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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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 쓴 <완당평전> 을 꽤 재밌게 읽었던 탓에 김정희 최고의 역작이라고 하는 세한도에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 다른 사람이 쓴 세한도에 관한 책이 나왔길래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됐다.
세한도라는 그림이 지니는 의미 뿐 아니라, 당시 조선에 불어닥친 청나라 열풍이나, 김정희가 어떻게 유배를 가게 됐는지 또 어떤 심문을 받았는지 등을 꼼꼼히 기술하고 있어 도움이 됐다.
18세기, 19세기라고 하면 조선의 진경산수화가 최고봉에 이르고 실학이 융성해서 중국 문명으로부터 독립된 조선의 문화가 꽃을 핀 시기라고 알고 있는데, 김정희 평전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결국 청나라의 문화는 오늘날의 미국 중심 세계화처럼 조선보다 한 발 앞서가는 문화이고 당시 지식인들은 이런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중화 의식도 결국은 자신을 속이는 요식 행위에 불과했단 말인가?
김정희가 한호나 이광사 등의 글씨를 촌스럽게 여기고 중국의 명필들을 배우기 위해 애를 썼다는 일화가 과연 실감난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니 결국 우리 것이 최고다는 자부심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음을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 같다. 

김정희가 유배를 가게 된 당시의 심문 과정을 밝히는 추국일기가 실려 있어 흥미로웠다.
워낙 복잡다단해 왜 김정희가 죄를 받게 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의외로 죄인들이 곤장을 몇 대 맞지도 않았는데 사망하는 걸 보면 장1백대의 형량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했을지 의문이 든다.
고문을 계속 하면서 곤장을 친 것이라 상해가 가중되어 일찍 죽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일반 관아가 아니라 국문을 하는 곳에서 친 것이라 치명적인지 모르겠다.
김정희를 물고 늘어진 김양순의 고신이 계속 나와 읽으면서도 저 사람 저러다 죽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옥중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김정희는 여섯 차례에 걸쳐 고문을 받고 곤장 서른 여섯 대를 맞았다고 기록됐다.
한 번 고문할 때마다 대여섯 번 곤장을 치는 걸로 나온다.
이런 걸 보면 장 1백대라는 형벌은 죽을 수 있는 치사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문 내용은 좀 주먹구구식이다.
한문을 번역한 것이라 전후사정이 세세히 밝혀지지 않아 그런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니 죄를 니가 알렷다, 사실대로 고하라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대답하는 죄인 역시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나는 결백하다 이렇게만 주장한다.
증거 위주라기 보다는 정황을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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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입학식 -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키워드 한국문화 4
김문식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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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이 알려진 주제라 아주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래도 주제를 한정시켜 상세한 설명을 하는 시스템이 마음에 든다.
효명세자의 입학도 그림은 박물관에 가서도 본 적이 있다.
조선 후기는 근대의 바로 앞 시대라는 점 때문에 확실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느낌이다.
보통 왕세자는 여덟 살에 성균관으로 행차해 입학례를 치뤘다고 한다.
우리도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학문을 시작하는 나이는 비슷했던 것 같다.
다만 처음으로 궁을 나와 생전 처음 보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둘러 싸여 복잡한 예를 행해야 했기 때문에 어린 세자로서는 상당히 긴장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인 부왕들은 가능하면 입학례를 미루려고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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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이병주 전집 29
이병주 지음 / 한길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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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서재에 있는 책을 읽게 됐다.
이건 순전히 아빠 취향이다.
집에 내려 왔는데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제목이 특이해 골라 잡게 됐다.
역시 대표작인 <마술사>가 가장 흥미로웠다.
그러나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뭐랄까, 너무 작위적이고 통속소설 느낌이 강했다.
도입부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송인규라는 마술사가 서커스단과 계약을 맺고 인도 마술을 보여 주기로 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게 되자 자긴 못한다고 버틴다.
큰 돈을 들여 그를 고용한 곡마단원들은 송인규를 폭행하고 화자가 객주에서 그를 구해주면서 사정 얘기를 듣게 된다.
송인규는 일제 말기에 학도병으로 버마에 끌려간다.
거기서 일본 관리들에게 폭탄을 투여한 후 잡힌 버마인들 중, 크란파니라는 인도 마술사가 끼여 있다.
그는 크란파니의 독립의식에 감동받아 식민 조국의 현실에 눈 뜨고, 사형 직전에 그와 함께 탈출한다.
여기까지는 꽤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송인규가 크란파니 집에 머물면서 마술 수행을 하는 이야기부터는 좀 황당무계한 느낌이 강했다.
불가촉천민인 크란파니가 자기 계급에서는 똑똑한 여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웃 버마에서 아홉 살짜리 어린 아이 인레와 혼인했다는 설정도 부자연스럽고 (평등을 외치는 자신의 생각에 모순되지 않은가) 송인규가 수련 끝에 깨달음을 얻고 희열을 느껴 인레와 섹스를 하게 된다는 것도 억지스럽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소설 속의 섹스는 지나치게 미화됐던지, 혹은 지나치게 천시된다.
결국은 스승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셈인데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법열의 순간을 섹스로 승화시켰다는 그런 논리가 억지스럽다.
또 한 번 송인규와 섹스를 했기 때문에 순결을 잃어 다시는 크란파니를 모실 수 없다는 설정도 남성 위주의 시각처럼 보인다.
결국 성이란 언제나 남성이 주도권을 쥐기 마련인가?
송인규가 인레하고만 섹스를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술집 여자와 정사를 나눈 후 마술을 하다가 한쪽 눈을 잃었다는 설정도 너무나 작위스럽다.
부부 관계도 아닌데 평생 한 사람과만 섹스를 해야 한다는 게 도덕적으로 합당한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도덕심이 발달한 나라에 대체 색주가는 왜 있는 것인지.  

맨 마지막 단편, <망명의 늪> 에서도 섹스 얘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술집 작부에게 얹혀 사는데 그가 무위도식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의 큰 물건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이 좋은 걸 누구에게 보내, 절대 못 보내 하는 식의 대사는 어쩐지 현실적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
남자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큰 성적 환상을 갖고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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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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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은 좋으나 컨텐츠는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워낙 흥미진진했던 주제라 기대가 너무 커서인가?
아니면 15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으로 담아 내기에는 너무 큰 주제였을까?
언론에 처음 정조의 어찰이 공개됐을 때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이덕일 등에 의해 정조 독살설이 역사인양 유포됐던 상태라, 그 배후로 지목됐던 심환지에게 정조가 보낸 300여 통의 어찰이 공개됐으니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이덕일씨는 이 어찰 공개로 인해 더더욱 정조 독살설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의 반증 논리 역시 썩 훌륭하지는 못하다.
너무 당연한 것이라 따로 증명하기가 오히려 어려운 탓이었을까?
정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의 책이 출간되길 기대해 본다. 

역사적으로는 정치 상황과 관련된 내용들이 조명을 받겠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정조의 개인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더 흥미롭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닮았는지 꽤나 격정적이고 다혈질의 성격이었던 것 같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외숙모에게 보낸 안부 편지를 보면 꼬마 아이의 붓글씨 솜씨에 미소가 지어진다.
글씨쓰기와 편지쓰기를 꽤나 즐겨했던 모양으로 이번에 공개된 것 외에도 혜경궁의 집안에서 첩으로 묶은 어찰도 다수 존재한다고 한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는 정치 사안에 대한 긴박한 문제들이였기 때문인지 급하게 속필로 써 내려갔고 한문이 아닌 우리말 어순으로 쓴 문장도 많았다.
심지어 "뒤죽박죽" 이라는 한글 단어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하니, 오늘날로 보면 심환지와의 사이에 핫라인이 형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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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 [할인행사]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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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본 DVD 
봐야지, 하면서 벼르고만 있다가 드디어 봤다.
첫 시작이 어쩐지 지루하고 클라쎄처럼 느껴져 예전에도 보려다 말았었는데 코메디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로베르토 베니니, 매우 독특하고 개성있는 감독이자 배우인 것 같다.
이탈리아 영화는 그 유명한 젤소미나의 "길" 이후 처음인데 확실히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래서 다양성이 중요한 건가 싶다.
귀도의 아름다운 연인 도라는 실제 베니니 감독의 아내였다.
우아하고 단아한 이탈리아 고전적인 미인 같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유대인 남편과 아들이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강제로 태워진 걸 알고 역으로 달려가 독일군에게 도라가 자기도 태워달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결과적으로 귀도는 수용소까지 따라온 도라를 구하기 위해 여자수용소로 잠입했다가 발각되어 죽고 말았으니 도라가 집에서 기다린 것만 못하게 됐지만, 남편과 아들을 따라 기꺼이 수용소까지 함께 가고자 한 이 여인의 신실하고 깊은 사랑에 감동했다.
자기 힘으로는 남편과 아들을 이 끔찍한 현실에서 구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고난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 결연하고 담대한 도라의 태도에 마음 한켠이 서늘해졌다.
진실한 사랑이란 바로 저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나 역시 곧 결혼을 하고 지금 남자친구를 평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고자 하지만,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과연 그녀처럼 삶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진 남편을 기꺼이 따라 나설만큼 사랑하는지 다시 한 번 반문해 봤다. 

도라는 기차에 올라탔지만 남자 여자가 갈라져 수용소에서도 남편과 아들을 만나지 못한다.
수용소 내에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아내를 위해 귀도는 장교 클럽의 축음기를 마이크에 대고 그들이 처음 만났던 오페라 극장에서 들었던 아리아를 들려준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를 보는 것 같았다.
귀도가 한 줄기 희망을 걸었던 독일인 군의관은 어처구니 없게도 수수께끼 때문에 그를 찾은 것이었다.
한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원의 빛을 애타게 찾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단지 궁금한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귀도에게 접근했다니 인생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DVD의 장점인 셔플에서 다시 한 번 이 영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단지 홀로코스트의 끔찍함을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도는, 인생은 의지와 약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약간의 상상력,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
인간의 존엄성이 짖밟히는 수용소에서조차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간다는 이런 주제의 영화를 보면, 인간이야 말로 매우 정신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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