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호리 갈대밭 속의 나라 (대도록) - 그 발굴과 기록,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작년에 박물관에서 다호리 유적 특별전 봤던 기억이 난다.
대도록은 비싸서 못 사고 마침 소도록이 있길래 구입했다.
그런데 이 대도록이 올해 도서관 신간으로 들어온 것이다.
의외로 도서관에 가보면 전시회 도록이 나중에 구비되는 경우가 많아 가끔씩 놀라곤 한다.
전시회를 보고 나서 도록으로 다시 감상하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을 것이다.
도록은 사진이 많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지만 전시회 관람 후 바로 봐야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가능하면 구입을 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유적지를 어떻게 발굴하는지, 보존 처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고대의 매장 풍습은 어땠는지, 유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잘 설명해서 인상깊었다.
지난 번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 다호리 유적에서 발굴된 손칼과 붓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막연히 원삼국 시대 때도 문자 생활을 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적인 증거가 없었는데 다호리에서 붓과 손칼이 발견되면서 구체적인 증거물로써 입증이 된 것이다. 

다호리는 습지이기 때문에 갈대 등을 이용해 바구니 같은 저장 용기를 많이 만들었고 철이 풍부해 물길을 통해 낙랑과 왜 등과 교류를 했다.
창원 지역이 바로 변한이라고 한다.
습지라는 자연환경 때문에 유적의 보호도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 곳 역시 도굴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도굴이 성행하는 것은 그만큼 유물에 대한 경제적 가치가 높기 때문일테지만, 한 번 무덤에서 나가고 나면 유물과 관련된 시대 연구가 불가능 하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
당장 이 다호리 유적만 해도 10년에 걸쳐 이루어졌고 여기서 나온 관 모양과 토기, 유물 등을 통해 원삼국 시대의 사회상에 대해 엄청난 정보를 준다.
전시회 때 그림으로 잘 설명된 장제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호리의 목관은 중국 북부에서 시행된 판제 기법이 아니라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시신과 부장품을 넣는 구유식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판제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부장품으로는 청동기와 철기 등이 있고 철광석이 매장되어 화폐로 쓰였다는 걸 알 수 있고, 옻칠한 목공예품도 많이 나왔다.
또 한나라 때의 오수전이나 중국식 거울이 나와 낙랑을 통한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 준다.
다호리에서 발결된 토기는 붉은색의 무문토기가 아니라 회색의 연질토기다. 

한 가지 의문점은 다호리 유적의 배경인 원삼국 시대는 기원전 1세기부터 3세기까지를 대략 일컫는데, 로마나 한나라 때가 아닌가.
로마는 이미 이집트 원정도 이루어지고 카르타고나 갈리아 정복도 이루어져 이미 팍스 로마나를 구축할 때인데 한반도는 국가 형태가 아직 갖춰지지 않고 심지어 내려오는 문서 같은 것도 없다는 게 의아하다.
역사의 발전이 지중해나 중국 대륙에서 먼저 시작되어 파급되었다는 증거인가?
그렇다면 아메리카에 철기 문화가 대항해 시대 이후라는 것도 문명의 전파 면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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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輝 2010-02-1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마린님 블로그에 글을 남겨보네요. ^^ 우연히 들렸다가 댓글 하나 달고 갑니다. 창원 다호리 집단(저는 이렇게 부릅니다. 뭐 수준높은 철기문화를 보유하고 활발한 해상교류를 하던 집단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을 저는 가야의 전신이 되는 선주민 세력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로마나 한나라와 비교하면 미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보세요~그 당시 전세계적으로 로마나 한나라가 굉장히 특수한 경우의 문명국가였다는 것을 말이죠. 제가 볼때 창원 다호리 집단은 동시기 그리스와 비교해서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생태학적인 측면에서 어떤 문명은 주변 환경이 결정짓는다고 하죠. 저도 이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창원 다호리 집단의 고고학적 측면이 동시기 로마나 한나라보다 수량면에서 적다고 하여, 혹은 문헌이 없다고 하여 거기에 살던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까지 낮다고 보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과거 과대전파론자들의 생각과 비슷한 마린님의 걱정섞인 우려 역시 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음...그냥 몇자 적어봤습니다...명절 잘 보내세요~

marine 2010-02-1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물이나 문헌 자료가 적다는 점 부터가 문명 발달에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란 다양성이 생명이니 높고 낮음을 따진다는 게 의미가 없겠으나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문명이 발달해 왔다는 전제를 두고 생각해 본다면 중심지로부터 주변부로 기술이나 고급문화가 (이를테면 문자나 화폐 같은 것) 전파되어 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싫어하는 건 우리 민족이 최고다, 우리는 중국과 "비슷하게" 교류하면서 "한 수 아래인" 일본에게 문화를 전파시켰다는 식의 과도한 민족주의지 특별히 중국의 고대 문명에 대한 동경 같은 건 없습니다. 차라리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이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 표정있는 역사 3
이한수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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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보고 읽었던 책인데 충자 돌림 고려 왕들이 등장하는 역사책에서 다시 이들 계보가 헷갈려 재독하게 됐다.
여전히 고려 후기 왕들은 개별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뭉뜽그려져 보인다.
조선의 왕은 개개인이 모두 분명하게 인식되기 때문에 굳이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왕의 계보를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최근 사극 열풍에 힘입어 고려사도 많이 조명되고 있는 만큼 좀 더 고려사에 대한 대중과 학계의 관심이 커지길 바란다.
200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이라 읽기도 편하고 저자 나름의 역사적 식견도 분명해 신뢰가 간다. 

최근까지는 원간섭기를 부끄러운 역사로 가능하면 의미를 축소시키려 했으나 요즘 들어 슬슬 긍정적인 눈으로 시대를 조명하는 느낌이 든다.
팍스 몽골리나라는 표현이 작위적이라고 들리기는 하지만 동서양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 만큼 고려 역시 오랜 항쟁을 끝내고 원의 부마국이 되어 그 체제 안에 편입됐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할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혼인 정책이야 말로 양국의 통합을 추구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닌가.
문득 알렉산더 대왕이 생각난다. 

최씨 정권이 망한 다음에 고종은 몽골의 요구대로 원에 가서 친조를 하고 항복하려고 한다.
당시 고종은 68세의 고령이었기 때문에 대신 40대의 장년인 세자 원종이 북경으로 떠난다.
그런데 북경에 도착해 보니 당시 원의 황제였던 헌종(뭉케)은 남송 정벌을 위해 사천성으로 떠난 상태였다.
다시 사천성을 향해 황하강을 건너는 세자 일행.
이번에는 고국에서 아버지 고종이 임종했다는 비보가 들려온다.
한 술 더 떠 헌종마저 갑자기 사망한다.
이제 이 가엾은 소국의 왕자 일행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 넓은 중원 땅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셔 왕위는 비었지 황제도 죽어서 항복할래야 누구에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 참으로 난감했을 것 같다.
당시 원은 다음 황제위를 놓고 뭉케의 동생인 쿠빌라이와 아부 부케가 다투는 형상이었는데 과감하게 원종은 쿠빌라이에게 베팅을 걸어 황제가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공식적으로 황제로 인정받지 못한 처지에서 항복하려고 1년 여를 걸려 자신에게 찾아 온 원종이 쿠빌라이로써는 무척이나 고맙고 행운의 징조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딸 제국대장공주를 원종의 아들인 충렬왕에게 하가시킨다.
이렇게 고려는 부마국이 된 것이다. 

책에서는 원이 고려를 직접 통치할 수도 있었으나 부마국으로 삼은 것에 대해 고려의 끈질긴 저항과 함께 쿠빌라이와 원종의 이런 특이한 인연을 배경으로 든다.
확실히 고려는 부마국이 된 후 원 황실에서 발언권을 높이게 되고 심지어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의 아들인 충선왕은 원에 만권당을 지어 근거지를 둔 후 외국에서 고려를 통치하기까지 한다.
충렬왕부터 공민왕에 이르리까지 여덟 명의 몽골 공주들이 시집을 왔고 노국공주를 제외하고는 사이가 나빠 이 때문에 왕이 폐위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충선왕은 어머니가 몽골 사람이고 보위를 이은 충숙왕 역시 몽골 여인 야속진의 아들이니 후대 왕들은 상당 부분 몽골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략 결혼이라 낯선 고려 땅에 시집와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몽골 공주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소외감을 친정의 권력에 기대어 잘못된 방법으로 푼 점도 안타깝다.
그러고 보면 노국공주와 공민왕의 사랑은 국경과 민족을 뛰어넘는 놀라운 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노국공주가 후계자를 일찍 낳고 오래 살았다면 고려의 운명은 조금 더 연장되지 않았을까... 

재밌게 읽은 책이고 무엇보다 고려 후기 왕들이 하나의 역사가 아닌 개인으로써 인식됐다는 점이 큰 소득이다.
MBC에서 만든 <신돈>이라는 드라마가 실패해서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얼핏 본 캐릭터들을 역사책에 대입하니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다.
사극이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도 많지만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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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
이지상 지음 / 북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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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에 다녀와서 캄보디아에 관한 책 몇 권을 읽었고 역시 읽다 보니 비슷한 얘기의 반복이구나 싶어 이 책을 마지막으로 끝내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인문학적 지식을 주는 책 위주로 봤는데 본격적인 여행기도 궁금해서 선택했다.
결과는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지하철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도 퍽 잘 찍는 것 같다.
캄보디아의 순박한 어린이들 모습이 눈에 밟힌다. 

킬링 필드에 관한 저자의 시각에 동의한다.
미국인이 메콩 강에 폭탄 투하해 놓고 죄다 폴 포트 책임이라고 떠넘기네 어쩌네 하면서 미국 탓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도올 선생의 책에서도 봤고 가이드도 그런 뉘앙스의 말을 했었다.
그러나 저자의 말마따나 200만이면 안 되고 20만은 괜찮단 말인가?
여전히 혁명의 이상 어쩌고 하면서 뜻은 좋았으나 방법상의 문제였다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태도는 4년 동안 학살당한 희생자들을 우롱하는 매우 질이 나쁜 뻔뻔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미국대로 비판하면 될 것이고 크메르 루즈의 잔혹한 학살은 또 그대로 분명히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캄보디아의 현대사를 들으면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진다.
한 때 6.25 동란을 겪은 한국을 원조하기까지 했던 이 나라의 몰락이 안타깝다.
여전히 캄보디아에는 관광객들에게 1달러를 외치는 가엾은 아이들이 많다.
그러나 또 발전의 기운도 활발하게 느껴진다.
한국이 산업화에 성공했던 것처럼 이 나라도 국력을 모아 성장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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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월남가다 - 하 - 조선인의 아시아 문명탐험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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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도올의 해박한 앙코르 와트 지식에 감탄했고 그래서 이번에 다시 일독하게 됐다.
그러나 처음의 좋았던 인상과는 다르게 두 번째 읽는 책은, 지식적인 면에서는 수확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거부감을 많이 느꼈다.
아래 리뷰처럼 자신에 대한 자만심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부조를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기존의 인문학적 지식과 엮어서 설명하는 것은 역시 수준이 높다, 칭찬할 만 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나가는 것, 이를테면 승려가 어린 소녀의 처녀막을 손으로 파괴시키는 관습에 대해 우주적 생산력이 어쩌고, 여성의 순결 이데올로기를 깨부수고, 이런 식의 과대해석에 동의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매우 불편했다.
어떤 사회든 나름의 관습이 있고 또 오래 지속되었다면 그 사회만이 갖는 독특한 가치체계나 유용성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 문명의 관습을 소개할 때 그것이 갖는 의의를 설명하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너무 나가서 관념론적 의미 부여를 한다거나, 반대로 미개하다느니 잔혹하다느니 이런 식으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지극히 필자가 갖는 편견이고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가치관에 빗대어 고대 문명이나 관습 등을 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관념적 언어 유희를 끌어다 붙여 자신의 사상을 입증하는 도구로 쓰고 썰을 푸는 건 수준 낮은 짓이다. 

기행문을 선택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동을 주는 기행문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일종의 행운이 아닐까?
개인 블로그에나 올려야 할 수준의 잡문들을 버젓이 책이랍시고 출판하는 일종의 출판공해물들은 언급할 가치고 못 느끼고 개인의 감상에만 치우쳐 여행지에 대한 정보 소개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도 내용적인 면에서는 부족할 것 같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사실 전달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진 역시 필수는 아니더라도 좋은 기행문을 만드는 충분조건 정도는 된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기행문의 기본 조건은, 어떤 글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일단 문장력이 좋아야 한다.
적어도 비문은 없는 올바른 문장을 구사해야 하고, 글에 유머와 품격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또 적어도 책으로 출판한다면 여행지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수준의 지식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좋은 사진도 추가되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좋은 기행문을 만난다는 게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 새삼 느낀다.
덧붙이자면 이번 앙코르와트 여행 때 가이드가 도올 선생 얘기를 몇 번 했었는데 이제 보니 이 책을 읽었던 듯 하다.
설명하는 포인트나 심지어 비판하는 점까지도 책의 내용과 일치해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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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400년 푸생에서 마티스까지 - 大도록
다비드 리오 외 지음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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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 있을 때 이 전시회가 개최됐던 것 같다.
막 미술에 관심이 생겨 가 봐야지 하면서도 이거 보려고 서울까지 올라가기가 쉽지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못 보고 말았던 생각이 난다.
도서관에서 이 도록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워 빌리게 됐다.
선과 색채로 대비되는 서양 미술사를 잘 조명했다는 생각이 들고 좋은 전시회를 놓친 것 같아 무척 아쉽다.
서양미술 400년을 조망하겠다는 제목은 좀 과한 것 같긴 하지만 작품들이 다 마음에 든다.
특히 앞쪽에 실린 드로잉과 색채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는 관점이나, 물감의 재료에 따른 분류 등의 이야기도 무척 유용했다.
한 가지 새로운 발견은, 나는 루벤스를 역사화를 잘 그리고 화려한 색채감을 뽐냈다는 점에서 어쩐지 다비드와 같은 부류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오히려 낭만주의자의 대표 기수인 들라크루와가 루벤스를 추앙했고 드로잉을 중시하는 다비드나 앵그르 등은 플랑드르 지역의 세밀화 기법을 평가절하 했다고 한다.
소재 면에서만 비슷했을 뿐 따지고 보면 루벤스의 화풍과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화풍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루벤스는 화려하고 역동적이고 따뜻하다.
반면 다비드나 앵그르는 색조가 가라앉아 있고 엄숙한 느낌이 든다.
다만 둘 다 엄청난 화면 크기나 역사나 신화에서 소재를 찾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다.
회화의 본질은 형태가 아닌 색 그 자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형태를 무시한 추상화가 등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의 기본적인 자질은 바로 소묘, 데생 능력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까?
놀랄만큼 화려하고 세밀한 장식화를 선보인 클림트의 데생을 보면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정교하고 인체의 특성을 잘 잡아낸다.
그래서 나는 대가들의 데생 작품들도 즐겨 본다.
전시회장에 가서 직접 그림을 보면 인쇄된 종이에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도판으로 보는 게 나을 때도 있고 실제 볼 때 감동적인 것도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직접 명작들을 내 눈으로 느끼고 싶은데 외국에 나가기가 쉽지 않아 아쉬운대로 국내의 전시회로 만족하곤 한다.
정말 여유가 된다면 미술관 순례를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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