무 유치하다.
차라리 삼국 시대 관련 책이라면 임용한씨나 이희진씨 책이 훨씬 더 생생하고 주제에도 잘 부합한다.
성실하게 이것저것 기록들을 뒤지긴 했는지 모르겠으나 지나치게 기록의 행간을 의자왕 쪽으로 치우쳐 읽었고 (그것도 입체적인 분석이라기 보다는 아주 단편적으로 우상화 하기) 중구난방 식으로 백제 부흥 운동 등의 과정을 이것저것 끼워 넣어 도무지 주제에 대한 통일성이 안 보인다. 

 

내가 아무래도 이 책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
대충 훑어 보고 편견에 가득찬 책이라고 오해를 했던 것 같다.
테마 한국사 시리즈인 무령왕릉 편을 읽은 후 사비 시대 백제에 관심이 생겨 다시 읽으니 오독했음을 알게 됐다.
부여와 공주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백제 관련 기사들을 성실하게 분석한 좋은 책이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삼국사기 기록에 대해 편견과 악의에 찬 기록이라고 평가절하한 점이다.
이를테면 의자왕의 태자를 처음에는 부여륭으로 했다가 나중에 부여효로 기록하는데 다른 역사서나 비문 등에서는 모두 부여륭으로 기록됐다는 점을 들어, 백제 멸망 후 신라계 후손인 김부식이 일부러 백제 부흥운동의 주역인 부여륭 대신 부여효로 바꿔 썼다는 것이다.
백제 멸망 당시인 신라 시대에 기록된 책도 아니고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12세기에 고려 시대 사람이 쓴 역사서라고 보면 다른 정황 증거 없이 무조건 다른 사서와 기록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라 후손 김부식의 악의적인 가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왜 삼국사기에서는 태자를 다르게 기록했는지 그 상황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자왕이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횡음을 일삼은 게 아니라 당과 대항하여 자주외교노선을 취했다고 본 점은 사료비판을 통한 나름의 역사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과거 역사 기록들은 왕조가 멸망한 것을 왕의 문란함, 기강 해이 등에서 찾는 등 도식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천명이 떠났다거나 하는 식으로) 왕 개인의 사생활을 문제로 삼는 것 보다는 보다 입체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정방이 김유신 부대가 하루 늦게 도착했다고 하여 그 부장을 참하러 한 사건을 두고, 소정방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설명한 점도 무조건 우리 편에서 보지 않고 나름대로 당시 정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김유신 장군이 소정방에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고 신라군의 위용을 지킨 점은, 이 책에서 인용된 기사로 보아도 너무 당당하게 느껴지는데 이것을 굳이 신라계 후손인 김부식의 윤색이라는 식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오히려 저자가 자신의 연구분야인 백제 쪽으로 지나치게 편향된 것으로 보인다.
또 계백 장군이 처자를 몰살하고 황산벌 전투에 임한 것을 두고, 당시 백제 상황이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았다면서 역시 계백의 잔혹함을 강조하려고 김부식이 나중에 삽입한 기사로 보는데 이런 식으로 따지면 역사서에 나온 모든 기사들을 죄다 의심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결전에 임하기 전 처자를 스스로 죽인 점을 두고 잔혹하네 어쩌네 하는 것 자체가 현대의 시각으로 고대를 해석하려는 잘못된 시각이 아닌가 싶다.
이런 한 두 군데의 극단적인 해석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백제 멸망 당시의 상황을 여러가지 정황 증거와 문서 기록, 전설 등을 종합해 입체적으로 재현해 놨다. 

제일 인상깊게 본 부분은 백제 멸망 이후 태자 부여륭에 의해 재건된 웅진도독부이다.
솔직히 이 웅진도독부는 여태까지 당에 의해 다스려진, 있는지도 몰랐던 부분이다.
막연하게 당이 백제를 관할하기 위해 세운 기구이고 신라에 의해 혁파된 후 제대로 된 삼국통일이 이뤄졌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아버지 의자왕이 낙양 땅에서 죽은 후 부여륭은 사대 외교 노선을 취해 고종으로부터 웅진도독부 대방군왕이라는 직책까지 하사받아 백제의 옛 영토를 총괄했기 때문에 백제 재건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비록 부여륭이 조공을 바쳤고 당의 군사에 의해 유지되긴 했으나, 조공 체제 자체가 독립국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신라 역시 당에 의해 계림도독부라 칭해진 만큼 중국 역사서에서 웅진 도독부를 당의 군현이라 표기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이런 서술은 지나치게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으로 보이고 계림도독부와 웅진도독부는 그 위상이 절대 같을 수 없다고 본다.
원래 웅진도독부는 백제 옛 땅에 세워졌는데 신라와 영토 분쟁이 잦았다.
그러던 차에 고종이 토번과의 전쟁 때문에 군사를 철수시키자, 문무왕이 이 곳을 공격해 671년에 나당 전쟁이 일어났고 이 때의 승리로 비로소 신라는 백제를 완전히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자 당 고종은 웅진도독부를 만주 건안 땅으로 옮기고 부여륭에게는 대방군왕이라는 칭호도 하사해 백제 유민을 다스리게 한다.
678년에 고종은 부여륭을 위하여 다시 신라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신하들의 저지로 무산되고 측천무후는 나중에 륭의 손자 부여경에게 이 직책을 넘겨 준다.
그러고 보면 웅진도독부는 후에 신라와 발해가 이 곳을 점령하기 전까지 상당 부분 백제인의 역사가 쓰여진 곳이니 역사적 관심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하겠다.
백제인들은 백촌강 전투 패배 후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왕씨 성을 하사받고 나중에 삼송씨로 바꾼다.
광인천황이 의자왕 아들인 선광의 후손 신립과 혼인하여 환무천황을 낳았기 때문에 천황이 백제왕씨를 자신의 외척이라고 칭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성시의 <만들어진 고대>에 따르면 천황가의 백제계 혈통은 과장이라는 식으로 설명되는데 정확한 근거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재독해 봐야 할 것 같다. 

<역사스폐설>에서 예식이 공주로 피난 온 의자왕 부자를 잡아서 당군에게 넘겼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중국에서 발견된 예식진 묘지명을 근거로 예식과 예식진을 동일 인물로 간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예식과 예식진은 다른 인물이고 (발음상의 차이가 크다고 본다), 의자왕은 당의 침략 원인이 자신이 자주외교노선에 있었던 만큼 백제의 존립을 위해 스스로 항복했다고 본다.
둘 다 정황 증거를 토대로 한 만큼 어떤 부분이 맞는지 확실하게 판단이 안 선다.
그러나 중국의 광시성 장족 자치구에 있는 백제향 백제허의 지명을 토대로 백제의 22담로 중 하나였다는 역사스페셜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이 책에 소개된 대로 장족 언어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마치 만주족 성인 애신각라를 가지고 신라와 연관짓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백제부흥운동을 펼쳤던 부여풍이 고구려로 망명한 뒤 당에 포로로 잡혀 이 곳으로 귀양간 것을 백제향과 연관지어 생각하는데 백제라는 한자 지명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 백제인지 아니면 그 지역 사람들의 말대로 전혀 상관없는 장족어인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또 저자는 나이가 많은 부여풍 대신 셋째인 부여륭이 태자가 된 것을 두고 풍을 서자로, 륭을 적자로 보는데 기록에 나온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추측인지 궁금하다. 

당군이 주력군이고 신라는 보급 부대였던 만큼 황산벌에서 김유신이 이끈 군사는 생각만큼 많지 않았을 것이고, 나중에 계백보다 지위가 높은 장군들이 포로로 잡힌 점을 들어 그들 역시 계백만큼 수 천의 군사를 지휘했을 것이므로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은 생각만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참신했다.
또 성충이 의자왕과 대립한 점을 단순히 충언을 무시한 의자왕의 어리석음이라 보지 않고, 당에 대항해 자주외교노선을 취했다고 해석한 점이나, 흥수가 탄현을 지키라고 간언했으나 조정 대신들이 오히려 신라의 부대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공격하므로 탄현만 지키고 앉아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인 공격을 주장했다고 이해한 점 등은 당시 상황을 단순히 개개인의 도덕성 등에 의존하지 않고 사료를 보다 입체적으로 분석한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의자왕이나 조정 대신들이 사리사욕에 어두워 충신들의 간언을 무시하다가 망했다는 역사서의 기록은 당시 필법을 감안할 때 여러 방식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주의해야 할 점은, 당시 기록을 무조건 승자 쪽의 편파적 기록이다, 정황으로 봤을 때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확대 해석해서도 안 될 것이다.  

백제 멸망 당시와 부흥 운동, 그리고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의 발자취에 대해 성실하게 흥미롭게 기록한 책이고 이해하기도 쉽다.
저자가 쓴 다른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아쉬웠던 점은 책에 실린 사진들이 너무 작다는 것과 내 한자 실력이 딸려서 정확한 이해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확실히 역사서를 읽으려면 한자와 유교, 불교에 대한 지식은 필수다.
좀 더 공부를 해서 보다 깊은 독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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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치머만의 세계사 - 인간이 알아야 할 세계 역사의 모든 것
마르틴 치머만 지음, 김지영 외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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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잘 넘어간다.
독일에서 출판된 책은 미국에서 나온 책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이고 그래서 종종 이질적인 느낌 때문에 독서에 몰입하기가 어려운데 이 책은 쉽게 잘 써졌다.
세계사에 처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입문서로 접하기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인류의 시작부터 21세기까지 한 번에 쭉 가는 통사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중간중간 지루한 느낌은 피하기 힘들다.
그래도 어려운 내용이 없고 일반인이 받아들이기 쉬운 수준에서 서술하기 때문에 막히는 부분은 없다.
깊이가 얕아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단점. 

세계사를 읽으면서 요즘 드는 생각은, 중세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를 생각하고 고대라고 하면 삼국 시대를 떠올리는데 막상 연대 비교를 해 보면 상당히 차이가 난다.
로마가 멸망하고 게르만 족이 프랑크 왕국 등을 건설하여 카롤로스 대제 등이 활약한 중세가 한국으로 치면 신라가 통일도 하기 전인 삼국시대다.
로마가 포에니 전쟁 등을 일으키고 영역을 넓혀 가던 고대는 아직 국가 정립도 안 되서 마한, 진한, 변한 같은 소국들이 연맹을 형성하던 시대가 아닌가.
르네상스가 시작되어 근대의 문을 연 시기도 고려 시대이고, 지리상의 발견을 시작한 것도 임진왜란 이전이니 한국의 역사 구분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카이사르나 카를로스 대제 등이 얼마나 먼 고대의 인물인지 조금은 실감이 난다.
우리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이 전부인데 당시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를 <로마인 이야기> 등의 에세이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 자료가 풍부하다는 게 정말 놀랍다.
또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등에 얼마나 인류의 역사가 빨리 시작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스 민주정에 대해 읽으면서 과연 이것이 귀족정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스러웠다.
조선 역시 양반들이 정치를 하는 일종의 귀족정 아니었을까?
민회라는 개념이 왕정과의 차이일까?
그리스는 작은 도시국가, 일종의 마을들이 연합한 어찌 보면 강력한 왕정을 이루기 전 단계가 아니었을까?
현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를 과연 적용할 수 있을지, 용어 사용에 의한 이미지 혼란은 아닐지 궁금하다.
또 그리스나 로마 등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장갑보병들이 큰 역할을 하면서 평민들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얻었다고 했는데, 같은 시대에 전 병력 동원 체제에 끌려다닌 춘추 전국 시대의 중국 백성들은 권리를 얻기는 커녕, 진시황의 강력한 통제에 제압당했을까?
중국과 그리스 로마 사회의 발전 양상이 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는지, 어떤 정치 사회 환경 때문이었는지 궁금하다. 

상대적으로 중국이나 일본 등의 아시아 역사는 소략하고 전문성도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서양 중심으로 세계사를 구성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요즘에는 많이 느낀다.
예전에는 유럽 사회가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유럽 중심으로 역사가 구성된다고 생각했는데 역사에 대해 알게 될수록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기 이전에는 각자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한 쪽이 절대적인 중요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서구 역사가 기록이 많고 발굴이나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의의를 많이 부여받는 게 아닐까 싶다.
따지고 보면 아프리카나 중남미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들이 여전히 낮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세계 무대에서 그들의 발언권이 약하고 자국인들에 의한 발굴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아시아는 그래도 서구 역사가들에 의해 약간의 자리라도 얻는데, 아프리카 역사는 노예 공급처였다는 게 기록의 전부다.
아프리카의 국력이 신장되고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면 인류의 발원지인 이 위대한 대륙의 역사도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구성될 수 있지 않을까?
여기 나온 책에 따르면 유럽이나 이슬람 상인들에 의한 노예 사냥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륙 내에서도 동아프리카 해안의 사람들이 서아프리카로 노예화 되어 매매됐다고 한다.
노예 매매가 금지된 19세기 후반에는 오히려 대륙 내의 노예 산업이 더욱 활발해졌다고 하니 대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얼만큼의 규모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고 싶다. 

부록으로 실린 지도는 굉장히 화려하고 보기도 좋은데 아쉬운 점은 본문 내용과 매치가 안 된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각주 등으로 같이 표시됐으면 이해하기 편했을 것 같다.
혹시 개정판이 나온다면 참조해 줬으면 좋겠다.
짧은 시간에 재밌게 읽은 책이고 다음에는 좀 더 세부적인 주제로 쓰여진 역사서를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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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이야기
경기도박물관 / 경인문화사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정확히 맞은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이미지가 없으니 그냥 여기에다가 쓴다.
이번에 용인시에 있는 경기도 박물관에 갔다 오면서 뮤지엄 샵에서 하이라이트 도록을 구매했다.
곧 내부 수리를 들어갈 예정이라 그런지 뮤지엄 샵이 너무 작고 차마 서점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하여튼 가격의 압박 때문에 일부 유물만 나온 하이라이트 도록을 구입했는데 사진이나 설명은 비교적 만족스럽고 책 판형도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포켓 사이즈였다.
박물관 자체는 다른 지방 박물관에 비하면 규모가 있는 편이지만 안의 전시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하면 상당히 작다.
전시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당 부분은 모형으로 대치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구석기, 신석기 시대 생활상의 마을 모형은 꽤나 실감났다. 

역시 우리나라 문화재의 하이라이트는 도자기 같다.
석기 시대의 토기들부터 시작해 고열로 구운 자기들, 각종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의 화려한 향연이 이어진다.
어디 박물관을 가든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정말 많다.
이 책에도 도자기의 아름다움이 사진 속에서 잘 드러난다.
이름 붙이는 법도 익숙하고 이제 한자도 잘 읽을 수 있다.
옛날에는 도자기 모양이 다 뻔하고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조금씩 알게 되니까 이제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경기도 박물관의 특성은 지역 박물관이다 보니 그 지방의 문물을 보여 주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고려 시대 이후 중앙 귀족들이 거주하면서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고 조선 시대 때는 한양을 감싸는 지역으로서 선비 문화를 꽃피웠다.
공신 책록된 후 일종의 부상으로 받은 초상화가 많고 대부분 보물로 지정됐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전신사조라고 하여 터럭 한 올 틀리지 않게 그리고 그 정신까지 전수한다고 하지만, 모든 초상화가 너무 도식적이라 여러 점 보다 보면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가끔 어떤 초상화들은 인물의 표정과 성격을 잘 잡아내 감탄할 때가 있는데 여기 실린 조영복 초상화나, 이중로, 유하 등의 초상화가 그랬다.
이런 유명 초상화들은 화가의 이름이 명기됐고 어진화사 등에 참여한 당대 수준급 화가들이었다.
같이 실린 찬문 등도 그림의 격조를 높힌다.
인상적이었던 그림으로는 조석진이 그린 10가지 동물 병풍이었다.
짐승의 특징을 잡아낸 모사 솜씨나 전체적인 색감이 훌륭하다. 

책을 읽으면서 어려웠던 점은 역시 한자다.
기본적인 한자도 모르기 때문에 옥편을 찾다 보면 시간이 한정없이 늘어져 금방 지루해진다.
그나마 도자기에 쓰는 한자들은 같은 말이 반복되고 요즘에 관심있어 자주 찾다 보니 이제는 옥편없이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조선시대 문서들에 쓰인 한자를 읽기가 어렵다.
그러고 보면 당시 사대부들이 한문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 짐작이 간다.
특히 서예를 보면 붓끝에 힘이 넘치고 개성있는 글씨들이 많아 세간에 알려진 무능하고 공리공론만 일삼는 선비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히 교양있고 문화적이고 학식이 풍부한 품위있는 귀족이 생각난다.
선조가 난리통에 함경도에 있는 신하 송언신에게 자식들 찾아달라고 보낸 밀찰을 보면 전쟁 중 피난간 국왕이 겪었을 비애가 흠뻑 느껴져 안타깝다.
또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도 잘 드러난다.
선조나 순조 등의 글씨첩도 봤는데 역시 조선 시대 왕들은 시서화에 일가견이 있는 우아한 선비들이었던 것 같다. 

박물관에 가면 각 박물관에서 펴낸 책들을 구입하는 게 참 즐겁다.
이런 책들은 서점에서 구하지도 못하고 그 곳에 직접 가야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사진들이 훌륭하고 설명도 충실하다.
다만 가격의 압박 때문에 원하는 만큼 구입하지는 못하지만. 
각 지방의 문화를 보여주는 이런 지방 박물관들이 많이 설립되서 지방 문화 보존과 융성에 이바지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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