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품증정]아르누보 앨범/가죽 접착식 양장 앨범/대/결혼/졸업/탄생/아기앨범/사진첩/액자 - 브라운-블랙(40장)속지
아리아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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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번에 구입했는데 또 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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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erican Century (보급판) - 현대미술과 문화 1950-2000
휘트니미술관 기획, 리사 필립스 지음, 송미숙 옮김 / 지안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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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 미술사에 대해 제대로 짚어 주는 책.
500 페이지나 되는 분량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도판이 무려 600 여 컷에 이르고 설명도 간단 명료하여 큰 어려움 없이 술술 읽어 나갈 수 있었다.
20세기는 정말 미국의 세기였던가.
단지 패권주의 같은 강압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의 힘으로 스스로 내제화 시킨다는 점에서 확실히 미국화는 곧 세계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구촌화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널리 퍼지자 오히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전통을 강조하게 된다는 지적은 정말 통찰력 있다.
먹고 살만 하니 남의 것 뿐 아니라 내 것에도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되고 경제 호황이 곧 미술 등과 같은 문화의 부흥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대체 이 엄청난 미술 시장의 판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신문에서 미국 학자들의 상당수는 좌편향적이라 진보를 더 긍정적인 성향으로, 보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적어도 이 책의 논자들은 상당히 "좌파"적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시선으로 본다면 말이다.
복지 문제가 이런 문화 산업 측면에서도 등장한다는 게 참 신기하다.
저자는 미국의 다양성을 들어,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든 가치관이자 힘으로 정의했는데 정말 깊이 동감하는 바다.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많이 축소되긴 했으나 세상을 전복시키는 전위미술에까지 공공미술기금을 후원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물론 과연 이 전위미술들이 정말로 세상을 뒤엎고 가치관의 전복을 일으켰는지는 약간은 회의적이다.
60년대 팝아트처럼 대중에게 봉사하고 대신 부와 명예를 얻는 이런 소비적인 방식이 세상을 뒤엎는 전위 미술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해 불가인 점이 많다.
인상파, 입체주의 여기까지는 그래도 감동이 오는데 추상미술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보편적인 미의식이 사라지고 미술가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적, 관념적 미의식만 남은 것 같아 쉽게 즐겨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19세기에도 인상파 화가들은 똑같이 그리지 않는다고 비웃음을 샀다. 
오늘날의 미의식으로 보면 너무나 훌륭하고 가슴을 울리는 그림인데 말이다.
여전히 나는 앞서가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매한 대중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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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iziano - 티치아노가 말하는 티치아노의 삶과 예술 I, 시리즈 4
노베르트 볼프 지음, 강주헌 옮김 / 예경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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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티치아노는 그 작품수와 질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덜 선호되는 화가라는 느낌이 든다.
대표작도 딱히 떠오르지 않고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나는 티치아노식의 색감 위주 그림이 너무 좋기 때문에 굉장히 좋아하는 화가다.
특히 말년으로 갈수록 점점 붓질이 거칠어지고 선명한 드로잉 대신 뭔가 뭉뚱그리는 느낌이 들지만 멀리서 보면 완벽한 실체로 다가오는 그 화법이 참 마음에 든다.
인상파 느낌도 나면서 말이다.
책에 보니 추상표현주의로 나아갔다는 해설도 있었다.
시대적 배경으로 봤을 때 간극이 많긴 하지만 어쨌든 노년기의 화풍이 보다 대범해지고 예술가의 감정을 표현하는 쪽으로 나갔던 건 확실한 것 같다. 

사실 책 자체는 약간 지루했다.
일생에 대한 서사 위주였다면 좀 더 재밌게 읽었을텐데 작품 위주, 더 정확히는 작품이 어떻게 의뢰가 되고 팔렸는지 그 정황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뤄 좀 지루한 느낌이 있었다.
그렇지만 국내에 얼마 되지 않은 소중한 도판들이라 눈은 정말 즐거웠다.
의외로 당대 비평가들에게 좋은 소리를 못 들었던 것 같다.
바사리의 경우 티치아노를 권력에 굴복해 돈 벌기 급급한 돈벌레라고까지 했다!
음, 너무 악랄한 비난이 아닐까?
모름지기 예술가라고 하면 렘브란트나 고흐처럼 세속의 물질로부터 멀어지고 어쩐지 약간은 비참한 삶을 살아야 예술혼이 빛날 것 같은데 티치아노나 루벤스처럼 왕들에게 선택되어 작위를 받고 돈까지 두둑하게 벌어 들인다면 대중으로부터 약간의 질시를 받게 되는 것 같다.
또 현세에 너무 많은 영광을 얻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주문자들의 취향에 맞추다 보니 혁신이 어려워진다고 해야 할까?
당대에도 라파엘로 등의 천재들과 비교됐던 티치아노는 자신은 라파엘로처럼 살아 있는 듯한 선명한 드로잉을 할 수 없지만 내 재능은 다른 데 있음을 알고 나는 풍부한 색감으로 승부하겠다는 편지를 띄운다.
얼마나 자신만만한, 그리고 확고한 예술관인지!
당시 예술의 중심이었던 피렌체가 선에 중심을 둔 반면 베네치아는 빛과 색감에 무게를 둔다.
베네치아의 공식 화가였던 티치아노의 스승 벨로니나 공방에서 함께 일했던 조르조네 등이 베네치아 학파를 대표한다.
그래서인지 이들 그림을 보면 정말 꼼꼼하고 선명한 색채와 밝은 빛이 돋보인다.
조르조네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이 천재 화가는 너무 빨리 죽는 바람에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그림이 참 비슷한 느낌이다.
천재들의 전성기였던 르네상스 시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진정한 예술의 황금기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티치아노는 굉장히 오래 산다.
기록에는 100세를 넘긴 것으로 나오나 실제적인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85세에서 90세 사이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평균 수명이 27세였다고 하니 정말 타고난 장수 체질이었나 보다.
가정부였던 아내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들에게 영지와 성직 등을 물려 주려고 무던 애를 쓰던 평범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림에도 아들들이 등장한다.
카를 5세의 사랑을 받아 스페인 왕실로 옮겨온 후 백작 작위까지 받고 세금이 면제된 영지도 얻는다.
루벤스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노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아 제자들이 손을 댄 경우가 많았고 의뢰인들도 늙은 티치아노가 제대로 그림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걱정하는 대목도 나온다.
당시에는 예술가 정신보다는 기술적인 장인적 능력을 우선시 했으니 이해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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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ffaello - 라파엘로가 말하는 라파엘로의 삶과 예술 I, 시리즈 3
다크마어 페겔름 지음, 이경아 옮김 / 예경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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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이 너무 훌륭하다.
서점에서 보고 정말 읽고 싶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할 수가 없었다.
아쉬워 하던 차에 모처럼 휴가를 맞아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읽을 수 있었다.
원래도 라파엘로를 좋아했지만 선명하고 화려한 도판들이 눈 앞에 펼쳐지니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작품 수가 너무 적고, 미켈란젤로는 근육질의 조각 같은 단단한 느낌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는데 라파엘로랴 말로 내 취향에 딱 맞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 앞서 티치아노 편을 먼저 봤는데, 내 느낌으로는 라파엘로의 그림이 훨씬 더 완벽하고 천상의 것에 가까워 보였다.
객관적 우열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37세라는 이른 죽음이 더욱더 천재 신화를 완성했던 게 아닐까 싶다.
티치아노가 무려 90에 가깝게 장수했고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노년기가 있었지만 라파엘로는 경력의 절정기 때 돌연 사망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로마에서 최고로 잘 나가던 이 화가는 자화상을 보면 미소년처럼 잘 생겼다.
어린 시절 불운하게 고아가 됐지만 화가였던 아버지의 배려로 당시 잘 나가던 페루지노의 공방에 들어가 열심히 스승을 사사하고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 돌연 사망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보통 화가라고 하면 모네의 <수련> 연작처럼 노년의 대작들이 나올 것 같은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이루고 홀연 떠나다니, 천재의 정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의 전기를 남긴 바사리도 온통 찬사 일색이다.
티치아노에 대해서는 돈벌레라는 악평을 남겼으면서 말이다.
라파엘로가 그린 인물들을 보면 색감과 드로잉이 너무나 훌륭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왜 영국에서 라파엘전파라는 분파가 생겼는지 이해가 된다.
라파엘의 화법이 표준이 된 것이다.
성당이나 개인 빌라 장식을 정말 많이 했던 터라 공방을 운영해 많은 작품을 소화해 냈다고 한다.
스승처럼 사업적 재능도 훌륭했던 것 같다.
수염도 나지 않은 너무 젊은 미소년이나 마치 뒤러의 자신만만한 자화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성모자상을 정말 많이 그렸던데 당시의 트렌드이기도 했겠지만, 저자의 설명처럼 혹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박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미켈란젤로와의 갈등 부분은 새롭게 안 사실이다.
젊은 천재에 대한 경쟁 심리였을까?
피옴보 등 대리인까지 내세워 라파엘로와 경쟁 구도를 가졌다는 게 참 신기하다.
보통 거장들끼리는 서로를 인정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인간사는 갈등의 장인 것 같다.
인물의 생애보다는 작품에 집중한 책이라 약간은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라파엘로의 그림들을 큰 도판으로 마음껏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 시리즈는 반 고흐와 고야 편도 있어 꼭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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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사비성 사라진 미래 도시 - 할인판 (3disc)
EBS미디어센터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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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의 장점이라면 글로는 확실히 알기 어려운 부분을 이미지로 콕 집어내서 보여 주는 것일 거고 (말로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빠른 것처럼) 단점이라면 압축시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대한 것에 비하면 그저 그렇다.
알려진 배우들 (이를테면 유태웅 같은) 기용해서 제법 드라마 느낌이 나게 만들긴 했지만, 그리고 역사스페셜처럼 아나운서가 해설하는 게 아니라 당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단막극 형식으로 만들어 신선하긴 했지만, 그러나 큰 재미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사극이 재밌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을 그저 소재에만 이용하고 기본적으로 드라마라는 구조를 견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사극 보고 역사 왜곡 운운하는 건 어찌 보면 코메디 같은 일.
차라리 요즘처럼 정통사극 보다는 MBC 가 잘하는 퓨전사극 형식으로 만드는 게 더 사극의 본질에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허구니 너무 역사물처럼 만들면 오히려 시청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백제는 어쩐지 잊혀진 나라 같았다.
기껏해야 대륙백제 운운하며 환단고기 신봉자들에게 언급되는 정도 외에는 역사서에서 큰 비중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최근에는 <근초고왕> 드라마 보면서 관심이 많이 생겼다.
어떤 나라든, 설사 그 나라가 후세인이 보기에 업적이 있든 없든 일정 시간 동안 특정 지역을 장악하고 존속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고대 한반도 국가들의 국력을 과장되게 미화시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백제의 성왕.
관산성 전투에서 어처구니 없이 신라 병사에게 목이 잘린 불운한 왕.
아버지 무령왕은 일본서기에 언급되고, 묘지 주인을 명백히 밝힌 무덤이 발굴되어 어찌 보면 삼국시대 왕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만약 무령왕릉이 발굴되지 않았다면 다른 백제의 왕들처럼 그냥 역사 속에서 묻히고 말았을텐데 말이다.
개로왕이 고구려에게 죽임을 당하고 쫓기듯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는 귀족들에 의해 세 명의 왕이 암살된다.
무령왕 역시 동성왕의 죽음으로 일본에 있다가 40의 나이로 갑작스레 즉위했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안정시켜 아들 성왕에게 물려준다.
어찌 보면 성왕 시대의 천도나 고구려 공격 등은 아버지 무령왕의 치세를 이어받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무리를 해서 습지인 부여로 천도를 했을까?
귀족들의 입김을 피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바다로 나가기 위해?
다큐에서는 왜 성왕이 굳이 부여로 천도를 하려 했는지 정확히 나오지가 않는다.
고구려와 신라 대신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부여가 항구도 아니고 과연 중국과 얼마나 교역을 한다고 단지 그 때문에 수십년의 대역사를 진행했을까?
백성들의 반발이 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조처럼 집권 세력을 쇄신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을까?
결국 백제는 사비 천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하고 만다.
수도를 옮기는데 너무 많은 국력을 쏟았기 때문은 아닐까?
다큐에서는 부여로 천도한 후 백제가 강성해졌다고 나오는데 계획도시 사비가 백제에 어떤 이득을 줬는지는 정확히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큐 내용만으로 보면 젊은 왕의 고집으로 무리를 해서 천도한 것처럼 보이고,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쫓겨 더 남쯕으로 내려간 것 같다.
책으로도 나온 것 같아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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