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제국 가야 - 잊혀진 왕국 가야의 실체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김종성이라는 저자의 역사적 관점에 대해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다.
먼저 읽은 <한국사 인물 통찰>도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유추와 비약이 너무 심해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제일 먼저 신나라를 세운 왕망이 사실은 김왕망, 혹은 김망이고 흉노족인 김일제의 후손인데 흉노족에게 나라를 뺏겼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반고가 후한서를 쓸 때 김씨 성을 빼고 왕으로 기재했다는 주장.
기존의 역사 기록을 반박하려면 고고학적 발굴 같은 눈에 보이는 분명한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저자의 논리는 이런 식이다.
한 무제 이후 나라의 권력을 잡은 가문은 곽거병과 김일제 가문이었는데 곽거병家가 몰살당항 후 오직 김일제 가문만이 세력을 가졌기 때문에 느닷없이 왕씨 가문이 외척 세력으로 등장할 수 없다는 식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정황상 이렇게 추론할 수 밖에 없다, 와 같은 추론은 역사적 기술이 부족한 고대사의 경우는 특히나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 번 책에서도 이성계의 조상을 여진족이라고 단정짓는 대단한 비약을 보이던데 이 책에서도 너무 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신나라를 건국한 왕망은 김일제의 후손이고 사실은 김왕망이었다.
그는 후한이 건국된 후 집단을 이끌고 양자강을 건너 낙동강 하구에 도착해 가야를 건국한다.
그러므로 김수로는 흉노족의 후예다, 뭐 이런 논리다.
김일제 가문이 후한 등장 이후 한 번도 역사책에 안 나왔기 때문에 이것도 왕망이 곧 김일제 집안임을 방증한다고 주장한다. 
제일 문제는, 중국 문명의 근간이 되는 한나라의 중추 세력인 김일제가 사실은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의 조상이라면 더 이상 중국인들은 자부심을 갖지 못할 거라는 식의 발상이다.
설사 김수로의 조상이 김일제라고 해도 한나라와 중국 문명의 위대함에 왜 손상이 가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김일제와 김수로의 연관성은 기록을 지나치게 비약시킨 추론이라고 밖에는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허황옥의 유래에 대해서는 김병모씨가 쓴 책의 입장을 지지하는데 나 역시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아유타국 출신인 허황옥의 조상은, 인도의 아유디야국에서 살았는데 기원전 1세기 무렵 쿠샨 왕조의 침입으로 중국 보주라는 곳에 정착한다.
다시 반란 사건에 휘말려 가야까지 건너와 김수로 집단과 연합했다고 한다.
이 증거로 수로왕릉과 절에 있는 쌍어문이 인도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든다.
나도 처음에 이 책을 읽고 굉장한 발견이라고 가슴이 설렜는데, 다른 책에서 이 쌍어문은 불교의 일반적인 상징물이라 인도에서만 쓰이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 능과 절의 쌍어문은 조선 시대 때 불교와의 연관성을 위해 그려 넣은 것이므로 인도 지방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내용을 읽고 나서 과연 그렇구나 싶어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누가 쓴 책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이 쪽에 더 수긍이 간다. 

제일 황당한 것은, 석탈해가 왜국으로부터 1천리 떨어진 곳에서 왔다는 삼국유사 기록을 가지고, 1천리 떨어진 곳이라면 캄차카 반도라고 비정한 주장이다.
저자가 말한대로 1천리는 그저 먼 곳에서 왔다는 상징적인 문구일텐데 왜 느닷없이 캄차카 반도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는 것인지, 또 이 곳에 난생 설화가 있고 거기에 까치가 등장하므로 석탈해 설화와 유사하니까 그 곳에서 건너 왔다고 주장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난생 설화야 말로 많은 민족에서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설화이고 까치 역시 그 캄차카 반도와 석탈해 설화에서만 특징적으로 등장하는 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장을 위해 주변 상황을 끼워 맞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동의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가야의 건국 연도를 과연 기원전 몇 년이라는 정확한 숫자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스스로 고백한 대로 가야 건국 즈음에는 역사적 사실 뿐 아니라 설화 형태가 많이 끼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원전 몇 년에 건국하고, 다시 몇 년에 무엇을 하고, 이런 식의 정확한 연대 측정이 과연 믿을만 한가 의심스럽다.
넓은 의미로 그 즈음인 시대구나 하는 식이 아닌, 몇 년에 김수로가 가야를 세웠다, 이렇게 주장하는 건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에서 탈피해 여러 세력들이 한반도에 거주하면서 오늘날 한민족을 이루었다는 다민족주의는 변화하는 세계화 시대의 컨셉에도 잘 맞고, 배타적인 민족주의 극복에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보기는 하지만, 고대사의 해석에 있어 지나치게 오늘날의 관점을 투영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도 든다.
외래 세력과 토착민의 연합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가야는 인도와 동북 시베리아와 중국 세력 등이 어울어진 진정한 세계주의 국가였다는 식의 주장은, 정말로 매우 현대적인 관점이고 역사 이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고대사 연구가 진전되려면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기초해 추론을 전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증거 없이 문자만 가지고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건 너무 앞서가는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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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종성이라...
    from 뿌리아름역사도서관 2010-08-23 02:35 
    이 사람 책은 한번도 안 읽었던 것 같은데...암튼 리뷰를 보니 별로 좋은 책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한번 보기는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주장이 그렇게 신기하다니...
 
 
marine 2010-08-23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도서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의견이 궁금했어요. 사실 저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이런저런 논평을 할 수준도 안 되기 때문에 그냥 제 느낌만 간단히 적은 거라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시간 되시면 읽어 보시고 리뷰 부탁해도 될까요? ^^

麗輝 2010-08-23 15:37   좋아요 0 | URL
흐음. 그런데...언제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 암튼 꼭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marine님이 부탁하시는건데...^^ 근데 배경에 있는 오뎅탕 정말 맛나 보입니다. 유부랑 같이 떠 있는 오뎅. 제가 오뎅바 엄청 좋아하거든요. ^^ ㅋ 암튼 좀 기다려 주세요~~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유지나 외 지음 / 작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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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의 책이다.
안 본 영화는 아무래도 관심이 떨어져 적당히 넘어가고 본 영화 위주로 읽었다.
그래도 유명한 영화는 꽤 봤던 모양인지, 2/3 정도는 읽은 것 같다.
<마더> 에서 어쩐지 원빈이 어리숙해 보이는 게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김혜자와의 연기력 차이를 지적하는 부분이 와 닿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
보고 싶은 영화로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
김옥빈이 대체 얼마나 연기를 잘 했는지 궁금하고, 늘 감탄에 마지 않는 송강호의 또다른 연기 변신도 기대된다.
홍상수 감독 영화는 일상을 잘 잡아내는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비슷한 주제의 반복 같아 이제 안 보려고 했는데 그래도 소개되는 영화는 또 끌린다.
허진호 감독의 <호우소리>가 소개되서 반가웠다.
볼 때는 굉장히 지루했는데 다시 생각하면 무척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윤제구 감독의 <해운대> 에서도 연기 잘 하는 설경구와 김인권, 그 외의 어색한 인물들이라는 이분법이 어찌나 맘에 쏙 들던지.
엄정화와 박중훈은 대체 왜 나왔는지 이상하다 싶을 만큼 어색했는데 그런 이유로 헐리우드에서는 재난 영화 만들 때 단역도 유명 인물을 캐스팅 한다고 한다.
평론가는 해운대의 매력을,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인물간의 서사 구조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런 장치들이 더 클라쎄 같고 진정한 재난 영화를 만들지 못한 이유 같다.
한국 최초의 재난 영화라는 것에 만족해야 할 듯. 

외국 영화로는 꼭 보고 싶었던 <더 리더> 라든가 <그랜 토리노> <더 레슬러> 등이 인상깊었다.
요즘은 DVD 빌려 주는 곳도 드물어서 다운을 받지 않는 이상 보기도 힘들다.
갑자기 좋은 영화를 많이 소개받다 보니 옛날 비디오 대여점이 그립다.
2009년 作 도 좋은 영화가 많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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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감 본능 - 우리는 왜 초콜릿과 음악, 모험, 페로몬에 열광하는가
진 월렌스타인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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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처음 제목을 보고 일종의 심리서 비슷한 건 줄 알았다.
그래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용이 상당히 과학적이다.
가벼운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은 생물학적 베이스가 탄탄해 상당히 집중하면서 읽었다.
하나의 주제에 명료하게 수렴하기 때문에 주제의식은 선명하지만 대신 동어반복이 계속되서 좀 지루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인간의 뇌는 기본적인 배선만 이루어진 채 태어난다.
그 후의 정교한 미세조정은 뇌 발달에 자극이 되는 특정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경험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로 쾌감이다.
쾌감은 인간이 타고 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선호 체계인 것이다.
이를테면 신생아는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 주고 가볍게 안고 흔들면 잠이 잘 든다.
이것은 운율과 리듬, 운동을 좋아하는 선호 경향이 내제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 경향성 때문에 커서도 인간은 음악을 찾게 되고 춤을 즐기며 스포츠를 즐긴다.
또 신생아는 대칭과 비례를 좋아한다.
비대칭의 얼굴 보다 대칭형의 얼굴을 좋아하는 것은 본능적이다.
특히 사람의 얼굴에 매우 친숙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런 행동은 엄마와 애착 관계를 형성시켜 보살핌을 받게 만든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어느 정도는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단 맛과 기름진 것을 좋아하는 미감도 그렇다.
당은 에너지를 만드는 원천이기 때문에 날 때부터 젖당이 들어 있는 모유를 찾게 되고, 진화상으로 봤을 때도 과일에 들어 있는 당을 섭취하기 위해 단 맛에 길들여졌다.
지방의 경우는 세포막을 만들고 뇌 발달에 필수적이므로 자연스레 기름진 것을 찾게 된다. 

2만 5천개의 유전자만 가지고는 뇌의 엄청난 기능을 다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몸은 영리하게도 기본적인 배선만 구축한 다음 나머지 미세한 조정은 출생 후 경험을 통해 이뤄지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양육이냐 본성이냐는 주제는 잘못된 이분법인 셈이다.
책을 읽다 보니 뱃속에 들어 있는 아이에 대한 양육의 책임감이 엄청나게 느껴져 은근히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뒷부분에 나오는 중독에 대한 이야기도 새겨 들을만 하다.
암페타민 계열의 마약, 즉 코카인이나 필로폰 같은 경우는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고 기분을 고양시킨다.
반대로 오피오이드 계열의 마약, 즉 헤로인이나 몰핀 등은 불안감을 진정시키고 기분을 이완시킨다.
이런 합성 화합물의 치명적인 단점은, 쾌감중추가 작동하는 정상적인 회선을 교란시키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많은 양을 요구해 중독시킨다는데 있다.
자신감이나 편안한 느낌 등은 사회적 유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충고가 마음에 와 닿는다.
마약이 가족과 사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소외자들에게 즐거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데 사용된다는 사실이 상당히 신선하게 들린다.
전에는 중독자들을 의지박약이나 실패자들로 봤는데 보살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잘 쓰여진 책이고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매우 건전하다.
번역도 매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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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차윤정 지음 / 지오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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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하는 방향의 책은 아니었다.
먼저 읽은 <식물의 역사>와는 전문성 면에서 상당히 떨어지고 식물을 주제로 한 일종의 인문 에세이 같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저자의 어설픈 사회 비판이나 감수성에 동조하기가 힘들었다.
식물의 생활사에 인간상을 대입하는 것은, 흥미를 유발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관점으로 자연을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거부감이 들었던 문장은, 출산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무통분만 등을 시도하는 것을 두고 엄마로서 자격이 있네 없네 따지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본인이 두 명의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더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으나, 역시 임산부인 나로서는 극한의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여성이 겪는 출산의 신비로움과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무통분만이라는 시술이 말처럼  통증을 완전히 없애 주는 것도 아니다.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에이즈가 동성애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는 일부 보수주의자의 주장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하여튼 저자의 감수성과 생각에 쉽게 젖어들지가 않아 처음에는 읽는데 힘들었으나 뒤로 갈수록 예쁜 꽃 사진과 식물의 다양한 생활상을 읽으면서 그런대로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식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고 특별히 예쁘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장미 정도나 이름을 알까, 구분할 수 있는 식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안면도에서 열린 꽃박람회를 다녀온 후 식물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온갖 자태를 뽐내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원예작물들을 보면서,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완전히 빠져 들었다.
그 뒤로 식물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고 기회가 되면 직접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화분을 가꾸고 수목원에 가고 식물도감을 보는지 알 것 같다.
그저 들꽃이라고만 불리는 야생화들도 정말 아름답다.
이런 꽃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수분시켜 줄 새와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해 존재한다.
새는 그렇다 쳐도 곤충이 시각적 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보통 새는 붉은색에 민감하기 때문에 조매화는 붉은 계열의 꽃을 피우고, 곤충은 푸른색에 반응하므로 충매화는 푸른 계열의 꽃을 피운다.
향기로운 냄새도 다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서인데, 파리가 매개하는 일부 꽃은 역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열매도 종자를 퍼뜨려 번식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다.
특히 새가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게 탐스럽고 맛있는 과육을 만들어 내는 덕에 인간이 달고 맛좋은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무의 생활사 중 가장 신기하는 것은 수십 미터의 높이까지 지하의 물을 펌핑해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햇빛을 독차지 하기 위해 나무는 끝없이 몸을 위로 뻗는데 이 엄청난 몸통을 유지하려면 뿌리도 그만큼 지표면에 넓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동력도 없이 어떻게 중력을 거스르고 그 엄청난 높이까지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놀랍다.
식물에는 동물에 없는 세포벽이라는 게 있는데, 세포가 죽고 나면 세포막과 벽 사이가 목질 섬유로 채워져 나무의 줄기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키 큰 나무들의 대부분은 실은 죽은 세포인 셈이다.
실제 세포분열을 하는 층은 매우 얇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바나나 나무나 야자 나무 같은 경우는 나무라기 보다는 오히려 풀에 가까운데, 그 까닭은 이들의 줄기가 목질섬유로 채워지지 않고 잎자루로 몸통을 감싸는 풀과 같다는 것이다.
억새풀 같은 경우 잎자루로 줄기를 감싸기 때문에 바람에 잘 흔들리고 안은 텅 비어있다. 

식물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니 무척 재밌다.
식물도감을 한 번 볼 생각이다.
이제 밖에 나가면 한 번쯤은 저 식물의 이름이 뭘까 생각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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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패러독스 - 기발한 상상력과 통쾌한 해법으로 완성한 경제학 사용설명서!
타일러 코웬 지음, 김정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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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고른 책인데 읽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책이다.
그런데도 일부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전혀 새로웠다.
제대로 읽지 않아서인가, 원래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건가?
하여튼 지루하지 않게 재독했다.
앞서 읽은 <상식 밖의 경제학>과 비슷한 포맷인데 좀 더 자세하다.
경제학 하면 딱딱한 원론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런 일상적인 접근법은 항상 반갑다. 

저자의 주장은,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처럼 인간은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가 절대로 아니며, 단순히 보상과 처벌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센티브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반드시 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내적 동기, 즉 자부심이나 책임감, 사회적 인정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이를테면 딸에게 설거지를 시킬 때 돈을 주면 딸은 푼돈을 받기 위해 부모 말에 복종한다는 느낌이 들어 자발적으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래 집단에서도 용돈받고 설거지 했다는 것은 그다지 자랑스러울 게 없고 오히려 부모에게 순종하는 어리숙한 범생이 이미지로 비치기 쉽다.
그 돈은 사실 딸에게 아주 큰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다.
하기 싫으면 돈 필요없어, 이렇게 말하면 끝이다.
돈 몇 푼으로 자신을 조정하려고 한다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딸을 구슬리기 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내적 동기에 호소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가족에 대한 봉사, 가족 내에서 딸이 갖는 위치나 존재감 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딸은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설거지를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춰 봐도 이건 매우 일리있는 지적이다.
돈 줄테니까 이걸 해라, 부모가 이렇게 시키면 벌써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
어린 마음에도 그까짓 돈 안 받으면 그만이지 이런 반발심이 먼저 든다.
그것은 얼마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열심히 구하는 것과는 또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남은 일을 해야 돈을 주지만, 부모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람이라고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으로 자식을 구슬른다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자녀의 내적 동기를 이용하려면 자녀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지를 잘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니 돈 몇 푼으로 간단히 자녀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설거지를 시킨다거나 성적을 올리는 것과 같은) 시도는 애초부터 너무 성의가 없는 태도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통제감을 갖길 원한다.
나 역시 간절히 바라는 게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자기 절제다.
내가 나를 완벽하게 컨트롤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다.
그래서 보상과 처벌이 반발심을 살 수 있다.
누군가에게 강요당한다는 느낌, 자발적이 못한 분위기를 사람들은 혐오한다.
실제로 그 일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이 확실할 때도 말이다.
내적 동기에 호소하라는 저자의 충고에 일리가 있고, 남들은 몰라도 일단 나 자신에게 써먹어 보려고 한다.
나 역시 내 마음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고 지루하기만 하는 회의를 자주 갖는 이유도 반드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래서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회사의 지침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내가 참여한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실행하는 것이므로 회사에 소속감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느낌을 준다.
또 회의는 누가 내 편이고 누구와 연합해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권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단순히 효율성만 따져서는 길고 지루한 회의가 대체 왜 계속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에는 숨겨진 이면이 참 많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은밀한 것들이 말이다. 

여자들이 왜 별 쓸데도 없는 스포츠카나 다이아먼드 같은 선물에 열광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것은 일종의 신호 보내기인데, 마치 공작새 수컷의 화려한 꼬리가 포식자에게 잡아 먹힐 위험이 크고 꼬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에너지 소모가 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처럼, 여자들 역시 불필요한 위세품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남자를 능력있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별로 필요하지 않는 선물이라 해도 값이 비싼 것에는 환호하게 되고 남자가 타고 다니는 차나 입고 다니는 옷 등으로 능력을 가늠하는 것이다.
이것은 직원을 채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실무에 필요한 지식들을 학습시키지 않더라도 높은 학력은 이 사람이 성실하고 회사일에 잘 적응할 것이라는 가능성의 확인으로 받아들인다.
회사가 높은 학벌에 연연하는 것은 학교에서 실무를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그 정도 학업을 견뎌낸 사람이면 틀림없이 회사일도 잘 해낼 거라는 기대감에서라고 하니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신호 보내기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한 가지 재밌는 예가, 저자는 종신 재직권이 있기 때문에 교수 회의에 나갈 때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자유로운 복장으로 참석한다.
이것은 내가 어떤 복장을 하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그런 평가에 전혀 내 위상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신호 보내기다.
그런데 위치가 불안한 사람이 이런 전략을 쓴다면 즉 시간강사가 넥타이도 안 매고 공식석상에 나타난다면 당장 입방아에 오를 것이고 그 사람의 평가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나 자유로운 복장을 입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부자가 허름한 옷을 입고도 당당할 뿐더러 오히려 저 사람은 부자인데도 겸손하고 소박하다는 좋은 평가마저 끌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재산이 많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허름한 복장을 하면 자원이 없어서 저렇게 하고 다닐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광고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함부로 일반적인 정서에 반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내가 과연 관습을 무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잘 따져볼 일이다. 

제일 흥미를 끈 것은 역시 문화적 경제학이다.
예전에 책을 읽을 때도 이 부분을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문화 생활을 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진품을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강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도서관에 책은 널려 있고 명화는 미술관에 가서 관람하면 된다.
클래식도 몇 백원만 내면 당장 다운받아 들을 수 있다.
오히려 문화생활에서 중요한 자원은 주의와 시간이다.
이 attention이라는 단어가 참 중요한데, 사람이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크지 않다.
당장 미술관에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처음 한 두 시간은 열심히 관람을 하지만, 두 시간이 넘어가면 다리가 아프고 그 그림이 그 그림 같고 나중에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책도 마찬가지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재밌는 책도 지루해지고 집중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
더군다나 이런 문화생활은 먹고 사는데 꼭 필요한 경제 활동도 아니기 때문에 투자할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이런 문화적 영역은 일반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추지도 않는다.
미술관은 일반 관람객의 티켓 수입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의 기부금에 의존한다.
작가들 역시 대중 소설이 아닌 이상, 그들을 타켓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니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술 지상주의 따위는 버려 두고 나 요인에 초점을 맞추라고 충고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관심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미술관에 가면 아무리 평론가가 격찬을 해도 내가 별 느낌이 없으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지루한 책을 읽는다면 과감히 포기해도 된다.
그거 말고도 읽을 책이 널려 있다.
내가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것은 그것의 예술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도 있지만 교양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관심을 아예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흥미있는 것에 집중하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다.
나 역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관심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매우 경제적인 태도라 관심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예술에 대한 지식과 깊이도 시나브로 커 간다는 느낌이 든다. 

지루한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충고도 매우 유용했다.
어려운 책은 일단 가볍게 일독을 하고 다시 돌아가서 재독한다.
지루하면 결말부터 읽어라.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중심으로 따라가라.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직업, 주변 상황 등을 메모하면서 읽는다.
뛰어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첫 50페이지는 반복해서 읽어 확실히 이해한다.
정 어려우면 비평을 먼저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가면 과감히 포기하라!
실제로 내가 독서에서 써먹는 방법들이다. 
특히 가볍게 읽고 다시 읽는 방법이라든가, 첫 50페이지에 집중하라는 방법은 매우 유용하다.
일단 도입부를 정확히 이해하고 나면 속도감이 붙어 집중하기 쉬워진다.
어렵고 지루한 책은 한 두 번 건너 뛰고 일독 후 다시 읽으면 쉽게 와 닿는다.
그런데도 안 되는 책이라면 던져 버리는 수 밖에. 

뒷 장에 나온 기부 문제도 의미있게 다가 왔지만 아직은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미국 사회에서 일반인의 기부 문화가 꽤나 확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단지 공정무역커피라는 광고문구 때문에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시는 게 기부의 진정한 태도는 아님을 확인했다.
이 문제는 내가 어떤 분야에 내 주의와 시간, 경제적 여력을 투자할지 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나 역시 세상의 모든 불공평한 문제들에 대해 전혀 무심한 사람은 아니지만 또 모든 문제에 다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쟁점에 대해 좀 더 고민한 후 내 자원을 투자할 생각이다.
비교적 재밌게 읽은 책이고 어찌 보면 실용서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생활에 응용하여 삶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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