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21
다비드 로샌드 지음, 한택수 옮김 / 시공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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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
어쩌면 단지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서술 자체가 난해한 건지도 모르겠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한 손에 잡힌느 컴팩트한 책 사이즈와는 달리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리즈 자체의 특징일까?
주제는 매우 흥미로우나 실제 책을 읽었을 때 정말 재밌다, 많은 걸 알았다, 이런 느낌이 없어 아쉽다.

 

사랑해 마지 않는 루벤스와 티치아노는 미술사적으로 큰 평가를 받지 못하는지 국내에 나온 책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항상 아쉬웠는데 마침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반갑게 읽게 됐다.
다른 것보다 비록 작은 도판이지만 티치아노의 그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젠틸레 벨리니, 틴토레토, 조르조네, 티치아노 등으로 대표되는 베네치아 화파는 바사리가 비판해 마지않던 색채 중심이었고 미켈란젤로 등의 피렌쳐 화파는 데생 위주였다.
그래서 내가 티치아노나 루벤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화려한 색채감, 역동적인 구도, 손에 잡힐 듯한 살결 표현 등에 열광하는 것이다.
다른 책에서 실제 티치아노느 80대 중반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는데 이 책에서는 기록에 나온대로 99세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어떤 면에서든 엄청나게 장수했던 대단한 인물이고 죽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대단한 정력의 소유가였다.
현대의 피카소에 비견된다고 해야 할까?
피카소처럼 혁신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스승 조르조네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페스트로 사망했던 것처럼 99세의 노인을 쓰러뜨린 것도 페스트였고 얼마 안 가 아들 오라치오마저 페스트로 죽었다고 한다.
스페인의 카를 5세에게 큰 신임을 받고 기사 작위까지 얻었던 만큼 프라도 미술관에 가니 티치아노 작품이 꽤 많았던 기억이 난다.
화집이 있으면 구해서 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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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 테이트 모던에서 빌바오 구겐하임까지 독특한 현대미술로 안내할 유럽 미술관 16곳을 찾아서
이은화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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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1세기 유럽 현대 미술관 기행> 의 개정판이라 읽을까 말까 많이 망설였던 책이다.
구판을 오래 전에 읽었었고 어쩐지 현대 미술은 나에게 어려운 느낌이라 (너무 사변적이고 말장난 같다고 해야 할까?) 흥미가 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관이라는 이 매혹적인 주제가 나를 놓아주질 않았고 결국 첫 장을 넘기고 말았으니,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보통 개정판은 사진 몇 장 더 싣고 서문 정도 손보는 수준에서 그치기 마련인데 책이 나왔던 2005년 이후의 최신 동향까지 꼼꼼하게 잘 기술된, 덕분에 책 분량이 많이 늘어난 성실한 책이다.
현대 미술에 대한 저자의 열정이 느껴져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저자에게 있어서 미술이란 삶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에너지원 같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았으니 성공한 사람이라 하겠다.
너무 부럽고 그 열정에 감염되는 느낌이 든다.
18세기에는 로마와 파리 등을 도는 그랜드 투어가 유해이었다고 하는데 나도 책에 나온 것처럼 미술관 그랜드 투어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버킷 리스트 1번에 올려 놓고 싶다.
제일 좋은 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과 그림에 대해 서로의 감상을 이야기 하면서 여행하는 것일텐데 신혼 여행 때 프라도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등 스페인의 미술관을 섭렵하겠다는 내 야무진 각오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소피아 미술관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고 그나마 프라도 미술관에 입장은 했으나 함께 간 신랑의 무감동 때문에 결국 반나절 보고 나온 게 전부였다.
고야 그림이 가득 채워진 방조차도 그 그림이 그 그림이네, 이런 맥빠진 소리만 듣고 서둘러 나오고 말았다.
바르셀로나에서도 피카소 미술관 등은 제쳐두고 어처구니 없게도 축구 경기장만 보고 왔다.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나 혼자 내가 가보고 싶은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여유있게 그러나 약간은 쓸쓸하게 즐겨야 할 모양이다.
죽기 전에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책은 매우 성실하게 또 지루하지 않게 현대 미술관에 대해 잘 소개해 놓았고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시원시원한 사진들이 참 마음에 든다.
아트 페어에 관한 책도 쓸 예정이라 하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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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조선을 깨우다 1 - 영어 조선 상륙기
김영철 지음 / 일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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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발견하고 흥미가 생겨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2권까지 있다 보니 계속 순서가 뒤로 밀렸던 책이다.
영어 방법론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우리 시대 영어가 마치 신분을 가르는 척도처럼 되어 버린 세태의 근원을 되짚어 보는 인문학서였다.
효종 때 제주도로 난파되어 처음 조선을 방문한 하멜 일행부터 시작한다.
당시 스코틀랜드 사람이 한 명 끼여 있어서 그 사람이 최초의 영어 사용자다, 아니다 논란이 있다고 한다.
중요한 건 아니고, 이미 일본에서는 네덜란드의 학문을 받아 들이는 난학이 성행하여 근대 사회 수립의 바탕이 됐던 만큼 그저 신기한 이방인으로만 치부하고 말았던 조선 당국의 태도가 안타깝다.
효종 역시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청나라에서 10여 년을 살았으니 당시 서양의 무역과 항해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을텐데 북벌론이라는 명분에 집착하여 중요한 시기를 흘려 보내고 말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조선이 일개 난파선원 몇 명에 의해 변화되길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었을까?
천주교의 자생적 발생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조선에서 프랑스 신부들의 선교 활동이 활발해졌는데 천주교를 매개로 서양 문명과 만날 수는 없었는지 아쉽다.
물론 그들이 선교를 앞세워 결국은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삼았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조선은 자생적으로 천주학이 발전한 만큼 종교를 넘어서 신학문의 도입으로 넘어갈 수는 없었을까 아쉬운 대목이다.
일제 시대 때도 이미 영어는 출세할 수 있는 중요한 언어로 등극하여 심지어 학생들이 일본인 교사의 발음을 문제삼아 교사를 바꿔 달라는 동맹 휴학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근대 이후 미국이나 영국 등의 영향력은 엄청났던 모양이다.

 

며칠 만에 (근 2주만에) 나머지 2권까지 다 읽었다.

도서관에서 너무 집중해서 읽는 바람에 약속까지 까맣게 잊어 버리고 말이다.

나에게 이런 집중력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뒤로 갈수록 조선이 어떻게 근대화가 됐는지 외국과의 교류는 어떻게 맺게 됐는지 그 과정이 상세하게 잘 나온다.

읽으면 읽을수록 고종의 시대판단적인 착오, 이를테면 미국이 황실 가족을 보호할 것이라는 착각, 미국이 조선에 우호적일 거라는 일방적인 짝사랑이 미국에 엄청난 이권을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또 드라마에서 이상적으로 그려졌던 알렌이란 사람이 사실은 주미공사를 하면서 이권 챙기기에 혈안이 됐고 그외 언더우드 등의 선교사들도 본국에서는 누리지 못했을 상류층 생활을 즐긴다고 비판하는 걸 보고 참 씁쓰름 했다.

서재필이 미국 사회를 이상화 시키는 것도 결국은 대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나오는 무조건적인 부러움, 열등감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이 정도로 대한민국이 성장하여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더 이상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으로만 그들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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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 이순구의 역사 에세이 너머의 역사책 5
이순구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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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읽은 책.
어쩜 이렇게 재밌는지...
300 페이지가 약간 못 되는 분량이라 가볍게 두 시간 정도에 읽을 수 있었다.
시집살이가 오래된 전통이 아님을 밝히는 부분에서 조곤조곤 여자들 마음을 잘 표현하길래 어쩜 이렇게 속마음을 잘 꿰뚫나 신기했는데 알고 보니 저자가 여자였다.
이름 때문이었는지 당연히 남자로 알고 있었는데 역시 나의 편견이었던 것이다.
역사학자는 어쩐지 남자일 것만 같은 편견...
남귀여가혼이 조선 중기까지 일반적인 풍습이었음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조선은 철저한 유교 중심의 남성 사회였으니 과연 처가에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흔했을까 반신반의 했는데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조선 시대 혼인은 개인의 결합이 아닌 가문의 결합이었기 때문에 남성 중심 사회에서 두 집안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함께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공조 체계로서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가 사는 일종의 처가살이를 했던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였으니 두 집안이 균형을 맞춰 협조하려면 여자가 시댁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남자가 처가에 들어가 처가의 지원을 받는 쪽이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니 16세기 사람인 신사임당도 친정인 강릉에서 율곡을 낳고 오랜 세월 동안 친정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신모계사회가 도래했다고 아이 양육을 시댁보다는 처가에서 도와 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시대 새로운 현상이라기 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아주 오래된 전통을 잇고 있는 셈이다.
두 집안의 공조라는 측면이 나는 무척 신선했다.
나 역시 결혼을 하고 친정 보다는 시가를 우선시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혼이 두 집안 간의 평등한 결합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면 시댁에 대한 지나친 의무감은 내려 놓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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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현판과 주련 1 - 경복궁
문화재청 편집부 엮음 / 수류산방.중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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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갖고 싶었던 책인데 막상 받아보니 사진과 편집에 놀랐다. 궁궐의 현판이 대체 무슨 뜻인지 늘 궁금했는데 문화재청에서 이렇게 예쁜 책으로 만들어 줘서 너무 감사하다. 3권까지 모두 구매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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