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국립중앙박물관 편집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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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궤가 145년만에 프랑스에서 반환된 것을 기념하여 열린 특별전 도록.

가볼까 하다가 바쁘기도 하고 특별한 게 있을까 싶어 말았는데 가서 봤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분상용과는 확실히 다른, 예술적 가치가 느껴지는 훌륭한 모양새다.

어람용이라는 이름답게 채색도 화려하고 글씨도 반듯반듯하고 정성스러운 해서체라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한국 문화나 글자에 대해 전혀 몰랐을 프랑스 군인들 눈에도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문화재 약탈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야만적 행동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중요성을 알고 자신들의 나라로 훔쳐간 걸 보면 문화에 대한 기본 개념은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은 예를 숭상하는 유교 문화권으로 의궤는 각종 의식과 절차를 어떻게 구현할지 그 과정을 정리한 책자다.

일종의 기록 보고서라고 할까?

반차도가 가장 유명한데 그 외에도 절차를 정리한 각종 문서들이 많다.

조선 초기부터 작성했다고 하는데 제일 빠른 것이 인조 시대라고 하니 기록이 전해진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문화적 부흥기라고 일컫어지는 숙종, 영조, 정조 시기의 의궤 제작이 활발했고 가까운 시기인 19세기 무렵의 다양한 잔치, 가례, 상례 의궤도 많다.

존호를 올리는 상호도감의궤, 건물을 짓는 영건도감의궤, 묘를 이장하는 천봉도감의궤 등 다양하다.

어떤 행사가 있으면 의궤라는 형식을 통해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던 셈이다.

명분을 중요시 하는 국가인 만큼 시호나 존호 올리는 것도 매우 중요시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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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도자 명품전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통천문화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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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봐야지 하다가 못 본 책.

결국 서고로 들어가 버려서 이번에 맘먹고 박물관 도서관에서 읽었다.

2000년 전시로 김한길이 문화부 장관으로서 인사말 한 게 실려 있어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도자기 하면 중국과 한국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베트남 전시회에서 코끼리 모형등의 베트남 도자기를 보고 신선했고 유럽의 자기를 보니 정말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것들은 많다는 걸 실감한다.

유럽 자기라고 하면 중국 자기의 아류 정도로만 여겼는데 도록에 실린 자기들을 보니 감히 그런 말을 못하겠다.

17세기 무렵의 도기는 낮은 온도에서 소성한 도기였기 때문에 중국이나 한국의 청자처럼 단단하고 청명한 푸른색의 자기가 보여주는 위엄이나 우아함은 없었다.

약간 조악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18세기로 넘어오면서 경질 자기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그릇에 새겨진 문양의 디자인이나 그림의 색감 등이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서양의 미적 감각은 색에 있는 것 같다.

선 중심의 동양적인 여백미 대신 공간을 화려한 색과 디자인으로 가득 채우는 걸 좋아하는 느낌이다.

강희제나 건륭제 당시 만들어진 중국 자기들도 너무나 수려하고 아름답지만, 프랑스에서 만들어지는 세브르 자기들의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은 정말 황홀하다.

세브르 자기는 지금까지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관요라고 한다.

조선에서는 전쟁 이후 청화 안료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하던데 대체 이런 화려한 색의 안료들은 어디서 구하는 것인지 감탄할 일이다.

투명한 유리와는 다른 매력의 자기들은 예술과 생활이 결합한 공예품으로서 최고의 매력을 지닌다.

이제는 도예도 하나의 예술 분야가 되어 집단 작업 대신 도예가의 창의성을 뿜어내고 있다.

마치 얼마 전에 읽은 다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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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의 한글편지
순원왕후 지음, 이승희 옮김 / 푸른역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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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만 듣고 세상에, 이렇게 흥미로운 편지가 남아 있었다니, 왜 이걸 몰랐을까 가슴 설레며 읽었는데 기대에는 못 미친다. 

한중록처럼 굉장히 재밌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학문적이고 현대어 번역도 어렵고 중세 국어에 대한 음운론적인 설명이 많아 대중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한중록 같은 이야기체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겪은 비극을 환갑이 넘어 한 편의 글로 정리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그래서 더 위대해 보인다.

 

순원왕후라고 하면 조선 후기 헌종과 철종에 걸쳐 수렴청정을 했던 대단한 여인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가 쓴 편지를 읽어 보니 본인은 왕권이 잘 이어지길 바랄 따름이었고 권세는 친정에서 누렸다는 느낌이 든다.

순원왕후는 저자가 평가한 대로 권세가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 하고 주변의 시기를 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매우 유교적인 여인이었던 것 같다.

조선왕조 자체로만 본다면 역모를 허용하지 않고 왕실을 지켰으니 순원왕후는 자기 몫을 해낸 셈.

물론 시대적인 사명으로 본다면 국가를 후퇴시키고 개인 가문의 영광만을 지킨 실패자이지만.

한문도 모르던 왕실 여인으로서 갑자기 국정을 담당하라고 하니 대비로서는 당연히 친정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직접 권력을 쥐고 흔든 중국의 여태후나 측천무후, 서태후 등은 참으로 대단한 여걸들이다.

나는 막연히 순원왕후의 수렴청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상황이었던 것 같다.

순원왕후는 아들의 이른 죽음이 아니었다면 결코 정치 일선에 나설 이유가 없이 편안하게 궁에서 왕실의 안녕을 빌며 노후를 보냈을 인물 같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갑작스런 권력에 당황해 하며 친정 오라버니들에게 의존하는 힘든 시간을 보낸 듯 하다.

결국 왕위 계승자의 이른 죽음이 조선 왕조를 몰락으로 재촉한 셈인가.

 

순원왕후는 순조와 사이가 좋았는지 1남 3녀를 낳지만, 남편도 먼저 가고, 자식들과 심지어 손자마저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는다.

자손 번창을 제일로 치는 전근대 사회에서 그녀의 개인적인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어려서 죽은 것은 아니고 다들 성장해 혼례까지 치뤘으나 20대 때 죽고 만다.

네 자녀가 전부 다 말이다.

본인은 69세라는 당시로서는 천수를 누렸다.

어떤 책에서 순원왕후가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가 일가가 아닌 홍씨임을 싫어해 억지로 김씨인 후궁을 들였다고 했는데 편지를 보니 전혀  근거없는 얘기였다.

오히려 순원왕후는 손자 며느리가 득남하기를 축원하고 헌종과 사이가 나쁜 것을 매우 걱정했다.

이러니 역사는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철종을 선택한 것도 당시로서는 그나마 가장 가까운 혈족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 같고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국정을 잘 운영하길 몹시 바랬다.

왕실 어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권력욕 때문에 무지한 철종을 앉힌 것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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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과 해독 - 고대 최강대국 히타이트, 100년 동안의 발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오흥식 옮김 / 푸른역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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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납 기한이 지나버린 책이라 어제 밤에 급하게 읽었다.
다행히 분량이 많지 않고 본격적인 학술서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비교적 쉽게 쓰여진 발굴기라 속도를 내면서 읽을 수 있었다.
제목이 정말 기가 막힌다.
3천년 전에 사라진 제국 히타이트에 대한 발굴기, 그리고 그 문자에 대한 해독.
신문기자가 쓴 책이라 문장이 위트 넘치고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히타이트에 대한 첫 발로 아주 좋은 선택.
번역도 꽤나 꼼꼼하게 잘 되어 있고 역주도 성실해 더 마음에 든다.

 

히타이트라고 하면 소아시아를 지배하던 철기 문명, 전차 발명 같은 걸로만 알고 있었고 어쩐지 이집트에 비하면 전쟁을 좋아하는 야만인 느낌을 가졌는데 굉장한 편견이었다.
한 문명이 역사에서 오롯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무려 3천여 전의 국가를 다시 발굴해낸 고고학자들의 열정과 끈기도 놀랍다.
이집트학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 등도 유럽 제국주의가 팽창하면서 근동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 발굴이 활발해진 것이지만, 어느 정도는 학문의 부흥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할 것 같다.
역시 중요한 핵심은 금석문이었다.
글자가 있어야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법.
당시 재위하던 왕의 이름과 기간까지 알 수 있게 된 오늘날의 과학이 놀랍다.
히타이트인들의 기록이 없었다면 람세스 2세가 카데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도 자비롭게 평화조약을 맺은 것으로 오늘날까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문자는 본질의 왜곡을 수반하지만 후대에 자신들의 입장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뭔가 있을 것이다는 막연한, 그러나 돌이켜 보면 꽤나 통찰력 있는 생각 하나만으로 거대한 모래 벌판을 뒤엎는 고고학자들의 열정도 놀랍고 사라져 버린 고대 문자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는 언어학자들의 능력 또한 감탄사가 나온다.
엄청난 열정과 끈기, 그리고 비상한 머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국의 역사가 아닌데도 (어찌 보면 당시로서는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역사인데도) 이렇게 많은 유럽 학자들이 열광하면서 발굴과 해독에 매달리는 걸 보면 역시 문명이란 특정 민족의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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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와 미라 -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이집트 문명전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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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도에 했던 전시인데 도록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비싸다고 생각해서 안 샀던 모양이다.
박물관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는데 당시 전시회 봤던 기억은 거의 나지 않고 생소한 느낌이다.
전시가 끝나면 바로 도록을 봐야 기억에 많이 남는 법.
그 후로 가능하면 도록은 바로 사서 읽고 있다.
박물관 도서관은 이런 도록들이 많다는 점에서 무척 유용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개관 시간.
평일이나 주말 상관없이 오후 6시까지라 나 같이 주말에도 일하는 직장인은 이용하기가 참 어렵다.
동네 도서관들도 예전에는 열람실이 6시면 폐관이었는데 주민 편의를 위해서 언제부터인가 평일에는 밤 10시까지 연장 운영을 하고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도 이렇게 바뀔 날이 올까?
중앙도서관은 6시 이후 특정 공간만 오픈을 하긴 하는데 너무 비좁아 앉아 있을 틈이 전혀 없어 야간 방문은 포기했었다.

 

이집트 역사에 대해 기본 지식이 없으면 유물을 위주로 설명하는 이런 도록은 지루하기 십상이다.
최근에 일본인 학자가 쓴 이집트 관련 도서를 흥미롭게 읽어 도록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연대가 약간씩 차이가 나긴 했지만 지금으로부터 무려 5천년 전의 왕 이름과 재위 기간까지 계산해낸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쏟아지는 유물과 기록들이 전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이집트 문명은 후손들에게 문명의 시작으로 추앙받고 그 실체가 온전히 전해지는 것이리라.
그에 비하면 단군조선 등은 기록이나 유물이 거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후에 통일이 되고 나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처럼 뭔가 획기적인 발굴이 이루어져 비로소 실체가 있는 역사시대로 넘어올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유물들은 대부분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보니 종교와 연관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일상 생활에서 쓰던 용기들은 굳이 무덤에 넣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내세와 연관된 것, 영원한 삶과 관련있는 것들만 정성스레 부장했을 것이다.

내세와 영원불멸의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보면서 인간은 상상력이 풍부한 동물이고 그 덕에 종교가 발명돼고 오늘날까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봤다.
이집트에 대한 지식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기 때문에 다음 번에는 <파라오의 역사>와 생각의 나무에서 출간된 <이집트>도록을 읽어 볼 생각.
독서의 폭이 확장된다는 것은 무척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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