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김순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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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페이지 정도 되는 아주 얇은 책인데 내용이 심오하다.
너무 쉽게 쓰여져 이해하기 편했다.
신문의 북리뷰에서 보고 도서관에 신청한 책이다.
이런 얇은 책이 만 원이라니, 만 원의 화폐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 계기였다.
하여튼 책 판형도 작고, 표지도 예쁘고 읽기도 편하다.
저자가 1915년 생이라고 하니, 올해 나이가 무려 95세!
그런데도 책을 쓸 수 있는 그 체력과 열정이 놀랍다. 

정치적 평등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현대는 너무 바쁘고 정치에 무관심한 게 대부분의 젊은이들이니까.
심지어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좋은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정치하면 어쩐지 권력 집단의 헤게모니 장악 싸움 같고 지역감정이 떠올라서 흔히 얘기하는 사회 정의나 민주주의 같은 위대한 가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정치적 무관심, 혹은 소외가 정치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회가 커갈수록 정치적 평등은 멀어져만 간다.
규모가 커지니 다 모일 수가 없고, 모두에게 발언권을 줄 수도 없기 때문에 시간과 규모의 제한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대표를 뽑고 그에게 권한을 위임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 사회가 팽창하면서 대표는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을 대신하게 되고, 이들의 의견을 전부 경청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지극히 제한된 소수의 지역구민과만 대화하게 된다.
또 시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정치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이것을 정치적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라고 한다.
먹고 살만 해야 권력에의 의지가 생기고 특히 경제 엘리트 집단의 경우 쉽게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돈이 뒷받침 되면 다음은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게 순서다.
9.11 테러 같은 국가적 위기가 닥쳐도 시민들의 정치적 평등은 제한된다.
위기 상황이 되면 행정부는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고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권한을 더 많이 양도한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늘 위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정치적 불평등을 더욱 조작한다.
신기하게도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주의는 시장에 의해 생산과 가격이 결정되는 자본주의에 비해 훨씬 더 권위적이고 강압적이며 비효율적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이 시장경제에 의해 소외받는 하층민들은 더욱 불평등이 심화되어 정치적 평등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우리에게 대안이 있을까?
저자는 소비 문화에 한계 효용의 법칙을 대입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곧 미덕이고 일정 기준선까지는 많이 소비할수록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수준을 넘어서면 아무리 소득이 늘어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소득 증가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나를 우월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일종의 과시재이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쓴다.
요트를 가졌으면 안 가진 사람에 비해 우쭐하고 자부심을 느끼지만, 더 큰 요트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기가 죽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컨대 이 시기심이야 말로 끝없는 경쟁의 나락 속에 인간을 압사시키는 주범인 것이다.
저자는 소비 문화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그 때부터는 사람들이 정치적 권리를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시민권이 소비 문화를 이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60년대의 반문화, 히피 문화처럼 말이다.
소비주의에서 시민권으로의 변화,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쉽게도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논의는 여기서 끝난다. 
내가 좀 더 살아봐야 할 일이다. 

정치적 평등이 민주주의의 목표이면서도 이 당연한 권리를 얻기 위해 수많은 도전과 노력들이 있었다.
18세기 이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는데 칸트의 순수이성론과는 다르게 저자는 롤스 식의 공리주의적 정의를 그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 일이 옳은 일이고 그것을 실행하므로써 내적 즐거움을 느끼는 도덕적 명령, 즉 이성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저자는 공정함에 대한 감각, 열정 때문에 정치적 평등을 추구한다고 했다.
사실 이 말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원숭이의 예에서도 보듯, 인간 역시 공정함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다른 동물들 보다 훨씬 민감하다.
어떤 계층이 특권을 가졌다면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감각 말이다.
보통 상위계층은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종교나 철학의 힘을 빌린다.
이를테면 왕권신수설처럼 말이다.
그러나 하층민은 이 부당함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회의 변화가 무르익어 역전시킬 기회가 오면 뭉치고 일어난다.
이 혁명에의 위협이 상위층으로 하여금 특권의 일부를 내놓도록 만든다고 했다.
제임스 밀은 폭력을 수반한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서는 안 되고 다만 위협으로 그치면서 상위 계층이 하위 계층에서 특권을 양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했다.
공정함에 대한 타고난 감각과, 혁명, 즉 현재의 질서와 안정이 깨진다는 두려움이 상위 계층으로부터 권력을 쟁취하는 힘이었다고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은 열정에 기초한 것이므로 임시적이고 매우 가변적이다.
그러므로 영구하게 존속시킬 수 있도록 법과 제도로 명시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의 열정이 사라진 후에도 하층민은 권리를 지속적으로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정치적 평등에 대한 좋은 고찰의 시간이었고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내 권리를 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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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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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해 놓고 계속 못 읽다가 해가 바뀌고서야 겨우 읽게 됐다.
의외로 작은 판형에다가 내용이 가벼워 좀 놀랬다.
저자인 석영중씨라면 <러시아 정교>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좀 어려울 줄 알았는데 굉장히 쉽게 쓰였고 저자가 상당히 글솜씨가 있어 문장이 한 번에 쉽게 읽힌다.
마치 주경철씨 저서를 읽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내용이나 주제의 전문성 못지 않게 저자의 문장력도 가독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상하게 도스토예프스키는 아직 제대로 접하질 못했고, 톨스토이 작품들은 그런대로 읽었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러시아의 대화가인 레핀의 초상화가 너무나 인상적이라 톨스토이 하면 어쩐지 성자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그는 50대 이후 자신의 인세를 포기하고 영지를 소작농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을 해방시키려고 애썼다.
아내 소피야와의 갈등 때문에 다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책에 나온대로 노동의 신성함을 실천에 옮기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래서 말년에는 성자로 추앙받기도 했다.
비록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파문당했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성자 같은 삶을 산 (즉 청빈의 삶) 톨스토이가 왜 교회에서 파문을 당하고 약간은 이상한 쪽으로 묘사됐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책을 보면서 비로소 이 문호의 극단적인 사상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됐다.
그가 주장했던 것들은 따지고 보면 오늘날 현대인이 추구하는 웰빙의 삶이다.
환락과 사치가 만연한 도시를 떠나 맑은 공기와 자연이 있는 시골로 돌아가 땀흘려 일하고 소박한 음식을 먹고 가족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단순한 삶!
현대인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헨리 소로우의 삶이 아닌가.
술과 담배와 마약과 도박, 섹스 등을 멀리해라.
더 좋은 건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만 해라.
현대인들이 얼마나 좋아할 소리인가.
채식주의가 무슨 유행처럼 대단한 이념과 사상인 양 포장되고 있는 요즘 시류에 정말 딱 들어맞는 주장들이다. 

톨스토이가 육식을 금하라는 것은, 정욕의 억제와 관련이 있다.
도살 자체가 비인도적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음식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를 자제함으로써 섹스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고 노동을 통해 기쁨을 얻는 소박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톨스토이는 섹스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했다고 한다.
소작농의 아내와 바람을 피워 소피야를 미치게 만들기도 했다.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더욱 금욕적이 되라고 설파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통제라고 할까?
따지고 보면 그가 섹스에 강렬한 욕구를 느끼지 않았다면 그렇게도 섹스를 혐오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확실히 섹스를 혐오하는 사람은, 무의식 중에 끝없이 섹스를 동경하고 그 욕구에 괴로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내가 먹는 것에 집착하면서도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억누르듯 말이다. 

심지어 톨스토이는 소박한 삶을 위해 예술도 다 쓰레기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너무 놀라 정말 이랬을까 싶기까지 했다.
그 자신이 위대한 소설가이면서도 귀족 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예술의 퇴폐적 기능을 비판하고 오직 착한 감정을 전파시키는 교훈적인 이야기만 예술로써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작품 역시 다 쓰레기고 그것으로 인세를 번다는 사실에 대해 늘 괴로워 했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정부에서 귀족들을 위한 예술, 즉 오페라나 클래식, 발레 등 고상한 척 하는 공연 예술에 보조금을 쏟아 붓고 정작 민중의 대다수는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민중이 즐기는 것에는 전혀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일컫어지는 푸슈킨의 동상 건립마저도 대체 저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짓이냐고 비판한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존심 때문에 결투 벌이다가 죽은 천박한 시인의 동상 건립이 왜 이슈가 되냐고 비난한다.
고급 예술로부터 소외된 민중을 위한 톨스토이의 관점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야 말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지극히 불평등한 장르이고 보면, 고급예술에 대한 특혜는 어쩔 수 없는 부분 같다.
오히려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 감각적 만족, 아름다움의 추구, 정신적 쾌락에 있는 게 아니라 감정이입, 상호간의 감정 교류에 있기 때문에 선, 즉 착한 감정을 전파시키기 위해 교훈적인 것들, 즉 우화 같은 것만 진짜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그 교조주의적인 톨스토이 사상이 놀랍다.
이건 공산주의의 인민 예술과 비슷하지 않은가?
사실 톨스토이가 진정한 사상가이자 도덕주의자로 추앙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이러한 지나친 교조주의에 있지 않나 싶다.
어떻게 보면 말만 번지르하게 내뱉고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위선가들 보다는 훨씬 위대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사상에 지나치게 철저한 나머지 거기에 너무 집착해 외골수로 빠진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열 세 명의 아이를 낳으면서 남편의 작품들을 정서하느라 평생을 보낸, 지극히 평범한 욕망의 소유자였던 아내 소피야로서는, 이러한 "위대한 사상가" 톨스토이를 이해한다는 게 너무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와 플라토닉 러브를 갈구했던 소피야의 외로움과 고단함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책은 <안나 카레리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당시에도 재밌게 읽었지만 이 소설이 톨스토이의 이런 심오한 뜻을 전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톨스토이의 대답이 바로 이 책일 것이다.
그의 디테일한 묘사를 읽다 보면, 저자의 찬사대로 정말 타고난 작가이고 위대한 문호임이 분명하다.
어쩜 이렇게 세세하게 캐릭터와 상황을 묘사한단 말인가.
도덕주의자로 빠지면 맥빠진 성인군자처럼 변하기 일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들의 캐릭터는 놀랍도록 정교하다.
다시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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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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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을 먼저 구입해서 읽었고 1권을 읽어야지 벼르기만 하다가 항상 대출 중이라 못 읽어서 늘 미진했던 책이다.
드디어 근 몇 년만에 1권을 읽게 됐다.
2권 읽을 때만 해도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고 감이 잘 안 잡혔는데 그동안 중세에 대한 약간의 지식도 쌓여서인지 1권은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내친 김에 2권도 다시 한 번 읽게 됐다.
작가의 원 계획은 5권까지 스토리가 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겨우 두 권에 그친 후 소식이 없어 아쉽다.
아마 본격적인 역사서로 읽었다면 굉장히 지루하고 빨리 머릿속에 들어 오지 않았을 거다.
작가가 재밌게 풀어 쓴 덕분에 적어도 은자 피에르, 기사 르노, 2권의 주인공 보에몽 공작 정도는 확실히 알겠다. 

책에서 못마땅한 점을 들자면 현대 정치사에 역사적 사건의 교훈을 지나치게 많이 대입시킨다는 점.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십자군 파병과 연결짓는 시도는, 뭐 한 두 번이야 작가의 소신으로 이해한다 쳐도, 이건 도대체 전 권에 걸쳐 끊임없이 등장하니 읽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산만하기 그지없고 따지고 보면 꼭 들어맞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만 더 생겼다.
본격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다루는 책도 아니면서 곁가지를 마치 중심 주제처럼 부각시켜 십자군 전쟁이라는 큰 틀을 아주 많이 흔들어 놓는 꼴이 되버렸다.
어떤 역사가든 마찬가지지만, 과거의 역사를 현대의 사건에 대입시키고자 하는 욕구는 그야말로 절제가 필요한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지난 번 김종성의 책에서도 강감찬 장군과 박정희 연결 시도가 너무 황당해 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자기 책의 진가를 스스로 깍아 먹고 있는 꼴이 되버렸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부분은, 현재 이슬람을 테러 집단으로 몰고 가는 미국의 우익 세력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은 평화와 관용의 종교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슬람의 침략사까지 미화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건 뭐, 오리엔탈리즘의 반작용으로 오히려 옥시덴탈리즘을 추구하는 꼴이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우즈베키스탄 전시회에 대한 도록을 읽던 도중 이런 부분이 나왔다.
원래 이 곳은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의 문화가 혼합되어 발전했는데, 8세기 이후 이슬람이 침략하면서 당시의 토착 문화 상당 부분을 훼손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완전히 이슬람화 되어 있다.
어떤 문화나 세력이든 힘을 가지면 그것으로 타자를 억압하게 마련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강압과 훼손이 될 수 밖에 없다.
십자군 전쟁이 성전이 아니고 경제적 이윤을 위해 동방으로 향했다는 진실을 파헤치는 것까지는 좋지만, 서유럽의 팽창주의를 너무 비판하다 보니 반작용으로 이슬람의 포교 행위는 모두 평화적이고 자발적이었고 침입을 받은 민족들은 오히려 그들을 반겼다, 라는 식으로 포장하는 건 위험하다.
한 쪽에 대한 비판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쪽에 대한 찬사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그것 역시 역사 왜곡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역사가라면 자신의 주관과 이념에 너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고,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보다 날카로운 식견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자국의 역사에 대한 해체주의가 폭넓게 시도된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그럴 듯 하게 포장되고 미화된 역사를 보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자크 르 고프의 십자군 비판도 이런 맥락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복잡다단한 십자군 원정에 대해 만화로 쉽게 설명해서 재밌게 읽었고, 원 계획대로 다음 이야기도 빨리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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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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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른 시각을 기대했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반론의 여지가 많았다는 것.
고종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나도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이고 이태진 교수의 주장, 고종은 군주로써 최선을 다했지만 모든 것은 일제의 잘못이다는 관점은 나 역시 매우 비판적이다.
KBS 역사 프로그램에서 이태진 교수의 입장에서 고종을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했던데 그 때도 굉장한 반발심을 느꼈고 책을 읽으면서 역시 고종은 망국이라는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명백한 책임을 져야 할 최고 지도자임을 확인했다.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이라는 책을 보면 고종이 대한제국을 수립한 후 황제국에 적당한 격식을 차린다는 이유로 엄청난 국고를 쏟아 부은 내용이 나온다.
지금은 대한제국의 건원칭제를 대단히 자주적인 사건으로 언급하지만, (마치 조선도 황제국이었다, 이런 식으로) 10여 년 안에 결국은 식민지가 되고 말아야 했던 현실에서 황제가 된다는 것이 재정파탄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정말 회의적이다.
더군다나 대한제국은 황제의 전제권을 강조한 매우 반동적인 체제였다.
개혁파와 시대의 흐름이 원했던 입헌군주제를 고종은 굉장히 싫어했고 자신의 권력을 뺏어가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했다.
독립협회와 틀어진 것도 이런 시각차 때문이었다.
저자는 고종이 권력의 사유화에 몰두했다고 통렬하게 비판하는데 그간 고종이 보여준 일련의 행태들로 미루어 봤을 때 이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유교적 군주의 왕권강화와는 전혀 다른 1인 절대 권력을 지향했기 때문에 말년에 남은 사람은 정상적인 국가 체제에서는 절대 관료가 될 수 없는 일종의 친위부대만 남았다는 것이다.
고종이라는 전근대적 인물에게만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일견 불공평해 보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서 벗어난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
영조나 정조나 왕권강화 하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왕 노릇을 한 것이 고종의 불행이라고 할까?
고종 독살설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어 저자의 시각이 어떤지 궁금하다. 

소현세자나 효명세자에 대해서는 명백한 독살설이라고 단정짓던데 그렇다면 과연 독살이라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왕이 누가 있겠는가?
소현세자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청에서 돌아온 후 급사한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보여준 아버지 인조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인조 대왕과 친인척>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바로 당시 정치 상황이었는데, 뜻밖에도 소현세자의 장인인 강석기는 반청파였고 봉림대군의 장인 장유는 비교적 청에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자점의 입장에서는 반청파인 강석기 쪽 보다는 봉림대군이 더 편했을 것이다.
효종은 즉위한 후 김자점 일파를 축출했지만, 소현세자의 급사 이후 왜 원손이 아닌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봉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친청파인 김자점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해야 할 것이다.
효명세자의 독살설은 이 책에서 처음 접한 거라 더 어리둥절 하다.
스물 한 살에 갑자기 죽은 게 문제가 된다면 열 아홉에 즉위하자마자 사망한 예종은 어떻고, 정조와 경종은 또 어떤가?
재위 1년을 못 채우고 죽은 인종은 정말 계모가 준 떡 먹고 급사한 것은 아니고?
이덕일씨의 관점을 싫어하는 이유는 이런 저런 가설과 추측이 지나쳐 자의적인 역사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이 독살설이야 말로 정말 경계해야 할 문제 같다.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평가는 뜻밖이었다.
안중근 열사가 저격한 조선 침탈의 일등공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조선의 식민지화 대신 그 보다 약한 단계인 보호국 정도를 원한 온건파였다고 한다.
이 점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 다른 책에서 읽기를, 안중근이 저격할 때만 해도 이미 정계에서 은퇴한 상태라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했다.
<현대 일본을 찾아서> 라는 미국인의 저서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정치 행로에 대해 읽긴 했으나 일본 정치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라 조선 문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었던 것 같다.
과연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좀 더 알아봐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을미사변을, 일본의 강경파가 저지른 실수라고 생각한다.
고종과 러시아의 결탁을 끊고 왕을 공포에 몰아 넣기 위한 지나친 제스쳐 때문에 오히려 반일 감정이 확대되고 아관파천과 대한제국이라는 반동적인 결과가 나타났다고 했는데 을미사변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같아 신선했다. 

저자는 자꾸 왕조 국가에서 명이나 청에 대한 사대 관계가 현재 대한민국의 미국 종속보다 훨씬 약하다고 주장하는데 전근대적 국가의 책봉 문제와 현대 국가의 미군 주둔이 어떻게 같은 관점에서 평가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이런 과도한 비유는 정말 신중하고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맥락이 다른데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 가지 저자의 관점에서 동의했던 것은, 명이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출병한 것이 단순히 자국 보호라는 순망치한의 논리보다는 기존의 사대 관계에 입각해 조선을 보호하려는 전통적 의리 문제도 매우 중요했다는 점이다.
보통 한국 학자들의 임진왜란 관련 책을 읽어 보면 명의 출병을 순전히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라고 일관하고 실제로 조선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는 점만 강조하는데 지나치게 한쪽 면만 본다고 생각한다.
왜 명이 멸망한 이후에도 조선에서 숭명반청 의식이 강했는지는 충분히 생각해 볼 문제다.
단지 선비들이 주자학에 빠져 명분만 외치는 바보들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실학이 근대 지향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반드시 모든 근대화가 서구식이어야 하냐고 반문한다.
실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근대화가 결국은 산업화를 동반한 서구식 모델을 받아 들이는 것이라는 점에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세계화란 결국 서구식 모델의 수용이 아닌가.
현실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서구식 산업화가 아닌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산업화가 아니라면 궁극적인 사회 변화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왕조 타도와 민주주의, 인권 사상, 개인주의 이런 일련의 모든 사성적 변화가 주류가 되는 것도 산업화를 통해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개인의 권리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닌가.
식민지라는 불행한 경험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해야 했던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모든 제국주의 피해국에서는 이 문제가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옳고 그름을 떠나 산업화를 배제한다면 궁극적인 근대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자꾸 주장하는 서구식이 아닌 다른 형태의 근대화는 어쩐지 공허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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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18현 - 조선 선비의 거울
신봉승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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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봉승씨라고 하면 조선왕조 5백년의 그 작가가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이 시리즈를 재밌게 읽었었고 좀 더 나이가 들면서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흥미 위주의 야사를 다룬 책이 아닌가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문묘 18현> 이라는 주제가 좋아 읽게 됐고 내용은 성실하지만 지나치게 평면적이라 솔직히 지루하다.
그렇지만 조선 왕조 5백년 동안 선비들의 표상으로 시대와 당파를 초월하는 존경을 받았던 선비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알게 된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인용된 상소문들은 솔직히 원론적인 얘기가 너무 많고 배경지식이 부족해서인지 저자와 같은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일두 정여창이나 회재 이언적 등은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니라 문묘에 종사됐는지 전혀 몰랐다.
비교적 당쟁이 적었던 조선 초기에 살았던 분들이라 인지도가 떨어졌던 것 같다.
조선 이전의 위인으로는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 고려의 안향과 정몽주가 있고, 조선 중기 이전에는 다섯 분의 선비들이 동방5현으로 문묘종사 됐는데 길재의 학풍을 이은 한훤당 김굉필, 기묘사화의 주인공 조광조, 정여창, 이언적, 그리고 화폐의 주인공까지 된 이황이다.
나중에 문묘종사된 분들로는, 이황과 함께 중국의 성리학을 조선의 것으로 토착화 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율곡 이이, 같은 기호학파를 이끈 우계 성혼, 하서 김인후, 그 유명한 송시열과 송준길, 예학의 대가 김장생과 김집 부자, 소론을 이끈 남계 박세채가 있고 다소 의외의 인물이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사망한 조헌이다.
이 분은 선비로서의 이미지 보다는 의병장으로서의 무인적 느낌이 강한데 의외로 성리학자로서 존경을 받았던 모양이다.
임진왜란 전에도 선조에게 도끼를 지고 와 상소를 올릴 만큼 강직한 성품으로 유명했고, 그 때 미움을 사 먼 함경도 땅으로 유배되기도 했다.
전쟁 후 1등 공신으로 책봉됐는데 종묘에까지 배향된 점은 정말 의외다. 
당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좀 더 알아 보고 싶다. 

저자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강직한 성품과 학문을 대하는 신실한 태도, 예로써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바라던 예치, 도덕 정치에 대해 강한 믿음을 보이지만, 그 꼿꼿하고 올곧은 태도에 감동하면서도 교조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었던 성리학의 한계에 대해서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테면 이런 논쟁이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인조는 선조의 왕통을 계승한 것이니 실제로는 할아버지인 선조를 아버지로 칭해야 맞는가?
진짜 아버지인 정원군은 숙부로 불러야 한다는 게 당시 예론의 대가인 김장생의 주장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게 당연히 싫었을 인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는 그 중대한 시기에 무려 8년의 세월을 정원군 추숭 사업으로 대신들과 대립한다.
결국 인조는 친아버지 정원군을 대원군으로, 종국에는 원종으로 추존하여 종묘에 모신다.
인조의 어머니인 계운궁이 사망했을 때 청의 침입이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에도 과연 인조의 상복이 어때야 하는지로 조정이 시끄러웠다.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김장생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법이 아닌 예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조선의 도덕정치를 칭송하지만, 민생의 현안에서 벗어난 이런 사상적인 논쟁이 주를 이뤘던 조선 후기의 정치 상황은 기형적으로 보인다.
후대에 일어난 갑인예송이 결코 특이한 현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이라는 유교적 국가의 질서와 안정을 부여했는지는 몰라도 근대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유연한 학문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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