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법사
샐리 하비 리긴스 지음, 신소연.김민구 옮김, 이주형 감수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중국인이 썼던 현장법사와 같은 내용인데도 서술적 차이가 보인다.
서구인이 보는 시각은 동양인과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실감했다.
사람 이름도 마찬가지인 게, 중국 사람의 저서에서는 계현왕이라 하면, 이 책에서는 하르샤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또 기독교인의 관점으로 불교를 비교하는 점도 흥미로웠다.
석가모니를 죽이려고 했던 사촌 데바닷타를 가롯유다와 비교하고, 현장이 공부한 날란다 승원을 기독교의 수도원과 비교하는 식이다.
현장은 단지 불법을 구하러 떠난 승려이기 보다는, 16년 동안 중앙 아시아와 인도를 여행한 위대한 7세기의 여행가이고, 19년 동안 불경을 번역한 전문 번역가다.
그래서 저자도 현장을 14세기의 모로코인 여행가 이븐 바투바와 비교하기도 했다.
현장이 남긴 <대당서역기>는 오늘날에도 7세기의 중앙 아시아와 인도의 풍습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또 그가 번역한 반야심경이나 금강경도 매우 중요한 경전으로 읽히고 있다.
단순히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로만 알고 있었는데 인간 현장의 일생도 매우 흥미롭다. 

인도 하면 힌두교나 이슬람교가 성행하고 정작 불교는 탄생지에서 배척받아 불교사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인도에 얼마나 많은 성지와 유물이 있는지 새삼 확인했다.
현장도 전 인도를 돌면서 부처의 전설과 일화가 남은 곳을 일일히 살펴 보면서 일종의 성지 순례를 했다.
그 때 가져온 많은 불상들이 7세기 이후 중국과 한국, 일본 등지에 전해져 복제되어 왔음은 물론이다.
인도의 부처 조각상이나 벽화를 봐도 그렇고 설화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처의 느낌은 아니었다.
생김새부터가 이국적이고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이 드러난다.
또 이슬람이 침입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불교 문화가 파괴되고 사라졌지만, 그 전까지는 불교 역시 인도 대륙에서 상당 기간 동안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 때 아시아 곳곳으로 뻗어나가 오늘날 동남아시아나 동북아시아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비롯해 키질 석굴이나 베제클릭 석굴 등 중앙아시아 곳곳에 불교 문화 유산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한 때 기독교에 경도되었던 때는, 예수가 동정녀에게 출생했음은 당연한 교리라 생각하면서도 석가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나왔다는 교리는 유치한 민담 정도로 치부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서구적 발상인지 모르겠다.
불교가 이렇게 심오하고 오랜 역사와 체계를 갖춘 종교임을 관심을 갖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불교를 인도 전역에 전파한 것은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을 비롯 다음 쿠샨 왕조의 카나슈카 왕 등이고 굽타 시대 때도 힌두교가 성행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불교를 우대했다고 한다.
그런 국가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오늘날 세계 3대 종교로 남은 것은 불교가 가진 철학적 신학적 깊이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불교의 교리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 

아쉬웠던 점은, 인도나 중앙 아시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현장이 다녀갔던 지명들이 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지 감이 거의 안 온다는 것이다.
첫 장에 지도가 실려 있어 참조하긴 했으나 워낙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기회가 된다면 이번에는 중앙 아시아와 인도를 여행해 보고 싶다.
현장의 루트를 따라 불교 성지를 순례하는 것도 무척 의미있는 여행이 될 것 같다.
한 매력적인 여행가이자 번역가, 학승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대인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교류를 했음을 깨달았다.
결국 오늘날의 지구촌 시대는 끊임없는 이동과 교류를 통해 쌓여온 결과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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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한복 2011-10-0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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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근대회화전 도록 : 대(大) - 터너에서 인상주의까지
크리스토퍼 뉴얼 지음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얼마만에 가 보는 전시회인가.   
정말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 갔다.
작년에는 전시란 전시는 빠지지 않고 죄다 쫓아다녔는데 올해는 시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잡다한 일들로 관심이 뜸해졌던 것 같다.
이 전시도 우연히 광고를 보고 알게 됐다.
직접 가서 보고 도록을 구입할 것인가, 먼저 구입할 것인가로 고민한 이유는 역시 책에 담겨진 평일 관람권 때문이었다.
대도록은 비싸기 때문에 소도록에 눈길이 먼저 가지만 결국은 모든 작품이 다 나와 있다는 유혹에 못 이겨 항상 대도록을 들고 나왔던지라 평일 관람권이 들어 있는 대도록은 먼저 주문했다.
예습을 하면 어쩐지 작품이 주는 첫 느낌이 전문가에 의해 좌지우지 될까 봐 그래서 흥미가 떨어질까 봐 나중에 해설을 읽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책도 먼저 왔겠다, 예습을 하고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역시 시간부족으로 먼저 전시회에 다녀왔고 집에서 도록을 보고 복습했다.
전시회에 다녀오면 도록이 꼭 필요한 이유는, 짧은 시간 동안 감상했던 작품들을 리마인드 하기 때문에 두 배의 감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때 받았던 느낌을 여백에 쓰다 보면 보다 더 밀도있는 감상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주 비싸지 않는 이상 도록은 항상 구입하는 편이다.
아쉬웠던 점은 도록의 해설을 그대로 음성으로 옮겨 놓은 게 오디오 가이드인 경우가 많아 이번에는 대여를 안 하고 들어갔더니만, 이럴 수가, 모든 작품에 해설이 단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거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봤다.
그렇지만 오디오 가이드의 해설 없이 처음 내 느낌 그대로 작품을 편견없이 대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시간이 맞아 도슨트의 해설도 들을 수 있어 더 알찬 전시였다.
방학이라 그런지 평일 오후 시간대인데도 초등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감상에 상당히 방해가 되긴 했지만 (너무너무 떠든다...) 어린 아이들이 미술에 관심을 갖고 전시회장을 방문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해외 유명 전시회의 아쉬운 점은 대작은 한 두 점에 불과하고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나 습작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 전시회 역시 터너의 작품은 두어 점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습작이 끼어 있었다.
전시회의 포스터로 쓰인 조지 클라우슨의 작품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대작도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유명 작품을 실제로 본다는 기쁨은 못 느끼더라도 대신 몰랐던 것, 관심없던 분야의 여러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기쁨이 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내가 언제 또 영국 풍경화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겠는가.
풍경화는 별로야, 영국은 별로 유명한 작품이 없어, 이런 편견을 일거에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평소에 별로라고 생각했던 수채화의 매력을 발견한 점이 가장 큰 소득이다.
수채화는 어쩐지 유화에 비해 작품의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성의가 없어 보여 진정한 그림은 유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맑은 담채 느낌의 수채화로 그려진 풍경화는 진한 느낌의 유화와는 또다른 신선하고 상쾌한 분위기를 전달했다.
수채화로도 유화처럼 짧은 붓터치를 여러 번 사용하는 기법도 있고 무엇보다 여름날 저녁의 서늘한 분위기나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의 느낌들을 너무나 훌륭하게 표현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임을 이번 전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영국에서 풍경화가 발달한 배경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날씨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풍경의 느낌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순간의 것이라 영국 화가들은 그 순간을 그림으로 영원히 남기고자 했다.
한국과 비슷한 크기의 국토라고 들었는데 자연환경은 꽤 다양한 것 같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바다에 대한 애착도 무척 강해 보인다.
시골에 대한 영국인들의 열정은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전통과도 맞물려 보이고, 자연에 대한 강한 향수가 느껴진다.
그런 분위기가 풍경화라는 위대한 장르를 만들었을 것이다.
터너는 영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화가이기 때문에 그 명성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나 작품으로 접하니 다시금 그 천재성에 놀라게 된다.
도슨트도 설명한 바지만 겨우 열 일곱 살에 그린 수채화를 보면 피카소가 어렸을 때부터 라파엘처럼 그렸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특히 대기의 표현이라든가 후기로 갈수록 추상으로 변해 가는 화풍을 보면 선구자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실감이 난다.
문득 드는 생각이, 진정한 예술가와 단지 대중의 시선을 끄는 엔터테이너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싶다.
현대미술은 기술적인 것보다는 상상력, 자극성, 아이디어 등으로 승부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를테면 데미안 허스트처럼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는 동시대 작가가 우리 다음 세대에게도 (혹은 수백 년이 지나서도) 터너처럼 진정한 예술가로 평가받게 될까?
이미 평가가 끝난 기존의 위대한 화가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데 주목받는 동시대 작가의 명성은 과연 그 예술성과 실력에 걸맞는 것인지 늘 의심이 간다.
어차피 과거에도 시대를 앞서가고 선도하는 새로운 화풍은 기존의 아카데미로부터 쓰레기라고 평가절하 당했을텐데 말이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영원한 미의 전당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마느냐는 결국은 내가 죽고 나서 후손들이 판가름할 일인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미술 교육은 꼭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문적인 화가는 아니더라도 어떤 풍경이나 정물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삶이 굉장히 풍부해질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여행을 가면 거기서 느낀 점을 그림으로 그리라는 문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사진을 찍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을 것 같다.
사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찍어서 보여 주지만,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감정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 근대 화가들이 고전주의 시대와는 달리 자연의 재현 대신 그것을 보고 느낀 화가의 주관적 감정을 그리고자 한 것이 이해가 된다.
직업적인 화가가 될 것은 아니니 약간의 기술과 기본적인 지식만 있다면 자신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정말 매혹적일 것 같다.
그래서 일요화가 같은 아마추어 모임들이 많이 생기나 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여름날 해가 뜰 무렵의 하늘이다.
여름에는 눈이 빨리 떠지는데 새벽 5시 즈음이 되면 밤새 더웠던 공기도 서늘해지면서 파아란 여명이 밝아온다.
그 때의 그 서늘한 대기와 푸르스름한 하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름날 새벽이야 말로 내 마음 속에 가장 이상적으로 자리잡은 풍경이다.
이런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번 전시회에는 여름날 저녁의 서늘한 분위기도 많이 그려졌다.
화가들이 표현하고 싶은 바로 그 순간, 감정이 절정에 다다르는 그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시회장에서 화가들이 그린 실제 풍경을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살짝 울고 말았다.
사진과 비슷하면서도 화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 감동의 순간이 그림에서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정말로 예술가들은 훌륭한 족속들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왜 원본보다 도록이 더 나은 작품들이 있냐는 것이다.
전시회장에서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도록으로 보면 굉장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작품들이 있다.
물론 반대로 도록에서는 별로인데 실제로 보면 감격적인 작품도 있다.
사진보다는 원본이 나은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작품을 찍은 사진이 더 멋진 경우가 있다.
풍경이야 사진 작가의 구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원본 그대로 찍은 축소판 사진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는 대체 뭔지 모르겠다.
나는 인물화를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전시회장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의외로 내가 녹색과 파란색 계통의 색감을 굉장히 좋아해 풍경화에 끌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시골보다는 도시가 좋아, 이런 주의인데 은근히 나도 자연의 매력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녹색 중에서도 막 피어난 새순 같은 연두색이나 진한 초록색의 발랄하고 상큼한 느낌들이 너무 좋다.
파아란 대기와 신선한 숲과 초목이 어울어진 풍경화는 생각만 해도 상쾌하고 시원하다.
이번 전시에서 또 느낀 점은, 영국의 풍경화와 프랑스의 인상주의가 서로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인상파는 실내에서 고전적인 주제를 그리는 대신 밖으로 나가 직접 스케치를 하며 빛이 변하는대로 색깔을 표현하는 외광화파가 아닌가.
대기와 빛의 변화에 따라 자연을 그리는 것, 인상파와 영국 근대 낭만주의 시대의 풍경화는 맥이 닿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영국 인상주의 작품들을 보면 (핸리 허버트 라 생처럼) 마네나 모네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래서 프랑스 화가들도 터너를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인정했다고 한다.
영국 인상주의와 프랑스 인상주의를 비교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전시였고 도록도 훌륭하다.
예술은 드라마나 영화, 수다 떠는 것, 맛있는 음식 등등처럼 삶을 자극하는 즐거움 중 하나인 것 같다.
<재미>가 느껴진다는 말이다.
약간의 배경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tv처럼 일차적으로 접근하기는 다소 어렵지만, 어쨌든 스노비즘이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삶을 자극하는 기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오락보다 한 단계 높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고상하고 다른 것들에 비해 월등하게 우월한 분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확실히 예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굉장한 기쁨을 주는 놀라운 매체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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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 - 전시회 관람에서 현대미술 감상까지
크리스티안 제렌트 & 슈테엔 T. 키틀 지음, 심희섭 옮김 / 열대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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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별로...
서점 신간 코너에서 보고 산뜻한 디자인에 <미술>도 아닌 <미술관>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으나 내용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너무 가볍고 비판적이라 나같은 미술 초보자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럽게만 읽힌다.
현대 미술이 자본에 의해 좌우되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작품의 예술성이나 질보다는 파격성, 개념 파괴, 혐오감 부추기기 등으로 나가고 있음은 모두가 인지하는 문제점이긴 하지만, 이제 겨우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초보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 같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감상할 수 있을지, 작품은 어떻게 보는 것인지, 나만의 작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정석다운 안내서를 원했던 나로서는 비판 가득한 책이 영 반갑지가 않다.
물론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많이 공감했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예술이란 대체 무엇인가?
전시회장에 걸리면 바로 예술이다는 저자들의 자조적인 대답이 오늘날 예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말해 주는 것 같다.
낸시 랭을 과연 예술가가 할 수 있을까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잔 남자들의 이름을 빼곡히 도배한 침대를 버젓히 작품이라고 전시한 트레이시 에민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말 예술이야 말로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진정한 대중적 상품이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디 워홀의 전시장에 가서 감동을 받고 팝 아트에 관심이 생기고 현대 미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걸 보면 단순히 비싸게 거래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덩달아 나도 감동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의 문제제기처럼 왜 제프 쿤스와 데미안 허스트는 인정받고 다른 작가들은 억만장자가 되지 못하는 걸까?
그들이 다른 동시대 작가들은 넘을 수 없는 뛰어난 예술성을 가지고 있어서?
물론 단지 그것만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인정받고 못 받고의 차이는 단순히 시장의 선택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당 부분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100% 예술적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51%의 재능과 49%의 엔터테니너 기질만 있으면 된다는 데미안 허스트의 말이 솔직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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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 (2Disc)
장훈 감독, 강동원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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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했을 때 놓친 영화라 DVD 나오길 학수고대 했었다.
생각만큼 재밌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라 그런대로 재밌게 봤다.
강동원은 <전우치전>에서 완전 반한 배우이고, 송강호는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대사와 행동들.
무슨 역할을 맡아도 몸에 밴 것처럼 잘 소화해 낸다.
<쉬리>와 모티브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촌스럽다는 느낌도 들었다.
너무 진부하다고 해야 하나?
국정원에서 정리해고 당한 극중 송강호 캐릭터가 너무 실감났다.
마지막에 둘이 화해하는 장면은 너무 작위적이라 오히려 극의 사실감을 떨어뜨렸고 특히 그림자의 총에 수십 발을 맞고도 멀쩡하게 살아나는 강동원이 어처구니 없긴 했지만 해피 엔딩이라 다행스럽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 궁상맞고 슬픈 결말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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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전의 모든 것 - 전략, 전술, 무기, 지휘관 그리고 전함
이에인 딕키 외 지음, 한창호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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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발견하고 도서관에 신청했던 책인데 역시나 다른 전쟁 관련 책처럼 완독에 실패하고 말았다.
내가 약한 쪽이 바로 전쟁 부분인데 그 중에서도 배에 관한 부분은 특히 이해가 잘 안 된다.
반 룬의 <배 이야기>도 야심차게 도전했으나 읽다 말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내가 기계에 워낙 문외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초반의 살라미스 해전이나 악티움 해전 등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고대의 배들은 기본적으로 노의 힘으로 가는 갤리선인데 쇠돌기로 상대편 배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격법이었다.
살라미스 해전의 경우 이순신의 명량대첩처럼 물살이 빠르고 좁은 부위로 페르시아 대군을 유인하여 대파했다.
지리적 이점을 살린 케이스라고 할까?
악티움 해전은 아우구스투스 쪽에서 안토니우스의 보급로를 차단했기 때문에 거대한 군사들의 보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장기전으로 가는 바람에 패배한 경우다.
일찍 도망쳐 버린 안토니우스나 클레오파트라 모두 승리에 대한 의지가 약했다고 볼 수 있겠다.
사람의 힘으로 가는 노 대신 바람을 이용한 거대한 범선을 이끌고 프랑스를 침략한 에드워드 3세의 슬뤼해전도 재밌게 읽었다.
방어전에 나선 필립 4세의 배들은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로 묶이는 바람에 기동성을 상실해 영국 군함에 공격 대상이 됐다.
이 때의 전투는 해전이라기 보다는 육상전의 형태를 띄었다고 한다.
15세기로 오면서 대포가 해전의 중요한 무기로 인식되었는데 최무선이 등장해 무척 반가웠다.
좀 더 꼼꼼히 읽었더라면 완독할 수 있었을텐데 무척 아쉽다.
다음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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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joon 2011-01-0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꼼꼼히 다시 읽다 보면 실망하시게 될 겁니다. 번역이 원전을 다 말아먹은 경우(....ㅡㅡ;)입니다.

1. "선장이 함장에게 ~라고 명령" : 군함에서 함장과 선장이 따로인 직책으로 있는 경우는 없다. 일등 항해사를 함장이라고 번역한 것 같다.

2. 흙으로 구워 만든 대포: 원문을 보면 'earth cannon'이라고 해 놓았다. '지자총통'의 영문식 표기이다. 아무리 관련조사 부족으로 용어를 몰라도 그렇지, 흙으로 구운 대포에서 포탄이 발사될 것 같은가. ('heavan cannon'(천자총통)이 나왔다면 뭐라고 번역을 했을꼬.......ㅡㅡ)

3. 인물들의 이름 표기가 달라진다.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프랑스 사령관 이름이 '비유뇌브' 로 적었다가
'벨레누브'로 적하는 등 표기가 오락가락 거리고 있다. 이건 좀 아니지....

영어가 된다면 원전으로 보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