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복식
유희경, 김혜순 지음 / 꼬레알리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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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0만원이나 되는 책, 도서관에서가 아니면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신간 코너에 있길래 얼른 집어서 읽었다.
문화관광부에서 후원을 받아 제작했는지 첫 장부터 유인촌 장관의 감사의 말씀이 나온다.
조선 시대 왕의 복식은 늘 궁금했지만 제대로 알기 어려웠던 부분인데 사진과 함께 상세한 설명이 달려 있어 굉장히 유익했다.
특히 즉위식 때 입던 면복의 12 문양이나 입는 순서 등을 자세히 서술해 놔서 손에 잡힐 듯 이해가 됐다.
황제는 12장복, 왕은 9장복, 세자는 7장복, 세손은 5장복으로 신분마다 차이가 있다.
면류관에 달린 유(旒)의 숫자도 황제는 12개, 왕은 9개로 차등을 뒀다.
열 두개의 문양은, 일, 월, 성신, 산, 용, 화(火), 화충(華蟲), 종이(宗彛), 조(藻), 분미(粉米), 보, 불인데 왕은 이 중에서 일, 월, 성신을 뺀 나머지 아홉 개의 문장을 새길 수 있고, 세자는 일, 월, 성신, 산, 용을 제외한 일곱 개, 그리고 세손은 일, 월, 성신, 산, 용, 화, 화충을 제외한 다섯 개를 새길 수 있다.
화충은 보통 꿩으로 나타내고, 종이는 종묘제례 때 술을 올리던 술잔인데 안에 용맹을 상징하는 호랑이와 지혜와 효성을 상징하는 원숭이를 그려 넣는다.
조는 수생식물을 그려 넣고, 분미는 백성을 뜻하는 것으로 여러 개의 쌀알을, 보는 결단을 상징하는 도끼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은 亞 형으로 나타낸다.
일, 월, 성신은 천체를, 산과 용은 각각 지상과 물을 상징하므로 산천천하를 상징한다.
이 때도 황제는 용의 발톱을 다섯 개, 왕은 네 개만 그린다.
면복은 머리에 쓰는 면류관, 겉에 입는 의와 상, 안에 입는 중단, 무릎을 가리는 폐슬, 뒷쪽을 덮는 대대와 후수, 그 위에 늘어 뜨리는 패옥, 허리에 차는 옥대, 버선인 말, 신발인 석, 손에 드는 규, 목에 걸치는 방심곡령으로 이루어진다.
이 용어들을 제대로 몰랐는데 사진으로 상세히 나와 있어 이제야 감이 잡힌다. 

백관들의 하례를 받거나 공식적인 의식을 치룰 때 입는 옷은 조복으로 영어로 formal dress로 번역했다.
이 때 쓰는 관이 황제는 통천관, 왕은 원유관인데 늘어뜨리는 구슬의 숫자가 다르다.
입는 옷은 강사포로 붉은 색이다.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왕의 직무복인 상복은 매미 날개 모양의 익선관과 곤룡포인데 왕은 홍색, 세자는 흑색을 입는다.
능행 등 외출시에 입는 옷은 융복으로 갓과 같은 흑립에 철릭을 입는다. 

 


철릭은 겉옷인 의와 치마인 상이 하나로 합쳐진 형태다.
전시에는 구군복을 입는데 머리에는 전립을 쓰고, 두루마기처럼 생긴 포에 붉은 소매를 덧댄 동달이에 팔이 없는 겉옷 전복을 입는다.
사극에 등장하는 무인복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도포와 두루마기의 차이가 약간 헷갈렸는데 도포가 삼면이 뚫린데 비해, 두루마기는 전부 막혔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사진이 워낙 상세하게 잘 나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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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과 궁녀 - 역사를 움직인 숨은 권력자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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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으로 유명한 박영규씨 책.
오래 전에 막 출간됐을 당시 어쩐지 드라마 <대장금> 의 인기에 편승된 책 같아 흥미는 있었지만 외면했던 책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서점에서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된 걸 보고 우연히 읽게 됐는데 생각보다 꽤나 전문적인 내용이라 도서관에서 빌려 본격적으로 읽게 됐다.
1편은 환관의 역사와 유명한 환관에 관한 내용인데 사료가 부족하다 보니 중국 역사를 많이 차용했다.
무엇보당 유용했던 부분은 고려 시대, 특히 몽골에 지배를 당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환관들을 통해 당시 역사를 상세히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은 고려 시대도 드마라로 종종 만들어져 예전보다는 더 친숙하게 와 닿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선왕조이 비하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이런 책을 통해 당시 역사에 대한 지식을 보충하게 된다.
제일 흥미있는 왕은 원의 황제 계승에도 깊이 관여하고 티벳으로 유배도 갔던, 세조의 손자이기도 했던 충선왕일 것 같다.
충선왕은 충렬왕과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의 아들인데 원나라 황실의 힘을 이용해 아버지와 정권 다툼을 벌여 아버지를 상왕에 앉히고 등극했을 정도로 정치력이 대단했다.
그는 원 황실에서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계국공주와 결혼했고 무종이 즉위할 때 큰 공을 세워 고려왕 뿐 아니라 심양 왕의 지위도 하사받는다.
나중에 두 개를 겸한 게 문제가 되자 고려왕은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 주고 심양왕만 유지할 정도로 심양왕의 지위가 높았다고 한다.
그를 공격한 고려 출신 환관이 바로 독고사이다.
영종이 즉위하자 독고사가 충선왕을 모략하여 티벳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는데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하여 오히려 독고사를 죽이고 다시 정치에 복귀한다.
얼마 전에 공민왕을 드라마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 충선왕이라는 인물도 드라마화 하기에 굉장히 매력적일 것 같다.
그 외에도 고려가 계속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게 힘을 쓴 방신우라든지, 8세에 즉위한 충목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고용보, 충렬왕 때의 환관 도성기와 최세연 등 원에 건너가 출세한 환관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려 입장에서 보면 남의 나라에 가서 본국의 왕을 쥐고 흔든 굉장히 나쁜 간신의 전형이겠으나 신분 사회에서 놀라운 출세를 한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인물들이라 꽤나 흥미롭다.
조선의 유명한 환관으로는 대범하게 세제 시절 영조를 공격하려다 오히려 경종에게 처형당한 박상검이나 조선 초 환관제도를 정착시킨 김사행과 조순, 태종을 보필한 노희봉, 단종의 폐위와 함께 처형된 엄자치, 연산군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김처선 등이 있다.
환관들이 황제를 쥐고 흔들었던 중국의 역사에 비하면 고려나 조선은 환관이 활약할 수 있는 폭이 상당 부분 제한되어 있었는데 환관이 왕의 친위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아 전통적으로 왕권이 신권에 비해 약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 외 궁녀 편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어 아주 흥미롭지는 않았다.
역시 부족한 사료의 한계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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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식물의 자연사
로빈 C. 모란 지음, 김태영 옮김, 이상태 감수 / 지오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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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디서 봤을까?
서점 신간 코너에서 봤나, 아니면 신문의 북섹션에서 봤나?
식물 쪽은 별 관심이 없고 더군다나 예쁜 꽃이 피는 종자식물도 아니고 볼품없는 양치식물이라니, 어떻게 해서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모르겠다.
책 디자인은 무척 예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이 정말 쉽다!
서문에 밝힌대로 생물학 수업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정말 평이하고 흥미롭게 쓰여졌다.
나물로 무쳐 먹는 고사리가 이렇게 매혹적인 생명체였는지 누가 알았겠는가.
예전에 읽었던 고생대의 귀여운 지배자 삼엽충에 대해 매력을 느낀 것처럼 독서를 통해 주변에 있는 생명체에 또다른 관심을 갖게 됐다.
책이야 말로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천이다. 

양치식물은 종자식물과는 달리 씨앗이 없고 대신 포자로 번식한다.
암술과 수술이 만나 배아를 이루는 종자식물은, 이들을 매개하는 곤충 같은 생명체가 필요하므로 번식 조건이 까다롭지만, 양치식물은 잎 뒷면에서 만들어진 포자가 바람만 있으면 멀리 이동해 발아할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 각지에, 특히 섬처럼 고립된 곳에 많이 퍼져 있다.
오히려 고립된 지역에서는 다양한 종이 살기 어렵기 때문에 키 큰 식물들이 햇빛을 막지 않아 고사리류처럼 땅에 붙어 자라는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된다.
포자가 자라나 종자식물의 암술과 수술 같은 경란기와 장정기의 배우자체 세대가 된다.
이들이 수정을 하면 뿌리와 줄기와 잎이 있는 접합자로 자라나게 되고 성체가 되는 과정이 바로 포자체 세대다.
다시 이들은 포자를 만들어 번식한다.
포자에서 배우자체로 자라는 것은 유성세대, 포자로 발아하는 것은 무성세대니 두 세대가 번갈아 가면서 번식하는 특이한 생활양식을 보인다.
무성생식은 일종의 영양생식인데 마치 접붙이기를 하는 것처럼 줄기나 뿌리에서 싹이 자라나 커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클론의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군집을 이루는 지의류에서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염색체가 1N이면 상동 염색체가 없어 열성 유전자도 다 발현이 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 돌연변이 과정에서 생긴 나쁜 유전자가 계속 다음 세대에 축적하게 된다.
반면 2N의 염색체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대립인자가 있기 때문에 열성은 발현을 안 한다.
그러므로 2N의 염색체 구조가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재밌는 게 염색체 수가 서로 다른 것끼리 교배가 되는 잡종의 경우, 딸세포에게 똑같이 분배가 안 되므로 불임이 되기 마련인데 감수분열을 하는 대신 이 불임잡종들끼리 염색체 배가가 이루어져 두 배의 염색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감수분열 때 둘로 똑같이 나눠질 수 있기 때문에 생식이 가능해진다.
대신 염색체 수는 두 배로 커질 것이다.
식물에서 보이는 독특한 생식 방법 같다. 

석탄의 원료가 되는 인목의 존재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됐다.
고생대의 석탄기는 양치식물의 천국이라 인목이라는 종류가 수 십 미터까지 자랄 수 있었는데, 페름기로 넘어 오면서 기후가 건조해져 이들이 멸종하게 되고 이 유해가 바로 오늘날 연료로 이용되는 석탄이라고 한다.
영국 박물관에 가 보면 인목 문양으로 장식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 외에 식물양, 즉 식물에서 양이 자란다고 알려진 중세의 전설이 사실은 목화를 착각했다는 것, 나무고사리로 조각품을 만든다는 것, 열대 지방에 종이 다양한 이유, 티아민 분해효소 때문에 희석시키지 않으면 각기병에 걸려 죽게 되는 날두라는 호주 원주민들의 먹거리, 그늘에서 살아남기 위해 채광성을 띄는 고사리, 천적이 없어 순식간에 호수를 뒤덮어 버린 생이가래 등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정말 많았다.
중생대의 백악기 하면 공룡이 멸종한 시기로만 생각하지만, 소행성의 충돌 이후 햇빛이 차단되면서 사실은 70%에 달하는 엄청난 생물들이 멸종했고 이 시기를 견뎌낸 후 신생대 3기 때 폭발적으로 증가한 종류가 바로 고사리라고 한다.
바람을 이용해 포자로 번식하고 햇빛이 적어도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전략을 가졌기 때문에 제일 먼저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를 고사리류 스파이크라 부른다고 한다.
고사리는 어디서나 식용으로 사용되는 줄 알았는데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지에서만 먹는다고 한다.
약간 쌉싸름한 이유도 타닌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고 천적인 곤충류를 막기 위해 독성분이 있어서인데 끓이면 대부분 없어지지만 발암 물질로도 연구되고 있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하긴 하다.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인데 책을 읽으면서 식물에도 많은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책의 날개에 소개된 여러 식물 관련 책들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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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1 - 동서 문명의 교차로, 자세히 읽기 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1
유재원 지음 / 책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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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었는데도 왜 중요한 트로이나 에페소스는 안 나올까 궁금했는데 알고 봤더니 2권이 또 있었다.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해서 읽은 책인데 1권만 비치해 놨던 것이다.
400 페이지가 넘는 꽤나 상세한 설명이 돋보이는 기행문이다.
단순한 기행문이라 보기에는 내용이 상당히 자세해서 오히려 터키의 역사에 관한 개략적인 설명서 같기도 하다.
이번에 터키 여행을 하고 나서 대체 터키란 어떤 역사를 가진 곳인가 궁금하던 차에 마침 신간으로 출간된 이 책이 눈에 띄여 읽게 됐다.
그리스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현지 발음이나 역사, 신화에도 정통하여 저자에게 신뢰가 생긴다.
사실 여행은 1주일간의 패키지 상품이라서 스스로 찾아 본 게 아니라 그런지 지식이 많이 쌓아지는 못했다.
다만 워낙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이 많아 그 느낌만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목화의 성이라 불리는 석회암 온천 지역 파묵칼레, 아킬레우스의 전설이 담겨 있는 그 환상적인 고대 도시 트로이, 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에페소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아름답고 감탄을 자아낸 성당과 모스크의 도시 이스탄불!
스페인에 가서도 볼 게 많아 대단한 관광대국이구나 감탄했는데 터키는 무려 7500년 전의 인류 최초 도시 차탈휘익이 있는 곳인만큼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말로 어마어마한 유적들과 기념물이 남아 있는 곳이다.
고대 기독교와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이슬람의 문화까지 어울어져 정말로 매혹적인 곳이 터키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설명은 상세하고 꼼꼼한데 비해 사진이 너무 작아 책에서 설명하는 부분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올컬러로 사진을 많이 싣긴 했는데 사이즈가 너무 작아 뭘 말하고자 하는지를 모르겠다.
도판을 큼직하게 싣게 되면 책 가격이 끝도 없이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행문 형식이 아닌 본격적인 터키 문화 해설서가 될테니 출판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이해는 되면서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생각의 나무> 에서 나오는 고대 도시 도판집에 혹시 터키는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제일 큰 소득은 로마에 점령당하기 이전의 역사를 알게 된 점이다.
히타이트나 아시리아, 리디아, 페르가몬 등 들어는 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인지 어디에 세워졌는지 늘 모호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았고 역사책에 소아시아로 등장하는 오늘날의 터키야 말로 메소포타미아와 더불어 인류 문명의 탄생지이며 고대 그리스 세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됐다.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하투샤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치 가 본 것처럼 기억에 오래 남게 됐다.
그저 철기 문화가 시작된 문명, 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기원전 18 무렵 건설되어 12세기 경 바다에서 온 민족들이 고대 청동기 문명을 끝장낼 때 기울어져 최종적으로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또 늘 헷갈렸던 리디아나 리키아가 대체 어디인지 어떤 나라인지도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었다.
서로마에 비해 관심이 적었던 비잔티움 제국과 셀죽 튀르크, 그리고 오스만 제국 등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이해는 하게 되서 소득이 크다.
2권을 이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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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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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만에 본 영화.
정말 오랜만에 극장 가서 봤다.
토요일 오후 대학로에서 예매도 안 하고 자리 있으면 보려고 했던 안이한 자세 때문에 전석 매진에 깜짝 놀라 두 타임이나 뒤로 미뤄 본 영화.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인지 (특히 임산부 보면 안 된다는 식의 위협성 멘트들) 기대치에는 못 미쳤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봤다.
조금만 지루해도 금방 맥을 놓치고 자버리기 일쑤인데 어쨌든 안 자고 끝까지 봤으니까 기본은 한 셈이다.
강우석 영화답지 않게 비교적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풀어간 것 같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는 유준상이 특히 반가웠고 내가 좋아하는 박해일과 정재영이 주인공으로 나와 더 맘에 들었다.
허준호는 연기를 곧잘 하는 것 같으면서도 유선생이라는 신비로운 캐릭터를 표현하기에는 어쩐지 힘이 좀 딸리는 느낌이 들었다.
최악의 캐스팅은 역시 유선.
누가 해도 비슷했겠지만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정말로 극을 이끌어 가는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참 드문 것 같다.
초반의 폭력적인 장면, 특히 형사로 분한 정재영이 범인들 때리는 장면이 상당히 노골적이고 잔인해 움찔거리긴 했지만 무서운 건 딱 거기까지고 전반적으로 스릴이 넘치는 영화는 아니었다.
스릴 보다는 오히려 너무 폭력적이라고 해야 하나?
최고의 반전은 역시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사람으로 나오는 천용덕이 사실은 좀 타락하기는 했으나 결정적으로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좀 다른 길로 새는 것 같지만, 대체 죄란 무엇이고 구원이란 무엇인지, 신앙과 하나님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회의했다.
기독교의 가장 타락하고 교조적인 모습을 바로 유선생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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