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대왕과 친인척 조선의 왕실 8
지두환 지음 / 역사문화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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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친 김에 세조에 이어 예종 편도 읽었다.
세조 편과 많이 겹치는데 대신 덜 알려진 예종의 두 번째 장인 한백륜이나 자식들인 제안대군, 현숙공주 등에 대해 알게 된 점이 수확이다.
가끔 조선 생활사를 다룬 책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이를테면 제안대군이 전처를 쫓아내고 후처를 들였다가 다시 어머니를 졸라 전처와 재결합한 사건, 현숙공주가 남편 임광재에게 사랑받지 못해 종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자작극을 벌인 사건 등등이 등장해 흥미로웠다.
한백륜의 딸 안순왕후가 처음부터 빈궁으로 뽑힌 것이 아니라 장순왕후의 사후 소훈으로 입궁했다가 아들을 셋이나 낳고 예종 즉위시 비로소 중전에 오른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면 문종이 후궁만 있고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점이나, 성종이 공혜왕후 사후 후궁들 중에서 왕비를 뽑은 점 등은 일반적인 왕실의 관행이었던 것 같다.
숙종 때 장옥정이 후궁으로 중전에 오른 것이 신분질서를 해치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장옥정의 신분이 사대부가 여식이 아닌 궁인이었기 때문이지 후궁이 왕비가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또 후궁도 궁인이 승은을 입어 팔자를 고치는 일도 있지만, 왕비의 지위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좋은 가문 출신도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점들을 잡아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예종이라고 하면 남이의 옥사 밖에는 생각이 안 나는데 비로소 한 인물로 개성있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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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읽는 중국의 미술 Oxford History of Art 1
크레그 클루나스 지음, 임영애 외 옮김 / 시공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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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라딘에 실려 있는 리뷰를 보면, 번역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우였다.
일단 역자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라 비록 문장이 전문 번역가들처럼 아주 매끄럽지는 않고 번역체 특유의 어색함이 묻어 있으나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한 명이 전담한 것도 아니고 네 명의 전공자들이 각자의 분야에 맞게 번역한 거라 더욱 신뢰가 간다.
간혹 흑백 도판이 섞여 있어 아쉽지만 대체적으로 훌륭한 편.
역자 후기에 보면 저자 개인의 의견이 많고 그림들도 일반적이지 않은 기준으로 선정했다고 했으나 나처럼 문외한인 사람이 교양으로 보기에는 매우 적합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미술사라는 지루한 시간적 흐름에 따른 서술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분야로 나누어 기술한 점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항상 모호했던 문인화와 화원 그림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구분했는지, 당시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었다.
형상의 모방 보다 그림에 담긴 뜻을 높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서양과는 다른, 관념적인 그림 전통을 만들었을 것이다.
먹과 붓이라는 재료의 특성 또한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는, 생산 수단으로써 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낮게 취급했고 그런 전문적인 장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그림 실력으로 평가받는 것을 경계했다.
여기로써 그림을 그려 비슷한 지위의 사대부들과 교류하는 것은 권장받을 만한 일이나, 전문 화가로써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그림은 매우 천시했다.
왜 강세황이나 조영석 같은 사대부들이 국왕의 초상화라는 명예로운 작업을 극단적으로 거부했는지 이해가 된다.
전문성이 오히려 위신을 깍아 먹는 일이 되다니, 놀라운 현상이다.

 

25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도판도 훌륭하고 어렵지 않고 흥미롭게 읽었다.
지루하지 않아서 참 좋았다.
다른 중국미술 개설서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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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2 - 통일신라 고려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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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재밌게 읽어서 2권도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너무 출간이 늦어지는 것 같아 이대로 안 내실 건가 싶었는데 어느새 서점에 2권이 깔리고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하고서도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읽게 됐다.
두께에 좀 놀랬는데 막상 읽어 보니 사진이 워낙 많아 560여 페이지 정도 되지만 실제 분량은 2/3 정도로 줄어드는 것 같다.
통일 신라와 고려 시기 동안 한국 미술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개략적인 설명을 하면서도 사진이 너무나 성실하게 잘 실려 있어 보는 내내 이해에 큰 도움이 되고 특히 청자 같은 경우는 사진만으로도 감상의 즐거움이 컸다.
탑이나 불화는 비슷한 도상이라 특별히 구별이 안 되고 엇비슷해 보여 약간 지루하기도 했지만,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단지 삶의 편의를 위해서였다면 그토록 정성스럽게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공예품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드는데 왜 근대 이전의 장인들은 사회의 최하층에 머물렸던 것일까?
상업 경제가 발달하지 못해서인가?
오늘날 같으면 시장에 내다팔아 떼부자가 되던지, 아니면 예술가로써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을텐데 말이다.
안휘준 교수의 책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야네기 무네요시가 한국 민예의 가치를 정립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나 한국 미술의 특징을 유약하고 소박한, 애상미 등으로 정의한 것은 고려 시대 귀족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 같다.
상류층에서 누리던 자기 문화를 보면 그 화려함과 정교함, 균형과 비례미에 눈이 부실 정도다.
나는 늘 서양 예술사를 보면서 왜 우리는 저렇게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는 건축물이나 회화 작품이 없을까 아쉬움이 들었는데 고려 청자는 자신있게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걸작 같다.

 

불화는 도상이 너무 비슷해 예술품으로써 감상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불화가 감상용이 아니라 전적으로 종교적인 예배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오늘날 고려 시대 남아 있는 회화 작품이 없기 때문에 고려 불화를 예술로 인식하지만 애초부터 목적이 달랐던 것이다.
수월관음도의 섬세한 옷자락이나 온화한 미소에 감탄하면서도 같은 도상이 반복되어 누가 그렸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보니 불화의 매력을 쉽게 느끼기 어려웠다.
러시아 이콘화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서양의 중세도 종교적인 목적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딱딱하고 형식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르네상스 이후 비로소 종교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되어 예술작품으로서의 위상이 생긴 게 아닐까?

 

부록으로 실린 목조 건축의 이해 편은 짧은 분량이지만 도움이 됐다.
원래 목조 건축의 이해가 어려운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위안을 받고 전통건축용어사전에 도전해 볼까 싶다.
너무 재밌게 잘 읽었고 많은 작품들이 남아 있고 우리 시대와 가장 가까운 조선 문화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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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면 2013-10-07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겠당~
 
세조대왕과 친인척 조선의 왕실 7
지두환 지음 / 역사문화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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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몇 년 전에도 열심히 읽었던 책인데 다시 관심이 생겨 이 시리즈를 읽어 볼까 한다.
사극 열풍이 불면서 유명한 장희빈이나 연산군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조명되고 있어 더더욱 이런 종류의 원사료 개방이 필요해 보인다.
실록은 정치적 사건이 많아 그냥 읽기는 지루한 면이 많은데 이 시리즈는 왕들의 친인척을 중심으로 관련 사건들을 언급하기 때문에 조선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쌓고 당시 정계가 혼맥으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읽으면서 깜짝 놀랜 것은, 왕실이 몇몇 가문과의 중혼이 매우 심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예종의 장인인 한백륜은 딸이 다섯 있는데,  큰 딸은 안순왕후이고, 둘째 딸은 세종의 4남인 임영대군의 아들 귀성군에서 시집갔고, 넷째 딸의 딸, 즉 한백륜의 외손녀는 성종과 숙의 하씨 사이에서 낳은 계성군에게 시집갔으며, 막내딸은 연산군의 장인이 되는 신승선의 아들 신수영에게 시집가서, 연산군비가 시누이가 된다.
조선 초기 이거이의 경우에도 큰 아들 이애는 태조의 딸 경신공주의 남편이고, 4남 이백강은 태종의 딸 정순공주의 남편이다.
단종과 혼인한 정순왕후의 고모, 즉 여양부원군 송현수의 누이는 세종의 8남 영응대군의 부인이 되니 정순왕후에게는 작은어머니면서 동시에 고모가 되는 것이다.
왕실의 결혼은 촌수를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근친혼까지는 아니지만 몇몇 가문과의 중혼을 통해 내부 단결을 유지한 느낌이 든다.

 

저자의 사관이 반영된 것인지, 세조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나 역시 세조의 모반이 공신이라는 특권 세력을 키워낸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를테면 세종 때는 여진과의 사대교린을 잘 유지했는데 세조 때는 명나라의 이이제이 정책에 말려들어 여진 정벌에 나서는 바람에 여진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어 국력도 쇠약해졌다고 평가한다.
또 김종서를 죽이고 정변을 일으켰기 때문에 김종서가 개척한 북방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이시애의 난 이후에는 더욱 차별이 고착화 됐다고 한다.
세조는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사람이기 때문에 큰아들 의경세자가 스무살의 나이로 요절했을 때 그 아들인 월산대군을 세손으로 세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월산대군의 나이가 겨우 네 살이었으니 자신이 빨리 죽을 경우 제대로 왕위를 이어받을지 매우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원손 대신 당시 8세였던 둘째 아들 해양대군을 세자로 앉힌다.
그는 11세 때 한명회의 셋째 딸을 세자빈으로 맞는데 다섯 살이나 연상이었다.
책에 따르면 권력에 눈이 먼 한명회가 나이 많은 딸을 세자빈으로 밀어 넣었다고 욕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딸은 다음 해 인성대군을 낳는다.
만약 이 왕자가 장성했다면 예종이 빨리 죽었을지라도 충분히 왕위를 물려 받을 수 있었을텐데 한명회의 딸, 즉 장순왕후도 산욕열로 출산 후 6일만에 사망하고, 인성대군 역시 3세 때 죽고 만다.
후에 성종에게 시집 보낸 막내 딸 공혜왕후도 스물이 못 돼 죽고 마니 한명회가 사위복은 없었던 모양이다.
장순왕후가 사망한 후 남긴 아들을 잘 키워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명회가 종친인 한백륜의 딸을 세자의 후궁으로 들여 보내는데, 그녀가 큰 아들 제안대군을 낳자 예종이 즉위한 후 안순왕후로 책봉된다.
만약 인성대군이 장성했다면 큰 아들이기 때문에 예종의 세자로 책봉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훗날 문정왕후가 인종을 박해했듯 안순왕후와 이 대군간의 갈등도 심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성대군도 빨리 죽고 예종도 재위 1년만에 사망해 제안대군은 겨우 4세의 어린아이로 왕위계승에서 제외되고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곧 한명회의 사위가 성종으로 즉위한다.
성종 역시 14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는데 12세로 즉위한 단종에 비해 왕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세조와 같은 강력한 왕족이 없었기 때문이고 할머니인 정희왕후와 원상들이 수렴청정을 통해 국정을 장악한 덕일 것이다.
왜 조선에서 어린 임금이 즉위할 경우 대비에게 수렴청정의 권한을 맡겼는지 이해가 된다.
남자 친족 보다는 오히려 모후나 조모가 훨씬 더 왕권 계승에 안정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외척 발호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지루한 사실 나열일 수도 있겠으나 조선 왕들의 가계 분석을 통해 그들의 일상 생활이 어땠는지 또 중첩된 혼맥이 정치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사극 작가라면 이런 책을 통해 많은 소재들을 발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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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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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책은 아니었다.
나는 고대 그리스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었는데 책 내용은 오히려 문학에 가깝다.
이를테면 호메로스를 소개할 때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이야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사학자가 아니라 고전 문학을 전공한 사람 같다.
고전을 현대 문학처럼 읽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고대 그리스라고 하면 언제나 경외감을 가지고 문명의 시작, 인본주의의 근원이라고 믿었는데 역시 시대적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저자는 그들 역시 야만인이었다고 환상을 버리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8세기, 지금으로부터 무려 3000 여 년 전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현대인의 가슴을 치는 것은, 그리스인들의 위대함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서사시의 저자 뿐 아니라 토기나 조각의 제작자까지도 이름이 전해 온다는 것이다.
역시 그리스는 개인이 강조되는 사회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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