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그림
배병우 글.사진 / 컬처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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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했던 책은 아니다.
일단 도판 크기가 작아서 약간 실망했다.
나는 아마도 양쪽 페이지를 꽉 채우는 큰 사진을 원했던 것 같다.
덕수궁에서 열린 전시회를 못 간 게 아쉬워 서점에서 신간으로 나온 걸 보고 얼른 신청한 책인데, 도판만으로는 소나무의 매력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창덕궁이나 알람브라 궁전의 정원 등은 무척 아름다웠다.
사실 사진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떤 전시회에서 유네스코 지정 유적지를 찍은 걸 보고 건물 사진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아마 어떤 일본 작가였던 것 같다.
저렇게 큰 건물을 어쩜 저렇게도 완벽한 구도에서 건축 미학 포인트를 콕 짚어 내게 찍을 수 있을까 감탄했었다.
이번 사진집에서도 불타 오르는 듯한 붉은 단풍과 어우러진 창덕궁이 너무 좋았다.
신록이 우거진 선명한 녹색의 나뭇잎들도 얼마나 신선하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눈덮힌 겨울은 어쩐지 스산해 보여 마음이 가질 않는다.
알람브라 궁전의 헤네랄리페 같은 선명한 채도의 초록과 연두빛으로 빛나는 여름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스페인과 터키를 갔을 때 제일 좋았던 게 바로 올리브의 그 연두색 잎들이다.
실제 올리브 열매도 무척 맛있게 먹었고, 버스나 기차를 타다 보면 창밖 어디에서나 보이는 그 선명한 연두색의 올리브 나무들이 마음을 빼앗았다.
나무나 꽃 구분을 잘 못하는 편인데도 올리브 나무는 금방 눈에 띄었다.
저자 역시 올리브 밭의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했다. 

소나무 사진은 흑백이 많아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빛이 들어오는 소나무 숲 사진이 뭔가 철학적으로 보이긴 한데 도판만 가지고는 충분히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경주 왕릉을 지키는 소나무, 이런 테마는 참 좋다.
왕릉 옆에 서 있는 무인상들과의 조화가 아름답다.
지천에 널려 있는 소나무는 저자의 표현대로 한국의 전통적인 미학적 대상이 아닐까 싶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새벽이 밝아올 때부터 시작되는 작업 태도였다.
저자는 빛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데, 나도 그 기분을 조금은 알고 있다.
여름날 해가 뜨기 직전, 주변이 파랗게 물들면서 공기가 청명해지고 어스름하게 밝아 오는 그 신선하고 상쾌한 대기의 느낌.
만약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바로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
저자는 또 해가 질 무렵의 석양도 카메라에 자주 담는다.
빛이 번져가는 혹은 사라져 가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작업 정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뒷쪽에 보니 종묘 사진이나 창덕궁 사진, 알람브라 궁전 사진첩이 모두 따로 나와 있었다.
기회가 되면 이런 본격적인 사진집을 구경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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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꼭 만나야 할 곳 100 : 1. 유럽.아프리카편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이태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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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 예쁘게 되어 있고 사진이 볼 만 하다.
여행지에 대한 소개는 한 장 분량으로 짧게 그치고 있어 아쉬운 점도 없지 않으나, 100 여 군데에 달하는 많은 여행지를 소개하면서 설명을 길게 늘어 놓으면 그것도 지루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유럽 쪽은 대학교 배낭 여행 때 가 본 곳들이라 아는 곳이 나와 반가웠고, 동유럽 쪽은 처음 들어 보는 곳이 많았다.
특히 새로 독립한 슬로베니아라든가 크로아티아 같은 발칸 반도 쪽 국가들의 중세 도시들, 이를테면 두브로브니크, 스플릿, 피란, 코토르처럼 아드리아 해를 끼고 있으면서 중세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고 휴양지로도 각광받는 곳들은 처음 알게 됐다.
아마 유럽 현지인들에게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여행객들을 끌어 모으는 관광대국 스페인은 이번 신혼여행 때 다녀온 곳이라 더 반가웠다.
짧은 일정 때문에 안달루시아 지방은 그라나다 밖에 못 가 봐서 로마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는 세비야 등을 못 가 봐 너무 아쉽다.
과연 내가 다시 그 먼 곳을 가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폴란드의 크라쿠프라든가, 그단스크, 체코의 체르키크롬포르,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등은 수도가 아니라 처음 들어 본 곳이었다.
동유럽의 관광지 하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체코의 프라하, 폴란드의 바르샤바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책에서 소개를 많이 받았다.
터키의 이스탄불이나 카파도키아 등은 이번 여름 휴가 때 다녀온 곳들이다.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과 미코노스 섬은 하얀 벽돌에 파란색 지붕과 지중해의 사진만으로도 여행객을 흥분시키니다.
체코로부터 분리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음악도시로도 유명하다고 하고, 작은 공국은 리히텐슈타인의 수도 파두츠도 알프스 자락을 끼고 있어 휴양지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그 외에 유럽 여행 때 하루 코스로 잠깐 들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나 벨기에의 브뤼셀은 모두 중세도시의 향기를 간직한 곳들인데 제대로 못 본 것 같아 너무 아쉽다.
특별한 곳으로는 한민족의 시원으로 알려진 세상에서 가장 큰 담수호 바이칼 호수가 있다.
30여개의 바위섬이 있는데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이문열의 기행문에서 이 바이칼 호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시간이 되면 러시아도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나라다. 

전체적으로 유럽은 자연환경 그 자체보다는,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관광지 같다.
저자의 말대로 테마를 가지고 여행한다면 보다 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유명 미술관만 따라 다녀도 될 것 같고, 건축물 기행이나 역사 유적지 찾기도 좋은 테마 같다.
중세 도시의 원형을 잘 보존한 곳이 많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지역인 경우도 많았다.
그러고 보니 유럽에 갔을 때 제일 놀랬던 게, 서울처럼 빌딩숲이 우거진 게 아니라 어디를 둘러 봐도 죄다 책에서나 볼듯한 전통적인 건축물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또 그런 고전 양식의 건물들이 실제 시청 같은 관사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확실히 한국은 급격한 근대화로 인한 전통과의 단절이 심한 국가다. 

아프리카 편은 아쉽게도 얼마 소개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유럽과 오랜 인연을 맺어 본 북아프리카 지역이었다.
로마의 지배력이 미친 곳인만큼 의외로 2~3세기 로마 유적지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리비아의 렙티스마그나는 이 곳 출생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공을 들여 건축한 목용탕이나 개선문, 포럼, 원형극장 등이 발굴되어 눈길을 끈다.
리비아 하면 막연하게 사하라 사막 같은 황무지가 떠오르고, 실제로 사막 투어도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무려 2천 여년 전의 로마 유적지라니, 무척 신기하게 들린다.
튀니지에도 두가나 엘젬 같은 곳에 로마 유적지가 남아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 곳은 카이로우완이라는 아랍인들의 도시도 유명하다고 한다.
카뮈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알제리는 제밀라에 로마 유적지가 남아 있다.
북아프리카는 예로부터 마그립 지방으로 알려져 지중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곳이니 어찌 보면 유럽사의 일부 같기도 하다.
스페인 여행을 하게 되면 포르투갈과 모로코 등도 같이 방문하다고 하는데 짧은 일정 때문에 못 가 본 게 너무 아쉽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츠와나에는 사파리로 유명한 초베 국립공원이 있다.
이 곳의 강 이름이 초베강이라고 한다.
4륜 구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사자나 코끼리, 하마, 누, 톰슨가젤, 얼룩말 같은 사바나의 야생동물들을 본다는 건 일생에 흔치 않은 엄청난 경험일 것 같다.
어쩐지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돈을 주고 구경하러 간다는 게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은근히 설레고 흥분되는 것도 사실이다.
잠비아에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리빙스턴이라는 관광지가 유명하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이과수 폭포와 함께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은 관광 명소다.
그 엄청난 물살이 수백미터 높이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장관은 직접 보지 않아도 가슴이 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조만간 꼭 봐야 할 목록에 올라와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기 보다는, 볼 곳은 많다. 
평생 여행해도 다 못 가 볼 곳들이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다들 가 보고 싶은 곳들이다.
저자는 80여개 국, 500여 군데 관광명소들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전문적으로는 못 다니더라도 1년에 한 두 번쯤은 지구 곳곳을 다녀보고 싶다.
한가롭게 은퇴하여 세계일주를 떠나는 유럽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떠오른다.
좀 더 시간의 여유를 갖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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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이 가고 싶어진다.
    from 뿌리아름역사도서관 2010-08-22 11:49 
    얼마전에 문득 죽기 전에 '세계문화유산은 죽기 전에 다 봐야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자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오빠, 그게 얼마나 많은데, 다 볼 수 있겠어!?"라는게 아닌가. 그래도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2009년 7월 현재 문화유산 689건, 자연유산 176건, 복합유산 25건 등 148개 국의 890건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이밖에 위험에 처한
 
 
 
조선 여성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3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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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의왕 도서관에 신간을 신청했는데, 의외로 굉장히 빨리 읽게 됐다.
거의 2주만에 받아본 것 같다.
제목과 주제는 무척 흥미로운데 내용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조선 시대 여성이 갖는 사회적 담론보다는, 사료 조사와 분석을 통해 덜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을 발굴하게 되길 기대했었는데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서술됐다.
주제의 특이성 때문인가?
일종의 인문학적 담론 느낌이 강하다.
남성 지배 계층에게 가려져 왔던 조선 여성들을 재조명 하는 것은 분명 의의있는 일이나, 지나친 의미 부여로 인해 어쩐지 현대의 인식으로 당대의 여성들이 왜곡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러 명의 필자가 쓴 책이라 그 점을 경계하는 관점도 분명히 있었다.
조선 시대 여인들이 단지 겉으로만 유교적 질서에 순응하고 내적으로는 그것에 반발하고 저항했다기 보다는, 실제로 유교적 여인상을 내면화 했을 것이라는 인식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 것이, 어느 시대를 살든 당대의 지배 관념을 근본적으로 거스르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조선 시대 여성들의 학문적, 문화적 성과들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적인 시각에 입각해 마치 그녀들을 시대에 저항한 투사처럼 이미지화 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 나온 예를 들자면, 16세기에는 신사임당이 화가로서 평가받았으나 18세기에 들어 유교가 교조화 되면서 노론 학맥의 뿌리인 율곡 이이를 추앙하는 분위기 때문에 어머니인 신사임당도 자식을 잘 키운 유교적 여성상으로 재평가된 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18세기는 유교의 교조화가 심화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여성은 더욱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자신을 함몰시키는 것이 미덕으로 자리잡았고, 신사임당 역시 본인의 재능인 그림 보다는 현모양처로서의 가치가 강조된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비판하지만, 좀 더 폭넓게 보자면 저자들의 조선 여성 평가도 현대의 여성주의 시각일 수 있다는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재조명이나 다시 보기는 조심스러운 것이다. 

책을 읽은 후의 수확이라면 덜 알려진 조선 시대 여성들을 많이 접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문열의 소설로 유명해진 안동 장씨의 음식디미방은 얼마 전 TV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자세히 알게 됐다.
비슷하게 음식 조리서를 쓴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도 새롭게 알게 됐는데, 그의 시아버지가 해동농서를 지은 서호수이고 시동생이 임원경제지를 지은 서유구라고 한다.
시댁이 실학자 집안이었으니 며느리의 학문적 재능도 꽃피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성리학자로 추앙받은 윤지당 윤씨나 정일당 강씨, 삼의당 김씨 등을 알게 됐고, 관북유랍일기를 남긴 의유당 남씨가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의 이모 된다는 사실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또 스무 살의 이른 나이에 요절한 효명세자가 그의 누이 명온공주와 한글시를 주고 받았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이처럼 덜 알려진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재밌는 것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여성들 역시 교육이 중시되고 민간층에까지 한시 문화가 퍼지게 됐는데 여전히 여성은 남성만큼 많이 배우면 안 된다는 일종의 사회적 금기가 있어 한글음만 따서 한시를 향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시를 한문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독음을 따라 읽고 뒤에 한글 번역을 덧붙이는 식이다.
그런 까닭에 한문이 상당히 부정확하게 기록됐다고 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기 어려운 민간층에서도 한시를 향유하는 방법이었다.
명온공주가 오빠인 효명세자에게 보낸 한시도 한자 대신 이러한 한글 독음이 실려 있다.
요컨대 한글은 규방문화의 글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하여 여성은 한문이 아닌 한글을 익혀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자를 이용한 놀이 문화가 발달하여 마치 퍼즐판처럼 거기에 쓰여진 한자를 가지고 시를 짓는 놀이가 유행했고 자상한 효명세자는 누이를 위해 직접 한글로 번역하여 귀문도라는 이런 글자판을 선물하기도 했다.
내 한자 실력으로는 즐길 수가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신사임당의 그림이라든가, 여성 교육서들에 수록된 판화, 여성들의 문집, 편지글 등이 다채롭게 실려 있어 보는 즐거움이 크다.
편집이 무척 잘 된 책이다.
일부 당위적 주장들에 대해서는 거부감도 있었으나 비교적 재밌게 읽었고 역사가 단지 정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생활상이나 문화적인 부분까지 넓게 확대되어 가는 것 같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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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輝 2010-08-2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개인적으로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이렇게 설명을 써 주셔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날씨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

marine 2010-08-22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서재에 들려 좋은 책 소개 잘 받고 있습니다. 언제나 리뷰의 정확성과 방대함에 놀라고 책을 고르는 안목에 감탄한답니다. 저야 말로 늘 감사드려요^^
 
상식 밖의 경제학 - 이제 상식에 기초한 경제학은 버려라!
댄 애리얼리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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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거창한 경제학 이론서는 아니고, 제목은 경제학이라 붙였지만 인간의 심리 상태나 행동 패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경제학에서 미리 전제하고 있는 것, 즉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주변의 영향을 무시하고 가장 경제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됐다는 게 주제이기도 하다.
전혀 얼토당토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편견과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저자의 논의를 조금 더 발전시키자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어느 정도의 국가 개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상깊은 대목들이 많았다. 우선 앵커라는 개념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스타벅스 커피가 예로 제시됐다. 스타벅스 커피가 나오기 전, 미국인들은 그보다 싼 던킨 도너츠의 커피로 만족했다. (한국에서는 둘 다 커피 가격이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갑자기 비싼 커피가 나오면서 미국인들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취향이고 커피에 대한 개성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비싼 커피는 앵커가 되어 커피를 선택할 때 가격이나 맛이 아닌, 분위기나 이미지가 기준이 되버렸다. 이것은 스타벅스의 창립자가 내세운, 스타벅스를 둘러싼 제반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 소비자의 심리는 마치 이 광고 문구 같다. "난 로에알을 써요, 난 소중하니까요" 자신의 취향을 지키려면 이 정도 가격의 커피, 화장품, 구두, 가방 등은 써 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내 경제력으로 지불하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비싼 것은 아니다. 그런데 스타벅스 커피는 어쩐지 세련되게 느껴지고 커피숖에 들어가면 활기를 얻게 된다. 그래서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내 취향, 즉 앵커로 인지하게 됐고 그 다음부터, 난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해, 이렇게 스스로에게 인식을 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커피 가격은 이 정도 된다. 서울 시내에서 5천원 이하 커피를 마신다는 게 쉬운 일일까? 자판기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상 말이다.) 

 저자는 어떤 제품이 앵커로 작용하면 재화를 선택했을 때의 기쁨을 정확한 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렵다고 충고한다. 그러므로 물건을 구입하거나 돈을 소비할 때는 반드시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마음 속의 앵커가 자리잡은 건 아닌지 이성적으로 숙고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 반대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우리 제품은 단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의 자존심이고 사회적 지위다는 느낌을 심어 줘야 할 것이다. 이른바 명품이라는 마케팅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미루기에 대한 관찰도 무조건 미루고 보는 나에게 유용한 부분이었다. 나 뿐 아니라 모든 학생들은 미루기의 천재라고 하니 다행스럽긴 하다. 사람들은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누구나 과제를 미루곤 한다. 그러므로 강제적인 기한이 반드시 정해져 있어야 한다. 외부의 목소리가 있어야 비로소 정해진 시간 안에 과제를 끝낼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스스로 마감 시한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자기절제 도구를 제안했다. 이를테면 월급의 일부를 미리 떼서 저축한다든지, 신용카드에서 일정 부분 이상 지출할 경우 자신에게 안내 메일이 오게 만든다거나 일정 금액을 기부하게 하는 것처럼 미리 한계선을 설정해 주는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 개념도 비슷한데, 충동을 조절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상황을 안 만드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그 감정 상태를 겪어 보지 않고서 이렇게 해야지, 결심하는 것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할 때도 그렇다. 막상 음식의 유혹이 눈 앞에 펼쳐지고, 배고픔이 밀려오면 원하는 칼로리만 섭취하겠다는 다짐이 얼마나 허망한지 실감할 것이다. 그러므로 충동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려면, 유혹의 순간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직업윤리의식도 인상깊게 읽었다. 십계명이 세상을 정직하게 만들 수는 없어도, 십계명 즉 도덕적 원칙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제도를 통한 도덕성 유지는 한계가 있기 떄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 즉 윤리의식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방법이 그저 말뿐인 추상적 구호에 불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무리 제도를 정교하게 만들어도 피해갈 구멍이 생기는 만큼 직업윤리나 도덕의식 등을 상기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직을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회를 안정시켜 우리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만큼, 윤리의식 강화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 같다. 

 그 외에도 실생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정말 내 생활에 응용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모르겠으나 한 번쯤 관심을 가져 볼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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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역사
이상태 지음 / 지오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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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읽었던 <양치 식물의 역사> 와 비슷한 포맷의 책으로, 그 책보다 더 쉽고 재밌게 쓰여 있다.
번역서가 아니라 그런지 문장도 이해하기 쉽고 저자가 꼼꼼하게 과학적 사실들을 설명해 준다.
식물의 사진들도 많이 실려 있어 보는 즐거움도 컸다.
전에는 식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흥미가 많이 생겼다.
칼 세이건의 전 아내로도 알려진 린 마굴리스의 미토콘드리아 공생설이 실은, 혐기성 세균 안에 호기성 세균이 내공생 하게 된 사건을 일컫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김이 바로 바다 가장 깊은 곳에 살고 있는 홍조류의 일종임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김이 붉은 색을 띄는 이유는, 가시광선 중 보라색이 가장 강하기 때문에 바다 속 깊이 침투할 수 있는데, 이 보라색을 이용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색소가 바로 빨간색 색소라고 한다.
반대로 가장 윗부분에서 반사되는 붉은 광선은 초록색 색소인 엽록소를 가진 녹조류가 잘 흡수하고, 그런 이유로 바다 표층에서 산다고 한다.
흔한 말이지만, 이런 걸 보면 자연의 신비는 얼마나 놀라운지! 

양치식물에서는 이해가 잘 안 갔던 세대교대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큰 도움이 됐다.
반수체인 1N의 배우자체는 유전자가 전부 발현되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생겨도 100% 다 표현된다.
반면 배수체인 2N의 포자체 세대가 되면 상동 염색체의 두 유전자 중 우성만 발현되고, 돌연변이가 생기면 두 개가 다 고장나야 표현이 되기 때문에 생존에 더 유리하고 유해한 돌연변이로부터 개체를 보호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육상으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배수체가 되야 한다.
식물의 육상에도 변형설과 삽입설이 있는데 유전 분석이 활발해지면서 요즘에는 삽입설이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동물보다 더 간단한 구조를 가졌을 것 같은데 혐기성 세균에서 광합성 세균이 탄생하고, 광합성 결과 산소가 생기면서 그것을 대사할 수 있는 호기성 세균이 태어나고, 다시 이 호기성 세균이 혐기성 세균과 공생하게 되고 핵이 유전자를 보다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진핵생물로 발전하고 거기서 녹조류와 선태류 등이 발달하고 배아를 더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씨방을 가진 피자식물에 오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마치 하나의 잘 만들어진 알고리즘처럼 너무나 정교하고 완벽하다.
생명의 탄생에서 오늘날의 다양한 종들이 있기까지 진화의 과정은, 그것이 너무 정교하고 완벽해 창조주의 존재를 범신론적 차원에서 인정할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다.
사막 식물이나 고산 식물들의 적응 형태도 굉장히 재밌게 읽었고 사진도 무척 유용했다.
책 제목은 <식물의 역사>지만, 생명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설명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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