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낳은 후궁들 표정있는 역사 8
최선경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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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훑어 보다가 다시 읽고 싶은 충동에 재독하게 됐다.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맞춰 지나친 상상은 자제하고 성실하게 저술한 점을 높게 평가한다.
사극 등을 통해 너무 많이 알려진 인물들이라 뭐 새로울 게 있을까 싶었는데 읽어 보니 재밌다.
사료 해석이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구나 싶었던 부분은 <동이>라는 드라마로 유명해진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출궁에 관한 부분이었다.
숙종은 자신이 살아 있는데도 숙빈을 이현궁에 내보냈다.
이 점이 참 궁금한게, 조선 시대 후궁들은 왕이 죽고 나서 출궁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왜 아들인 연잉군이 아직 혼례를 올려 나가 살지 않은 상태인데도 먼저 내보냈냐는 것이다.
다른 후궁들도 그런 경우가 있는지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종성씨가 쓴 글에 따르면 숙빈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 내보내고 이현궁이 크다는 이유로 후궁에 걸맞지 않다고 후에 연잉군에게 줬다고 되어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정반대로 해석했다.
숙빈에 대한 총애가 변함없어 사관들이 크다고 지적할 정도의 규모인 이현궁을 내려줬고 연잉군이 출합한 후 같이 살게끔 배려했다는 것이다.
이래서 역사 해석은 함부로 할 게 아니다.
흥미로웠던 인물은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로, 정조가 후사가 없자 정식 가례 절차를 통해 얻은 후궁이라 입궁 당시에 이미 수빈이라는 첩지와 가순궁이라는 궁호까지 받았다.
그녀는 모두의 소원대로 아들을 낳았고 딸까지 낳아서 정조에게 유일한 1남 1녀를 낳아 준 아내가 된다.
시어머니인 혜경궁이나 중전인 효의왕후와도 잘 지냈고 검소한 성품으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검소한 인물의 친정 오라비 등은 급격한 출세에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 역사의 평가에 이면은 늘 존재하는듯.
정순왕후도 손자며느리인 수빈을 매우 총애했다고 한다. 

의외로 왕을 낳은 후궁들은 사대부 출신이 많았던 것 같다.
성종의 후궁으로 나중에 중전이 된 정현왕후나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는 궁녀로 입궁해 후궁이 됐다고 한다.
양반가의 여식들도 궁녀로 입궁하는 경우가 많았는지 궁금한 부분이다.
유교적 명분 사회였던 만큼 후궁인 어머니를 추숭하는데 왕들은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심지어 광해군은 무려 14년에 걸쳐 어머니 공빈 김씨의 추숭 작업을 하여 기어이 공성왕후로 추존하고 명나라에서 고명까지 받아 온다.
인조도 병자호란이라는 엄청난 국난을 앞에 두고도 아버지 추존 문제로 신하들과 대립했다고 하니 이 문제가 정통성과 국왕의 권위 확보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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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사후 63년 - 세도정치기(1800~63)의 국내외 정치 연구 서남동양학술총서 45
박현모 지음 / 창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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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많이 했으나... 재미가 없다.
박현모씨 책은 예전에 나왔던 정조의 정치 철학 관련 책도 퍽 어렵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학술적인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썩 재밌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임용한씨처럼 사실들 속에 숨은 행간을 읽어 주는 스타일을 원하는 것 같다.
비전문적 독서가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세도정치로 조선의 공론 정치가 완전히 몰락하는데 정조의 역할이 컸음은 이미 전작을 통해 알고 있었다.
정조는 노론 독재를 막기 위해 왕권을 강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산림이나 언관들의 입지를 상당히 축소시켰는데 어린 왕이 연달아 등극하면서 조선의 전통인 여론 수렴이 약화되어 결과적으로 한 가문에 세도가 몰리는 현상이 초래된 것이다.
영조나 정조 같은 걸출한 군주가 출현했으면 조선 후반기는 또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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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국가의 회화 - 조선시대 궁중회화 1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1
박정혜 외 지음 / 돌베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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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으면서도 다소는 지루한...
학술도서의 한계 같다.
궁궐이나 왕실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유학 군주로서의 조선 시대 왕들은 상당한 문화적 소양을 가졌음을 알게 됐다.
비교적 자료가 많이 남은 조선 시대 후반기로 가면 선조나 숙종, 영조, 정조 등은 미술이나 서예 부분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고 본인들이 남긴 작품들도 많은 편.
허망하게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유럽 왕실처럼 미술관 등을 세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화재로 많은 작품들이 소실되어 심지어 어진마저도 남은 것이 겨우 몇 점에 불과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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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문명
장 카스타레드 지음, 이소영 옮김 / 뜨인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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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 편집이나 디자인은 훌륭함.
딱 보면 읽고 싶을 만큼 좋은데 내용은 평범...
제목을 보고 알아챘어야 하는데, 나는 사람들의 사치 성향에 대해 문화적 욕구와 연결시켜 설명한 일종의 사회학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용은 사치의 문명사, 즉 역사에 초점을 맞춘, <사치와 문명사> 였다.
과거 사실을 나열한 것이라 약간은 지루했으나 어느 문명이나 문화적 욕구가 곧 사치로 이어졌고 중앙집권으로 권력이 한데 모여야 장식 미술이나 공예 쪽이 발달할 수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의 관점으로 보면 중국의 도자기 등도 대단한 사치품이었던 셈.
오늘날에는 예술적 관점, 즉 탐미주의 입장에서 보는데 말이다.
오늘날의 소위 명품이라는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들도 먼 훗날에는 이런 예술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장인정신 운운하면서 신분상승이나 사회적 지위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걸 보면 혹시나 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교류의 확산이다.
교류가 왕성해지면서 사치품들은 각 문화권으로 퍼지게 됐다.
중앙집권화와 문명교류는 사치의 필수 조건이었던 셈.
마지막에 일본이 명품 브랜드 시장의 30%를 차지한다는 조사는 좀 놀라웠다.
프랑스와 미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사치품을 결국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 소비된다는 것인데 어쩐지 고가에 비싼 제품을 사 들이는 어리석은 소비자들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나는 지금도 이른바 명품 브랜드들의 지나친 가격 형성에 대해 굉장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사치품이 곧 예술이나 문화적 욕구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하니 어떤 면에서는 관점을 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꼭 과시 목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예술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기본적인 인간의 본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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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한국문화사 시리즈 32
국사편찬위원회 지음 / 국사편찬위원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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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이렇게 재밌는 책을 쓸 수 있다니, 오, 놀랍다.
정말 흥미롭게 읽은 한반도의 도자기 역사다.
특히 첫 부분에서 도자기의 탄생 과정은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됐다.
고려 시대 이전은 고고학 전문가들이 쓰고 고려 시대부터는 도자기 전문가들이 썼다고 하는데 좋은 분류라고 생각한다.
도기나 토기, 자기 등의 개념이 늘 헷갈렸는데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청동기 중기의 대표 토기는 송국리형 토기, 이 정도의 기본 개념은 서는 것 같다.
문화사 시리즈로 32번째 책이던데 가능하면 이 시리즈를 다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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