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스캔들 (2DISC) - 통쾌한 그림복제 사기활극 [본편+스폐셜피쳐]
박희곤 감독, 김래원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한창 IPTV 볼 때 광고를 어찌나 많이 때리던지 볼까 말까 했던 영화다.
예고편이 별 재미가 없어 보이고 특히 안 좋아하는 엄정화가 나오길래 제껴 뒀었다.
오션스 일레븐이랑 비슷한 컨셉 같아서 어쩐지 아류작 느낌도 들었고...
그러나, 막상 보니 상당히 재밌다.
영화 상영 당시는 크게 주목을 끌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별 기대없이 봐서 그런지 그런대로 재밌게 봤다.
한국 영화의 맛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지는 대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물에서는 아무래도 줄거리 정도나 이해할까, 배우들의 대사가 주는 맛은 기대를 접게 된다.
확실히 영화는 제약이 적어서 그런가?
드라마 보다 훨씬 실감나고 맛깔스러우며 현실적이다.
이 영화에서도 미술계 사람들의 걸쭉한 입담이 관전 포인트다.
복원이라는 덜 알려진 세계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나름 괜찮았다.
드라마에서는 김래원이 그냥 저냥 별 느낌이 없는 배우였는데, 영화에서 보니 키도 크고 스타일도 괜찮고 연기도 곧잘 한다.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는 것도 그럴 듯 해 보이고.
엄정화도 생각보다는 잘 했다.
배포 크고 악착같은 미술계 검은 손의 이미지를 잘 구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간 슬픈 생각도 들었다.
나름 당대의 스타였는데 나이가 드니 저런 완전한 조연 역할도 출연을 하는구나.
보통 주연까지는 안 되더라도 비중있는 배우가 조연을 맡을 때는 악역도 어느 정도는 매력적으로 그려지는데, 이건 뭐 어쩌고 저쩌고 할 것도 없이 완벽하게 악녀라 동정의 여지가 없다.
같은 악인도 사연 있는 악인, 고뇌하는 악인, 카리스마 있는 악인이라야 배우가 사는데 엄정화라는 이름값의 배우가 맡기에는 너무 전형적인 악녀였다.
그래도 섹시한 화장이나 몸매도 멋지고 미술계를 쥐고 흔드는 배포도 보여준다. 

다른 분의 리뷰에서 읽었는데 <타짜> 나 <범죄의 재구성> 과 비교가 많이 된다.
조승우의 연기를 김래원과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 같지만 하여튼 둘 다 실력은 최고지만 세상은 거칠게 살아가는 매력적인 캐릭터고, 정마담의 김혜수가 엄정화와 매치되고, 유해진은 임하룡 정도?
에이, 그건 너무 약하다.
임하룡 배역이 좀 될 줄 알았는데 너무 비중이 없어 살짝 실망스러웠다.
이 분, 코메디언에서 배우로 변신해 나름 감초 역할 잘 하시는데.
배짱 좋은 여형사 역의 홍수현은 너무 악을 많이 써서 다들 최고의 미스 캐스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확실히 안정적이지 못하고 튄다.
영화계에서 극을 이끌어 가는 주연으로 자리 잡기는 확실히 어려운 모양이다.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비중 전혀 없는 여배우로 나오더니만, 그래도 이 영화에서는 소리는 목청껏 지른 것 같다.
아마도 여형사라는 캐릭터가 전형화 되서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드물기 때문에 연기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긴박감은 좀 떨어지지만 스토리가 늘어지지 않고 나처럼 집중 잘 못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안 꼬고 단순하게 가서 괜찮게 봤다. 

에피소드로 하나 더 첨부하자면, 자화상이나 누드화 한 점이 수 억을 호가하는데 서로 사겠다고 난리를 치는 걸 보면서 다른 세계의 일 같기도 하고 과연 예술의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영화 속의 벽안도가 400억을 부르는 건 세월의 흐름, 안평대군과 안견이라는 역사적 중요성, 희귀함 등의 가치가 고려됐으리라 이해하지만 현대 미술 작품의 수 억이라는 가격은, 워낙 서민이라 그런지 전혀 공감이 안 갔다.
과연 그런 그림들은 수 억이라는 경제적 가치가 있을까?
어떤 작품이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고 세월이 흘러 모든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위대한 명화로 남을 것인가?
하나의 유명 작품이나 유물들을 소장하게 되면 그것을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고, 소장처나 소장자는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될테니 확실히 매력적인 투자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 작품들의 놀라운 가격들은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미술도 결국은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재화인가?
그러므로 사고 파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가?
아무래도 나는 자본주의라는 것에 너무 무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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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의 유혹
김치호 지음 / 한길아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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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신간을 살펴 보다가 눈에 띈 책.
코엑스몰에 있는 반디 앤 루니스에서 작년 12월에 발견했고 1월에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해서 드디어 2월에 받아 봤다.
북디자인이 고급스럽고 사진이나 제목이 고상한 게 마음에 쏙 들어 살까 말까 망설였던 책이다.
결과적으로는 안 사길 잘 했다 싶다.
제목만 보고 고미술 길라잡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읽어 보니 고미술 컬렉터의 에세이다.
북디자인은 참 마음에 든다.
요즘 물가가 올랐다는 걸 실감하는 것이, 이 책값도 아무리 양장이지만 무려 22000원이나 한다.
절대 싼 가격 아니다.
나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은 서점에서 제 돈 주고 샀다가는 파산할 게 틀림없다.
이럴수록 도서관이 고맙고, e-book이 활성화 되면 전자 리더기로 읽어야 하나 고민스럽다.
아직은 콘텐츠가 너무 부족해 (베스트셀러나 소설 위주) 생각을 안 하고 있지만 가격 부담 때문에 저렴한 e-book에 마음이 간다.
그래도 이런 훌륭한 북디자인을 보면 또 책이라는 물질이 주는 아름다움을 포기하기 힘들다. 

이 책과 비슷한 컨셉의 책을 작년에 봤었다.
이 책의 저자처럼 경제학자인데 미국 유학 갔다가 미술에 눈을 떠 그림 컬렉터가 된 것이다.
경제학자와 예술 애호가는 어쩐지 안 맞는 조합 같은데, 다들 먹고 살만 하면 다음 순서로 예술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고미술이라는 용어가 참 마음에 든다.
그림도 좋아하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분야가 바로 이 고미술이다.
그래서 화랑도 좋지만 박물관이 더 좋다.
책도 그렇지만 이상하게 나는 수집욕이 별로 없어 뭘 꼭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아예 욕구 자체가 없어진 건가?
아니면 원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금방 질려서인가?
가끔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들을 접하기도 하는데 돈이 많으면 집에 걸어 놔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을 하긴 한다. 
그러나 늘 돈이 없으니... 

목가구의 아름다움은 박물관에 가서 처음으로 느꼈다.
조선시대 사랑방을 재현해 놓은 전시실에서 단아한 선비문화와 어울어진 우리 목공예품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말았다.
도자기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아무리 아름답다고 찬사를 늘어놔도 시큰둥 했는데 직접 박물관에서 백자와 청자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을 홀렸다.
그러고 보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야 말로 돈없는 서민들의 문화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다.
대중사회가 도래하면서 19세기 이래로 박물관의 역사가 시작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저자처럼 토기를 좋아한다.
백자나 청자도 너무 아름답지만 민예풍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분청사기가 좋고 저자의 말마따나 자유로움과 호방스런 필선이 돋보이는 추상화 같은 현대적 느낌이 마음에 든다.
토기도 그렇다.
가야나 신라 무덤에서 출토되는 상형토기도 좋지만, 그냥 평범한 질그릇도 마음에 든다.
겨우 20~3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하니 확실히 자기에 비하면 찬밥 신세이고 혹시나 나도 한 번? 하고 구매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목가구의 경우는 심플한 인테리어를 추구하기에 딱 좋을 것 같다.
화려한 세공이 돋보이는 유럽풍도 좋지만, 공간을 점잖게 차지하는 간결한 우리 목가구도 무척 잘 어울릴 것 같다. 

위작과 도굴 문제는 재밌게 읽었다.
일단 위작.
위작이 문제가 되는 건 진실이 아닌 것이 역사로 기록된다는 점에서 정직성과 신뢰의 문제이지 진품이 위작에 비해 엄청난 가치를 지녀서는 아닌 것 같다.
똑같이 복사된 그림은 물리적으로는 똑같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엽서나 도판에서 보는 것도 진품은 아니지 않는가.
문제가 되는 건 원작자의 창의성이 훼손되고 역사적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진품이 중요한 게 아닐까?
유물 같은 경우는 역사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 점은 더욱 엄정히 단속해야 할 것이다.
도굴 문제는 참 심각해 보인다.
결국 박물관이나 개인 컬렉터들에게 소장된 토기나 도자기들도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누군가의 무덤에서 나온 것이리라.
멀쩡한 무덤을 어떻게 파나 했더니, 후손에게 관리되지 않고 수십년만 지나도 봉분이 무너지면서 금방 평평해져 무덤이란 것도 알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곳에 도굴꾼이 탐침을 이용해 작게 구멍을 뚫은 후 유물만 빼내기 때문에 밤에 시작하면 해뜨기 전에 깜쪽같이 끝낼 수 있다고 한다.
도굴이 되면 고분과 관련된 역사적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깝다.
무령왕릉처럼 하루 만에 끝나 버린 졸작 발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수많은 학자들이 동원되어 당시의 시대상을 밝히기 위해 애쓴다.
도굴이 문화적으로 금기시 됐다면 지금보다 역사는 훨씬 더 풍부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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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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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쓰신 다른 책들을 퍽 재밌게 읽었던지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소재가 워낙 단순해서 그런지 제목도 밋밋하고 내용도 크게 흥미롭지는 않다.
역시 글쓰는 내공 뿐 아니라 주제 자체도 책의 흥미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가 보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제목이 너무 하품나와 저자가 주경철씨가 아니었다면 아마 안 읽었을 것이다.
좀 더 매력적인 제목을 찾았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지루하다.
책의 내용 역시 익히 알려진 소설 등에서 당시 사회배경과 사건들을 찾겠다고 하는데 이솝 우화에서 노예와 그리스 민주정, 이런 식으로 평면적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기술하는 정도라 깊이가 상당히 얕다.
본격적인 저술이라기 보다는 서문에 쓰인대로 학생들과 문학 공부를 하면서 가볍게 당시 배경도 살펴 본 일련의 시간들을 정리하는 그런 에세이 같다는 느낌도 든다.
<분노의 포도> 라든가 <파리대왕> 같은 유명 작품들의 시대 배경을 살펴 보는 건 재밌었다.
내가 원하는 깊이의 설명이 아니라 기대치에 못 미쳐 실망한 것 같다.
차라리 평론가가 본격적으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파고 들면서 소설의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면 어떨까 싶다.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들.
신밧드의 모험 같은 아랍 세계의 구전을 보면 확실히 이슬람 세계가 상업을 굉장히 중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 세계를 누빈 이슬람 상인들의 모험담은, 상업이라고 하면 허생전 밖에 생각이 안 나는 우리 전통과 매우 달라 보인다.
이렇게 일찍 상업에 눈 뜬 이슬람 세계는 유럽에 몰락하고 말았을까?
종교의 망령이 지금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는 되지 않을까?
오히려 본격적인 산업화와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종교의 도그마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무사도에 대한 편견.
한국 사람이면 일본 문화를 우월하게 본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식민 지배의 역사가 여전히 당대의 일이고 보면 말이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것은, 조선 시대 충효 논리와 전혀 다를 게 없고 자신을 희생하여 대의를 지킨다는 점에서 칭송받아야 마땅한 전근대 사회의 미덕일진대 비단 일본의 무사도만 가지고 제국주의의 원형이네 어쩌네 하는 건 불편해 보인다.
어떤 사회의 가치관을 타 문화권 사람이 옳다 그르다 재단하는 건, 넓게 보면 결국 이것도 자민족 우월논리, 문명과 야만 이런 것의 일종이 아닐까? 

18세기 말의 프랑스 대혁명은 생각할수록 놀랍고 대단하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시대가 구분됨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1789년이면 조선으로 따지면 정조 시대가 아닌가.
왕을 몰아내고 다른 왕을 세우는 역성혁명은 가능했을지라도 왕 자체를 없앤다는 발상은 참으로 놀랍고 급진적이다.
시민 사회의 성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상의 전환이다.
지리상의 발견으로 원거리 무역을 통해 이미 부르주아 계층이 귀족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갖게 됐고, 계몽주의 등으로 시민사회가 의식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에 비로소 왕을 처형하고 공화정이라는 놀라운 제도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혁명 이후 공화정의 혼란과 10년 만에 다시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것은 시대적 한계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혼란이고 제정 복귀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프랑스가 공화국의 전통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책에서는 당시 여류작가였던 스탈 부인의 작품, <코리나> 를 통해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그리고 있다.
처음 듣는 인물과 작품이라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2002년에 처음으로 번역됐다고 한다. 

보물섬이 제국주의의 팽창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보물이 있는 섬을 찾아 떠나는 낭만적인 모험담!
이것도 결국은 지리상의 발견으로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가능해진 이야기일 것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여기 소개된 걸 보니 정말로 흥미가 생긴다.
대공황 시대의 노동 계층의 비극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낸 매력적인 작품이다.
땅을 은행에 뺏기고 캘리포니아 농장으로 품팔이를 떠나는 미국의 노동자들.
캘리포니아 농장은 수확물이 넘쳐 나지만 가격 경쟁력을 위해 농장주들은 땅에 썩힌다.
썩어가는 수확물의 냄새를 맡으면서 굶어 죽어가는 노동자들.
자본주의란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먹고 성장하는 시스템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애매모호한 비판이었다.
아예 홀로코스트 자체가 없었다, 날조된 유대인의 쇼다, 이런 주장도 들어본 만큼 상당히 경계하면서 읽게 됐는데 적어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다.
여기 소개된 만화 <쥐>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이번에는 흑인을 차별하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나치에게 박해받은 아버지가 어떻게 그런 편견을 가질 수 있냐고 하자 아버지는 화를 내며 응수한다.
유대인과 흑인이 어떻게 같냐!
유대인은 특별하다는 이런 인식, 혹은 흑인은 열등하다는 인종적 편견이야 말로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의의를 더럽히는 가장 나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저자의 말마따나 점령지의 주둔군은 늘 잔인했고 수백 년간 계속된 흑인 차별과 노예제도를 생각하면 홀로코스트만이 인류 최대의 비극이고 재앙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어쩌면 같은 백인을, 유럽인을, 함께 살아오던 똑같은 우월한 백인이자 유럽인을 하루 아침에 수용소로 보내버렸다는 사실이 서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준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홀로코스트에 인류의 양심이 어쩌고 지상 최대의 범죄이고 분노하려면 노예제도나 인디언 말살 정책이야말로 정말 통분을 금치 못할 엄청난 재앙이 아니겠는가.
나치의 인종청소가 히틀러가 아니라면 생각하기도 힘든 놀랍도록 잔인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임이 분명하지만, 홀로코스트 역시 인간이 저질러온 끔찍한 범죄 중 하나라는, 말하자면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특별히 신성시 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3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가벼운 분량의 책으로 내용도 부담없이 쭉 읽을 수 있다.
군데군데 관련 명화들이 등장해 반가웠다.
이 정도라면 서점에서 서서 읽어도 될 것 같다.
주경철 교수의 본격적인 저술인 <대항해 시대>를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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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2010-02-0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에서 저자는 탁월한 에세이스트임을 보여주지요. 그런데 저자의 내공이 없다면 그렇게 글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는지...깊이가 얕다고 평가하신 것은 깊이있게 음미하며 읽지 않으신 게 아닌지요...지나가는 객이 한 말씀 드림~

marine 2010-02-09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월한 에세이스트라고 해서 모든 책을 다 잘 쓰는 건 아니지요. 다작이 되면 수작과 범작은 있게 마련.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모든 책이 다 훌륭한 건 아닙니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에 비하면 확실히 가볍죠. 자기가 좋아하는 책 평가가 좋지 않으면 제대로 독서를 못한 것이라는 그 편견부터 버리셔야 할 듯...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 100년 전 그들은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이승원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기대했던 것보다는 임팩트가 너무 약하다.
제목이나 주제는 흥미로웠는데 막상 열어보니 별 내용이 없다.
이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데 원래 구한말에서 일제 시대로 이어지는 조선 근대화 과정의 외국 기행문이라는 게 단지 기행문에 불과한, 사적인 내용이라서 그런건가 밋밋하고 시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저자의 전문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소재 자체가 워낙 단순하다고 해야 하나?
차라리 외국인이 조선의 풍습에 대해 놀라워 하고 신기해 하는 기록들이 더 흥미롭다.
서구식으로 세계화 된 요즘 사람들은, 100여 년 전의 조상들의 모습을 서구인들을 통해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이미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 난 후라면 조선인의 외국 기행문은 오늘날의 기행문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진다.
조선 보빙사 일행이 고종의 국서를 갖고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조선식으로 엎드려 절하는 모습 같은 데서 우리는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미 서양의 악수 예법을 알고 있고 기계문명의 힘을 찬탄하는 수준이 되면 오늘날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체계랑 비슷하게 되버린 것이니 흥미로울 게 뭐가 있겠는가.
시대를 달리하는, 조선 유학자의 모습으로 바라 본 서양 문명의 충격, 그들이 서구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그 과정이 궁금한 것이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구한말에도 벌써 유길준이나 윤치호처럼 미국으로 유학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로 일단 개항이 되고 나서는 서구 문화를 상당 부분 많이 받아들였고 비록 지식인층에 국한된 얘기일지라도 하여튼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구 문명을 무조건 배척하고 두려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따라하고 싶은 모델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메라에 사진이 찍히면 애들 눈을 빼먹는다는 루머 같은 건 지식의 혜택을 거의 못받았던 하층민 계층에서나 유행했었던 것 같고 적어도 조선의 지식인 계층은 서구 문명을 빠른 속도로 받아들였고 고리타분한 유학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나서는 이미 서구화를 완벽하게 이뤄낸 일본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식민주의적인 세계관까지 갖추게 된다.
개항 이전에 일본의 통신사로 간 사람들이나, 필리핀 등지의 원주민을 보고서 야만인이라고 했던 기록들에서 조선인들 역시 자신들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차별적인 시선을 가지고 남을 바라봤다는 예리한 지적을 한다.
심지어 히틀러나 비스마르크 등을 찬양했던 당시 지식인들과, 베를린 마라톤에서 우승 후 히틀러와 악수하고 독일의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긍정적인 쪽으로 느낀 손기정에 대한 글까지 쓴 걸 보면 우리 사회도 이제 민족주의라는 자아비판을 할 수 있는 성숙한 경지에 오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놀라운 문명의 이기를 만난 구한말 조선인들의 충격은, 드라마 제중원에서 보여 주는 딱 그 시기까지인 것 같다.
좀 더 아래 계층 사람들을 조명하면 또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제일 인상깊었던 구절은, 만주를 회복해야 할 우리의 고토라 여기는 민족주의에 대한 일침이었다.
일본의 만주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덩달아 조선인들도 만주로 많이 건너갔다.
때마침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되면서 옛 고구려땅 만주는 우리가 되찾아야 될 우리의 영토다, 라는 분위기가 조선 사회에 팽배한다.
아들 장수왕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의 발로라는 본질적인 측면은 무시한 채 만주 땅을 호령하던 우리 선조들! 언젠가는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땅! 이런 식의 정복주의적 욕구야 말로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야망과 일치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만주에 이미 살고 있는 선주민들의 존재는 싸그리 무시한 채 꾸역꾸역 넘어가서 땅을 차지하는 조선의 이민 물결이 실은 일본의 만주 진출을 배경으로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인은 불결하고 더럽다는 인식도 결국 서구인 혹은 일본인의 시각을 동일시 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청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나면서 더이상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알고 대신 일본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중국인에 대한 비하의식이 자리잡은 건 아닌가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국인에 대한 우월감이 존재한다.
2천 여년 동안 중국의 문화권에서 성장해 온 역사가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이게 다 해방 이후 경제성장 덕분일 것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근대화에 실패한 청 제국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단 잘 살고 봐야 한다는 것도 진리 같다.
식민지 현실에 신음하는 조선 지식인들이 비스마르크나 히틀러 같은 강력한 지도자에 목말랐던 점도 일견 이해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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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 몽골 제국과 고려 1
이승한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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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년 200권의 책을 읽자고 거창한 결심을 하고 시작했건만, 연초부터 대학원 영어 시험의 압박감에 발목이 잡혀 영어 공부는 하지도 않으면서 부담감만 엄청나게 느끼고 있다.
당근, 책은 한 자락도 못 읽고 있다.
일도 안 하면서 책도 못 읽고 있는 이 짜증스러운 상태!
마음이 울적할 때 책을 읽는 게 아니라 행복하고 기분이 좋을 때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이상하게 마음이 우울하면 책은 눈에 안 들어오고 TV만 줄창 보게 된다.
이게 능동적 독서와 수동적 시청의 극명한 대비란 말인가.  

하여튼, 이번 주에는 책을 하나도 못 읽고 밀린 감상문이나 쓰려고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역사저술가 임용한씨에 이어, 또 한 사람의 팬이 되야 할 것 같다.
이승한씨.
고려무인이야기에서 약간 감을 잡긴 했지만 무려 4권 씩이나 되는 바람에 대충 훑어 보고 말았는데 아무래도 다시 정독을 해야 할 것 같다.
글을 비교적 잘 쓰실 뿐더러 사서에 숨겨져 있는 행간의 의미까지 꼼꼼하게 잘 분석하신다.
논리의 비약도 적고 역사학도답게 근거가 분명하며 무리한 의견 개진도 하지 않는다.
마치 소설을 쓰듯 하나의 사건에 대해 기승전결 식으로 서술해 나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이런 책이 좀 많이 팔려야 하는데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는 있는지도 몰랐고 리뷰도 하나 없다.
왜 대중들은 이덕일류의 자극적인 소재에 관심이 많을까?
출판사의 홍보 부족인가?
역사서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물론 근거와 상식적인 선의 논리 전개이지만, 책의 가장 기본 조건은 바로 문장력인데 이 책은 두 가지 조건을 잘 만족시킨다.
특히 주제를 충렬왕 시대의 몽골 원정이라고 좁게 잡았기 때문에 더욱 분석적인 글쓰기가 가능했다.
시리즈로 계속 나올 생각인 것 같은데 앞으로 쭉 읽어야겠다. 

사실 고려 시대는 조선에 비해 덜 알려졌고 게다가 원 간섭기는 부마국이라는 다소 부끄러운 지위 때문에 더더욱 외면당하고 있는데 얼마 전 손창민이 주연한 신돈이라는 드라마에서 본격적으로 조명됐다.
나도 그 드라마 보면서 처음으로 忠자 돌림의 왕들을 비로소 인식하게 됐다.
이 책의 주인공은 처음으로 몽골 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는 충렬왕이다.
아버지 원종도 충경왕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재밌는 것은, <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 이라는 책과 이 책의 시각차다.
최씨 정권이 망한 뒤 고려 왕실은 환도를 결심하고 몽골에 가서 항복을 하려고 한다.
당시 원종은 60이 넘은 고령이었기 때문에 대신 세자 충렬왕이 중국으로 떠난다.
원은 아직 남송을 정복하기 전으로 3대 헌종 뭉케가 친정을 나가는 바람에 충렬왕 일행은 북경에서 황제를 만나지 못한다.
이들은 황제가 사천성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떠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황제가 붕어했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는다.
먼 이역땅에 좋은 일도 아니고 항복하려고 몇 달을 걸려 왔건만 황제가 사망했으니 누구를 만나야 한단 말인가.
이 때 원에서는 황제의 동생들인 쿠빌라이와 아릭 부케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과연 충렬왕은 누구에게로 갔을까?
<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 에서는 충렬왕이 상황 판단을 잘해 쿠빌라이에게 찾아가 항복을 했고 그 덕분에 고려는 부마국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독자적인 정치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충렬왕으로써는 당시 정세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고 쿠빌라이에게 항복한 것은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며 쿠빌라이가 고려를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시킨 것은 칸국의 독립을 인정한 자신이 정치 철학 때문이지 결코 고려에 대한 일방적인 호의 때문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내가 생각해도 후자 쪽이 좀 더 자연스럽다.
마치 한상기씨 책에서 후금이 인조반정 후 직접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온 까닭이 조선 정부의 외교 정책 변화 때문이 아니라, 명을 복속시킨 이상 더이상 청으로써는 조선과 화친을 맺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과 같다.
즉, 형제국에서 주종관계로 청의 외교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의 외교 정책은 인조반정 전후로 전혀 바뀐 것이 없고 광해군이 계속 왕위에 있었다 할지라도 청은 군신관계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저자는 쿠빌라이를 전투가라기 보다는 외교정책가로 본다.
쿠빌라이의 가장 큰 업적은 남송 정복인데 형 몽케 시절에도 시원찮아 직접 황제가 친정에 나섰고 황제의 위에 오른 후에도 남송 정벌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내전에서 승리한 것은, 아릭 부케가 칸국을 억압했던 반면 쿠빌라이는 독립을 인정하는 쪽으로 나갔기 때문에 각 칸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본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쿠빌라이는 끝없는 영토확장을 꾀하는 유목민에서 벗어나 중원에 정주하는 정착민이 됐고 원을 건설했다.
고려 역시 직접 지배보다는 간접 지배를 택했다.
60년 대몽 항쟁 덕분에 자주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평가에 대해 저자는 반대하는데 다른 책을 참조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부마국이 된 후 팍스 몽골리나 하는 표현에 대해서도 저자는 부정적이다.
원의 부마국이 된 후 고려가 감수해야 할 피해가 너무나 엄청났고 내정간섭이 심해 독립국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났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평화가 오긴 왔는데 고려 왕실이 무인 정권 이후 독자적인 위상보다는 원 황실의 비호 아래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100년도 못 돼서 조선이 세워질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읽게 된다. 

쿠빌라이의 일본 원정은 원 제국의 존속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만약 성공했다면 원은 보다 장기적인 제국 유지가 가능했을 것이고 동아시아 역사를 다시 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 번 모두 태풍으로 실패했고 그 후에도 일본 원정을 명분으로 고려에 엄청난 짐을 지우게 된다.
일본 원정이 남송 정복처럼 반드시 해야 할 필생의 업은 아니었던 탓에 내부의 반대도 많았고 쿠빌라이 역시 항복한 남송 군대와 고려인 위주로 원정군을 편성했기 때문에 태풍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승패 여부는 불확실 했다고 본다.
요컨대 1차는 규모가 너무 작았고 2차는 무리하게 인원을 모으다 보니 군량미 조달 등의 문제로 8월 태풍철에 출전하게 되서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하늘의 도움으로 국난을 극복한 것이니 막부 정권의 위상은 에도 시대까지 이어졌고 2차 대전 당시의 가미가제 특공대까지 이어지는 일본 정신의 상징이 된다.
아무래도 바다 건너 떨어져 있는 지정학적 이득을 많이 본 경우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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