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등정의 발자취 - 개정판
제이콥 브로노우스키 지음, 김은국. 김현숙 옮김, 송상용 감수 / 바다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는 걸 알라딘을 통해 알게 됐다.
가격도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고 보급판으로 나온 건가?
서점에서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아마도 한 4년 전인 것 같다.
분명히 읽고 감상문도 썼던 것 같은데 그 때는 알라딘 서재를 이용하지 않았는지 내 리뷰를 찾아보니까 안 올라와 있다.
한창 반신욕에 맛을 들일 때라 욕조에 들어가 물 튈까 조심조심 하면서 이 두꺼운 책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다시 한 번 꼭 읽어야지, 너무 좋은 책이다 감탄했던 터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엊그제 <Discovery>에서 인간 진화에 대한 글을 읽고 흥미가 생겨 도서관에서 빌리게 됐다.
그런데 역시 두 번째는 감동이 옅어지는 모양이다.
굉장히 과학적이고 인간 진보의 역사를 연대기별로 잘 서술한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열어보니 상당히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저자 서문에서 인간의 창의적인 정신, 도전정신, 상상력 등에 대한 것을 밝히고 싶다고 분명히 기술했고 TV에 방송됐다는 점이 쉽게 접근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깊이가 얕다는 느낌도 줬다.
대신 사진이 무척 화려하다.
맨 앞에 나오는 인간 진화에 관한 내용도 70년대 출판이라는 한계를 보여주듯, 업데이트가 부족하다.
다소 관념적이고 사변적이라는 느낌 때문에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다.
다윈의 그 유명한 책, The Descent of Man, 인간의 기원을 패러디 하여 The Ascent of Man 인간의 등정, 어디까지 올라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는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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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을 찾아서 - 한국의 사상과 문화의 뿌리 이상의 도서관 1
임형택 지음 / 한길사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오래 전에 보관함에 담아뒀던 책인데 드디어 읽게 됐다.
마이리스트에 보고 싶은 책을 정리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알라딘 서재에 늘 고맙다.
잊고 있다가도 어느날 문득 리스트를 들여다 보면 좋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반갑다.
이 책 역시 한참만에 읽게 된 책인데 안 읽고 지나쳤으면 정말 서운했을 뻔 하다.
700 페이지가 넘는 상당히 두꺼운 책이라 한번에 쭉 읽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한자 부분은 넘어가면서 발췌독을 했더니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일이 워낙 많기 때문에 솔직히 지금은 정독을 어느 정도는 포기했다.
옛날에는 서문 한 글자라도 빼먹으면 책을 읽지 않은 기분이 들어 정말 책날개 광고까지 꼼꼼하게 다 읽었지만, 지금은 삶이 워낙 바쁘다 보니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대한다.
여러 방면에 호기심이 많고 다양한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부족한 시간과 맞물려 이제는 발췌독을 해도 마음이 편하고 그 책이 주는 지적 만족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됐다.
물론 아쉽긴 하다.
100% 인 책의 매력을 70% 정도만 느낀다고 할까?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삶의 많은 부분들을 포기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한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문과를 가서 공무원 시험을 봤더라면 훨씬 적성에 맞았을텐데 고등학교 때는 한자가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복잡한 법전이나 행정법 읽는 시험 공부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자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부터일 것이다.
한자로 표기를 하면 뜻이 정확해지고 그 어원을 알 수 있어서 단어의 의미가 더욱 풍부해진다.
한자가 주는 조형미도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져 서예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최소한 생활한자라도 읽고 쓸 수 있게 되자고 옥편을 열심히 찾긴 하지만 사실 일상생활에서 크게 쓸 일이 없어서인지 잘 늘지가 않는다.
그래도 책을 보면서 익히게 되는 소득이 크다.
특히 이런 고전을 볼 때 도움을 많이 받는다.
한문에 좀 밝다면 한시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텐데 그 점이 참 아쉽다.
한글로 풀어써 놓은 걸로는 그 시가 주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기 어려운 듯 하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서구화로 생활이 바뀌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기억 속으로 사그러졌고 특히 한문학은 더더욱 찬밥 신세가 된 듯 해 안타깝다.
저자 역시 우리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고문학이 골동품 등에 비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함을 애닯아 하면서 옛 고전을 발굴해 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렇게도 많은 책들이 전해져 내려왔나 싶을 만큼 정말 다양한 고전들이 많았다.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라 생소하고 낯선 인물들과 제목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고 보면 조선왕조는 의궤와 실록으로 대표될 만큼 기록문화에 한 획을 그은 시대였는데 그 안에서 수많은 저작들이 꽃피웠음은 너무 당연하다.
한문학이 더이상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지나간 것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문학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본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고전들은 보다 활발하게 연구가 되어야 하고, 또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을 읽으면서 늘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었던 사대부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받게 됐다.
비록 사변적이고 교조적으로 변해 결국 새 시대의 사상으로 변모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저 당파싸움이나 일삼는 명분론자들로 치부하기에는 사대부들의 교양과 학식, 마음가짐, 도덕성 등이 너무나 크고 적어도 전통사회에서는 국난을 극복하고 왕조를 유지할 만큼 역량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탄력적 대응이 매우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면 관리가 곧 학자였고, 독서와 자기수양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시대이니 어찌보면 상당히 이상화 된 사회가 아니었을까?
비록 그것이 실제 생활이 생산력이나 사민평등 의식 등과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이론적으로는 매우 이상적으로 보인다. 

다산 정약용만 문집을 많이 남긴 줄 알았는데 글깨나 한다는 학자들은 개인 문집을 꽤 많이 발간했던 것 같다.
후손들이 글을 모아 사후에 출간한 책들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후기로 갈수록 영남 남인들이 정권에서 배제되면서 과거의 꿈을 접고 학문에 진력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율곡이 구도장원을 했다고 해서 과거 합격하기가 쉬운 줄 알았더니 정말 이런 바늘 구멍이 없다.
일단 3년에 한 번 열린다는 것도 그렇고 (물론 이런저런 명목으로 많은 과거가 치뤄졌지만) 양반 사대부는 모두다 과거를 준비하는데 합격자는 단 서른 세 명이었으니 거기다가 후대로 올수록 서울의 권문세가 자제들만 합격하는 실정이었으니 얼마나 좁은 문이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임금이 내린 어사화를 꽂고 거리를 삼일 동안 유가한다는 전통이 왜 생겼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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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2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9-12-2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적성에 안 맞게 그 쪽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ㅇ님도 공대?? 역시 너무 뜻밖이네요^^
 
김정희 - 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정말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이상하게 우선순위가 밀렸던 책인데 드디어 빌렸다.
너무 신화화 돼있지 않나 이런 거부감 때문에 처음에는 일부러 관심을 안 가지려고 했었다.
그런데 책의 저자 유홍준씨가 쓴 <화인열전>을 읽고 나서 우리 옛 그림과 문인화에 대한 관심이 확 생겼고 필자에 대한 신뢰감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됐다.
얼핏 생각나는 것이, 원래 세 권으로 된 완당평전이었는데 오류가 있어 과오표가 따로 나오고 결국은 절판시켰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세 권을 한 권으로 줄였으니 일단 접하기는 쉬웠다.
또 처음에 겁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책의 서술이 무척 평이하다.
전문적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좋아하는 사람의 전기를 썼다고 할까?
말그대로 편하게 한 사람의 일생을 조망하는 평전이라고 생각된다.
완당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지극한 존경과 사랑을 뛰어넘어 적절한 비판까지 가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른 것 같다.
그래서 입체적으로 완당 선생의 일생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비평 같은 건 내 수준에서는 모르겠고, 다만 조선 후기의 위대한 서예가의 일생을 이렇게 대중적인 책으로 돌아볼 수 있어서 기쁘다.
위인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조선시대 하면 성리학이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된 어찌 보면 교조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위인들의 업적은 이순신 같은 무관이 아닌 이상 학문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완당은 학문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감식안과 글씨, 그림으로 한 시대를 아우르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그 점에서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김홍도나 정선 등이 조선 회화사에 길이 남을 화가이면서도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역시 한 수 아래로 치부됐던 느낌이, 김정희에게서는 느껴지지가 않는다.
노론 명문대가의 자손이었고 같은 처지였던 박지원과는 또다르게 대과에 급제해 참판 벼슬까지 했던 고위 관료였기 때문일까?
혹은 금석학이나 고증학이 실제 사대부들 사이에서 주류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까?
어쩐지 이 분은 비주류였던 조선 시대 예술가들과는 다르게 주류로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북학파와는 또다른 느낌이 든다. 

김정희의 집안을 살펴보면, 정순왕후와 같은 경주김씨 일문으로 증조부가 영조의 사위되는 월성위 김한신이다.
월성위라면 영조가 사도세자와 더불어 매우 미워했다는 정빈 이씨 소생 화순옹주의 부마가 아닌가.
얼마나 싫어했으면 남편이 죽고 나자 열흘간 곡기를 끊고 순절했는데도 아비 먼저 간 효를 모르는 자식이라고 정려비도 세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이 가엾은 옹주의 정려비는 조카 정조가 세워줬다.
자식도 없이 죽은 월성위의 봉사손이 바로 김정희다.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은 벼슬이 육판서와 지방 관찰사 등을 두루 거쳤을만큼 잘 나가는 고위관료였다.
이 아버지를 따라 스물 네 살의 김정희는 연행길에 오른다.
이 곳에서 약 40일간 머무르면서 당대의 석학들과 교분을 맺는데 그의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연경행이었으나 이 때의 인연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고 장차 학문의 방향을 잡는데 큰 기여를 한다.
연경에서 만난 가장 중요한 이가 옹방장과 완원이다.
옹방장은 사고전서 편찬에도 관여했던 당대의 학자이자 최고의 감식안을 가진 컬렉터로 까마득하게 어린 이국의 청년을 애지중지 하여 평생 교류하였고 스승의 호인 담계를 보배롭게 받드는 집이라는 뜻으로 보담재라는 당호를 사용했을 정도로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옹방강의 손자 옹인달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김정희를 의부로까지 생각했다고 하니 그들의 교류가 얼마나 지극했는지 알 수 있다.
완원은 김정희에게 완당이라는 호를 하사한 학자이다.
김정희는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청나라의 최신 학문를 접하고 또 조선의 비문이나 고적들을 전해 준다.
아직 발간도 되지 않는 책을 먼 제주도 땅에 유배되어 있으면서도 사신행에 부쳐 달라고 부탁할만큼 김정희의 학문에 대한 욕심은 대단했다고 한다.
전화도 없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보니 이들의 교류는 편지를 통해서 인편으로 전해졌는데 이를 매개한 이가 그의 제자들인 역관들이다.
특히 우선 이상적의 경우는 평생 열 세 번이나 연경행을 다니면서 스승의 편지를 전하고 필요한 책과 비문 등을 가져다 줬다.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의 지극한 정성에 감복하여 그려준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세한도이다.
세한도를 받자 이상적은 다음 행차 때 중국으로 가져가 당대 청나라 학자들의 찬을 받아와 첩본으로 엮었다고 하니, 김정희의 명성이 과연 청나라에도 자자했구나 싶다. 

사실 저자는 입에 침이 마르게 그의 서체를 극찬하지만 글씨에 대해 문외한인 내 입장에서는 어떤 점이 특별한 것인지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렵다.
다만 매우 개성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저자도 김정희 서체의 특성을 怪 라고 정의했다.
개성적이고 도발적이며 조형미가 느껴지는 글씨, 자유분방 하지만 그 속에서 안정감이 있고 품격이 높은 글씨, 전형적이지 않고 멋스러운 어찌 보면 매우 현대적인 느낌의 글씨?
서예 하면 그저 정자로 바르게 쓴 해서체가 제일 좋은 줄 아는 내 수준에서 김정희의 글씨를 논한다는 건 정말 어불성설이고 다만, 독창적이고 한자의 조형미를 잘 살렸다는 느낌은 든다.
이런 게 글씨를 보는 맛인가?
너무 반듯하게만 쓴 글씨는 재미가 없다.
김정희는 전한 시대의 비문에서 글씨의 원류를 찾았고 그래서 전서나 예서체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장 파는 것도 좋아했던 모양이다.
못쓴 글씨는 다 김정희체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만큼 추사의 글씨는 매우 독특하고 개성적이라고 한다.
오히려 현대에 와서 더욱 평가받을 수 있지 않나 싶다.
나는 김정희가 심하게 비판했다는 원교 이광사의 반듯하면서도 부드럽게 쓰여진 글씨체가 보기 편하다.
워낙 글씨를 못쓰기 때문에 잘 쓴 글씨, 특히 붓으로 쓴 글씨에 대한 무한한 동경은 늘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예술의 품격을 서체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 보인다.
아무래도 붓글씨를 좀 써 봐야 서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려나 보다.
저자는 당의 구양순, 송의 소동파, 원의 조맹부,  명의 동기창에 이어 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김정희를 꼽고 있는데 과연 중국에서도 그렇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저자는 한국사 이래로 김정희 만큼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그 진가를 인정받은 학자가 없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쓴 김정희론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알기 쉽게 요즘의 정명훈이나 백남준 등에 비유를 하니 과연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확실히 실감이 난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행해서 9년간 제주도 땅에서 귀양살이를 했고, 60 노구를 이끌고 북청에서도 1년의 유배생활을 했다.
순원왕후의 대리청정이 시작되면서 안동김씨의 공격으로 너무 잘 나갔던 아버지 김노경과 아들 김정희 부자가 정치적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정말 긴 세월이다.
제주도에 있을 때는 문 밖을 나가지 못하는 위리안치 신세라 제주도 기행 한 번 못해 봤다고 한다.
그도 다산처럼 제주도에 유배되어 글씨에 일가견을 이룬다.
저자의 말대로 누가 부탁해서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제자복이 많아 유배 시절에도 이상적이나 소치 허련, 소당 김석준, 요선 유치전 등이 스승을 모셔 완당 학파라는 거대한 학맥을 만들 수 있었다.
71세에 사망했으니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천수를 누린 셈이다.
첫번째 부인과는 열 다섯 살에 혼인했으나 스무 살에 사별하고, 재혼한 아내와는 매우 사이가 좋아 유배 기간에 주고받은 한글 편지들이 좋은 자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식은 없고 제주도에 귀양가 있는 동안 두 번째 아내마저 잃고 만다.
후세에도 부부의 연을 맺어 천리 떨어진 곳에서 내가 먼저 죽어 당신이 이 슬픔이 얼마나 큰지 느껴보라는 시가 가슴절절하다.
젊은 시절 관찰사로 나간 아버지에게 가 있으면서 집에 있는 아내가 답장이 없자 부끄러워서 못 보낸 거냐는 편지가 무척이나 정감어린다.
서자가 하나 있었는데 하나뿐인 혈육을 위해 동몽선습을 직접 써서 가르치기도 했다니 감식안이 뛰어난 만큼 마음씀도 퍽 애틋하고 정감있는 분이었을 것 같다.
제자였던 소치 허련과 희원 이한철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온화하고 넉넉해 보여 까다로운 예술가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귀하게 자라 세상풍파는 전혀 모를 것 같은 여유가 느껴지는 인상이다.
정치적 격변에 휩쓸린 장년 이후가 무척 안타깝고, 연경행 사신으로 발탁된 직후 탄핵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됐을 때 연경에 가지 못함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저자가 애정을 듬뿍 담아 쉽게 쓴 평전이라 마치 소설을 읽듯 한번에 쭉 읽었다.
김정희의 예술혼이나 학문적 성취 등을 논하기에는 내 주제가 함량미달이지만 인간적으로도 무척 매력있는 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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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y!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이희준 옮김 / 사회평론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막 나왔을 때 서점에서 비닐에 싸여진 책을 보고 너무 읽고 싶어 도서관에 신청했던 생각이 난다.
신간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는데도 바빠서 읽어야지, 벼르고만 있다가 막상 도서관에 가면 너무 큰 사이즈 때문에 빌리기를 주저하다가 드디어 대출을 하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진이 굉장히 화려하고 최근 발굴 성과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또 실제로 발굴을 지도한 학자들이 직접 한 챕터씩 기술을 해서 생생한 발굴 현장 이야기를 최신으로 들을 수 있다.
흥미진진한 고고학적 성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낭만적 고고학 산책> 같은 옛 탐사 이야기 보다 소재 면에서는 더 흥미로운 것 같다.
다만 국내에 덜 알려진 이야기들은 생소함 때문에 처음부터 집중이 잘 되지는 않았다.
관심사가 적은 부분은 아무래도 쉽게 빠지지가 못했는데 (영국의 고대 도시나 켈트 유적지 같은 것) 대신 인터넷을 이용해 기사를 검색하니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배경지식이 쌓이니까 금방 흥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18세기 말 바운티 호의 반란을 해결하기 위해 출항한 판도라 호가 좌초되어 호주 박물팀에 의해 인양된 얘기가 있는데 바운티 호가 대체 뭔지를 모르니 이 배 발견이 왜 이슈가 되는지도 모르는 식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 보니 서양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건으로, 아카데미 영화로도 만들어져 작품상을 받는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판도라 호 발굴팀은 이 배의 인양을 계기로 마치 신안 해저선 발굴 때처럼 박물관까지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남북전쟁 최초의 침몰 잠수함인 헌리호 발굴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이슈이겠으나 나는 남북전쟁 때 잠수함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처음 알아서, 대체 이게 왜 유명한 사건이 되는지 몰랐다.
역시 인터넷을 찾아 보니 영화로 만들어졌을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고 남측 잠수함인데 어뢰 공격을 성공시킨 후 배에 문제가 생겨 여덟 명의 선원이 전원 사망했다고 한다.
이래서 인터넷이 좋은 것 같다.
특히 구글을 참조하면 어지간한 정보는 다 얻을 수 있고, 한글 대신 영어를 입력하면 더욱 다양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번역책들은 꼭 고유명사의 원어 표기를 꼭 해 주면 좋겠다.
이것저것 인터넷에서 찾다 보면 집중도가 떨어져 진도가 잘 안 나가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 책처럼 배경지식이 약한 경우는 흥미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영국의 스톤헨지는 오히려 인터넷에서 더 최신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2009년 9월 기사가 있었다.
이 책에는 스톤헨지처럼 거석이 빙 둘러 있으면서 주위로 도랑을 판 헨지가 있는 스탠튼 드루를 소개한다.
이 발굴을 주도한 교수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스톤헨지는 종교적 제의의 장소가 아니라 부족장의 무덤이라고 한다.
책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신전이다, 태양의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한 천문학적 장치다 의견이 분분했는데 스톤헨지 주변에서 마을 유적지가 발굴되고 스톤헨지에서 유골이 여러 점 수습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스톤헨지는 고인돌과 같은 맥락에 속하는 모양이다.
지금으로부터 5000여 년 전의 무덤으로 60여 톤이 넘는 이 거대한 청석은, 무려 240km 나 떨어진 곳에서 끌고 왔다고 하니, 부족장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간다.
해양 고고학의 발굴도 도굴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가 크다.
곳디오라는 프랑스의 학자가 주도한 팀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부근에 침몰된 고대 도시, 헤라클레이온과 카노포스 등을 발굴했다.
이 기사 역시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이 해저 도시 발굴을 기념하여 박물관을 짓고 바닷속에서 끌어 올린 거대한 석상들을 순회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비잔틴 제국의 주화가 다량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9세기 말까지는 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재밌는 것은 이 도시가 이집트 역사에 특별히 기록되지 않고 다만 그리스 여행기에만 등장했기 때문에 전설상의 도시로 치부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에게 봉헌된 이 고대 도시는 바다 밑에서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보여 준다.
해저에서 잠수부가 거대한 석상과 마주하는 사진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맨 첫 장인 인류의 기원이다. 
대체 인간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창조론자들은 잃어버린 고리 운운하며 인간의 진화를 부정하는데 현대 발굴 성과를 보면 그 고리들을 찾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감이 잘 안 잡혀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인간의 조상은 막연히 루시라고 대표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여성 유골은 370만년 전 쯤 존재했던 호미닌으로, 약 450만년 전에 직립보행을 했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발굴되면서 더 윗대 조상이 밝혀졌다.
1994년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이 얇은 턱뼈는 머리를 앞으로 내민 유인원과는 달리, 척추 위에 머리를 곧추 세운 형태였고 15년의 연구 끝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어 올해 최고의 과학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역시 인터넷에서 알게 된 기사다.
루시,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를 연결하는 고리가 바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다.
약 430만년 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르디피테쿠스에 속하는 더 오래된 종인 카답파는 약 580만년 전에 살았다고 한다.
그 외에 다른 호미닌으로는, 600만년 전의 오로린 투게넨시스, 700만년 전의 사엘란트로푸스 차덴시스 등이 있다.
막연히 인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하빌리스, 에렉투스를 거쳐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진화의 계보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여러 계통을 거쳐 오늘날의 현생 인류가 탄생했다.
그러니까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 조상, 그 다음에 침팬지, 인간 이게 아니라 현생 인류가 태어나기까지 네안데르탈인 등이 사라져 가는 등 많은 수의 다양한 종이 나타나고 사라짐을 반복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의 계통수는, 영장목 호미니드과, 호미닌족, 호모속 인간종이다.
사실 이 族 이라는 분류는 처음 알았다.
내가 생물학 배울 때는 못 듣던 용어 같은데.
침팬지는 영장목 호미니드과 팬속 침팬지종이고, 고릴라나 오랑우탄은 모두 호미닌족에 속하지 않는다. 호미니드과에서 각각 다른 길을 걸었는데 책에서는 그 시기를 약 1200~900만년 전으로 보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아프리카 단일기원설에 대한 의문이다.
이 사실 역시 책에 실린 그루지야의 드마니시 발굴팀이 최근 발표한 내용을 인터넷에서 알게 됐다.
91년에 드마니시라는 곳에서 뼈무덤이 발견됐는데 여기서 나온 두개골이 호모 에렉투스의 가장 이른 형태를 띠고 약 180만년 전의 연대를 갖는다고 한다.
이 두개골은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 보다 더 이른 시기의 것으로 그 윗대인 호모 하빌리스와도 비슷해 하빌리스와 에렉투스를 잇는 고리로 여겨진다.
책에서는 여전히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을 지지하고 있지만, 최근 이 팀이 발표한 것에 따르면 200만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150만년 전에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는 통설과는 달리, 이들은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각자 진화했고 나중에 다시 아프리카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다기원설의 증거가 된 셈이다.
정말 놀라운 사실들이 아닌가.
내가 죽을 때쯤 되면 인간의 진화 과정이 좀 더 정교하게 서술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신문도 열심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외에도 잉카나 마야의 인신제의 장소인 달의 피라미드, 그 안의 냉동 미라들, 아리시아 왕비들의 무덤, 이집트 황금 계곡의 1만여 미이라들, 피라미드 옆의 인부들 숙소 등 흥미로운 발굴들이 펼쳐진다. 
특히 페루의 안데스 지역 모체 문영이나 잉카 문명 등은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다녀와서인지 더 재밌었다.
도시화로 유적들이 손상되고 도굴품이 마치 마약 밀거래처럼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저자는 특히 이라크 박물관 약탈을 가슴아파 한다) 과학의 발달로 고고학도 이제 최첨단의 분석 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작은 유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만큼 유물의 보존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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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자연.문화 유산 100 - 문명과 자연이 빚은 놀라운 걸작들
앤 벤투스 지음, 박웅희 옮김 / 서강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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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재밌게 읽은 책이다.
프레스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전을 보고 사진과 문화유산에 관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고른 책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 생각하고 외면했던 책인데 관심을 가지고 보니 무척 재밌다.
일단 도판이 커서 보는 즐거움이 크다.
그런데 여기 실린 사진보다 사진전에 출품된 사진이 훨씬 생생하고 아름답게 와 닿는다.
재밌는 것은 유명 건물마다 찍는 포인트가 다들 비슷한 모양인 듯, 사진전에서 봤던 사진과 거의 흡사한 사진이 실렸다.
설마 같은 작가?
따로 사진 작가에 대한 글은 못 읽어 봐서 혹시 같은 사람이 찍은 사진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문득 든다.
하여튼 사진전에서는 사진은 훌륭한데 설명이 부족해서 아쉬웠던 점을,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지식은 얻을 수 있어서 너무 즐겁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정말 인생은 즐겁고 해야 할 일 봐야 할 것들은 많다는 것이다.
한 500년쯤 살면 지구라는 아름다운 공간에 자연과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작품들을 전부 감상할 수 있을까?
추천사에도 나온 바지만, 자연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든 인간의 작품, 건축물들도 정말 놀랍도록 신비롭고 또 아름답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스터섬의 거석문화로부터 시작해 20세기의 최첨단을 달리는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마천루,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 이르기까지,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인간이란 존재가 가끔은 너무 하찮고 보잘 것 없다 싶으면서도 이런 문화유산을 접할 때마다 다시 한 번 이 지적인 존재의 창의력에 감탄하곤 한다.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곳들. 
1. 비스키르헤.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는 겉보기에는 수수한 시골 교회 같지만 내부 장식은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장식미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이 천정화를 보라. 

 

사실 이건 사진이 별로 좋지 않은데, 책에 제대로 실린 사진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화려학 아름답다.
독일의 로맨틱 가도 가는 길에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꼭 가 보고 싶다.
문화유산 중에서 나는 이 교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2. 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서구화에 젖어서라기 보다는 여성차별과 그 교조주의적인 억압이 너무 싫어 이슬람 문화 역시 어느 정도는 편견을 가지고 바라봤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예술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독창성과 미학적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인물이나 형상 대신 기하학적 도안을 사용해 이렇게 아름다운 장식미를 선보이다니, 서구와는 또다른 건축미의 정점을 보여 준다.
신에 대한 경배는 인간의 창의력을 이렇게도 극대화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종교가 혐오스럽다가도 이런 찬양물들을 보면 종교야 말로 인간의 삶에서 뗄 수 없는 가치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터키에 정말 가보고 싶어졌다.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겹쳐 있으며 또 트로이의 역사가 숨쉬는 고대로부터의 위대한 도시가 아닌가. 

3. 이과수 폭포와 나이아가라 폭포.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걸쳐 있는 이 어마어마한 폭포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몇 배라고 한다.
정말 장관일 것 같다.
헬리콥터 투어도 있다고 하던데 꼭 가 보고 싶은 곳.
제주도 갔을 때 폭포라고 하기도 민망한 아주 작은 폭포 옆에 섰는데도 그 물살의 힘에 놀라 겁이 났었는데 저런 엄청난 폭포를 보면 자연스레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생길 것 같다. 

내가 잘 몰랐던 곳들이 많이 소개되어 다시 한 번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실감했다.
예전에는 그저 서유럽이 최고의 관광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놀라운 자연과 건축물이 참 많다는 걸 깨달았다.
비록 다 가 볼 수는 없겠지만 책이나 사진을 통해 눈으로라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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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0-01-3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차별과 그 교조주의적인 억압이 너무 싫어 이슬람 문화 역시 어느 정도는 편견을 가지고 바라봤다 (?) 그런면도 있겟지만, 기독교에 문명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marine 2010-02-0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 사회에서 현재 기독교가 이슬람 사회처럼 억압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건 아니죠. 역사는 과거의 역사일 뿐이고 현재가 중요한 거죠, 바로 지금 현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들이 어떤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