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차악의 선택 - 자살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
박형민 지음 / 이학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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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나 역시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느 정도는 충동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대체 어떤 심리 상태에서 자살을 선택하는지 궁금하던 차에 연구서가 나와 반가웠다.
자살을 병리학적으로 보기 보다는, 유서의 분석을 통해 개개인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 책이라 그만큼 객관성도 있고 이론만 내세우는 오류를 저지르지도 않았으나 대신 명확하게 수렴되는 주제의식이 약한 편이다.
그러나 주변에 자살을 주제로 한 책이 드물기 때문에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자살은 정신과 의사들의 연구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사회학자의 관점으로 자살을 해석했다.
특히 유서를 남긴 사람들을 연구했기 때문에 책 제목대로 자살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자살자들에 의해 선택된, 충동적이거나 병적인 행위가 아닌, 명백히 의식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소통이나 해결의 한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유서를 남기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대부분 수신자가 있고 그것을 읽는 사람이 뭔가를 해결해 주길 바라고 (꼭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할지라도 감정적인 부분에서라도) 쓰게 된다.
빚을 많이 진 사람은 자신의 죽음으로 빚이 탕감되길 바랄 것이고,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가 죽어 가족들이 병원비에서 벗어나길 바라기도 한다.
혹은 내가 죽음으로써 사랑했던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의 고통을 이해해 주길 바라기도 하고 분노 때문에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 상대가 괴로워 하길 바라기도 한다.
저자가 지적한 것 중 하나가, 문제 상황 그 자체 때문에 자살을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인식하는 자살자의 태도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다고 한다.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자살자가 내리는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보통 우울증이 있는 경우 자살 확률이 높아지는데 그 까닭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타인 대신 자기 자신을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건강한 자아상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거식증에 걸리는 사람 역시 왜곡된 신체 이미지 때문에 충분히 날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전히 뚱뚱하다고 인식하여 음식을 거부하다 죽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허망한 말장난 같은 긍정의 힘이라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말 같기도 하다. 

나는 항상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강인한 인간상이 늘 꿈꾸는 모델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매우 사회적인 생명체임을 깨달았다.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살아가는 사람마저도 주변의 것과 감정 교류나 의사 소통을 원한다.
무인도에 억류된 로빈슨 크루소가 앵무새 하고 말하고, 톰 행크스가 배구공을 친구로 삼듯 말이다.
인간에게 있어 타인의 평가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겠다.
자살자들 역시 문제 상황 그 자체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한국처럼 성공과 실패에 유난히 민감한 사회에서 자살은 증가할 수 밖에 없는 문제 같다.
주변의 평가에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듣고 싶어 하고, 관심과 애정을 받길 원하며 또 내가 관심쏟을 상대를 원한다.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자살자들은 최선이 아닌 다음 선택으로, 혹은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차악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몬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이 있다거나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용기로 살 것이지, 이런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락사가 허용되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살한 어떤 사람의 유서처럼, 스스로 선택하여 목숨을 끊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적대시 되고 남은 가족들이 피해를 보는 분위기는 분명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겠으나, 자살자들이 기대한 것처럼 과연 사회가 한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가끔 분신자살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런 거창한 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심지어 개개인의 감정 변화에도 남의 죽음이 과연 얼마나 환기를 불러 일으킬지 회의적이다.
상대방이 내 죽음으로 자책감을 느끼고 괴로워 하길 바라는 마음에 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문제 해결을 바라고 죽는 경우 역시, 이미 죽은 사람의 말에 누가 제대로 귀를 기울이겠는가?
자살자들의 소통에 대한 욕구는 충분히 이해를 했으나 그 성과는 매우 미미하다는 게 책을 읽고 난 후의 결론이다.
그러므로 좀 더 효율적인 방법적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 장에서 자살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을 간단히 나열했는데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긴 어려울 것 같고, 잘못된 사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도움 정도는 주변에서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신과도 좋은 상담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서 결론은 아이러니 하게도 더 열심히 살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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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2011-08-1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정말 조사중에
느낌표 15개!!!!
정말 고마워요 ㅠㅠㅠ
 
한국의 가난 (반양장) -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김수현.손병돈.이현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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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 블로그에서 보고 제목이 impact 해서 관심을 갖고 보게 된 책이다.
굉장히 도발적이고 애둘러 가지 않고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낸 느낌이 들어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의외로 가독성도 높고 흥미진진했다.
우리 주변의 실생활을 리얼하게 그려내서인지 공감대가 확 오고, 아프리카의 절대 가난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았다.
한국은 이미 잘 사는 나라 축에 끼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선진 복지 국가라기 보다는 기아에 허덕이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우리 사회에서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부의 불평등, 소득 재분배, 부의 지위의 세습, 사회 안정망 결여와 같은 상대적 가난의 해소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못 먹고 물이 없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대륙의 가엾은 빈곤층들을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함께 부대끼고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 빈곤 못지 않게 상대적 빈곤도 정말 심각한 문제다.
언젠가 주간지에서 쪽방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월세도 안 되서 일세를 내고 하룻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상상 외로 많았고 그마저도 안 되면 노숙자로 떠돌이 신세가 된다고 한다.
쪽방촌은 가 본 일은 없지만, 서울 시내에 널려 있는 열악한 환경의 고시촌은 나도 한 달 정도 살아본 적이 있다.
시험 준비할 일이 있어서 지방에서 올라와 잠깐 기거했는데 남녀 분리도 안 되어 있고 불나면 딱 타 죽겠다 싶을 만큼 열악한 환경 그 자체였다.
또 놀라웠던 게 나처럼 수험생들이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부분이 직장인들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보증금도 없고 월세 아끼기 위해 고시원에 거주하는 것이다.
서울의 주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느꼈다.
서울로 서울로만 외치고 있으니 살만한 집을 찾는다는 건, 어찌 보면 일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에서도 복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주택 정책을 들었다.
북유럽 같은 경우, 공공임대주택이 굉장히 많아 집을 사기 위해 전재산을 쏟아 붓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다고 한다.
스웨덴의 복지 정책을 자세히 연구한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북유럽은 워낙 인구 밀도가 낮은 곳이기 때문에 서울 같은 대도시의 주택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영국 역시 공공주택을 많이 만들어 보급했다고 하지만, 런던 집값이 너무 비싸 보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한국 같은 수도 중심 국가에서는 인구의 과밀을 해결한다는 게 참 어려운 문제 같다.
캐나다나 미국 등지에서도 땅은 넓지만 도시가 슬럼화 되어 살만한 환경을 찾아 교외로 나가기 때문에 출근할 때 도심으로 진입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한다.
교통체증이 주거문제 만큼 심각하게 떠오른 것이다.
어쨌든 정부 차원에서 공공주택 사업에 더욱 매진해야 그나마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 보금자리 주택 때문에 집값이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여전히 유럽의 복지국가에 비해 공공주택 비율은 턱없이 낮다. 
영국에서는 빈민촌을 정비하는 방법으로 지역 사회에 복지시설을 짓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강제 철거나 도시 정비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실제 거주민을 배려하는 정책 같다.
북유럽에서 흔히 시행되는 주택 정책으로는, 주거비 보조 정책이 있다.
중산층 거주 지역에 서민층이 살 수 있도록 임대료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여러 계층이 섞이게 된다.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의 뚜렷한 구분선을 흐릿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 같다.
어떤 방법을 쓰든 결국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조세 저항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한 바대로, 서민층의 가용소득이 높아져야 소비가 진작되고 내수 산업이 활성화 될 것이다.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공공사업을 벌이는 것처럼, 사람들이 돈을 쓰게 만드려면 생활에 꼭 필수적인 비용들을 최대한 줄여서 여유돈으로 소비를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들의 규제를 풀고 세금을 감면하라는 기업 쪽 주장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들린다.
남는 돈이 있어야 쓸 돈도 생길 게 아닌가. 

사실 나는 대한민국 의료 정책이 잘 되어 있고 전국민 의료 보험 제도가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책을 읽으면서 무상의료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실감했다.
사회적 계층이 하락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질병이라고 한다.
실직이나 가정해체 보다도 질병이 훨씬 더 가혹하게 작용한다.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도 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반드시 직장에 나가야 한다고 한다.
완전한 무상의료는 불가능 하겠지만 의료비 지원은 생활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같은 맥락으로 교육비 무상 지원도 중요하다.
사립 대학의 등록금이 천 만원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고등교육이 상류층으로 가는 첩경인 우리나라의 경우 돈 없어 대학 못 가고 다시 가난해지는 빈곤의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벌써 공교육만으로는 좋은 대학에 못 가기 때문에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붓고 덕분에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야 명문대에 진학하는 어처구니 없는 풍경이 일상화 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부당하고 기막힌 일인가.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공교육 강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줄이는 시도라도 활기차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교육(특히 명문대 진학)과 부의 세습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공교육 강화는 필수적인 정책이라 하겠다. 

그 외에도 결혼이주민이나 탈북자, 외국인 근로자 등의 문제들도 거론됐는데 다들 너무 중요한 사안들이라 잘 해결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엊그제 읽은 <십자가 초승달 동맹>에 나온대로 테러 위협 이런 문제들은 얼마나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소재인가?
한국의 가난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비하면 말이다.
정작 관심을 기울여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제쳐두고 집권층의 국민 관심 돌리기용의 화제거리에 이용되고 있지는 않는지 감시의 눈을 부릅뜰 때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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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초승달 동맹 -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기독교 이슬람 연합 전쟁사
이언 아몬드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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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단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처음에는 복잡다단한 11세기 에스파냐 소왕국들이 등장해 지루하고 맥을 못 잡았는데 뒤로 갈수록 책에 빠져들어 유럽과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어제 읽었던 비잔틴 제국에 관한 책에서 봤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해 이해를 도왔다.
역시 배경지식이 있어야 쉽게 이해가 간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이제는 어쩐지 한물 간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의 책을 읽었을 때 흔히들 하는 비판처럼 무조건 종교가 모든 대립의 원인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었다.
오래 전에 읽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대립 관계를 역사,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 매우 섬세하게 분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미디어에서 하기 쉬운 말로, 대중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헌팅턴을 써먹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든다.
어쨌든 종교라는 이름으로 표면화 되고 있기는 하나, 궁극적으로 집단끼리의 갈등은 오랜 전통이자 역사이고 단지 신앙 하나만이 유일한 결정의 기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유럽의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어떻게 동맹을 맺었는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세세하게 파헤친다.
사실 이 책의 주제는 동맹 그 자체보다도, 유럽이 단일 기독교 문명권이라기 보다는 이슬람과 오랜 세월을 공존해 왔고 이슬람 역시 유럽 문명의 주된 요소임을 보여 주고자 한다.
당장 4백여 년에 걸친 에스파냐의 이슬람 지배를 봐도 그렇고, 오스만 투르크의 발칸 반도 지배 역사도 그렇다.
19세기 이후 완전히 역전되긴 했으나 유럽과 이슬람 세계와의 공존은, 동아시아와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역자가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 그런지 각주가 매우 꼼꼼하다.
성실한 번역자를 만난 덕분에 더 재밌게 읽었다.
특히 후기에서, 이슬람이 유럽 문화에 자양분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유럽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인가는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날카롭다.
또 흔히 거론되는 관용이라는 것도, 다수 지배 집단이 소수집단에게 일정 부분을 허용해 준다는 의미이지, 결코 이것이 완벽한 공존이나 교류로 이해되서는 안 된다는 한계를 설정한 점도 인상깊다.
저자 역시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 사례들이 여러 이해관계 속에 얽힌 결과이지, 상이한 두 문화의 완벽한 조화로 이해되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결국 인간이란 개인적으로는 신념과 우정, 믿음 등등 가치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익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역사가 명백히 보여준다.
특히 역사에서 한 집단의 선택을 보면 더더욱 말이다.
개인과 전체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
개인의 가치와 집단의 가치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독실한 신앙인이 공적으로 반드시 성경에 나온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로 경제적 이권 뿐 아니라 국내의 정권 다툼을 위해 외세를 불러 일으키는 고전적인 동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용병과 농노라는 측면에서의 접근이 신선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역사는 병농일치제를 통해 농민이 나가서 병사가 되는 시스템이라 그런지 용병 제도를 보기 힘들다.
그런데 유럽 역사에서는 이 용병 제도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여러 민족과 정치 집단들이 뒤섞여 살아온 역사를 반영하는 듯 하다.
제국의 지배자는 농노들을 수탈하기 때문에 전쟁이 터졌을 때 함부로 농민에게 무기를 맡기지 못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비잔틴 제국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란의 위험 때문에 선뜻 그들을 군사로 만들지 못하고 실제로 압제에 시달리는 농민층은 지배자가 바뀌는 것을 환영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지배자는 돈을 주고 용병을 불러 오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종교와 민족 집단들이 출신 성분이나 신앙에 관계없이 싸우게 되는 것이다.
속국이라는 종속 관계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같은 기독교인들끼리 공격해야 할 때도 있고, 프로테스탄트를 압박하는 가톨릭 세력에 맞서 오스만 투르크 쪽에 협력하여 싸우는 경우도 흔했다.
크림 전쟁의 경우는 언제나 앙숙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투르크 편에서 싸우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현실정치는 개인의 신앙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분명한 논거를 대고, 물 흐르듯이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해 나가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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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 변화와 혁신의 천 년 역사
이노우에 고이치 지음,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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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려 천 년이나 지속된 제국이다 보니 꽤 방대한 분량일 줄 알았는데 막상 받아 놓고 보니 겨우 25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
글자 사이 간격도 꽤 넓은 것 같아 혹시 일본에서 출간될 때는 문고본 형태의 가벼운 분량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적은 분량의 책은 기왕이면 문고본 형태로 싸게 출판해 주면 참 좋을텐데...
내용은 이해하기 쉬웠다.
비잔틴 제국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을 하고 시작했지만, 저자는 천 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무리하게 담으려 하지 않고 이 제국이 어떻게 시작해서 발전하고 다시 쇠퇴하게 됐는지 핵심 사항을 짚어가며 간략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설명한다.
우리와 같은 동양인의 관점이라 그런지 더 친숙한 느낌이 든다. 

제일 인상깊었던 분석은, 대체 왜 비잔틴 제국에서 기독교를 받아 들였냐는 것이다.
당시 기독교가 제국 내에 워낙 많이 퍼져 기독교인들과의 제휴를 위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용인했다는 말은 그저 일설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제로 기독교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가 즉위할 때까지 국교이면서도 다른 종교와 공존했고 이교도적인 관습법도 많이 용인됐다고 한다.
저자가 기독교인이 아니라 그런지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날카로운 관점을 유지하는데, 비잔틴 제국이 진정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가 실은 황제의 전제 정치에 적합한 이념이 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독교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다가 박해받고 순교한 전적이 있지만,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보면 여러 구절에서 현재 권력을 가진 자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민주정 전통에서 전제정으로 넘어 오는 과정에서 기독교는 황제가 전권을 갖는 전제정의 이념적 기반으로 재탄생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굉장히 새로운 측면 같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로마법 대전을 만들고 정복 사업을 펼친 위대한 황제이면서도, 니카 반란을 계기로 전제 정권을 성립한다.
터키에 가서 이 학살이 일어났던 경마장 터를 직접 봤었다.
가이드가 여기서 3만명의 시민이 죽었다고 하는데도 잘 실감이 안 났는데 책을 보니 꽤나 심각했던 일종의 시민 봉기였던 것 같다. 
로마 제국이 빵과 서커스를 계속 공급할 수 있었던 까닭은, 속주 이집트에서 건너 오는 식량 탓이었는데 제국이 이슬람의 침입을 받아 식민지를 잃자 더 이상 시민 계급은 제국에 기생해서 살 수 없었다.
비잔틴 제국이 강했던 까닭은 일종의 병농일치제로, 농민이 스스로 무장을 해서 싸우러 나갔기 때문인데 농촌이 피폐화되면서 군역과 조세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토지를 팔고 노예가 되어 의무로부터 벗어난다.
농촌 사회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군사력 약화를 불러 일으켰고 이 틈사이로 성장한 것이 귀족 계층이었다.
13세기 초에 4차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나서도 여전히 지방에서 비잔틴 제국이 명맥을 이어가고 결국은 수도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귀족들의 힘이라고 본다.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대로 만약 비잔틴 제국이 과거의 강력한 전제정이었다면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는 순간, 귀족들도 모두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은 이미 황제 한 사람에게만 모든 권력이 쏠려 있는 황재 독재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국의 수도를 점령하고도 결국은 지방 귀족들의 반란을 제압하지 못하고 반 세기만에 쫓겨나고 만다.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왕은 귀족에게 농사지을 땅을 주고, 귀족은 왕에게 군사를 빌려 준다.
봉건제가 시작된 것이다.
놀랍게도 황제 역시 직할지를 가지고 직접 농장을 경영해서 소득을 올린다.
황제가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판매한 달걀로 왕비의 금관을 만들어 선물했기 때문에 달걀보관이라 불리는 유물도 있다고 하니, 황제의 위상 변화를 알 만 하다. 

한 때 10세기 무렵은 다시 세력을 넓혀 가기도 했으나 결국은 상승하는 투르크 세력에 밀려 15세기 초, 이 천 년 제국은 문을 닫고 만다.
중세에는 대포가 없기 때문에 성벽이 높으면 절대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도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고, 비잔틴 제국 역시 두껍고 높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건설했던 모양이다.
이 강력한 성벽은 수많은 외침을 이겨냈으나 결국은 오스만 투르크의 대포에 무너지고 만다.
지난 번 터키에 다녀와서 이스탄불을 둘러 봤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 비잔틴 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저자의 말대로 천 년을 유지했다는 것부터가 너무나 경이롭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 위대한 제국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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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역사 3 - 전란의 시대 : 고려후기편
임용한 지음 / 혜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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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시리즈로 나온 세 번째 책을 읽었다.
2권보다는 가독성이 약간 떨어졌지만 재밌게 읽었다.
어찌 보면 도둑떼에 불과한 홍건적의 잔당이나 망한 나라의 유민격인 거란의 후예들이 재차 침공하여 국왕이 피난을 떠날 정도로 큰 타격을 줬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하긴, 왜구 역시 단지 해적떼에 불과한데 심지어 개경을 침범하기까지 했으니...
고려라는 나라가 후기로 갈수록 무신정권 등에 의해 군대가 사병화 되고 국가 체계가 일당 독재로 변해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힘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으로 미뤄 보자면, 무신정권을 기득권층 대신 새로운 계층의 유입으로 사회에 변혁을 꾀했다는 평가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저자의 말대로 사회안정은 특권층의 양산이나 출신 성분의 변화가 아닌, 국가 체계를 통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니까.
묘청의 서경천도 때 김부식과, 윤관의 아들인 윤이언의 활약상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고 칭제건원이 얼마나 허망한 얘기인지 새삼 느꼈다.
저자의 평가대로 신채호의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은 그야말로 본인이 살았던 당대에 의미가 있던 얘기 같다.
몽골에 대항하여 30년을 싸웠다는 것도 대몽항쟁의 측면에서 평가받을 점이 분명히 있긴 하겠으나 궁극적으로 정권을 잡고 있던 최씨 일가의 매우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일방적 정권유지용 천도였음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지배층은 바다로 둘러싸였으나 수로를 통해 세금은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강화도로 숨어 버리고, 나머지 백성들은 몽골이 침입하면 산으로 들어가 숨으라는데 대체 몇 개월씩 식량 가지고 전 국민이 숨어 있을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너희 알아서 해라는 나 모르겠다, 정책의 대표적 표상이다.
지역을 수비하는 향촌 조직마저 무너져 한 번씩 몽골이 침입하면 수 개월 동안 그 침략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어야 할 고려 백성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눈에 밟힌다.
삼별초 역시 외세의 침략에 대항해 자주적인 독립 운동을 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신 정권 기간 동안 권력을 담당했던 태생적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고 심지어 제주도로 들어간 후 동녕부나 쌍성총관부처럼 고려에서 떨어져 나가 일종의 직할지가 되게 해달라는 화친 문서까지 보낼 정도였으니 과연 그 성격이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고려 정부에 대한 반란이었는지 정말로 공격의 목표가 몽골이라는 외세였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뒷편에 나온 왜구와의 전쟁은 최영과 이성계 등이 등장해 무척 재밌게 읽었다.
1250년에 갑자기 수가 불어나 내륙까지 침범하게 된 왜구를 가리켜 경인의 왜구라고 하는데, 전국 시대의 혼란기 후 일본 사회가 팽창하면서 왜구 세력도 단순한 노략질을 넘어 마치 북방의 유목 국가들처럼 주변 국가를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진 집단으로 성장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고려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신흥 무인 계층들이 정권을 잡게 되고 결국 이성계에 의한 혁명이 이루어졌으니 조선의 개국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 같다.
또 왜구를 소탕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수군을 창설하고 화약을 개발한 고려 말기의 노력이, 후에 임진왜란 때 수군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는 무척 신선했다.
지금까지 주적은 언제나 북방이었지 바다 건너 왜구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수군을 운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세종 때 쓰시마 섬 정벌을 계기로 왜구 문제를 완전히 잠재운 점은, 평가받아야 할 부분 같다. 

굵직굵직한 외침들이 자세히 정리되어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특히, 지도가 상세하게 첨부되어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사는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공성전이나 군대의 운영 같은 기본틀을 어느 정도 숙지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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