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2disc) - 일반판
김윤석 외 감독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유명세로만 알고 있던 영화인데 갑자기 마음이 끌려 보게 됐다. 
영화 보기 전에는 하정우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까 이건 완전히 김윤석을 위한 영화다.
잘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정말 잘 한다.
영화볼 때 연기에 감탄하는 배우 중 하나가 송강호인데 송강호만큼 잘 하는 것 같다.
이런 배우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김명민은 더욱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또 전우치 보면 김윤석 연기가 좀 뜨는 느낌이 든다.
거북이 날다에서도 그다지 impressive 하지 않았고.
어떤 배우나 자기에게 맞는 옷이 있는 모양이다.
하여튼 추격자 보면서 김윤석이라는 배우에게 감탄했다.
혹시 무슨 상 안 받았을까?
연쇄살인범 하정우는 유명세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냥 그런 평범한 느낌?
오히려 그에게 쫓기는 서영희 연기가 돋보였다.
하정우는 역시 국가대표에서 빛이 난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라는 미국 프로파일러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유영철 사건 나기 전에 번역된 책인데 거기 보면 온갖 유형의 싸이코패스들이 등장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다이어트 하는 사람이 음식에 대한 욕구에 시달리듯, 혹은 섹스 충동이 드는 것처럼 이 싸이코패스는 샤워하다가도 살인 충동이 들면 밖으로 뛰쳐나가 누군가를 죽여야 비로소 그 욕구가 가라앉는다고 한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머리들을 모아 가방에 넣어 두고 살인 충동이 생길 때마다 꺼내 보면서 욕구를 가라앉힌다.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건 같이 사는 어머니도 모르고 있었다.
이런 정신병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접해서 그런지 영화 속의 지영민이라는 살인범의 심리 상태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하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원한 관계가 없는 이들을 그냥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역시 희생자들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이라는 것이다.
죽여도 누가 찾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반항도 못할 사람, 매춘 여성들을 제물로 삼는다.
전직 경찰이었다가 쫓겨나 포주가 된 엄중호가 그래도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까?
지영민은 덩치가 큰 엄중호에게는 꼼짝도 못하다가 미진이처럼 가냘픈 여성들에게는 야수가 되서 덤빈다.
그런 장면들이 너무나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설설 기고, 약한 사람에게는 악마가 되어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
체력적으로 약한 여자가 범죄자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정말 밤에 일찍 다녀야겠다.
사람이 죽어도 누가 나서서 찾아줄 사람이 없는 매춘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더 혐오스럽다.
저런 놈들이 변호사 잘 써서 정신질환 어쩌고 하는 걸로 빠져 나오면 사적으로라도 죽여 버리고 싶을 것 같다.
김윤석이 마지막에 지영민을 망치로 내리치려고 했던 그 분노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여형사가 지영민의 살해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린 점은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무릎팍에서 하정우는, 여형사가 슈퍼 밖에서 기다린 이유를 두고, 그녀도 무서웠던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영화 속의 엄중호는 전혀 지영민을 두려워 하지 않는데 여형사가 정말 그런 이유로 사건 현장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여자라는 점이 결국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GI 제인> 의 데미 무어처럼 여전사를 기대하는 건 역시 현실에서는 무리일까?
형사라면 여자라 할지라도 잔인한 범죄자를 두려워 하지 않고 제압할 수 있길 바라는 기대가 무리인가?
차라리 형사도 사람인지라 연쇄살인범 앞에 홀로 대항하려면 두렵다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기대어 표현했다면 공감이 가겠다. 
여자 형사이기 때문에 살해 가능성 있는 현장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설명은 공감하기 어렵고, 그게 정말 현실이라면 역시 남녀의 차이는 무시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런 절망감이 든다.
경찰서에 잡혀 있을 때 지영민이 여형사에게 생리 하냐고 비린내 난다고 하는 그 모욕적인 발언도 결국 우습게 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교회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지영민의 은신처를 찾아낸 엄중호의 추리는, 경찰의 직관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도 저런 순간적인 감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물론 운이 좋아야 하겠지만.
끝까지 지영민을 잡으러 다닌 엄중호는 전직 형사라는 직업적 본능에서였을까?
혹은 살해당한 미진이를 좋아해서?
애가 불쌍해서?
지영민이라는 놈이 풀려난 게 너무 분해서?
이 엄중호라는 캐릭터가 포주로 나오고 아가씨들 돈 때문에 행방을 찾는 걸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나쁜 놈에게 분노하고 정당한 댓가를 치르게 하려는 나름대로 휴머니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로 나쁜 놈은 아니었던 것이다.
서영희가 죽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 지옥의 소굴에서 빠져 나왔는데 결국은 어처구니 없게도 슈퍼 아줌마의 오지랖 때문에 죽게 된다.
다시 그 악한과 마주쳤을 때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징과 망치를 이용해 여자들을 죽이는 지영민이라는 캐릭터는 어쩐지 기독교에 대한 희화화처럼 보인다.
요즘 기득권화 되어 가는 기독교의 행태를 보면 일견 속이 좀 시원해지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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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0-04-2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윤석은 2008년 추격자로 남우주연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제 남우주연상 6개와 소소한 상까지 합친다면 10여개의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타짜때 아귀로는 남우조연상을 받았구요.
김윤석이 이름을 알리게 된 타짜에서 비롯된 이미지일지 모르겠으나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주로 하는 연기자로 각인된 가운데, 그는 카리스마의 이미지에 지배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인생에서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삶에 지친 가부장적 가장 성욱역과 거북이 달린다에서 조필성역처럼 릴렉스한 연기를 보면 그는 한가지 이미지나 김윤석만의 연기에 국한하지 않는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언급하신 내용중 추격자의 엄중호가 처한 현실과 연기캐릭터는 전우치의 화담과는 또 다릅니다. 최동훈 감독 말로는 방방뜨는 조금은 정신 없는 전우치의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로 화담의 캐릭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선에서 악으로 변해가는 그러나 세상에 회의감을 느낀 화담의 역에 딱 들어맞는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가벼운 연기는 가볍게 무거운 연기는 무겁게 하는게 연기의 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연기가 엄중호 같다면 이미 관객은 연기자 김윤석에게 질렸을겁니다.

올리신 글과 완전히 맥락이 같은 예는 아니지만 연기나 연기외적으로 비교가 되는 송강호를 같이 놓고 비교했을때
최근 송강호가 늘 송강호식 패턴의 연기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점이 김윤석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사람 모두 생활연기의 달인이나 송강호는 늘상 송강호만의 유머를 갖춘 인물을 연기합니다. 전혀 다른 영화의 캐릭터를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딱 송강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은 송강호만의 영화 고르는 방법중에 하나이고 또 그게 성공하고 있기도 하지만, 조금 질린달까요?
가장 최근작인 의형제에서는 '송강호식 연기'의 완전체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관객은 즐겁고 가볍게 영화에 임합니다.
하지만 그게 끝입니다. 늘 같은 송강호였을 뿐입니다.

반면 김윤석은 각각의 캐릭터에 맞게 연기 변신이 좀 더 자유로워 보입니다. 아마도 상황에 더 몰입되는 김윤식의 연기 스타일 때문이겠지만 말입니다.

있을때잘해의 불륜남과 타짜의 아귀, 천하장사마돈나의 동구아빠, 즐거운인생의 성욱, 추격자의 엄중호,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이 다 다릅니다. 그렇듯 이번 전우치의 화담 역시 그동안 김윤석이 보여줬던 그 어떤 연기와도 다릅니다. 각각의 영화와 그 캐릭터에 맞춰 연기할줄 아는 영리한 김윤석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추격자를 이제 보셨다고 하여 그전의 연기도 보지 못하셨을까봐 몇개 영화을 말씀 드립니다. 강한역이라도 그 차이가 얼마나 다양하게 나오는지, 같은 일상연기라도 맡은 캐릭터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marine 2010-04-2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윤식씨의 팬이신 것 같은데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캐릭터에 맞는 연기 변신은 제가 보기엔, 송강호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역에 녹아들어 갑니다. 주관이 많이 들어있는 배우 사랑이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아바타 - Avata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역시 난 SF는 안 된다.
전혀 집중하지 못했고 영화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잤다.
분명한 스토리가 있는 타이타닉이 훨씬 감동적이고 재밌었다.
마이클 셔먼이 이런 얘기를 했다.
왜 외계인은 꼭 인간처럼 두 손과 두 발이 있고 직립보행을 하는 걸까?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게 자기가 속한 문화권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메론이 만든 외계인 역시 키가 좀 클 뿐 우리와 똑같이 생겼다.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급격하게 흥미를 잃고 만다.
그렇게 말도 많고 시끄러웠던 3D 역시 자막이 앞으로 튀어나온 느낌 말고는 별다를 게 없었다.
역시 나는 휴 그랜트 나오는 로맨틱 영화가 딱 맞다.
스토리가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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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세계박물관 - 하룻밤에 만나보는 세계적인 박물관 탐방과 기행 단숨에 읽는 시리즈
CCTV 지음, 최인애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에서 한창 문화 바람이 부는 것일까?
대중 교양 수준으로 기획된 가벼운 읽을 거리들이 많이 번역되는 것 같다. 
제목부터 마음을 확 끌어당겨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었다.
아주 깊이가 있는 책은 아니지만 (역시 TV 방영물의 한계라고 할까?) 시도가 좋아 재밌게 읽었다.
미술관 외에도 이라크나 이집트 같은 유명 박물관에 대해서도 지면을 할애한다.

가 보고 싶은 박물관이 많다.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 같다.
평생의 취미로 세계 각국의 박물관, 미술관 방문하기를 해도 재밌을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잉카전에 다녀온 후 고대 안데스 문명에 대해 급속도의 관심이 생기면서 멕시코나 페루 같은 남아메리카에도 가 보고 싶고, 언제나 나의 이상향인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도 가 보고 싶다.
이라크의 국립 박물관에도!
패키지로 여행가면 이런 박물관은 스킵한다는 게 문제다.
루브르처럼 아주 알려진 곳 말고는 비유럽 지역에서는 박물관은 늘 빠져 있다. 

저자들이 중국 사람이라 그런지 세계 5대 박물관으로 북경에 있는 고궁박물원도 포함시켰다.
대만에 여행갔을 때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라고 자랑하던 가이드가 생각난다.
중국 박물관을 세계적인 박물관이라고 칭하기 어려운 이유로 자국의 유물이 대부분인 것을 들었는데 대신 침략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아시아나 아프리카 침략해 뺏어 온 유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 역시 베트남이나 티벳 등 주위 국가에 패권을 휘두른 적이 없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미국처럼 돈으로 사들이지 않는 이상 일정 부분은 침략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는 게 오히려 솔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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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가구의 멋 보림한국미술관 6
김미라 지음 / 보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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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림 미술관 시리즈는 도판이 많고 짧지만 수준있는 텍스트가 곁들어져 짧은 시간에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박물관에서 전시된 사랑방을 본 다음부터 목가구의 맛을 알게 됐다.
조선의 미학이 담백함과 은근함임을 알겠다.
나뭇결로 아름다움을 살린 목공예는 선비들의 사랑방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화려하게 장식한 부녀자들의 칠기나 자수 제품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근대화에 실패하여 식민지가 되는 바람에 면면히 이어 온 전통의 미학마저 내팽개져진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 우리 것을 돌아볼 만큼 여유가 생겼으니 잊고 지냈던 아름다운 옛 것들에도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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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과 친인척
지두환 지음 / 역사문화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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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루한 가계도 나열일까 봐 몇 년 전부터 도서관에서 눈으로만 보다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왕의 후궁이나 공주, 왕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궁금증이 생겨 빌리게 됐다.
여러 왕이 있었는데 숙종이나 영조처럼 너무 알려진 왕은 흥미가 좀 떨어지고, 요즘 한창 열심히 보고 있는 추노의 배경이 되는 인조 시대가 궁금하기도 해서 그 아들인 효종을 골랐다.
효종은 소현세자의 동생이기도 하니 관련 내용이 한 둘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인조는 반란으로 왕이 됐으면서도 두 번이나 호란을 맞는 와중에 아버지 추숭 사업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낸 게 도무지 정이 안 가는 인물이라 싫었다.
나에게도 정통성을 갖지 않고 왕위를 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추노에서 봉림대군 대신 끝까지 소현세자의 갓난쟁이 어린 아들을 왕으로 받드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내용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어느 정도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으니 더욱 흥미롭게 읽히는 것 같다.
조선 후반기로 올수록 적장자가 왕위를 잇는 경우가 드물어 어쩐지 조선 시대 왕들은 정실 부인과는 공식적인 관계만 갖기 때문에 자식이 없었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따져 보면 대체적으로는 다들 중전과도 사이가 원만했던 것 같다.
숙종이나 영조, 정조 등이 좀 특이한 경우였지 자식을 많이 낳은 중전들도 많았다.
여기 나온 효종의 부인 인선왕후 장씨도 1남 6녀의 많은 자식을 둔 다복한 여인이었다.
열 여덟에 낳은 가엾은 큰딸 숙신공주는 심양에 볼모로 끌려갈 당시 세 살의 어린 나이로 궁녀의 등 위에서 사망하고 만다.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 (나중에는 왕이 될 존귀한 몸이) 오랑캐라고 얕보던 야만인의 나라에 끌려가는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그 여정에서 큰딸까지 잃었으니 효종 부부의 당시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 두 부부는 볼모로 끌려가서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타국 땅에 볼모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의지할 곳은 부부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효종은 심양 땅에서 현종을 비롯 1남 3녀를 얻는다.
그러니 조선 역사에서는 전무후무 하게 현종은 남의 나라 땅에서 태어난 왕인 셈이다.
(하긴 몽골 여자와 결혼하고 몽골 어머니를 둔 고려 후반기 왕들도 있으니 놀랄 일은 아니구나)
다섯째 숙정공주는 세자로 책봉된 직후 아직 궁으로 들어오기 전 사가에서 낳았고 막내 숙녕옹주는 안빈 이씨가 낳았다.
이 여인은 효종 시대가 좀 더 조명되고 나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도 좋을 것 같다.
<이산>의 성송연처럼 말이다.
그녀는 효종의 유일한 후궁이었는데 볼모로 효종이 끌려갈 때 남장을 하고서 따라 나설 만큼 충성스러웠다고 한다.
살아 생전 작위는 숙원에 불과하여 아들 현종이 민망해 품계를 올려 주라 청했으나 나중에 네가 베풀어 줄 은혜를 아껴 둔 것이라고 했다.
북벌을 이루기 위해 금욕적인 삶을 산다고까지 한 왕이니 확실히 효종은 기개가 굳고 점잖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
실록이나 행장에 좋은 말만 써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서도, 효종과 인선왕후 모두 심양에서 세자 내외를 받들어 모시고 세자가 된 후에는 아버지 인조에게 효도하였으며 어머니 사망 후 계비로 들어 온 어린 장렬왕후에게도 효성을 다하였다고 하니 부부가 정말 모범적이다.
현종은 아버지의 후궁 숙원 이씨를, 임금이 된 후 숙의에 봉하고, 손자 숙종은 마침내 안빈이라는 작호를 내린다.
숙종 때까지 살았던 걸 보면 출생 연도는 모르나 꽤나 장수했던 것 같고 현종이 庶妹 에게 매우 자상했으며 남편의 사후에 아들과 손자에게 빈의 칭호까지 받았으니 정말 복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이런 일이 순탄하게 이뤄진 걸 보면 정비 인선왕후와도 사이가 좋았을 것 같다. 
사위인 금평위 박필성에 관해서는 특별히 언급을 해야겠다.
유일한 혈육인 숙녕옹주는 불행히도 마마에 걸려 20세에 사망하고 만다.
그런데 사위 박필성은 무려 96세까지 장수해 효종의 현손인 영조에게 궤장을 하사받기까지 한다!
96세라니,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드문 나이인데 그 옛날 조선 시대에 이런 장수 노인이 있었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수명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11세에 네 살 위의 숙녕옹주와 혼인하였는데 그녀가 결혼 5년 만에 천연두로 사망하는 바람에 16세에 혼자 되어 무려 80여 년을 혼자 살았다는 점이다.
비공식적인 소실은 있었겠지만 재혼 삼혼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조선 시대에 공식적인 부인 없이 홀로 지내야 했던 이 분의 삶이 안타깝다.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역시 2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다섯째 딸 숙정공주의 남편 동평위 정재륜은 외아들마저 사망하자 대를 잇기 위해 숙종에게 재혼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대간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아예 의빈은 재혼할 수 없다는 법규가 생겼다.
정재륜은 76세까지 혼자 산다.
공주와 결혼하면 얻는 것도 많으나 그만큼 감내해야 할 고통도 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인조의 미움을 사 죽은 게 아니라 친청파인 김자점의 모함으로 급서하고 아들 대신 봉림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소현세자가 정말로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 시름시름 앓다가 침 잘못 맞고 죽은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가 죽고 난 후 당연히 세자위는 원손 이석철에게 가야 할텐데 종법을 어기면서까지 (그래서 예송논쟁의 발단이 되면서까지) 동생 봉림대군이 세자위에 오른 것이다.
원손의 나이가 이미 10세였으니 왕세자가 되고도 남을 나이다.
예종이 일찍 죽었을 때 원손인 제안대군이 너무 어려 조카 성종에게 왕위가 넘어 간 것과도 다른 일이다.
이 책에 따르면 역시 저주 사건에 휘말려 시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강빈의 아버지 강석기는 반청파였다.
그러므로 세자 내외는 반청파로 분류되어 귀국 후 친청파인 김자점의 음모로, 원손 대신 친청파 장인을 둔 봉림대군이 세자가 됐다는 것이다.
봉림대군의 장인은 장유다.
청나라 문명을 받아들이려고 한 소현세자는 장인 때문에 반청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즉위 후 북벌론을 주장한 효종은 역시 장인 때문에 친청파로 분류되어 선택을 받았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다.
소현세자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젊은 나이에 느닷없이 죽은 옛날 사람들은 하도 많아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여하튼 그의 사후 원손이 유배되고 아내가 사형을 당했던 것은 확실히 소현세자를 위험하게 봤던 친청파 김자점이 한 몫 했던 것 같다.
김자점은 인조의 딸 효명옹주의 시아버지인데 여전히 명나라를 받다는 사대부들 사이에서 강빈의 옥사 이후 비난을 받게 되고 결국 효종 즉위 후 사형당한다.
당시 정황에 대해 좀 더 알야봐야겠다.
효종은 인조와 다섯 살이나 어린 계모 장렬왕후에게 매우 효성스러워 칭찬을 많이 받았다는데 그래서 더욱 아버지의 선택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손자들과 며느리까지 죽이는 아버지를 보면서 봉림대군 내외가 세자 시절 얼마나 몸을 낮추고 두려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고 보니 인조도 영조 못지 않게 괴팍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재미없는 제목과는 달리 무척 재밌게 읽었다.
실록이 이렇게 흥미진진한지 새삼 느낀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다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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