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유물 속 가을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편집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알라딘에는 중앙박물관에서 펴낸 도록들이 대부분 없던데 검색이 되서 신기하다.
잘 알 팔리는 책들이지만 그래도 서지 정보 정도는 꼭 갖춰 줬으면 좋겠다.
사실 이 전시회는 직접 보지는 못했다.
2007년도라면 막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때라 무척 바쁘고 정신이 없어 박물관에 가 볼 여력이 없었다.
전시 제목이 무척 독특해 대체 무슨 내용이었을까 도록을 볼 때마다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비로소 궁금증을 풀었다.
가을이라는 계절적 특성을 테마로 잡아 관련 유물들을 전시한 독특한 전시회였던 것 같다.
중앙박물관에서 출간된 다른 책들처럼 도록의 질과 수준이 무척 높다.
못 본 게 아쉬울 정도로 좋은 전시회였을 것 같다.
특히 소개된 가을 풍경의 산수화들은 뒤의 논고에 나온 것처럼 딱히 가을이라고 구분지을 만한 상징들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것들을 계절별로 구분해 내는 것이야 말로 수묵화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사계산수화 중 봄은 연두빛의 버드나무 느낌으로 화사하고 밝고, 여름은 습기를 머금은 듯 축축하고 잎이 무성한 반면, 가을은 청색 느낌으로 어쩐지 스산하고 쓸쓸하다.
차라리 겨울이 흰 눈으로 뒤덮혀 더 안정적이고 가을의 산수화는 잎이 지고 강변에 떠 있는 외로운 달처럼 쓸쓸한 느낌을 많이 주는 것 같다.
산수화가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산수화만큼 먹이라는 재료를 잘 살린 장르도 없을 것 같다.
약간의 채색이 가미된 수묵담채화는 정말 매혹적이다.
비슷비슷한 그림들을 보다가 정선과 김홍도, 허백련, 이인상의 산수화에서는 또 눈이 번쩍 뜨여 처음 보는 작품이었는데도 훌륭하다는 탄성이 나왔다.
역시 대가들의 솜씨는 평범한 사람이 그냥 봐도 느낌이 다르다.
산수화에 비해 꽃이나 벌레를 표현한 화훼초충도는 먹이라는 재료의 한계 때문인지 섬세한 표현에는 안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심사정의 그림도 꽃을 그린 작품에서는 아마추어 느낌이 났다.
세밀화와는 안 맞는 재료 같다. 
대신 김득신의 노안도나 최북의 메추리 그림 등은 먹으로도 새의 특성과 느낌을 잘 살렸다. 

좀 의아했던 것은, 가을이라면 물론 낙엽이 지고 모든 게 쇠락해 가는 쓸쓸한 계절이기도 하지만, 대신 불타는 것 같은 붉은 단풍이 강렬한 계절이기도 하다.
또 오곡백과가 수확되는 풍요의 계절이다.
이런 풍요로운 느낌이 왜 그림에는 잘 반영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도상이 쓸쓸함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인가?
고구려의 동맹이나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처럼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일종의 추수감사제 같은 축제들이 분명 조선시대 때도 있었을텐데 이런 축제 분위기는 수묵화에서 찾기가 영 어렵다.
김홍도의 풍속화에서나 잠깐 볼 수 있을까?
정수영이 금강산을 그린 <해악첩>을 보면 붉게 물든 단풍이 표현되어 수묵화에는 드물에 붉은 색이 사용됐다.
보다 신명나고 풍요로운 가을 그림이 많이 발굴되면 좋겠다.  

가을하면 사군자 중 국화에 해당하는 만큼 국화 장식의 청자들도 많이 소개됐다.
여러 청자 속에 끼어 있을 때는 몰랐는데 국화 문양만 따로 떼어 놓고 보니 청자라는 소재와 무척 잘 어울린다.
국화 문양으로 장식된 병과 잔, 받침대 등에서 우아한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계절을 주제로 한 무척 독특한 테마의 전시회였고 이런 다양한 주제들이 자주 선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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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네트렙코 : 피가로의 결혼 (2disc) - 한글자막 포함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외 / 유니버설뮤직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오페라 대학 페스티벌에서 <피가로의 결혼> 을 보고 DVD로 다시 보게 됐다.
조선 시대 쯤으로 배경을 바꿔 나서 약간 이해가 안 갔던 부분을 영상물로 다시 보니 감이 좀 잡힌다.
배우들의 성량이 무대에서는 꽤나 답답했는데 역시 좋은 영상물로 보니 시원시원하게 잘 터져 나온다.
<피가로의 결혼> 이라면 <러브 오브 시베리아> 라든가 <쇼생크 탈출> 에서 먼저 접했던 오페라다.
주인공 안드레이가 무대에서 <피가로의 결혼> 을 열연하다가 칼을 들고 직접 연인에게 치근덕대는 고급 관리에게 돌진하던 장면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때문에 시베리아로 유형길을 떠날 때 인파 속에 묻혀 찾을 수가 없자 친구들이 오페라의 아리아를 합창하고 그 소리를 듣고 비록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역시 힘찬 노래로 답하던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
좋은 노래들이 참 많은 오페라다. 

직접 보기 전에는 막연히 신분 사회가 무너지고 피지배 계급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권리를 주장하는 뭐 그런 혁명적인 내용이다, 이 정도로 의의를 알고 있었는데 막상 작품을 보고 나니 남자들의 질투 심리를 이용한 고도의 심리극 같다.
또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나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상대를 찾아 치근덕대고 그것이 당연하게 용인된다는 점에서 신분사회가 아닌 지금에도 권력자들의 속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전편 격인 <세빌리아의 이발사> 를 통해 어렵게 사랑을 쟁취한 알마비바 백작이 다시 하인의 약혼녀인 수잔나에게 흑심을 품고 덤빈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2막에서 버림받은 백작 부인 로지나의 안타까운 마음이 노래로 잘 표현된다.
내가 갖지는 못해도 널 줄 수는 없다는 알마비바 백작의 욕심에 화가 나기도 했다.
권력을 갖게 되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생각이 먼저 자리를 잡는 것인가? 

로지나와 수잔나가 소프라노인 반면 피가로와 알마비바가 베이스라 네 사람의 4중창이 무척이나 조화롭고 아름답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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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에센스 55 - 박종호가 이야기해 주는 오페라 55편 감상의 핵심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박종호씨의 오페라 신간.
제목은 다소 불만족스럽지만 내용은 전작들처럼 알차고 문맥도 매끄러워 읽기 편했다.
오페라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인지 그래도 몇 편은 직접 공연을 보기도 했고 DVD로 접하기도 했다.
그래서 읽을 때 진도가 빨리 나갔다.
450페이지 정도 되는데 5시간 남짓 걸렸으니까 90페이지 정도는 읽은 셈.
55편의 오페라 중 안 본 것, 보고 싶은 것들을 옮겨 적었다.
직접 무대에서는 다 못 보더라도 DVD라도 접하고 싶어서다.
친절하게 각 오페라마다 좋은 영상물들을 추천해 놨지만 아직은 한글 자막이 없으면 그냥 보기는 좀 어렵다.
아무래도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 몰입이 쉽기 떄문이다.
그렇지만 좀 보다 보면 굳이 자막이 없어도 노래와 음악, 무대 예술 등에 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페라가 음악에 중점을 두어서언지 의외로 대사나 줄거리는 단순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역시 오페라 하면 최고의 작곡가는 베르디다.
작곡가별로 명작 오페라를 몇 편씩 소개했는데 베르디 오페라가 가장 많다.
<시몬 보카네그라> <아이다> <라 트라비아타> 등은 매트 오페라를 메가박스에서 상영할 떄 접했고, <운명의 힘> <돈 카를로> <나부코> 등도 꼭 보고 싶다.
바그너의 악극은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로엔그린> 이나 <탄호이저> 그리고 반지의 제왕에도 차용된 유명한 북유럽 신화 <니벨룽의 반지> 등도 꼭 보고 싶다.
<니벨룽의 반지> 는 4일에 걸쳐 무려 17시간이 걸리는 엄청난 대작이다.
바그너도 스케일이 퍽 컸던 모양이다.
바그너의 후계자로 알려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은 20세기에 속하는 것으로 비교적 최신작이다.
<장미의 기사> 를 매트 오페라 상영시 봤었다.
마치 함진아비처럼 젊은 기사가 신부에게 은장미를 바치면서 대신 청혼하는 관습이 무척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슈트라우스의 창작품이었다.
18세기 오스트리아의 화려한 귀족 의상을 보는 즐거움이 크고 장미의 기사 역을 맡은 옥타비안이 메조소프라노가 맡아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마르샬린과 조피와는 마치 자매처럼 다정해 보였던 게 기억에 남는다.
메트 오페라 상영시 진행자로 자주 등장한 르네 플레밍은 추천된 여러 영상물에 이름을 등장시킨다.
우리 시대 대단한 소프라노였던 모양이다.
플라시도 도밍고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은 유명한 성악가들이 등장해 반갑기도 했다. 

그래도 오페라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생겨서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여기 나온 오페라 정도는 꼭 한 번 챙겨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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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과 죽간으로 본 중국 고대 문화사
도미야 이타루 지음, 임병덕 옮김 / 사계절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예상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막연히 생각하길, 목간이나 죽간에 남아 있는 글들의 의미를 파악하여 그동안 잘못 알려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하여 정보를 주는 그런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목간과 죽간, 즉 간독 그 자체에 대한 물리적 성질부터 시작해서 중앙집권체제 정립에 이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서사 자료가 종이로 이동한 시기는 언제인지, 간독은 언제쯤 사라졌는지, 어떤 방식으로 간독이 둔황이라는 먼 변경 지대까지 전달이 됐는지 등을 상세히 밝히는 꽤 전문적인 책이었다.
일본 사람들의 책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주제에 파고드는 그 집요함에 종종 놀라곤 한다.
가끔은 너무 조잡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한 그 성실함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한국에서는 함안산성에서 죽간이 발견됐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의 목간들이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일본인 학자가 고대 중국의 간독에 대해 이렇게 자세한 연구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목간이나 죽간은 다 그게 그거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도 구분이 있다.
그래서 책 제목에서도 이 둘을 따로 명명했나 보다.
목간은 말 그대로 나무 조각 하나에 글을 쓴 단독간이고, 죽간은 여러 조각을 이어 만든 일종의 편책이다.
이 죽간은 주재료인 대나무의 북방 한계선 이하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죽간의 특징은, 마치 파일처럼 첨부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종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 즉 후한 이전 시대의 저작들은 모두 여러 사람의 글을 첨가한 형태라고 본다.
예를 들어 공자의 논어를 비롯한 유교 경전들이 한 사람의 저작이 아니라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첨가된 기록으로 보는 것이다.
목간은 일종의 행정 문서나 증명서의 역할을 했다.
둔황이나 내몽골의 사막 일대에서 발견된 간독들을 보면 대부분이 중앙에서 전달되거나 반대로 중앙으로 상주하는 행정문서들이라고 한다.
이 간독을 전달하는 일종의 우체국인 우정도 마을마다 존재했다.
저자는 간독을 쓰는 형식과 글체에 대해서도 자세히 분석한다.
보통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면서 도량형과 화폐, 수레바퀴에 이어 서체도 일순간에 통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저자는 이런 일반적인 해석에 반대한다.
승상 이사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소전은 대전을 간략하게 쓰기 위한 방법인데 한대에 유행한 예서가 이미 전국 시대에도 쓰여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사 한 사람이 단독으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서체를 소전으로 통일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오래 전부터 쓰여 오던 간략화된 소전체를 행정문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게 바로 이사라고 본다.
진이 통일 왕국을 세운 후 전국 각지에 보낼 문서의 양은 그 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글자는 점점 간략해지고 더불어 모양의 예술화를 추구한다.
이런 방향성 때문에 전서에서 예서로, 다시 팔분체로, 그리고 초서와 해서로 발전했다고 본다.
진 통일 이전의 간독에 이미 예서체가 등장했다고 하니, 어느 날 갑자기 서체 통일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는 또 채륜이 기존의 종이 만드는 법을 발전시켜 본격적으로 종이가 널리 사용되게 됐다는 학설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채륜이 채후지를 발명한 후한 화제 시대인 105년 이전에도 물론 종이가 쓰였으나 그것은 서사의 재료로서가 아니라 목간 등을 포장하는 일종의 포장지로 사용됐다고 본다.
본격적으로 종이가 간독을 대신하여 서사의 재료로 사용된 것은 채후지가 발명된 이후부터이고, 서진 시대가 되면 종이로 완벽하게 대체가 된다.
이 시대의 무덤에서 연습용 종이들도 발견되는 걸 보면 이미 종이의 생산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대신 이 당시에도 여전히 신분의 증명용 등으로 목간은 남아 있었고, 그런 까닭에 일본에 전래될 때는 종이책이 대신해 버린 죽간 대신 여전히 사용되는 목간만 전해져 나라 시대에 발견되는 간독은 모두 목간의 형태라고 한다.
하나하나 끼워 맞출수록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신안선의 물표로 달려 있던 그 나무패들은 죽간이 아닌 목간이었던 것이다. 

결국 중앙집권국가 체제는 문서 행정으로 가능한 것이었고, 이것의 물리적 형태가 바로 목간과 죽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종이가 발명되기 전 파피루스처럼 종이 대용으로 나무조각을 썼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나무조각들이 중앙집권국가를 이룩한 일등공신이었다니, 역사의 숨겨진 사실이 놀랍다.
나는 고대의 간독이 단순히 옛 역사적 기록들을 보충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놀라운 의미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300 페이지가 안 되는 가벼운 분량이면서도 내용은 무척이나 전문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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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항아리 - 조선의 인과 예를 담다
강경남 지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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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말 오랜만에 간 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에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올해는 거의 못 갔던 것 같다.
오랜만에 전시실을 둘러 봤더니 많이 바뀌어 있었다.
박물관의 좋은 점은 관람을 한 후 뮤지엄샵에 들러서 이처럼 좋은 도록을 살 수 있다는 것.
가격도 9000원으로 착한 편이고, 내용도 알차다.
도록에 대한 욕심이 많아 가능하면 구매하는 편인데 사진이 많다 보니 대부분 3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선뜻 집어들지 못한다.
그래도 테마전시로 이렇게 싸게 나온 도록이 있으면 가능하면 구매하는 편이다.
이 책도 전시된 유물에 대해 상세하게 해설을 하고 있고 조선의 백자호가 갖는 의의와 역사에 대해 세심하게 알려 준다.
요즘 책값으로 봤을 때 9천원이라는 가격에 비하면 정말 알찬 책.
중앙박물관에서 펴낸 책들은 대체적으로 속이 꽉 차 있다. 

사실 도자기에 대해서는 그동안 관심이 전혀 없었다.
고려청자라는 것도 너무 많이 회자되다 보니 어쩐지 한국 문화하면 고려청자, 이런 식으로 도식화된 느낌이 들어 그다지 눈길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역시 직접 봐야 그 맛과 멋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박물관에 들락날락 하면서 옆눈으로 슬쩍 둘러 봤는데 왠걸, 그렇게 멋지고 우아하고 예쁠 수가 없는 거다.
청자는 리움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이 정말 수준급이었고 백자는 중앙박물관도 훌륭하다.
특히 의궤 같은 데 실려 있는 그림을 보면 자기들이 어떻게 실생활에 쓰였는지 알 수 있어서 더욱 실감이 난다.
작년에 박물관에서 했던 전시회 중, 조선 왕실 잔치를 모형으로 제작한 것이 있었다.
거기서 커다란 용준과 화준에 꽂혀진 종이꽃들을 보면서 그 미의식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화려한 용그림과 어울어진 꽃들이 생화 못지않게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책에 보면 왜 조선에서 자기를 그렇게 중요시 했는지 잘 나와 있다.
예의 실천을 중요시 했던 왕실에서는 의례를 통해 그것을 구현하려고 했고, 이 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공예품, 즉 도자기였던 것이다.
제사 때 필요한 청동기 외에도 여러 의식 때 실제적으로 음식과 술을 담고 장식을 하기 위해 자기는 매우 중요한 공예품이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구리 생산이 적어 청동기 의기 대신 청자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5월에 스페인에 가서 톨레도 지역 박물관을 방문했는데 거기에도 도자기가 많아 깜짝 놀랬다.
자기 하면 중국이나 한국인 줄 알았는데 유럽에도 자기 문화가 꽤 발달했다.
그런데 동양의 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많이 수입했던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그렇게 자기 생산을 중요시 했다면 왜 장인들을 대우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관에서 장인들을 관리하고 관요를 운영했지만 일이 워낙 힘들고 보수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결국 19세기 말에 민영화 되고 말았다고 한다.
도공들의 처우를 국가에서 보장해 줬다면 국가 산업으로서 자기가 훨씬 더 생명력을 갖지 않았을까?
편견인지 몰라도 백자는 역시 청화 안료로 그린 것이 제맛인 것 같다.
임진왜란 이후 코발트 안료 구하기가 어려워 철화 안료를 많이 썼는데 맑고 투명한 푸른색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차라리 철화 백자보다는 아무 것도 없는 순백자, 달항아리가 더 자기의 맛이 살아 있는 느낌이다.
달항아리의 경우 워낙 지름이 크기 때문에 위아래를 따로 제작해 붙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완전한 좌우 대칭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데, 국가에서 생산하는 최고의 도자기들인데 비례대칭이 맞지 않는 게 상당히 많아 그 점은 좀 의아하다.
후기로 갈수록 자기의 입구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나는 오히려 초기의 낮은 입구가 더 마음에 든다. 

뒷편에 보면 명기에 대해 나온다.
순장 대신 기물을 넣는 것으로 바뀌면서 명기 셋트도 일종의 도식화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정조와 관련있는 사람들의 명기가 많이 발견되어 흥미롭다.
먼저 정조의 형인 의소세손.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의 첫 아들인데 겨우 세 살의 나이로 사망했고 의령원에 묻혔다.
한중록을 보면 세손이 죽어 비통하나 다행히 두 번째 아이, 즉 정조를 임신하고 있어 윗전에 덜 민망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조의 여동생인 청연군주의 명기도 나온다.
68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 보면 꽤 장수한 셈.
정조의 첫번째 후궁인 홍국영의 누이동생 원빈 홍씨의 명기도 실렸다.
겨우 열 네 살의 나이로 사망한 불행한 여인이었던 것 같다.
최고의 권력자 오빠 탓인지, 아니면 일찍 죽은 어린 아내에 대한 애닲은 심정 때문인지 조선 왕으로서는 유일하게 정조가 직접 행장도 지어줬다고 한다.
이들 여인들의 명기에는 화장품 등이 들어 있어 흥미롭다.
후대에 발굴되는 이런 유물들이 아니면 역사 속에 묻혔을 인물들인데 발굴을 통해 한 번쯤 되돌아 보니 새삼 의미가 있다.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고 앞으로도 좋은 전시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가서 감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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