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유럽 현대미술관 기행 - 현대미술을 보는 눈 1 현대미술을 보는 눈 1
이은화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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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력은 화려한데 내용은 평범하다.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저자의 전문성 여부와는 또다른 문제 같다.
이를테면 박종호씨의 경우, 오페라에 대해 전문가인가 아닌가와는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는 편이다.
반면 아무리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글솜씨가 떨어지는 필자들이 있다.
개인의 기본 역량의 문제라고 할까?
책이 쉽고 다양한 미술관을 소개해 준다는 점에서 재밌게 읽고 있긴 하지만 이주헌씨 책에서 보여 주는 문장 읽는 재미는 별로 없는 편이다.
저자는 일부러 쉽게 썼다고 하는데 쉬운 책과 재밌는 책은 다른 개념이다.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 쓰는 게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는 게 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재밌게 써야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현대 미술 전문가의 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하고 깊이가 얕다.
전체적인 수준이나 문장력이 아쉽긴 하지만 말 그대로 워낙 쉽게 가볍게 쓰여져 지하철 안에서 부담없이 읽고 있다. 

솔직히 아직은 현대 미술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겠다.
즐기는 수준의 한계라고 할까?
다만 미술 전시회에 가서 직접 작품을 보고 제목을 들었을 때 작가가 환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고, 공감할 때가 있긴 하다.
마음의 동요을 일으키는 작품들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현대 미술이, 발칙한 상상력을 제도권 안에서 보호해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 소개된 트레이시 에민 같은 작가는, 낸시 랭과 차이가 뭔지 모르겠고 솔직히 말하면 상상력을 제외한, 미학적 가치가 있기는 한건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와의 영합, 대중매체의 기삿거리, 자극적인 소재, 그런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루벤스나 뒤러 등도 당시 권력자에게 봉사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 주고 오늘날 위대한 화가로 명성이 남았으니 아직 평가가 끝나지 않은 현대 미술을 어떻게 평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지금의 내 심정은 모든 작품들을 예술로 받아들이기는 상당히 어렵다.
데미안 허스트의 경우, 해부학 실습책에서 보는 인체 모형이 <찬가>라는 작품으로 버젓이 전시됐으니 과연 공구사와 저작권 싸움이 벌어질만 하다.
상어를 포르말린에 박제시켜 전시한 작품 등은 기발하다.
그러고 보면 현대미술은 미학적 쾌감 보다는 발랄한 상상력을 주제로 한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이런 다양한 시도들을 제도권 안에서 받아 들여 주고, 상상과 표현의 자유를 확보해 주는 미술계의 넓은 포용력이 부럽긴 하다.
정말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현대 미술관이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아직 루브르나 프라도 같은 대표적인 미술관도 제대로 못 돌아 봤는데 어느 세월에 이런 곳을 다 방문해 볼지 모르겠다.
문화가 주는 이 엄청난 즐거움을 생각하면 정말 한 500년은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정말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해 보고 싶다.
요즘 제일 관심이 가는 직업이 학예사이고, 저자처럼 미술 평론을 전공해도 좋을 것 같다.
박종호씨처럼 진로를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고...
하여튼 나는 영원한 딜레탕트가 운명인 것 같다.
현대 미술에 대해 궁금하다면 조각가가 쓴 유럽 현대 미술 전시회 관람기인 <그림 없는 미술관> 도 추천한다.
실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이 본 날카로운 감식안과 미의식이 돋보이는 책으로, 사진이 많아 볼거리가 화려한 이 책과는 다르게 정말 글자 뿐이지만 현대 미술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한다.
이주헌씨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이 분이 책을 너무 많이 내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만큼 글을 잘 쓰는 분도 드물다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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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길 차마고도 : 극장판 SE (2DISC)
서용하 외 감독, 이규화 목소리 / 엔터라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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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차마고도 전시회를 보고 처음으로 이 말의 뜻을 알게 됐다. 
DVD는 꽤 유명했던 것 같은데 왠지 안 끌려 외면하고 있던 터에 마침 전시회가 열렸길래 둘러 보고 도록을 구입해서 나왔다.
그런데 이 도록을 분실해서 제대로 못 본 게 아쉬웠는데 도서관에서 이 dvd 가 대출이 되는 거다.
반가운 마음에 빌려서 보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치마고도인 줄 알고 티벳어인가, 이랬다.
알고 봤더니 차와 말이 다니는 험한 길이라는 교역로를 뜻하는 말이었다.
실크로드처럼 말이다.
전시회에서서는 티벳의 문화나 분위기가 너무 낯설어 흔히 언론에서 접하는 라싸 궁전만이 전부가 아니다는 걸 느꼈는데 이 영상물을 보니 문화의 다양함에 새삼 놀랬다.
이렇게 험난한 곳에도 인간이 살고 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티벳 남자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형제끼리 아내를 공유하다는 말이 무척 슬펐다.
해설하는 사람이 말했으면 일종의 편견이다, 여성차별, 뭐 이런 느낌이 들었을텐데 인터뷰한 사람이 직접 그 사정을 설명하니까 마음이 아팠다.
그러고 보면 종족 번식의 욕구는 본능적인 것이고 한 남자에 한 여자도 어찌 보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그 남자의 말로는 형제 중 한 명이 장사를 떠나면 다른 형제는 남아서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아내를 공유하면 믿을 수 있고 가계에도 큰 절약이 된다고 했다.
삼형제가 한 아내를 갖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페미니즘에 상당히 경도됐는데 나이가 들수록 한 사회가 발전해 오면서 가지게 된 여러 제도들에 대해 좀 더 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슬람의 여성차별도 언젠가는 이렇게 이해할 날이 오려나? 

말을 타고 길을 떠나는 과정은 정말 눈물겹고 또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먼 옛날 길이 없을 때 산을 타고 강을 건너 이렇게도 먼 여정을 말에 의존해 물건을 운반했던 사람들.
비록 시대의 발전상에 뒤처진 사람들이 되고 말았지만 이 사람들이 있었기에 교통이 불편한 시절에도 교역이 이루어지고 오늘날 발전된 사회의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말을 줄에 묶어 강을 건너는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그 험한 산길을 대체 어떻게 건널 생각을 했을까?
마방들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제 신작로가 생기고 여기저기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장면을 멍하게 쳐다 보는 마지막 마방들.
그들은 더 이상 말을 타고 곡식과 차를 운반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제 마방들은 트럭 운전수로 취직해야 할까?
선조들로부터 배운 기술을 더 이상 써먹지 못하게 된 마지막 세대.
사라져 버린 산길을 멍하게 쳐다 보는 마방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잊혀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하고 슬픈 일인지. 

 다음은 티벳 불교도의 오체투지 순례길이었다.
기독교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과 무신론에 경도된 요즘의 심정 때문인지 순례자들의 경건함 보다는 종교가 갖는 억압성에 더 먼저 눈길이 갔다.
활불이라는 사람의 축복을 받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정작 그 활불은 자동차 타고 산마을에 와서 한 시간 만에 휙 가버리는데 마을 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되는 양 모여서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냥 괜히 화가 났다.
종교가 권력의 모습을 띄면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기제로 느껴진다.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의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에는 감동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오체투지라는 수행법과 교리가 과연 얼마나 인간에게 의미가 있을지 회의가 든다.
중세 기독교도들도 죄를 씻는다면서 스스로를 채찍질 했다.
육체에 대한 혹사, 고행, 멸시.
오체투지 하는 신도들의 수레를 끄는 노인이 숨이 가빠 계속 헉헉대는데 정말로 죽음을 무릅쓰고 그 먼 길을 떠나야 종교적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답답했다.
아들을 잃은 가족이 순례의 길을 떠나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는 말은 감동적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평안을 얻는 것 이상의 종교적 강제는 정말로 혐오스럽고 그것을 마치 구원 운운하면서 도그마로 휘두르는 이른바 성직자들의 모습은 더더욱 역겹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문화가 있고 여러 가치관이 존재하므로 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편견에서 벗어나야 함을 새삼 느꼈다.
티벳 문화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생긴다.
관련 서적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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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댄스 2부 - 그림자와 춤추는 공백지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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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와 그의 에세이를 워낙 재밌게 읽은 나로서는 솔직히 이 책은 실망스럽다.
아마도 내가 이런 비현실적인 설정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이 생각난다.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죽음, 방 안에 잘 모셔진 여섯 구의 백골... 익숙치 않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나 하루키 좋아하는 거 맞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
1권에서는 고혼다라고 번역하더니 2권에서는 느닷없이 고탄다로 바뀌는 건 또 뭐냐.
번역 어설프다.
개정판으로 봤으면 좀 나았으려나?
아니면 양사나이를 찾는 앞권을 미리 읽었어야 연결이 되려나.  

다만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이런 위안은 받는다.
그의 주인공들은 죄다 고독하고 도시에서 혼자 살아간다.
그러나 많이 외로워 하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지키면서 쿨하게 산다.
남들과 엮이지 않고 다른 이의 호의에 기대지 않고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감정의 벽을 친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고립되지 않는다. 
나는 사람과의 그 적당한 거리감이 좋다.
한국처럼 가족주의, 온정주의, 지연, 학연 등으로 엮인 나라에서 하루키가 보여주는 인간 군상은 어쩐지 상쾌하고 가벼운 느낌이 든다.
왠지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황량한 도시에 혼자 버려져 있어도 그다지 외롭지가 않다.
마치 내가 쿨한 사람이 된 것 같고, 원래 인생은 그런 거야,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아, 이렇게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요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독신 남자가 말이다.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면 나는 주구장창 커피만 마시는 독신 여성이 등장할 것 같다. 

잘 생긴 남자, 배우 고혼다의 자살은 다소 충격이었다.
앞부분 설명에서 고혼다가 키키의 살해자라고 나오고, 뒷쪽으로 가면 국제 콜걸 조직이 등장하길래 난 무슨 스릴러인 줄 알았네.
소설 분위기로 봤을 때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지.
고혼다는 일종의 정신분열증 같다.
현실과 꿈의 세계가 오락가락 하고 인격이 순간순간 변하는 남자.
어쩌면 정말로 연예계를 떠났어야 죽음을 혹은 살인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혼다가 자동차를 몰고 바다로 뛰어 들어간 걸 보면서 자살한 연예인들도 그런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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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미스테리 - [초특가판]
기타 (DVD)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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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런 기록물이 있을 줄이야...
아빠가 추천해 준 DVD 목록 중 하나인데 평소 좋아하던 화가라 아무 생각없이 틀었다가 형식에 깜짝 놀랬다.
설명없이 계속 피카소의 그림을 창작 과정부터 쭉 보여준다.
그리고 놀랍게도 피카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워낙 오래 살았으니 20세기 후반부에도 그의 모습을 당연히 볼 수 있었겠지만 그 명성이 너무 대단해 굉장히 오래 전 사람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책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사람이 붓을 들고 캔버스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너무 신비로워 한참을 멍하게 들여다 봤다.
어쩜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다 했을까.
56년 깐느 영화제 특별상 수상작이다.
천재 음악가가 어떻게 음악을 만들었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천재 화가는 그 손끝을 보면 된다는 첫 멘트가 인상적이다.
대체 무슨 궤변인가 했더니 놀랍게도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 준다.
존 버거의 책에서 봤던 미녀 앞의 난쟁이 그림이 있어 반가웠다.
책에서는 흑백 도판으로만 봤는데 색이 칠해진 원본은 훨씬 매력적이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여백과 색감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다 보니, 안 돼, 그만, 그걸로도 충분해 자꾸 이런 소리가 나왔다.
동양화 같으면 여백으로 남겨 뒀을 것 같은데 계속 덧칠하고 형태를 채워 넣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래서 더 강렬하고 입체적인 느낌을 주지만.
인물을 그릴 때도 단순히 한 번에 쭉 그리는데 아니라 일단 정교하게 데생을 한 다음에 두꺼운 붓으로 형태를 따라 그리는 걸 보고 감탄했다.
역시 쉬워 보이는 그림도 쓱 대충 문지른 게 아니었다.
작업 과정을 보여 주니까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그 색감!
그리고 기발한 구상과 배치!
어쩌면 현대의 천재 화가란 바로 그 절묘한 공간 구성과 색감에 있지 않나 싶다.
실제와 똑같은 그림은 너무 오랫동안 봐 와서 이제 대중들은 시시해진 거다.
미의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신선한 뭔가를 원하는 거다.
그리는 과정을 보면서 작품의 창조 과정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카메라가 도는데도 몇 시간 만에 뚝딱 하고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 속도감에 깜짝 놀랬다.
무엇보다 실물의 피카소를 직접 본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나는 피카소가 90이 넘게 장수하고 죽기 직전까지 명성을 놓치지 않은 점을, 말하자면 그 엄청난 세속적 성공 때문에 화가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드는 생각은 피카소처럼 강렬하고 자극적인 색감과 구도의 그런 스타일을 내가 선호하는 것 같다.
렘브란트의 명상적 그림 보다는 루벤스나 뒤러의 화려하고 정교한, 역동적인 그림을 선호하듯, 현대 회화에서는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고 무엇보다 강렬한 원색 계열의 색감을 좋아한다.
피카소 그림은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꼭 보고 싶다.
워낙 열정적인 인물이고 장수하다 보니 작품도 엄청날 거다.
참 인상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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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찰 현판 2 한국의 사찰 현판 2
신대현 지음 / 혜안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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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보다 더 재밌다. 
1편에서 기본적인 주제를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2편을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가운데 1/5 정도는 못 읽어서 무척 아쉽다.
워낙 안 알려진 책이라 경기도 사이버 도서관의 상호대출 서비스가 없었다면 못 읽었을 것이다.
경기도 내의 도서관끼리 책을 빌려 주는 시스템인데 정말 놀라운 서비스다. 

여기 소개된 절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절이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관광갈 때 놀이공원 빼면 죄다 이런 절들이다.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곳에 거기 세워진 절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 때문에 또 현대에는 미국의 영향령에 따른 기독교 위세에 눌려 왠지 쇠락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4세기 무렵 고구려 땅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16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사찰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다.
서양 문화를 알려면 기독교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기독교인들이 대체 왜 한국 전통 문화의 근간이 되는 불교에 대해서는 이토록 적대적이고 무지한지 알 수가 없다.
몽골 침입이나 임진왜란 등의 전란이 없었다면 신라, 고려 때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의 절이나 불상들이 훨씬 더 많이 전해질텐데 참으로 아쉽다.
현대사 직전의 전통 왕조가 불교를 배척하는 바람에 고급 문화로 편입하지 못하고 민간에서 근근히 명맥을 이어온 불교의 실정은 이런 현판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저자의 한탄처럼 절의 연혁을 밝히는 현판들이 역사적으로도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을텐데 버려지고 누가 관심도 갖지 않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요즘 일상사 연구가 유행을 타면서 각 문중에 보관하던 고문서들이 빛을 발하는 만큼 절의 현판에도 관심을 가져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지면 좋겠다. 

현판의 어려운 한문을 능숙하게 해석하는 저자의 실력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글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간간히 불교의 쇠락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하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글솜씨와 흥미진진한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보여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내가 한문을 좀 알면 더 재밌게 읽었을텐데 워낙 지식이 전무해 해석한 것만 읽었다.
나중에 절에 가면 이제 현판도 눈여겨 보고 절의 연원을 설명하는 해설문도 꼼꼼히 읽어볼 것이다.
올 초에 놀러갔던 부여의 부소산에 있던 고란사는 고란초가 많이 나서 절 이름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휙 보고 지나갔는데 백제 때부터 있던 절이라니, 좀 유심히 볼 걸 아쉽다.
남해군에 있는 용문사는 원래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지었는데 조선시대 유생들이 남해 향교와 마주보는 자리에 있다고 옮기라고 시위하여 어쩔 수 없이 절을 옮긴 후 다시 지어진 이름이다.
신라 시대 때부터 있어 왔던 천 년 역사의 절을 이제 갓 지어진 향교하고 마주 본다는 이유로 옮기라니, 당시 스님들이 느꼈을 분노와 좌절감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조선 시대 불교가 왕실의 비호를 받고 유생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종교로써 의의를 갖고 있었으므로 그 명맥을 이어가긴 했으나 이런 비화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여주에 있는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묘인 영릉의 원찰로 지정되어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여강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고 오늘날에는 절을 한 바퀴 도는 여강 보트 투어도 하고 있다니 한 번 가 보고 싶다.
예종이 재위 1년만에 죽고 장지가 할아버지 세종대왕의 바로 옆으로 결정되자 어머니 정희왕후가 세조의 뜻을 받들어 시아버지의 묘를 여주로 옮겨 크게 단장하고 그 원찰로 신륵사를 지정했다고 한다.
이 때 절이 크게 중건됐다.
영릉에 갈 때 같이 들려 보고 싶다.
이 사찰에는 조선 후기 세도가인 김병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김병기는 순원왕후의 아버지인 김조순의 손자로, 당시 세도가였던 김좌근의 양자로 들어간다.
스물 아홉에 문과에 급제했는데 보통 장원급제를 해도 종 6품 벼슬에 임명됐던 것에 비해 (얼마나 영광스러웠으면 出六 이라는 명칭까지 있었다고 한다) 첫 벼슬을 사옹원도정이라는 정 3품으로 시작했으니, 그 가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만 하다.
헌종 때 세도 정치를 하던 순원왕후가 고모인데, 불심이 깊으셨는지 김병기에게 명하여 송광사 중건을 후원했다고 한다.
현판에 쓰여진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저자가 해박한 지식으로 역사적 인물과의 관련성을 설명해 주니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순천 송광사는 2000 칸이 넘는 대찰인데 당시 충청도 관찰사였던 홍석주의 현판이 걸려 있다.
송광사는 삼보사찰 중 열 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로 잘 알려졌다.
홍석주는 풍산 홍씨로 혜경궁 홍씨의 일문이고 그 동생 홍현주가 정조의 외동딸인 숙선옹주의 남편 영명위다.
정승을 지내고 학식도 높아 당대의 거물 정치인이었는데 충청도 관찰사로 있을 때 송광사를 방문하고 그 풍경과 절 규모에 감탄하여 현판을 남겼다.
이 때 마중나온 승려가 200명이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절인지 알 만 하다.
현판이 보다 전문적으로 연구된다면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더 많이 발굴되고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김정희가 쓴 현판 이야기도 나온다.
양산 통도사에 화악 스님의 진영도가 있는데 그 분을 모신 곳에 현판을 썼다.
그 중 당나라 어떤 스님이 추워서 목불을 땔감으로 쓴 걸 두고 허상 대신 실제를 구하라는 고사가 등장한다.
어렸을 때는 이 말이 맞다 생각했으나 나이 들어 다시 생각해 보니, 像 도 하나의 실체일 뿐 굳이 허상이네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정말 모든 상징을 다 무의미 하다 배격하고 보이지 않는 실체를 찾아라 하는 것도 말을 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문적 깊이가 깊은 대학자만이 평할 수 있는 말 같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책이고 많이 알려져 우리 절의 내력에 대해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길 바란다.
기왕이면 컬러 사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전통문화로서의 불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대접받고 연구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불교 관련 서적들을 더 많이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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