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뱅크 사진으로 보고 배우는 중국문화
김상균.신동윤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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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새로 나온 걸 보고 "사진"이라는 단어에 혹해서 신간 신청을 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직접 그 문화를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아무리 의식주를 사진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문화편 보다는 오히려 현대 중국사나 정치편이 훨씬 재밌었다.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정권을 잡게 됐는지에 대해 늘 모호한 느낌이었는데 정리가 된 느낌이다.

헷갈리던 중국의 여러 성들도 8개 권역으로 나눠서 설명하니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두 사람이 나눠서 집필한 거라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의식주 부분은 중국에 거주하면서 책을 읽고 설명을 들어야 감이 좀 잡힐 것 같다.

현대 중국사 부분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포토 다큐 세계사> 의 중국편을 읽어 볼 생각이다.

러시아편도 무척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고 땅덩어리가 넓기 때문에 13억 인민이 다같이 잘 살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보다 경작지 비율이 더 적어 인구 대비 경작 면적은 오히려 한국이 넓을 정도라 하니 중국의 식량 문제는 수천년을 두고 골치거리였을 것 같다.

미국처럼 드넓은 평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전제 군주제의 역사를 갖고 그나마 통일성을 지키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온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개혁개방 이후 GNP가 4000 달러까지 늘었다고 하지만 부가 일부 계층에 국한되다 보니 도농 소득 격차나 불균형 문제는 매우 심각해 보인다.

정치적 민주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이고 그러나 8%의 성장세를 이어가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한 나라이니 앞으로의 중국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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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전쟁사 1 - 전쟁의 파도 한국고대전쟁사 1
임용한 지음 / 혜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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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임용한씨 책은 재밌다.

글을 참 잘 쓰고 내용의 비약이 없어 읽기 편하다.

아마도 <전쟁과 역사> 를 손봐서 쓴 책 같은데 컬러 사진과 지도가 풍부해 재밌게 읽었다.

고대사는 늘 모호하고 안개 속에 가려진 느낌이었는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도 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알고 내심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건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모양이다.

삼국 시대 역시 교과서에 나오는 신라, 백제, 고구려가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이른바 원삼국시대라고 하는, 국가 정립기 이전에는 많은 소국들이 존재했고 이 세 나라가 주변국들을 병합하면서 비로소 국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왜와의 관계도 자주 언급되는데 확실히 삼국시대에는 일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가야에 대해서도 읽어 볼 생각이다.

혜안 출판사의 책들이 흥미로운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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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2-02-1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역사 1권을 시대를 더 앞으로 끌어다가 3권으로 만든다고 하십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
 
왕릉의 고고학
쯔데 히로시 지음, 고분문화연구회 옮김 / 진인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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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 보고 문고판이라 놀랬다.

일본에서는 이런 크기의 책이 많이 출간되는 것 같다.

분량이 작아 부담없어 좋긴 했는데 전방후원분이나 유럽의 매장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대충 넘어간 부분도 있었다.

여전히 무덤 양식은 나에게는 어려운 주제 같다.

이제서야 겨우 적석목곽분이니 전실분이니 하는 용어를 이해하고 있다.

그나마 박물관에 가서 모형을 많이 본 결과다.

나는 확실히 입체적인 이해에 약한 것 같다.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기념물 성격의 거대 왕릉은 국가 형성 초기에 민중을 지배하기 위한 과시용 수단으로써 축조되었고 관료제로 바뀌면서 굳이 이런 큰 기념물을 세우지 않아도 인민의 지배가 확실해졌기 때문에 점점 규모가 축소되고 지하로 내려갔다고 본다.

황남대총 특별전시회 때 국립중앙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신라 금관의 변천사에 대해 설명했던 게 생각난다.

왜 신라 금관은 특정 시기에만 큰 고분 속에 매장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초기에는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금관을 썼다가 정치력이 완숙해지고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과시용 금관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 때는 끼워 맞추기식 설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거대 왕릉 역시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구나 싶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전방후원분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들 수 있다.

왜 특정 시기에만 피라미드가 건설됐을까?

그것도 고왕국 시대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건설됐을까?

신왕국으로 오면서 도굴이 흔해져 왕의 계곡 같은 곳에 몰래 매장했다고 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암굴묘 역시 도난에 노출되기 쉬웠다고 한다.

그보다는 중앙집권제가 완성되어 피라미드 같은 거대 왕릉이 아니라 할지라도 충분히 통치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덤은 지하로 들어갔다고 본다.

일리 있는 설명 같다.

신라 역시 4~6세기까지는 적석목곽총의 거대 고분을 조성하다가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화장 등으로 묘제 형식이 바뀌었다.

왕릉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아닐 수 없다.

 

영산강 유역에 집중된 전방후원분과 왜의 관계가 늘 궁금했는데 저자에 따르면 당시 가야 지역과 왜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고 왜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묘로 본다고 한다.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느니 하는 주장은 엉터리인 게 분명한 모양이다.

그런 주장이면 번역도 안 됐겠지만.

기독교를 받아들인 서유럽에서도 거대 왕릉 조성은 보이지 않는데 초기 제정 시대인 아우구스투스와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거대묘가 조성되었고, 북유럽의 바이킹 역시 기독교를 받아 들이기 전에는 배까지 함께 묻는 선장묘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티벳 등은 원래 조장 등의 풍습을 지녀 봉분 자체를 만들지 않는데 7~9세기 무렵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왕권 과시용으로 거대 무덤을 조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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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천년을 가다 - 역사학자 4인의 문명 비교 탐사기
박한제 외 지음 / 사계절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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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서울대 사학과 교수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기행문 형식을 빌어 집필한 책.

한국일보에 연재됐었다고 한다.

박한제씨의 역사기행을 재밌게 읽어서 책의 집필진 중 한 명으로 있길래 같이 읽게 됐다.

보통 여러 명이 기술하면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고 주제의 통일성도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13세기 유라시아라는 분명한 주제가 있고 전공자들이 그런지 퍽 수준있는 책이 됐다.

신문에 칼럼으로 연재하는 글은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내용의 깊이가 얕다는 단점이 있는데 유라시아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유라시아 하면 13세기 몽골 제국에 의해 이루어진 팍스 몽골리카나를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막연히 몽골은 잔인한 유목민 부대가 중국과 유럽을 뒤흔들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서구 혹은 중화주의 사학자들의 일방적인 매도임을 새삼 느낀다.

고려가 몽골과 항쟁하고 급기야는 부마국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몽골에 대해서는 우리도 박한 평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복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늘 있어 왔고 칭기스칸과 그 후손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뒤흔들면서 건설한 제국 덕분에 무역로가 확장되어 구세계가 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몽골의 위상이 과거 역사에 비해 축소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 것 같아 아쉽다.

유목민이라고 하면 막연히 천막 치고 돌아다니는 떠돌이 느낌을 받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중화주의적 시각임을 깨닫는다.

몽골 제국사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봐야 할 듯.

박한제 교수의 역사 기행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 5대 16국이면 혼란기라고만 생각하고 이른바 오랑캐들이 난립했던 시대라고만 여겼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편견이었는지, 또 그 당시 중국이 대내외적으로 얼마나 확대되었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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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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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나> 와 비슷한 느낌?

같은 편집자의 책이라 그런가?

열 여섯 명의 과학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지적 설계의 모순을 지적하고 진화론의 타당성을 설파하고 있다.

약간은 산만하고 깊이가 얕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나는 진화론의 확신범이기 때문에 굳이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지만 오히려 왜 여전히 사람들은 창조론을 믿는지 궁금해서 이런 류의 책을 읽게 된다.

이른바 자연과학을 한다는 사람들 조차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여전히 창조론을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교회 부흥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미국의 유명 대학 천문학 교수라는 분이 나와서 여호수와가 팔을 들어 해를 멈추게 했다는 성경 구절이 천문학적으로 어떻게 옳은지를 설명하는 걸 듣고, 미국 교수라고 해도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 있구나 깨달은 적이 있다.

단지 개인의 권위 하나만 가지고 정설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할까?

넓게 보면 민간 요법으로 암을 이겼다든지, 어떤 의사가 알려진 것과 다른 치료법을 주장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의사이기 때문에 신뢰해야 된다는 말도 틀리다.

과학이 자연법칙을 설명하는데 막강한 힘을 갖게 된 것은, 수많은 동료 과학자들에게 끊임없이 검증을 해야 하고 수많은 반증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지 과학 그 자체가 갖는 권위 때문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사람을 달에 보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창조론과 교회가 맹위를 떨치는 것은, 책에 나온대로 유사가족에 대한 애착 때문인 것도 같다.

특히 이단이라 불리는, 극렬한 종교적 열정을 공유한 집단들이 이런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 위안을 얻고 같은 믿음과 의식을 공유함으로써 남들과 다른 우리라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무리짓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 봐도 모여서 함께 노래하고 기도하는 이 교회라는 집단이 사라지기는 참 어려운 일 같다.

또 사람들은 과학이 종교를 공격하고 짓밟아 버리면 도덕도 함께 붕괴될 것이라 우려한다.

지적 설계론, 혹은 창조론에 동의하는 대중의 심리 속에는 종교가 도덕을 지탱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숨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스티븐 핑커의 지적대로 과연 종교가 도덕의 기반이 될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오히려 종교는 여전히 사람들을 편협하고 불관용으로 이끈다.

우리와 다른 타인으로 구별짓고 그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일상 생활에서도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도덕적일 거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새삼 느낀다.

정말 교인들이 도덕적 양심을 일반인보다 더 많이 지닌 사람이라면 오늘날 거대 교회를 둘러싼 돈에 관한 잡음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핑커의 지적대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도덕적 감각이 진화하면서 우리는 고대보다 훨씬 더 자비로워졌고 보편적인 인류애를 실천하고 있다.

신분제가 철폐되고 육체를 잔혹하게 처벌하는 형벌도 사라졌지 않은가.

종교와 도덕의 분리야 말로 종교의 속성을 보다 정확히 보는 관점이 될 것 같다.

 

의식에 대한 과학적 증명에 관한 내용은 여전히 모호한 느낌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죽음으로써 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을 두려워 하는 감정은 확실히 과학만 가지고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 같다.

나 역시 한 때는 죽음에 관한 해결할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기독교적인 신을 의지하기도 했다.

내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내가 계속 나 자신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기독교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는 태어나기 전 의식이 없던 시절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 때를 모른다고 해서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또 어린 시절의 내가 과연 지금의 나와 같은지도 모르겠다.

그저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같다고 느끼는 것일 뿐, 실제로는 바로 이 순간, 숨쉬고 생각하는 지금만이 온전히 나로써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는 사람은 과연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그 사람은 과거의 자신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공포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잠들어 있을 때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잠깐 동안 죽음과 유사한 상태에 이른다.

단지 깨어날 거라 예상하기 때문에 잠드는 것이 두렵지 않을 뿐, 그 상태로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잠드는 그 순간 이미 죽은 게 아닌가.

 

시간이 흘러 종교관이 변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무신론자이고 종교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과학이 진보한다고 해도 여전히 인간은 사회적 울타리와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종교를 버리지 못할 것이므로 불필요한 논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히 과학의 진보를 방해하는 지적설계론을 공교육에 도입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은 일축해야 한다.

그야말로 중세로의 퇴보가 아닌가?

확실히 종교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힘이 좀 더 약화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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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9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