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세계지도의 비밀 -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지도상식백과 지도로 보는 시리즈
롬 인터내셔널 지음, 정미영 옮김 / 이다미디어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이런 학회가 유행인가 보다.
지리 모임 같은 이런 테마의 책을 전에도 본 기억이 나는데 약간은 흥미 위주라 실망했던 기억이 있어 신간 신청할 때 걱정이 있었으나 이 책은 만족스럽다.
역자가 한국적인 내용도 적절하게 삽입해서 더 재밌게 읽었다.
몇 년 전 도서 전시회에서 구입한 세계지도를 방구석에 팽겨쳐 뒀는데 이번에 먼지 가득한 지도를 꺼내 대조하면서 읽으니까 훨씬 흥미롭고 재밌었다.
<르몽드 세계사>를 처음 봤을 때 대체 아프리카 어디에 이런 나라가 붙어 있는 거야, 이러면서 불평했었는데 이제 다시 읽으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서 배경지식이 중요한가 보다.
챕터별로 간단하게 분쟁이 있는 곳이나 역사 등을 짚어 주고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할 수 있다.
지난 번 <신택리지>도 그렇지만 요즘 부쩍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지형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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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국립중앙박물관 지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최한 전시회 도록이다.
그 때 비싸서 못 샀는데 마침 도서관에 구비가 되어 있길래 그 때 기억을 떠올리며 재밌게 읽었다.
당시에도 말로만 듣던 페르시아 문화를 직접 접하면서 그저 아테네 민주정치에 박살난 어리석은 절대 왕정 국가로만 알고 있던 내 무지와 편견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페르시아가 얼마나 위대한 문화인지 또 그 동안 얼마나 서구중심주의 시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새삼 느낀다.
도록의 장점은 전시회장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세밀한 부분까지 확대시켜 크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사람도 많고 유리벽에 갇혀 있어 세밀한 장식까지는 못 보고 전체적인 느낌만 가지게 되는데 도록의 접사 촬영을 보면 얼마나 섬세한 문양들이 많은지 정말 감탄스럽다.
특히 신석기 시대의 채문토기들의 문양은 추상적인 현대미가 느껴진다.
공예품은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본능 같다.
그냥 그릇만 만들어도 될텐데 어쩜 그렇게 예쁘게 치장을 하는지!
미의식은 먹고 자는 것처럼 인간에게 내제된 기본적인 욕구, 능력, 성향 같다.
신라가 황금의 제국이라 하는데, 페르시야말로 진정한 황금의 제국임을 알게 됐다.
황금제 그릇과 장신구들은 수 천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얼마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신라 무덤 발굴품 황금보검도 이란계통이라 한다.
특히 동물 문양이나 거북 등껍질 문양은 페르시아 특유의 것이라고 한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리 제품들이 중앙 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신라 왕족의 무덤에까지 묻히니, 고대의 무역은 생각보다 훨씬 발전하지 않았을까?
청금석이라는 푸른 빛 나는 돌로 만든 공예품도 정말 아름답다.
이것은 황금보다 비쌌다던 울트라마린 색을 추출하는 돌로써, 아프가니스탄 특산물이다.
농작물이 풍부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란 고원과의 무역을 통해 이런 광물들을 교역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역사에 대해 잘 몰랐는데 뒷부분의 논고를 통해 어느 정도 지식을 쌓게 됐다.
생각보다 영토가 아주 넓었던 것 같다.
남으로는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인도양에 이르고, 북으로는 중앙 아시아의 아랄해까지, 서로는 이집트까지, 그리고 동으로는 인더스강 유역의 오늘날 파키스탄까지 그 영토가 이르렀다고 하니 과연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로마 이전의 최고의 제국이라 하겠다.
이렇게 큰 나라가 아테네 해군에게 패했다는 건 참 놀라운 사건이다.
왜 살라미스 해전이 중요시 되는지 이해가 된다.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만큼 도로를 정비하고 역참제도와 우편제도가 발달했으며 지방관을 파견해 통제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330년 경 불세출의 영웅 알렉산더에게 망하고 만다.
그의 사후 셀레우코스가 100여 년간 통치하다가 파르티아에 넘어가고, 다시 3세기 무렵 사산조 페르시아가 등장한다.
그 후 7세기에 아랍인들이 들어오면서 오늘날까지 이슬람 전통을 지키고 있다.
같은 중동이지만 페르시아인에 의한 이란과 아랍 국가들과는 민족성이 전혀 다른 셈.
재밌는 건 이란 바로 윗쪽에 붙어 있는 흑해 연안의 그루지야가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찾아 떠난 바로 그 콜키스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금이 많이 나는 동네라고 한다.
음, 멋진 전설과 지명이다. 

도록 너무 재밌게 잘 봤고 도서관에 이런 도록들이 많이 비치되어 마음껏 좀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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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한국의 워킹푸어
프레시안 엮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 노인 빈곤층, 가난의 대물림, 알바생으로 내몰리는 저소득층 아이들, 자살하는 시간강사, 연봉이 수백만원에 불과한 영화판 스태프들, 차별받는 이주 노동자들까지...
어느 것 하나 한숨이 안 나오는 분야가 없다.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기업은 계속 효율성을 외치고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불을 넘었다는데 대체 그 부는 누가 다 가져가고 신빈곤층은 쪽방을 헤매고 있는 걸까?
다같이 잘사는 나라는 그저 구호에 불과한 것일까?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오랜 속담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조세저항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들처럼 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여파로 노동 유연성 확대라는 명목하에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저임금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다.
집값은 여전히 비싸고 부모가 도와 주지 않는다면 60대가 넘어야 서울에 내집 마련이 가능하다.
결국 국가에서 노령연금이나 의료보험, 실업수당, 교육비 등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져 줘야 고용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에 반대의 목소리가 높으니 답답한 현실이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점령도 마찬가지다.
사실 홈플러스나 이마트 같은 대형마켓이 생겨 소비자들은 싼 값에 쇼핑하는 기분을 느껴서 좋겠지만, 대형 유통업체가 자영업자들을 집어 삼키기 때문에 결국 영세 상인들은 대기업의 일용직이나 임시 노동자로 들어갈 수 밖에 없게 된다.
SSM 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결국 노동을 팔아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연대 의식이 필요한 것 같다. 

책에 해답은 없지만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이런 걱정이 가끔 든다.
결국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이니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먼저 확립되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드라마는 재벌과 신데렐라 이야기, 출생의 비밀로 어느날 갑작스런 신분상승만 보여주고 또 그것에 열광하고 있으니 원래 대중의 정서라는 게 이중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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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6-16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다지 진보적이지도 않지만, 그나마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알라디너 중 홈플러스, 이마트 대신에 재래시장이나 골목 상점을 이용하는 %는 얼마나 될까요? 알라딘을 이용해서 동네서점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해야 될까요?
http://blog.aladin.co.kr/mephisto/4851123
 
우리 악기, 우리 음악
국립국악원 편집부 지음 / 국립국악원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는 테마다.
바로크 로코코展 보러 갔다가 급하게 둘러 보고 왔다.
기왕이면 큐레이터가 해설할 때 봤으면 좋았을텐데 쓱 훑어 보기만 한 것 같아 아쉬웠는데 이렇게 훌륭한 도록이 편찬되어 무척 유익했다.
도록은 사진이 많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편이다.
이 책도 2만 5천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살 엄두를 못내고, 대신 국립중앙박물관의 도서실에서 읽을 수 있었다.
박물관 도서관은 6시까지 밖에 개관을 안 하고, 대출도 안 되기 때문에 직장인이 이용하는 건 쉽지 않으나 대신 박물관에서 편찬된 도록들은 빠짐없이 구비가 되서 시간이 될 때 한꺼번에 몽땅 읽고 온다.
대충 둘러 봤던 전시가 하나하나 의미있게 다가오는 좋은 책이다. 

고대 악기들은 토우나 박산향로 조각, 무용총 벽화 등으로만 전할 뿐 실제 악기 자체는 전해지지 않아 추정만 할 뿐이다.
실제 어떤 소리를 냈는지도 모호할 뿐.
그러나 청동 방울부터 시작해 줄을 뜯는 금이나 피리, 북 등의 유래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인류의 본성과 같은 부분이다.
실제 소리가 어떤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많다.
전통 음악이 현대에 많이 연주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다.
전시실에는 진잔도의 그림을 바탕으로 춤추는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해 놔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미시사가 갈수록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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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황제들 - 청 황실의 사회사
이블린 S. 로스키 지음, 구범진 옮김 / 까치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정말 쉽게 잘 쓰여진 책.
두께 보고 놀라서 약간 긴장했는데 주석이 100 페이지나 되서 실제로는 400 페이지가 약간 못 되는 분량이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아서 좋다.
아마 전에 청나라와 팔기군, 즉 기인들의 관계에 대해 다룬 책을 읽었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쉬웠던 것 같다.
저자의 빼어난 글솜씨와 매끄러운 번역도 한 몫 한다.
오랜만에 정말 즐거운 독서를 한 것 같다. 

예전에는 팔기군의 문란으로 청나라의 지배계급이 무너졌고 만주족 자체가 한족에 동화되어 사라져 버렸다고 알고 있었는데 요즘 학계의 추세는 여전히 팔기군은 청 제국의 중요한 원동력이었고 만주족의 문화 역시 현재의 중국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서양 열강에 의해 물어 뜯기고 만, 근대화에 실패한 비운의 제국이라기 보다는 현대화 직전의 청 제국이 가졌던 역사성과 시의성, 의미를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
이래서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다원주의, 다민족 국가로서의 통합성을 강조하는 (얼핏보면 제국주의 같기도 한) 요즘 중국이 추구하는 바와도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어쨌든 한족화 되어 역사 속에 사라져 버렸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에 비해, 중국 최대의 영토를 자랑하고 300 여년 가까이 제국을 유지한 청나라가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아 바람직한 변화라 생각한다. 

역자가 서문에서 밝힌 바대로 한국인처럼 중국 역사를 친숙하게 잘 아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중국 역사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을 맺어 왔으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중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 청이라는 현대 이전의 마지막 왕조는 여진족이라는, 한 수 아래의 민족이 이룩한 정복왕조였기 때문에 그 질투심에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면이 많다.
제일 의아했던 게 장자 계승 대신 황제가 죽기 전에 후계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나, 황후가 아닌 후궁도 아들이 왕이 되면 태후로 승격되는 시스템이었다.
광해군이나 인조 모두 후궁이나 군부인이었던 어머니를 왕후로 추숭하기 위해 신하들과 지리한 싸움을 지속해야 했던 것에 비해 서태후의 경우처럼 청나라에서는 아들이 왕이 되면 자연스레 황태후가 되는 것 같아 속사정이 무척 궁금했다.
책에 그 과정이 자세히 나오는데, 만주족 역시 황후는 한 명이지만 대신 황후든 후궁이든 그 자손은 똑같은 황위계승권을 갖는다.
오히려 비빈으로 들어오고 나면 친정집과 완전히 단절시켜 태후가 되서 섭정을 하더라도 친정 가문이 아닌, 남편의 측근들, 즉 시동생과 연합하도록 했다.
이를테면 서태후 역시 처음에는 함풍제의 6등급 (8등급까지 있다) 후궁으로 들어왔는데 그 아들이 동치제가 되자 태후로 격상됐고, 친정 가문 대신 함풍제의 동생인 공친왕과 연계하여 정권을 휘둘렀다.
모후의 친정이 황제 가문을 압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철저히 차단한 것이다.
이 점은 흔히 간과되기 쉬운 부분인데 책을 통해 청나라 황실의 특징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외척 가문이 전권을 휘두를 가능성을 철저하게 차단한 것이다.
명나라가 황제의 형제들을 변방으로 보내 정치적으로 고립시킨 것에 비해 (자연히 황제는 황후의 남자 형제들이나 환관과 연합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청나라는 황자들을 정치에 참여시켰다.
대신 이들을 종친부에서 관리해 자율성을 빼앗았다.
황제의 수많은 아들들은 동등한 황위계승권자였기 때문에 자금성 안에 살면서 능력을 평가받았고 황제는 죽기 직전 후계자를 발표했다.
장자 계승이 원칙인 한족에 비해 아들들간의 후계자 다툼이 치열하다는 단점이 있겠으나 대신 능력있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점에서는 장점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니 서얼을 차별하는 것은 조선만의 악법이라고 한탄했던 글을 읽었다.

새롭게 안 사실은, 청나라가 몽골과의 연대를 통해 제국을 안정시켰고 라마교를 이용해 티벳의 신정정치를 지지해 제국 안에 묶어 뒀다는 사실이다.
원나라 때부터 티벳 불교를 받아들인 몽골은, 14세기 이후 겔룩파를 지지하면서 라마교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다.
몽골의 칸은 달라이 라마에 의해 권위를 인정받고 반대로 티벳에서는 몽골의 지배자가 달라이 라마의 신정 정치를 보호했다.
이것은 후에 문수보살로 상징화 된 건륭제가 대신한다.
청 황제들은 준가르 원정 이후 몽골을 기인에 포함시키고 혼인동맹을 통해 연대를 다졌으며 라마교의 의례를 적극 지지하여 티벳과 몽골을 다스렸다.
또 위구르 정복 이후 이슬람까지 포용하였다.
넓은 의미로 보면 서양 선교사들이 황실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다민족 국가 운영이라는 틀에서 황제의 권력이 서양에도 미친다는 맥락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중국의 영토와 문화는 전 왕조였던 청의 공로에 기인한 것이니 확실히 청나라는 좀 더 가치있게 평가받아야 할 것 같다.
저자는 그러나, 청의 다원주의 문화가 결코 오늘날의 국민국가 개념와는 다름을 강조하고, 어디까지나 황제 개인의 권력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다양한 민족과 정치체를 아울렀음을 분명히 한다.
제국의 속성을 현대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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