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미술관 산책 미술관 산책 시리즈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재밌게 읽었다.
미술관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은 자칫 지루해지기 십상이고, 또 저자의 다른 책을 별 감흥없이 읽은지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글솜씨도 무난하고 좋은 작품들이 많이 소개됐다.
유명한 작품에만 치우치지 않고 덜 알려진 작품들도 많이 소개해 줘서 신선했다.
전문적인 미술사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오히려 현학적이지 않고 담백한 느낌이 들어 읽기가 편했다.
런던의 미술관은 워낙 많이 책의 소재로 활용되어 온 지라 이제는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고 어찌 보면 약간은 지겹기도 한 주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항상 독자들에게 짜릿한 흥분과 감동을 선사하는 것 같다.
테이트 모던이나 테이트 브리튼 같은 유명 미술관만 소개하고 있는데 뒷쪽에 따로 실린 코폴드 갤러리나 월러스 컬렉션, 켄우드 하우스 등도 방문해 보고 싶다.
런던은 뉴욕에 비해 작은 도시고 파리에 비해서도 미술관이 많은 곳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알찬 미술관이 많다.
특히 윌리엄 터너의 그림으로 대표되는 안개낀 하늘과 습기를 머금은 대기 등의 영국 풍경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국립 초상화 미술관도 영국의 유명 인사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름있는 화가들의 작품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인물들이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마천 2010-09-02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런던 미술관의 주요한 매력 중 하나는 공짜라는 점이죠 ^^
덕분에 표파는 줄도 없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간 짧은 여행자에게는 매우 감사한 대영제국이 주는 혜택입니다.
 
축구는 문화다
홍대선.손영래 지음 / 책마루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신간으로 발견한 책.
쉽고 재밌게 쓰여졌다.
각 나라의 축구 문화와 역대 월드컵 성적 등을 분석해 쓴 글.
유럽 국가는 어느 정도 사전지식이 있었지만, 남미에 대해서는 새롭게 알게 됐다.
막연히 남미는 축구 강국이야,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역사적 배경이나 국내 정세와 어우러져 국민들과 굉장히 밀착된 곳이 바로 남미였다.
특히 오랜 식민지 지배 끝에 독립한 브라질이나 군부독재로 파산 지경에 이른 아르헨티나의 축구 사랑은 눈물겨웠다.
펠레와 마라도나의 전설도 유명세만 알았지 실제 어떤 활약을 했는지 몰랐는데 상세한 해설을 읽고 보니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마라도나는 80년대 유명했던 스타라 그가 은퇴한 후 TV에서 마약 중독이나 스캔들 기사만 익숙해서 그의 활약상을 읽는 게 새로운 느낌이었다.
역시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닌 모양이다.
프랑스의 유소년 축구단도 감동적이다.
북아프리카 등지의 이민자들이 많은 프랑스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축구를 체계적으로 접할 기회를 주고, 덕분에 이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대신 프로 리그에 진출할 기회를 얻는다.
다양한 출신지를 가진 프랑스 대표팀에게 프랑스 국가도 제대로 못 부르는 이합집산들이라는 표현을 쓴 국내 축구 기사는 씁쓸함을 넘어서 한국 언론의 수준이 어디쯤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히딩크 감독으로 대표되는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나 지휘자와 선수 양성 체계 등도 인상적이었다.
거스 히딩크가 그저 운이 좋아서 한국 축구를 4강에 올린 게 아니었다.
영웅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웠다.
독일의 영원한 리베로 베켄바워나 토털 사커의 완성자 네덜란드의 요한 크레이프, 그리고 우리의 차범근까지.
차범근 역시 그저 독일에서 유명했구나 이 정도로 밖에는 몰랐는데 놀라운 선수였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축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면서, 무엇보다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으면서 축구에 호기심이 생겼다.
세계인들은 왜 이 공놀이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점에서 책을 읽게 됐다.
유럽이나 남미는 역시 축구의 종주국인만큼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얽혀 있어 단순히 국가대표 승리 같은 차원이 아니라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프로리그가 국가대표전 만큼 달아 오르지 못하는 까닭도 이해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엽서속의 기생읽기
국립민속박물관 지음 / 민속원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야간대출로 읽은 책.
민속박물관 갔을 때 봤던 책인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읽게 됐다.
만족도는 그저 그렇다.
조선의 관기는 예악을 담당하는 이른바 예술인이었는데 일제 점령 이후 몸을 파는 유녀로 전락했다는 저자의 논조에 완전히 동의할 수가 없었다.
정말 조선의 관기들이 예술인으로 대접받았을까?
일제 식민지 이후 위안부 문제들을 비롯해 여성의 지위가 급격히 하락했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 시대 관기의 신분과 처지를 과연 예술인으로 볼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다.
일제의 만행이 반대로 조선의 치적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문제 아닐까? 

기생들의 사진이 실린 엽서들을 보니 마치 요즘의 연예인 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당시로서는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던 신세대 여성이었을 것이다.
구한말 사진만 해도 모두 딱딱하게 얼어붙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는데, 뒤로 갈수록 마치 요즘의 배우들처럼 예쁘게 웃는 모습으로 꽤 멋진 사진들을 많이 남겼다.
이런 사진들이 엽서로 유통됐다는 게 신기하다.
연예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라 요릿집 등에서 기생들이 노래와 춤을 담당하고 유명한 기생의 경우 레코드 취입도 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효석의 애인으로 알려진 왕수복이다.
그녀는 민요의 세계화를 위해 최승희처럼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가 성악을 전공했고 독립 후 북한에서 인민배우 칭호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런 예술적 재능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평양에는 3년제 기생학교까지 있었다고 하니 오늘날의 연예인 느낌이 많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호리 갈대밭 속의 나라 (대도록) - 그 발굴과 기록,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가 봤다.
여길 방문한 까닭은, 바로 이런 도록을 보기 위해서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어쩐지 위압감이 들고 쉽게 방문하지 못했는데 막상 가 보니 시설이나 위치 모두 너무 편하게 되어 있고 무엇보다 국내 발행된 모든 책들이 다 있었다.
보고 싶었던 도록들이 전부 있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아쉬운 점은 너무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평일에는 이용하기 힘들고 주말에만 가야 하는데 주말에도 6시에 끝나서 오래 책을 보기는 어려웠다.
대출도 안 되는데 늦게까지 개방했으면 좋겠다.
(야간에 한 곳만 개방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다) 

이 전시회는 중앙박물관에서 직접 봤다.
그 때도 도록을 무척 사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소도록으로 만족했는데 도서관에서 보고 너무 반가워 제일 먼저 읽었다.
유물 사진을 보니 그 때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중에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도 다호리에서 출토된 붓과 삭도에 대해서 설명했었다.
이 유물들은 문자 생활을 그 때부터 시작했다는 간접적 증거가 된다고 했다.
이 다호리는 습지라서 유물 훼손이 최소화 됐고 낙동강을 중심으로 외국과 활발하게 교역을 했으며 근처의 평야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다호리 유적은 전형적인 원삼국 시대, 즉 초기 철기 시대의 묘제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훌륭한 유적지다.
발굴이 무려 20여 년에 걸쳐 이뤄졌다고 하니, 도굴과 발굴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유물들은 대부분 무덤의 부장품들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귀했을 철기 제품이나 칠기 장식품들을 넣어 두는 걸 보면 내세에 대한 의식이 확실했고 죽은 이에 대한 애도와 종교심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종교심은 정말로 본성에 각인된 근본적인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無의 상태에서 농기구나 토기 등을 만들고 옻칠 장식을 하고 집을 짓던 인류 조상들의 위대함은 생각할수록 놀랍다.
어떻게 철광석에서 철 성분을 분리하고 다시 그것을 주조하여 철기구로 만들 수가 있었을까?
또 옻나무 수액을 발라 내구성과 미의식을 더할 수 있었을까? 
고대 유물들을 보다 보면 인류의 기원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갖기 않을 수 없다. 

원삼국 시대에 대한 좋은 고찰이었고 당시 전시를 떠올리는 좋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 생각의 한계 - 당신이 뭘 아는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로버트 버튼 지음, 김미선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읽으려고 했던 책은 아니고, 희망도서 신청을 했는데 내 이름으로 잘못 기재되어 우연히 빌리게 됐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하고 덤볐는데 읽고 보니 상당한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나 칼 세이건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신론에 좀 더 확신을 갖게 됐다.
한동안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면서 특히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이 너무 커서 종교 자체를 부정했었다.
제일 이해가 안 갔던 게 바로 창조론을 믿는 과학자들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어떻게 그 말도 안 되는 창조론을 믿을 수 있으며, 또 그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과학과 종교는 결코 같은 맥락에서 대립할 주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분야라고 해야 하나?
결론적으로 보면 역시 과학은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나, 인간의 마음, 더 정확히 뇌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의미와 목적감을 얻기 위해 매달리게 되는 종교의 효용성을 인정해 주자, 이게 저자의 주장 같다.
넓은 마음으로 한 수 봐 주자는 거다.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궁극적인 결론은 그거다. 

안다는 것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기 보다는, 안다는 느낌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옳다거나 맞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냥 느낌일 뿐이다.
저자는 이것을 정신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그러므로 신념이든 확신이든 혹은 진리듯 어쩔 수 없이 다 궁극적으로는 주관적인 것이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화론에 대해 말할 때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진화론의 가치가 깎이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창조론이 힘을 얻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힘이 더 센 진화론자들의 절대적 확신을 공격하지만, 말하지 않은 이면에는 창조론자들에 대한 경고도 숨어 있다.
압도적인 증거를 가진 진화론이 이 정도로 겸손해야 한다면 실제적인 증거가 거의 없는 창조론은 더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는 종교의 효용성에 대해 인간에게 의미와 목적감을 준다고 했다.
아무리 우주의 신비를 밝힌다 해도 그 과학적 사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나 목적의식을 주기는 어렵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이유와 확신을 주겠지만 매우 예외적인 경우임을 인정하자.
(그런 이유로 저자는 도킨스를 이성을 신봉하는 종교인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므로 플라시보 효과를 인정하듯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종교의 효용성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저자에게 묻고 싶다.
과학과 종교가 명백히 다른 관점에서 서로 다른 분야에 속해 있는데 그 과학의 영역까지 파고들려고 하는 근본주의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오늘날 인간에게 의미와 목적감을 주는 이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드는 종교인들의 이 어처구니 없는 실상에 좀 더 관심을 갖는다면 저자 역시 도킨스처럼 신은 없다고 좀 더 확실하게 주장하지 않을까? 

제일 인상깊었던 구절은 대체요법에 대한 저자의 태도였다.
정통 의학자인 저자는 이 대체요법이나 민간요법, 일부 기적이라 불리는 사례들에 대해서 좀 더 너그러운 관점을 취한다.
결코 이들을 틀렸다고 단정짓지 않고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도 있으니까) 다만 내가 이것을 다른 사람에 권할 때는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몇 개의 경우에 불과하며 다른 case 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환자에게 알리라고 한다.
즉 나의 주관적인 신념과 확신임을 분명히 밝히라는 것이다.
내 관찰 결과가 필연적으로 의학적 성과를 이끌고 그것이 대부분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지 어떨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대규모 실험을 통해 그렇다고 확인된다면 이미 그것은 대체요법이라는 말 대신 정통의학으로 포함될 것이다.
정말 이 정도의 양심을 지켜 준다면 대체요법에 대해서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편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지, 또 생각의 한계가 얼마나 분명한지 새롭게 깨달았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한 권을 읽고 삶의 태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성과는 없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