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찰 현판 1 한국의 사찰 현판 1
신대현 지음 / 혜안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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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불교 관련 서적을 찾다가 우연히 제목을 보고 특별히 보관함에 넣지는 않았는데 오늘 도서관에서 역시나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읽으려고 제목을 적어 놓은 책이 아니다 보니 이번에 지나치면 평생 못 보고 말 것 같아 이 책을 먼저 꺼내 들었다.
대출 가능 권수는 딱 한 권뿐이라 다른 책을 빌릴 예정이어서 이 책은 자료실 문 닫기 전까지만 읽다 보니 1/3 정도는 못 보고 반납했다.
집에서 편하게 인터넷 검색하면서 한자도 찾아보고 차분이 봤더라면 훨씬 더 유용했을텐데 아쉽다.
현판의 한문을 전부 번역하지 않고 적당히 취사선택 해서 알려 주는 방법이 지식이 짧은 나에게는 무척 좋았다.
어려운 한자가 많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쉽고 재밌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기왕이면 칼라로 절과 현판 사진을 싣고, 절이 위치한 지도도 실었으면 입체적인 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1권은 2002년도에 나왔고 2권은 2005년도에 나왔던데 혹시 2권은 칼라가 아닐까 기대해 본다.
알라딘에서 확인하려고 했더니, 안 유명해서인지 미리보기가 안 되고 리뷰도 하나도 없어 아쉽다.
한국의 전통 미학은 불교를 모르고서는 제대로 알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불교문화가 왜 이렇게 대중에게서 멀어졌는지 안타깝다.
심지어 불교박물관의 해설사에게서는 관람객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불교문화를 배척한다는 말도 들었다.
서양문화를 알려면 기독교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왜 우리 전통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불교문화는 배척하는지 모르겠다.
문화와 종교는 엄연히 다른 문제가 아닐까?
조선시대 성리학 교조주의 때문에 천 년의 세월을 이어온 불교 문화가 쇠락하고 고급화를 이루지 못한 점도 안타까운데 이제는 미국의 힘을 업고 한국사회의 주류가 된 기독교도들 때문에 그 중요성이 여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속상하다.
박물관에서 불교 관련 문화재는 이단 꺼라고 안 본다는 어떤 관람객이 생각난다. 
한숨 나온다. 

해남에 있을 때 아빠랑 같이 드라이브 갔던 미황사가 황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뜻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분명히 안내판에 써 있었을텐데 단순히 절은 가볍게 산책하러 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주의깊게 보질 않았었다.
소가 불경을 지고 가다가 쓰러진 곳에 통교사와 미황사가 세워졌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전설인지.
제일 재밌었던 건 영주 부석사의 전설이다.
이 곳은 화엄종을 개창한 의상대사가 세운 곳으로, 당나라 유학갈 때 묵은 집의 딸 선묘가 의상을 유혹했으나 분연히 뿌리치고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그 곳에 들러 가족을 감화시키고 배를 타고 돌아오는데 그녀가 선물을 주려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나 버린다.
여인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져 선물이 바다를 건너 대사에게 무사히 도착하고 선묘는 대사를 지키기 위해 물에 뛰어들어 용왕이 된다.
대사가 법회를 베풀 때 온갖 잡귀들을 물리치게 한 용왕이 바위로 변한 곳에 세워진 절이 바로 부석사다.
뜰 浮 돌 石 을 쓴다.
대사를 사랑한 여인이 용이 되어 대사를 지키고 다시 바위로 변하여 그 곳이 절이 되다니, 정말 환상적인 고대의 로맨스가 아닌가!
또 재밌는 것은 비록 불교가 조선시대에 탄압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사적으로는 유학자들도 불교를 숭앙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시주도 많이 했으며 현판의 글도 많이 지어줬다는 것이다.
일종의 조상숭배교인 유교만으로는 삶과 죽음를 해결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왕실에서도 원찰을 세우고 안녕과 평안을 빌었다.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군의 원찰인 흥국사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원찰인 보광사 등은 중수 때 왕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 시대처럼 권력이나 재물을 모으기는 어려운 실정있었으므로 절을 중건하려고 할 때 스님들이 마을에 내려가 시주를 받느라 애쓰는 장면들이 나와 마음이 짠했다.
종교가 권력을 갖고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도 혐오스럽지만 (이를테면 김정한의 소설 사하촌에서처럼) 세상에서 배척되어 힘들게 신앙을 지켜가는 모습도 안타깝다.
예전에는 가끔 스님들이 목탁 두드리면서 시주하라고 할 때 항상 외면했는데 한 번쯤 뒤돌아 봐야겠다. 

언젠가 읽었던 조용헌의 사찰 기행보다 훨씬 성실하고 글솜씨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그 절이 간직한 역사와 향기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 준다는 점에서 정말 마음에 든다.
한자를 좀 더 알았더라면 더 재밌게 읽었을텐데 그게 아쉽다.
2권은 칼라로 나왔으면 좋겠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품격이 나온다는 말이 생각나는 책이다.
저자가 점잖고 교양있는 분이며 무엇보다 우리 절을 문화재로써 (그리고 신앙으로써) 얼마나 사랑하는지 많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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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펭귄이? 허풍도 심하시네 - 르 피가로 기자가 쓴 지구온난화 뒤집기
장 폴 크루아제 지음, 문신원 옮김 / 앨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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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조잡스럽다.
디자인은 괜찮은데 말이다.
비교적 쉽게 쓰여진 지구 온난화 반대론이다.
얼마 전에 읽은 <지구 온난화에 속지 마라> 가 학자가 쓴 다소 전문적인 책이라면 (근거를 많이 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프랑스의 환경 에세이스트가 가볍게 쓴 대중적인 책이다.
그래서 근거로 제시한 점들이 다소 빈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해하기는 쉽다.
오히려 일반인이기 때문에 더욱 통렬하게 지구 온난화를 둘러싼 각 단체들의 이익 싸움을 비판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제일 시원했던 말이 맨 뒤에 실려 있다.
미국이 교토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고, 유럽 국가들 역시 말로만 온실 효과 감축을 논의할 뿐이지 실제적인 행동에 돌입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라는 거다.
촌철살인이다. 

사실 이 책은 오래 전에 직접 구입해서 읽었던 책이다.
알라딘에 들어와 보니 벌써 품절이다.
2005년도 출간된 책이니까 겨우 4년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아주 유명하지 않은 책이면 서점에서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이 책이야 없어져도 딱히 아쉬울 게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정말 공들여 만든 인문학 서적들이 쉽게 사라져 버리는 현실을 보면 도서관이 더욱 열심히 신간들을 구입해야 할 것 같고 헌책방 문화도 보다 활성화돼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세월의 압박을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가지고 읽히는 고전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이런 품절, 절판 도서들을 볼 때마다 더욱 고전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마지막에 대안 에너지로 바이오 연료를 언급한 부분은 이미 그 폐해가 심해 축소하는 실정이므로 시의차가 있어 보이지만 환경론자들이 그렇게 무서워 하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알려진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가장 대중적인 에너지의 대안을 원자력으로 꼽은 점은 정말 현실적이고 탁월하다.
핵 폐기물 처리라는 중요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막연하게 온실효과 생기니까 화석 연료 사용 자제해라,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개발도상국들에게 강요하는 일부 환경 단체들 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저자의 모국인 프랑스는 전체 에너지의 80%를 원자력이 담당한다고 한다.
차라리 핵 폐기물을 어떻게 해야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를 토론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으로 보인다.
친환경 에너지라고 각광받는 풍력이나 태양열 에너지의 비효율성과 어마어마한 가격은 이제 환상을 버려야 할 것 같다.
화석 연료는 온실효과 일으키는 탄소 배출하니까 안 되고, 원자력은 방사능 노출 위험 있으니까 안 되고 자연 에너지는 효율성이 낮으니 지금의 편리한 생활을 포기하라고 하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미 먹고 살 만해진 선진국은 조금 불편을 감수하면 된다 치자.
정말로 생존 문제가 해결이 안 된 개발도상국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개발도상국들의 공업화 정책을 환경오염 시킨다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처럼 보인다. 

기후는 지구의 역사가 시작된 날로부터 끊임없이 변해 왔고 아직까지도 인류는 그 원동력과 변화 양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기근을 뿌리뽑을 것인가와 같은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계속 반복해 왔다는 사실은 지구의 오랜 역사다.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고 있음이 과연 인류를 멸망시킬 최악의 시나리오인가, 또 그 원인이 전적으로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 때문인지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오히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주장으로 반사 이익을 보는 집단은 없는지 먼저 살필 일이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설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서 그렇다면 당신은 환경오염이 계속 되도 상관없다는 소리냐, 이런 식으로 확대하여 공격하는 명분론자들도 경계해야 한다.
자기가 아는 것이 진리의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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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 발굴로 풀어본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
조유전 이기환 지음 / 황금부엉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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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쟁하다가 못 버티고 항복한 것을 두고 청 태종이 함락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기술한 것은 과연 "민족정기"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것은 마치, 역사스페셜에서 가야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순장자의 시신을 소중하게 매장했다면서 강압적으로 매장한 중국과 달리 자발적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크고,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전통이 빛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과 비슷하다.
난공불락의 요새면 대체 왜 인조가 겨우 한 달 반 만에 나와서 항복 문서를 바쳤겠는가?
혹시 인조가 백성을 너무 사랑해서 고려 때 무신정권처럼 수 십년을 항전할 수 있었는데도 애민정신 때문에 스스로 항복한 걸까? 설마, 인조가?
몽골군이 수전 경험이 없어 강화도를 건너지 못했다는 해석과도 비슷하다.
이런 자민족중심주의적인 역사 해석이야 말로 우리 선조들이 걸어 온 길을 밝히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싶다.
정말 우리 사학계가 진정으로 극복해야 할 것은, 식민사관 보다는 오히려 한국인 우월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는 이제 자국의 역사를 해체하는 작업도 한다던데, 냉정하게 실체를 분석할 만큼 베짱과 자신감이 생기려면 우리는 아직도 멀었구나 싶다. 
무령왕이 양 무제로부터 하사받은 영동대장군이라는 직위를 두고 요즘으로 치면 외국 대학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에 불과하다고 애써 그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대 세계에서 사대주의가 큰 나라 옆에서 독자적으로 문화를 발전시키고 생존해 가는 훌륭한 외교술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을, 명백하게 중국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신하로서 조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걸 인정하면 백제의 자주성에 (혹은 대한민국의 자주성에) 큰 해라고 되는 양, 요즘의 명예학위 따위에 불과하다고 깍아 내리는 건 정말 비겁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학자들이 한중일 세 나라에 널려 있으니 아직도 동북공정이니, 임나일본부설이니 하는 게 자국에서 힘을 얻고 있지 않겠는가.
전방후원분이 일본의 무덤 양식이고 한반도에서 그것이 발견됐다면 양국간의 문화교류가 활발했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 아닌가?
이것을 두고 부득불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근거로 삼으려는 일본이나, 그럴 위험이 있어 절대 그런 무덤 형태가 아니라고 부인하여 아예 조사도 안 하려는 한국이나 정말 한심스럽다.
얼마 전에 고종석의 칼럼에서도 읽은 바대로, 좀 더 세계시민적인 인식을 갖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의 진시황릉, 일본의 금각사 등을 이해 관계 없이 편안하게 즐기며 자랑스러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고구려가 남진하였을 때 거점성만 정복하고 주변까지 통치하지 않은 것을 두고 고구려는 마치 제후국에 조공을 받는 천자국을 자쳐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정말 억지스럽다.
주변까지 직접 통치할 수 있을 만큼의 국력이 안 됐기 때문에 선적으로 중요성들만 점령하고 지나갔다는 게 합리적인 해석이지, 이걸 두고 천자국 운운하는 것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식민 사관의 정반대말은 혹시 민족사관이 아닐까?
칠지도 얘기도 해야 할 것 같다.
백제왕이 하사를 했는지 아니면 신공황후에게 헌상을 했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어떤 나라든 자기 나라 위주로 역사서를 해석하려고 하는 법이니 적당한 선에서 이해하면 될 일을, 그 칼을 처음 발견한 일본인의 출신 배경을 근거로 일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고 훼손시켰을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건 정말 코메디다.
어렸을 때 봤던 만화에서도 일본인이 칠지도를 훼손하는 장면을 보고 이런 나쁜 놈들! 하고 부르르 떨었는데 정작 나쁜 사람은 아무 근거도 없이 막연한 추측만 가지고 훼손했네 어쩌네 하는 사람이 아닐까?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 보면 명백히 자기네 역사책에 칠지도를 백제에서 바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 그나마 주장할 근거라도 있다.
일본서기 기록은 믿을 수 없다, 이러다가도 백제에 유리한 기록이 나오면 얼른 인용하는 아전인수, 견강부회의 태도는 이제 지양해야 할 것이다.
또 광개토대왕비는 일본 장교에 의해 발견되기 전에도 수없이 탁본이 떠졌기 때문에 훼손 운운하는 게 난센스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부득불 책에 훼손 가능성을 싣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언젠가 읽었던 책인데 이상하게 감상문이 없어서 읽었나 안 읽었나 헷갈렸지만, 예성 동호회의 중원 고구려비 발굴기를 읽으니 한 번 봤던 책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때도 아마 신문상에 연재된 글을 모으다 보니 깊이가 부족하고 에피소드 위주였다고 비판했던 기억이 난다. 
본격적인 학술서라고 보기에는 너무 잡다한 내용이 많지만 그래도 필자가 직접 참여한 발굴 뒷얘기를 듣는 건 흥미롭다.
광주의 신창동 유적지에서 발견된 옹관묘가 마한 시대 것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막연히 청동기 시대 유물이겠거니 했는데 마한이라는 국가와 연결되니 굉장한 유적지처럼 느껴진다.
삼국 시대 외에는 고대 국가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신선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 고대의 역사는 참 기록이 없다.
창원 다호리 유적지에서 붓도 발견되고 오래 전부터 한자를 써 왔던 것 같은데 대체 왜 이렇게 남은 기록들이 없을까?
조선왕조의 그 엄청난 실록만 생각해도 기록하길 좋아하는 민족이 분명한데 말이다.
제대로 된 역사 정립도 안 되어 있는 기원전후 시기에 이미 로마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그 이집트는 무려 5000년 전의 왕조까지 복원된 걸 보면 기록 문화가 부재된 우리의 고대사 복원 현실이 참 아쉽다.
결국 열심히 고고학적 발굴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밀양 송은 박익묘의 벽화는 고려 시대에도 여전히 벽화 전통이 남아 있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해 줬다.
나는 벽화라고 하면 고구려 시대에나 있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말선초에 죽은 박익묘를 우연히 발굴하게 됐는데 그 안에 벽화가 그려졌다고 하는 걸 보면,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벽화 전통이 존재했었던 모양이다.
박씨 문중에서는 유골에 손도 못 대게 해서 그저 눈으로 부패되지 않은 시신을 관찰하기만 했다고 하는데, 달리 생각하면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조상이 널리 알려지면 그것도 그 분이나 문중을 위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족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조상의 무덤을 오늘날까지 잘 관리해 온 것은 조상의 묘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전환을 통해 과학적인 발굴과 연구야 말로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좀 더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 준다면 고고학 발전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도 경주 김씨 일문에서 왕릉이 분명한데 마치 말 무덤인 것처럼 천마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며 국회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는데 우리나라의 조상 숭배 전통이 대견하기도 하면서도 이렇게 고루하고 인습적인 장면을 접할 때면 한숨이 나온다.
서구 문명이 온 나라를 뒤덮은 오늘날에도 이렇게 대의명분과 "정신적인" 것에 집착하는데 성리학 교조주의 일색이었던 조선 시대는 어땠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고대사에 대한 미스테리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흥미로운 발굴 경험과 관련 지식을 가볍게 풀어 쓴 대중을 위한 발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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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안식처, 이집트로 가는 길
정규영 지음 / 르네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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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집트 역사 다이제스트 100>을 빌릴 계획이었는데 바로 옆에 꽂아진 이 책이 눈에 띄어 먼저 읽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은 제목을 기억하기 힘들어 나중에 읽어야지 하면 결국 못 읽고 말 때가 많아 가능하면 우선 대출을 한다.
이 때 위험성은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과연 내가 원하는 내용인지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원래 읽으려고 했던 책 위주로 빌리려고 하지만 유난히 눈에 꽂히는 책들이 있어 그냥 지나치기 힘들 때가 많다.
이 책은 다행스럽게도 비교적 내용도 괜찮고 재미도 있고 책 수준도 평이해서 한 번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다음에 이집트 역사를 읽으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저자가 카이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만큼 일단 저자에 대한 신뢰도가 생겼다.
이 시리즈의 제목인 <세계 문명사 산책> 에 걸맞게 이집트의 문명을 소개하는 일종의 기행문 혹은 안내서 같다.
사진이 많이 실려 있어 보는 재미도 있고 정말 기행문이라면 이 정도 수준은 되야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서점에 난무하는 온갖 잡다한, 좀 심하게 말하자면 출판 공해 내지는 쓰레기 같은 책들이 버젓이 기행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독자를 유혹한다는 점에서 더욱 이 책의 성실함은 빛이 난다.
저자의 개인적인 소회는 가급적 삼가하고 이집트의 유적지와 관련 역사를 쉬운 문체로 편안하게 서술한 점이 책의 장점이다.
이집트를 가 보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을 들고 비행기를 타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이집트는 워낙 역사가 오래 되고 먼 옛날의 문명이라 구체적으로 감이 안 잡혔다.
막연히 피라미드의 나라라고만 생각했지 왕조의 역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었다.
모든 왕조를 숫자로 부른 점도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되지 못하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관련 책들을 몇 권 보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000천 여 년 전에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일구기 시작한 이 위대한 조상들은 피라미드와 상형문자 등을 비롯하여 고대 문명사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
우리가 단군 신화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 연도인 기원전 2333년부터 지금까지를 반만년의 역사라고 말하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이 비해, 이집트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하게 진정으로 반만면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할 수 있겠다.
5천 년 전의 왕조 연대표가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 먼 옛날에 피라미드와 같은 엄청난 건축물을 세웠다는 점도 경이롭다.
책에는 전문가답지 않게 화성인이 세웠을 수도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학설까지 소개하고 있지만 학자들이 피라미드 건축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겠다.
오늘날 수십 층의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게 된 시작이 바로 고대의 피라미드 건축에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피라미드는 얼마나 단단한 곳에 부지를 선정했는지 지진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밑으로 침강한 깊이도 불과 2~3cm 라고 한다.
그 거대한 화강암들은 대체 어떻게 옮겨 왔고 또 철기구도 없이 청동 연장을 가지고 어떻게 다루었으며 어떤 식으로 쌓아 올렸는지 여전히 의문점이 많다고 한다.
<피라미드의 과학>이라는 책을 읽어봐야겠다. 

이집트는 국토의 95%가 사막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고대부터 이 놀라운 문명이 가능했던 것은 순전히 나일강 덕분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 정도가 아니라 나일강 그 자체다.
이집트 국토를 종단하는 이 긴 강 덕분에 풍부한 수확이 가능했고 그 풍요로움 덕분에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로마의 속주가 된 이래 무려 2000년의 세월 동안 외국의 지배를 받다 보니 이집트 고유의 언어와 문자가 사라져 고대 문명과 단절됐다는 점이다.
샹폴리옹에 의해 상형문자가 해독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고대의 문명을 찬란하게 밝혀줬던 이 위대한 글자가 그저 장식용으로만 여겨졌단다는 사실이 기막히다.
상형문자는 표음문자의 기능도 하고 민용문자로 변형되어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쓰였다고 하는데 무려 3천년을 이어오다가 사라져 버렸다는 게 너무나 의아하다.
문자는 그렇다 쳐도 왜 언어까지 아랍어로 바뀌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도 한자를 쓰는 중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중국 같은 거대한 나라가 수천 년 동안 단일한 문화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 말로 진정한 기적 같다. 

현재 이집트는 이슬람화 되어 있지만 국민의 10%는 기독교의 변형인 콥트교라고 한다.
모세가 파라오로부터 백성들을 이끌고 탈출했다거나, 요셉과 마리아가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수년간 피난해 왔다는 전설도 있는 만큼 이집트는 기독교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나는 최소주의자의 학설을 신봉하는 만큼, 모세의 출애굽 자체를 믿지 않지만 전설과 관련된 장소들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특히 모세가 야훼를 만났다는 호렙산에는 카트린 수도원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이 곳에 올라가서 아침을 맞으면 과연 신을 만날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영성이 깊어진다고 하니 자연 풍광이 얼마나 장관일지 짐작이 간다.
기회가 되면 꼭 가 보고 싶다. 
콥트교와 관련된 유적지나 문화재도 꽤 많은 것 같은데 이집트 문화의 다양함에 일조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에즈 운하는 그냥 운하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면 사막 한 가운데 배가 지나가는 장면이 압권이라고 한다.
사진을 보니까 정말로 모래둑 사이로 배가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역시 말로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본질 파악에 유익하다.
사진이 없었다면 아마 난 대체 뭐가 장관이라는 거야, 하고 툴툴거렸을 거다.
그 동안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 밖에 몰랐는데 여행을 하게 된다면 이런 곳들도 꼭 가 보고 싶다. 

인류 문화의 시작인 유구한 역사의 나라 이집트에 대해 소개한 재밌는 책이다.
간략하나마 이집트 역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됐고 이집트 문화를 이루는 다양한 측면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말 꼭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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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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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설을 별로 안 읽는 편이라 그래도 고전은 읽자,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는데 이 책은 교수님이 너무 재밌다고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됐다.
시사주간지에서도 이슈를 일으키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워낙 유명해서 도서관에서 항상 대출 중이라 빌리는데도 정말 오래 걸렸다.
리뷰를 보니 무려 200여개가 붙어 있다.
과연 인기를 실감하겠다.
절반 정도를 읽고 있는데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나는 이런 식의 건조한 문장을 안 좋아한다.
나는 사람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풀어내고, 사건 위주로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이를테면 은희경처럼 인간의 위선을 까발린다거나, 얼마 전에 완전 감탄하면서 읽은 <지상에서 영원으로>처럼 외부 환경과 투쟁하는 나약한 인간의 심리 변화 같은 소설에 열광한다.
이 소설은 맞는 비교인지 모르겠으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서술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제는 전혀 다르지만 문체나 풀어가는 스타일이 얼추 비슷해 보인다.
그 책도 참 힘들게 읽었는데 이 책도 빠져들기가 쉽지는 않다. 

다만 설정은 충격적이다.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지구에 큰 재앙이 생기고 이제 인간은 석기 시대처럼 먹을 것을 찾아 끝없이 방랑해야 한다.
온 세상은 눈에 덮혀 추위와 싸워야 하고 식량 따위는 없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 죽이고 심지어 인육을 먹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길가다 사람을 발견하면 그를 죽이던지 죽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다.
주인공 남자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따뜻한 남쪽을 찾아 기약없는 방랑을 하고 있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살해 위협, 배고픔, 추위...
아들은 혹시 아버지가 사람을 죽여서 먹을까 봐 두려워 한다.
보통 한국적 정서는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희생적인 아버지상이 대부분인데 대체적으로 서구 소설들은 일방적인 희생이나 끈끈한 정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좋게 말하면 쿨 하고 좀 밋밋하다고 해야 할까?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내 자식은 꼭 지키겠다는 사명감에 불타기 보다는, 그냥 보호해 줘야 하는 연약한 존재, 그러다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약간 체념 비슷한 허무감을 느꼈다.
평론에서는 그런 부모 자식 관계가 이 소설의 포인트라고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하여튼 굉장히 건조하다. 

이들의 여정을 읽으면서 문명 시대 이전의 우리 조상들을 생각해 봤다.
대체 그들은 그 추운 빙하기를 어떻게 견뎌 냈을까?
제대로 된 옷도 없고 신발도 없고 (오늘 기사를 보니 구석기 초기에 이미 신발을 신었다는 증거가 나왔다고 하지만) 추위를 가릴만한 집도 없고 비축해 놓은 곡식도 없고 그저 사냥을 하면서, 그것도 어설픈 돌맹이 몇 개로 덩치 큰 짐승들과 싸우면서 대체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새삼 인간의 진화 과정이 놀랍고 감탄스럽다.
어쩌면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끈질지게 살아남아 결국은 온 지구를 생존의 패러다이스로 만들고야 만 인간의 이 놀라운 업적이야 말로 신의 섭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면서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나는 걸핏하면 죽어 버릴까,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먹고 사는 게 왜 이리 비루하냐, 이런 식으로 도무지 적극적인 생의 의지라고는 없는데 어른들 말씀대로 정말 배가 불러서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석기 시대 원시인들은 그 험한 환경에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살아 남았을까?
이 책에서도 그렇다.
이렇게 힘든데 왜 기어이 살겠다고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걸어간다는 말인가?
죽느니 보다 못한 상황이니 차라리 죽어 버리지.
정말 자살은 지극히 문명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감나게 묘사된 자연 상태의 벌거벗겨진 인간의 삶을 읽으면서 생존 의지야 말로 인간의 본능이고 자살 충동이 우울증에 따라오는 확실한 정신병이구나 싶다.
이런 결론을 내는 게 좀 우습기도 하지만, 새삼 빙하기를 견뎌 내고 문명 사회를 이룩한 우리 조상들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또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 하는 야생동물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한지 알 것 같고, 갇혀 있는 삶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불행하다, 이런 식의 감상은 진짜로 먹고 사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문명화 사회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언어 유희가 아닐까 싶다.
아직 절반 밖에 못 읽었는데 나머지도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드디어 다 읽었다.
충격적인 장면이 나왔다.
아버지와 아들은 불을 피우면서 뭔가를 구워 먹으려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총을 든 남자를 피해 그들이 도망가자 부자는 기대를 품고 장작더미로 간다.
그런데 꼬치에 꽂혀 있는 고기는 이럴 수가, 짐승이 아니라 머리가 잘린 아기였다!
지하철에서 이 부분 읽다가 토할 뻔 했다.
전국 시대에 인육이 성행했다는 중국 사서의 기록이 정말로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 후 아들은 우리는 사람을 안 먹을 거죠? 하면서 자주 확답을 받는다.
얼마나 충격적이고 무서웠을지 상상이 간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던데 과연 이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지 기대된다. 

불행히도 아버지는 객혈을 하다가 죽고 만다.
피를 쏟으며 기침을 하다가 결국 다음 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아버지 곁을, 소년은 떠나지 못한다.
길을 떠돌아 하는 만큼 담요는 추위를 막기 위해 필수인데도 아버지의 시신에 담요를 덮어 두고 떠난다.
마지막에 다른 일행에 합류하는 걸로 나오는데 소년이 늘 꿈꾸던 바로 그 착한 사람들일지 궁금하다.
단순히 자연과의 투쟁이 아니라 나 외의 다른 존재가 내 생명을 위협하는 적이 되는 진정한 만인에 의한 투쟁 상태, 아, 정말 문명화 이전의 원시 사회는 무서웠겠구나.
오늘날 이 만큼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인권과 생명 존중의 풍조가 자리잡은 것도 기나긴 진화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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