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드 - Drea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정말 젠장맞을 영화.
보다가 나가 버린 사람들 심정이 이해될 정도임.
토요일 메가박스에 갔는데 죄다 매진이고 시간은 때워야겠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영화인데 왜 이것만 빈 좌석이 있었는지 실감이 난다.
이건 뭐 공포라기 보다도 엽기라고 해야 할 듯,
인간의 공포 심리를 탐구했다고 하는데 평론가 말대로 원작은 어떨지 몰라도 영화는 그저 시각적 끔찍함만 강조해서 유달리 잔인한 장면에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말 비추임.
잔인하고 무서워서 비추가 아니라 영화 자체의 설득력이나 완성도가 떨어짐. 
많이 각색했다고 하니 원작은 어쩐지 읽어 보고 싶기도 하다. 

주인공 퀘이드는 가학적 심리를 즐기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같다.
FBI 프로파일러가 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를 보면 사람을 죽일 때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들이 많이 등장한다.
원한 관계나 분노 감정 없이 생판 모르는 사람을 쾌감 때문에 죽인다면 이건 정말 정신병으로 치부해야 할 듯.
주인공 퀘이드는 어린 시절 부모가 강도에게 도끼로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역시 도끼날에 노출됐는데 어떻게 살아났는지는 안 나온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극단적인 공포감에 어떻게 맞서는지 파고든다.
미인이지만 얼굴을 비롯한 몸 절반에 얼룩이 있는 애비.
그 반점이 적나라하게 대중 앞에 노출됐을 때의 공포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옷을 벗길 수 없는 퀘이드는 대신 그녀의 전라를 그린 후 거기에다 물감을 뿌리는 화면을 교내에 유포시킨다.
결국 애비는 면도날로 얼룩을 벗겨 내려다가 응급실로 실려간다.
문득 노구치 히데요의 전기가 생각난다.
손가락이 사로로 붙어 버린 노구치는 놀림 받는 게 싫어서 면도칼로 가운데를 자르다가 과다 출혈로 죽을 뻔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본 전기라 작가가 적당히 꾸며낸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하여튼 신체적 컴플렉스를 주변 사람들이 놀림의 대상으로 삼을 때 받는 트라우마는 엄청날 것 같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 역시 면도칼로 피부를 벗긴다고 해서 반점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겠지만 자신의 신체적 약점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겠지. 

극단적으로 고기를 혐오하는 셰릴을 골방에 가둔 후 잘 익은 스테이크를 던져 준다.
며칠을 기아에 허덕이자 이미 애벌레가 들끓는 고기를 죄다 먹어 치운다.
그런데 솔직히 썩은 고기는 일단 냄새나 맛이 역겹기 때문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생리적으로 못 받아 들인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실화라기 보다는 영화를 위한 설정 같다.
차라리 정상적인 맛의 고기를 던져 주면 또 모르겠다.
관념적인 설정 같다.
마지막에 남자 친구의 시체를 칼과 함께 골방에 던져준 후 이번에는 며칠이나 버틸지 보자고 하는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코메디 같았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익히지도 않고 사람 시체를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여자가 베어서 먹을 수 있겠는가?
<로드>에서 지구 재난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구워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단지 골방에 며칠 가둔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남자 친구의 시신을 먹는다는 건, 무슨 개도 아니고.
일단 사람 생고기를 쉽게 먹을 수 있겠냐고.
사람이 정말 극단적인 굶주림에 처하면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스스로 대의명분을 위해 굶어 죽는 사람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인간은 관념적인 존재라 극단적인 상황이라 해도 이성적으로 행동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작위적인 설정이라 설득력이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
오히려 <로드>가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심리 상태를 잘 묘사했다고 본다.
이 소설은 영화로 언제쯤 만들어지려나? 

하여튼 주말에 괜히 기분만 완전히 상했고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스티븐이 청력을 손상시킨 사람이라 오해를 받아 피해자의 도끼날에 맞아 죽고 마는데, 이 장면이 상당히 리얼했다.
문득 드는 생각이, 고대의 전투 때도 백병전을 하면 이렇게 잔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끼도 무기로 애용됐으니 이렇게 잔인한 방식으로 상대를 죽였을 것 같다.
멀리서 총으로 쏘는 것과는 고대 전투는 어쩐지 차원이 달랐을 것 같다.
가끔 옛날 소설책을 보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나 인권 의식이 매우 낮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렇게 눈 앞에서 사람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야 했으니 더 거칠고 무자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전쟁에 나가는 남자들이 여성 비하 의식이 훨씬 심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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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51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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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무척 분량이 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쉬운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 준 책이라 정말 편하게 읽었다.
지하철에서는 보통 집중이 잘 안 되서 가벼운 책만 읽게 되는데 이 책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며칠을 다녔다.
역자 후기를 읽어 보니 노인이 며느리의 발을 빠는, 좀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성욕에 관한 소설들을 많이 썼다고 한다.
상당히 에로틱한 걸 좋아하는 작가 같고,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마광수씨였다.
그런데 또 세설은 그런 류의 소설은 전혀 아니라 역자의 말대로 약간 예외적인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사성이 정말 풍부하고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로, 마치 일일연속극을 보는 것처럼 네 자매의 가정 생활과 혼담을 중심으로 어쩌면 이렇게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 저자의 기술 능력에 감탄하는 바다.
특히 간사이 지방의 풍속과 자연, 말투 등을 애정어린 눈으로 묘사하여 실제 일본 사람들이 읽는다면 자기 고장에 대한 애향심이 굉장하게 생길 것 같다.
정작 작가 자신은 도쿄 태생이고 재혼한 아내가 오사카 유명 상인의 딸이었다고 한다.
이 아내에 대한 사랑이 세설을 탄생시킨 게 아닐까 싶다.
젊은 시절 어떤 기생을 좋아했는데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연인이 되버려서, 대신 그 동생과 결혼을 했는데 의외로 동생은 너무 정숙했기 때문에 작가의 미움을 받았고,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수하의 문인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작가는 아내 양도 각서 이런 걸 써서 신문에 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또 나중에는 다시 아내를 돌려 달라고 하고, 하여튼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에로티시즘은 그다지 흥미는 없지만 어쩐지 이런 대가가 쓰는 소설은 천박하지 않고 고상한 맛이 있을 것 같다. 

네 명의 자매 중 가장 현대적이고 과감한 다에코는 신분이 다른 사진사 이타쿠라와 결혼하려고 했으나 뜻밖에도 그가 유양돌기염 수술을 하다가 사망하고 만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화가 났었다.
명백한 의료사고이고 최소한 의사가 도의적인 책임이라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시골 출신의 못배운 부모 때문에 항의 한 번 못하고 오히려 잘못을 숨기려는 의사에게 쫓겨나기까지 한다.
가끔 병의 경과가 나쁜 코스로 갈 수 밖에 없는 경우인데도 소송을 걸어 의사를 죽일 놈 취급하는 경우를 보고 기가 막힐 때도 있지만, 소설 속의 이런 경우를 보면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다에코가 결혼을 한 상태로 이타쿠라가 사고가 났다면 적어도 다에코 집안에서라도 소송을 걸지 않았을까?
하긴 다에코 역시 사산을 하고 원장이 직접 자기 실수였다고 말을 했는데도, 언니 유키코가 오히려 실수를 인정한 원장에게 고맙다고 말을 할 정도니, 1930년대 일본의 현실에서 전문직인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의사가 높은 신분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유키코의 맞선 상대자 중 한 명은 독일에 유학까지 갔다 온 내과 의사이고 제약회사의 중역에 있는데도, 유키코를 높은 신분의 사람으로 생각한다.
일종의 전문직이지 사회적으로 귀족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독일과의 교류가 많은지 유학갔다 온 사람들도 자주 등장하고 독일인 이웃도 나온다.
여자들을 중심의 이야기라 그런지 모르겠으나 의외로 중일전쟁이라 2차 대전 얘기는 많이 나오질 않는다.
다에코는 이타쿠라가 사망한 후 자신을 쫓아다니는 오쿠바타케와 헤어지기 위해 바텐더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것도 혼전에!
사실 유키코의 경우 맞선 상대와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나눌 만큼 내외를 심하게 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다에코의 혼전임신은 나로서도 놀랍다.
그러고 보면 옛날 시대가 배경인 소설에서 지금 정서로는 이해가 안 가는 일도 그 당시로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마다 가치관과 도덕관이 다르기 때문에 시대가 다른 우리가 그 당시 등장인물들을 100%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이 가치가 있는 것은, 이런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고 여전히 감동과 재미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내 다음 세대는 혼전임신이 왜 이슈가 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재밌는 일화들이 있다.
사치코의 딸 에스코가 성홍열에 걸렸는데 무려 40여 일을 집안에서 격리되어 지낸다.
전염병이긴 하지만 요즘에는 딱 하루만 항생제 쓰면 전염력이 사라지고 열만 떨어지면 3~4일 내로 퇴원할 수 있다.
항생제가 보편화 되기 전이라 그런가?
그것도 간호사를 따로 입주시켜 병 간호를 하게 하다니, 인건비가 굉장히 쌌다는 걸 알 수 있다.
식모들도 많이 나온다.
사치코 집안이 몰락한 상인 가문임에도 부리는 사람들이 몇이나 등장한다.
특히 오하루의 경우, 다에코가 이질에 걸려 설사할 때 요강을 버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 대변 처리까지 해 준다.
아프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가족도 아닌 일하는 사람이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게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가정부라기 보다는 몸종 느낌이 든다.
다에코가 이질에 걸려 죽게 생겼는데 수액을 놓지 않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요즘 같으면 이질에 걸릴 위험도 거의 없지만 만약 실제로 이질에 걸렸다면 항생제를 쓰고 당장 병원에 입원해 수액 치료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돈 천 원도 안 하는 수액이 얼마나 많은 탈수 환자를 살리는지, 현대의학에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일본은 꽤 근대화 되고 잘 사는 나라로 나오는데도 환자 치료가 저 정도라면 식민지 치하의 조선 사람들은 과연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았을지 답답하다.
하여튼 잘 살고 볼 일이다. 

유키코는 과연 누구와 결혼을 할지 궁금했는데 뜻밖에도 서자이긴 하지만 화족의 아들과 혼인을 한다.
이것도 참 재밌는 게, 딱 한 번 사진으로 얼굴을 본 후 남자 쪽에서는 이미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사실이다.
요즘 같으면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인데 집안을 미리 조사해서 큰 하자가 없고 사진이 마음에 들면 벌써 맞선을 보기도 전에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하긴 옛날에는 얼굴도 안 보고 시집 갔으니 그나마 본인 의사를 물어 보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책이 시작할 때 서른 셋이었던 유키코가 서른 다섯에 시집을 갔으니, 지금 시대로 봐서도 꽤 나이가 들긴 했다.
그래서 선 보는 사람들이 죄다 애 딸린 상처한 남자들이었나 보다.
심지어 유키코는 전처 자식이 귀여웠으면 좋겠다는 조건까지 미리 내건다.
결혼 상대자인 미마키는 비록 화족의 지위는 계승하지 못했으나 어쨌든 지체 높은 집안 자식이고 미국 유학도 다녀온 엘리트에다가 초혼이니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일정한 직업이 없다는 것.
유키코가 결혼 후에 일어나는 얘기를 후속편으로 써 봐도 참 재밌을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을 찾아 결혼한 다에코가 가장 잘 살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다에코는 양제 기술도 있으니 네 자매 중 제일 다이나믹한 삶을 살 것 같다. 

너무 재밌게 읽은 소설이고 일본 소설에 대한 편견을 바꾸게 했다.
내친 김에 이 작가가 현대어로 번역했다는 겐지 이야기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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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1-16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면서 꼭 일일연속극 보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같은 소감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남겨봅니다.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지 않고 쭉 이어서 대작으로 갔다면 어떨까 아쉬워 하고 있습니다.
 
토스카 [Dts] - 양장본, 할인판
Various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메가박스에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했던 토스카를 관람했다.
영상물로 보는 오페라는 아무래도 현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거기다가 2만원이라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 때문에 매력이 감소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HD 화질과 큰 화면이 주는 시원스런 맛 때문에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최신 DVD 가격도 2만원이면 살 수 있기 때문에, 또 오페라 역시 뒷쪽 좌석을 사면 2만원 대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로 보는 오페라가 이 정도 가격이란 건 비싼 감이 있다.
그렇긴 하지만 집에서 혼자 DVD 보는 것보다는 훨씬 실감이 났고, 항상 싼 좌석만 샀기 때문에 배우들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본 적이 없는데 바로 코앞에서 생생하게 보니까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어떤 영화배우 못지 않게 극에 상당히 집중하면서 나름 역할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바라돗시나 토스카의 아리아에서 멋지게 박수를 쳐쥐 못한 건 아쉽지만 나에게는 오페라를 알게 되는 좋은 계기였다.
그래서 그 여세를 몰아, DVD로 다시 한 번 토스카를 보기로 했다.
지난 번 <사랑의 묘약> 이나 <팔리아치>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덜 유명한 건지 도서관에 비치가 안 됐는데 다행히 <토스카>는 빌릴 수 있었다.
2003년에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영상물이었다.
줄거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지난 번 공연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무대 장치 같은 것도 비교해서 보니까 재밌었다.
사실 아직까지는 가수들의 노래 실력이나 차이점 같은 건 품평할 수준이 못 된다.
귀가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플로리아 토스카는 굉장히 능동적이고 행동하는 여인이다.
이런 게 서양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너무 단순화 시킨 것일 수도 있으나) 동양 여자가 인고하는 삶을 살고 순종하고 여리다면, 서양 여자들은 강렬하고 힘있어 보인다.
남편을 구하러 남장을 하고 감옥으로 찾아간 베토벤의 레오노레도 그렇고 토스카 역시 악당 스카르피아에게 굴복하지 않고 몸을 요구하는 그를 칼로 찔러 죽이고 사랑하는 연인 카바라돗시에게 달려간다.
욕정을 채우기 위해 카바라돗시를 사형장으로 보내고 그녀에게 덤비는 스카르피아에게 토스카는 칼로 복부를 찌르면서 이렇게 외친다.
"이게 바로 토스카의 키스다!"
한마디로 스카르피아는 사람을 잘못 본 거였다.
나중에 스카르피아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공포탄으로 죽이는 척만 한다던 마리오 카바라돗시가 진짜로 죽은 걸 알고 그녀 역시 살인이 발각되어 쫓기게 되자 높은 탑 위에서 떨어지면서 소리친다.
"스카르피아, 하나님 앞에서 보자!"
조금도 망설임 없이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너무나 당당한 그녀, 토스카!
라 보엠에서 폐병에 걸려 가엾게 죽어 간 미미와는 전혀 다른,  비록 둘 다 죽는다는 비극적 설정은 똑같지만, 강인하고 다부진 면모를 보여 준 캐릭터다.
제일 안타까웠던 노래는 역시 카바라돗시가 죽기 전 연인 토스카를 지상에 남겨 두고 가면서 부른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이다.
무슨 내용인지 가사를 전혀 모를 때도 멜로디가 좋아 혼자 흥얼거렸던 노래인데 내용을 알고 보니 더더욱 안타깝고 눈물이 난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이 세상에 그대를 남겨 두고 가려니 눈물이 나는구나.
별은 빛나고 있었고 대지는 향기로웠다네.
문소리가 나면서 그녀의 발소리가 들렸지.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베일을 벗기면서 그녀는 미모를 드러냈지, 그녀와의 키스...
그 사랑의 꿈이 이제 영원히 사라지는구나...
그리고 나는 절망에 죽어가네...그렇게 인생을 사랑했던 적이 없었네...
죽음을 앞두고 남길 것이라고는 오직 반지 하나 뿐인 카바라돗시는 토스카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죽음의 순간을 앞둔 그 심정이 얼마나 절절하고 고통스럽고 또 괴로웠을까.
피하고 싶으나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그런 마지막 순간.
우리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절대적인 운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의 인위적인 죽음은 더욱 안타깝다. 

스카르피아를 죽인 토스카는 죽기 전에 그가 써 준 통행증을 가지고 신이 나서 처형장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마리오에게 거짓으로 죽는 거라고, 총을 쏘고 나면 우리는 도망가면 된다고 들떠서 말한다.
죽음 직전, 이 세상에서의 아주 잠깐의 희망의 순간들.
곧 채 몇 분도 안 되서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날 이 가엾은 연인들의 안타까운 희망과 행복의 순간들.
자신들의 운명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이 행복의 순간이 안타까운 것 같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왜 이렇게 비극적인지.
라 보엠에서 미미가 죽을 때도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는데.
가난해서 병 걸려 죽는 거라 더 안타까웠었다.
흠... 아무래도 난 <피가로의 결혼> 같은 오페라 부파가 더 맘이 편하네.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했던 오페라는 가수들이 하나같이 너무 뚱뚱해 처음에는 몰입이 잘 안 됐는데 이번 영상물의 배우들은그래도 비쥬얼이 좀 낫다.
뚱뚱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말이 생각나고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영상물이다 보니 극에 몰입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배우들의 비주얼도 필요한 것 같다.
이 영상물의 카바라돗시 역을 맡은 테너는 일단 생긴 건 더 멋지다.
언제쯤 인물이 아닌 노래를 평가할 날이 올까.
하여튼 어렵게만 느껴졌던 오페라가 생각보다 재밌고 또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임을 요즘에 느끼고 있다.
메가박스에서 하는 오페라 상영물은 가능하면 매달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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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 상 Mr. Know 세계문학 48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너무너무 재밌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책.
일본 소설은 왠지 조잡스러운 느낌이 들어 (이를테면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잘 안 읽게 되는데 일단 표지가 예쁘고, 일본의 대표적 작가라고 하고, 리뷰가 좋아서 빌리게 됐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간만에 정말 몰두해서 빠져들고 있다.
사실 분량이 꽤 되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작가의 말대로 쉬운 문체로 되어 있으면서도 격이 떨어지지 않는 정말 괜찮은 소설이다.
마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을 보는 것 같다.
그 책은 19세기 영국 상류층 관습에 너무 무지해 공감이 영 안 됐는데 오히려 <세설>은 가까운 일본의 풍속을 그린 소설이라 그런지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간혹 반도의 부인들 이야기가 나와 식민 치하의 조선 백성들이 생각나 소설 내용과는 상관없이 콧망울이 시큰해질 때도 있긴 했다.
괜한 비교가 되곤 했다.
20세기 초의 일본은 이렇게 잘 사는데, 이렇게 여유있게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온갖 문화적 기술적 혜택을 누리고 사는데 한반도의 조선인들은 식민 치하의 통치에 시달리며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가.
소설에서 딱히 식민지 현실을 언급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 등장하는 반도인들 이야기가, 부유한 상류층인 주인공들의 삶과 비교되어 괜시리 마음이 아팠다.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고 늘 생각하는데도 이런 부분에서 울컥 한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 반발심 이런 건 없는데도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뒤쳐져서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 우리 조상들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광수 등이 쓴 신소설을 읽어보면 20세기 초의 우리 옛 모습이 이렇게 잘 그려졌을까?
워낙 소설을 안 읽는 편이라 우리 근대 소설도 거의 못 봤는데 문득 <무정>이나 <유정> 같은 소설들이 보고 싶어진다.
풍속소설이 이렇게도 재밌는지 처음 알았다.
얼마 전에 읽은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정말 힘들게 의무감으로 읽었는데, 이 소설은 일반 대중에게 전혀 어렵지 않으면서도 소설의 품격은 매우 고상하다.
쉬운 문체로도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같은 소설도 꼭 읽어 봐야겠다. 

쓰루코와 사치코, 유키코, 다에코 네 자매의 이야기가 밑의 두 자매의 혼담과 맞물려 펼쳐진다.
특이한 것은 양자 제도였다.
딸만 넷인 아버지는 큰 사위와 작은 사위를 양자로 들여 가문을 이어간다.
양자라고 하면 성을 바꾸는 것일텐데 사위들이 그것도 두 명이나 양자로 간다는 게 신선한 풍속이었다.
몰락한 상류층으로 나오긴 하지만 가문의 전통이나 품격은 가지고 있는 이 집안의 네 자매들의 생활방식이 참 흥미진진하다.
마치 사라져 버린 우리 양반 가문을 보는 느낌이랄까?
집에 애 보는 식모와 밥 하는 하인들이 따로 있는 것도 신기하고 신분제가 폐쇄됐는데도 여전히 도련님, 아가씨 하는 계급 시대의 유산도 보인다.
가부키가 굉장히 중요한 문화 행사로 나온다.
막내 다에코가 가장 다이나믹한 여성인데, 인형 제작에 흥미가 있고 전통춤도 잘 추며, 양재일로 직업까지 가지려고 한다.
직업부인이 되는 것은 가난한 여자들이나 하는 천박한 일로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시대를 느낄 수가 있었다.
다에코는 놀랍게도 신분이 다른 사진사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
원래 그녀는 비슷한 신분의 오쿠바타케와 도망을 쳐서 지역신문에 날 정도였는데, 오쿠바타케네 집 하인이었던 이타쿠라를 좋아하게 된다.
물난리가 났을 때 사진사였던 이타쿠라가 그녀를 구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게이샤와의 사이에서 애까지 낳은 난봉꾼에다가 멋만 부릴 줄 알지 생활 능력은 없는 오쿠바타게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미국까지 가서 사진 기술을 배워 온 믿음직한 이타쿠라와 결혼하려고 결심하는 모습에서 다에코의 현대성을 느낀다.
언니 유키고는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가문에 걸맞는 남자를 찾기 위해 아직도 선을 보러 다니는데 동생 다에코는 직접 인형 제작으로 전시회도 열고 돈도 벌고 심지어 프랑스까지 양재 기술을 배우러 갈 계획도 세울 만큼 대찬 구석이 있다.
두 자매의 가치관과 행동들이 비교되어 무척 흥미롭다.
뜻밖에도 신분의 차를 넘어 결혼을 결심한 다에코 때문에 집안은 난리가 나는데서 1권이 끝난다.
지하철에서 조금씩 읽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 내릴 곳을 잊곤 한다.
잠깐 본 하권의 첫 장에서 이타쿠라가 유양돌기염 수술을 하다가 정신을 잃는 것으로 나와 급하게 다에코가 도쿄를 떠나는 걸로 되어 있던데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유키코는 좋은 혼처를 찾을 수 있을까?
유산했던 사치코는 다시 애를 가질 수 있을까? 
일일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굉장히 재밌을 것 같다. 

더 인상깊었던 것은 오사카의 지방 문화였다.
여기 나온 간사이 지방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지만 수도 도쿄와는 전혀 다른 지역색이 강한 곳 같다.
모든 게 수도 중심인 나라에 살다 보니, 지방색 강한 이런 문화는 낯설고 신선해 보인다.
자매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간사이 지방을 굉장히 사랑하고 저자 역시 애정어린 눈으로 간사이 문화를 기술한다.
남자면서도 어쩜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를 오밀조밀하게 풀어 쓰는지.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보다는 훨씬 더 재밌게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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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의 그림과 생애
야콥 부르크하르트 지음, 최승규 옮김 / 한명출판사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좋아하는 화가, 루벤스.
뒤러처럼 정교하고 세밀한 화풍도 좋지만, 루벤스처럼 격정적이고 화려한 색감도 정말 좋아한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렘브란트의 명상적이고 고요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바로크의 대가.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서 읽게 됐다.
계획에 없던 책들은 한 번 지나치면 그만이기 때문에 벌써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당장 빌리게 됐다.
그러고 보니 역자의 서문대로 루벤스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은 못 본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번역이 실망스럽다.
앞에 역자 서문은 거창하게 써놓고서 어쩌면 이렇게 성의없는 번역을 했는지...
맞춤법이 틀린 건 기본이고 고유명사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용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직역했다는 느낌을 받아 독자에게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mannerist 를 만네리스트, 이런 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럴 거면 원어를 써 주던가.
그리고 수많은 그림 제목들이 등장하는데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같은 책에서 다른 말로 번역이 되어 있다.
적어도 도판에 실린 그림들이라도 영어 제목을 써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에 실리지 않은 그림들이 워낙 많아서 구글에서 좀 찾아볼까 했는데 중구난방식의 한글 제목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좋아하는 화가이고 루벤스의 그림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는데 아쉽기 짝이 없다.
사실 이 책의 성격도 독자에게 썩 친절하지는 않다.
본격적인 학술서라기 보다는 서문에 밝힌대로 좋아하는 화가에 대한 담론 수준이기 때문에 화가의 그림에 대한 저자의 감상들을 특별한 차례없이 편하게 언급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저자 역시 생전에 출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 저자는 본격적인 미술사학자라기 보다는 르네상스 시대 전문가였다고 한다.
제일 문제는 엄청나게 많은 제목들이 등장하는데 (루벤스의 중요한 그림들은 거의 다 나오는 것 같다) 도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떤 그림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데 그 그림이 뭔지를 모르니 구도나 명암 처리 등을 순전히 말로 상상해야 한다.
요즘은 인터넷이 워낙 발달해서 제대로 된 원어 제목만 첨가를 해 줬더라도 검색해서 보면 됐을텐데 역자의 성의가 참 아쉽다.
품절이 된 것 같은데 다른 출판사에서 꼼꼼한 역자가 도판 추가를 좀 더 많이 해서 재출간 하면 어떨까 싶다.
어차피 루벤스에 대한 연구서가 많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 스타일과 시대상황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수직 구도나 이등변 삼각형 구도 같은 건 지금까지 미술 서적들을 읽으면서 한번도 꼼꼼하게 본 적이 없었는데 저자의 세밀한 설명을 들으면서 비로소 구도에 눈을 뜬 느낌이 든다.
루벤스가 추구하고자 했던 대칭 구도, 명암대비, 빛 처리 등을 보면 정말 서술화의 대가구나 싶다.
표지에도 나오며는 그림이지만 <레우키포스 딸의 납치> 를 보면 제우스의 두 아들들에게 납치당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어쩌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역동적으로 잘 잡아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두 여인은 서로 다른 부위를 보여줌으로써 완벽한 대칭구도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다른 책에서도 많이 소개된 루벤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역시 많이 알려진 첫번째 아내와의 초상화가 있는데 뜻밖에도 이 그림은 루벤스의 작품이 아니라 동료인 코르넬리스 데 보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검색을 해 보니 루벤스 작품으로 나오는데 말이다.
도판이 더 밝은 톤으로 실려 훨씬 매혹적이다.
젊은 시절의 잘 나가던 최고의 예술가와, 그의 아름다운 첫번째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의 호화로운 옷장식이 인상적이다.
만년의 자화상도 무척 인상깊다. 

 

대가다운 아우라가 느껴지고 자화상이라 그런지 렘브란트의 자화상처럼 어딘지 모르게 엄숙하고 자신의 예술혼을 경건하게 표현한 느낌이 든다.
오른손의 장갑은 통풍이 있어 가리기 위해 낀 것이라고 한다.
말년에 이 통풍이 심장으로까지 퍼져 사망했다고 하는데 의학적인 설명은 아닌 것 같아 나중에 찾아 볼 생각이다. 
그의 축복받은 생을 서술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번째 아내 헬레나 푸르망의 초상화도 매혹적이다. 

 

50대의 나이에 17세의 헬레나 푸르망과 결혼한 이 복많은 화가는, 첫 아내의 유언 때문에 헨드리케와 정식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동거 상태로 지내야 했던 불운한 렘브란트와는 달리, 영국의 찰스 1세에게 기사 작위도 받고 외교관으로 종횡무진 하면서 재산도 지키고 어린 아내와의 사이엑 아들딸도 낳아 행복한 말년을 보낸다.
렘브란트의 불운한 말년과 비교하는 건 어쩐지 점잖지 못한 호사가들의 행동같아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적어도 두 화가의 극명한 화풍의 차이는 삶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무엇보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루벤스는 말년으로 갈수록 원숙미가 더해져 창작력의 후퇴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티치아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도 70대의 노년에 그린 자화상과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같은 후기작들을 보면서 역시 대가답다,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원숙해지는구나 감탄했었는데 루벤스 역시 그렇다.
잘 알려진 마리 드 메디치의 연작은 워낙 구성이 다이나믹하고 화려해서 약간은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데 덕분에 이 유명한 여인은 미술사에서도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듯 하다. 

 

루벤스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육체가 풍만하고 살결이 곱고 금발 머리다.
역동적인 제스쳐에 걸맞는 풍만한 몸매를 자랑한다.
그러고 보니 데이빗 호크니가 쓴 <명화의 비밀>을 보면 앵그르 등은 도구를 이용해 정교한 드로잉을 했던 반면 루벤스는 도구의 도움없이 순전히 자신의 눈에 의존해 인물을 묘사했다고 한다.
그 책을 보고 나서 더욱 루벤스를 좋아하게 됐었던 기억이 난다. 

이 놀라운 앤트로프의 화가는 정말 많은 작품들을 남겼고 63세에 사망하긴 했지만 당시로 보면 아주 이른 죽음은 아니었으며 외교관 등으로 여러 왕실 사람들과 교제하는 유명인사였고 가정사적으로도 행복했으니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역동적이고 삶의 의지가 넘치는 힘있는 분위기는 축복받은 삶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과장되고 격정적인 양식인 바로크 시대와 작가의 스타일이 맞아 떨어져 최고의 에너지를 발산한 게 아니었을까.
이 책은 나에게는 다소 어려웠던지라 100% 다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루벤스의 작품들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저자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찬찬히 하나의 작품을 설명해 주는 책들을 좀 더 읽어 본 다음에 다시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다.
어쨌든 바로크의 위대한 화가의 작품 세계를 밀도있게 보여 준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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